권여선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에서 오이지무침 부분을 읽다가 난데없이 반성 아닌 반성을 해야 했다. 오이지무침은 소설가 권여선이 여름 내내 떨어뜨리지 않고 해먹는 밑반찬인데 탈수가 생명이란다. 그런데 여자의 악력으로는 꼬들꼬들한 오이지 식감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목을 보호하기 위해 오이지를 짜던 베보자기를 그대로 펼쳐 냉장고에 넣고 서너 시간 말렸다 무치는 꾀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평소 음식용 짤순이가 있는 작은어머니를 부러워하던 그녀가 그러다 어느 날 발견한 방법은...


"요즘은 한결 수월하게 애인을 불러 짤 것을 명한다. 애인이 인정사정없이 쥐어짠 오이지는 꼬들꼬들을 넘어 오독오독하다. 정말 내 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이 친구가 악력 하나는 타고났다. 그러니 날 놓치지 않고 잘 붙들고 사는 것이지 싶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렇지. 애인이나 남편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지...'라고 중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악력이 약하다. 일단 손이 작기도 하고 요령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손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와인을 딸 때도 늘 아내가 와인병을 잡는다. 내가 따면 따개 스프링이 코르크마개를 비뚤게 관통해 마개가 쪼개지기 일쑤라 늘 야단을 맞는다. 게다가 난 손목도 약하다. 군대 가서 오른쪽을 다쳤기 때문이다(군대 가서 다쳤다고 하면 다들 훈련하다 다친 것으로 오해해 줘서 약간 폼이 나긴 하는데 사실은 이등병 때 내무반에서 걸레질 하다가 손목에 너무 힘을 주고 미끄러져 크게 접지른 것이었다). 

아무튼 안 그래도 약한 게 많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항목에 '악력'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되었다는 슬픈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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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이 떠져 물을 마시러 밖으로 나왔다가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물을 마시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잠이 안 와서 책이나 읽으려고 나왔는데 아내가 잠결에 설거지나 하라고 해서 하게 된 것이었다. 간밤에 친구들이 놀러와서 술을 마셨으므로 싱크대엔 많은 술잔과 접시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 그릇들을 보니 책을 읽고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책을 읽기 전에 설거지부터 하자고 마음 먹었다. 처음엔 하기 싫었는데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어서 열심히 하게 되었다. 설거지를 다 하고 마른 행주로 유리잔과 그릇들의 물기까지 다 제거하고 난 뒤 비로소 식탁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집어들었다. 


제목을 읽고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마지막 챕터 소제목이 '카레닌의 미소’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쇼코의 미소>는 제목과 달리 그리 서정적인 작품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와서 홈스테이를 하며 주인공 소유를 만나게 된 쇼코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중편 소설이다. 그런데 유창한 영어로 “언젠가는 유두 근처에 애벌레 모양 타투를 할 거야.”라고 말해 주인공 소유를 웃게 만들었던 쇼코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유와 점점 괴상하고 살벌한 대화를 주고받게 되고 소설은 이 부분부터 범상치 않은 공력을 발휘한다. 

소설을 읽기 전 평소의 버릇대로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는데 거기엔 작가가 등단하기 전에 얼마나 여러 번 좌절하고 절망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었고 그 심정은 소설 속 소유가 영화감독 지망생이 되어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 영화를 만들며 주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을 때의 모습으로 그대로 투영된다. 나는 훌륭하게 쓰인 거의 모든 소설은 실패담이라고 믿는 편인데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소유는 끝내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하지 못한다. 아니, 그녀가 성공했더라면 이 이야기는 쓰이지 못했을 것이고 만약에 작가가 살짝 미쳐서 그렇게 썼더라면 아무런 재미도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쇼코가 일본어로 주고받는 편지에 대한 질투, 소유가 일본으로 찾아갔을 때 쇼코가 보여줬던 이상한 행동 등은 나중에 할아버지와 엄마의 비밀들과 반전으로 얽히면서 기이한 감동을 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아내에게 ‘당신은 술이 취하면 안주를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주의를 듣고 짧게라도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띠지에 ‘소설가들이 뽑은 2016년 올해의 소설 1위!’라고 쓰여 있더니 정말 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이다. 이 느낌을 한 마디로 뭐라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년에 읽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와 더불어 책꽂이에 나란히 세워두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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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시간에 교보문고 가서 산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중 <봄밤>을 회사에서 읽고 조금 울었다. 서점 갈 때마다 조금씩 들춰보다가(이 책의 책장을 펼칠 때마다 이상하게 급한 전화가 왔다) 오늘에야 사서 끝까지 읽은 것이다. 힘들 때 이렇게 슬픈 소설을 읽으면 왠지 힘이 난다. 눈물에도 세로토닌이 들어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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