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강변에서 옴니버스 영화 [키스]를 관람했습니다. 2년 전에 만든 영화인데 우여곡절끝에 이제야 개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덟 편의 키스에 얽힌 이야기들로, 거의 하룻동안에 다 찍은 영화들이라고 합니다. 제작비도 적고 시간, 장소 등에 제약이 많은 인디영화였기 때문이겠죠. 

저는 북한의 핵발사로 인해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에 갇힌 채 청취자들에게 유언처럼 서로의 오랜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디제이와 PD의 이야기인 '행복한 오후 2시' 와 골목에서 친구 삥뜯던 반장을 혼내주던 여고생 이야기 '소녀시대', 그리고 키스방에서 일하는 키스 알바생에게 훈계를 당하는 고시생 시봉이 이야기인 '달인' 이 재밌었습니다. 

배우 김혜나 씨는 제 여친과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 마침 이 영화에 출연하는 열 아홉 명의 배우 중 열 한 명을 감독과 제작진에게 소개한 '캐스팅' 담당으로 오늘 와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잠깐 인사를 하더군요. 아마 인간성이 좋거나 대인관계가 대단히 넓은 배우인 거 같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저희와 잠깐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요즘은 이런저런 재능기부도 하고 EBS에서 무슨 낭독 프로그램도 맡아 한다고 하더군요. 저와 예전에 일로 잠깐 만날뻔했던 얘기를 했더니 당시 상황을 너무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김혜나 씨는 앞으로 소셜테이너로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영특한 배우입니다.

이 영화엔 제 페친인 연극배우 서민성 씨도 잠깐 나옵니다. 실력 있는 연극배우들과 홍대앞 인디밴드 멤버도 배우로 출연을 하는 꽤 흥미로운 프로젝트입니다. CGV강변에서 사흘간 상영을 하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데 앞으로 다른 극장에 더 걸리게 될지 아니면 IPTV등으로 옮기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발표 때는 전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었다던데 이렇게 상영관을 잡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중에 케이블이나 IPTV로라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지만 이야기나 연기는 결코 허술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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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노 2013.03.12 1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키스> 일반상영이 결정되어 댓글 남깁니다.
    일주일은 더 극장에서 보실 수 있어요.. ^^

 

제겐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뭔가 일을 시작하면 좀처럼 다른 걸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워커홀릭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일을 하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아이디어를 내는 직업일수록 더 그렇지요. 그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어떡하지”,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하고 근심 걱정으로 보내는 시간이 전부입니다. 이건 일의 성과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냥 제가 새가슴이라 그런 겁니다.

일을 회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겁니다.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취해서 몸도 마음도 늘어지기 때문에 뭐든 포기가 빠르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데’는 술만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일이 싫다고 늘 술만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보면 일도 지지부진하면서 다른 것도 전혀 즐기지 못하는 오갈 데 없이 한심한 상태가 도래합니다.

이래저래 전 몇 달 간 전혀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영화도 죄다 놓쳐서 [건축학개론], [어벤저스], [은교] 등 못 본 영화가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SNS나 블로그에도 글을 잘 올리지 못합니다. 일도 성에 차게 못하면서 다른 걸 한다는 게 맘에 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프로그램은 별로로 짜면서 취미로 멋진 탁자를 만들었다고 칩시다. 저는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그럼 넌 목공을 하지 왜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 거야?”

 

마음에 공황 상태를 메우기 위해서는 ‘잘 읽히는 책’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지리산]은 쉬운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병주라는 한 시대의 천재가 목숨을 걸고 쓴 대하장편소설입니다. 요즘처럼 인문학과 실용서만 주로 읽던 제겐 [지리산]처럼 유장하고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소설이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이 책은 전에 제가 어렸을 때 줄까지 쳐가며 읽었던 소설인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문물이 쏟아지던 격동의 세월을 거스르며 살다 죽어간 한반도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TV드라마로도 각색되어 방영된 적도 있지요. 생각해보면 [태백산맥]이나 [토지]에 비해 너무 일찍 완간된 불행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관부연락선]이랑 이어 읽은 기억이 나서 그것부터 읽을까 하다가 일단 책장에서 눈에 띄길래 이 책부터 집어들었습니다. 앞으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고 티블로그에 독서일기를 연재할 생각입니다. 이미 끝까지 읽은 독자들이 수두룩한데, 이런 식의 독서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쥐가 자라나는 이빨을 시멘트 바닥에 갉아내는 기분으로 그냥 미련하게 한 번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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