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고민이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길을 걷는다. 하염없이 걷다보면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도 있고 마음이 좀 가라앉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만. 그런데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길을 좀 걷는 게 아니라 아예 지리산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한 대책 없는 남자가 있다. 원순 씨다. 지금의 서울시장 박원순 씨 말이다.

 


“무식한 자가 일을 저지른다”

 

2011년 7월 19일부터 49일간 계속된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희망을 걷다] 본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희망제작소 등등 사회적기업 활동으로 평소 일정도 초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하는 형편이고 등산 경험이라고는 지리산 등반 두어 번이 전부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심한 평발이라 남들보다 걷는 게 훨씬 더 힘든 체질이라는 걸 알면서도 덜컥 저질러버린 자신의 무모함을 개탄하며 하는 소리다.

 

박원순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산에 올랐다 한다. 사색의 시간이 절대로 필요한 그 중요한 순간에 그는 오히려 육체적 괴로움을 택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몸과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작부터 좌충우돌 박원순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사실, 남자들끼리 매일 이 산 저 산 옮겨다니는 얘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재미가 있다.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밟아가는 동안 박원순이 버리고, 가려내고, 정리하고, 듣고, 배우고, 자라는 생각의 모습들이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비장하게 또는 유머러스한 문장들로 촘촘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박원순의 처절하도록 철저한 기록 정신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면 다 공감하겠지만 누구나 등산길에 나서서 한나절만 지나면 발이 아프고 기운이 쪽 빠져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휴식시간마다 우리의 원순 씨는 작은 수첩에 메모를 하고 또 했다. 그리고 산장에 들어 모두들 곯아떨어지거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도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그동안의 일기를 정리하곤 했다.

 


누군가를 알고싶다면 그 사람과 여행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박원순이라는 인간이 궁금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솔직하고 친절한 안내서와 같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일행들과 대화하고 질문하며 자연과 교감한다. 그러니 가는 길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이야기와 성찰이 피어난다.

 

예를 들어 육십령이라는 고개는 예전에 산적들이 들끓어서 육십 명이 모여야만 비로소 고개를 넘어가던 곳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미리 알지도 못하고 나중에라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같은 곳을 가더라도 “와, 여기 무척 험하네.”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만약 김훈이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고 경치 좋은 산천만 구경하고 돌아다녔다고 생각해 보라. [자전거 여행] 같은 책이 나왔겠는가.

 


“무기수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구두를 닦는 사람”이란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더 오래 살기 때문이란다. 이 말은 박원순이 함께 팀을 꾸려 온 백두대간 종주팀 ‘다섯 손가락’의 석 대장님이 쉬는 시간에 박원순에게 해준 말이다.

 

박원순은 여행의 의미를 확충시킬 수 있는 감성과 지식을 둘 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 지역에 얽힌 일화와 전설을 들춰내고 거기에 얽힌 고사성어를 떠올린다. 어떤 곳에서는 [장자]의 도척 편에서 공자가 도척이라는 도둑을 설득하러 갔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신영복 선생이 즐겨 이야기 한다는 ‘독버섯의 우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힘든 산행 도중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라는 책이나 시시포스의 신화를 되새겨보기도 한다. 쏟아지는 여름 빗속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강산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하면 고장난 스마트폰 때문에 더 이상 SNS를 할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난 세상을 버렸다”라고 귀여운 한탄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백두대간 깊은 산속까지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가 스며들어와 결국 정치의 바다로 뛰어들 것을 결심하고 안철수 후보와의 만남 때문에 5일 정도 일정을 앞당겨 산을 내려가는 것으로 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사람은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어 냈고 박원순은 서울시의 시장이 되었다.

 

사색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골방에 숨어 몇 날 며칠 끙끙대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박원순처럼 ‘무조건 저지르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사색의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 박원순의 사색은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합리적으로 일하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현재의 시정을 통해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멋진 건 책 뒷부분에 적혀있는 ‘다섯 손가락’ 석락희, 박우형, 김홍석, 홍명근, 그리고 보급대장 신충섭이 쓴 글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멤버들이 하나같이 박원순을 ‘원순 씨’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박원순 씨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2월 어느날, 일산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날 우리는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이 책과 마주쳤다. 여자친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다섯 권이나 사더니 우리가 읽을 책 한 권만 빼고 모인 친구들 부부에게 선물로 주었다. 결과적으로 여덟 사람에게 책을 선물한 셈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 친구들은 여덟 개의 ‘희망’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도 꽤 멋진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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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일기 2

독서일기 2012. 5. 14. 15:26

 

핑계 같지만, 요즘은 도대체가 소설책 읽을 시간이 안 나네요. 그래도 어딘가 이동할 때마다 조금씩 읽긴 했습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던 안중근 의사가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규가 상주에서 입시공부를 하며 도꼬노미 야스꼬라는 여관집 딸과 기묘한 만남을 가지게 되는 건 지난번에 말했었죠. 수학문제를 가르쳐준 수재 규에게 홀딱 반한 야스꼬는 그 다음에 또 규가 있는 곳으로 수학문제를 들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날 폭풍우가 치고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어서…ㅋㅋㅋ 아아, (이거 무슨 도미시마 다께오의 포르노소설 같은 설정이지만) 둘은 결국 같이 잤습니다만,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싱겁기 짝이 없는 일이죠.


새학기가 되어 학교에서는 학생복을 카키색으로 바꿉니다. 각반도 상시 착용하게 하구요. 이른바 ‘전시체제’로 돌입하는 것이죠. 학생들은 카키색 학생복을 입기 싫다 하여 수업 거부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전학을 가기도 합니다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습니다. 학우 중 주영중과 곽병한은 이 문제로 서로 심하게 싸우기도 합니다. 작가는 명급장인 김상태를 등장시켜 이 사건을 마무리하지만 나중에 주영중이 뭔가 동티를 남긴다는 암시로 “주영중은 무서운 사나이”라고 기록해 놓습니다.

한편 권위를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괴짜 선생인 쿠사마는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는 2차대전 발발을 거론하며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승리자이니 모두 살아서 10년 후를 기약하자”라고 말하고 학교를 떠납니다.

규는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하죠. 그러나 아버지 심부름으로 찾아간 종갓집 형에게서 네 형편에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말라는 독한 얘기와 행패를 경험하고 굉장한 충격을 받습니다.


여기서 1940년 2월 11일에 있었던 ‘창씨개명’ 사건이 비중있게 다뤄집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진학의 길도 막혀버릴 상황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돈 많은 ‘딜렛탕트’ 하영근의 입을 빌어 당시 창씨개명에 앞장 섰던 작가 이광수를 심하게 비난합니다.(189페이지) 글은 달착지근하게 잘 쓰지만 아무런 사상도 진정성도 갖지 못한 모리배 같은 자라는 거죠.

우여곡절 끝에 친구 윤근필과 함께 일본 경도에 있는 ‘삼고’에 입학한 규는 경도 안에 있는 묘심사라는 고요한 절에 자주 가 책을 읽다가 세스꼬라는 여학생과 친하게 됩니다. 조선인이지만 수재들만 다닌다는 삼고 학생인 규에게 세스꼬가 홀딱 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 후 세스꼬의 집에 찾아갔던 규는 사춘기 소년이면 당연히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욕정에 놀라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엔 여자가 더 대담해지는 법. 결국 둘은 대판에 있는 여관에 들어가 어렵게 어렵게 첫경험을 치르게 됩니다. 규는 허망한 첫경험 이후 자신이 비로소 욕정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느낍니다.

대판에 가서 세스꼬와 자던 날, 규는 우연히 길에서 국민학교 동창인 고완석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무작정 일본에 와서 고학을 하며 성실하게 생활을 하다가 어느 일본인의 눈에 들어 그 집의 양자로까지 들어가게 되면서도 민족적 자존감 만은 잃지 않는 꿋꿋한 친구를 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편 규가 삼고로 진학을 하는 동안 창씨개명 문제로 퇴학을 당한 천재 박태영은 경도로 규를 찾아와 <죄와벌>의 라스꼴리니코프를 비난하다가 자신은 앞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칠 결심을 털어놓습니다.

“나는 앞으로 술도 담배도 안 할끼다. 어느 시기까진.”
아까부터 넌 어느 시기, 어느 시기 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시기란 뭣고?”
“우리나라가 독립될 때까지.”


그리고 쿠사마 선생이 얘기한 10년 후를 거론하며 둘 다 27세, 28세가 되었을 때를 상상하며 독립투사와 대학자로서의 기초작업을 하자고 약속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은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는 말도 합니다.

박태영은 일본에서 우유배달을 하며 검정고시 공부를 틈틈히 합니다. 그러나 천재는 어디 가서도 표가 나는 법. 태영은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맙니다. 전검시험에서 1등 합격을 하는 바람에 신문기자가 찾아오고 어쩌구…결국 전국적인 스타가 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팬레터를 받게 된 태영은 특히 김숙자라는 교포 여학생의 편지에 감복해 그녀를 찾아가게 되고 둘은 졸지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역시 청춘남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른 풀처럼 불이 잘 붙습니다.

우유배달소엔 태영 말고도 원서를 읽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리를 저는 20대 후반의 과묵한   청년 무나까와였습니다.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이층에서 덜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무나까와는 태영에게 독일어를 배울 것을 권하고 곧 그의 독일어 개인교사가 됩니다...


분명 전에 다 읽은 내용들인데 어쩌면 이렇게 새 책 같은지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지금 2권 71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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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일기 1

독서일기 2012. 5. 4. 11:15

 

 

이 소설은 1933년 추석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박경리의 [토지]가 1897년 추석날 시작하던 것과 비슷하지요? 첫 장면은 제사를 지낸 규와 태가 다음날 지리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십 리라고 했던 무덤까지의 거리는 그 두 배가 넘는 길이었다는 게 밝혀지죠. 그건 할머니의 양반이수’라는 뻥이었다고 같이 가던 중부가 알려줍니다. 양반이수란 양반들이 짐꾼들 삯을 떼어먹으려고 거리를 줄여 말하던 수작을 일컫는 말이었죠. 규와 태는 결국 지리산에 있는 할아버지 묘에 참배를 하고 나오다가 제사 지낼 때 펴놨던 병풍과 똑같은 풍경을 목격하고 할아버지가 수십 년 전에 화공을 앞세우고 거기까지 와서 그 풍경을 병풍에 그대로 담게 한 까닭을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규와 같이 산소에 갔던 중부는 몇 년 뒤 가출을 해버립니다. 독립운동 하느라 집안 다 말아먹고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중부를 보다 못한 백부가 마름 자리라도 해보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된 겁니다. 행방이 묘연한 중부는 지리산에 있는 ‘서동지’라는 사람을 찾아간 게 아닌가 하는 아련한 소문만 남깁니다.

 

규는 공부도 잘 하고 마음가짐도 바른 청년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박태영이라는 엄청난 천재와 친구가 됩니다. 고리끼의 소설을 탐독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불려간 사건을 계기로 박태영과 더 친해진 규는 돈 많은 지식인이자 자신을 ‘딜렛탕트’라고 자조하는 인물 하영근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중국의 노신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죠. 그리고 하영근의 딸 윤희에게 희미한 연정도 품게 됩니다. 일본인이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인 하라다 교장과 영어선생인 쿠사마도 만나게 되는군요. 지금 고등학교 진학 공부를 위해 상주에 왔다가 여관집 딸인 야스꼬의 수학문제를 풀어주는 바람에 이 여자와도 나중에 뭔가 이루어질 분위기를 풍깁니다…지금 134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어렸을 적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새삼 기억납니다. 중편소설인데도 스케일이 크고 꿈을 꾸는듯한 낭만적인 필치가 어지간히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이게 데뷔 소설이라니요. 그리고 그 뒤 고등학교 2학년 때 [행복어사전]을 읽으면서 얼마나 즐거웠던지. 지금 다시 읽으면 좀 구시대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병주를 읽으니,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랄까.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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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뭔가 일을 시작하면 좀처럼 다른 걸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워커홀릭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일을 하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아이디어를 내는 직업일수록 더 그렇지요. 그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어떡하지”,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하고 근심 걱정으로 보내는 시간이 전부입니다. 이건 일의 성과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냥 제가 새가슴이라 그런 겁니다.

일을 회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겁니다.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취해서 몸도 마음도 늘어지기 때문에 뭐든 포기가 빠르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데’는 술만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일이 싫다고 늘 술만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보면 일도 지지부진하면서 다른 것도 전혀 즐기지 못하는 오갈 데 없이 한심한 상태가 도래합니다.

이래저래 전 몇 달 간 전혀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영화도 죄다 놓쳐서 [건축학개론], [어벤저스], [은교] 등 못 본 영화가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SNS나 블로그에도 글을 잘 올리지 못합니다. 일도 성에 차게 못하면서 다른 걸 한다는 게 맘에 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프로그램은 별로로 짜면서 취미로 멋진 탁자를 만들었다고 칩시다. 저는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그럼 넌 목공을 하지 왜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 거야?”

 

마음에 공황 상태를 메우기 위해서는 ‘잘 읽히는 책’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지리산]은 쉬운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병주라는 한 시대의 천재가 목숨을 걸고 쓴 대하장편소설입니다. 요즘처럼 인문학과 실용서만 주로 읽던 제겐 [지리산]처럼 유장하고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소설이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이 책은 전에 제가 어렸을 때 줄까지 쳐가며 읽었던 소설인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문물이 쏟아지던 격동의 세월을 거스르며 살다 죽어간 한반도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TV드라마로도 각색되어 방영된 적도 있지요. 생각해보면 [태백산맥]이나 [토지]에 비해 너무 일찍 완간된 불행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관부연락선]이랑 이어 읽은 기억이 나서 그것부터 읽을까 하다가 일단 책장에서 눈에 띄길래 이 책부터 집어들었습니다. 앞으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고 티블로그에 독서일기를 연재할 생각입니다. 이미 끝까지 읽은 독자들이 수두룩한데, 이런 식의 독서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쥐가 자라나는 이빨을 시멘트 바닥에 갉아내는 기분으로 그냥 미련하게 한 번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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