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읽은 벨기에 작가의 단편집인데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찾아 읽어봤습니다. 스토리텔링이 아주 매혹적입니다. 한 번 사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앙리라는 한 남자가 있다. 이 친구는 자신한테 눈꼽만치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의료품을 팔기 위해 하루 열 시간씩 차를 몰고 다닌다. 개처럼 일만 하는 남자. 게다가 가입한 사교 클럽 하나 없고 유머감각 조차 없으니 괜찮은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배달된 신문 사이에 끼어있던 찌라시에 ‘여자친구를 찾고 계십니까? 자연스럽고 순수한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만 연락 바랍니다.(성적 접촉이나 매춘 아님)’이란 요상한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앙리가 전화를 걸어 어떤 농장 같은 데로 찾아가 보니 흰 가운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나타나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자를 소개한다. 주변엔 암소들이 많다. 앙리가 여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남자가 말한다.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암소니까요.”

 
이런 이상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데 진짜 이런 소설이 있다. 토마 귄지그라는 벨기에 소설가가 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라는 소설집 중 <암소>라는 단편이 바로 그것이다.
 
 
가운을 입은 남자는 농학자였다. 그는 유전자 변형 연구를 하다가 더 많은 고기, 더 많은 우유는 물론 사람을 닮아 보기에도 좋은 암소를 만들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을 삼 개월 동안 관찰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광고를 낸 것이다. 석 달 동안 이 여자를 데리고 있다가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앙리는 암소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안타까운 사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여자가 단지 암소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말도 한 마디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농학자가 어찌나 심하게 다뤘는지 손만 대려고 해도 질겁을 하고 도망을 친다.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서는 거실 바닥에다가 태연하게 똥을 싼다. 앙리는 일단 각설탕으로 여자를 유혹해서 소파 위에서 억지로 성관계를 맺는데 성공한다. 
 

우울한 몇 주일이다. 그리고 우울한 크리스마스다. 여자를 일찍 반납하면 안 되냐고 전화를 걸어물어봤더니 삼 개월을 꼭 채워야 한단다. 마갈리란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여자는 여전히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고 부엌바닥에서 누워 잔다. 앙리가 아무리 잘해줘도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를(사실은 암소를!) 소파에서 강간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 앙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사료나 찾는 여자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글펐다.
앙리는 마갈리에게 지랄을 한다. 너 같은 건 이제 더 보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는 밀린 일을 하다가 빵을 가져가려고 부엌으로 갔다. 부엌 창문을 통해 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뺨에서 눈물 같은 게 보이는 거 같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며칠 후 앙리는 가운 입은 남자에게 암소를 데려갔다. 앙리는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짓고 그 일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가운 입은 남자는 암소를 외양간에 가두기 위해 암소의 엉덩이를 세차게 갈겼다. 

  “음, 그러니까 똥오줌을 가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로군요.” 가운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사실 이런 걸 개인이 집 안에 두고 기른다는 건 아직 무리죠.”   앙리는 그 말에 동의하고는 암소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아, 이 암소 말인가요? 아쉽지만 이 녀석은 젖소가 아닙니다. 하지만 육질만큼은 최상품이죠. 조만간 도축업자들에게 넘길 겁니다. 제가 늘 거래하는 곳이 있거든요.”   앙리는 남자의 사업수완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정말 골때리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설이 골때리는 얘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소재를 통해 인간의 모순과 인생의 슬픔, 외로움 등을 잔인할 정도로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암소> 외에도 여섯 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는데, 모두 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란 인간이길래 이따위로 못돼먹고 뒤틀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고 환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가학적인 유머감각에 낄낄거리다가도 갑자기 세상 살기가 싫어질 정도로 살벌한 냉기를 함께 느끼게 해주는 미친 작품들. <암소> 외에도 <기린>, <곰, 뻐꾸기, 무늬말벌, 청개구리>, <코알라> 등이 특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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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와일러 시대부터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는 유구하다. 전계수의 [러브 픽션]은 작정하고 만든 로맨틱 코미디다.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의 말마따나 영화 세 편은 만들 수 있는 양의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 하정우 공효진 등의 무르익은 연기와 극중극 형식, 남자 주인공의의 내면을 반영하는 도플갱어 멀티맨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잔재미를 선사한다.

따스한 햇빛이나 술집 공간처럼 왠지 일본 로맨틱 코미디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미장센들은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경쾌한 음악, 재치 있는 가사들도 즐겁다. 특히 영화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여자의 겨드랑이털을 전면으로 부각시켜 여자의 과거 행각, 극중 소설의 제목, 밴드의 노래, 뮤직비디오 등으로 확장시킨 뚝심을 높이 사고 싶다. 

시퀀스 연결이나 편집이 약간 성긴 느낌도 난다. 너무 많은 아이디어들이 들어가 전체적으로 과잉이 된 느낌이랄까. 조금만 더 짧았으면 더 경쾌했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하정우와 공효진의 연기 앙상블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겨지는 영화. 게다가 지진희의 진지한 조연은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개봉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초반부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관객들은 민감하다. 어이없게도 추석이면 조폭 코미디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재밌는 영화는 금새 알아본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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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옛 회사 동료이자 페북 친구인 권오성 님과 댓글로 김연수의 신작 얘기를 주고받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엄청 좋아하는 작가라고 했더니 권오성 님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친 김에 책을 읽은 직후에 써놓았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독후감을 여기에 한 번 올려봅니다.




엄청나게 똑똑하고 믿을 수 없게 뛰어난 천재의 작품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면 글은 당연히 무거워지기 쉽다. 반면에 아무렇게나 몸을 놀리며 가볍게 칠렐레팔렐레 쓰는 거 같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보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비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칠렐레 팔렐레 천의무봉으로 자유롭게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불가능한 일을 해낸 사람도 가끔은 있는 법이다. 내 생각엔 그가 바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다. 그리고 그가 쓴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홉 살이다. 그의 아빠는 9·11 때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었다. 아빠는 죽기 직전에 다급하게 집으로 여러 통의 전화를 했고 오스카는 그때 자동응답기에 아빠의 목소리가 녹음 되는 걸 알면서도 너무 무서워서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극적인 일이다. 오스카는 그 이후로 전화를 무서워한다.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한다. 전화기를 무서워하는 오스카는 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얘기를 할 때는 무전기를 사용한다. 난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말투를 창조해 낸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가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할머니? 할머니?” “오스카니?” “전 잘 있어요. 오버.” “밤이 늦었어. 무슨 일이냐? 오버.” “저 땜에 깨셨어요? 오버.” “아니다. 오버.” “뭐하고 계셨어요? 오버.” “세입자한테 얘기를 좀 하던 참이었다. 오버.” 그 사람도 아직 안 자고 있어요? 오버.” 엄마는 세입자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단다. 하지만 방금 막 나갔어. 심부름할 것이 좀 있어서. 오버.” “하지만 지금은 새벽 4시 12분인데요? 오버.”


오스카는 전화를 무서워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에게 자기를 제자로 삼아달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제인 구달에게서 답장을 받기도 한다. 호킹도 나중에 정중한 답장을 보내온다. 그는 쉴 때마다 공상을 하고 발명을 한다. 보통 아홉 살이 아니다.
어느날 오스카는 아빠의 방을 뒤져보다가 파란색 꽃병을 깼는데, 그 속에서 ‘블랙’이라고 씌여진 봉투와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낸 뒤 여덟 달에 걸쳐 그 사람들을 방문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유는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기 위해서다.

한편, 할머니는 오스카의 아버지를 임신했을 때 남편과 헤어졌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에서 폭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말을 못하는 상태였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에서처럼 여기서도 드레스덴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그 책도 비극적인 현실을 블랙유머로 펼쳐낸 책이었다. 보네거트와 사프란 포어는 이렇게 만나는 건가)

노트에 필기를 해서 대화를 했고 왼손엔 “예스”, 오른손엔 “노”라고 문신을 해서 의사소통을 했다. 할머니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제발 저랑 결혼해 주세요.” 그리고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을까 봐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인 일이다. 둘 다 아주 젊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아,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하다 보니 이상해진다.그냥 짧게 말하겠다.

이 소설은 엄청난 입심과 다채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시도들로 이루어진 멋진 작품이다. 페이지 사이사이 사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글이 딱 한 줄만 써있는 페이지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글씨들이 서로 겹쳐져 볼 수 없게 만든 페이지도 있다. 근데 놀라운 건 그런 시도들이 조금도 치기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가가 말하려는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을 워낙 잘 쓰다 보면 그렇게도 되는 모양이다.

정말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아니, 너무 슬프면 울지 못한다. 그래서 오스카도 아빠의 장례식에 가는 날 리무진 운전기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오스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완벽하게 이해한다.

 

넌 운전사와 농담을 하고 했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운전사를 웃겨야 할 만큼 넌 고통스러웠던 거야.

이 소설은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로 똑 같은 장면을 찍을 것처럼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화자가 바뀌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깨달음을 선사해 준다. 그런 시선들과 사건들이 쌓이면서 여덟 달 만에 이야기는 마침내 이상한 감동과 함께 따뜻한 위로와 화해의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게 확실해 보인다. 아직 새파란 1977년생인데. 아무래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엄청나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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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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