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 2

독서일기 2012. 5. 14. 15:26

 

핑계 같지만, 요즘은 도대체가 소설책 읽을 시간이 안 나네요. 그래도 어딘가 이동할 때마다 조금씩 읽긴 했습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던 안중근 의사가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규가 상주에서 입시공부를 하며 도꼬노미 야스꼬라는 여관집 딸과 기묘한 만남을 가지게 되는 건 지난번에 말했었죠. 수학문제를 가르쳐준 수재 규에게 홀딱 반한 야스꼬는 그 다음에 또 규가 있는 곳으로 수학문제를 들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날 폭풍우가 치고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어서…ㅋㅋㅋ 아아, (이거 무슨 도미시마 다께오의 포르노소설 같은 설정이지만) 둘은 결국 같이 잤습니다만,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싱겁기 짝이 없는 일이죠.


새학기가 되어 학교에서는 학생복을 카키색으로 바꿉니다. 각반도 상시 착용하게 하구요. 이른바 ‘전시체제’로 돌입하는 것이죠. 학생들은 카키색 학생복을 입기 싫다 하여 수업 거부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전학을 가기도 합니다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습니다. 학우 중 주영중과 곽병한은 이 문제로 서로 심하게 싸우기도 합니다. 작가는 명급장인 김상태를 등장시켜 이 사건을 마무리하지만 나중에 주영중이 뭔가 동티를 남긴다는 암시로 “주영중은 무서운 사나이”라고 기록해 놓습니다.

한편 권위를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괴짜 선생인 쿠사마는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는 2차대전 발발을 거론하며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승리자이니 모두 살아서 10년 후를 기약하자”라고 말하고 학교를 떠납니다.

규는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하죠. 그러나 아버지 심부름으로 찾아간 종갓집 형에게서 네 형편에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말라는 독한 얘기와 행패를 경험하고 굉장한 충격을 받습니다.


여기서 1940년 2월 11일에 있었던 ‘창씨개명’ 사건이 비중있게 다뤄집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진학의 길도 막혀버릴 상황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돈 많은 ‘딜렛탕트’ 하영근의 입을 빌어 당시 창씨개명에 앞장 섰던 작가 이광수를 심하게 비난합니다.(189페이지) 글은 달착지근하게 잘 쓰지만 아무런 사상도 진정성도 갖지 못한 모리배 같은 자라는 거죠.

우여곡절 끝에 친구 윤근필과 함께 일본 경도에 있는 ‘삼고’에 입학한 규는 경도 안에 있는 묘심사라는 고요한 절에 자주 가 책을 읽다가 세스꼬라는 여학생과 친하게 됩니다. 조선인이지만 수재들만 다닌다는 삼고 학생인 규에게 세스꼬가 홀딱 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 후 세스꼬의 집에 찾아갔던 규는 사춘기 소년이면 당연히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욕정에 놀라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엔 여자가 더 대담해지는 법. 결국 둘은 대판에 있는 여관에 들어가 어렵게 어렵게 첫경험을 치르게 됩니다. 규는 허망한 첫경험 이후 자신이 비로소 욕정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느낍니다.

대판에 가서 세스꼬와 자던 날, 규는 우연히 길에서 국민학교 동창인 고완석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무작정 일본에 와서 고학을 하며 성실하게 생활을 하다가 어느 일본인의 눈에 들어 그 집의 양자로까지 들어가게 되면서도 민족적 자존감 만은 잃지 않는 꿋꿋한 친구를 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편 규가 삼고로 진학을 하는 동안 창씨개명 문제로 퇴학을 당한 천재 박태영은 경도로 규를 찾아와 <죄와벌>의 라스꼴리니코프를 비난하다가 자신은 앞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칠 결심을 털어놓습니다.

“나는 앞으로 술도 담배도 안 할끼다. 어느 시기까진.”
아까부터 넌 어느 시기, 어느 시기 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시기란 뭣고?”
“우리나라가 독립될 때까지.”


그리고 쿠사마 선생이 얘기한 10년 후를 거론하며 둘 다 27세, 28세가 되었을 때를 상상하며 독립투사와 대학자로서의 기초작업을 하자고 약속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은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는 말도 합니다.

박태영은 일본에서 우유배달을 하며 검정고시 공부를 틈틈히 합니다. 그러나 천재는 어디 가서도 표가 나는 법. 태영은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맙니다. 전검시험에서 1등 합격을 하는 바람에 신문기자가 찾아오고 어쩌구…결국 전국적인 스타가 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팬레터를 받게 된 태영은 특히 김숙자라는 교포 여학생의 편지에 감복해 그녀를 찾아가게 되고 둘은 졸지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역시 청춘남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른 풀처럼 불이 잘 붙습니다.

우유배달소엔 태영 말고도 원서를 읽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리를 저는 20대 후반의 과묵한   청년 무나까와였습니다.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이층에서 덜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무나까와는 태영에게 독일어를 배울 것을 권하고 곧 그의 독일어 개인교사가 됩니다...


분명 전에 다 읽은 내용들인데 어쩌면 이렇게 새 책 같은지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지금 2권 71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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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일기 1

독서일기 2012. 5. 4. 11:15

 

 

이 소설은 1933년 추석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박경리의 [토지]가 1897년 추석날 시작하던 것과 비슷하지요? 첫 장면은 제사를 지낸 규와 태가 다음날 지리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십 리라고 했던 무덤까지의 거리는 그 두 배가 넘는 길이었다는 게 밝혀지죠. 그건 할머니의 양반이수’라는 뻥이었다고 같이 가던 중부가 알려줍니다. 양반이수란 양반들이 짐꾼들 삯을 떼어먹으려고 거리를 줄여 말하던 수작을 일컫는 말이었죠. 규와 태는 결국 지리산에 있는 할아버지 묘에 참배를 하고 나오다가 제사 지낼 때 펴놨던 병풍과 똑같은 풍경을 목격하고 할아버지가 수십 년 전에 화공을 앞세우고 거기까지 와서 그 풍경을 병풍에 그대로 담게 한 까닭을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규와 같이 산소에 갔던 중부는 몇 년 뒤 가출을 해버립니다. 독립운동 하느라 집안 다 말아먹고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중부를 보다 못한 백부가 마름 자리라도 해보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된 겁니다. 행방이 묘연한 중부는 지리산에 있는 ‘서동지’라는 사람을 찾아간 게 아닌가 하는 아련한 소문만 남깁니다.

 

규는 공부도 잘 하고 마음가짐도 바른 청년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박태영이라는 엄청난 천재와 친구가 됩니다. 고리끼의 소설을 탐독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불려간 사건을 계기로 박태영과 더 친해진 규는 돈 많은 지식인이자 자신을 ‘딜렛탕트’라고 자조하는 인물 하영근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중국의 노신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죠. 그리고 하영근의 딸 윤희에게 희미한 연정도 품게 됩니다. 일본인이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인 하라다 교장과 영어선생인 쿠사마도 만나게 되는군요. 지금 고등학교 진학 공부를 위해 상주에 왔다가 여관집 딸인 야스꼬의 수학문제를 풀어주는 바람에 이 여자와도 나중에 뭔가 이루어질 분위기를 풍깁니다…지금 134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어렸을 적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새삼 기억납니다. 중편소설인데도 스케일이 크고 꿈을 꾸는듯한 낭만적인 필치가 어지간히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이게 데뷔 소설이라니요. 그리고 그 뒤 고등학교 2학년 때 [행복어사전]을 읽으면서 얼마나 즐거웠던지. 지금 다시 읽으면 좀 구시대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병주를 읽으니,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랄까.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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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뭔가 일을 시작하면 좀처럼 다른 걸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워커홀릭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일을 하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아이디어를 내는 직업일수록 더 그렇지요. 그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어떡하지”,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하고 근심 걱정으로 보내는 시간이 전부입니다. 이건 일의 성과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냥 제가 새가슴이라 그런 겁니다.

일을 회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겁니다.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취해서 몸도 마음도 늘어지기 때문에 뭐든 포기가 빠르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데’는 술만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일이 싫다고 늘 술만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보면 일도 지지부진하면서 다른 것도 전혀 즐기지 못하는 오갈 데 없이 한심한 상태가 도래합니다.

이래저래 전 몇 달 간 전혀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영화도 죄다 놓쳐서 [건축학개론], [어벤저스], [은교] 등 못 본 영화가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SNS나 블로그에도 글을 잘 올리지 못합니다. 일도 성에 차게 못하면서 다른 걸 한다는 게 맘에 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프로그램은 별로로 짜면서 취미로 멋진 탁자를 만들었다고 칩시다. 저는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그럼 넌 목공을 하지 왜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 거야?”

 

마음에 공황 상태를 메우기 위해서는 ‘잘 읽히는 책’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지리산]은 쉬운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병주라는 한 시대의 천재가 목숨을 걸고 쓴 대하장편소설입니다. 요즘처럼 인문학과 실용서만 주로 읽던 제겐 [지리산]처럼 유장하고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소설이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이 책은 전에 제가 어렸을 때 줄까지 쳐가며 읽었던 소설인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문물이 쏟아지던 격동의 세월을 거스르며 살다 죽어간 한반도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TV드라마로도 각색되어 방영된 적도 있지요. 생각해보면 [태백산맥]이나 [토지]에 비해 너무 일찍 완간된 불행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관부연락선]이랑 이어 읽은 기억이 나서 그것부터 읽을까 하다가 일단 책장에서 눈에 띄길래 이 책부터 집어들었습니다. 앞으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고 티블로그에 독서일기를 연재할 생각입니다. 이미 끝까지 읽은 독자들이 수두룩한데, 이런 식의 독서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쥐가 자라나는 이빨을 시멘트 바닥에 갉아내는 기분으로 그냥 미련하게 한 번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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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중2 여학생의 부모는 학생지도카드에 희망대학을 서울대로, 장래희망은 국회의원으로 적었다고 한다. 소녀의 꿈은 스타일리스트였다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난 어제 교보문고에 가서 [피로사회]라는 책을 샀다. 그리고 그 얇은 책을 계속 읽지 못한 채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있다. 피로사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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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왔다가 연극 배우의 사정에 의해 공연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음 아트'라는 서점에 들어와 책을 샀다. '한겨레21'의 기막힌 광고 카피를 매주 쓰던 고경태 기자의 책 '유혹하는 에디터'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추리 소설 매니아 물만두 홍윤의 '물만두의 추리책방'이다. 갑자기 독서 욕구가 솟구친 나는 책값도 치루지 않은 채 책방 구석에 있는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책을 마구 읽고 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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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1일 저녁, 저는 갑자기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에 대해 뭔가 정리를 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이 글을 휘갈기고 나가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글은 2년 전에 쓴 메모입니다. 뭐, 그렇다고 그 해 읽은 책을 다 쓴 건 아니고 생각나는 것만 몇 권 추려 간단하게 리뷰를 썼습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한 권씩 다시 써야지'라는 생각이었으나...역시 그런 게 생각대로 될 리가 없죠. (그러고보니 '생각노트'라는 제목도 여기서 나왔군요)



2010년의 장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_ 조너선 샤프란 포어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 911테러 당시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은 아빠의 다급한 전화를 받지 못해 트라우마에 빠진 아이의 이야기,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 남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만 했던 할아버지의 얘기가 겹친다.

그런데 이 슬프고도 웃기고 품격 있는 문체는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어느덧 신선한 파격으로 흐른다. 놀라운 필력과 참신한 기획으로 마음을 흔든 역작. 단연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 저자의 데뷔작 <모든 것이 밝혀졌다>도 출간되어 있다. 는 대학생 때 논픽션으로 구상했던 작품인데 지도교수의 권유로 인해 소설로 개작되었다고 한다. 첫 작품부터 작가의 뚝심과 역량을 느낄 수 있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_ 주노 디아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왕따. 섹스를 좋아하는 친누나와 살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도 숫총각인 찌질이. 게임만 좋아하는 뚱뚱하고 못생긴 오스카 와오의 이야기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악명 높은 독재자 투르히요의 역사와 유머러스하게 엮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처음엔 뭔 얘긴가 하다가 읽을수록 빠져드는 마술 같은 책. 주노 디아스는 올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와 더불어 천재라는 말을 들어도 당연한 작가. 그의 데뷰 단편집 <드라운>은 나 같은 놈이 읽고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책인가 보다. 읽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다시 책장을 들추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날을 잡아서 정갈한 음식만 골라 먹은 다음 맑은 정신으로 다시 천천히 읽을 계획.




 
2010년의 단편

 
암소 _ 토마 귄지그


앙리라는 한 남자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신문 찌라시에서 ‘여자친구를 찾고 계십니까? 자연스럽고 순수한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만 연락 바랍니다.(성적 접촉이나 매춘 아님)’이란 요상한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앙리는 한 여자를 만나 집으로 데려오는데, 알고 보니 이 여자는 어떤 농학자가 유전자를 조작해 여자로 탈바꿈시킨 암소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라는 소설집에 있는 기발하면서도 황당한 단편 <암소>는 이렇게 시작한다.

정말 골 때리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설이 골 때리는 얘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소재를 통해 인간의 모순과 인생의 슬픔, 외로움 등을 잔인할 정도로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암소> 외에도 여섯 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는데, 모두 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란 인간이길래 이따위로 못돼먹고 뒤틀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고 환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가학적인 유머감각에 낄낄거리다가도 갑자기 세상 살기가 싫어질 정도로 살벌한 냉기를 함께 느끼게 해주는 미친 작품들.


 안녕, 인공존재 _ 배명훈

<판타스틱>이란 장르문학 잡지를 통해 배명훈을 만나 그의 작품들에 매료되어 지낸 지 벌써 이삼 년이 되어 간다. 데뷔 당시에 “설정을 굉장히 세게 한 뒤 일반 소설 쓰듯이 쓰고 그냥 SF라고 우기면 되지 않을 까 될까?”라는 생각으로 SF작가가 되었다는, 이 농담같은 그의 소설들은 그래서 그런지 설정만 SF이고 등장 인물들이나 행동양식, 사고방식 등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로봇공학자들이 벌레보다 작은 극소형 로봇으로 벌이는 스파이전 이야기 , 실연 당한 은경 씨가 구입한 중장비가 하필 예비군 훈련 징발 대상이 되는 바람에 화성까지 날아가 "예비군 훈련은 간식 안 주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일삼다가 급기야 기계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게 되는 이야기 , 수면공학을 연구한 덕분에 꼴보기 싫은 총통의 임기 5년 동안 잠을 자게 된 남자 이야기 ...

이번 창작집 <안녕, 인공존재>는 이전의 단편들이나 연작소설 보다 더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들로 그득하다. 난 <안녕, 인공존재>와 다른 창작집 표제작이이기도 했던  <누군가를 만났어>가 특히 좋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과 유려한 문체가 '동시패션'적으로 뛰어난 작가. 어떤 면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더 좋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 휘뚜루마뚜루 세계사1 _ 최제훈

얼마 전 독서일기에도 얘기했던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에 실린 단편. 다채롭고 귀여운 인문학적 지식에서부터 시침 뚝 떼고 덤비는 형식의 변주까지. 이 작가의 입담은 정말 굉장하다. 말이 필요 없다. 내용에 대해 더 이상 발설하고 싶지 않다. 이런 책은 전해 듣는 것보다 직접 읽는데서 오는 쾌감이 훨씬 더 크니까.



대설 주의보 _ 윤대녕

 
당대 젊은 작가들 작품까지 빼놓지 않고 섭렵한다는  탐욕의 학자 김윤식은 이인직의 <혈의 누> 이후 대한민국 문학사의 새로운 연대기를 여는 작품으로 대뜸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선정한 적이 있다. 90년대 혜성처럼 등장해 새로운 감수성으로 사람들에게 '생물학적 상상력'이니 '존재의 시원'이니 '회기'니 하는 알쏭달쏭한 단어들을 주입시키던 그의 섬세함은, 그러나 곧 세상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강산이 한 번 반쯤 변했을까.여름 휴가를 떠나기 직전,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나는 그의 신작 <대설 주의보>를 읽었다. 여전히 윤대녕이었다. 툭하면 여행을 떠나고, 주인공은 먹물이 든 비정규직 지식인이기 일쑤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산사로 섬으로 바닷가로 흘러다닌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뭐가 사연이 있는 여자들을 만나 잠깐씩의 연애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맨날 통속적인 연애 얘기를 다루면서도 윤대녕이 쓰면 그것이 통속에서 벗어나  일정한 품격과 정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재수없는 문어체로 꼰대같은 대사들을 뱉어내기 일쑤인 남자 주인공들에게도 어느덧 중독이 되어서 그런지 결국은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이다. 그 옛날 읽는 사람들 가슴을 뻐근하게 했던 의 연인들이 다시 만나 못다한 뒷얘기를 이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는, 그러나 뜻밖에도 따뜻하고 희망적인 결말을 맞는다. 파리하게 여리고 냉혹하던 윤대녕도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윤대녕의 소설을 읽고 나면 갑자기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물론 내가 당장 집을 나서서 선운사나 속초, 강릉으로 아무리 돌아다닌다 해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랑 술을 마시며 말도 안 되는 화두 몇 개를 서로 집어 던지다가 결국 함께 자는 일은 절대 안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런 아련한 예술적 향취와 수채화적인 풍경에 갇혀 꼼짝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 편 한 편 다 표구를 해서 조용한 화랑에 걸어놓고 싶은 느낌의 예술 소설들. 표제작인 <대설주의보>와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가 그 중 특히 좋았다.

 

  박시은 특급 _ 곽재식

이 단편은 원래 2009년도에 출판된 <U,ROBOT>이라는 작품집에 실린 소설인데 뒤늦게 책을 사서 읽은 내가 개인적으로 감동한 작품이라 그냥 올해의 책에 올리게 되었다.

주인공이 일하는 '한국 천문 정보 해석 연구소'라는 이상한 기관은 사실 별 볼일 없는 곳이었다. 별을 쳐다보는 곳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 볼 일 없는 곳인 이 장소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이 미국에서 보내온 자료들을 해석하다가 우연히 외계인과 통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 최초, 인류 최초로 말이다. 당장 연구소는 수십 배로 확장이 되었고 주인공은 급기야 주요 인물로 부각이 된다. 그런데 주인공은 엉뚱하게도 동료와 한 여자를 두고 싸우며 알력을 쌓다가 이른바 '박시은 문제'로 왕따가 된다.

박시은 문제란 주인공이 예전에 <SBS 단막극장 >에서 방영되었던 탤런트 박시은 주연의 <멋지게 세이 굿바이>라는 드라마에 대해 말다툼을 하다 동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 것을 말한다. 황당한 것은 주인공 말고는 아무도 그 드라마의 존재 자체를 기억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인터넷으로 방송국으로, 심지어 박시은 집으로 전화를 해봐도 사실 확인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외계인과 교신을 하게 되는 날이 왔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문화부장관이자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역사적인 첫 교신 담당자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외계 문명의 신호를 처음 발견한 주인공에게로 그 영광이 돌아가게 되었다. 사필귀정. 역사적인 순간이다.  세계인들의 눈과 귀가 한꺼번에 집중되는 코리아에서 KBS 김경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공은 중앙 통제실로 올라 미국 대통령, 한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고 심지어 키보드 앞에 앉기 직전엔 문근영이 와서 뺨에다 뽀뽀까지 해줬다. 주인공은 외계 문명과의 첫 교신 내용으로 너무 거창하고 철학적인 거 말고, 그냥 간단하고 평범한 인사말을 하라는 데이비드 그로스 박사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혹시 전에 SBS TV에서 단막극으로 방송했던 <멋지게 세이 굿바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가? "

통쾌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곧바로 그 드라마를 찾아 보았다'는  외계인의 성실한 답변에 의해 자신의 오타쿠적인 정체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다음날 SBS 토크쇼에 탤런트 박시은과 함게 출연해 외계 문명과 처음 교신하게 된 계기와 고충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물론 박시은이 출연했던 단막극 <멋지게 세이 굿바이>는 전 세계 107개 방송국에서 우주 문명 특선으로 재방송되었다...


 

 2010년의 에세이

 몰락의 에티카 _ 신형철

현재 대한민국에서 글 좀 쓴다는 작가들이면 누구나 줄을 서서 신형철이 평론을 써주기를 기다린다는 농담은 현재 신형철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평론가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책에서 김훈의 소설에 대해 쓴 평론을 읽어보면 그의 진가를 당장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신기한 것은 신형철은 평론가임에도 불구하고 글에서 어떤 ‘고결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고종석과는 또 다른 느낌의 지식인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폭설로 고립된 산장같은 데서 한가롭게 천천히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이다.

 

 책을 읽을 자유 _ 로쟈(이현우)

전작인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로쟈가 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독서 도중 벌떡 일어나 이 책에 언급된 다른 책을 당장 사러 나가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그가 읽고 소개하는 싸르트르, 도스토예프스키, 강상중, 지젝, 보드리야르, 벤야민에서 타르코프스키나 우석훈, 가라타니 고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독서편력들은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새롭게 만나고 싶어진 저자들의 리스트'로 돌변하게 된다.

이현우는 '그 사람이 읽는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책에 대해 무척 엄격한 편인데, 그게 다 독자의 입장에 서서 취하는 엄격함이라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이 책에서는 특히 번역서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번 지적하는데 아주 구체적인 단락들을 원문과 비교해 자세히 실어놓았다. 옛날에 읽은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왜 다시 새롭게 번역된 책으로 다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프롤로그에서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쓴 그의 글은 평범한 진리면서도 이 책의 집필 의도(또는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해 준다.

"흔히, 인간을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으로 정의하면서, 인간이 똑똑해서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똑똑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한 사정은 독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듯싶습니다. 즉 우리는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집니다. 따라서 독서 능력이라는 '옵션 액세서리'는 있으나마나 한 장신구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_ 장하준

지난 30년 간 전 우주적인 절대 진리처럼 맏들어졌던 '시장 자유주의'라는 개념에 강력하게 '안다리 후리기' 기술을 건 장하준의 역작. 최근 독서일기에 언급을 했으므로 새삼 다시 할 얘기는 별로 없지만, 특히 이 책이 올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우리나라 인문학 독서 시장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는 건 자랑스럽게 다시 거론하고 싶어진다.

언론에서는 올해 이토록 딱딱하고 어려운 책들이 새삼 우리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은 이유가 현 정부의 비도덕성, 무능력이나 세계적인 경제난을 반영한 결과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건 이차적인 문제다. 가장 첫 번째로 꼽아야 할 것은 바로 텍스트의 우수성이다.

이 책은 일단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부터 독자들의 눈길을 확 끌고, 내용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전 인문학 책들보다 우수한 것이다. 그러니 나같은 문외한들도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며칠 전 전철에서 이 책을 읽는 50대 아주머니를 본 적이 있다. 선입견 때문이겠지만 평소 인문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 아주머니의 독서 풍경을 보면서 나는 묘한 동지애까지 느낄 수 있었다.



삼성을 생각한다 _ 김용철

'이 책을 읽으면 뭐하냐? 어차피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도 삼성 꺼고, 전화기도 삼성 제품인데. 삼성 욕하면서 카타르시스는 잠깐 느끼겠지만 너라구 뭐 다르겠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차피 똥 될 거 밥은 먹어서 뭐하나, 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삼성이 힘이 셀수록, 현대가, 효성이 태영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국민들의 돈을 훔치면서도 큰 소리 빵빵 칠수록, 우리는 우리 앞에 던져진 최소한의 진실 앞에서라도 두 눈을 부릅 떠야 예의 아니겠는가.

김용철도 어차피 7년간이나 삼성밥 먹던 놈 아니냐고? 맞다.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이다. 7년 동안 '호의호식'과 '장밋빛 미래'라는 마약 속에 빠져있던 한 엘리트가 뒤늦게 기적적으로 그 늪에서 뻐져나와 목숨 걸고 쓴 책이 바로 다. 어떤가? 가끔 이런 미친놈이 있다는 건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조금 남아 있다는 증거 아닌가?


 

생각 노트 _ 기티노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는 한 번도 영화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신기하지 않은가? 기타노 다케시가 쓴 책 를 읽어보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대학 시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이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대학을 그만 두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날로 만담가의 길로 접어든 그는 그때부터 온 청춘을 코미디에 바친다. 얼마나 열심이었냐 하면 여자와 섹스를 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내일 공연할 만담 소재를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의 얘기도 기타노 다케시가 하면 재미있는 얘기가 된다. 고생하던 시절의 얘기도 기타노 다케시의 입을 통하면 꼭 필요한 과정이나 신기한 무용담처럼 들린다.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유머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는 참 멋진 인간이다. 진정 부러운 사람이다.

 



 2010년의 추리소설

 로마 서브 로사1,2,3,4 _ 스티븐 세일러

<로마 서브 로사>는 올해 읽은 책 중에도 가장 재밌고 뿌듯했던 작품이다. 일단 탐정물인데다가 스케일도 크고 문체도 좋고 캐릭터들도 훌륭하다. 주인공이자 사설 탐정인 '더듬이' 고르디아누스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다. (더듬이라는 별명은 늘 사건의 자료를 수집하고 날카로운 추리를 일삼는 고르디아누스의 명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촉이 있는’ 사람 정도가 되겠다)

소설의 배경이 로마시대이고 키케로나 슐라, 스파르타쿠스, 크라수스 등 실존 인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고르디아누스만은 가상의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작가 스티븐 세일러는 독자들로 하여금 매우 자유스럽고 현실적이면서도 쿨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더구나 로마 시대는 그리스도 이전 세대이기 때문인지 돈, 종교, 윤리, 섹스, 동성애(작가인 스티븐 세일러가 동성애자다) 등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훨씬 자유롭고 심지어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1권 [로마인의 피]에서 키케로와 고르디아누스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도 계속 으르렁거리는 사이로 나온다. 난 이게 이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고르디아누스가 키케로에게 주눅이 들거나 무조건 존경하는 역할이었다면 퍽이나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존경은커녕 열심히 변론을 준비하는 키케로의 목소리를 두고 '앵앵거린다'고 빈정거리는 고르디아누스는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또 둘이 하나로 뭉치기도 하고.

전편에 흐르는 은근하고 현대적인 유머 감각 또한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2권 [네메시스의 팔] 초반부에서 고르디아누스가 사건 의뢰 비용을 평소 임금의 다섯 배로 부풀려 협상하는 데 성공한 뒤에 "마침내 뒷담을 보수하고 아트리움의 부서진 타일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어쩌면 베데스타를 거들 노예 소녀도 하나 들일 수 있을 터..."라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대목에선 나 혼자 킬킬대고 많이 웃었다.

<로마 서브 로사>는 문장이 참 좋다. 번역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장중하면서도 유연하고 기지와 통찰력도 넘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고르디아누스의 캐릭터일 것이다. 힘이 세거나 성격이 거친 것도 아니어서 늘 부상을 당하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또 사건을 맡아 정신 없이 동분서주하는 처지지만 결국 만화 '가제트 형사'처럼 사건 해결의 핵심에서는 조금 비껴나거나 가려지는 씁쓸한 상황들이 그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마침 화제의 미드 <스파르타쿠스>와 소설 2권의 시대가 딱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더 즐거운 여름이었다. 난 아무래도 고르디아누스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건 이제 겨우 4권. 아직 4권은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다. 의 춘희 말마따나 '냉장고에 일주일 치 양식을 쌓아놓은 것처럼 뿌듯'하다.

 

 


2010년의 만화

 심야 식당 _ 아베 야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여는 심야식당이다. 메뉴는 그냥 밥하고 그날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 아무거나. 그래서 어떤 사람은 비엔나 소시지만 잔뜩 먹고 가고 누구는 삶은 계란을 먹고 가기도 한다. 일본 작가 아베 야로가 그리고 쓴 만화책 이다. 일본에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선 소화제 '훼스탈'과 대부업체 '미즈사랑' CF들이 설정과 분위기를  일본 드라마와 똑같이 만들어서 욕을 먹기도 했다.

난 심야식당의 영업시간이 마음에 든다. 밤 열두 시부터 아침 일곱 시까지는 희망이나 활력, 출세, 메이저 등과는 거리가 있는 시간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 되는 새나라의 어린이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시간에 여기 오는 손님들은 대개 밤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야쿠자, 형사, 호스티스, 복서, 스트립 댄서, 가라오케 가수도 있고 작곡가도 있다. 주인장은 음식을 만들지 않을 때는 담배를 꼬나 물고 있는데 눈에 심각한 칼자국이 있는 게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인다.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사소한 사연이 있고 그 얘기가 끝나면서 한 편이 마감되는 연작 만화 형식인데, 그 작은 이야기 하나 하나마다 사람의 인생이 담기는 게 놀랍다. 내공이 있는 이야기 솜씨다. 난 1권의 편을 보다가 울고 말았다. 다섯 권까지 한꺼번에 샀지만 휙 다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아직 3권까지밖에 못 읽었다. 박스세트로 사면 철과 자석으로 된 예쁜 메모판도 준다.

 



2010년의 고전


불멸 _ 밀란 쿤데라

작년에 나의 술친구 국동이 형을 만나서 술을 마시며 요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꼼꼼히 재미 있게 읽었다고 얘기했더니, 국동이 형은 나이 들어서 다시 읽으면 정말 좋은 책이 <불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서점에 가도 은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에 절판이 된 것이다. 국동이 형은 그 후로 만날 때마다 자기 집에 <불멸>있다고 자랑을 했고, 난 그걸 빌려달라고 사정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만나면 늘 술만 진탕 마시고 헤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서점에 가서 미친 척하고 검색을 해보니 민음사에서 다시 찍어낸 2010년 3월 26일 자 초판이 있길래 냉큼 사서 읽었다.

불멸의 시인 괴테와 그런 괴테의 연인으로 남기 위해 평생 애썼던 베티나의 이야기. 그리고 야녜스라는 여자와 그녀의 동생 로라, 그리고 남편 폴의 이야기. 작품 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그 자신이자 아베나리 교수의 친구인 소설가 밀란 쿤데라를 등장시키고, 괴테와 함께 베토벤, 헤밍웨이 등을 불러내 불멸에 대한 토론을 시키기도 한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불멸과 역사에 대한 예시, 그리고 고귀함과 막장을 무시로 오가며 전개되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의 고군분투기가 쿤데라의 요설을 타고 페이지마다 흩뿌려진다.

베티나는 온갖 노력과 협잡질 끝에 결국 역사 속 괴테의 연인으로 남아 불멸을 얻는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불멸에 대해 생각하다가 지미 카터의 예(이것 저것 한 일도 많지만 결국 조깅 도중 쓰러져 일그러진 입을 보여준 ‘우스꽝스런 불멸’ 속으로 들어간)를 통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생기더라도 섹스 비디오만은 찍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꼭 얘기해야겠다는 엉뚱한 교훈을 얻었다.   

 


 안나 카레니나 _ 레흐 톨스토이

 

부러운 것 중 하나가 비교적 교양이 뛰어난 친구들(내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별로 없긴 하지만)을 보면 엄청나게 두꺼운 책들도 휙휙 잘 읽어낸다는 점이다. 난 김용 선생의 무협소설처럼 잘 읽히는 책이 아닌 경우 일단 500페이지가 넘어가면 좀 겁을 먹는 편이다.
그래도 두꺼운 책에 대한 미련을 좀처럼 버릴 수가 없었던 나는 어느날 서점에 가서 3권 짜리 를 과감하게 질렀다. 같은 3권 짜리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경합을 벌인 결과였다(하하, 미쳤군).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가 젊었던 시절 쓴 대작이다. 그러나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길고 방대하긴 하지만 뼈대를 이루는 내용은 러시아의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라는 젊은 장교를 만나 바람 피우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카레니나의 시누이 키티에게 청혼했다 거절 당한 뒤 시골로 돌아가 농장을 개혁하려 하는 젊은 농장주 레빈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룬다.

결과는? 아직 반쯤 밖에 읽지 못했다. 일도 해야하고.....다른 책들도 읽어야 하고...게다가 연말연시에 술자리는 좀 많은가..... 그래도 이 책을 뻔뻔하게 '올해의 고전'에 굳이 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따로 읽은 다른 고전이 없으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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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책이 어딜 갔지? 아, 갑자기 다시 보고 싶어졌는데...아무래도 누군가가 빌려갔겠죠. 누구든 이  글 보고 혹시 기억이 나신다면 제게 돌려주시길. 부탁합니다. 말로 할 때 좀 들읍시다. 자수하여 광명 찾읍시다. ^^ (몇 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은 후 쓴 독후감을 다시 올려봅니다)




이야기 하나.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서로 우의를 다지고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국경인 우스타파야 고개에 예수 동상을 하나 세우기로 했다. ‘안데스의 예수’라는 동상이다.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진행 과정에서 곧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런저런 형편을 따져서 설계하다 보니 동상이 아르헨티나 쪽을 바라보도록 만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졸지에 칠레는 예수의 등만 바라보게 생긴 것이다. 칠레 국민은 화가 났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야 하는가? - 가깝게 지내자고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두 나라는 이 동상 때문에 껄끄러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한 사람은 놀랍게도 외교관이 아니라 신문기자였다. 그는 기사에 이렇게 썼다. “예수님이 아르헨티나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아직 더 많이 돌봐줘야 할 나라이기 때문이다.” 자칫 국가간의 분쟁으로 번질 수 있었던 불씨를 신문기자의 통찰력이 해결한 것이다.
 

이야기 둘.
 
바우하우스를 창시한 위대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디즈니랜드를 만들 때 얘기다. 그는 이미 다른 구조물들은 다 지어놓고도 디즈니랜드 안에 길을 어떻게 내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피우스는 프랑스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포도로 유명한 고장이라 포도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유독 한 곳에만 사람들이 붐비는 것이었다. 그곳은 길가에 포도를 내놓고 파는 게 아니라 길가의 함에 5프랑만 넣고 나면 얼마든지 포도밭에 들어가 포도를 따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이 포도원의 주인은 몸이 불편한 노부부였는데 포도를 따기 힘들어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다.
 
그로피우스는 여기서 얻은 영감을 디즈니랜드에 활용하기로 했다. 시공팀에게 길을 내기로 한 곳에 잔디 씨를 뿌리고 예정보다 일찍 거길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씨를 뿌린 곳엔 파릇파릇 잔디가 돋아났고 사람들이 지나다닌 발걸음들을 따라 작은 오솔길이 만들어졌다. 일정한 모양은 아니지만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난 길이었다. 그 다음해 그로피우스는 이 오솔길을 인도로 만들었다. 이 길은 1971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조경건축 심포지엄에서 가장 훌륭한 내부 도로 설계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야기 셋.
 
일본에 사는 한 여자가 병원에 입원한 외아들을 간호하면서 겪은 일이다. 어느 날 이 여자는 아들에게 우유를 먹이려고 했는데 아들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냥 누워서 우유를 마실 순 없을까?” 고민하던 여자는 마침내 빨대 중간에 주름을 넣으면 환자가 일어서지 않고도 우유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냈다. 이미 주름이 잡힌 호스가 물이나 석유를 배달할 때 많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은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 꺾어지는 주름 빨대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 넷.
 
어느 날 저녁 경선과 단 둘이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신사동에 있는 ‘영덕물회’에 간 우리들은 요즘 함께 진행한 잡지광고 얘기를 비롯한 다른 일 얘기들을 두런두런 하다가 그만 책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요즘 박경리의 <토지>를 다시 읽느라 다른 책을 읽지 못한다고 했더니 경선이 또 <시크릿> 얘기를 한다. 전에 어떤 여자도 대뜸 선 보는 자리에서 그 책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경선은 읽어보면 다 아는 얘기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 하다며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하늘우산(Sky Umbrella)’이란 걸 들어봤냐고 묻는다. <통찰의 기술>이란 책에 나오는 애기란다. 티보 칼만이라는 작가가 만든 이 하늘우산은 우산 안쪽에 맑은 하늘을 그려 넣은 제품이다. 즉 우산을 비 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재해석 한 것이다. 이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난 술자리에서나온 얘기라 곧 잊을까 봐  볼펜과 메모지를 꺼내 책 제목을 적어 놓는다.
 
 
 

통찰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앙투완 앙리 조마니는 ‘한 눈에 알아보는 기술’이라고도 했다. 신병철이란 마케터가 지은 <통찰의 기술>은 ‘통찰’은 무엇인가로 시작해 결핍에서 통찰을 찾아내고 이를 아이디어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 책이다.

흔히 통찰력이 있다, 라는 말은 최고의 상찬으로 통한다. 그것은 발명가든 광고인이든 기업가든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성공의 열쇠다. 최고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말은 무엇일까? 내 생각엔 속담이 가장 근접한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스피드011,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라는 캠페인도 당시 이용찬 사장이 속담집을 보다가 ‘시도 때도 없다’라는 말을 변용해 만든 것이라 들었다. (신병철은 이용찬과 함께 <삼성과 싸워 이기는 전략>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예전에 작가 박범신이 얘기한 일화도 생각난다. 하루는 방에서어머니가 주무시는 줄 알고 불을 끄고 나가려 했더니 어머니가 대뜸 '왜 남의 눈을 빼간댜?" 라고 하시더라는 것이다. 박범신은 그 통찰력 있는 한 마디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통찰은 성공 비즈니스의 핵심 노하우다. 이 책에 소개된 수 많은 사례들은 모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마케팅과 현재까지 통하고 있는 발명 발견 깨달음에 대한 얘기들이다.
 
소비자가 사랑하는 제품들은 한결같이 그 제품의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불필요한 정보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구글이 탄생했고, 고약한 냄새가 싫어 수세식 변기가 출현했다.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당장 보고 싶다는 딸아이의 응석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탄생시켰다.
 
그럼 이런 통찰에 맞춰 ‘대운하’ 를 살펴보면 어떻게 될까?
 
뭔가 확실한 공약이 필요했던 이명박은 이미 짭짤하게 재미를 보았던 청계천에 이어 대운하를 생각해냈다. 처음엔 물류와 고용창출이 존재 이유였다. 그런데 생태계가 걸렸다. 물류효과도 별로라는 검증이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관광 쪽으로 선회했다. 중국엔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보러 오지 않던가.
 
그러나 대운하를 건설하려면 쓸데 없는 돈도 너무 많이 든다. 어떤 통찰을 대입해봐도 이것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보편성과 공감을 획득하지 못한 채 운하 예정지에 땅을 산 사람들과 일부 사업 관계자들에게만 존재의 이유를 가지는 프로젝트가 돼버린 것이다.
 

신병철은 마케터다. 특히 브랜드 전략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뿐 아니라 하이트맥주, 컨디션, SK텔레콤, 처음처럼 등등의 실무 캠페인에 관계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고급한 장사꾼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더듬더듬 읽다 보면 비즈니스 영역뿐 아니라 인생의 영역에도 두루 통하는 통찰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상황에 맞게 '구라'로 변용시킬 수 있는 적절한 예시와 방법론을 던져 준다.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일독을, 꼭 꼬시고 싶은 클라이언트나 멋지게 보이고 싶은 이성이 있는 사람들에겐 재독을 권한다.
 
 

* 책을 꼼꼼히 읽는 방법 중 하나. 오자를 체크하며 읽는 것이다. 난 이 책 144페이지 아홉째 줄에서 오자를 하나 발견했다. (으이구, 쪼잔한 놈)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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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독후감은 쓴지도 꽤 됐고 또 지금도 가끔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기도 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이 책을 찾아 읽어볼 필요가 생겼고, 또 어떤 분께서 이 글을 이메일로 한 번 보내달라 하시는 바람에  다시 들춰보게 된 겁니다.  



다시는 광고인이 낸 책을 구입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나는, 어느날 고속터미널역에 있는 영풍문고에 가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라는 따끈따끈한 새 책을 발견하게 된다. 에잇, 또 광고책이군. 책값도 더럽게 비싸네.(17,500 원이다) 심드렁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책을 들쳐보던 나는 두 시간 동안 꼼짝않고 책 속에 빠져들었다가 결국 읽을 분량이 반 정도 남은 그 책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서고 말았다. 젠장.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엄밀히 말해서 광고인이 낸 책이 아니다. 광고를 하는 박웅현 CD를 출판기획자이자 컬럼니스트인 강창래가 만나 오래도록 인터뷰하고 함께 어울려 고민도 하고 해서 펴낸 공동저작이다. 


어떤 사람은 연애편지를 보낼 때 "보고싶습니다" 라고만 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려지지만 보고 싶은 맘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라고 쓴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더 잘 전달되겠는가. 박웅현은 정지용의 이 시를 인용하면서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보고 싶다는 말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말한다. 가령 박경리의 '토지'를 읽는 것은 당장 광고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기초 체력을 기르는 데는 보약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넉 달 간, 한 첩의 보약을 먹듯 <토지>를 읽었다' 고 한다. 인문학적 소양이 받쳐주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아이디어가 되고 소재가 된다. 길 가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는 사람을 보고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타심'을 새삼 환기한 그는, 이를 그대로 광고에 넣는다.


 왜 넘어진 아이는 일으켜 세우십니까?

왜 날아가는 풍선은 잡아주십니까?

왜 흩어진 과일은 주워주십니까?

왜 손수레는 밀어주십니까?

왜 가던 길은 되돌아가십니까?

 

사람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적 소양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고 하자 그는 베네통 광고의 사진을 찍었던 올리비에르 토스카니의 일화를 얘기해준다.

수녀와 신부의 키스 장면, 천사와 악마로 분장한 백인과 흑인 아이의 포옹 장면, 흑인 여성의 젖을 빨고 있는 백인 아기의 사진 등 수많은 화제작을 남긴 토스카니가 [아카이브]라는 잡지와 인터뷰를 할 때 공산주의에 대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다."라고 말한 것이다.

박웅현은 공산주의라는 돌발적 주제에 대해 이렇게 잘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웬만한 철학적 인문학적 깊이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어딘가에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섭지 않다는 말도 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강창래가 따라가서 목격했다는 박웅현의 상공회의소 강의다. 주제는 '한국에서 효과적인 광고 캠페인'이었는데 이제 곧 한국에 와서 커뮤니케이션을 펼쳐야하는 외국인들에게 해야하는 강의였다. 그때 박웅현의 첫 마디는 "저는 한국말로 하겠습니다."였단다.


 "제가 영어를 전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인해 영어로 말하는 순간 제 지적 수준이 초등학생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석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으로서 석사 학위를 가진 지적 수준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박웅현은 이날 동시통역사를 대동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는 좋은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과감한 장치이기도 했고 프리젠테이션의 주제를 더 깊게 부각시키는 효과까지 발휘했다. 아무리 칸이나 뉴욕페스티벌에서 상를 타는 광고라도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에 맞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우리는 버드와이저 wazzaup~광고를 이해 못한다)을 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동시통역사를 쓰는 것으로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내용과 형식이 강의 내용과 제대로 맞아들어간 예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있다고 해도 언어만 알아서는 그 문화에 깊이 젖을 수 없는 것이고,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웅현은 2002년 월드컵과 촛불집회라는 사회적 이슈 속에서도 또다른 통찰을 발견한다. 아디다스라는 광고주에게 팔려고 만든 이 광고는 결국 집행되지 않았지만 그의 인문학적 소양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기에 인용한다.

 

촛불

 

믿지 못할 일이었다.

월드컵 16강

거리는 기쁨에 넘쳤다.

같은 시각

또 하나의 믿지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두 명의 여중생이 죽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던 길이었다.

언론은 크게 다루지 않았다.

미군은 책임이 없다는 발표를 했고

정부는 침묵했다.

두 명의 소녀가 죽었는데

세상은 조용하기만 했다.

한 네티즌이 있었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촛불을 준비해주십시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작은 제안이었다.

한 개의 촛불이었다.

그것으로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

상대는 미국의 군대였고

모든 이의 시선은 월드컵을 향해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촛불이 옮겨 붙었다.

그해 한국은 월드컵 4강에 진입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해 한 개의 촛불이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만들었던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와 작년 '그리고 대학에 떨어졌습니다...수험생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광고 모두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한 기업의 다짐과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대를 읽고 인간을 연구하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인문학이다.

 박웅현은 나도 전에 3년 남짓 다닌 적이 있던 광고대행사 TBWA/Korea의 ECD다.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뜻이다. 그런 그가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온 적이 있다. 젊은 작가 전아리와 함께 출연했었는데, 나는 그때 그가 진정으로 부러웠다. 광고인으로서 독서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게 부러운 게 아니라 광고인이 TV에 나와서 광고 얘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게 부러웠던 것이다.

 며칠 전 TBWA/Korea에서 박웅현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친구 이문선의 사무실에 카피 알바 때문에 갔다가 이 책 얘기를 해줬더니, 그는 박웅현에 대해 이런 표현을 했다.

 "나는 세상엔 두 가지 CD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웅현과 박웅현이 아닌 CD." 

 이런 게 바로 최고의 찬사다. 쉣.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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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옛 회사 동료이자 페북 친구인 권오성 님과 댓글로 김연수의 신작 얘기를 주고받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엄청 좋아하는 작가라고 했더니 권오성 님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친 김에 책을 읽은 직후에 써놓았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독후감을 여기에 한 번 올려봅니다.




엄청나게 똑똑하고 믿을 수 없게 뛰어난 천재의 작품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면 글은 당연히 무거워지기 쉽다. 반면에 아무렇게나 몸을 놀리며 가볍게 칠렐레팔렐레 쓰는 거 같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보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비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칠렐레 팔렐레 천의무봉으로 자유롭게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불가능한 일을 해낸 사람도 가끔은 있는 법이다. 내 생각엔 그가 바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다. 그리고 그가 쓴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홉 살이다. 그의 아빠는 9·11 때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었다. 아빠는 죽기 직전에 다급하게 집으로 여러 통의 전화를 했고 오스카는 그때 자동응답기에 아빠의 목소리가 녹음 되는 걸 알면서도 너무 무서워서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극적인 일이다. 오스카는 그 이후로 전화를 무서워한다.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한다. 전화기를 무서워하는 오스카는 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얘기를 할 때는 무전기를 사용한다. 난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말투를 창조해 낸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가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할머니? 할머니?” “오스카니?” “전 잘 있어요. 오버.” “밤이 늦었어. 무슨 일이냐? 오버.” “저 땜에 깨셨어요? 오버.” “아니다. 오버.” “뭐하고 계셨어요? 오버.” “세입자한테 얘기를 좀 하던 참이었다. 오버.” 그 사람도 아직 안 자고 있어요? 오버.” 엄마는 세입자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단다. 하지만 방금 막 나갔어. 심부름할 것이 좀 있어서. 오버.” “하지만 지금은 새벽 4시 12분인데요? 오버.”


오스카는 전화를 무서워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에게 자기를 제자로 삼아달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제인 구달에게서 답장을 받기도 한다. 호킹도 나중에 정중한 답장을 보내온다. 그는 쉴 때마다 공상을 하고 발명을 한다. 보통 아홉 살이 아니다.
어느날 오스카는 아빠의 방을 뒤져보다가 파란색 꽃병을 깼는데, 그 속에서 ‘블랙’이라고 씌여진 봉투와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낸 뒤 여덟 달에 걸쳐 그 사람들을 방문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유는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기 위해서다.

한편, 할머니는 오스카의 아버지를 임신했을 때 남편과 헤어졌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에서 폭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말을 못하는 상태였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에서처럼 여기서도 드레스덴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그 책도 비극적인 현실을 블랙유머로 펼쳐낸 책이었다. 보네거트와 사프란 포어는 이렇게 만나는 건가)

노트에 필기를 해서 대화를 했고 왼손엔 “예스”, 오른손엔 “노”라고 문신을 해서 의사소통을 했다. 할머니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제발 저랑 결혼해 주세요.” 그리고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을까 봐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인 일이다. 둘 다 아주 젊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아,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하다 보니 이상해진다.그냥 짧게 말하겠다.

이 소설은 엄청난 입심과 다채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시도들로 이루어진 멋진 작품이다. 페이지 사이사이 사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글이 딱 한 줄만 써있는 페이지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글씨들이 서로 겹쳐져 볼 수 없게 만든 페이지도 있다. 근데 놀라운 건 그런 시도들이 조금도 치기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가가 말하려는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을 워낙 잘 쓰다 보면 그렇게도 되는 모양이다.

정말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아니, 너무 슬프면 울지 못한다. 그래서 오스카도 아빠의 장례식에 가는 날 리무진 운전기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오스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완벽하게 이해한다.

 

넌 운전사와 농담을 하고 했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운전사를 웃겨야 할 만큼 넌 고통스러웠던 거야.

이 소설은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로 똑 같은 장면을 찍을 것처럼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화자가 바뀌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깨달음을 선사해 준다. 그런 시선들과 사건들이 쌓이면서 여덟 달 만에 이야기는 마침내 이상한 감동과 함께 따뜻한 위로와 화해의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게 확실해 보인다. 아직 새파란 1977년생인데. 아무래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엄청나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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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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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재밌게 읽은 짧은 소설이었죠. 오스트리아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오늘 잘못 온 문자 메시지 사진을 페북에 올린 걸 보고 홍콩에 사는 제 친구 지연 씨의 언니 문정 씨가 일깨워주시는 바람에 다시 찾아 여기에 올려봅니다.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후, 잠깐 강남역 근처에 갔던 나는 혼자 점심을 사먹은 후 교보문고에 들렀다. 마침 이날은 현영이 쓴 무슨 ‘재테크 일기’ ㄴ가 하는 책의 사인회가 있는 날이라 매장이 무척이나 붐볐다. 아무 생각없이 지하 1층 매장으로 향하던 나는 교보빌딩 옆 가판대의 30% 할인 행사를 보자마자 눈이 뒤집혀 옛날 책 몇 권을 급하게 샀다. 사실은 이 책들을 사러 온 게 아닌데.

 지하 1층 본매장에 가서 선택한 책은 다니엘 글라우티어라는 오스트리아 작가가 쓴 장편 였다. 얼마 전 신문의 신작 코너에서 간단한 소개글을 읽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라는 다분히 칙릿소설 같은 제목의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메일로만 이루어진 특이한 소설이다. 얘기는 에미라는 웹다자이너가 한 잡지의 정기구독을 취소하려고 이메일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단순히 ‘라이크’와 ‘라이케’를 혼동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에게 메일이 전달된 것이다. 그러나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에미는 라이케라는 남자에게 정중하게 죄송하다는 메일을 다시 보내고 둘은 금방 이 일을 잊어버린다.

 아홉 달 후, 언어심리학 교수인 레오 라이케는 컴퓨터를 켜자마자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 맞으시기를 에미 로트너가 빌어드립니다’ 라는 뜬금없는 단체 메일을 받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정기구독을 취소하겠다고 항의 메일을 자꾸 보내오던 바로 그 여자다.

 다분히 장난스러운 기분으로 이 메일에 답장을 보낸 레오는 다시 죄송하다는 에미의 답장을 받게 되고 그 안에서 ‘그리고 혹시라도 그동안 불행한 날들을 정기 구독하셨다면 마음 놓고 저에게 - 실수로 - 구독을 취소하십시오’ 라는 문장을 보고 감동한다.

 그 뒤에 에미가 또 아직도 취소되지 않은(듯한) 잡지의 정기구독을 취소하려는 항의 메일을 보내오고, 또 레오가 장난스럽게 답장을 하고 하면서 둘은 어느새 호감을 갖게 된다. 얼굴이나 배경, 나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전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더구나 에미는 언어심리학자답게 재치 있는 글 솜씨와 유머를 겸비한 그에게 늘 감탄하는 중이었고, 레오는 레오대로 하고싶은 말마다 걸핏하면 1), 2), 3)…하는 식으로 번호를 매기는 그녀의 독특한 버릇과 솔직한 감정 표현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참 빨리 읽힌다. 그렇다고 내용이 허술한 것도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라서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그러다가 어느덧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 현대인의 아이러니가 절묘하게 구현되어 있다. 심지어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 같은 스릴까지 맛보게 해준다. 밀고 당기는 두 사람의 재치 있는 문체들은 정말 현실적이다. 난 처음에 작가가 당연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에미가 쓴 메일들을 읽어보면 안다)

 서로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봐 만나지 못하는 두 사람. 에미와 레오는 어느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후버 카페’라는 붐비는 곳에서 (아마 강남역 뉴욕제과 앞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주고받은 이메일의 이미지만으로 서로 알아보기를 시도한 것이다. 즉, 진짜 에미와 레오를 찾는 게 아니라 ‘에미처럼 보이는 여자’와 ‘레오처럼 보이는 남자’ 를 찍기로 한 것이다... 과연 그들은 서로를 알아 봤을까?

 
스포일러는 여기까지다. 난 한밤중에 쳇 베이커의 CD를 올려놓고 이 소설을 읽었다. 바람이 부는 새벽 세시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절실한 사연에 쉽게 잠이 들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면 참 좋을 것 같은 소설이다.

 사족)

초판이라 그런지 책을 읽다가 명백한 오자를 발견했다. 321페이지 마지막과 322페이지 초입에 걸쳐 ‘로트너씨’를 ‘라이케씨’로 세 번이나 잘못 표기했다. 오늘 문학동네편집부에 전화를 해서 알려줬더니 ‘지금 자기 앞에 책이 없어서 그러는데 검토 후 다음 판본부터 반영하겠다’ 는 심드렁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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