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이나 영화는 전체에 대해 말하기보다 부분만 발췌해서 소개하는 효과적일 때가 있다.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 그런 경우 아닐까. 소설 중간쯤 나오는 노래칠갑산 대한 부분이 그렇다


노래할까요.
무재 씨가 말했다.
은교 씨는 무슨 노래 좋아하나요.
나는 칠갑산을 좋아해요.
나는 그건 부를  없어요
칠갑산을 모르나요?
알지만 부를  없어요.
왜요.
콩밭,에서 목이 메서요.
목이 메나요?
콩밭 매는 아낙네는 베적삼이 젖도록 울고 있는 데다포기마다 눈물을 심으며 밭을 매고 있다고 하고새만 우는 산마루에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와 버렸다고 하고….
그렇군요.




어찌보면 연인끼리 하기엔 너무 싱거운 얘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는 사람이 우습기도 하지만 가만히 그럴까 하고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떤 기이한 진정성이나 순결함이 느껴지는 [百의 그림자] 작가 황정은의 문체이고 작법인 것이다목이 멘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 공감하여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철거되기 전의 세운상가쯤으로 짐작되는 소설 공간과 등장인물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짐짓 무심한 척하는 시각에 매료되었고, 그런 배경이나 시간 묘사와는 달리 감각적인 구어체를 포기한 느릿느릿한 문어체로 진행되는 사람의 대화가 단연 소설의 백미라고 느꼈다.

나중에 무재는하얀 위에 구두 발자국이라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은교의 청도 거절한다. 이것도새벽에 떠나는데 강아지만 같이 갔다고 하고, 발자국만 남았다고 하고해서 목이 멘다는 것이다. 구어체로 썼다면 말도 되게 싱거울 대화가 문어체라는 옷을 입자 뭔가 자신만의 개성과 조심성을 확보하는 느낌이다. 그러니 이건 내가 평소에 애써 피하려고만 들었던 문어체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이상한 방법으로 일깨워주는 소설인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무재가 은교에게노래할까요라고 다시 묻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마 그들은 어떤 노래 하나를 가지고 이건 목이 메네 메네 하고 싱거운 소리를 늘어놓으며 가만가만 둘만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나는 소설의 이런 결말이 좋았다. 다시 노래하는 사람 덕분에 나는 전자상가에서 일하던 아저씨도, 가끔 복권 돈을 꾸러 오던 유곤 씨도, 어느 갑자기 사라져버린 오무사의 할아버지도 이상 안부를 궁금해 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서 벗어나 조금 뒤에서 일어나 쫓아오더라도 이상 이상하지 않은 그림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뭔가 좋은 소설을 읽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소설에 대해 무언가 쓰지 않으면 된다는 다급한 의무감 같은 느끼고 출판사에 연락을 취했다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미에 붙은 해설에 이런 글을 썼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도심 한복판에 사십 전자상가가 있다. 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내력이 하나씩 소개된다. 와중에 소설은 시스템의 비정함과 등장인물들의 선량함을 대조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과연 만한 곳인지를 묻는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소설은 우선 은교와 무재의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사랑은 선량한 사람들의 선량함이 낳은 사랑이고 이제는 선량함을 지켜 나갈 희망이 사랑이기 때문에 소설은 윤리적인 사랑의 서사가 되었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소설은 사려 깊은 상징들과 잊을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낸, 일곱 개의 () 장시(長時). 소설을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고맙다.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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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던 아내가 전해준 전미옥 대표의 [스토리 라이팅]을 오며가며 71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요즘은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스토리텔링'에 대한 얘기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스토리텔링 또는 스토리 라이팅이 뭐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차별화된 비즈니스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에 막연한 두려움이나 답답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스토리가 있는 글로 엮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 자신의 글에 맞는 스토리를 찾는 법, 남의 스토리를 내 글로 끌어오는 법, 메모하는 법, 풍부하게 예시를 드는 법 등 우리가 일하면서 또는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글쓰기의 방법론들을 다채롭게 다루고 있습니다.전미옥 대표가 워낙 강의도 잘 하고 글도 쉽게 쓰는 분이라 그런지 책이 참 잘 읽히네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으려면 자기 스스로 즐겁게 살아야 한다. 자기 일상이 즐겁지 않은데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 없다. 자신을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는 사람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재미있게 말하는 재능이 없다거나 잘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은근하게 나에 대한 공격을 할 때, 버럭 화부터 내지 않을 여유와 유연함이 있는가?’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도 이렇게 실용적인 면을 넘어 본질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두고두고 수첩 펼치듯 자주 꺼내 읽으면 더 좋은 책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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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점에 가면 주로 소설책 코너에서만 서성이는 ‘이야기 중독자’이지만 뭔가 아이디어에 쫓길 땐 남들이 써놓은 ‘아이디어 내는 법’ 같은 책들도 자주 삽니다. 이번에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김하나가 쓴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도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그런 심정으로 산 책입니다. 


주인공이 종로구 누하동에 있는 조그만 술집(이곳의 사장 황영주는 실제로 지은이의 오랜 친구라고 합니다)에서 어떤 모르는 남자와 ‘미스티’라는 노래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로, 또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대화를 나누게 된다는 설정의 책입니다. 대화체로 계속 이어지다 보니 다른 실용서처럼 딱딱 떨어지는 맛은 덜하지만 이런저런 상식들을 토대로 ‘아무 것도 아닌 것들도 다 훌륭한 아이디어로 변할 수 있’고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것들이나 역사 속의 사건들에도 사실은 굉장한 아이디어들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어 시시때때로 가볍게 들춰보기 좋습니다. 


오늘도 막연한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신영복 선생에 대한 다음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녀 : 제가 ‘신영복식 층간소음 해결법’이라고 부르는 건데요. 언젠가 신문에 실린 신영복 선생 인터뷰를 봤더니, 위층에서 쿵쿵 뛰는 애가 있으면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면서 얼굴도 보고 이름도 묻고 해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좀 낫대요. 

나 : 왜요? 

그녀: ‘아는 애가 뛰면 덜 시끄럽다’는 거예요. 

나 : 허! 완전히 다른 방향의 해결책이네요. 

그녀 : 네. 전 이 얘기를 듣고 너무 좋았어요. 생각의 방향이 틀어지는 게 느껴지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못 뛰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디 되나요.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의 한계상 아무리 소음을 줄이는 설계를 해도 윗집에서 애가 뛰면 울리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상자는 물리적 완화가 아니라 심리적 완화라는 결론을 도출한 겁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상황이 마음에 안 들면 항의를 하거나 규탄을 합니다. 신영복 선생은 위층 사람에게 항의를 하는 대신, 그 상황을 나아지게 할 현명한 아이디어를 냈지요. 

동시에 이 이야기는 소통을 강조하는 선생의 뜻을 전달하는 도구로도 쓰이고 있지요. 층간소음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아이디어이기도 한 겁니다. 




신영복 선생의 정신세계는 정말 섹시하지요? 이 이야기는 당장 그대로 따다가 어느 건설회사나 통신회사의 기업PR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네요. 전 책 한 권에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나 소재 한 가지만 건져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시집에서도 딱 시 한 편 건지면 좋은 거구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벌써 본전은 넘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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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윤경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맨 처음 읽은 건 후배 송인덕이 저희집까지 찾아와 선물로 주고 갔던 책들 중 하나인 [달의 제단]이었는데, 어느 양반댁 종손이 주인공으로 나오서 자칫 엄격하고  고풍스러운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소설은 뜻밖에도 아주 탐미적이고 영리하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원작을 가지고 KBS [TV문학관]에서 단막극으로 만든 적도 있더라구요. 


영화기획자인 제 친구 김유평 씨가 어느날 “요즘은 심윤경의 소설을 야금야금 꺼내 읽는 맛에 산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도 저는 뭐 그냥 시쿤둥했었는데 어느날 헌책방에서 그녀의 데뷔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나서는 그 말을 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은희경의 데뷔작 [새의 선물]을 연상시키는 ‘홍제동 버전 성장소설’이었는데 역시 문장이 탄탄하고 진한 유머와 페이소스는 물론 이야기를 능숙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한레문학상 수상작이었죠. 


그 다음 읽은 책이 [사랑이 달리다]입니다. 이건 뭐 작가가 대놓고 독자를 웃겨 쓰러뜨리기 위해 쓴 듯 빵빵 터지는 캐릭터들이 종횡무진하는 굉장한 작품입니다.  서른아홉 살이 되도록 아빠의 신용카드만 믿고 취직 한 번 안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잘 생기고 학벌 좋지만 섹스리스인 남편’ 말고 언제나 새로운 남자와의 연애를 꿈꾸는 똘끼 충만녀 혜나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수십 억원의 빚을 지고도 태평스럽게 오픈카를 몰고 다니는 말썽쟁이 작은 오빠가 있고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가버린 아빠, 돈 오만 원에도 벌벌 떠는 사업가 큰 오빠 등등 시트콤스러운 캐릭터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정말 스피디하고 유쾌합니다. [사랑이 채우다]가 후속작이라는데 아직 그 책은 못 구했습니다. 


며칠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서라벌 사람들]이란 연작소설이 있길래 또 샀습니다. 심윤경이 역사소설을 쓴다고 하길래 어떤 식일까 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황당함과 대담함이 공존하는군요. 


심윤경은 신라의 황실 사람들을 거인으로 상정합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군림하려면 일단 겉모습부터 일반인보다 월등하게 커야 한다는 거죠. 등장인물 중 하나인 지증제의 음경은 한 자 다섯 치에 이르러, 아무리 색사에 능한 여성이라도 그의 거대한 양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바람에 황손은 황위를 잇지 못하고 몽달귀신이 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그의 신하가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중 기골이 장대한 여인을 드디어 찾아내(“바로 내가 원하던 바요! 내가 모시는 어른의 기골이 또한 장대하오! 그분과 동침하다가 옥문이 찢어져 목숨을 읽은 여인이 그간 여럿이었더니, 그분의 배필이 되실 분을 이제야 찾았소”) 태후로 봉하게 되죠. 이들은 이차돈의 순교 이전의 사람들이기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기도 대신 ‘교합례’를 지냅니다. 즉, 조상을 모신 자리에서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대표로 섹스를 하는 겁니다.  


이날 천제에서 지증제와 연제황후는 그들의 몸을 받친 뱀 모양 제단을 와지끈 무너뜨리고도 교합을 멈추지 않았다. 그 먼지 오르는 잔해 속에서도 한 식경이나 합환을 계속 했으니 그들의 땀과 애액 제단 아래로까지 흘러내려 태자 법흥의 비단옷을 적셨고 그 벽력 같은 교성에 동해 바다의 용까지 잠에서 깨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합화례가 끝나면 황제와 황후는 서로 노고를 치하하며 특별한 수라상을 받으시었는데, 각각 검은 돼지와 흰 돼지를 한 마리씩 드시었다.



일연스님의 저작을 연구한 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경건한 심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눙을 치는 호방한 작가의 변이 믿음직스럽습니다. 오늘 이차돈의 목을 자르는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연제태후’ 한 편 읽었는데 앞으로도 ‘준랑의 혼인, ‘변신’, ‘혜성가’, ‘천관사’ 등의 연작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도 재미있을 거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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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마침 오늘은 존 F 케네디가 서거한 날이네요. [11/22/63]은 지난 봄인가 사서 읽은 소설인데 케네디가 암살당한 날을 제목으로 삼았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건 세계적인 스토리텔러 스티븐 킹의 최신작입니다. 


우연히 과거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 주인공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면 과거로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만약 케네디가 죽지 않았으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발한 설정이지요. 1963년으로 간 주인공은 암살범 오스왈드에게 접근해 케네디의 암살을 막으려 합니다. 참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지금 미국은 케네디 서거 50주년을 맞아 추모열기가 뜨겁고 암살 배후에 대한 추리가 새삼 활발해지고 있다고 하죠? 아마 이 소설도 덩달아 다시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소설 뒤쪽에 후기를 보면 이 소설을 위해 스티븐 킹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섭렵했는지, 그리고 당시 상황들을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자료들을 얻고 연구했는지 알게 됩니다. 흔히 소설을 쓴다고 하면 소설가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정말 작업하는 방식부터 다르죠?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을 1972년도에 처음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뚝심있게 아이디어를 계속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절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대단한 작가 스티븐 킹이 쓴 이 소설, 한 마디로 재밌습니다. 상,하권으로 길지만 단숨에 읽힙니다. ‘황금가지’에서 나와서 번역 문장도 깔끔하니 좋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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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복잡하지만 법칙은 단순하다”

 – 박웅현이 전하는 인생의 ‘단순한’ 법칙들 [여덟 단어] 




은퇴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CF 감독, 김규환 씨와 호주로 촬영을 간 적이 있어요. 촬영장엔 외국인 모델들이 캐스팅을 위해 찾아왔었어요. 우리가 선택을 하는 입장인데도 180센치미터가 넘는 금발의 여자들이 쭉 서 있으니까 이쪽에서 다들 기가 죽었죠. 그런데 김규환 감독이 가더니 “어 그래, 이 친구 괜찮네”라면서 한국어로 의견을 말하고 통역을 시켰어요. 만약 영어로, “You beautiful” “I like it”, 이런 식으로는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절반도 전달할 수 없었을 거예요. 김규환 감독은 모델들을 찬찬히 살피고 한국어로 의견을 전달하고 통역사에게 말을 전하게 했죠. 당시에 그 눈빛에 모델들이 압도돼서 떨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나요? 외국어라고, 외국인 모델과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말을 꼭 영어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여덟 단어]라는 책을 읽을 때 저는 특히 이 부분에서 신선함과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이 마주치게 되고 괴로워하게 되는 ‘권위’에 대한 챕터였는데요, 박웅현은 여기서 저의 광고 선배이자 개인적으론 홍익대학교 학생 동아리 ‘뚜라미’의 선배인기도 했던 규환이 형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불합리한 권위에 굴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줍니다. 



박웅현의 신작 [여덟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자세들을 여덟 개의 단어로 나눈 뒤 각 챕터마다 그 의미를 곱씹어보는 책입니다. 서재에 가만히 앉아서 쓴 게 아니라 20,30대들을 모아놓고 매주 강연한 내용을 따로 옮긴 거니까 에세이라기 보다는 강연록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걸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공자나 부처, 예수를 능가하는 수퍼맨이거나 사이비종교의 교주쯤 되겠지요. 박웅현도 말합니다. 인생은 강의 몇 번 듣는다고, 책 몇 권 읽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시작하는 것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스스로에게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통찰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자들은 왜 남자친구한테 "김태희가 이뻐? 내가 더 이뻐?"라는 질문을 하죠? 김태희가 더 이쁘고, 하지만 난 널 사랑해. 5만원이 비싸? 100원이 더 비싸? 이런 거잖아요.” 성시경, 재밌다. 하하하. 



어제 제 페이스북 친구 김정욱 씨가 올린 글입니다. 성시경이 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모양이죠? 이번 책 [여덟 단어]는 ‘자존’이라는 글자로 문을 엽니다. 우린 모두 김태희처럼 예쁠 수도 없고 고소영이 될 수도 없죠. 고소영한테 왜 김태희처럼 예쁘지 않냐고 따지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모든 ‘엄친아’ ‘엄친딸’들은 이런 어불성설을 먹고 자라납니다. 남과 비교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존’이죠. . ‘나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그리고 나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독특한 개성과 능력을 가진 독립체들이니까요. 


그런데 남들과 비교되는 순간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나는 일인가 봅니다. 알랭 드 보통도 [불안]이라는 책에서 이런 경험을 토로하죠. (그러나 쾌적한 집에 살며 편안한 일자리로 출퇴근한다 해도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옛 친구 몇 명((이들보다 더 강력한 준거집단은 없다))이 아주 매력적인 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에 정신을 못 가누기 십상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 성공한 케이스로 박웅현은 [나무열전]이라는 책을 쓴 사학자 강판권 씨를 들고 있습니다. 그는 ‘촌놈’출신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학자라죠? 이러한 자존의 성찰은 자연스럽게 ‘본질’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박웅현은 남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게 힘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 단점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하는 과정을 다시 떠올리며’본질’의 문제를 풀어갑니다. 남들보다 잘 하자, 가 아니라 ‘내 얘기를 내 방식대로 잘 전달하자’고 생각을 바꿨을 때 그는 비로소 프리젠테이션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왜 나는 이렇게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릴까,하고 자책하는 대신 “잘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땀 흘리려고 하는 거니까”가 본질이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간단한 이치죠? 


본질(本質). 


저는 이 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이 씁니다. 그런데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라는 에르메스 브랜드의 지면광고 카피만큼 본질을 한 마디로 표현한 예는 드물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게 마련이죠. 예를 들면 사람들의 웃음 같은 거.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웃음, 기쁨, 감동, 행복, 공감 등 몇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지난 학기 제게 강의를 들은 학생 중에 학점에 불만이 있다고 이메일을 보낸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기는 제가 내준 과제를 빠짐없이 성실하게 다 했고 밤새워 ‘프레지(Prezi)를 배워 기말과제도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파워포인트에 글이나 그림을 올리고 링크시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저에게 프레지 같은 프리젠테이션 도구는 그야말로 신세계처럼 멋진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콘텐츠’였습니다. 저는 그 학생보다 더 투박하지만 좀 더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과제물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웅현은 ‘촛불’을 예로 들어 콘텐츠의 힘을 역설합니다.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죽은 이의 영혼이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라는 어느 네티즌의 제의에 의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던 촛불의 힘. 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촛불시위로 번져갔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의무감에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거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좋은 콘텐츠는 미디어가 무엇이든 퍼지게 되어 있다는 것. 광고를 하는 저희들 머릿속에도 늘 이런 생각으로 가득하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요? 리처드 파인먼은 [생각의 탄생]이란 책에서 “현상은 복잡하다. 그러나 법칙은 단순하다.”라는 중요한 힌트를 던져줍니다. 잡다한 지식이나 곁가지 상황들을 걷어내고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통찰에 집중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이죠. 인구에 회자되는 지구상의 모든 강력한 콘텐츠들은 다 그렇게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기초체력을 기르기에 가장 좋은 것은 다시 ‘책 읽기’라고 박웅현은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전작인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나 [책은 도끼다]같은 경우에서도 늘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저자는 자신이 신문보다는 단행본을 즐겨 읽는 이유도 신문은 그냥 흘러가는 느낌인데 비해 책은 집중해서 다 읽고 나면 뭔가를 얻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밑줄을 치게 되고 다시 펼쳐보게 되고 그러다가 이런 시도 발견하게 되니까요.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 이라는 시입니다. 며칠 전에 제 페이스북 친구 중 한 분이 먼저 쓰신 [여덟 단어] 리뷰에서 이 시를 올리셨더라구요. 저도 한 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2008년 창비





시인이라서 이런 눈을 가지게 된 걸까요?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자세히, 마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살면서 열심히 본다는 것(見) 역시 참 중요한 것이죠. 이 책에서는 자존에서 시작해 본질, 클래식(고전), 본다는 것, 현재 등등의 단어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 단어들은 모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첫 물음에 대한 답의 단서들을 품고 있는데 어떤 때는 안도현이나 고은 시인의 시로 설명되기도 하고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아포리즘이나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문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눈만 뜨면 정보가 넘쳐나고 인터넷, 모바일 기기들이 24시간 옆에서 나를 끊임없이 간섭하는 시대. 이는 곧 ‘결핍이 결핍된’ 역설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예전엔 구하기도 힘들었던 책들이, 영화들이 이젠 너무 많아서, 구하기가 너무 쉬워져서 제목만 읽었는데도 이미 그걸 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읽기만 하고 생각을 안 하면 남는 건 제목뿐입니다. 박웅현이 강조하는 인문학도 바로 그런 것이죠.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지, 고전이 왜 중요한지, 발견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은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한 가지를 보더라도 ‘깊게’ 읽고 느낌으로써 본질적인 것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잘 나가는 광고인들 중에는 욕을 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회사 일은 안 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며 강의나 심사위원만 하다고 욕 먹고, 해외광고제 같은 데 가서 자료들을 잔뜩 선점해 뻔한 광고책 쓴다고 욕 먹고, 실력에 비해 과대평가 되어 방송에만 자주 나온다고 욕먹고. 어쩌면 박웅현도 그런 사람일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하면 그냥 광고 얘긴데 박웅현이 내는 책만 왜 유독 ‘인문학’ 딱지를 붙여주느냐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박웅현을 이 책에서 배우고 함께 궁리해 본대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박웅현이 계속해서 이런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뭘까요? ‘자존’을 생각한다면 남보다 더 인정받는 광고인이나 유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닌 거 같구요. ‘현재’를 생각한다면 노후를 위한 꼼수로 이러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권위’라는 챕터에 비춰보면 우리는 ‘똑똑하고 잘난 박웅현’한테 주눅들 필요가 하나도 없는 거겠죠. 


잘은 모르겠습니다. 전 그저 그저 박웅현이 책 말미에 쓴 대로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 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라는 그의 주장으로 만들어지는 ‘박웅현의 인생’이라는 고유 브랜드를 앞으로도 흥미롭게 천천히 지켜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 독서일기를 쓰기 전에 제법 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메모했었는데, 쓰면서 대부분 버렸습니다. 이런 책은 남의 리뷰만 휘리릭 훑어보고 ‘음, 무슨 얘긴지 대충 알겠네.’라고 넘겨버리기엔 너무 아까우니까요. 그러니 지금 제 리뷰를 대충 읽어보신 뒤 얼른 책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책상 옆에다 놓고 인생이 막연해질 때마다, 자신이 무능해 보일 때마다, 싫은 놈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마다 한 번씩 들쳐 보시기 바랍니다. 정답이야 얻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유용한 힌트 몇 개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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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후]라는 영화가 있다. [트레인스포팅]을 만들었던 대니 보일 감독의 이 작품은 시민들의 자발적 도움을 얻어 찍었다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런던의 시가지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좀비 영화의 걸작이다. 나중에 [28주후]라는 속편도 나온 이 작품을 보면서 감탄했던 건 좀비 영화이면서도 인간의 ‘관계’에 대해 냉철하게 질문하는 그 철학적 깊이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같이 도주하던 가족이나 애인이라도 좀비에게 물리거나 그 체액이 눈이나 입으로 떨어지면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2초 이내로 망설임 없이 죽여야 하는 딜레마가 등장한다. 이미 좀비로 변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신이라면 바로 전까지 사랑하는 가족이었던 사람을 애도 기간도 없이 그 즉시 죽일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 듯했다. 대중적인 장르영화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드문 경험이었다.

 


정유정의 [28]은 정식 병명도 지어질 틈 없이 그저 ‘빨간눈’이라고만 알려진 인수공통전염병이 도는 가상의 도시 ‘화양’을 무대로 펼쳐지는 상황극이다. 개와 사람만 걸리고 퍼지는 이 병은 전염되자마자 눈동자와 눈 주위가 빨간 색으로 변한 뒤 사흘을 넘기 전에 사망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치료약도, 대책도 없다.

 

만약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정부는, 그리고 다른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나올까? 정유정은 그런 의문에서 소설의 얼개를 엮어나간다. 먼저 정부와 다른 도시 사람들은 이 지역을 봉쇄할 것이다. 그리고 화양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개들을 전염병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살육을 감행할 것이다. ‘미친개’ 또는 ‘병을 옮기는 짐승’이라는 말 앞에서 살처분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정당하게 들리는가.

 

작가는 구제역 파동 때 돼지들을 생매장하는 장면을 보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TV에서 그 필름을 본적이 있다. 처음엔 수많은 돼지들이 트럭에서 비명을 지르며 커다란 구덩이로 쏟아지는 장면들이 너무 참혹해서 눈을 감았었는데, 잠시 후 그걸 찍던 VJ가 카메라 옆에서 엉엉엉 통곡을 하는 소리에 눈을 떴던 기억이 난다. 전달자로서 냉정을 유지해야 할 그녀의 울음소리는 뜻밖이었고, 순간 감정이입이 되었으며, 조금 후에 우리는 과연 돼지나 닭들을 이처럼 태연하게 살처분할 자격이 있는가? 이러다 죄받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소설은 수의사 서재형, 신문기자 김윤주, 119구조대장 한기준, 개를 살해하는 싸이코 박동해, 그리고 늑대개 링고의 시점을 번갈아 오가며 진행된다. 다인칭 시점은 외국 스릴러물에서도 자주 보는 것이지만 이처럼 개에게도 인격(?)을 부여한 것은 이 작품의 주제에도 부합하는 매우 탁월한 선택이요 플롯이었다.

 

 

정유정은 ‘정말 인간만이 이 세상의 주인인가?’라는 명제를 주인공인 서재형에게 부여한 채 스피디한 문장들로 무간지옥에 갇힌 인간군상들을 거침없이 그려 나간다.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기로 유명한 작가답게 동영상처럼 그려지는 119구조대의 시스템 묘사나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 그리고 너무도 생생한 응급실과 간호사들의 세계(간호사 출신인 정유정 작가는 학생시절에 간호학과를 다닐 때도 국문과 친구들의 과제를 대신 써주곤 했다고 한다)에 대한 디테일에 힘입어 소설 속 화양은 점점 실제 공간으로 변해 간다.


특히 정유정은 악인을 묘사할 때 힘이 넘친다. 이번 소설에서는 박동해라는 인물이 단연 돋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형이나 여동생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급기야 아버지에게 창고에 갇힌 경험까지 갖고 있던 동해는 집에 있던 개 쿠키를 잔인하게 죽이려다 우연히 수의사 재형을 만나는 바람에 실패하고 군대로 끌려간 싸이코다. 그러나 군대 안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잔인하게 도륙함으로써 존재증명을 하다 쫓겨나 결국 엉뚱하게도 한기준이 대장으로 있는 소방서에 파견근무를 하게 된 문제적 인물이다.

 

보통 이 정도 매력을 가진 인물이라면 클라이맥스까지 끌고 가서 주인공과 한 판 대결을 벌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정유정은 이번 작품에서는 절대 악인 박동해를 너무 일찍 죽여버린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작가는 [28]이라는 소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적 상황들을 즐길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대신 통제된 공간 속에서 국가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군대는 어떻게 움직이며 사람들은 어떻게 저항하는가를 시뮬레이션하듯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같은 통신은 어떻게 단절되며 언론이나 SNS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아가 30년 전 광주와 지금의 이 상황은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른지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군인들이 개를 총으로 쏴죽이고 트럭으로 싣고 가 날카로운 창칼이 버티고 서 있는 구덩이에 산 채로 던져 넣는 장면들은 끔찍하다. 한기준의 부인이 어린 딸을 안고 분노한 개들에게 목이 물려 죽는 장면도 섬찟하다. 방독마스크 안으로 붉게 변해가던 동료들의 슬픈 눈두덩들은 또 어떤가. 그의 이번 소설이 너무 무섭고 잔인해서 읽기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정유정은 에둘러 가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정확하게, 간결하게, 손에 잡힐 듯 글로 쓴다.

 

 

그리고 이 작가에게 ‘하드보일드’만 있는 건 아니다. 곳곳에 심드렁하고 무심한 농담 같은 문장들을 툭툭 던져놓는가 하면 자신의 예전 작품에 나오는 인물을 재미로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정신병원의 환자 김용).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가라고 밝혔던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애정도 놓치지 않는다(챈들러 얘기로는, 술이 사랑과 같다던데요. 첫 키스는 마법 같고, 두 번째는 친밀하고, 세 번째는 지겹다). 그리고 애잔한 마음을 묘사할 땐 눈물을 감추지 못하게 하는 마력도 있다. 난 쿠키가 죽은 뒤 그 개에 대한 추억과 소회를 밝히는 174페이지부터 한 장 반까지 이어지는 문장들을 읽으며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등장’이라 여겨졌던 [7년의 밤] 이후 또 정유정이다. 난 그녀가 좋다. 일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철저한 준비, 그리고 아니다 싶으면 거침없이 버리고(자기가 쓴 걸 버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다시 쓰는 프로정신이 좋다. 글이 안 될 땐 어떻게 하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술 먹지. 혼자 술 먹고 울면서 벽에 머리를 쿵쿵 박는 거지.”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가 좋다. 더구나 이번 소설은 엔터테인먼트를 뛰어넘는 묵직한 울림까지 있다. 올 여름은 [28]을 읽은 친구들과 함께 시원하게 한 잔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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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학습만화 WHY? 시리즈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책은 ‘똥’ 편이라죠. 어른들이 “냄새 나, 지지야!” 하면서 터부시하고 호들갑 떠는 똥이라는 존재가 버젓이 제목으로 올라와 있는 것에 아이들은 더 열광하는 모양입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어느날 바깥세상이 궁금한 두더지가 머리를 내밀었다가 누군가의 똥을 맞으면서 시작됩니다. 눈이 나쁜 두더지는 자기 머리 위에 똥을 싸놓고 도망간 동물을 찾지 못한 것이죠. 화가 난 두더지는 범인을 찾기 위해 비둘기, 말, 토끼, 염소, 소, 돼지 등 주변 인물(?)들을 수사하고 다닙니다.

 

 

추리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가는 곳마다 “나, 아니야. 내 똥은 이렇게 생겼는걸?”이라며 자신의 똥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생태계 학습을 시킵니다. 그러다가 두더지는 똥덩어리를 핥아먹고 있는 파리들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얻게 되죠. 마침내 법인을 찾은 겁니다. 두더지는 자신이 당한 것처럼 똑같이 정육점집 개 한스의 이마 위에 똥을 떨어뜨려 복수하고는 기분 좋게 땅 속으로 돌아갑니다.

 

 

이 동화를 쓰고 그린 베르너 홀츠바르트와 볼프 에를브루흐는 오랫동안 광고대행사에서 일러스트와 기획 일을 하던 사람들이랍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흥미진진한 추리극 형식에 통쾌한 복수극이기도 한 동화, 아직 못 보셨으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사면 똥덩어리가 그려진 부채도 부록으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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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이유

독서일기 2013. 6. 19. 12:08

예전에 버트 레이놀즈가 사립탑정으로 나오는 영화를 TV에서 틀어준 적이 있었다. 도서관 서가에서 매력적인 여자를 만난 버트. 처음 만난 사이인 그녀가 무심코 책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친절하게 대답을 해준다. 여자가 책 표지에 손을 댈 때마다 “그것도 읽었죠. 그것도 읽었어요. 네, 그것도…” 순간 눈빛이 따뜻해지는 여자. 그 다음 점프컷은 둘이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나도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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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희망을 걷다] - 박원순

 

혼/창/통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 이지훈

 

한 줄도 너무 길다
하이쿠 시 모음집 – 류시화 엮음

 

피로사회 – 한병철

 

미생 – 윤태호

 

우리 회의나 할까? – 김민철

 

책그림책 – 밀란 쿤데라/미셸 투르니에 외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 황인원

 

윤미네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 전몽각

 

영화처럼 – 가네시로 가즈키

 

 

 

 

강의를 나가면서 학생들에게 매주 책을 한 권씩 추천했다.
반응은 냉담했다. 도대체 책을 읽는 세대가 아니었다.


 

“솔직히, 책 살 돈이 없어요.”라고 솔직히 말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어떤 학생이 내가 추천한 책들을
거의 다 찾아보았다는 말을 무심하게 하는 걸 들었다.

 

기뻤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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