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일학년 때 동기 여자애들이 “서클실에 들어가 보면 얼굴이 창백한 미소년이 와서 기타를 치는데, 분명 한 대의 기타에서 두 대의 기타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 미소년은 다름아닌 어니 형이었고 그의 기타 주법은 ‘쓰리핑거’였다. 통기타 음악동아리에 들어가면 대부분 쓰리핑거 주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어니 형의 쓰리핑거는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스승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기타 선생은 다름 아닌 폴 사이먼. 그렇다. 어니 형의 음악적 뿌리는 ‘Simon & Garfunkel’이었던 것이다. 어니 형은 자신의 소년 시절 열렸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전설적인 ‘센트럴파크 공연 실황’ 비디오 테이프를 매일 슬로우 비디오로 돌리고 또 돌려보면서 기타 주법을 사숙했던 것이다. 도대체 몇 번을 봐야 기타를 전혀 못 치던 소년이 폴 사이먼처럼 기타를 치게 되는 걸까? 이건 정말 미친 짓이며 ‘오타쿠’의 전형이다.(노약자나 청소년 여러분, 따라 하려면 따라 해 보라).
사이먼 앤 가펑클이 1981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약 5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무료 공연은 이렇듯 한 소년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바꾸어 놓은 인생이 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감흥을 잊지 못한 사람은 여기저기 참 많았던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폴 사이먼의 기타를 좋아했고 그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좋아했으며 아트 가펑클의 청아한 목소리에 매료된 것 등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이먼 앤 가펑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침내 여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서로 그들의 곡을 부르고 연주하면서 그들만의 ‘순결한 감성’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을 기리는 ‘트리뷰트 공연’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2013년 가을밤, 추석 연휴 마지막 일요일 홍대앞 디딤홀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을 기리는 ‘Old Friends Concert’가 열렸다. 어니 킴과 홍정우, 안진영, 안태영 형제 등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공연을 펼친 것이다. 센트럴파크 공연 때처럼 ‘Mrs. Robinson’이 먼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고 ‘Homeward Bound’, ‘April, Come She Will’을 차례로 들으며 모인 사람들은 모두 타임머신을 타고 각자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뮤지션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홍정우 씨는 목소리가 짱짱하고 청아하며 특히 존 덴버의 노래를 잘 한다. 그날도 콘서트 중간에 존 덴버의 ‘Calypso’와 빌리 조엘의 ‘PianoMan’, 김광석의 ‘먼지기 되어’ 등을 불러 흥을 돋구었다. 안진영, 안태형 형제 같은 경우는 참 특이했는데 둘 다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성당의 성가대 등을 통해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사는 분들이었다. 어니 킴 형의 결혼식에서도 이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날은 참 많은 곡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사랑해요’라는 노래를 히트시켰던 고은희 이정란 누나들도 뚜라미 선배들인데 이날은 ‘이정란/이윤선’ 커플로 출연해 옛노래와 새노래를 들려주었다.
무협영화를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날아다니는 게 당연하듯이 여기서는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도 무대에만 올라오면 다들 기타를 잘 쳤고 노래를 잘 불렀다. 신기한 일이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어 가족을 공양하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능숙하게 악기를 다루고 음악을 즐기며 타인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이들은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어니 킴은 공연 중간에 자신의 아내와 나눈 얘기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는데 왜 이렇게 돈도 되지 않는 공연을 하느냐?”고 묻는 아내에게 얼른 속시원한 답변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형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마음 속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접혀 있고 이루지 못한 꿈들이 숨어 있다. 그런데 그 꿈을 가끔이라도 다시 꺼내 반짝반짝하게 닦아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야 더 정확한 문장이 될 것이다. 자신의 생계와는 관계없이 무엇인가 소중한 가치를 나누는 사람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진짜 부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비록 그들이 몇 평짜리 집에 살고 있는지, 통장에 얼마의 액수가 찍혀있는지는 알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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