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코끼리가 그려진 에버노트라는 앱을 본 적이 있는가. 기억력이 좋은 동물로 알려진 코끼리를 사용한 이 앱은 ‘모든 것을 기억하라( Remember Everything)’라는 모토처럼 세상의 모든 기억을 향상시키겠다는 비전을 갖고 태어난 기업이자 디바이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언제든지(Ever) 기록하고(Note) 자신만의 콘테츠를 언제까진(Ever) 저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혹은 컴퓨터에서만 쓸 수 있는 메모 어플리케이션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최고의 노트다. 


나도 에버노트 사용자다. 그런데 굉장히 초보적인 사용자다. 내가 에버노트로 하는 일이라고는 길을  가다가 또는 사무실에서 멍때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단어나 문장을 재빨리 기록하고 나중에 그걸 찾아 다시 새로운 글이나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 것뿐이다. 때로는 신문 칼럼이나 인터넷 기사를 스크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거의 다다. 나는 하위 폴더들을 생성해 정보를 분류하지도 못하고 태그 기능으로 데이터를 검색하지도 못한다. 이 모든 게 무식하고 게을러서 그렇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번에 홍순성 소장이 쓴 에버노트 책의 제목 ‘프로들의 에버노트’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다. 홍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에버노트에 가장 정통한 스마트 워킹 및 정보관리컨설턴트다. 나는 몇 년 전 아내의 추천으로 홍 소장이 진행하는 에버노트 유료강좌에 한 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글을 쓰거나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워낙 컴맹 수준인 나는 다름 참석자들이 다 이해하는 애버노트 기본 사용팁을 거의 숙지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스마트 워터가 아닌 나는 그저 메모만 하는 것으로도 에버노트 사용에 만족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간간히 안부를 묻게 되었고 사람 좋아하고 또 사람들끼리 연결해 주기 좋아하는 홍 소장 덕에 나의 힘으로는 만나기 힘든 직종의 몇몇 전문가들과 몇 번의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예전부터 인복이 많은 나의 행운 덕분이다.

얼마 전 홍 소장이 새로운 책의 이름을 공모한다는 글을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렸다. 책 제목의 조건은 일단 짧을 것(두 단어면 좋겠다), 그리고 ‘일 잘하는 사람들의 에버노트’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을 것 등이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댓글로 책 제목 응모를 하고 있었다. 나도 그냥 지나치기 싫어서 ‘프로들의 에버노트는 어떠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며칠 후 홍 소장으로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일단 내가 응모한 ‘프로들의 에버노트’를 후보작으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종 결정 전까지 몇 가지만 더 아이디어를 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제목은 없을까, 조금 더 아이디얼한 것은 없을까 하는, 모든 저자들의 욕심이었다. 

마침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던 나는 주말 동안 아이데이션을 좀 더 해서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홍 소장님, 책 제목 관련 메모입니다. 짧게 생각해보면 ‘프로들의 에버노트’ 정도가 제일 나은 거 같구요, 조금 더 긴 문장이 되도록 생각해 보면 ‘에버노트로 성공하기’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에버노트 습관’ 같은 패러디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Good job with Evernote’처럼 아예 영어를 쓰는 건 어떨까 생각도 해봤고 ‘모든 것을 기억하라’같은 에버노트의 모토를 생각하면 ‘내가 만드는 보물창고, 에버노트’ 같은 의미 확장도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두 단어라는 제약 때문에 쉽지가 않더군요. 어쨌든 제가 생각한 것들은 이 정도입니다. 휴가 중인데 나름 바쁘네요.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책 제목이 ‘프로들의 에버노트’로 전해졌다는 소식이 왔다. 그리고 책 제목 때문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책이 잘 팔려서 곧 2쇄를 찍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엉겁결에 지은 제목이 사람들에게 많이 전달된다니 반갑고 기쁘다. 그리고 들국화컴퍼니에서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다시 행진’이라는 들국화 콘서트 제목을 생각해 낸 나의 아내처럼 나도 ‘프로들의 에버노트’라는 제목을 지었다는 생각에 일말의 뿌듯함도 느껴졌다. 그저께 월향 이태원점에서 만난 홍 소장이 방금 출간된 ‘프로들의 에버노트’ 두 권을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주셨다. 이왕 이렇게된 거, 책을 열심히 읽고 앞으로는 좀 더 프로처럼 일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내 티스토리 블로그 이름도 '편성준의 생각노트'다. 물론 이건 기타노 다케시가 펴낸 책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긴 하지만. 


(조금 전 샤워하다가 생각난 카피를 올려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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