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한, 영, 일로 읽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온 말 중 하나가 '우리는 언제 노벨상을 타나?'였습니다. 특히 노벨문학상에 대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최인훈이나 이문열 같은 작가가 타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최인훈 선생은 이미 돌아가셨고 소설가 이문열은 젊은 날 쌓아올렸던 위상을 스스로 허물어뜨린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옆나라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에 겐자브로가 노벨문학상을 탄 것을 부러워하긴 해도 그 상을 타기 위해 그들처럼 번역에 제대로 힘을 쏟거나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은 게을리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엔 다행히 고은이나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만약 그 추세를 몰아 고은이 덜컥 수상자가 되어버렸다면 상을 주는 스웨덴 한림원이나 받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죄다 곤혹스러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들려 온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은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오매불망 노벨상만 바라보고 있던 우리들에게 살만 루시디도 타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탄 맨부커상을, 그것도 오르한 파묵 같은 쟁쟁한 작가들을 제치고 한강이 수상을 했다는 소식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지요. 저는 그 뉴스를 접하고서야 진작에 사놓고 읽지는 못했던 한강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를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벌써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또 다른 역작 [소년이 온다]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0년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기발한 방식으로 현장에 밀착하면서도 가슴 서늘하게 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고 브래지어도 풀어버린채 채식주의자가 된 '평범했던' 여인을 통해 소년이 온다와는 전혀 다른 문제의식과 감동을 높은 예술적 성취와 함께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아내인 윤혜자 씨와 저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과 함께 인사동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곧 미국으로 돌아가는 파우저 교수님의 배웅하는 자리였지요. 우리는 파우저 교수님의 역작 [외국어 전파담] 출간 기념 강연 시간에 나누었던 얘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은 그때 한강의 [채식주의자]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영어판과 일어판으로는 이미 읽었고 한글로는 아직 안 읽었는데 아마도 원작인 한글판은 영어로 쓰여진 작품과는 사뭇 느낌이 다를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문화의 차이가 번역에도 나타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날 한국어판도 읽어보시라고 제가 즉석에서 책을 한 권을 사드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3개국어로 그 작품을 다 읽은 사람은 파우저 교수님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시 가을의 술자리. 윤혜자 씨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소재로 한 강연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모국어인 영어는 물론 일어와 한국어에도 능통한 파우저 교수님이 세 나라 언어로 읽은 소설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번역의 본질을 짚어보는 특강을 해보면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파우저 교수님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구요. 마침 저와 윤혜자 씨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 '독하다 토요일' 시즌 2가 끝나가고 있었는데 시즌 3을 시작하기 전에 오픈 특강을 한 번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즐거운 작당이었습니다. 결국 파우저 교수님은 다음 해 봄 어느날 특강을 약속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정말로 봄이 왔고 파우저 교수님도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토요일인 2019년 5월 11일 토요일, 광화문과 서소문 사이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 모였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의 특강 '[채식주의자]를 한, 영, 일로 읽다!'라는 특강을 듣기 위해서였죠. '독하다 토요일'은 회원제로 운영하는 모임이라서 늘 7~8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하다 헤어지곤 했는데 이 날만큼은 써클의 문을 열어 회원이 아닌 분들도 참석할 수 있게 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모처럼의 좋은 강연을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윤혜자 씨와 저는 간식을 사들고 피어선빌딩 10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한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임기홍 씨나 서동현 씨, 손연영 씨, 김성희 씨 같은 기존 회원들도 있었고 예주연 씨, 콜린 마샬 씨, 김수진 씨처럼 처음 뵙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3시 10분 전쯤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먼저 윤혜자 씨가 나와 오늘 강연을 기획하게 된 이야기와 독하다 토요일이라는 모임에 대한 짧은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대여해 준 '청춘여가연구소'의 정은빈 대표가 나와 피곤하고 외로운 현대사회에 이런 장소에서 같은 관심사를 나눔으로써 사람들을 '사회적인 가족'으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짧게 코멘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제가 나가서 다시 독하다 토요일을 하게 된 이유를 시작으로 제가 요즘 토요일마다 벌이고 있는 다른 기획들(토요 식충단, 토요워킹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전 스피치가 두 번이나 있었고 파우저 교수님도 뒤에 앉아 있는 상태였기에 제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비난과 조바심의 눈초리를 의식한 저는 서둘러 이야기를 끝맺고 파우저 교수님에게 강의를 부탁드렸습니다.

파우저 교수님은 1997년에 [한국문학의 이해]라는 책을 영어로 번역하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문학이론을 번역하는 일이 드문 시기였고 그 책은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문학 사례'가 많았는데 그걸 번역하면서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Beautiful English'이라는 정의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 파우저 교수는 번역 작품도 일정한 문학성은 가지고 있어야겠지만 그게 반드시 영어권의 고전작품들 같은 품격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 - 본인은 그것을 '1인야당'이라고 표현- 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당장 한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물은 셀프' 같은 표현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파우저 교수님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년 정도 살면서 언어를 다루고 가르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공이 문학이면서도 윤혜자 씨와 냈던 책은 인문서인 [미래시민의 조건]이었죠. 그 후에 나온 두 권의 책도 마찬가지였군요. 그러다보니 문학이나 번역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파 교수님(트위터 시절부터 유명했던 그의 애칭)은 '오바마 케어' 가입 안내서나 세금 보고서 같은 글을 번역할 때는 문학성이 필요 없지만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는 정확성과 더불어 문학성도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 수상 수락연설에서 읽었던 유명한 글 - [설국]으로 먼저 노벨상을 탔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소감을 끌어와서 더 화제였죠 - '일본은 회색지대다'라는 말처럼 번역도 정확성과 문학성이 조화를 이루어야지 극단적인 논쟁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설국]의 첫 문장을 예로 들었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우리는 한글로 먼저 읽어 그 뜻을 파악하고 일어, 영어로 된 문장들을 차례로 살펴보았습니다. 파 교수님이 뭔가 번역에 이상한 게 없느냐고 물으니 당장 '눈의 고장'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반응이 튀어나왔습니다. 국경이라는 말의 뜻도 애매하다는 질문이 이어졌구요. 파 교수님은 일단 에도시대에 막부 별로 나뉘어져 있던 일본 지역의 역사를 이해해야 '국경'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비롯해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는 표현이 어떤 풍경을 얘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고 그런 저런 사정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우리말이나 일어에 비해 영어로 된 문장에서는 '드라마'가 사라지고 건조한 묘사만 남는 특징이 있음도 지적했습니다. 이는 번역 언어로 사용될 때 각각의 언어가 갖는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였습니다. 파 교수는 '밥상이 들어왔다'라는 문장이 영어로 번역될 때는 과연 어떤 문장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서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영어로 하면 식탁이 방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이 연상되어서였죠. "형이 술을 천천히 마셨다."라고 말할 경우도 형을 'Brother'라고 써야할지 'hyeong'이라고 써야할지 고민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Deborah Smith의 '오역 논쟁'에 대해 얘기를 꺼냈습니다.

드보라 스미스는 교수가 아닌 전문 번역가라는 점이 특이한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것과는 상관 없이 소설 내용 전체를 너무 '영국화 했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고 이는 번역자 자신도 어느 정도 시인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백 퍼센트 정확한 번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결국 번역이란 것은 어느 정도 '창의적'이어야 함을 주장했는데 파 교수는 그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든 입장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미국 출신의 백인 남성인 파우저 교수가 드보라의 편을 들면 역시 백인은 어쩔 수 없어, 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고 반대파의 입장에 서면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번역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콜린 마샬 씨를 괜히 끌어들여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파 교수의 지목을 받은 콜린 마샬 씨는 '한국어로 쓰여 있는 소설에서는 아내를 약간 비하하는 듯한 남편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는데 번역을 하면서 그런 뉘앙스들이 다 사라진 게 아닌가'라는 날카로운 의견 및 질문을 펼쳤고 파 교수도 맞다고 하며 그래서 "여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라는 문장을 영어로 옮겼을 때 여보를 'Darling'이라고 옮긴 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똑같은 'Darling'이라도 맥락에 따라서는 사랑스럽게 들리기도 하고 비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것이죠(일어로는 마초적인 게 느껴지고 영어로는 신사가, 한국어로는 교양 있는 남편이 느껴진다 했습니다). 영국식과 미국식을 오가며 목소리 연기를 펼치는 파 교수님 덕분에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깔깔깔 웃었고 '달링'은 단박에 우리들만의 유행어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no'라는 단순한 단어 하나에 무려 88개의 각각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는 학계의 보고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파 교수는 어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가르치는 게 정말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던 교수법에 대한 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말끝을 '~해요'"로 처리하는 이른바 '욘사마적 교과서'라고 한다나요. 아무튼 비빕밥과 'Mixed Rice'는 다른 것인데 파 교수는 어중간하게 타협을 하느니 차라리 'Bibimbab'이라 표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논쟁을 다룬 뉴요커의 기사를 인용하며 번역문장을 왜 읽느냐로까지 생각의 지평을 넓혀갔습니다. 자기는 문학을 좀 가벼운 느낌으로 즐기고 싶은데 요즘 미국에서는 다소 '있어보이려는 의도' 때문에 문학이 소비되기도 함을 얘기했습니다('Political Correct).

강의가 마무리될 때쯤 소설 등단 준비를 하고 있는 김하늬 씨가 '드보라 스미스가 번역을 할 때 한국적인 특수 상황 - 남편의 지나친 여성 비하, 다른 사람들의 억압적 강요 - 들을 모두 약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서양 심사위원들이 선택당하기 쉽게 만든 것은 아닐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보충 질문을 더했습니다. 번역자가 작품을 그토록 두리뭉실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이라는 작가가 쓴 원작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수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고. 그림을 그리는 이창희 씨는 더 나아가 드보라가 수상을 하지 못할까봐 의도적으로 작품을 '훼손'한 것은 아닐까 의심하면서 만약에 그렇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파 교수는 그 질문들에 어느 정도 동감하면서도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여성이라 그에 대한 배려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슬쩍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이라는 게 항상 시대성을 반영하기 마련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꾸 드보라를 공격하는 듯한 분위기로 흐르니 김하늬 씨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 때문에 좋았던 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라는 제안을 했고 파 교수가 그 애기를 받아서 번역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 도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Good English'라는 명목 하에 원작을 바꾸어 '좋은 작품'으로 만드는 번역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마지막엔 이창희 씨의 소개로 왔다는 미술학 전공자 황규원 씨가 파 교수에게 작품을 세 언어로 모두 읽은 사람으로써 언어별로 그려지는 그림이 어떻게 다르던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강의였고 수강생들의 열의도 대단했습니다. 보통 강의가 시작되고 시간이 좀 흐르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이날 모인 사람들은 끝나는 순간까지 단 한 사람도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고 모두 반짝이는 눈으로 강의를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중간 PPT 화면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다 카메라로 찍어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하나쯤 있기 마련인데 이날은 열심히 필기는 해도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서 기뻤습니다.

뒷풀이는 윤혜자 씨가 추천을 했는데 저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서대문의 '고향식당'이라는 음식점이었습니다. 가게는 오래되어서 좁고 지저분했지만 음식만큼은 정말 맛있는 곳입니다. 특히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가 일품이고 제육볶음도 무시무시하게 두꺼운 곳이었습니다. 총 13명이 앉아 술과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일어섰는데 일인 당 1만6천 원밖에 나오지 않아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음식점을 나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파 교수님을 비롯한 몇몇은 다시 버스를 타고 성북동으로 이동해 '성북동 만섬포차'에서 세꼬시와 계란말이 등등을 시켜 이차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좋은 강의와 좋은 청중이 만나 서로 행복해했던 밤이었습니다. 윤혜자 씨와 파 교수님은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즉석에서 뭔가 또 모종의 일을 꾸몄는데, 아직은 발설할 단계가 아니므로 당분간은 비밀에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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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브레이크]의 스코필드를 석호필이라고 부르고 가수이자 제작자인 토니 안을 '토 사장'이라 부르듯이 우리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를 '파 교수님’이라 부른다. 이미 트위터의 유명인사이고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는 지식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그가 이렇게 역사에 관한 정확한 지식과 민주사회에 대한 논리정연한 생각을 두루 갖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신작 에세이 [미래시민의 조건]은 3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언어학자이자 교육자인 실천적 지식인 파 교수가 헬조선에 보내는 따뜻한 충고다. 일본어를 전공하던 학생이었던 로버트 파우저는 1982년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후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년을 지내며 교토대와 서울대 등에서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번갈아 가르쳤다. ‘한국인의 따뜻한 정과 라틴적 감수성’에 매료되어 어느덧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던 그는 오랜만에 다시 돌아와 변해버린 한국에 놀란다. 그가 처음 봤던 활기차고 역동적인적인 대한민국은 어디 가고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날아다니는 체념의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꼭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촌에 한옥을 사서 다시 짓고 지역 공동체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기도 하던 그는 어느날 문득 서울대를 그만두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떠나면 더 잘 보인다고 했던가. 29년만에 고향에 돌아가 한국생활을 반추하던 파우저 교수는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민주주의'로 귀결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이다. 

대한민국은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 지수도 높게 나왔고 GDP도 2만달러에 달하는, 심지어 '2050클럽'에 속하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나라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 큰 원인은 사회 시스템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안위를 우선으로 여기는 '각자도생'의 생활방식이  온 나라에 팽배하게 되었다. 파우저 교수는 시스템 불안의 원인으로 혈연, 지연과 같은 '사회적 자본'에 집중하는 한국인들의 특성이 주목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스펙을 많이 쌓고 이용할 수 있는 연줄은 다 걸어서 스스로 안전망을 만들어 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파우저가 어떻게 서울대 교수가 된 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들의 작용이었다. 로버트 파우저는 한국 학계에서 그리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뭘 시켜준다고 해서 금방 크게 자라 세력화 될 염려가 없는 인물인 것이다. 더구나 그가 '첫 외국인 국어교육학과 교수'가 되면 대외적으로 서울대 이미지도 올라갈 수 있다. 꿩먹고 알먹고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파우저 교수가 우리 사회를 더 사심(?) 없이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왜 '민주주의'인가. 파우저 교수는 언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사람이다. 언어는 단지 말이나 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방식 등을 그대로 담고 있다. 따라서 언어에 능하면 그만큼 통찰력도 늘어나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는 모국어 하나만 하면 흑백의 세상을 사는 것이고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면 컬러 세상을, 세 개 이상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 3D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는 그가 수평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한국사회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큰 덕목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본이나 미국이 나쁘고 한국은 무조건 좋다, 는 식의 단순무식한 사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사라진 활력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데 이는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 파우저 교수는 책의 첫머리부터 '시민'에 대해 이야기 한다. 중요한 모든 것들이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애초부터 한국어로 씌여졌는데 가만히 읽다보면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시민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훓어보는 세계사와 근대사는 마치 중고등학교 교과서처럼 짧으면서도 요점적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중간중간부분은 인간적인 체취가 넘친다. 맨 뒤쪽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글도 있는데 막상 그의 생애와 관심사에 관해 우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아 놀라웠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미래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비전은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현황을 보고 제시한 비전과 비교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논의할 수도 있다. 미래 비전은 사실 또는 진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따라서 이 책은 미래에 대한 희망 이야기인 셈이다.



파우저 교수는 책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대신에 어떻게 하면 '헬조선'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의 단초들을 던져준다. 지금처럼 각자 스펙을 쌓아 남들을 짓밟고 올라가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갑자기 메시아가 나타날 리도 없다. 각자의 올바른 생각과 참여를 통해 시민의식을 깨우는 것만이 방법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좀 더 발전적인 공동체 건설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파우저 교수는 이를 '국민'의 사고에서 공동체 주인으로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장으로 역설한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라는 장 자끄 루소의 말이 있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 시기에 로버트 파우저 교수 같은 지식인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얇은 책이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무게는 만만치가 않다. 일독을 권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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