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함정임은 예전에 경향신문의 칼럼에서 "성인 남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 쓰기의 표현 욕망과 지면(紙面)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킨 매력적인 직종이 존재했다. 바로 신문 기자였다." 라고 하면서 "일찍이 그것을 터득한 기자 출신 작가가 20세기의 헤밍웨이, 카뮈, 김훈이고, 오늘의 장강명이다." 라고 쓴 적이 있다.


과연 장강명을 헤밍웨이나 카뮈에까지 견줄 수 있을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요즘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한겨레문학상 발표 즈음에서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이제 장강명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데 데뷔작인 [표백]을 읽을 때만 해도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진 않았다. 그런데 한참 뒤에 강남구청역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우연히 [뤼미에르 피플]이라는 단편집을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샀다. 누군가 사서 한 페이지도 읽지 않고 되판 게 분명한 그 '헌책'엔 미카엘 엔데의 단편집이나 토마 귄지그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에 나올 법한 - 이책을 내게 빌려 준 진희 누나, 아직 내가 잘 가지고 있다오. 언제 돌려주러 꼭 갈게 - 재미있고 낯선 단편들이 그득했다. 그리고 근 일 년 새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열광금지 에바로드> 등 그의 소설들을 몇 권 더 읽었다. 


그의 소설은 어떤 것은 기획기사 같았고 어떤 것은 르포 같았으며 또 어떤 것은 새로운 문체를 시도하는 예술가의 작품처럼 보였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잘 읽히고 나름대로 재미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지런한 작가라는 신문기자나 평론가들의 평 또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 될 정도로 그는 열심히 쓰고, 쓴 날짜와 글의 양을 엑셀에 기록하고 그 성실성을 연료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굵직굵직한 공모전들을 좇아다니며 상금을 획득했다. 소설가라는 지위를 폼 잡는 엔터테이너나 고뇌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철저한 생활인으로 포지셔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이요 결과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에세이집을 냈다. 제목은 <5년 만에 신혼여행>.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갔다 온 3박5일간의 기록이다. 제목만 들으면 뒤늦게 신혼여행을 갔다 온 어느 커플의 알콩달콩 여행기일 것 같지만 장강명이 그렇게 알록달록하기만한  글을 쓸 리가 없다. 물론 소재가 신혼여행이니 어떻게 아내를 만나고 연애했는지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결혼 전의 에피소드들, 작가가 되기 전의 고군분투들이 재밌다. 그리고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틈틈이 펼쳐지는 결혼식에 대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화해에 대한, 직장생활과 꿈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들이 드러나는 대목들이 흥미롭다. 역시 장강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장강명은 실용주의자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 에둘러 가느라 글의 양을 늘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주장을 기술한 부분들은 직접 옆에서 귀로 듣는 것처럼 명료하고 통쾌하다. 그런데 정작 여행지에 가서 관광을 하고 음식을 사 먹고 한 부분은 별 재미가 없다. 아마도 여행지가 긴장감이나 새로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보라카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원래 계획했던 터키 이스탄불이나 일본 대신 거길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다. 가난한 부부의 형편에 맞게(또는 늘 비용 대비 효용으로 고르던 그 커플의 버릇대로) 고르다 보니 거기가 된 것일 뿐. 두 사람이 어찌나 싸구려 상술과 바가지 요금에 시달렸던지 마지막엔 둘 다 "이 놈의 보라카이..." 하며 이를 간다. 그러나 상관 없다. 우리는 보라카이라는 나른한 관광지 덕분에 소설가 장강명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대충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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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도 아니다. 그렇다고 뮤지컬도 아니다. 무대 위에 이러저러한 소도구들이 보이고 연기자들이 손가락으로 연기를 시작하면 한 사람이 그걸 진지하게 ENG카메라로 찍고 나머지 사람들은 부지런히 다음 장면에 등장할 소도구들을 준비한다. 카메라에 찍힌 장면들은 무대 위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영화처럼, 뮤직비디오처럼 실시간 투사된다.  


지젤이라는 여자가 어느 기치역 벤치에 앉아 있다(그녀는 레고인형으로 표현된다). 우선 어렸을 적 13초 간 만났던 첫사랑의 남자부터 회상해 본다. 뒤이어 또 다른 남자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는 지젤이라는 여성이 평생 사랑하고 떠나보내고 잊어야 했던 다섯 명의 남자들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가 연기자의 얼굴과 몸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표현된다. 손가락은 마치 벗은 몸처럼 느껴지고 두 손가락이 엉킬 땐 매우 에로틱하기까지 하다. 손톱을 기른 손가락은 그대로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된다. 손가락이라는 기관이 얼마나 섬세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놀라운 건 손가락 연기만이 아니다. 카메라 웍도 장난이 아니다. ‘접사’라는 방식이 이렇게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지 정말 몰랐다. 아주 작은 소도구들, 물 속에서 퍼지는 잉크, 책상 위의 비닐이나 모래 등이 접사를 통해 순식간에 거대한 회오리와 바다, 해변, 기억 속의 마을 등으로 변한다. 그리고 탁월한 음향효과는 물론 한 곡 한 곡 들을 때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끝내주는 선곡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황홀경에 빠트린다.  아울러 감독이 직접 듣고 낙점했다는 유지태의 사려 깊고 귀족적인 나레이션도 정말 멋지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식탁해서 시작된 이 ‘손가락 공연’은 친구들의 수 많은 아아디어와 공감각적인 장치들이 더해져 이젠 가는 곳마다 전 세계인들을 놀래키는 공연이 되었다. '키스 앤 크라이'라는 제목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연기를 끝내고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를 기다리는 공간을 뜻한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곳은 사랑과도 많이 닮은 것 같아서 이 작품 제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라는 범상치 않은 소설집을 냈던 작가 토마 귄지그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토토의 천국]과 [제 8요일]의 자코 반 도마엘이 감독이다. 그의 부인은 안무 담당자. 아마 맨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일 것이다. 손가락으로 하는 장난 같은 공연인데 열 명이 넘는 어른들이 아주 진지하게 움직이는 모습들도 이상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보면서 저 아이디어 중 어느 하나만 베껴서 CF에 써먹어도 대박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직접 베끼면 안 되겠지만. 거기서 영감을 얻어 창조적으로 변형을 해야겠지만. 아, 안다 알아. 그냥 너무 멋진 장면이나 장치들이 많아서 하는 소리지. 최근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을 읽었다. 크리에이터들은 이 공연을 보고나면 정말 몇 주일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이다. 아니, 배가 고파질 것이다. 아니, 목이 마를 것이다. 그러니 이 공연을 꼭 봐라. 아니, 보지 마라. 아니, 당신 마음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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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1일 저녁, 저는 갑자기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에 대해 뭔가 정리를 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이 글을 휘갈기고 나가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글은 2년 전에 쓴 메모입니다. 뭐, 그렇다고 그 해 읽은 책을 다 쓴 건 아니고 생각나는 것만 몇 권 추려 간단하게 리뷰를 썼습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한 권씩 다시 써야지'라는 생각이었으나...역시 그런 게 생각대로 될 리가 없죠. (그러고보니 '생각노트'라는 제목도 여기서 나왔군요)



2010년의 장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_ 조너선 샤프란 포어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 911테러 당시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은 아빠의 다급한 전화를 받지 못해 트라우마에 빠진 아이의 이야기,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 남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만 했던 할아버지의 얘기가 겹친다.

그런데 이 슬프고도 웃기고 품격 있는 문체는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어느덧 신선한 파격으로 흐른다. 놀라운 필력과 참신한 기획으로 마음을 흔든 역작. 단연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 저자의 데뷔작 <모든 것이 밝혀졌다>도 출간되어 있다. 는 대학생 때 논픽션으로 구상했던 작품인데 지도교수의 권유로 인해 소설로 개작되었다고 한다. 첫 작품부터 작가의 뚝심과 역량을 느낄 수 있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_ 주노 디아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왕따. 섹스를 좋아하는 친누나와 살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도 숫총각인 찌질이. 게임만 좋아하는 뚱뚱하고 못생긴 오스카 와오의 이야기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악명 높은 독재자 투르히요의 역사와 유머러스하게 엮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처음엔 뭔 얘긴가 하다가 읽을수록 빠져드는 마술 같은 책. 주노 디아스는 올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와 더불어 천재라는 말을 들어도 당연한 작가. 그의 데뷰 단편집 <드라운>은 나 같은 놈이 읽고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책인가 보다. 읽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다시 책장을 들추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날을 잡아서 정갈한 음식만 골라 먹은 다음 맑은 정신으로 다시 천천히 읽을 계획.




 
2010년의 단편

 
암소 _ 토마 귄지그


앙리라는 한 남자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신문 찌라시에서 ‘여자친구를 찾고 계십니까? 자연스럽고 순수한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만 연락 바랍니다.(성적 접촉이나 매춘 아님)’이란 요상한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앙리는 한 여자를 만나 집으로 데려오는데, 알고 보니 이 여자는 어떤 농학자가 유전자를 조작해 여자로 탈바꿈시킨 암소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라는 소설집에 있는 기발하면서도 황당한 단편 <암소>는 이렇게 시작한다.

정말 골 때리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설이 골 때리는 얘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소재를 통해 인간의 모순과 인생의 슬픔, 외로움 등을 잔인할 정도로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암소> 외에도 여섯 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는데, 모두 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란 인간이길래 이따위로 못돼먹고 뒤틀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고 환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가학적인 유머감각에 낄낄거리다가도 갑자기 세상 살기가 싫어질 정도로 살벌한 냉기를 함께 느끼게 해주는 미친 작품들.


 안녕, 인공존재 _ 배명훈

<판타스틱>이란 장르문학 잡지를 통해 배명훈을 만나 그의 작품들에 매료되어 지낸 지 벌써 이삼 년이 되어 간다. 데뷔 당시에 “설정을 굉장히 세게 한 뒤 일반 소설 쓰듯이 쓰고 그냥 SF라고 우기면 되지 않을 까 될까?”라는 생각으로 SF작가가 되었다는, 이 농담같은 그의 소설들은 그래서 그런지 설정만 SF이고 등장 인물들이나 행동양식, 사고방식 등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로봇공학자들이 벌레보다 작은 극소형 로봇으로 벌이는 스파이전 이야기 , 실연 당한 은경 씨가 구입한 중장비가 하필 예비군 훈련 징발 대상이 되는 바람에 화성까지 날아가 "예비군 훈련은 간식 안 주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일삼다가 급기야 기계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게 되는 이야기 , 수면공학을 연구한 덕분에 꼴보기 싫은 총통의 임기 5년 동안 잠을 자게 된 남자 이야기 ...

이번 창작집 <안녕, 인공존재>는 이전의 단편들이나 연작소설 보다 더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들로 그득하다. 난 <안녕, 인공존재>와 다른 창작집 표제작이이기도 했던  <누군가를 만났어>가 특히 좋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과 유려한 문체가 '동시패션'적으로 뛰어난 작가. 어떤 면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더 좋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 휘뚜루마뚜루 세계사1 _ 최제훈

얼마 전 독서일기에도 얘기했던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에 실린 단편. 다채롭고 귀여운 인문학적 지식에서부터 시침 뚝 떼고 덤비는 형식의 변주까지. 이 작가의 입담은 정말 굉장하다. 말이 필요 없다. 내용에 대해 더 이상 발설하고 싶지 않다. 이런 책은 전해 듣는 것보다 직접 읽는데서 오는 쾌감이 훨씬 더 크니까.



대설 주의보 _ 윤대녕

 
당대 젊은 작가들 작품까지 빼놓지 않고 섭렵한다는  탐욕의 학자 김윤식은 이인직의 <혈의 누> 이후 대한민국 문학사의 새로운 연대기를 여는 작품으로 대뜸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선정한 적이 있다. 90년대 혜성처럼 등장해 새로운 감수성으로 사람들에게 '생물학적 상상력'이니 '존재의 시원'이니 '회기'니 하는 알쏭달쏭한 단어들을 주입시키던 그의 섬세함은, 그러나 곧 세상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강산이 한 번 반쯤 변했을까.여름 휴가를 떠나기 직전,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나는 그의 신작 <대설 주의보>를 읽었다. 여전히 윤대녕이었다. 툭하면 여행을 떠나고, 주인공은 먹물이 든 비정규직 지식인이기 일쑤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산사로 섬으로 바닷가로 흘러다닌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뭐가 사연이 있는 여자들을 만나 잠깐씩의 연애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맨날 통속적인 연애 얘기를 다루면서도 윤대녕이 쓰면 그것이 통속에서 벗어나  일정한 품격과 정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재수없는 문어체로 꼰대같은 대사들을 뱉어내기 일쑤인 남자 주인공들에게도 어느덧 중독이 되어서 그런지 결국은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이다. 그 옛날 읽는 사람들 가슴을 뻐근하게 했던 의 연인들이 다시 만나 못다한 뒷얘기를 이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는, 그러나 뜻밖에도 따뜻하고 희망적인 결말을 맞는다. 파리하게 여리고 냉혹하던 윤대녕도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윤대녕의 소설을 읽고 나면 갑자기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물론 내가 당장 집을 나서서 선운사나 속초, 강릉으로 아무리 돌아다닌다 해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랑 술을 마시며 말도 안 되는 화두 몇 개를 서로 집어 던지다가 결국 함께 자는 일은 절대 안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런 아련한 예술적 향취와 수채화적인 풍경에 갇혀 꼼짝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 편 한 편 다 표구를 해서 조용한 화랑에 걸어놓고 싶은 느낌의 예술 소설들. 표제작인 <대설주의보>와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가 그 중 특히 좋았다.

 

  박시은 특급 _ 곽재식

이 단편은 원래 2009년도에 출판된 <U,ROBOT>이라는 작품집에 실린 소설인데 뒤늦게 책을 사서 읽은 내가 개인적으로 감동한 작품이라 그냥 올해의 책에 올리게 되었다.

주인공이 일하는 '한국 천문 정보 해석 연구소'라는 이상한 기관은 사실 별 볼일 없는 곳이었다. 별을 쳐다보는 곳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 볼 일 없는 곳인 이 장소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이 미국에서 보내온 자료들을 해석하다가 우연히 외계인과 통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 최초, 인류 최초로 말이다. 당장 연구소는 수십 배로 확장이 되었고 주인공은 급기야 주요 인물로 부각이 된다. 그런데 주인공은 엉뚱하게도 동료와 한 여자를 두고 싸우며 알력을 쌓다가 이른바 '박시은 문제'로 왕따가 된다.

박시은 문제란 주인공이 예전에 <SBS 단막극장 >에서 방영되었던 탤런트 박시은 주연의 <멋지게 세이 굿바이>라는 드라마에 대해 말다툼을 하다 동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 것을 말한다. 황당한 것은 주인공 말고는 아무도 그 드라마의 존재 자체를 기억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인터넷으로 방송국으로, 심지어 박시은 집으로 전화를 해봐도 사실 확인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외계인과 교신을 하게 되는 날이 왔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문화부장관이자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역사적인 첫 교신 담당자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외계 문명의 신호를 처음 발견한 주인공에게로 그 영광이 돌아가게 되었다. 사필귀정. 역사적인 순간이다.  세계인들의 눈과 귀가 한꺼번에 집중되는 코리아에서 KBS 김경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공은 중앙 통제실로 올라 미국 대통령, 한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고 심지어 키보드 앞에 앉기 직전엔 문근영이 와서 뺨에다 뽀뽀까지 해줬다. 주인공은 외계 문명과의 첫 교신 내용으로 너무 거창하고 철학적인 거 말고, 그냥 간단하고 평범한 인사말을 하라는 데이비드 그로스 박사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혹시 전에 SBS TV에서 단막극으로 방송했던 <멋지게 세이 굿바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가? "

통쾌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곧바로 그 드라마를 찾아 보았다'는  외계인의 성실한 답변에 의해 자신의 오타쿠적인 정체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다음날 SBS 토크쇼에 탤런트 박시은과 함게 출연해 외계 문명과 처음 교신하게 된 계기와 고충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물론 박시은이 출연했던 단막극 <멋지게 세이 굿바이>는 전 세계 107개 방송국에서 우주 문명 특선으로 재방송되었다...


 

 2010년의 에세이

 몰락의 에티카 _ 신형철

현재 대한민국에서 글 좀 쓴다는 작가들이면 누구나 줄을 서서 신형철이 평론을 써주기를 기다린다는 농담은 현재 신형철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평론가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책에서 김훈의 소설에 대해 쓴 평론을 읽어보면 그의 진가를 당장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신기한 것은 신형철은 평론가임에도 불구하고 글에서 어떤 ‘고결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고종석과는 또 다른 느낌의 지식인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폭설로 고립된 산장같은 데서 한가롭게 천천히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이다.

 

 책을 읽을 자유 _ 로쟈(이현우)

전작인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로쟈가 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독서 도중 벌떡 일어나 이 책에 언급된 다른 책을 당장 사러 나가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그가 읽고 소개하는 싸르트르, 도스토예프스키, 강상중, 지젝, 보드리야르, 벤야민에서 타르코프스키나 우석훈, 가라타니 고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독서편력들은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새롭게 만나고 싶어진 저자들의 리스트'로 돌변하게 된다.

이현우는 '그 사람이 읽는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책에 대해 무척 엄격한 편인데, 그게 다 독자의 입장에 서서 취하는 엄격함이라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이 책에서는 특히 번역서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번 지적하는데 아주 구체적인 단락들을 원문과 비교해 자세히 실어놓았다. 옛날에 읽은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왜 다시 새롭게 번역된 책으로 다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프롤로그에서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쓴 그의 글은 평범한 진리면서도 이 책의 집필 의도(또는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해 준다.

"흔히, 인간을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으로 정의하면서, 인간이 똑똑해서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똑똑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한 사정은 독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듯싶습니다. 즉 우리는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집니다. 따라서 독서 능력이라는 '옵션 액세서리'는 있으나마나 한 장신구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_ 장하준

지난 30년 간 전 우주적인 절대 진리처럼 맏들어졌던 '시장 자유주의'라는 개념에 강력하게 '안다리 후리기' 기술을 건 장하준의 역작. 최근 독서일기에 언급을 했으므로 새삼 다시 할 얘기는 별로 없지만, 특히 이 책이 올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우리나라 인문학 독서 시장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는 건 자랑스럽게 다시 거론하고 싶어진다.

언론에서는 올해 이토록 딱딱하고 어려운 책들이 새삼 우리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은 이유가 현 정부의 비도덕성, 무능력이나 세계적인 경제난을 반영한 결과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건 이차적인 문제다. 가장 첫 번째로 꼽아야 할 것은 바로 텍스트의 우수성이다.

이 책은 일단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부터 독자들의 눈길을 확 끌고, 내용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전 인문학 책들보다 우수한 것이다. 그러니 나같은 문외한들도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며칠 전 전철에서 이 책을 읽는 50대 아주머니를 본 적이 있다. 선입견 때문이겠지만 평소 인문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 아주머니의 독서 풍경을 보면서 나는 묘한 동지애까지 느낄 수 있었다.



삼성을 생각한다 _ 김용철

'이 책을 읽으면 뭐하냐? 어차피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도 삼성 꺼고, 전화기도 삼성 제품인데. 삼성 욕하면서 카타르시스는 잠깐 느끼겠지만 너라구 뭐 다르겠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차피 똥 될 거 밥은 먹어서 뭐하나, 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삼성이 힘이 셀수록, 현대가, 효성이 태영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국민들의 돈을 훔치면서도 큰 소리 빵빵 칠수록, 우리는 우리 앞에 던져진 최소한의 진실 앞에서라도 두 눈을 부릅 떠야 예의 아니겠는가.

김용철도 어차피 7년간이나 삼성밥 먹던 놈 아니냐고? 맞다.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이다. 7년 동안 '호의호식'과 '장밋빛 미래'라는 마약 속에 빠져있던 한 엘리트가 뒤늦게 기적적으로 그 늪에서 뻐져나와 목숨 걸고 쓴 책이 바로 다. 어떤가? 가끔 이런 미친놈이 있다는 건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조금 남아 있다는 증거 아닌가?


 

생각 노트 _ 기티노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는 한 번도 영화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신기하지 않은가? 기타노 다케시가 쓴 책 를 읽어보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대학 시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이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대학을 그만 두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날로 만담가의 길로 접어든 그는 그때부터 온 청춘을 코미디에 바친다. 얼마나 열심이었냐 하면 여자와 섹스를 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내일 공연할 만담 소재를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의 얘기도 기타노 다케시가 하면 재미있는 얘기가 된다. 고생하던 시절의 얘기도 기타노 다케시의 입을 통하면 꼭 필요한 과정이나 신기한 무용담처럼 들린다.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유머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는 참 멋진 인간이다. 진정 부러운 사람이다.

 



 2010년의 추리소설

 로마 서브 로사1,2,3,4 _ 스티븐 세일러

<로마 서브 로사>는 올해 읽은 책 중에도 가장 재밌고 뿌듯했던 작품이다. 일단 탐정물인데다가 스케일도 크고 문체도 좋고 캐릭터들도 훌륭하다. 주인공이자 사설 탐정인 '더듬이' 고르디아누스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다. (더듬이라는 별명은 늘 사건의 자료를 수집하고 날카로운 추리를 일삼는 고르디아누스의 명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촉이 있는’ 사람 정도가 되겠다)

소설의 배경이 로마시대이고 키케로나 슐라, 스파르타쿠스, 크라수스 등 실존 인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고르디아누스만은 가상의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작가 스티븐 세일러는 독자들로 하여금 매우 자유스럽고 현실적이면서도 쿨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더구나 로마 시대는 그리스도 이전 세대이기 때문인지 돈, 종교, 윤리, 섹스, 동성애(작가인 스티븐 세일러가 동성애자다) 등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훨씬 자유롭고 심지어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1권 [로마인의 피]에서 키케로와 고르디아누스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도 계속 으르렁거리는 사이로 나온다. 난 이게 이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고르디아누스가 키케로에게 주눅이 들거나 무조건 존경하는 역할이었다면 퍽이나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존경은커녕 열심히 변론을 준비하는 키케로의 목소리를 두고 '앵앵거린다'고 빈정거리는 고르디아누스는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또 둘이 하나로 뭉치기도 하고.

전편에 흐르는 은근하고 현대적인 유머 감각 또한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2권 [네메시스의 팔] 초반부에서 고르디아누스가 사건 의뢰 비용을 평소 임금의 다섯 배로 부풀려 협상하는 데 성공한 뒤에 "마침내 뒷담을 보수하고 아트리움의 부서진 타일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어쩌면 베데스타를 거들 노예 소녀도 하나 들일 수 있을 터..."라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대목에선 나 혼자 킬킬대고 많이 웃었다.

<로마 서브 로사>는 문장이 참 좋다. 번역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장중하면서도 유연하고 기지와 통찰력도 넘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고르디아누스의 캐릭터일 것이다. 힘이 세거나 성격이 거친 것도 아니어서 늘 부상을 당하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또 사건을 맡아 정신 없이 동분서주하는 처지지만 결국 만화 '가제트 형사'처럼 사건 해결의 핵심에서는 조금 비껴나거나 가려지는 씁쓸한 상황들이 그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마침 화제의 미드 <스파르타쿠스>와 소설 2권의 시대가 딱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더 즐거운 여름이었다. 난 아무래도 고르디아누스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건 이제 겨우 4권. 아직 4권은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다. 의 춘희 말마따나 '냉장고에 일주일 치 양식을 쌓아놓은 것처럼 뿌듯'하다.

 

 


2010년의 만화

 심야 식당 _ 아베 야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여는 심야식당이다. 메뉴는 그냥 밥하고 그날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 아무거나. 그래서 어떤 사람은 비엔나 소시지만 잔뜩 먹고 가고 누구는 삶은 계란을 먹고 가기도 한다. 일본 작가 아베 야로가 그리고 쓴 만화책 이다. 일본에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선 소화제 '훼스탈'과 대부업체 '미즈사랑' CF들이 설정과 분위기를  일본 드라마와 똑같이 만들어서 욕을 먹기도 했다.

난 심야식당의 영업시간이 마음에 든다. 밤 열두 시부터 아침 일곱 시까지는 희망이나 활력, 출세, 메이저 등과는 거리가 있는 시간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 되는 새나라의 어린이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시간에 여기 오는 손님들은 대개 밤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야쿠자, 형사, 호스티스, 복서, 스트립 댄서, 가라오케 가수도 있고 작곡가도 있다. 주인장은 음식을 만들지 않을 때는 담배를 꼬나 물고 있는데 눈에 심각한 칼자국이 있는 게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인다.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사소한 사연이 있고 그 얘기가 끝나면서 한 편이 마감되는 연작 만화 형식인데, 그 작은 이야기 하나 하나마다 사람의 인생이 담기는 게 놀랍다. 내공이 있는 이야기 솜씨다. 난 1권의 편을 보다가 울고 말았다. 다섯 권까지 한꺼번에 샀지만 휙 다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아직 3권까지밖에 못 읽었다. 박스세트로 사면 철과 자석으로 된 예쁜 메모판도 준다.

 



2010년의 고전


불멸 _ 밀란 쿤데라

작년에 나의 술친구 국동이 형을 만나서 술을 마시며 요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꼼꼼히 재미 있게 읽었다고 얘기했더니, 국동이 형은 나이 들어서 다시 읽으면 정말 좋은 책이 <불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서점에 가도 은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에 절판이 된 것이다. 국동이 형은 그 후로 만날 때마다 자기 집에 <불멸>있다고 자랑을 했고, 난 그걸 빌려달라고 사정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만나면 늘 술만 진탕 마시고 헤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서점에 가서 미친 척하고 검색을 해보니 민음사에서 다시 찍어낸 2010년 3월 26일 자 초판이 있길래 냉큼 사서 읽었다.

불멸의 시인 괴테와 그런 괴테의 연인으로 남기 위해 평생 애썼던 베티나의 이야기. 그리고 야녜스라는 여자와 그녀의 동생 로라, 그리고 남편 폴의 이야기. 작품 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그 자신이자 아베나리 교수의 친구인 소설가 밀란 쿤데라를 등장시키고, 괴테와 함께 베토벤, 헤밍웨이 등을 불러내 불멸에 대한 토론을 시키기도 한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불멸과 역사에 대한 예시, 그리고 고귀함과 막장을 무시로 오가며 전개되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의 고군분투기가 쿤데라의 요설을 타고 페이지마다 흩뿌려진다.

베티나는 온갖 노력과 협잡질 끝에 결국 역사 속 괴테의 연인으로 남아 불멸을 얻는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불멸에 대해 생각하다가 지미 카터의 예(이것 저것 한 일도 많지만 결국 조깅 도중 쓰러져 일그러진 입을 보여준 ‘우스꽝스런 불멸’ 속으로 들어간)를 통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생기더라도 섹스 비디오만은 찍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꼭 얘기해야겠다는 엉뚱한 교훈을 얻었다.   

 


 안나 카레니나 _ 레흐 톨스토이

 

부러운 것 중 하나가 비교적 교양이 뛰어난 친구들(내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별로 없긴 하지만)을 보면 엄청나게 두꺼운 책들도 휙휙 잘 읽어낸다는 점이다. 난 김용 선생의 무협소설처럼 잘 읽히는 책이 아닌 경우 일단 500페이지가 넘어가면 좀 겁을 먹는 편이다.
그래도 두꺼운 책에 대한 미련을 좀처럼 버릴 수가 없었던 나는 어느날 서점에 가서 3권 짜리 를 과감하게 질렀다. 같은 3권 짜리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경합을 벌인 결과였다(하하, 미쳤군).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가 젊었던 시절 쓴 대작이다. 그러나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길고 방대하긴 하지만 뼈대를 이루는 내용은 러시아의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라는 젊은 장교를 만나 바람 피우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카레니나의 시누이 키티에게 청혼했다 거절 당한 뒤 시골로 돌아가 농장을 개혁하려 하는 젊은 농장주 레빈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룬다.

결과는? 아직 반쯤 밖에 읽지 못했다. 일도 해야하고.....다른 책들도 읽어야 하고...게다가 연말연시에 술자리는 좀 많은가..... 그래도 이 책을 뻔뻔하게 '올해의 고전'에 굳이 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따로 읽은 다른 고전이 없으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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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읽은 벨기에 작가의 단편집인데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찾아 읽어봤습니다. 스토리텔링이 아주 매혹적입니다. 한 번 사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앙리라는 한 남자가 있다. 이 친구는 자신한테 눈꼽만치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의료품을 팔기 위해 하루 열 시간씩 차를 몰고 다닌다. 개처럼 일만 하는 남자. 게다가 가입한 사교 클럽 하나 없고 유머감각 조차 없으니 괜찮은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배달된 신문 사이에 끼어있던 찌라시에 ‘여자친구를 찾고 계십니까? 자연스럽고 순수한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만 연락 바랍니다.(성적 접촉이나 매춘 아님)’이란 요상한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앙리가 전화를 걸어 어떤 농장 같은 데로 찾아가 보니 흰 가운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나타나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자를 소개한다. 주변엔 암소들이 많다. 앙리가 여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남자가 말한다.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암소니까요.”

 
이런 이상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데 진짜 이런 소설이 있다. 토마 귄지그라는 벨기에 소설가가 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라는 소설집 중 <암소>라는 단편이 바로 그것이다.
 
 
가운을 입은 남자는 농학자였다. 그는 유전자 변형 연구를 하다가 더 많은 고기, 더 많은 우유는 물론 사람을 닮아 보기에도 좋은 암소를 만들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을 삼 개월 동안 관찰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광고를 낸 것이다. 석 달 동안 이 여자를 데리고 있다가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앙리는 암소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안타까운 사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여자가 단지 암소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말도 한 마디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농학자가 어찌나 심하게 다뤘는지 손만 대려고 해도 질겁을 하고 도망을 친다.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서는 거실 바닥에다가 태연하게 똥을 싼다. 앙리는 일단 각설탕으로 여자를 유혹해서 소파 위에서 억지로 성관계를 맺는데 성공한다. 
 

우울한 몇 주일이다. 그리고 우울한 크리스마스다. 여자를 일찍 반납하면 안 되냐고 전화를 걸어물어봤더니 삼 개월을 꼭 채워야 한단다. 마갈리란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여자는 여전히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고 부엌바닥에서 누워 잔다. 앙리가 아무리 잘해줘도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를(사실은 암소를!) 소파에서 강간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 앙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사료나 찾는 여자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글펐다.
앙리는 마갈리에게 지랄을 한다. 너 같은 건 이제 더 보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는 밀린 일을 하다가 빵을 가져가려고 부엌으로 갔다. 부엌 창문을 통해 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뺨에서 눈물 같은 게 보이는 거 같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며칠 후 앙리는 가운 입은 남자에게 암소를 데려갔다. 앙리는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짓고 그 일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가운 입은 남자는 암소를 외양간에 가두기 위해 암소의 엉덩이를 세차게 갈겼다. 

  “음, 그러니까 똥오줌을 가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로군요.” 가운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사실 이런 걸 개인이 집 안에 두고 기른다는 건 아직 무리죠.”   앙리는 그 말에 동의하고는 암소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아, 이 암소 말인가요? 아쉽지만 이 녀석은 젖소가 아닙니다. 하지만 육질만큼은 최상품이죠. 조만간 도축업자들에게 넘길 겁니다. 제가 늘 거래하는 곳이 있거든요.”   앙리는 남자의 사업수완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정말 골때리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설이 골때리는 얘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소재를 통해 인간의 모순과 인생의 슬픔, 외로움 등을 잔인할 정도로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암소> 외에도 여섯 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는데, 모두 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란 인간이길래 이따위로 못돼먹고 뒤틀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고 환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가학적인 유머감각에 낄낄거리다가도 갑자기 세상 살기가 싫어질 정도로 살벌한 냉기를 함께 느끼게 해주는 미친 작품들. <암소> 외에도 <기린>, <곰, 뻐꾸기, 무늬말벌, 청개구리>, <코알라> 등이 특히 재밌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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