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재밌게 읽은 짧은 소설이었죠. 오스트리아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오늘 잘못 온 문자 메시지 사진을 페북에 올린 걸 보고 홍콩에 사는 제 친구 지연 씨의 언니 문정 씨가 일깨워주시는 바람에 다시 찾아 여기에 올려봅니다.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후, 잠깐 강남역 근처에 갔던 나는 혼자 점심을 사먹은 후 교보문고에 들렀다. 마침 이날은 현영이 쓴 무슨 ‘재테크 일기’ ㄴ가 하는 책의 사인회가 있는 날이라 매장이 무척이나 붐볐다. 아무 생각없이 지하 1층 매장으로 향하던 나는 교보빌딩 옆 가판대의 30% 할인 행사를 보자마자 눈이 뒤집혀 옛날 책 몇 권을 급하게 샀다. 사실은 이 책들을 사러 온 게 아닌데.

 지하 1층 본매장에 가서 선택한 책은 다니엘 글라우티어라는 오스트리아 작가가 쓴 장편 였다. 얼마 전 신문의 신작 코너에서 간단한 소개글을 읽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라는 다분히 칙릿소설 같은 제목의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메일로만 이루어진 특이한 소설이다. 얘기는 에미라는 웹다자이너가 한 잡지의 정기구독을 취소하려고 이메일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단순히 ‘라이크’와 ‘라이케’를 혼동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에게 메일이 전달된 것이다. 그러나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에미는 라이케라는 남자에게 정중하게 죄송하다는 메일을 다시 보내고 둘은 금방 이 일을 잊어버린다.

 아홉 달 후, 언어심리학 교수인 레오 라이케는 컴퓨터를 켜자마자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 맞으시기를 에미 로트너가 빌어드립니다’ 라는 뜬금없는 단체 메일을 받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정기구독을 취소하겠다고 항의 메일을 자꾸 보내오던 바로 그 여자다.

 다분히 장난스러운 기분으로 이 메일에 답장을 보낸 레오는 다시 죄송하다는 에미의 답장을 받게 되고 그 안에서 ‘그리고 혹시라도 그동안 불행한 날들을 정기 구독하셨다면 마음 놓고 저에게 - 실수로 - 구독을 취소하십시오’ 라는 문장을 보고 감동한다.

 그 뒤에 에미가 또 아직도 취소되지 않은(듯한) 잡지의 정기구독을 취소하려는 항의 메일을 보내오고, 또 레오가 장난스럽게 답장을 하고 하면서 둘은 어느새 호감을 갖게 된다. 얼굴이나 배경, 나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전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더구나 에미는 언어심리학자답게 재치 있는 글 솜씨와 유머를 겸비한 그에게 늘 감탄하는 중이었고, 레오는 레오대로 하고싶은 말마다 걸핏하면 1), 2), 3)…하는 식으로 번호를 매기는 그녀의 독특한 버릇과 솔직한 감정 표현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참 빨리 읽힌다. 그렇다고 내용이 허술한 것도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라서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그러다가 어느덧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 현대인의 아이러니가 절묘하게 구현되어 있다. 심지어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 같은 스릴까지 맛보게 해준다. 밀고 당기는 두 사람의 재치 있는 문체들은 정말 현실적이다. 난 처음에 작가가 당연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에미가 쓴 메일들을 읽어보면 안다)

 서로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봐 만나지 못하는 두 사람. 에미와 레오는 어느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후버 카페’라는 붐비는 곳에서 (아마 강남역 뉴욕제과 앞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주고받은 이메일의 이미지만으로 서로 알아보기를 시도한 것이다. 즉, 진짜 에미와 레오를 찾는 게 아니라 ‘에미처럼 보이는 여자’와 ‘레오처럼 보이는 남자’ 를 찍기로 한 것이다... 과연 그들은 서로를 알아 봤을까?

 
스포일러는 여기까지다. 난 한밤중에 쳇 베이커의 CD를 올려놓고 이 소설을 읽었다. 바람이 부는 새벽 세시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절실한 사연에 쉽게 잠이 들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면 참 좋을 것 같은 소설이다.

 사족)

초판이라 그런지 책을 읽다가 명백한 오자를 발견했다. 321페이지 마지막과 322페이지 초입에 걸쳐 ‘로트너씨’를 ‘라이케씨’로 세 번이나 잘못 표기했다. 오늘 문학동네편집부에 전화를 해서 알려줬더니 ‘지금 자기 앞에 책이 없어서 그러는데 검토 후 다음 판본부터 반영하겠다’ 는 심드렁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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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After : 어느 카피라이터의 좌충우돌 패션 변신 체험기

카피라이터는 참 괴로운 직업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선배 카피라이터인 핼 스테빈스라는 분은 ‘카피는 초등학교 6학년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써라’라고 하셨죠. 한마디로 쉽게 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광고 작업을 할 때에도 클라이언트들은 디자인이나 편집 보다는 카피에 보다 쉽게 참견을 하기 마련입니다. 직업이 카피라이터인 저도 그런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되죠. 제가 쓴 카피를 보고 “왜 이렇게 카피가 길어욧?” ‘헤드라인 좀 바꾸면 안 돼욧?” 같은 얘기를 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심지어 ‘시작은 윤리 경영이었습니다’라는 홍보영화의 리드 카피를 보고 “우리 회사는 지금도 윤리 경영을 하고 있는데 이건 왜 과거형이냐?”고 따지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 입 다물라, 다물라! 꼴도 보기 싫으니 돌아서 있으라!” 라고 저하처럼 외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아, 예. 그럴 줄 알고 B안, C안도 준비해 봤습니다. 헤헤.”라며 또 다른 카피가 씌어져 있는 A4지를 꺼내곤 하죠. 엉엉.

이른바 ‘전문가 존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전문가를 재깍재각 알아 모시고 존중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사람의 경험과 아우라가 차곡차곡 쌓여 드디어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경우엔 전문가의 말 한 마디에도 무게가 실리게 마련입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너는 어떤 편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정치가 말고는 거의 모든 전문가를 존중하는 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저는 최근 일년 간 어느 전문가 한 사람을 만나 속칭 ‘팔자를 고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때는 작년 5월 말. 저는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그녀의 친동생이 유명한 스타일리스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10년이 넘게 KBS 등 방송국에서 스타일리스트로 일해 온 그녀가 제게 한 첫 충고는 ‘티셔츠를 바지에 넣어 입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는 저는 그때까지 평생 한 번도 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지 않았습니다. 키도 작고 배가 나온 체형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배를 가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단호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당당하게 노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속는 셈 치고 그녀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살이 빠져 보인다, 다리가 길어보인다, 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를 길에 세워놓고 한 얘긴 아니고,다 아는 사람들이 해준 얘기였지만 그래도 저는 신이 났습니다. 그녀의 충고는 계속되었습니다. 제가 입고 있는 모든 옷의 치수를 하나씩 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팔은 가늘고 어깨도 좁은 체격이라 늘 박스형 티셔츠로 몸을 감싸고 다녀야 했습니다. 콤플렉스가 많은 몸매에 타이트한 옷을 입고 다닌다는 건 ‘사회적인 죄악’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도 그녀는 어느날 다짜고짜 저를 끌고 가로수길의 아무 옷집으로 데려가더니 이것저것 작은 티셔츠와 스티니진 등을 마구 구입한 뒤 제 카드를 빼앗아 강제로 결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다니던 미용실도 바꾸고 안경도 금테로 바꾸게 했습니다.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는 저에게 그동안 입지 않던 셔츠와 가디건 입는 법, 옷에 맞춰 신발 연출하는 법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느새 저는 ‘참 일하기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심드렁한 광고인’에서 ‘냉철한 두뇌와 세련된 감식안을 가진 프리랜스 카피라이터’로 변신을 하고 있었습니다...움홧홧.

옛날 미스코리아 대회나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가장 많이 주고받던 얘기가 뭔지 기억하십니까? 바로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전 왜 이쁜 여자들이 수영복만 입은 채 한결같이 그런 얘기를 종알거리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정말 공감이란 단어를 국 끓여먹은 시추에이션이지요. 내면의 아름다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상대방이 알기까지는 기나긴 시간이 걸립니다. 반면에 첫인상은 단 3초 만에 결정이 됩니다. 어느 기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잘못 전달된 첫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려 7,8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저를 변신시켜준 YHMG의 윤혜미 대표는 특히 남성의 옷차림에 정통한 나머지 얼마 전 [남자의 멋∙품∙격]이란 책까지 출간했습니다. 그동안 그녀의 충고를 충실하게 따른 저는 겉모습이 변함에 따라 내면까지 변하게 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고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도 이전보다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여친의 충고까지 곁들여져 면도를 하고 나서 아무렇게나 벅벅 문지르던 값싼 스킨로션 대신 추천해준 스킨과 에센스를 신중하게 바르기 시작했고 외출을 할 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꼭 썬블럭을 발랐습니다. 전 햇빛이 쨍쨍 내려 쬐는 바닷가나 한여름의 등산로가 아니면 썬크림은 절대 바르지 않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외선은 해가 뜨나 날이 흐리나 늘 피부를 공격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자다가도 떡이 생기더군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세련된 옷차림에 피부까지 좋아지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전문가의 의견을 너무 따르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진 제 모습을 보고 “아니, 저 자식 요즘 좀 살만한가 보네?”라든가 “너 아주 잘 나가시는 모양이네요.”라고 오해를 품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 제발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전 그냥 스타일이 쬐끔 좋아진 것뿐 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밥은 사 먹고 술은 얻어 먹는다’라는 백수의 모토를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술값 안 낸다고 욕은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그리고 요즘은 가끔 술값도 내요. 가끔이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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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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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일기 51

음주일기 2012. 2. 29. 00:19



 
저는 우리 동기 애들이 정말 싫어요. 술도 너무 잘 마시고 또 체력이 좋아서 뻑하면 밤을 새고 노는 무서운 애들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송년회도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안 가려고 노력했지만, 지난번 술자리에서 꼭 나가겠다고 하도 굳게 약속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나가게 된 거예요. 믿어주세요. 그래요. 이번 일도 결국은 제가 불행을 자초한 거죠.
 
다사다난이란 말은 매년 연말만 되면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사자성어지만 ‘다사’와 ‘다난’에 또다시 이렇게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차가 막히는 구산동 사거리의 택시 안에서부터 스멀스멀 온몸을 휘감더란 말이죠.

약속시간보다 거의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서오능 열두마당이라는 고기집엔 벌써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었어요. 연말이라 이런저런 약속도 많을 텐데, 얘들은 바쁘지도 않은가 봐요.

저는 입구에서 만난 한숙이가 주차를 하는 동안 담배를 피우는 척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들어가면 그때부터 쉬지 않고 계속 술을 마셔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총무인 민석이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이 상 저 상 술과 고기를 챙기고 있었어요. 저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직 불판을 올리지 않은 상에 가서 앉았어요. 저쪽 상에 앉아서 술을 마시던 정노와 상엽이 준성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어요. 오른쪽 상엔 명옥이 옥희 한숙이 미옥이 등이 모여 앉아 있었구요. 수염 난 여자애가 하나 끼어있길래 자세히 봤더니 계천이었어요.
 
술잔을 채 잡기도 전에 민석이가 회비를 거두러 샤일록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오더군요. 종이가방엔 벌써 회비로 거둔 만 원짜리 지폐들이 그득했어요. 저는 회비를 내고 종원이와 함께 술을 마셨어요. 우리 옆에 있는 희선이에게도 익은 고기를 좀 집어주면서 말이죠. 정노가 한 박스나 가져왔다는 생굴도 좋은 안주였어요.
 
종원이는 어제 추운 날씨에 덜덜 떨면서 골프를 치고 새벽 네 시까지 술을 마셨다면서도 뭐가 그리 급한지 술을 벌컥벌컥 마셨어요. 서로의 위 속에 헬리코박터균과 간염 바이러스를 심는다는 그 무서운 ‘술잔 돌리기’까지 하면서 말이죠.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성규가 도착했어요. 이놈은 신도초등학교 동문도 아닌데 지난번 체육대회 때 협찬을 계기로 우리 모임의 특별회원이 된 놈이에요. 어차피 초등학교 친구 절반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동창과 겹치니까 성규도 무리 없이 우리들과 어울리게 된 거죠.
 
정노 집들이 때 안면을 텄던 종원이와 성규는 새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술을 마셨어요. 그래요.여긴 누구든 술로 인사하고 술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알코홀리랜드’였던 거에요.
 

그러나 더 무서운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어요. 지난 일 년간 임원을 맡아 했던 한식이와 정현이 민석이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새 임원을 뽑는 자리기 시작된 거죠. 사회를 맡은 민석이는 ‘오래 끌면 술 마시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급하게 회의를 몰아가고 있었어요. 임원 선출이 아니라 인민재판에 가까운 통보 방식이었어요.
 
갑자기 제 이름이 불리는 걸 듣고 저는 마치 공회당 마당에 끌려 나온 반동분자처럼 엉거주춤 일어나 끝내 수락을 하고 말았어요. 술을 먹여 판단력이 흐려진 데다가 불법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여당의원들처럼 땅,땅,땅! 단숨에 해치워버린 솜씨에 꼼짝없이 걸려든 거죠. 그래서 전 졸지에 이 모임의 임원이 되었어요.
 
저를 선출시킨 아이들은 마치 큰 껀을 하나 해치우고 나서 폭탄주 말아 돌리는 한나라당 의원들처럼 연방 희희낙낙 술을 마셨어요. 모든 걸 포기한 저도 대책 없이 술을 마시고 또 마셨어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원태랑 술을 마셨고 그보다 더 오랜만에 보는 재선이랑 술을 마셨어요. 마시고 또 마시니 못 마실 것도 없었어요.

재선이는 왜 그렇게 연락을 끊고 살았냐며 저를 야단쳤어요. “전에 ‘난 결혼 안 할거야’라고 하더니 진짜 안 했네?!” 하며 저를 놀려대기도 했어요. 저는 얼마 전 흥배형 만난 얘기를 했고 우리가 고등학교 때 중국집에서 낮술 마시고 곧장 명보극장에 들어가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보기 전 그 형이 애국가를 따라 불러서 기립박수 받았던 얘기를 하며 웃었어요. 재선이가 옛 친구 인구의 전화번호를 알려줬어요. 경태랑 연락해서 한 번 보자는 거죠. 걔들도 정말 오래된 친구들이에요.

삼만 원이라는 저렴한 회비 치고는 좀 과하다 싶게 많은 술과 고기를 넉넉하게 해치운 우리들은 지난번처럼 또 이차로 노래방엘 갔어요.우리 친구들은 놀면 놀수록 힘이 솟는 어린이 체질인가 봐요. 노래방에서도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미친 듯이 노래를 불렀어요.
 
준성이와 저는 손님들에게 불려온 전속 밴드의 마스터처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종횡무진 활약을 했어요. 물론 다른 친구들도 열심히 춤 추고 마시며 노래를 불렀구요. 그래도 우린 참 건전한 모임이에요. 술 마시고 꼬장 부리는 아이 하나 없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엉뚱한 스킨쉽이나 터치도 없으니까요. 아마 멤버 중에 눈에 확 띄는 미남 미녀가 없어서 더욱 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나 봐요.
 

노래방에서 실컷 놀고 난 후라 어지간히 지치기도 했을 텐데 철없는 친구들은 또 용감하게 삼차를 외쳤어요. 실내 포장마차에 가서 해물에 소주를 마셨어요. 일찍 돌아간 몇몇 친구들 빼고는 다 참석한 엄청난 자리였어요. 플라스틱 테이블을 일렬로 길게 붙이고 앉은 우리들은 지치지도 않고 술을 마셨어요.저는 너무 지쳐서 잠깐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졸기도 했죠.

결국은 사차를 가고 말았어요. 자랑스러운 친구들이 아닐 수 없어요. 노래방에서 나올 때 누군가가 제게 목도리를 매줬는데 가방에 넣어놨다가 소주집에서 꺼냈더니 민석이가 주인을 찾아주겠다며 가져갔어요. 이미 우리들의 몸 속엔 피보다 알코올이 더 많이 돌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술자리는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었어요. 민석이가 “어차피 늦은 거, 아침까지 계속 마시다가 지하철 타고 가.”라는 무서운 멘트를 날리더군요. 참으로 무모한 발언이었지만 그때는 술이 취해서 그런지 꽤 설득력 있게 들렸어요.
 

날이 훤하게 밝았어요. 어떻게 지하철을 탔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수서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자다가 일어나 버스로 갈아탔어요. 새벽 날씨가 매섭게 춥더군요.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니 졸음이 몰려왔어요. 아마 저를 본 주민들은 “일요일에 이렇게 일찍 일어나 돌아다니다니, 저 사람도 나처럼 부지런한 인간인가 보군.” 이라 생각했을 거예요. 저는 파리한 낯빛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정말 우리 동기들이 무서워요. 요즘 일박 이일로 술을 마신 게 몇 차례 되는데, 다 얘네들하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이젠 제가 그 모임의 임원까지 되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오늘 오후에 일어나 제 홈피에 가보니 상조가 방명록에 글을 남겼더군요. 겉으로는 잘 들어갔냐는 안부인사였지만 ‘이제 임원이 됐으니 똑바로 해.’라는 은근한 압박이라는 걸 제가 모를 리가 있겠어요. 여러분들도 혹시 길을 가다가 우리 동기들이랑 마주치거든 아는 체 하지 말고 얼른 피하세요. 얘네들, 진짜 센 녀석들이거든요.

(200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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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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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일기 50

음주일기 2012. 2. 29. 00:13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말미암은 세계적 경제 위기만 해도 기가 찰 노릇인데 고집 꺾을 줄 모르는 수구 꼴통들의 갈팡질팡 국정 운영까지 겹치고 나니 이젠 TV고 신문이고 쳐다 볼 맛이 안 난다. 뭐 하나 속 시원히 풀리는 일 없고 즐거울 일도 없는 요즘,
그래도 마음 놓고 활짝 웃을 일이 하나 생겼으니 바로 승미의 딸 진이의 카이스트 수시합격이다.

본인도 물론 기쁘겠지만 우리는 진이의 엄마 승미에게 더 큰 축하를 보낸다. 혼자 몸으로 보모님의 병수발에 수험생 엄마 노릇까지 동시패션으로 치뤄내야 했던 처지였으니 그 몸고생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그 중에서도 유독 기뻐한 친구가 목포에 사는 보영이다. 보영이는 학교 다닐 때부터 승미랑 친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녀 또한 고3 올라가는 아들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진이 진학문제에 더 각별한 관심과 응원을 보냈던 것이다.

진이의 합격소식을 듣자마자 그녀가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잔말 말고 빨리 목포로 내려오라’ 는 소집명령이었다. 진이가 합격을 하기만 하면 한턱 크게 쏘겠다고 전부터 다짐을 했던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조상님들의 통찰력 있는 격언도 그녀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성준아, 수요일 저녁에 KTX 예약해 놓을게.”

승미가 전화를 걸어 나에게도 소집명령을 하달한다. 이번 초대의 주인공은 승미와 진이지만 나와 재욱이도 순전히 ‘시간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난 기쁘게 오케이를 외치고 전화를 끊는다. 백수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약속시간에 맞춰 승미네 동네로 갔다. 진이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만나서 택시를 타고 용산역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두르느라 진이는 교복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택시에 탄다.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 시간은 꽤 넉넉한 편이다.

재욱이는 용산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차가 막힌다. 이상하다. 평일 이른 오후에 사람들은 한꺼번에 어딜 이렇게 급히 가는 걸까. 택시운전사 아저씨는 무사태평이지만 여섯 시 반까지 도착해야 하는 우리들은 속이 바짝바짝 탄다. 벌써 역에 도착했다는 재욱이의 전화가 온다.

출발 오분 전 겨우 역에 도착한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급히 건너 재욱이를 만난 뒤 광장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승미는 표를 찾으러 창구로 뛰어가고 진이와 나는 일단 열차 승강장으로 내려간다. 사람들은 벌써 다 탔다.

“지금 창구에서 표 찾고 있거든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가 승무원에게 사정을 한다. 진이도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야, 표 찾았어?” 재욱이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직이란다. 열차 계단에 올라 기다려주던 여승무원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죄송해요. 지금 출발해야 돼요.” 문이 닫힌다. 열차가 출발한다. KTX에는 코리안 타임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매표소로 올라가 승미를 만난다. 매표구 앞에 줄이 늘어서 있어서 예약표를 바꾸지 못한 것이다. 할 수 없다. 다음 출발시각은 두 시간 후.너무 늦는다. 재욱이가 열차 시간표를 살펴보더니 새마을호를 타고 가자고 한다. 십분 후에 출발하는데 KTX보다 한 시간 늦는 9시 55분 도착이다. 표를 사고 나니 또 오 분밖에 안 남았다.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도 없다. 우리는 또다시 개찰구로 뛰어가 가까스로 새마을호에 몸을 싣는다.

밤 기차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대학교 다닐 때 기차를 타고 춘천이나 대성리로 놀러 갈 때도 그랬다. 철도 이음새를 지날 때마다 일정하게 들려오는 덜컹덜컹 하는 소리. 제각각 사연을 가지고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창 밖으로 빨려 지나가는 불빛들, 어두운 숲들. 홍익회 아저씨들이 지나다니면서 팔던 찐계란과 음료수들.

열차 화장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진이가 활짝 웃으면서 좌석으로 돌아온다. 내일이 수능 보는 날이라 친구들은 모두 초긴장 상태인데 먼저 합격한 진이만 혼자서 룰루랄라 천하태평이다. 승미는 진이 친구 엄마들에게 휴대폰 문자로 응원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은 진이 모녀가 얼마나 부러울까.

다들 급히 오느라 배고픈 줄 몰랐는데 막상 열차에 몸을 싣고 나니 시장기가 몰려온다. 재욱이가 캐터링 서비스로 음료수와 과자를 좀 산다. 금방 다 먹고 또 입맛을 다시다 식당칸으로 간다. 도시락과 맥주를 사서 나눠먹는다. 식당칸은 메뉴가 형편없다. 대신 불이 굉장히 환해서 독서를 하기엔 좋다. 난 배낭에서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를 꺼내 식당칸에서 읽는다. 승미와 재욱이는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진이는 좌석에서 자고 있다.


목포역에 도착하니 형님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니 집으로 가기 전 목포 시내를 한 바퀴 돌자고 한다. 해안 도로를 따라 불 밝힌 목포항과 삼학도를 훓어 내려온다. 길마다 등을 밝혀 거리 전체가 환하다.

삼학도는 섬 전체에 조명시설을 해놔서 흡사 커다란 항공모함이나 놀이공원같다. 형님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이 목포 시장님을 ‘조명시장님’이라고 부른단다. 곳곳에 조명 시설을 해놨기 때문이다. 경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목포항의 휘황한 가로등 불빛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아파트에 도착하니 엄마인 보영이를 비롯해 지원이 민정이 민영이 지훈이까지 모든 식구들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가 형님이 만들었다는 책꽂이 등을 구경하는 동안 푸짐한 술상이 준비된다. 합격 축하 의미의 떡과 전복, 낙지 등에 상다리가 휘어질 것만 같다. 특히 이번에 형님이 비법을 배워왔다는 ‘기절낙지’ 는 신기하고 맛도 그만이었다. 살짝 기절시킨 세발낙지들을 무우와 오이를 갈아 만든 소스 위에 얹으면 꿈틀꿈틀 살아난다. 그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먹으면 된다. 입에 달라붙지도 않으면서 산낙지의 느낌은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절묘한 요리다.

다들 소주와 맥주로 축배를 한다. 진이도 맥주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서로 요즘 사는 얘기를 나누고 학교 다니던 시절 얘기도 한다. 우리 곁에서 놀던 아이들은 어느덧 방에 들어가 자고 있고 맏이인 지원이는 열두 시가 다되도록 방에서 영어 과외를 받고 있다. 고달픈 고등학교 시절이다.


“아, 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밤을 새는 거야?”

보영이가 한숨을 내쉰다. 형님은 진작에 들어가 자고 우리끼리 진이 어렸을 때 얘기, 승미랑 보영이 학교 다닐 때 얘기 등을 하며 한 잔 두 잔 술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재욱이는 마루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고 보영이와 승미는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나도 부엌에 가서 끓고 있는 전복죽을 젓다가 국물이 튀어서 손을 데었다. 그래도 소주를 손에 붓고 마저 설거지를 마친 뒤  마루에 누워 잔다.

“얘들아, 아침 먹어라.” 눈을 붙인지 삼 초도 안 지난 거 같은데 보영이가 우리를 깨운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운다. 진이는 물론 일어날 생각조차 안 하고 민정이 민영이만 누운 채 엉덩이를 치켜올리고 괴로워한다.골프를 전공하고 있는 민정이 민영이는 아침마다 아빠와 함께 9Km씩 조깅을 한단다. 대단하다. 민정이 방에 가보면 벽에 ‘하루 구보 9Km, 하루 티샷 1800개’ 라는 무서운 생활신조가 벽에 붙어있다. 운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애들과 함께 운동을 마치고 들어 온 형님이 우리에게 진도에 놀러 가자고 한다. 승미 진이 재욱이 나 지훈이까지 차에 올라탄 뒤 진도를 향해 달린다. 조금 지나자 싱그런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때린다. 공기가 정말 좋다. 진도대교 앞에서 차를 잠깐 세우고 바다 구경을 한다. 놀랍게도 바닷물이 힘차게 소용돌이를 치고 있다. 여기가 바로 명량해협이다. 이순신 장군이 열세 척의 배로 수천의 왜구를 섬멸한 곳이다. 진도대교 밑으로 흐르는 바닷물은 하루에 네 번 조류가 바뀐다고 한다. 과연 물살이 거세서 한 번 빠지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여간해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형님이 진도대교를 지나면서 이 다리가 두 개로 늘어난 사연도 얘기해 준다. DJ정권 시절 진도 출신인 박지원씨가 힘을 써서 쌍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도대교를 넘어가는 길엔 커다랗게 서 있는 충무공의 동상이 보이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엄청난 파밭들이 보인다. 파는 진도의 특산물이란다. 파밭과 양배추밭, 무우밭들이 가는 곳마다 펼쳐져 있다. 진도엔 진돗개만 있는 줄 알았던 나는, 바보다.

쌍계사로 들어서니 입구에 국화꽃이 즐비하다. 지금 국화축제 기간이란다. 나와 승미, 진이는 대웅전에 올라가 방석을 깔고 절을 한다.  “삼촌도 불교신자예요?” 절을 하고 있는 내게 진이가 묻는다. “아니.” 내가 대답한다.

절을 나와 운림산방 입구로 간다. 여기는 조선시대 화가인 허소치의 생가 자리다.  형님이 허소치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진이와 나는 운림산방 입구에 있는 명판의 글을 읽는다. 한글 옆에 영문 번역판도 있는데 가만 읽어보면 허소치를 'Painter'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영어로 바꿔놓으면 왠지 생경하고 어색한 법이다.

나는 예전에 아리랑TV에서 사극을 봤던 경험담을 얘기한다.아리랑TV는 예전 드라마를 재방송하면서 영어자막을 제작해 내보내는데 '어허, 벌써 가시게요? 며칠 더 머물다 가시지요.'라는 대사가 나오면 밑에 'why don't you stay here for several days?'라는 자막이 뜬다. '한양에 볼 일이 있어서요.'라는 대사가 이어지면 'I have a business at Hanyang."이라는 자막이 이어지고. 내 얘기를 듣고 진이가 킥킥 웃는다. 형님도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듣고 껄껄 웃는다.

절에서 나와 '기적의 바다'라고 불리는 곳으로 간다. 여기는 신문 방송에서도 여러번 소개가 된 곳인데 해마다 특정한 시기가 되면 바닷물이 갈라져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지금은 그냥 평범한 바다지만 그래도 관광지로 꾸며놓고 동상도 세우고 해서 사람들이 적잖게 찾는 곳이란다.

"하하, Dragon King이래."

진이가 웃는다. 바닷가에 이 지방 전설의 주인공인 뽕할머니의 동상을 세워놨는데 거기있는 설명문의 번역판엔 뽕할머니를 'Grandmother Ppong', 용왕을 'Dragon King'이라 써놨기 때문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손자를 애타게 기다리던 'Grandmother Ppong'을 가엾게 여긴 'Dragon King'이 손자를 다시 돌려보내 그 가족을 're-union'시켰다는 내용이다. "야, 드래곤 킹 보다는 포세이돈이나 뭐 그런 게 더 낫지 않냐?" 내가 말하며 진이와 함께 웃는다.


지훈이가 배가 고프다며 기적의 바다 앞에서 파는 라면을 사달라다고 조른다. "지훈아, 가서 점심 먹어야지." 형님이 라면 대신 다슬기를 이천원어치 산다. 내가 얼른 돈을 내려고 했으나 머뭇거리는 사이에 형님이 먼저 돈을 치룬다. 이런 것까지 얻어먹다니.
미안한 마음에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형님은 우리 올라갈 때 주겠다며 말린 김을 또 네 묶음 산다.

형님이 운전을 하며 휴대폰으로 사업상의 전화를 한다. 식당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대회 내용이 꽤나 심란하다. 눈치 없는 우리는 그 와중에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존다. 난 지훈이를 안고 있었는데 잠이 든 지훈이의 머리가 내 팔을 눌러서 팔이 저린다. 진이도 옆에서 "아, 온 삭신이 다 쑤셔." 라는 매우 청소년답지 못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나보기야? 얼른 식당으로 와. 거기서 같이 밥 먹게."

심각한 통화를 하던 형님은 보영이와 통화를 할 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의 별명을 부른다. "실장님? 거 생고기 좋은 놈으로 이인분하고 한우삽겹 삼인분만 지금 준비해주세요." 식당으로 전화를 해 점심 메뉴를 미리 부탁하기도 한다. 한산한 도로를 빠르게 달려 식당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가 넘었다.

생고기가 나왔다. 이건 정말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니다.  진이가 특히 환호작약한다. 그녀는 워낙 고기를 좋아해서 고3 시절 내내 '고기심'으로 버텼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한우삼겹도 정말 맛이 기가 막힌다.  형님은 한우삼겹을 굽는대로 부지런히 진이의 접시에 올려놓는다. 남들은 수능을 보는 날, 이렇게 뱃속에 고기를 차곡차곡 채워넣는 고3도 있단 말인가.

"진이는 참 이쁘고 천진난만한 소녀지만,   참 지랄같이 많이 처먹기도 해.그치?"

내가 우왁스럽게 진이를 놀려대자 다들 와 하고 웃는다. 고기를 다 먹고 마지막은 육회덥밥 2인분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젠 위가 꽉 차서 숨도 쉬기 어려울 지경이다.


형님이 식당에서 남은 작업을 하고있는 동안 우리는 보영이네집으로 간다. 아파트에 남겨두고 온 짐을 챙겨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보영이가 우리에게 줄 빵과 삶은 계란을 챙기는 잠깐 사이에 재욱이가 마루에 대자로 누워 코를 곤다.

이번만은 여유있게 가자. 다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곱시에 출발하는 KTX를 타려 다섯시 반에 출발을 한다. 여유있게 역사에 도착을 한다. 이제 돌아가는구나. 보영과 인사를 나누고 표를 산다. 표값을 계속 승미가 카드로 일괄 계산했기 때문에 내가 돈을 주려고 했더니 웃으며 그만 두라고 한다. "다 니들이 걱정해주고 마음 써줘서 진이 일도 잘 풀린 건데. 다음에 진이 맛있는 거나 사줘." 승미의 고마운 마음 씀씀이에 나는 또 재빨리 빈대로 돌변한다.

화장실에 갔다 나왔더니 재욱이가 보이지 않는다. 형님이 바닷가에서 샀던 김을 깜빡했다며 지금 전해주러 온다고 해서 마중을 나갔다는 것이다. 나도 뛰어나가 재욱이와 형님 차를 기다린다.

그런데 출발 10분 전인데도 차가 도착하지 않는다. 서둘러서 왔는데도 또 아슬아슬하게 떠나게 되고 만다. 밖에서 헤매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형님이 민정이 민영이와 함께 와서 우리에게 김 뭉치를 건내준다. 우리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새도 없이 얼렁뚱땅 작별 인사를 하고 기차를 향해 달린다. 겨우 열차에 오르고 나니 기차가 곧바로 출발한다.

 

난 평소에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엮이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편이다.그러나 이런 식의 학연이라면 얼마든지 엮이고 또 엮여도 흐믓하기만 하다. 형님과 보영이는 밤낮으로 우리를 챙기고 위하고 먹였다. 마흔이 넘어도 철이 없는 우리들은 마냥 받기만 하고 감히 갚을 생각을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가 받은 환대와 고마움을 두 사람에게 갚지는 못할 것이다. 나중에 잘 해야 엉뚱한 놈들에게 뭔가 베풀면서 살지도 모르지. 사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다복한 인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200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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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일기 32

음주일기 2012. 2. 28. 23:59


 

'존나, 니체적이지 않습니까?’

 

서울을 떠나 경기도 광주 ‘초월읍’이란 동네로 이사가면서 정욱씨가 내게 남긴 황당한 멘트다. 광고를 시작하기 전 모 카피학원에서 만나 허접스럽게 안면을 튼 우리는 그 후 한 놈은 대행사로 한 놈은 영화사로 가서 카피 쓰고 먹고 사느라 일년에 한두 번 겨우 생사만 확인하고 살던 처지였다.

내가 정욱씨를 다시 만난 것은 어느 해 일월 마포에서 시무식을 마치고 뛰어들어간 회사 화장실에서였다. 변기에 앉아 무심코 일간스포츠에 실린 신춘문예 감성소설부문 당선작을 읽던 나는 ‘흠, 제법 깜찍하네…’라고 중얼거리다가 남정욱이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 것이다. ‘별일이야. 이 인간이 신춘문예를 다 하고.’ 하며 축하전화를 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나갔다.

 

정욱씨가 난데없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제안해 왔다. 하지만 난 성탄절 연휴를 맞아 양평에서 하룻밤 사이에 두 번의 술자리(저녁에 바베큐 파티에 취해 들어가 자다가 새벽에 깨서 또 아침까지 마심)를 가졌었기에 도저히 다음날 대낮부터 술판을 벌일 컨디션이 아니었다. ‘파티라는 단어는 도무지 우리와 안 어울리는 거 아니냐’는 나의 의견을 무시한 채 그는 무조건 초월읍으로 열두 시까지 오라고 통보를 한다.

정말 환장한다. 나이 마흔이 되어 새삼 크리스찬으로 변신했다는 사실만 해도 충격적인데 급기야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이사도 가고 교회도 나가게 됐다는 사정을 듣긴 했지만 그렇게 일요일마다 교회를 열심히 나갈 줄은 몰랐다.

교회 ‘청년부’ 생활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 않느냐는 나의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착실히 예수쟁이의 길을 걷던 그 인간, 이젠 대낮부터 크리스마스를 빙자한 술 파티를 하자는 것이었다.

 

멤버는 정욱씨와 그의 여자친구 수화씨, 경돈과 지연 커플,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문정동으로 나를 픽업하러 온 경돈?지연 커플과 함께 광주에 있는 정욱씨의 아파트로 갔다. 48평형의 넓은 아파트였는데 거실에 가구나 커튼이 전혀 없어서 아파트라기보다는 마치 콘도에 놀러 온 기분이 든다는 게 특이한 점이었다.

내가 마주앙 한 병을 사들고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정욱씨와 수화씨는 놀랍게도 연어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씽크대에서 등을 보이고 열심히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두 사람은 흡사 신혼부부 같다.

 

연어와 야채 등등 고급스러운 안주를 상에 놓고 앉은 우리는 와인을 마실까 소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결국 소주를 마시기로 한다. 한잔 두잔 마시며 수화씨와 경돈 커플 그리고 내가 새삼 인사를 나눈다.

 

교회 분의 소개로 정욱씨와 만났다는 수화씨는 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기술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떻게 여자분이 기술선생님 될 생각을 다 했냐는 경돈의 질문에 ‘기술교육과를 다녀서 그렇다’라는 당연한 대답이 돌아온다. 생전 결혼을 할 거 같지 않던 정욱씨가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고 하더니 선생님과 맺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경돈과 지연은 오년이나 동거를 하고 있는 커플이다. 내년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란다. 말하자면 한쪽은 ‘동고동락’을 다짐한 커플이고 또 한쪽은 ‘동거동락’을 하고 있는 커플이다. 할 말이 별로 없는 나는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정욱씨와 내가 옛날 얘기를 조금씩 한다. 정욱씨는 작가가 된 뒤 <약속, 거짓말 그리고 또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냈으나 잘 팔리지 않았고 일간스포츠에 <블루 수퍼마켓>이라는 영상소설을 연재하다 야하고 폭력적이라는 욕만 잔뜩 먹은 뒤 <천사는 가끔 지상에서 죽는다>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했으나 역시 화제가 되지 못했던 이력이 있다.

영화사에서 기획실장으로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지금도 가끔 영화 컬럼을 스포츠신문에 연재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글을 참 잘 쓰는 인간인데 도무지 잘 풀리지 않는 게 문제다. 성격 탓인가. 같이 놀던 박민규나 김탁환 등등이 지금 상종가를 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니 정욱씨가 일렉기타를 꺼낸다. 이 친구는 기타를 좋아해 친구들과 아마추어 밴드까지 결성했는데 막상 활동은 거의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타 연주를 배경음악 삼아 다들 흐뭇하게 술을 마신다. 거듭 사양하는 나에게 기타를 안겨 할 수 없이 나도 김광석의 노래를 한 곡 부른다. 다 부르고 나니 후회가 된다. 술이나 계속 마실 걸.

 

잠시 지루해진 틈을 메우려 자리를 방으로 옮긴 뒤 비틀즈의 옛 영화 <Let It Be>를 틀기로 한다. 정욱씨와 경돈은 인터넷 음악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라 모이기만 하면 음악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더구나 경돈은 몇 년 전에 음악까페를 하다 말아먹은 경력까지 있다.

나도 어렸을 적 AFKN에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봤던 그 영화를 이십여년 만에 다시 마주하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폴과 존, 조지, 링고가 연습실에서 즉흥연주를 하는 장면들이 마냥 부럽고 신기하다. 천재들이 놀멘 놀멘 작업을 하는 동안 옆에서 담배를 꼬나 물고 있는 오노 요코의 모습도 보인다.

 

드디어 애플레코드사 옥상에서의 전설적인 공연이 시작된다. 우리들은 <Get Back>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JoJo was a man who though…’로 시작되는 첫 소절을 신이 나서 따라 부르고 수화씨는 ‘뭐 이런 놈들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한쪽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비틀즈의 노래는 폴과 존이 거의 다 만들었지만 <Something>이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같이 귀에 착착 감기는 노래들은 의외로 조지의 곡이다.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정욱씨는 폴이나 존처럼 엄청난 천재들이 웬만한 곡은 끼워주려고 하지도 않았을 테니 조지도 이를 악물고 곡을 쓸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한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노력파 조지를 위해 또 한잔.

 

영화가 끝나고 나자 지연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목걸이 페넌트를 꺼낸다. 스왈롭스키 제품인데 정욱씨와 수화씨에겐 커플 세트로 큰 것, 작은 것을 하나씩 주고 내겐 큰 것 하나를 준다. 지연은 경돈과 함께 홍대앞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한 경험이 있다. 경돈도 자기가 만든 음악 CD를 우리에게 한 장씩 선물한다. 즐겨 듣던 음악을 모아 만든 귀한 음반이다.

 

술과 음식이 있고 음악과 영화가 있고 선물도 있다. 이건 정말 기대치 못했던 멋진 크리스마스 파티다. 어느덧 술이 좀 되었고 지연은 마루에서 담요를 덥고 자고 있다. 대낮부터 마셔서 그런지 꽤 취했는데도 시간은 일곱 시를 조금 넘겼을 뿐이다.

 

잘 먹고 잘 마셨어요. 또 놀러 올게요. 자고 가라는 정욱씨의 성화를 뒤로 한 채 버스를 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좋은 사람들을 둔 덕분에 올 크리스마스도 따뜻하게 지냈다. 그래서 사람에겐 친구가 필요한 모양이다.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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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일기 11

음주일기 2012. 2. 28. 23:50


모처럼 노는 토요일이다. 목요일에 정원, 혜원 자매, 그리고 한상과 함께 북악터널 근처에 있는 ‘절벽’에서 술을 마셨으므로 금요일엔 집으로 곧장 귀가했다. 오랜만에 놀토를 맞아 늦잠을 즐긴 뒤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낮술 한잔 걸치기에는 거의 완벽한 조건이다.

집에서 가까운 청계산에 한번 가보자고 한 게 벌써 몇 달 전이다. 한상이, 양진홍씨 등과 함께 갈 생각이었지만 게으른 양진홍씨가 등산에 관심을 보일 리가 없다. 우리가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전화해주면, 그때 버스를 타고 청계산 입구로 달려와서 술만 마시겠다고 한다. 놀라운 발상이다. 남들이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른다’라면 이 사나이는 ‘산이 거기 있는데 그냥 쳐다보면 되지 왜 올라가냐’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한상이가 차를 몰고 강남에 도착한다.(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당연히 집에서 밀린 가사일에 매진하거나 어린 딸을 돌봐야겠지만 오늘은 희진씨에게 ‘광고주 중에 등산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라는 씨도 안먹히는 거짓말을 하고 나왔단다) 어차피 술을 마실 생각이므로 차를 집 앞에 대고 버스를 탄다. 78-1번을 타고 30분쯤 가니 금방 청계산 입구다. 입구부터 도토리묵과 파전, 닭도리탕 등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어느 지역이든 유원지나 산에 가면 천편일률적으로 도토리묵을 판다. 도대체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이렇게 도토리묵에 목을 매게 된 것일까. 조금 올라가다 보니 ‘매봉’과 ‘옥녀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안내판을 보니까 옥녀봉이 매봉보다 조금 더 낮고 코스도 짧다. 당연히 옥녀봉을 택한다.

역시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많은 사람들은 꾸준히 산에 오르거나 도토리묵을 먹어왔다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날이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젊고 늙은 등산객들이 꽤 많다. 지나가는 아저씨들끼리 ‘어제하고 오늘은 또 다르네…’라고 하는 말을 우연히 엿듣고 둘 다 전율한다. 아니, 저 사람들은 여길 매일 올라온단 말야?

“우리가 청계산을 너무 우습게 봤나 봐...헉헉”

한상이가 숨을 몰아쉬며 자연에 경외심을 표한다. 나한테 좀 천천히 가라고 짜증도 낸다. 중간 정도 올라갔는데 벌써 숨이 차고 땀이 솟는다. 산은 올라갈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아직 옥녀는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발걸음이 이상해지길래 등산화를 내려다 보니 밑창이 거의 떨어져 개혓바닥처럼 너덜너덜 한다. 한 십년 전에 사서 약수터 다닐 때 신다가 처박아 두었던 트래킹화인데 드디어 오늘 수명이 다한 모양이다. 졸지에 절름발이처럼 절뚝거리며 산에 오른다. 한상이는 아까부터 발뒤꿈치가 아프다고 한다. 내가 중년에 나타나는 ‘통풍’ 아니냐고 놀렸더니 매우 불안해 하는 표정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애쓴 보람 끝에 정상에 도착한다. 옥녀봉 정상엔 먼저 올라온 사람들은 물론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줌마까지 있어 우리가 힘들게 올라왔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시원한 경치와 함께 경마장이 보이는 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너무나 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프레임을 침범하고 계셔서 결국 반대편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푯말 옆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얼른 내려가 막걸리나 마시자며 한상이가 양진홍씨에게 전화를 한다.

“아니, 거기까지 올라가다니…대단한데!”

수화기 너머로 양진홍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간 맞춰 서둘러 오라고 얘기하고 산을 내려가는 도중에 다른쪽 등산화마저 밑창이 떨어져 나간다. 내리막길이라 위험하므로 할 수 없이 잠깐 앉아 등산화 끈을 푼 뒤 발에 칭칭 감고 내려간다.

등산로 입구에 즐비한 술집 중 좀 넓은 곳으로 들어가 앉아 해물파전과 도토리묵, 막걸리 두통을 시킨다.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쐬며 운동을 했다는 자부심에 막걸리를 벌컥 벌컥 마신다. 파전과 도토리묵도 맛있다. 주변엔 등산조끼, 등산바지, 등산화에 배낭까지 지나치게 완벽하게 갖추고 온 등산객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닭도리탕이나 도토리묵을 먹고 있다. ‘히말라야도 아니고 겨우 청계산에 오면서 너무 갖춘 거 아니니?’ ‘저 배낭엔 뭐가 들었을까, 혹시 도토리묵 아냐?’ 등등의 하찮은 농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양진홍씨가 도착한다. 좀 이따가 승완씨도 청계산으로 오기로 했단다. 진홍씨와 승완씨는 이년 전에 이혼을 했다. 비록 같이 살다가 이혼은 했지만 지금도 서로 친구처럼 오누이처럼 지낸다. 이런 말 하긴 싫지만 약간은 ‘쿨’한 인간들이다. 승완씨와는 두사람이 신혼일 때부터 친하게 지내서 지금도 가끔 같이 술을 마신다.

일차로 막걸리 네통을 비우고 나니 배도 부르고 해서 잠깐 나가 쉬면서 이차를 가기로 했다.가게 밖으로 나오다 보니 입구에서 사람들이 비지를 공짜로 퍼간다. 한상이가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서 비닐봉지에 비지를 한 바가지 퍼 담는다. 진홍씨와 나도 번갈아 바가지로 퍼 담다가 내친 김에 승완씨 몫까지 또 한 바가지를 퍼 담는다. 세 놈이 비지 네 봉지를 들고 술집을 기웃거리고 다니려니 좀 쑥쓰럽다. 눈에 띄는 술집으로 들어가 승완씨가 좋아한다는 닭도리탕과 소주를 시킨다. 네이버카페 전여옥 반대 싸이트의 열혈회원인 진홍씨와 내가 전여옥을 열라 씹으며 탄핵정국 얘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승완씨가 도착한다.

한상이는 이혼 후에 승완씨를 처음 보는 거라 더 반가워한다. 서로의 생활 애기를 하고, 한상이의 딸 얘기를 하고, 돈 얘기, 집 애기를 하다가 섹스 얘기까지 나온다. 출산 이후에 육아에 바빠 아직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한상이 얘기에 모두들 안타까워 한다. 총각보다 섹스 빈도가 적어서야 되겠냐고 하며 나를 쳐다보지만, 괜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 싫은 난 노코멘트로 일관한다. 결혼 생활에서 섹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 부부 둘이 열심히 설파한다. 평소에 ‘그거’라도 열심히 잘 해줬으면 이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는 승완씨의 공격에 진홍씨가 약간 밀리는 형세다. 진홍씨는 ‘평소엔 너무 안하다가 어쩌다 한번 하면 엄청 잘해주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역시 벼락치기는 좋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다.

날이 어둑해지자 저마다의 비지 봉다리를 들고 버스를 탄다. 강남역에서 내려 우리집에서 한잔 더 하기로 한다. 소주 몇 병을 사들고 들어가 술상을 차린다. 승완씨가 냉장고의 묵은 김치를 꺼내 비지찌게를 끓였다. 맛이 되게 이상하지만, 그냥 참고 먹기로 한다. 얼마 전에 산 에릭 클랩튼의 언플러그드 뮤직DVD를 보며 술을 마신다. 진홍씨가 핑크 플로이드를 틀라고 성화였지만 그건 너무 시끄럽다고 판단, 코어스 언플러그드를 데크에 올린다. 진홍씨와 승완씨에게 둘이 그렇게 혼자 살고 있는니 다시 합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서로 손을 내저으며 싫다고 난리다. 아무튼 이상한 인간들이다. 너무 오랫동안 술을 마셔서 모두 지친다. 한상이가 부른 대리운전 기사가 도착함으로써 긴 술자리도 끝이 난다.

산행을 핑계로 오랜만에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내친 김에 길고 달콤한 잠을 자려 했으나, 역시 일요일 새벽부터 깨어나 신문지 휘날리는 강남역 주변을 돌아다니다 공사장 인부들이 먹는 음식점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그래도 일요일을 하루 종일 쉴 수 있다니, 좀 살만 하다.

(200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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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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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진중권 특집 기사 ‘陳의 전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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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혹시 누군가가 “진중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아니 왜 골치 아프게 그런 걸…”이라고 하거나 “진중권이 똑똑한 건 나도 알겠는데, 너무 독선적이고 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늘어져서 싫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난 지금 진중권이 싫으냐 좋으냐, 또는 옳으냐 그르냐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 사회가 진중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애티튜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중권이라 존재는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말도 안 되는 수준 낮은 얘기들을 끝도 없이 지껄여대는 강용석이나, 진중하고도 해맑은 얼굴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으시는 ‘이명박근혜’ 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겨레21 898호는 진중권 특집으로 무려 14페이지를 할애했다. 큰 제목은 ‘陳의 전쟁’. 그 동안 진보진영의 논객으로 또 한겨레21의 필진으로 오랫동안 활약해 온 진중권이기에 그들의 심회는 남다를 것이다. 팝아트로 처리한 표지 사진만 보더라도 그들이 갖고 있는 진중권에 대한 애증의 정도를 능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겨레21이 마냥 진중권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사 머릿글을 여는 이세형 기자의 글은 “진중권은 전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조선일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물론 자신과 견해가 다르거나 잘못 됐다고 판단하면 그게 ‘황빠’든’심빠’든 ‘나꼼수’든 가리지 않았던 그의 전력을 꼼꼼히 살피며 진중권의 운명적 고독에 대해 조명한다. 혹시 진중권은 근대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문제적 인간, 즉 진정한 ‘반영웅(Anti-hero)’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편으로 분류되던 강준만 김규항 등과의 불화를 통해 진중권의 싸움 코드를 살핀 고나무 기자는 1998년 진중권을 세상에 알린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비롯해 김규항과의 논쟁에 이르기까지 그의 무기가 상대방의 글을 그대로 풍자한 어법과 감정적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비꼼에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비꼼으로 인한 ‘싸가지 죄’다. 싸가지 하면 얼른 떠오르는 동지가 하나 있다. 바로 “저렇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라는 말을 들었던 유시민 대표다. 그러나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일단 정치인의 맷집은 일반인과는 매우 다르거니와 유시민은 이제 예전처럼 논쟁의 중심에 서지도 않는다. ‘싸가지 법 빼고 보자’라는 코너에서는 이 시대의 논객들인 이진경 이택광 심영섭 한윤영의 인터뷰를 통해 진중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진중권이 사용하는 단어들 때문에 그를 엘리트주의로 몰아붙이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는 이택광 교수의 말에 공감한다.

 

일각에서는 그에게 엘리트주의자의 혐의를 두지만, 동의 못한다. 트위터에서 종일 범부들과 치고받는 사람이 무슨 엘리트인가. 진중권을 엘리트주의자라 비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지식인을 혐오하고 토론하지 않으려는 것, 논쟁의 장 자체를 회피하려는 것. 이 자체가 권위주의다.

 

 

또한 같은 잡지에서 오랫동안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라는 코너를 연재해 옴으로써 ‘실생활에서의 개인적인 진중권’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정재승 교수가 “우리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라고 고백하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화적 이슈가 터졌을 때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 ‘심사숙고를 통한 복기’를 하는 학자들과는 달리) ‘곧바로’,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논객의 업무에 늘 열심이다. 또 자신이 판단하기에 옳지 않거나 미학적으로 촌스러우면, 그걸 굳이 ‘틀렸다, 촌스럽다’ 대놓고 말해야 속이 시원한 ‘모난 성격의 소유자’다. 영화평론가들을 대신해 [디 워]의 지지자들과 싸워주었듯, 황우석의 지지자들과 대신 싸워주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김남일 기자는 조선시대 숙종 때의 정치가 김춘택을 필두로 김기진 박영희 염상섭 이광수 양주동 등 192년대의 문인들과 1950년대의 황산덕 정비석의 ‘자유부인 논쟁’, 1070년대 이어령, 김수영의 순수∙참여 논쟁 등 ‘백과전사파 논객’들의 계보를 꿰보며 그 맨 끝자리에 진중권을 조심스럽게 자리매김 해본다. 사실 진중권이라고 왜 나꼼수나 김규항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트위터가 없던 시절에 쓴 김수영의 시와 짧은 산문들이 그 시대에 날리는 트윗이었다면, 반대로 언제나 싸움닭처럼 발톱을 세우고 전방위로 달려들어 좌충우돌 하는 진중권이야말로 경제 논리에 함몰되고 생각하기 싫어 집단지성에 판단을 맡겨버리려 드는 대한민국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용감한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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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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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도 읽었던 윤준호의 <젊음은 아이디어 택시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윤준호 선생은 지난 30년 간 깊고 정갈한 카피를 많이 써 온 분이다. 윤제림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광고에 대한 책이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세상의 모든 이치들도 광고 크리에이티브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난 이 책을 읽던 도중 오래 전 책장에 박아 두었던 핼 스테빈스의 [카피캡슐]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뭔가 행동을 유발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명제를 믿는다면,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이 책이 꽂혀있던 교보문고 서가에 때마침 발길이 멈춰 섰던 그 우연에 감사.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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