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레이먼드 카버나 윤대녕의 소설을 지금 열 다섯살 중학생이 읽는다고 생각해 보자. 뭐,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들이니 읽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건 읽는 것이 아니다. 뜻도 모르고 그냥 눈으로 스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카버의 짧은 소설들이 우리 인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행위라는 것을, 여행만 떠나면 자살 직전일 것 같은 여자들을 만나 카페에서 술을 마시거나 여관에서 같이 자는 주인공의 여정이 인생의 쓸쓸함과 신산함을 돌려 말하는 글이라는 것을 열 다섯살 나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인간은 일정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그런 존재다. '열 두살은 열 두살을 살고 열 여섯은 열 여섯을 살지’라는 김창완의 노래도 바로 그런 얘기일 테니까.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지금은맞고 그때는틀리다>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거의 없는데도 '미성년자 관람불가’가 된 것은 미성년이 봐서는 아무런 의미도 느낄 수 없고 재미도 없을 것이라는 감독의 판단과 배려 덕분이다.  에로나 포르노만 성인영화가 아니다.  진짜 성인영화란 이런 것이다. 어른들이 아니면 절대로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 그런 이데올로기. 


홍상수의 작품들을 즐겨 본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야기할 것이다. 또 그 얘기야? 그렇다 또 그 얘기다. 이번에도 영화감독이 주인공이고 그림을 그린다는 젊은 여자가 하나 나온다. 둘은 우연히 만나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술에 취해 서로 약점을 드러내고 속내를 탐색하다가 치사하거나 어이 없는 공방전이 몇 차례 지나가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런 지리멸렬한 이야기로 감독은 이번 로카르노 영화제 대상을 탔고 정재영은 남우주연상까지 탔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가능했을까. 


수원에 GV 및 특강이 있어서 내려 온 영화감독 함춘수는 주최측의 착오 때문에 하루 일찍 오는 바람에 행사 전날 숙소를 정해두고 하릴없이 화성행궁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후줄근한 청바지와 오리털 파카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기보다는 돈 없고 시간은 많은 소외된 지식인의 모습에 가깝다. 고궁의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는 툇마루에서 잠깐 졸던 춘수는 그곳에서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는 젊은 여자 희정을 목격한다. 뭐 하세요, 라고 거의 본능처럼 남자가 말을 붙이고 우유 마시는데요, 라고 여자가 대답을 하고. 어렵게 어렵게 말을 붙인 두 사람은 남자가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여자가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면서 급반전을 이룬다.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그녀가 그림을 그린다는 작업실로 가게 되고 거기서 그녀의 그림을 본 남자는 “희정 씨는 모르고 들어가서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하는 것 같아요”라는 애매모호로 칠갑을 한 칭찬들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해가 지자 자연스럽게 스시집으로 가서 소주를 마신다. 원래는 치킨집에 갈 계획이었는데 춘수가 즉흥적으로 스시집 앞에 멈추는 바람에 희정이 그집으로 들어가자고 한 것이다. 

단 둘이 술을 마시며 남녀가 하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남자는 계속 여자에게 작업을 걸고 여자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웃음을 흘리며 남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아유, 제가 무슨…”이라는 입에 발린 지식인의 겸손을 몸에 두른 듯한 정재영의 연기도 그렇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인생의 맛을 어느 정도 알게 된 김민희의 자연스러운 목소리와 연기도 일품이다.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음주 장면은 모두 실제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배우들은 진짜 술을 마시고 그 술에 취해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연기를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저 배우들은 술이 좀 약하네. 보통 홍상수 영화에는 테이블에 소주가 대여섯 병은 늘어서 있는데 아까 걔네들은 세 병밖에 없었잖아.”

그렇다. 세 병이든 다섯 병이든 중요한 건 배우들이 정말로 술을 마시며 연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대사를 정확하게 외우고 연기를 하냐 아니냐의 문제를 훌쩍 넘어서는 연출법이며 연기 테크닉이다. 배우들은 그날 아침에야 감독이 쓰기 시작하는 시나리오를 받다들고 연기를 한다. 물론 그 전에 감독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 영화가 어떤 컨셉과 얼개로 진행이 될 것이고 어떤 소재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건 알지만 1부와 2부가 어떻게 미세하게 다를 것이라는 것까지는 모르고 영화를 찍게 된다. 그건 감독도 닥쳐보기 전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천재의 자신감이 아니면 생각할 수도 없는 독단이요, 파격이다. 아무튼 이번엔 술이 약한 배우들이 술 영화를 찍느라고 고생을 좀 했겠다. 나중에 들었는데 정재영은 정말 스시집 장면을 찍고 나서 기절하듯 쓰러져 잤다고 한다. 


술을 마시던 두 사람은 희정이 깜빡 잊고 있었던 파티에 함께 가게 되고 거기서 최화정, 기주봉, 서영화 등을 만나게 되는데 이미 술이 많이 취했고 또 깐깐한 최화정에 의해 춘수가 일찍 결혼을 한 유부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에서 바람둥이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라는 것이 모두 밝혀진다. 화가 난 희정은 다른 방으로 가서 책상에 업드려 자고 춘수는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채 숙소로 돌아간다. 다음날 GV때 사회자이자 평론가인 유준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춘수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마구 그 평론가를 욕하게 되고 마침 엉뚱하게 자신의 시집을 들고 찾아온 서영화를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된다. 여기까지가 1부다.

2부는 똑같은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게 펼져친다. 이건 <오!수정>이나 <강원도의 힘>에서부터 계속 되던 '홍상수표' 전개방식이다. 그때는 정보석이 “포크예요”라고 하다가 “스푼이에요”라고 바뀐 것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 후로 시간대를 마구 뒤섞어본다든지(<자유의 언덕>) 시점이 바뀌면서 드러나는 코미적인 상황들을 보여준다든지(<우리 선희>) 하는 변주가 점점 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홍상수의 '반복과 차이’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전에는 그런 것을 통해 지식인의 위선, 남자들의 찌질함, 여자들의 빤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홍상수 영화가 재미 있지만 불편하다고 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홍상수는 더 여유로워지고 깊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맞고 그때는틀리다> 리뷰를 쓰려고 다시 살펴보니 제목의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왜 그런가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보니 홍상수 감독 왈 ‘제목이 너무 길어서’ 였다고 한다. 제목의 의미를 찾아 헤맨 사람들에겐 다소 김이 빠지는 설명일 수 있겠다. 그런데 난 그게 이 영화를 이해하는 작은 팁이 될 수도 있다 싶었다. 

홍상수 영화가 세상의 찌질함, 남자들의 유치함을 연료로 삼고 있는 코미디 영화라는 점은 데뷔적부터 지금까지 여전하지만 그 걍팍함은 많이 사라졌다. 거짓말을 일삼는 춘수도 2부에서는 더 솔직해지고 희정도 그런 춘수를 탓하기는커녕 나중에 술에 취한 춘수가 선배 언니들 앞에서 팬티까지 내리는 추태를 보였다는 얘기를 듣고도 오히려 귀엽게 여긴다. 거짓말을 하든 참말을 하든 애초부터 세상에 큰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이건 1부와 2부가 사뭇 다르게 진행되지만 큰 그림으로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2부에서 둘이 즉흥적으로 택시를 타고 강원도로 놀러가기로 의기투합하지만 잠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그 얘기가 흐지부지 되어 없었던 얘기처럼 취급되는 장면도 그렇다. 둘이 택시비로 십만 원을 내고 강원도까지 가든 안 가든 뭐 그리 달라질 일이 있겠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홍상수 영화는 절망도 희망도 없고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런데 그 흘러감이 인위적이지 않고(우연을 질료로 삼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의 쓴맛단맛을 아는 통찰력이 스며있기에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른한 술자리와 반복되는 헛소리들 속에서 우리들의 인생이 의외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 홍상수의 영화들은 흥행과 상관 없이 또 만들어질 것이고(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부터 전원사라는 영화사를 차려 자유롭게 영화를 찍고 있다)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도 또 다른 재미와 의미가 피어날 것이다. 또 어디서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이번엔 수원이었지만 다음엔 제천일 수도 있고 부산일 수도 있다. 그게 어디면 어떻겠는가. 어디나 사람은 살아가고 있고 이야기는 만들어지는데. 우리 곁에 홍상수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그는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발명하는 발명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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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ngenv 2015.09.30 0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조건 봐야겠네요. 홍상수 영화!

  2. 나리 2016.01.08 0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공감하며 잘 읽었어요.^^근데 홍상수 감독 영화에 유독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잖아요. 지금은...도 그렇고요. 그건 무슨 의미일까요? 혹시 아시나해서요 ㅋ

    • 망망디 2016.01.10 1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 감독의 취향인 거 같습니다. 저도 담배를 오래 피우다가 끊은지 오 년이 넘었는데 담배 피우는 사람들만의 공감대가 있어요. 그런데 홍상수 영화는 주로 앉아서 '노가리' 푸는 게 많잖아요. 그러니까 대화의 촉진제 같은 역할일 수도 있고 핑계일 수도 있고...그런 것 같습니다.

  3. 리냐 2017.01.10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보고 느낀것을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또 아무나 해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장마다 공감 가지 않는 구절이 없네요~^^;
    허락없이 페북으로 공유했습니다~^^;

 

 

 

책과 연애하는 여자 이야기 - 성수선의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아침에 일어나 무슨 책을 읽을까 서가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성수선의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를 집어 들었다. 반쯤 읽다가 잠깐 ‘급한’ 다른 책을 본다고 덮어 그대로 책꽂이에 꽂아놨던 책이었다. (그래도 ‘요즘 읽는 책’ 코너에 꽂았다)

 

성수선은 직장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열혈 독서가다. 그리고 작가다. 나와는 십여 년 전 온라인을 통해서 인연을 맺고 서로 안부를 전하는 친구 사이이며 이젠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페친’이 되었다. 얼마 전 그녀가 ‘북포럼’에 저자로 출연했을 땐 직접 방청객으로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얼굴을 마주하고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사실 오늘은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 책부터 집어 들게 되었다. 아니, 잠깐 꺼내 무심코 책장을 넘겼는데 성석제의 [순정]을 다룬 챕터가 눈에 띄는 바람에 계속 읽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 이 작가도 나처럼 [순정]을 가끔 읽는구나. 지난번에 읽을 땐 그 맛이 또 조금 다르던데…하면서.


[밑줄 긋는 여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는 그녀가 쓴 두 번째 독서 에세이다. 책 안에는 일반 직장인처럼 열심히 일을 하다가 퇴근 후면 확 달라지는 그녀의 일상이 들어있다. 그녀는 도대체 저녁마다 혼자 사는 오피스텔로 돌아가 뭘 할까?


책을 읽는다.

 

혼자인 그녀는 오피스텔에 들어가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예전에 소설가 이병주가 [행복어사전]이라는 책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지금 집에서 톨스토이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병주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한 것처럼 그녀는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가서 김영하를 만나고 장정일을 만난다. 레이먼드 카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소설가 제임스 쉘터나 김승옥, 그리고 시인 류근을 만나 심야식당의 손님들처럼 한바탕 영혼의 술판을 벌인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문체는 정직하다. 사실은 너무 바르고 정직해서 조금 더 풀어졌으면, 하고 아쉬워할 때도 있다. 소위 ‘범생이’의 느낌이 나는 것이다. 그건 대기업에 다니면서 늘 열심히 사는 그녀의 프로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저녁 8시면 문을 닫고 자기들끼리 노는 오피스텔 1층 라면집 아줌마 아저씨들을 부러워한다. 이건 이율배반이다. 마치 자기 별명을 ‘날건달’이라 지었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날건달은커녕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착실하게 광고회사 본부장님으로 잘 살고 있는 내 친구 류 모 씨처럼. 

 

늦게까지 하면 훨씬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면집은 저녁 8시가 되면 어김없이 영업을 종료했다.


며칠 전 팟캐스트로 ‘창비 라디오 책다방’을 듣다가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가 “알라딘서재 시절 알던 분 중에요, 성수선 씨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다음부터 저를 멀리하고…”라고 눙을 치는 바람에 한참 웃다가 성수선 씨에게 일러바친 적이 있다. 물론 성수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책을 좋아하는 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피곤하니까 한 잔 한다’는 말은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말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다”라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얼마나 훌륭한 술친구인지는 말 안 해도 다 알지 않겠는가. 마침 어제 페이스북에 [밑줄 긋는 여자]가 8쇄를 찍었다는 그녀의 자랑글이 올라왔다. 생각난 김에 다음 주쯤 술 한 잔 사달라고 졸라봐야겠다.

 

 

 

 






(* 예전에 제가 ‘음주일기’를 한창 쓰며 빈둥거리던 시절에 써놨던 [밑줄 긋는 여자] 독서일기도 있길래 찾아서 함께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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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좋은 점. 첫째, 공짜로 보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 둘째, 후덥지근한 길거리와 달리 냉방이 잘 돼 있어서 시원하다. 셋째, 누군가 전화를 해서 “지금 어디야?”라고 물으면 “응, 지금 서점에 있어.”라고 고상한 척 폼 잡으며 대답할 수 있다…

 

요즘은 서점 나들이에 재미를 붙여서 오후엔 대개 고속터미널에 있는 영풍문고에 가서 논다. 집에 있으면 자꾸 TV를 틀거나 멍하니 쓸데 없는 짓거리만 하다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서점에 가서 읽은 책들은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 그리고 성수선의 [밑줄 긋는 여자] 등이었다.

 

나는 성수선이란 작가를 ‘수선 님’이라 부른다. 몇 년 전 한겨레에 소개된 인물 기사를 보고 책꽂이 사이에서 웃고 있는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그녀의 홈피까지 찾아갔었는데, 거기에 있는 수 많은 독서일기와 에세이들을 읽느라 자주 들락거렸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 방명록에 가서 ‘독서일기를 쓰는 분께 음주일기를 쓰는 인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남긴 뒤 친하지는 않지만 간간히 온라인으로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밑줄 긋는 여자]는 수선 님이 [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 간다]에 이어 내놓은 두 번째 책이다. 이번 책은 굳이 구분을 하자면 독서 에세이에 속하겠지만 대개의 작가나 학자들처럼 심각하게 폼 잡고 서평을 쓰는 에세이가 아니라 자신의 일과 생활, 생각들을 풀어놓으면서 거기에 자연스럽게 책들이 스며드는 미셀러니에 가깝다.

 

이런 글쓰기의 현실감은 현재 해외영업 전선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저자의 남다른 이력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현재 삼성정밀화학 해외영업부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사흘이 멀다 하고 해외 영업을 다니는 한편 대학원에서 MBA과정까지 공부하는 저자가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쓴 글들이기에 각 편마다 에피소드들도 풍부하고 현실감이 넘친다.

 

 

도쿄에 출장을 가서는 [돈까스의 탄생]이란 책을 떠올리고 독일에서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원서를 찾아 다니는 도중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하는 식이다. 일본 출장을 가서인가 회사 상사에게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 [장미 도둑]을 선물하고 ‘너는 어쩌면 하는 짓도 이렇게 이쁘니?’라는 칭찬을 들었다는 에피소드는 참 재치가 있다. 그 상사의 방에는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열 권도 넘게 있더라는 것이다. 다들 성의없이 달착지근한 자기계발서 따위를 반복해서 선물할 때 삶의 애환과 아이러니가 배어있는 아사다 지로의 소설책을 선물한 부하 직원이 있었으니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과 그에 따른 상념마다 공지영, 박민규, 김영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하나씩 하나씩 거론된다. 콘돔은 물론 꽃다발까지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외국 출장지에서는 대학 신입생 시절 장미꽃다발을 신문지에 싸서 선물했던 동기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백만 번 산 고양이]를 읽으면서는 늘 자신의 곁에 있어줄 것이라 믿었던 이성 친구의 결혼 소식에 받은 충격을 얘기하며 평생 자기 짝을 만나지 못할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수선 님의 장점이자 단점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심플한 마인드다. 책을 내는 저자라면 좀 현학적으로 굴 수도 있고 쿨한 척 할 수도 있는데, 이 여자는 글 곳곳에 급하고 솔직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신은 외로움을 감추지 못하고 질질 흘리고 다닌다면서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시작하는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를 권하고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엉엉 울어버렸던 사실까지 거침없이 고백한다. [백지연의 SBS전망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패널로 고정출연을 했던 추억을 애기할 때도 앞으로 그런 프로그램이나 TV 출연까지 기회만 된다면 또 하고 싶다는 소망을 숨기지 않는다. 어쩌면 순진하게까지 느껴지는 이러한 면모가 작가로서의 ‘가오’는 덜 서게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참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친한 친구와 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힘들고 지친 일상들을 얘기하며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에 공감하고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를 읽은 사람들 중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다가올 월요일 생각에 우울해지는 친구가 또 하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동병상련의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우리는 모두 바쁘게 산다(나는 전혀 안 그렇지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그렇다. 수선 님도 바쁘게 사는 게 몸에 배어서 그런지 늘 바쁘고 늘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첫 책을 출간하고 나서 휴가로 괌에 갔을 때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리라’ 다짐했건만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거 같은 강박에’ 스노쿨링 강의에 하루 세 번씩 참가했다는 글을 읽고 깔깔 웃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가하게만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책상에 처박혀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저자가 딸에게 건낸 ‘작가가 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세상살이의 기쁨과 슬픔,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고는 인생의 비밀도 제대로 풀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앞으로도 열심히 회사를 다니면서 또 이런 책들을 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녀에게서 자극을 받고 자기계발서 대신 소설책을 집어들 것이고 일반인들도 글쓰기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껴서 ‘코카콜라 회장의 신년사’ 같은 파급력 높은 글을 쓰게 될 것 아닌가.

 

 

지금 서점에 가면 카를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보다 성수선의 [밑줄 긋는 여자]를 찾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이번 휴가를 떠나기 전에 들었는데 이미 2쇄를 찍었다고 한다. 그녀의 책을 펼치면 목차 전 페이지에 ‘No Rain, No Rainbow”라는 글이 써 있다.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꾸만 뭔가 저지르는 여자, 그렇지만 우리의 모습과 참으로 비슷한 저자. 그녀의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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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로 한 이가 30분 정도 늦는다고 한다. 이 30분은 선물이다. 그 선물을 가장 아름답게 받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알고 있다. 아름다운 단편소설 하나를 읽는 일.”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윤대녕의 단편집 [대설주의보] 뒤쪽에 쓴 글이다. 그런데 정말 단편소설 한 편 읽는데 드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삼십 분? 한 시간? 신형철의 말대로라면 30분이면 족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 세상이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어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내 입장이 돼보시오](Put yourself in my shoes)를 읽었다. 아니, 읽기 시작했다. A4지를 가져다가 메모를 하면서 읽기는 했지만(등장인물에 대한 프로필을 메모하는 버릇이 있다) 한 시간 남짓이면 끝날 분량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소설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우리는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다. 만약 백수가 되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 거야!”, “출근을 안 하게 되면 그때부터 하루 종일 미드나 책을 보지 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런데 그들이 정작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현대인은 도대체 심심할 틈이 없다.

 

아침에 현관에서 집어온 신문을 마음먹고 정독해도 삼사십 분은 그냥 사라진다. 뭘 좀 읽거나 쓰고 있으면 금방 밥 먹을 시간이 돌아온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대충 훓어보고 내 글이나 사진에 댓글만 성의있게 달아도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시간을 빼앗길까봐 트위터는 이미 접은지 오래다. 그래도 호시탐탐 택배원나 외판원들이 초인종을 누르기 일쑤다. 잊었던 후배가 전화를 걸어 반갑지 않은 안부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감방에 갇히거나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이상은 늘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하고 뭔가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깊은 심심함’의 중요성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 한다. 현대인은 내적 외적 모티베이션에 의해 늘 뭔가에 쫓기게 되고 그럼으로써 만성적 피로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현대인들이 오래도록 누려보지 못한 깊은 심심함을 느끼는 일이다. 깊은 심심함은 뭔가 창조적인 일을 위한 과정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여지친구와 함께 뭔가 기획을 하고 글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기획안에 손도 대지 못하고 매일매일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도대체 하루 종일 혼자 놀고 있어도 심심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보다 못한 여자친구가 왜 글을 쓰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올 때면 난 늘 이렇게 대답한다. “응, 나 오늘 바빴어.”

 

 

어서 내 몸 안에 깊은 심심함이 흘러 넘치기를 바란다. 아마 곧 그렇게 될 것이다…심심해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이게 무슨 한심한 역설이란 말인가. 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들 마음 독하게 먹고 바쁘게 움직이자. 남들보다 먼저 깊은 심심함을 쟁취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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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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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류지원 2013.04.11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심함에 대한 글이지만 글은 심심하지 않고 재미나네요.
    여자친구가 없으면 조금 심심하실지도 ^^ 그래서 전 매우 심심합니다. ㅠ

  2. 망망디 2013.04.11 1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감사합니다. 전 오히려 좀 더 심심하게 지내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여자친구가 곧 생기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