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윈드 리버]를 감상함으로써 헐리우드에서 떠오르는 배우 출신의 각본가 테일러 쉐리던의 국경 삼부작을 모두 본 셈이다.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와 [로스트 인 더스트] 그리고 [윈드 리버]까지 탁월한 설정과 각본을 보여준 테일러 쉐리던. 오늘 본 영화도 참 좋다. 잔재주 없이 묵직하게 이어지는 진솔한 호흡과 배우들의 무심한 듯한 연기가 조화를 이룬다. 

셋 다 좋은데 굳이 베스트를 꼽으라고 하면 [로스트 인 더스트]다. 농장을 지키기 위해 소량의 은행강도 행각을 연이어 벌이는 형제의 아이디어가 좋았고 황량한 텍사스였지만 라스트 씬이 세 영화 중 그나마 산뜻했다. 피곤해서 나중에 볼까 하다가 꾹 참고 끝까지 봤다. [체실비치에서] 이후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는데 다 보고 나니 뿌듯하다. 캔맥주나 한 잔 마시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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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에 예약해 놓은 조조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를 보러 토요일 아침에 CGV용산아이파크몰에 갔다. 밤늦게 찾아온 후배와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으므로 컨디션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화 볼 시간을 내기 힘드니 숙취에 시달리거나 아침을 굶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매장이 워낙 넓어서 여긴 올 때마다 길을 헤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쇼핑몰 사이를 헤매다 겨우 극장을 찾아내 들어가니 내 자리가 있는 열엔 60대 할머니 여섯분이 쫘악 앉아계셨다. 내가 나의 좌석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한 할머니가 "여기 맞아요, 자리"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어설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다 일행이세요? 그럼 제가 저쪽에 앉을게요, 라고 줄 끝을 가리키자 다들 그게 좋을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쳤다. 자리야 얼마든지 양보해 줄 수 있지만 이 분들은 도대체 이 영화가 어떤 건지는 알고 오신건가,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심각하고 잔인하게 사람 많이 죽어나가는 영화인데. 오래 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를 볼 때 만났던 할머니 두 분이 떠올랐다. 영화 초반 얼치기 킬러가 이발소에서 면도칼로 손님의 목을 그어 살해하는 씬에서 걱정을 했었으나 중반쯤 보니 영화 도중 여유있게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하시던 그 할머니. 

아무튼 영화가 시작되었다. 전편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기대감이 컸다. 여전히 묵직하고 사실적인 진행, 강렬한 총격씬, 배우들의 존재감 등 어떤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영화였다. 특히 투탑인 베니치오 델 토로와 조슈 브롤린의 연기와 카리스마는 끝장 그 자체다. 시나리오도 역시 좋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확인해보니 1편 '암살자들의 도시'도 썼던 요즘 정말 잘 나가는 각본가 테일러 셰리던의 작품이었다. 그는 작년 개봉했던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도 썼다고 한다. 배우 출신인데 이렇게 잘 쓰다니 정말 놀랍다. 한 십 년 전 날고 기던 배우 출신 각본가 아론 소킨이 생각났다.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 등 미니시리즈 각본을 많이 썼던 그가 아주 수다스러운 편이었다면 테일러 셰리던은 꼭 필요한 대사만 하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며서 구조를 잘 짜는 작가다. 이번엔 전작에서 신참 여성 요원 케이트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엘밀리 블런트가 빠져서 너무 아쉬웠지만 그건 1편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지 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너무 큰 욕심이라 할 수도 있겠다.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도 뚝심있게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간다. 그러나 전편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총격전 등 액션은 한층 강화되었으니 눈호강, 귀호강이야 더할나위 없이 했지만 절절했던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1편에서처럼 새롭지 않으니 너무 매끈하고 정석적으로 흘러간다는 일말의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맨 마지막에 죽을 뻔하다가 살아 돌아온 베니치오 델 토로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던 어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이 닫히는 장면 이후 뿌듯한 마음으로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다가 옆좌석을 살펴보니 할머니들은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오늘 그 분들은 이 영화에 대해 뭐라 영화평을 남기셨을까. 3편의 제작이 확정되었고 그 작품에선 드니 빌뇌브 감독이 다시 복귀할지도 모르다던데 그 때도 극장에서 나와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까. 모두 젊고 건강한 편이셔서 충분히 시리즈 세 번째 작품도 보러 오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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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와 존 웨인이 만들어 놓은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신화적 구라들을 1960년대에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귀엽게 비틀었다면 2016년 데이빗 맥킨지와 크리스 파인은 서부라는 세트에 현대의 쓸쓸한 비극을 세련되게 옮겨 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금요일 밤인데 남편의 속이 고장나는 바람에 술도 마시지 못해 심기가 불편해진 아내의 눈치를 보다가 IP-TV에서 이 영화를 찾아냈다. 

황량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소하고 영리한 은행강도 행각과 침착하게 그들을 쫓는 늙은 보안관 콤비. 각본도 연출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끝내준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무심코 던지는데 대사 타이밍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마지막 농장 신에서 크리스 파인과 제프 브리지스가 주고 받는 어른스러운 대사와 표정들은 특히 멋지다. 1,500원밖에 안 하길래 안심하고 아내의 허락을 구하고 틀었는데 우연히 좋은 영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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