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운영위원회 중계를 지켜보다가 너무 짜증이 나서 TV를 끄고 올해 읽었던 책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페이스북과 티스토리 홈페이지 '편성준의 생각노트'의 기록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인터넷 서점 등을 뒤지면서 생각나는 대로 몇 권 끄집어내 보았습니다. 

가시나무 그늘 - 이승우
살야야겠다 - 김탁환
이토록 고고한 연예 - 김탁환
뜨거운 피 - 김언수
잽 - 김언수 
살아있는 도서관 - 김이경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여름, 스피드 - 김봉곤
경애의 마음 - 김금희 
흰 - 한강
바깥은 여름 - 김애란
관내분실 - 김초엽
푸르른 틈새 - 권여선 

,국내 소설은 김탁환의 역작 [살야야겠다]와 [이토록 고고한 연예] 두 권과 김언수의 느와르 소설 [뜨거운 피]가 읽는 맛이 남달랐고 김애란과 김봉곤의 소설도 참 좋았습니다. 제일 최근에 읽은 게 어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이었는데 글을 참 잘 쓰고 마음도 따뜻한 작가를 만나 기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읽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도 좋았습니다. 

미국의 목가 - 필립 로스
사실들(어느 소설가의 자서전) - 필립 로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 아흐메드 사다위
아르카디아 - 로런 그로프
저지대 - 줌파 라히리
포르투갈의 높은 산 - 얀 마텔  
밝고 깨끗한 곳 - 헤밍웨이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 가즈오 이시구로  
달콤한 노래 - 레일라 슬리마니
염소의 추제 1, 2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카야

외국 소설은 단연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가 압권이었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읽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도 엄청난 작품이었구요.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역시 한 권 한 권 다 좋습니다. [녹턴]을 사놓고 바빠서 읽지 못했는데 집 안 책꽂이 어딘가 깊이 박혀있는지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은 마치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미니시리즈 같은 작품입니다. 번역가인 조영학 선생이 우리 부부에게 보내주셨는데 재미있게 읽어놓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리뷰를 못 써서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내년에라도 시간을 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밝고 깨끗한 곳]은 전남 나주에 갔다가 산 책인데 같이 실린 <킬리만자로의 눈> 등 다른 작품들도 참 좋았습니다. 저는 특히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가 은근히 야하고 좋더군요. 아,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와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필립 로스와 함께 두 작가 작품만 꼽으라고 하면 무라타 사카야의 [편의점 인간]을 꼽고 싶습니다. 그만큼 울림이 있었던 특이하고 멋진 작품이었으니까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 오은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 김민정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 김민정
지금 장미를 따라 - 문정희 

시를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신철규의 시집은 참 좋더군요. 발랄하고 크리에이티브한 김민정의 시도 언제나 좋구요. 문정희 시인의 앤쏠로지 [지금 장미를 따라]를 우연히 샀는데 이건 그야말로 보물창고입니다. 좋은 시가 정말 많아요. 

사소한 부탁 - 황현산
당신이 옳다 - 정혜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잘돼가? 무엇인든 - 이경미
박완서의 말 - 박완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인문학 - 이재은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 유창선 
틈만 나면 딴생각 - 정철  
가만히 혼자 웃고싶은 오후 - 장석주
외롭지만 힘껏 인생을 건너자 하루키 월드 - 장석주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주오 - 장석주/박연준  
베를린 일기 - 최민석 
강원국의 글쓰기 - 강원국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허수경
열두 발자국 - 정재승 
아! 병호 - 최우근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 정영목 
결국, 컴셉 - 김동욱 
마케터의 일 - 장인성 
기획자의 습관 -  최장순 
생각하고 기획하고 일하라 - 홍순성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이반 일리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는 에세이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올해는 에세이(범위가 좀 광범위하긴 하지만)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우선 황현산이라는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선생의 책은 늘 곁에 두고 읽을 가치가 있다고 단언합니다. 기다렸던 신형철의 새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고 전율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책입니다. 권여선이나 이경미의 에세이는 읽는 내내 즐거움을 느끼는 책입니다.  허수경 시인의 유작 에세이는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단아한 글을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시인이 쓰는 고급스러운 에세이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장석주 시인의 에세이를 세 권이나 샀네요. 그 중에서도 [가만히 혼자 웃고싶은 오후]는 저에겐 마음이 심란해질 때마다 꺼내 읽는 보약 같은 책입니다. 박완서 선생의 인터뷰집은 제주에 있는 인디 책방 '디어 마이 블루'에서 산 책인데 찬찬히 읽을수록 좋은 책입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글쓰기 책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최민석의 [베를린 일기]는 허허실실 투덜대는 소설가의 에세이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습니다.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은 우리가 살면서 알아야 할 본질적인 것들을 쉽게 이끌어주는 강연집입니다. 베스트셀러였죠. [아, 병호]는 제 고동학교 동창이자 극작가인 최우근의 책인데 저희들 어렸을 때의 추억들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예쁜 어른용 동화입니다. 정영목 선생의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은 번역가가 쓴 에세이를 읽고 싶어서 집어든 책인데 필립 로스에 대한 글이 실려 있어서 쾌재를 부른 작품이었습니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시대를 앞서간 아나키스트의 다소 과격한 주장이 흥미롭게 실린 책인데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의 추천으로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가 보내주셔서 꿀 받아먹듯 읽은 책입니다. 

오늘 충동적으로 꼽아본 것이라 분명히 빼먹은 책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2018년 마지막 날, 리스트를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년에도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좋은 책과 영화 드라마 등을 만나는 내년이 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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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망설였다. 올 연말 최고의 기대작 [마약왕]은 개봉하자마자 평론가들의 악평에 시달리더니 CGV어플을 열어보니 어느새 예매 9위로 떨어져 있었다. 평론가들과 관객의 악평이 일치할 경우 영화의 질이 어땠는지는 그동안 경험해봐서 알지 않는가. 그러나 내게는 송강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어떤 영화에서든 거의 본능적으로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연기의 신 송강호. 영화가 아무리 후졌더라도 송강호는 살아남았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나를 혼자 토요일 오후에 대학로에 있는 극장으로 향하게 했다. 

토요일 오후 5시 15분 영화인데도 극장은 빈 좌석이 많았다. 관객들의 수준도 별로였다. 내 뒤에 앉은 남자 새끼는 자기 여자친구에게 계속 영화와 역사와 사회에 대한 되먹지 않은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었고 여자는 영화를 보는 도중에 전화를 받아 무려 15초 이상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는 뻔뻔함을 보여줬으니까. 그러나 의의로(?) 영화가 좋았다. 우려와 달리 설정이나 만듦새가 나쁘지 않았고 송강호는 물론 김대명, 조우진, 조정석 등 출연진의 연기가 고르게 다 좋았다. 우민호 감독 때문에 연기력을 인정 받아 지금은 한국영화에서 안 나오는 작품이 거의 없어 '제 2의 이경영'으로 불린다는 조우진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더 킹]에서 어설픈 경상도 사투리 검사 역을 맡았던 김소진의 연기조차 여기서는 훌륭했다. 약간 안쓰러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배두나도 대체로 예쁘게 나왔고 '불구경보다 재밌다는 미친년 구경 다 하셨으면 이제 그만 집에 가세요!"라는 대사를 칠 때는 카리스마도 있었다. 

139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마약, 폭력, 권력 등 심각한 소재, 1970년대 초반이라는 생경한 시대적 배경 등이 젊은 관객들의 발걸음을 막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흥행을 위해 차라리 조우진이 죽던 사우나 씬을 조금 더 잔인하고 자극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마지막 송강호가 자신의 집에서 총질을 하며 경찰과 대처하는 씬은 알 파치노의 열연이 빛났던 브라이언 드 팔머의 [스카페이스]에서 따온 게 명백한데, 송강호가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볼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실 우민호 감독은 전작 [내부자들]에서도 마틴 스콜세지나 프랜시스 포드 코플라 등의 영화를 베끼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선이 굵은 작품은 그 나름의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소재에 머물지 않고 그 소재를 통해 어떤 '맥락'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작가'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하고 80년대가 시작되는 시대적 배경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도 단순히 마약 영화가 아니라 욕망과 권력과 편법으로 얼룩진 우리의 현대사를 조명하는 필름으로 그 의미망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몰론 마지막 장면에 화면을 가득 메우는 송강호 얼굴 위로 '15년 형을 선고받은 그 때문에 그때부터 검찰에 마약반이 신설되었다'라는 조정석의 나레이션이 흐를 때는 파자마를 입고 현관문 밖으로 조간신문을 주우러 나오던 레이 리오타의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뭐 어떠랴. 이 작품은 그런 사소한 흠집보다는 선 굵고 거대한 그림을 그리려는 의도가 더 돋보이는 역작인데. 흥행 성적과는 상관없이 영화적으로도 한 번은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세간의 평 때문에 놓치고 후회하지 말자.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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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8년 12월 말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독하다 토요일' 2기 첫 번째 모임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1층에 있는 이스트빌리지에서 열렸습니다. 메르스 사태를 다룬 김탁환의 [살아야겠다]를 읽고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실제 있었던 비극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다룬 사회파 소설이라 많은 회원들이 분노 때문에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는 소감을 털어놓을 정도였습니다. 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게으름을 피우느라, 또 개인사가 너무 버러이어티하다 보니 후기를 쓸 시간을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짜할 바를 모르고 앉아있다 보니 시간은 흘러흘러 두 번째 모임이 다가오더군요. 결국 첫 번째 모임 후기는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쨌든 [살아야겠다]는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2018년 12월 8일 오후 2시에 '독하다 토요일' 2기 두 번째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엔 서소문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서 일곱 명이 모여 이승우의 [가시나무 그늘]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희 동네에 '파란대문집'이라는 공간이 생겨서 우연히 들렀는데 거기서 그날 만난 사람들 중 한 분이 청춘여가연구소 소장인 정은빈 대표였던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서소문 피어선 빌딩에 있는 이 공간을 독하다 토요일의 새 아지트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서동현 씨의 설명에 의하면 이 건물은 1971년 미국인 선교사가 지은 아파트였다고 합니다. 당시 최고급 건물이었고 차가 건물을 통과해 현관 앞까지 들어와서 입주민이 비를 맞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독특한 구조라 입구를 찾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정말 건물로 들어가는 메인 출입구는 필로피를 통과해야 그 모습을 드러내더군요. 예전엔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개인 사무실이나 NGO들의 메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11층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 들어서니 널찍한 공간과 커다란 창문이 눈에 띄는 훌륭한 공간이었는데 특히 창밖으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커피 머신이 제공하는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넓다란 공간 아무 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읽은 책 [가시나무 그늘]은 제겐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사랑의 생애]에 이어 이승우 작가 작품으로는 네 번째 소설이었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예전에 여행 가면서 헌책으로 사서 한 번 읽었던(읽다가 그치긴 했지만)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성북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처리한 책 속에 들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만큼 다시 읽기는 힘든 책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자고 추천한 사람이 또 저란 걸 생각하면 저는 참 일관성 없는 인사인 것 같습니다. 

제가 헌책을 사서 읽었듯이 이 책은 절판이 되어 청소년판 아니고는 책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덕분에 회원들이 삽화가 들어 있는 청소년판을 저마다 들고 나타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한 분은 책을 구할 수가 없어 남산도서관에서 빌려왔다고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작가의 심각한 문체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의 [금각사]나 [인간실격] 같은 작품들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일본 작가들이 인간 본연의 부조리에 천착한다면 이승우는 시대상이 배경으로 깔린다는 게 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지 오웰의 [1984]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도 연상되었다고 했습니다. [가시나무 그늘]이 훨씬 뒤에 나왔으니 아마도 작가가 이 책들을 다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개연성 있는 추측도 전해주습니다. 작가가 신학대학을 나와 사유가 깊을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서른두 살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은 놀랍다는 평도 내놓았습니다. 진행이 세련되었고 짜임새도 좋아서 지금 읽어도 전혀 올드하지 않다는 의견에 저도 찬성을 표했습니다. 

개, 가시나무, 몰록으로 이어지는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들에 대해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불친절하게 자세를 취하는 작가의 설명도 적절해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김하늬 씨가 다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의 편지를 인용한 것 등은 존 '중2병'스럽게 느껴진다고도 했고 저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만 생각하면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의 개]도 떠오른다는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청소년판으로 책을 대하니 뭔가 정답을 찾아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기더라고 하며 웃었습니다. 청소년, 하면 뭔가 시험이 떠오르는데 이 책을 가지고 시험 문제를 내면 내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들 것 같다는 김하늬 씨의 농담에 오히려 정답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자기는 청소년이라는 단어 때문에 책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환한 느낌이라며 지금까지 독하다 토요일에서 다룬 책 중 가장 흥미로운 독서였다는 말도 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힘, 권력, 집단과 그에 비해 도드라지는 개인의 나약함 등을 생각하면 마음이 굉장히 아프고 씁쓸했고 마지막 희규의 아버지를 암시하는 썬글라스의 사내 대목에서는 이 소설이 격동의 시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지금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ㅇ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런 저런 사건과 현상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윤창호법'에 대한 얘기까지 주제가 뻗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죽기 전에 진실과 정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거대한 사건에 그냥 엮여버리는 것을 보면서 하이어라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슬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읽었다면 과연 이런 걸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자 고등학교 선생님인 임기홍 씨는 그 나이엔 어떤 문제든 이해하는 애들과 못하는 애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고 김하늬 씨가 아마 [어린 왕자]처럼 연령대별로 다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사람들이 명화라고 하는 그림들을 책이나 다른 매체로 보았을 때 그게 뭐가 좋은데? 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진품과 마주쳤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을 이 소설 읽으면서도 비슷하게 느꼈다는 다소 의외의 고백을 했습니다. 이승우가 좋은 소설가라고 불리는 이유를 이번 책에서 깊게 느꼈다는 것이죠.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희규가 불쌍하다고 아우성을 쳤는데, 그 와중에 서동현 씨는 주문한 책을 어제 택배로 받는 바람에 결국 책을 읽지 못하고 왔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그는 독하다 토요일에서 읽은 책 중 제일 재미 있었던 건 [뜨거운 피]였다고 했습니다. 그 책에 '진실은 구리로 된 훈장'이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는데 그건 어떤 가치든 무의미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안전해지고 싶은 욕구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분리불안'은 종교 뿐 아니라 유행하는 롱패딩, 유명한 맛집, 유행어, 실시간 검색어 등등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존재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사는 것 자체가 점점 더 피곤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책의 서문이 매우 좋았다고 했습니다. 작가가 인용한 에리히 프롬의 글도 인상 깊었구요.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모두 지배당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음을 깨닫게 되어 슬프고 그런 인물의 대표격으로 등장하는 희규가 애처로우면서도 또 한긋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개에 의한 죽음이라는 장치- 명회가 이상해지자 죄책감을 느낀 희규도 그를 모방해 똑같은 방법으로 몸을 던지는 - 가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젊은 나이에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이런 기이한 우정의 구조를 혜진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소감도 밝혔습니다. 

임재섭 씨는 단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다룬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군대 시절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내가 군대니까 이렇게 구는 거지 밖에서 만났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식으로 말하는 것인데 결국 그런 말이나 표현들이 집단의 억업된 구조가 만들어내는 부조리가 아닌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재섭 씨가 군대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불행했던 우리의 현대사가 필름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혜진은 희규의 수첩을 들고 다녔을까, 하는 김하늬 씨의 질문부터 시작해 희규는 왜 찌질하게 혜진에게 '사랑합니까?'라고 두 번이나 물어봤는지에 대한 해답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졌습니다. 남자는 안 변 하는 것 같다,  젊은 베르테르 때부터 그랬다, 라고 말하는 김하늬 씨. 그냥 내 옆에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남자의 속성인 것 같다, 라고 말하는 임기홍 씨. 후진 소설 같았으면 둘이 여관에서 가서 잤을 텐데 안 그래서 다행이었다, 라고 말하는 윤혜자 씨. 임기홍 씨가 모든 남자의 실존은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나?'라는 주제에서 떠나지 못한다고 말해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 밖에도 희규를 괴롭히던 40대 사장을 여성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한 토론도 있었고 주인공의 캐릭터 변화 때문에 청소년 문학으로 선정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삽화에 대한 소감들이었는데 모든 삽화에 등장 인물들의 표정이 없이 텅 비어 있는 게 책의 주제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라 좋았다는 중평이었습니다. 깨달을 만하면 끝나는 마지막에 대해서는 좋았다, 아쉬웠다,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좀 긴 단편소설 같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는 긍정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관념적인 면이 많으면서도 작가가 잘 짜여진 블록처럼 소설적 장치들을 많이 마련해 놔서 읽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피]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만약 이 소설을 영화할 경우 주인공 희수 역으로 누가 가장 잘 어울리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영화배우 박신양, 이병헌, 박휘순 등이 물망에 올랐다가 아이고, 다 부질없다, 라는 누군가의 일갈에 모임을 끝내고 이차 장소인  광화문 '안성또순이'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놀다가 헤어졌습니다. 다음 모임인 2019년 1월 12일엔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을 읽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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