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던 아내가 전해준 전미옥 대표의 [스토리 라이팅]을 오며가며 71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요즘은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스토리텔링'에 대한 얘기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스토리텔링 또는 스토리 라이팅이 뭐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차별화된 비즈니스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에 막연한 두려움이나 답답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스토리가 있는 글로 엮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 자신의 글에 맞는 스토리를 찾는 법, 남의 스토리를 내 글로 끌어오는 법, 메모하는 법, 풍부하게 예시를 드는 법 등 우리가 일하면서 또는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글쓰기의 방법론들을 다채롭게 다루고 있습니다.전미옥 대표가 워낙 강의도 잘 하고 글도 쉽게 쓰는 분이라 그런지 책이 참 잘 읽히네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으려면 자기 스스로 즐겁게 살아야 한다. 자기 일상이 즐겁지 않은데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 없다. 자신을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는 사람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재미있게 말하는 재능이 없다거나 잘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은근하게 나에 대한 공격을 할 때, 버럭 화부터 내지 않을 여유와 유연함이 있는가?’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도 이렇게 실용적인 면을 넘어 본질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두고두고 수첩 펼치듯 자주 꺼내 읽으면 더 좋은 책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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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시대] 필립 델브스 브러턴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 김영미

[현기증] 프랑크 틸리에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 

[따뜻한 밥상: 음식에 담긴 사랑 정성 나눔의 가치] 이순자 

[킹: 거리의 이야기] 존 버거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오늘 아침 배달된 경향신문 북섹션을 읽다가 읽고싶은 책들을 좀 메모해 봤습니다. 



[장사의 시대]와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 는 어크로스 편집자 김류미의 칼럼에서 본 책인데 장사나 기획에 대한 내용을 넘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통찰들이 들어있는 책인 거 같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당장 하고 있는 일들에도 필요할듯 하구요. 


프랑크 틸리에의 [현기증]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는 스릴러 소설인데 어느날 자기집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납치되어 동굴에 묶여있게 된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김여란 기자의 소개에 의하면 ‘읽는동안 마치 4D 영화관에 앉아 오감으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가슴을 옥죄는 압박감이 지속된다’는군요.  


강신주의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는 1228년에 발간된 무문 스님의 화두모음집 [무문관]을 쉽게 풀어쓴 책이라고 합니다. ‘화두’란 무엇인가라는 스스로에게로의 질문에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결코 해결할 길이 없는 딜레마나 역설로 가득차 있는 물음”이라고 대답하는 철학자 강신주. 무문 스님부터 시작해 싯타르타, 니체, 디오게네스, 키에르케고르를 종횡무진할 그의 현란한 사상적 질주가 기대됩니다. ‘문이 없는 관문(The Gateless Gate)’이라는 책 제목부터가 모순으로 가득찬 멋진 화두입니다.  


[따뜻한 밥상: 음식에 담긴 사랑 정성 나눔의 가치]는 음식에 대한 온갖 포르노적 이미지와 ‘먹방’이 판치는 현 세태에 ‘식도락이란 음식의 맛만이 아닌 어떤 분위기에서 누구와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느냐의 총체적 기쁨을 뜻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말해주는 요리 에세이집이라고 합니다. 요리와 음식을 통해 어떤 것이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은데, 안타깝게 비매품이군요. 


[킹: 거리의 이야기]는 다큐 작가이자 미술 사회비평가 사진 이론가인 존 버거의 책인데, 개의 눈에 비친 노숙인 10 명의 하루를 그린 작품이라고 하네요.  지난 4월 혼자 제주도로 여행을 갔을 때 배낭에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을 넣어갔었습니다. 그의 책은 천천히 읽을수록 좋습니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는 15년 전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하이쿠 모음집으로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하이쿠를 소개했던 류시화 시인이 일본의 대표적 하이쿠 시인들 130명의 작품 1370편을 모은 책이랍니다. 무려 2만8천 원이나 하지만 한 권 사야겠다는 욕망이 책값을 흐릿하게 만드는군요. 



아, 그리고 소설가 백가흠이 연재하고 있는 [백형제의 문인보] 이번주 글은 윤대녕 편인데 읽다보니 며칠 전에 나온 그의 에세이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책 뒷표지에 있는 추천사를 그대로 옯겼군요. 뭐, 이 작가에 대해 이미 써둔 글이라 그랬겠지만 책에서 먼저 읽은 글을 신문으로 다시 보니 기분이 좀 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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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는 은행원으로 일하던 시절 횡령을 해서 감방살이를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돈에 대해선 매우 냉소적이다. 아마도 이 사람은 감방 가서 책을 많이 읽는 바람에 작가가 된 모양이다. 나도 감방에 가서 책을 열심히 읽고 싶다. 그럼 일단 나도 횡령을 해야 하나? 먼저 은행부터 들어가야 하나...? 

오 헨리의 단편집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재물의 신과 사랑의 신]을 다시 읽는다. 언제 읽어도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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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국문학 강의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다가 요즘 문창과 학생들의 꿈이 대부분 동화작가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젊은 애들이 너도나도 갑자기 동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나? 그럴 리가 없다. 졸업 후 순수 소설가나 시인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 그나마 잘 팔린다는 동화 쪽으로 발길을 들여 놓겠다는 속셈이다.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누가 동화작가는 먹고 살 만하다는 환상을 심어 주었단 말인가?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서점에서 [Why?] 같은 아동 학습물이 꾸준히 팔린다고 해서 동화를 쓰는 일이 만만할 리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장르가 아니라 내용이다. 코난 도일이 ‘먹히는’ 장르인 추리물을 선택해서 쓰는 바람에 지금도 셜록 홈즈가 TV시리즈 등으로 계속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단 말인가? 아니다. 내용과 캐릭터가 훌륭해서다. 스티븐 킹의 수많은 소설들은 원래 대중 소설이라 영화계와 방송국에서 앞다투어 작품 계약을 하는가? 아니다. 그의 작품은 흥미진진하고 뭔가 새롭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탁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소설들은 서점에 나오기가 무섭게 [조선 명탐정] 같은 대중 영화로, [불멸의 이순신]이나 [나, 황진이] 같은  드라마로 판권이 팔려 나간다. 그런데 그가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아마 몇 년 있으면 이순신이 뜰 거야”, 라거나 “이번엔 백탑파를 한 번 띄워 볼까”라고 생각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작년에 마포의 문화공간 숨도에서 열렸던 '기획자의 마음'이라는 강의에서 소설가 김탁환을 만난 적이 있다.


어떻하면 그렇게 내놓는 소설마다 현재 트렌드에 부합되는가? 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본질이 트렌드다’라는 획기적인 답변을 대뜸 내놓았다. 본질이 트렌드라니? 자기가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예측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인간의 모습과 역사의 물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뭔가 본질적인 것이 보이고 그것들을 입체적인 시각과 설계로 불러일으키고 나면 결국은 그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트렌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사랑, 행복, 고통, 질투, 꿈, 비루함 등 몇몇 단어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삶이다. 아울러 역사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곧은 길과 굽은 길의 대결, 도전과 실패의 반복과 교차, 합리와 불합리를 넘어서는 막막함, 만약을 허용치 않는 냉정함, 끊임없이 반추하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가 인간의 역사다.



그런 김탁환이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바로 ‘금융’이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라는 괴물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민족자본이 형성되던 시절에 그 곳에선 어떤 인물들이 살고 있었는지를 작정하고 탐구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3권짜리 장편소설 [뱅크]다.


구정 연휴에 무심코 책꽂이에서 꺼내 들었던 [뱅크] 1권은 빠른 속도로 읽혔다. 개성 상인 장훈, 인천 상인 서상진, 서울 상인 홍도깨비 등 한반도 주요 지역의 상권을 대표하는 세 거상이 모여 급격하게 밀려드는 외세의 자본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자고 맹세하는 술자리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곧 그들의 아들 딸들인 장철호와 박진태, 최인향의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1868년생 동갑내기로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모두 아홉 살이었던 이들은 인천 부두를 배경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모험과 도전, 경쟁, 배신, 살인, 섹스, 러브스토리 등이 난무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김탁환은 소설을 쓰기에 앞서 자료를 많이 모으고 공부를 많이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역사적 고증에 철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100권이 넘는 책을 사고 그 중 10권 넘는 책을 샅샅이 읽는다고 하니 소설가의 근면함과 장인정신에 고개를 숙일 따름이다. 이번 소설도 마지막 권 말미에 실린 참고문헌록을 보면 ‘국역 경성부사, 서울특별시시사편찬위원회’,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처럼 개화기를 다룬 수 많은 책과 논문들은 물론 우리가 읽었던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나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같은 대중서적도 쉽게 눈에 띔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그도 이 소설을 쓰면서 두 번이나 집필을 중단했다고 한다. 은행의 역사에 대해 빠삭하게 공부를 하고 나면 곧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을 써나가다 보니 이 땅의 주식회사가 생겨난 배경이  필요해졌고, 주식회사 역사를 섭렵하고 나자 다시 조선 후의 경제상황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전까지는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고종 등 정치적 인물들만으로 가득했던 구한말의 이야기는 작가 김탁환의 노력으로 인해 드디어 경제적인 부분의 상상력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나는 오랜 버릇대로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등장인물들의 개요와 인상착의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장편소설을 읽을 때는 이렇게 독자 스스로 인물들의 개요를 정리하면서 읽어야 훨씬 입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장훈, 서상진, 홍도깨비를 시작으로 해서 어린 철호와 진태, 인향 등은 내 메모의 양이 늘어감에 따라 나이를 먹고 도중에 권혁필 같은 악인도 만나게 된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훌륭한 이유는 김범우나 염상진보다 염상구를 잘 그렸기 때문입니다.”



김탁환은 [태백산맥]의 염상구를 예로 들면서 ‘악인 캐릭터 창출의 매력’에 대한 소설가적 쾌감을 만끽했음을 고백했다. 이번 소설 [뱅크]에는 절대 악인 권혁필이 등장한다. 15살에 인천 부두에 흘러 들어 온 권혁필은 타고난 지혜와 집념으로 내거간을 거쳐 인천 상단을 접수함은 물론 나중에는 대한제국 상권을 좌지우지할 위치에까지 다다른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협잡과 배신, 살인, 음모 등이 배경도움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권혁필의 야심 덕분에 천민의 아들로 태어나 멋진 복수극을 꿈꾸던 박진태는 배신자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고, 기생으로 시작해 천하의 절창으로까지 성공한 장철호의 여동생 장윤주도 결국 아편중독에 이어 비극적 죽음을 맞게 된다.


1권을 하룻밤 새 다 읽은 나는 다음날 건대점 반디앤루니스까지 달려가 바로 2,3권을 샀다. 이번 소설은 각 권마다 꽤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손에 잡기만 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 나도 모르게 술술 읽히는 흡입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나는 책이 너무 빨리 읽히는 게 아쉬워 중요한 장면마다 줄을 치기도 하고 페이지를 접어놓기도 하다가 결국은 한 챕터를 다 읽고 나면 즉시 챕터 시작 페이지로 돌아와 간단한 내용을 메모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 동안 별 생각 없이 읽던 소제목들의 의미가 한결 더 분명하게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희한한 경험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뱅크]는 100년 전을 불꽃처럼 뜨겁게 살다 간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2014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하고 간절한 사랑을 꿈꾼다.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한 의지로 가득 찬 사람도 있다. 다만 우리의 인생은 이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그렇게 극적이지도 못하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못할 뿐이다. 그래서 흡입력 있는 소설 [뱅크]를 읽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외에도 우리의 인생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을 살아본다는 차원에서 ‘대리만족’의 기능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곧 TV드라마로 방영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드라마나 영화가 그렇듯 원작 특유의 분위기와 촘촘한 플롯을 드라마가 따라잡기는 어렵다. 정말로 재미를 느끼려면 소설로 읽어야 한다. 그것은 비범하고 성실한 작가가 튼실한 자료와 상상력으로 축조해 놓은 세계로 함께 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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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점에 가면 주로 소설책 코너에서만 서성이는 ‘이야기 중독자’이지만 뭔가 아이디어에 쫓길 땐 남들이 써놓은 ‘아이디어 내는 법’ 같은 책들도 자주 삽니다. 이번에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김하나가 쓴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도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그런 심정으로 산 책입니다. 


주인공이 종로구 누하동에 있는 조그만 술집(이곳의 사장 황영주는 실제로 지은이의 오랜 친구라고 합니다)에서 어떤 모르는 남자와 ‘미스티’라는 노래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로, 또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대화를 나누게 된다는 설정의 책입니다. 대화체로 계속 이어지다 보니 다른 실용서처럼 딱딱 떨어지는 맛은 덜하지만 이런저런 상식들을 토대로 ‘아무 것도 아닌 것들도 다 훌륭한 아이디어로 변할 수 있’고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것들이나 역사 속의 사건들에도 사실은 굉장한 아이디어들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어 시시때때로 가볍게 들춰보기 좋습니다. 


오늘도 막연한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신영복 선생에 대한 다음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녀 : 제가 ‘신영복식 층간소음 해결법’이라고 부르는 건데요. 언젠가 신문에 실린 신영복 선생 인터뷰를 봤더니, 위층에서 쿵쿵 뛰는 애가 있으면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면서 얼굴도 보고 이름도 묻고 해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좀 낫대요. 

나 : 왜요? 

그녀: ‘아는 애가 뛰면 덜 시끄럽다’는 거예요. 

나 : 허! 완전히 다른 방향의 해결책이네요. 

그녀 : 네. 전 이 얘기를 듣고 너무 좋았어요. 생각의 방향이 틀어지는 게 느껴지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못 뛰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디 되나요.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의 한계상 아무리 소음을 줄이는 설계를 해도 윗집에서 애가 뛰면 울리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상자는 물리적 완화가 아니라 심리적 완화라는 결론을 도출한 겁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상황이 마음에 안 들면 항의를 하거나 규탄을 합니다. 신영복 선생은 위층 사람에게 항의를 하는 대신, 그 상황을 나아지게 할 현명한 아이디어를 냈지요. 

동시에 이 이야기는 소통을 강조하는 선생의 뜻을 전달하는 도구로도 쓰이고 있지요. 층간소음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아이디어이기도 한 겁니다. 




신영복 선생의 정신세계는 정말 섹시하지요? 이 이야기는 당장 그대로 따다가 어느 건설회사나 통신회사의 기업PR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네요. 전 책 한 권에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나 소재 한 가지만 건져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시집에서도 딱 시 한 편 건지면 좋은 거구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벌써 본전은 넘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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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윤경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맨 처음 읽은 건 후배 송인덕이 저희집까지 찾아와 선물로 주고 갔던 책들 중 하나인 [달의 제단]이었는데, 어느 양반댁 종손이 주인공으로 나오서 자칫 엄격하고  고풍스러운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소설은 뜻밖에도 아주 탐미적이고 영리하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원작을 가지고 KBS [TV문학관]에서 단막극으로 만든 적도 있더라구요. 


영화기획자인 제 친구 김유평 씨가 어느날 “요즘은 심윤경의 소설을 야금야금 꺼내 읽는 맛에 산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도 저는 뭐 그냥 시쿤둥했었는데 어느날 헌책방에서 그녀의 데뷔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나서는 그 말을 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은희경의 데뷔작 [새의 선물]을 연상시키는 ‘홍제동 버전 성장소설’이었는데 역시 문장이 탄탄하고 진한 유머와 페이소스는 물론 이야기를 능숙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한레문학상 수상작이었죠. 


그 다음 읽은 책이 [사랑이 달리다]입니다. 이건 뭐 작가가 대놓고 독자를 웃겨 쓰러뜨리기 위해 쓴 듯 빵빵 터지는 캐릭터들이 종횡무진하는 굉장한 작품입니다.  서른아홉 살이 되도록 아빠의 신용카드만 믿고 취직 한 번 안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잘 생기고 학벌 좋지만 섹스리스인 남편’ 말고 언제나 새로운 남자와의 연애를 꿈꾸는 똘끼 충만녀 혜나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수십 억원의 빚을 지고도 태평스럽게 오픈카를 몰고 다니는 말썽쟁이 작은 오빠가 있고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가버린 아빠, 돈 오만 원에도 벌벌 떠는 사업가 큰 오빠 등등 시트콤스러운 캐릭터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정말 스피디하고 유쾌합니다. [사랑이 채우다]가 후속작이라는데 아직 그 책은 못 구했습니다. 


며칠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서라벌 사람들]이란 연작소설이 있길래 또 샀습니다. 심윤경이 역사소설을 쓴다고 하길래 어떤 식일까 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황당함과 대담함이 공존하는군요. 


심윤경은 신라의 황실 사람들을 거인으로 상정합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군림하려면 일단 겉모습부터 일반인보다 월등하게 커야 한다는 거죠. 등장인물 중 하나인 지증제의 음경은 한 자 다섯 치에 이르러, 아무리 색사에 능한 여성이라도 그의 거대한 양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바람에 황손은 황위를 잇지 못하고 몽달귀신이 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그의 신하가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중 기골이 장대한 여인을 드디어 찾아내(“바로 내가 원하던 바요! 내가 모시는 어른의 기골이 또한 장대하오! 그분과 동침하다가 옥문이 찢어져 목숨을 읽은 여인이 그간 여럿이었더니, 그분의 배필이 되실 분을 이제야 찾았소”) 태후로 봉하게 되죠. 이들은 이차돈의 순교 이전의 사람들이기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기도 대신 ‘교합례’를 지냅니다. 즉, 조상을 모신 자리에서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대표로 섹스를 하는 겁니다.  


이날 천제에서 지증제와 연제황후는 그들의 몸을 받친 뱀 모양 제단을 와지끈 무너뜨리고도 교합을 멈추지 않았다. 그 먼지 오르는 잔해 속에서도 한 식경이나 합환을 계속 했으니 그들의 땀과 애액 제단 아래로까지 흘러내려 태자 법흥의 비단옷을 적셨고 그 벽력 같은 교성에 동해 바다의 용까지 잠에서 깨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합화례가 끝나면 황제와 황후는 서로 노고를 치하하며 특별한 수라상을 받으시었는데, 각각 검은 돼지와 흰 돼지를 한 마리씩 드시었다.



일연스님의 저작을 연구한 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경건한 심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눙을 치는 호방한 작가의 변이 믿음직스럽습니다. 오늘 이차돈의 목을 자르는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연제태후’ 한 편 읽었는데 앞으로도 ‘준랑의 혼인, ‘변신’, ‘혜성가’, ‘천관사’ 등의 연작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도 재미있을 거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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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마침 오늘은 존 F 케네디가 서거한 날이네요. [11/22/63]은 지난 봄인가 사서 읽은 소설인데 케네디가 암살당한 날을 제목으로 삼았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건 세계적인 스토리텔러 스티븐 킹의 최신작입니다. 


우연히 과거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 주인공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면 과거로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만약 케네디가 죽지 않았으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발한 설정이지요. 1963년으로 간 주인공은 암살범 오스왈드에게 접근해 케네디의 암살을 막으려 합니다. 참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지금 미국은 케네디 서거 50주년을 맞아 추모열기가 뜨겁고 암살 배후에 대한 추리가 새삼 활발해지고 있다고 하죠? 아마 이 소설도 덩달아 다시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소설 뒤쪽에 후기를 보면 이 소설을 위해 스티븐 킹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섭렵했는지, 그리고 당시 상황들을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자료들을 얻고 연구했는지 알게 됩니다. 흔히 소설을 쓴다고 하면 소설가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정말 작업하는 방식부터 다르죠?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을 1972년도에 처음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뚝심있게 아이디어를 계속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절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대단한 작가 스티븐 킹이 쓴 이 소설, 한 마디로 재밌습니다. 상,하권으로 길지만 단숨에 읽힙니다. ‘황금가지’에서 나와서 번역 문장도 깔끔하니 좋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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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청문회 같은 데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들은 공부도 많이 했을 테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인간들인데 어쩌다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절거리며 살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고려대 윤성식 교수는 “그래서 인생의 밑그림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밑그림이란 ‘큰 틀’과 같은 개념이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커다란 비전 없이 그저 ‘열심히’만 산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는 물론 삶에 있어서 진정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든 안락과 쾌락을 추구하든 아니면 봉사와 헌신, 참된 나의 발견, 행복한 가정, 깨달음의 길 등 그 어떤 것을 추구하든 그로부터 가치와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윤성식 교수는 행정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대학과 대학원에서 불교 공부까지 한 다음 대학교에서 공인회계사 준비반 지도교수, 행정고시 지도교수, 기숙사 사감 등을 역임하며 젊은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다. 행정고시나 회계사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니 앞날에 대한 걱정과 계획이 오죽 많겠는가. 그런데 윤성식 교수는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스마트폰이나 가방을 살 때는 몇 날 며칠을 심사숙고하면서 인생의 향방에 영향을 줄만큼 중대한 결정은 너무나도 쉽게 해버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 선택을 위한 어떤 절대적 가치판단 기준이 마음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지 못하면 ‘팔랑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저자는 유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상담하는 학생들에게도 “도대체 그 정보는 어디서 들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친구나 선배에게서 들었다는 알량한 대답이 돌아온다고 개탄한다. 


 

세상은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상호의존적이고 비선형적이며 상대적이다. 지금 내린 결정이 인생이라는 바다에 어떤 파도를 일으킬지 정확히 예측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비전과 전략이 없으면 그때그때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 결과 작은 파도에도 이리저리 휩쓸려 우왕좌왕하며 일관성을 잃게 되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노력을 모두 낭비하게 된다.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찰’이 필요하다. 나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성찰.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스마트한’ 기기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살게 된 우리들은 정작 삶에 대한 성찰은 잃어버린 세대가 되어버렸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은 휴대폰이나 SNS에 비하면 대단히 느리고 귀찮은 일이므로 피해버린다. 더구나 내 앞가림 하기에도 바빠 남과 사회적 아젠다에 대해 토론하거나 걱정할 여유도 없다. 그러니 트렌드엔 민감하고 출세하길 간절히 바라긴 하지만 막상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둔감한 세대가 되어버린다. 남은 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마음에 드는 방법, 즉 ‘너는 할 수 있다’, ‘간절히 소망하면 우주가 화답한다’ 는 식의 [시크릿]이나 파울로 코엘류의 책들,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위로 기획’에 매달리는 것뿐이다.  



‘너는 할 수 있다. 간절히 소망하면 우주가 화답한다’고 속삭이는 공허한 성공학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위로에만 솔깃할 뿐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더구나 인생의 밑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들은 우리를 로맨틱한 방랑자로 만들 뿐이다. 방랑자란 미래를 향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당장 좋은 것만 찾아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을 말한다. 방랑자는 산만하고 중심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일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과외선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 강사에게 잘 나가는 비결을 물으니 ‘비전에 의한 공부’를 얘기하더라는 것이다. 자기는 처음 학생을 만나면 스스로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 며칠간 책을 덮은 채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계속 대화를 한다고 한다. 한낱 과외선생도 공부를 비전과 연결시킬 줄 아는 것이다. 그 정도로 비전은 중요하다. 저자도 행정학을 공부하고 공인회계사 시험을 거치는 등 이런저런 방향전환을 많이 했지만 ‘학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큰 비전은 변함이 없었기에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비전을 잘 세워놓으면 인생의 뒤안길에서 후회가 적어진다. 왜냐하면 행복, 가치, 의미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의 사이언스 갤러리에는 “행복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라는 말이 붙어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행복’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건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의사나 판검사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나 판검사가 된 후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귀한 신분이 되고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일에서 보람과 즐거움, 자부심 그리고 전 인류에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가치에 대한 공감 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성공한 인생도 행복한 삶도 아닌 것이다. 



“인생 계획이요? 음…, 일단 졸업하면 회사에 취직할 겁니다. 그리고 5년 안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해야죠. 그리고 또…….” 

“그게 인생계획이야?”

“그럼요. 은퇴 후의 인생까지도 계획해 놓은 걸요?” 

“정말로 그게 인생 계획이란 말이야?” 



이 책은 [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라는 제목 때문에 자칫 스무 살들을 위한 단순한 인생 지침서로 오해 받기 쉽다. 그러나 찬찬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20대 보다는 성숙한 나이가 돼서 읽을수록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우문’은 탁상공론이 아닌 학생들과의 구체적인 상담 사례를 거쳐 ‘현답’이라는 형태로 우리 앞에 제시된다. 더구나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최근 반복해서 들춰보던 [혼•창•통]이나 [일본전산 이야기], 박웅현의 책들, 사사키 아타루나 스티브 잡스 등의 말과 글들이 수없이 어른거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시 통찰이 있는 이야기들은 공집합 안에서 다 모이게 되는 모양이다. 








* 책을 읽다가 명백한 오류가 있는 문장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혹시나 해서 집에 있는 [톰 소여의 모험]을 찾아보니 톰에게 페인트칠을 시킨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폴리 이모였더군요. 톰은 부모가 없는 아이였으니까. 어느 책이나 이런 오류들은 발견되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그걸 알게 된 편집자들은 책상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게 되고…제가 심술궃은 인간이라 이런 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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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두 권. 

[별들은 따뜻하다]도 두 권. 

[새벽 편지]도 두 권.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도 두 권. 

[어느 날 나는 흐른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도 두 권. 

[햄버거에 대한 명상]도 두 권. 



동거를 한다는 것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두 남녀가 만나 산다는 것은, 


두 권의 책이 

서로 몸을 밀착하고 

책꽂이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나마 우린 

같이 서 있기 위해 

많은 땅을 처분했습니다 


박경리의 [토지] 

마흔두 권 중 

스물한 권은 

다른 이에게 양도를 했거든요 



저 책들을 반으로 나눠  

베고 한 세상 살아 볼까요 


수저 두 벌, 

베게 두 개만 남기고 


그렇게 

단촐하게 

배 뚜들기며 

살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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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어머니와의 저녁. 나는 일 섬의 이야기를 했다. 

-상상해 보세요. 해변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부를 때 “밥 먹을 시간이다”라고 하는 대신 영어로 이렇게 소리치는 거예요. “랑슬로! 엘루아! It’s miam-miam’s time!” 

  우리는 같이 웃는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내가 회피하고 싶은 주제를 건드린다. 

-그래, 클레르는 여전히 만나니? 

-아니요. 우린 만나기만 하면 늘 서로 욕하곤 했어요. 헤어진다는 결심을 하지 못했을 뿐이죠. 다른 이야기해요. 그 여자 미쳤어요. 이젠 아무 흥미도 없어요. 전혀 관심 없어요. 우리 사이는 완전히 끝났어요. 

-아아…… 네가 그렇게도 그녀를 좋아하니……






-자네 요즘 피곤한 모양이지? 

-태어난 이래로 쭉 그렇습니다. 



카피라이터의 비뚤어진 일상을 다뤘던 소설 [9,990원]의 한 장면입니다. 베그베데의 소설은 대사가 아주 감칠맛 나죠. [9,990원]과 [살아있어 미안하다] 등을 썼던 프랑스 작가 프레데리크 베그베데의 소설 [로맨틱 에고이스트]를 읽고 있습니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베그베데는 역설적이고 위악적인 문장을 다루는 데는 아주 천재적인 사람이죠. 이 책은 올해 초 한림대학교 교내 서점에서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기 뭐해서 할 수 없이 산 책이었는데, 서점 주인 아줌마가 천 원인가 깎아준 기억이 납니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다가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책은 참 고마운 존재죠? 제가 다가서기 전까지는 늘 똑같은 마음으로 책꽂이에서 진득하게 기다려 준다니까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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