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책장을 정리하자고 한다. 올 8월이면 이 집으로 이사온 지 4년이 된다. 7층에서 바라보는 한강이 한 눈에 보이고 거실에는 친구들과 술 마시기 좋은 테이블도 있고 책꽂이도 양쪽으로 큰 게 있어서 더 살고 싶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 아내가 눈대중으로 세어보니 대략 1,500권 정도란다. 책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가지고 있는 책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줄일까.


일단 무슨 책을 남기고 무슨 책을 없앨 것인가부터 정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 출근길에 아내와 한강변을 함께 걸으며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며칠 전 친구 표문송과 술을 마시다 무슨 얘기 끝에 내가 '십수 년 전에 홍명희의 <임꺽정> 열 권을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 읽었다'고 했더니 그 책만큼은 절대 버리지 말고 나중에라도 꼭 읽으라고 한 게 기억난다. 그 책을 기준으로 남겨야 할 책과 없애야 할 책들을 생각해 보자.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 중엔 아무래도 <태백산맥>을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아리랑>은 읽으면 가슴이 너무 아리고 답답해져서(특히 정신대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부분) 다시 읽기 힘들 것 같고 <한강>은 두 책에 비하면 개인적으로 크게 당기지가 않았다. 그러니 <아리랑>과 <한강>을 다른 데로 보내고 필요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도록 하자.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책들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늘 잘 팔리는 작가의 책들은 초기 희귀본이 아니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 모두 내보내자. <용은 잠들다>나 <방과 후> 같은 건 기념으로 한 권씩 남겨 놓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도 몽땅 내보내기로 하자. 이미 후배 윤보라가 내가 개포동 옥상 있는 집에 살 때 놀러와 우리집에서 술을 마시고 <개미> 전집 다섯 권을 빌려가다가 그날 밤 택시 안에서 분실한 터라 이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창간호부터 절판될 때까지 읽었던 SF잡지 [판타스틱]은 놔두자. 거기서 배명훈의 소설들도 만났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저자 정세랑의 단편도 처음 접했으니까. 1983년도쯤 문학잡지 [현대문학]을 일 년치 구독한 것은 순전히 당시 대성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권희돈 선생님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 '벌레'인지 '벌레구멍'인지 하는 시를 칠판에 적어주셨는데 시 말미에 '현대문학 몇월호'라고 출처가 씌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분히 허영심에서 선택한 정기구독이었지만 나에게는 당시 몇 달치 용돈을 모아 저지른 작은 사건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 잡지에 막 연재를 시작했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제목으로나마 먼저 구경할 수 있었다. 현대문학 과월호도 지금은 구하기 힘든 책이 분명하니 그냥 놔두기로 하자. 

김용 선생의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는 어떻게 할까. 난 <사조영웅전>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머지 중독성 때문에 <신조협려>까지 선뜻 손을 대지 못하다가 여태 못 읽은 케이스다. 엉뚱하게도 무협지를 좋아하는 뚜라미 동기이자 '오근네닭갈비'1,2호점의 사장님인 고한우가 빌려다가 며칠 밤 통독을 하고 다시 돌려줬다. 허멘 멜빌의 <모비딕>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백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 읽다가 만 책들은 그냥 놔둘 생각이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등은 너무 어렸을 때 읽었으므로 다시 읽으려고 일단 눈에 들어올 때마다 사놨으나 아직 읽지는 못한 책이다. 일단 놔두자. 대신 아멜리 노통브나 무라카미 류, 마루야마 겐지, 야마다 에이미 등 한때를 풍미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 모두 내보내자. 아,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떻게 할까. 왠지 이 사람 책은 그냥 놔두고 싶어지는데. 그냥 무시하고 싶다가도 그 꾸준함이나 향상성 때문에 자꾸 생각나는 작가다. 최근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단편들만 읽어봐도 그렇다. 어쨌든 참 잘 쓴다. 

황석영의 소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무기의 그늘>과 <손님>만 남길까 한다. <손님>은 어쩌다보니 세 번이나 같은 책을 샀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없게 가까운>도 세 번째 산 책이다. 내보낼 순 없을 것 같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같은 책은 쉽게 절판될 것 같으니 놔둬야 한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이나 <나라 없는 사람> 같은 책을 어찌 내보낼 수 있으랴. 밀란 쿤데라의 책들도 일단 다 품고 있어야 한다. 이런 책을 내보내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새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도 누군가 훔쳐가는 바람에 다시 샀던 책이다. <벨벳 애무하기>라면 혹시 몰라도 이 책은 안 된다. 모옌의 <홍까오량 가족>은 인덕이한테 선물받은 책인데 아직 안 읽었고 <탄샹싱>은 정말 정말 어렵게 구했던, 애지중지하는 책이다. 그런데 바르가사 요사의 책들은 다 어디 간 걸까. 


김훈의 책들은 일단 모셔 두기로 한다. 윤대녕의 단편집들도 마찬가지다. 폴 오스터의 책 중 그래도 <뉴욕 통신>쯤은 남겨둘까. 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서 집에 가서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 이러다가 몇 권이나 내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재 결혼시키기'보다 어려운 게 '서재 시집보내기' 인 것 같다. 이건 일단 거실 왼쪽에 있는 내가 산 책들 중심의 책장 이야기다. 오른쪽에 아내가 산 책들까지 생각하면 정신이 약간 아득해진다. 아내는 그 책들 중에서 또 어떤 걸 골라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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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의 소설 <미인도>를 읽었다.

한 노인이 길에서 쓰러져 사망했는데 몸을 뒤져보니 대학생 학생증이 나왔고,지문을 감식해 보니 놀랍게도 그 학생 본인이 맞더라는, 신기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중편소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신동으로 유명했던 전아리는 예전에 박웅현 ECD와 함께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한 적도 있는 젊은 작가인데 우리집에도 <즐거운 장난>이나 <시계탑> 같은 단편집이 있다.

동양화과 다니는 박성우라는 남자애가 우연한 기회에 아르바이트로 누군가의 별장을 지켜주러 갔다가 노골적인 춘화로 가득한 노인의 방에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어떤 섬이더라는 구운몽 같은 이야기다. '미인도'라 불리는 그 곳은 한복을 입고 옛말투를 쓰는 젊고 아름다운 미녀들로 그득한 섬이었는데, 여자들은 한결같이 새로 온 남자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어떻게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색정적인 기운이 넘쳐나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떤 남자든 누군가와 한 번 합방을 하면 그 순간 섬을 떠나야 하는 얄궃은 시스템이 문제였다. 그런데 웃기는 건 합방만 하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연애나 섹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인터코스'만을 피해 그 상황을 오래오래 즐기려는 야리꾸리한 상황들이 속출한다. 성우는 그 곳에서 누군가의 정사를 훔쳐보다가 그림 잘 그리는 게 탄로나는 바람에 섬 여인들에 의해 돌아가며 '주문제작 춘화'를 그리며 살게 되는데... 풋풋한 야설 같은 이 이야기는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스피디한 글쓰기에 힘입어 너울너울 단숨에 읽힌다. 한여름 납량특집극을 시청한 것 같은 알싸한 느낌의 스토리텔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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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PT 준비로 한참 바쁠 인터넷 서점을 통해 살만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 샀다. 그의 [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라고 쓰면 매우 폼나겠으나, 사실은 하권까지 읽다가 말았다). 바빠서 책을 읽다가 마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데 도중에 한 번 덮은 책은 다시 읽기가 참 힘들다. 그러면서 새 책에 대한 유혹은 끊임없이 들어온다. 사는 게 다 이렇다. 이 책도 사실은 여기저기서 워낙 제목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오래 전부터 다짐하고 있던 작품이었다. 


소설 시작 전에 작가가 25년만에 다시 쓴 서문이 나오는데 거기서 작가는 제목을 정할 때 ‘자정의 아이들(Children of Midnight)’은 너무 진부했고 ‘한밤의 아이들(Midnight’s Children)이 좋은 제목이었다,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글이 잘 써졌다고 고백한다. 나로서는 그 두 제목이 어떻게 진부하거나 그렇지 않은지 아직은 잘 모르겠으니 책을 완독한 후에 이유를 찾아봐야겠다. 지금 현재 110페이지를 조금 넘게 읽었다. 권당 500페이지에 가까우니 이제 한 십분의 일을 읽은 셈이다. 


젊은 시절 런던의 ‘오길비 앤 매더’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한 적도 있는 살만 루시디는 매력적인 작가다. 이 책 역시 [무어의 마지막 한숨처럼]처럼 거침없고 끈적끈적 유연한 말과 글의 향연이 ‘전설따라 삼천리’처럼 구비구비 펼쳐진다. 이야기의 시작은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하는 날 자정에 태어난 살림 시나이라는 남자애부터다. 일단은 그 이유로 ‘한밤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소설의 화자인 살림은 자기 얘기가 아니라 그 옛날 독일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인도로 돌아온 자신의 외할아버지 아담 아지즈 때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아담의 나이 많은 친구이자 수다장이인 뱃사공 타이를 등장시켜 시공간을 가르는 각종 ‘구라’들을 끝도 없이 펼치게 한다. 아담 할아버지가 구멍 뚫린 침대보를 사이에 두고 진찰(다 큰 여자가 남자에게 처녀가 함부로 몸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을 계속 하던 부잣집 처녀와 결혼하게 되는 얘기를 시작으로 영국의 식민과 독립을 향한 인도의 정치상황까지 별의 별 이전 얘기를 붙들고 국을 끓이고 있으니까 옆에서 보고 있던 그의 아내 파드마가 와서 “이런 속도로 가다간 당신 탄생에 대해 얘기하기도 전에 이백 살이 돼버리겠어요.”라고 투덜대기까지 한다. 마치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서 작자인 밀란 쿤데라가 나와 “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제목을 잘못 정했어. 사실은 이 책의 제목으로 썼어야 하는 건데.”라고 투덜대는 것만큼 재미있다. 



이 책을 사기 전에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라는 노르웨이의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작품인데 구성이 치밀하고 짧고 재빠른 대사들도 멋지다. 해리 홀레라는 연쇄살인 전문형사반장을 등장시켰는데 살인에 대한 묘사와 흥미로운 캐릭터 등등이 빛을 발하고 소설 곳곳에 영화나 음악에 대한 통찰력까지 번뜩인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데니스 호퍼의 [뒤로가는 남과 여]라는 영화에 대해 언급할 때는 너무 반가워 혼자 소리를 지를 지경이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요네스 뵈는 노르웨이의 국민작가이자 뮤지션이고 저널리스트이며 경제학자란다. 도대체 잘난 놈들이 너무 많아서 살 수가 없다. 어쨌든 구정 시즌을 이용해 이 책에 대한 리뷰도 좀 써봐야겠다. 그러나 일단 살만 루시디의 책이 먼저다. 술과 TV, 잠, 영화 등등 여기저기 ‘치즈 인 더 트랩’처럼 유혹이 널려있는 연휴다. 과연 나는 이 역경을 딛고 [한밤의 아이들]이란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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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인 박연준과 시인이자 인문학 저술가인  장석주는 이십오 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커플이다.  따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그냥 동거에 들어갔던 이 커플이 며칠 전인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결혼기념일로 정하고 결혼 서약 대신 냈다는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었다.


이 책은 작년에 호주 시드니에 사는 지인이 한 달 간 집을 비우게 되었으니 두 시람에게 와서 살아보라고 했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집이 한 달간 비니 그동안 와서 우리가 쓰던 집과 방과 이불과 숟가락 젓가락을 마음대로 써도 무방하다고 한 사람도 대단하지만, 지인이 살러 오랬다고 냅다 서교동 집을 한 달이나 비우고 날아갈 수 있는 두 남녀도 대단히 부러운 인생이다.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어 결혼 서약 대신 내게 한 기획자이자 시인인 김민정 역시 멋진 사람이다.


제목인 '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라는 문장은 박연준이 쓴 앞부분의 챕터 ‘첫날’이라는 글 속에 들어 있다. 이 책은 반쯤 나눠서 앞 부분은 박연준이 쓰고 뒷부분은 장석주가 쓰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이지만 평이하고 살뜰한 문장을 구사하는 박연준의 글이 미셀러니에 가깝다면 보다 개념적이고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장석주의 글은 에세이스럽다. 



나는 두 주인공이 시드니에서 마주친 월요일의 운동장 모습에서 눈이 멈췄다. 장 본 물건들을 들고 걸어오던 두 사람은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 벤치에 짐을 부리고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운동장엔 한 남자가 부메랑을 던지며 놀고 있었고 그 옆엔 여자 아이가 혼자서 농구공을 튕기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부메랑을 던지며 놀던 남자는 타인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의심 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월요일인데 저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것일까?’ 라고 놀라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오히려 바쁘게 살아야만 정당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표상이기도 하다. 


애초에 장석주는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지 잠 깨고, 혼자 걸어다니는 '1인분의 고독'에 피가 길들여 있던  사람이었는데, 박연준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들어옴으로써 ‘2인분의 고독’을 덥썩 받아 품기로 한 사람이라 고백한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사는 과정을 '고독이라는 공통분모로 묶다니, 이는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더 게으르고 더 형이상학적인 취향을 누리고 살았던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사람조차도 시드니 교외 주택에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은 '심심함을 품은 시간들'이라며 그 소중함을 다시 반추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 심심함을 품은 시간들이라니. 베란다에 의자를 내놓고 햇볕을 쬐고 책을 읽으며 한가롭게 보낸 시간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바로 이 장면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결혼서약을 대신하는 의미로 두 남녀가 쓴 에세이라는 멋진 포장을 하고 있지만 내용은 한 달 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햇볕을 쬐고 포도주를 마시며 논 이야기다. 심심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뒤쳐짐에 대한 염려나 늙음에 대한 안달도 내려놓은 채 진짜 ‘심심하게’ 지낸 부러운 시간의 기록들. 에필로그에서 장석주는 그가 누렸던 심심함을 이렇게 찬양한다.


심심한 시간은 그냥 심심하기만 한 게 아니다. 심심함 속에서 잊었던 것들이 되살아나고, 사라진 것들이 부활한다. 심심한 시간들은 죽은 것들을 되살리고, 잃었던 것들을 다시 돌려주며 감미로운 감각들을 맛보도록 했다. 시드니의 유칼리투스 숲과 공원들, 푸르름에 물든 하늘과 바다, 청명한 날씨들, 롱블랙 커피, 달링 하버를 걷던 시간들, 우리를 환대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자.



나는 겨울이면 가끔 눈 쌓인 산장에 갖혀 지내는 상상을 한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에 나오는 그런 산장처럼 아무도 오지 못하는 그 곳. 거기서 무얼 할까. 핸드폰도 TV도 단절이다. 오늘 내일이 지나야 사람들이 쌓힌 눈을 뚫고 나타날 것이다. 긴긴 겨울밤. 밖엔 옅은 눈보라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벽난로 안의 장작불은 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다...아, 회의를 하러 가야 할 시간이다. 여기는 회사. 화요일 밤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죄다 자리에 앉아 회의를 준비하거나 일을 하고 있다. 논현동에 눈내리는 산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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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에 통영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노 요코 여사의 <죽는 게 뭐라고>를 읽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에 붙어있는 서점 <봄날의 책방>에서 어제 산 책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자마자 재규어 매장에 가서 잉글리시 그린 컬러의 차를 가리키며 "저거 주세요"라고 외쳤다는 일흔 살의 할머니. 정말 귀엽지 않은가.

암투병기가 정말 싫다는 사노 요코. 택시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법으로 금지되자 차를 사서 병원 가는 길마다 굴뚝처럼 담배를 피워댔다는 대찬 여자. 소파에 누워 TV나 비디오를 볼 때가 제일 좋다는, <춤추는 대수사선>을 보다가 너무 행복해서 꽥꽥 소리를 지른다는 이 할머니 때문에 정말 많이 웃었다. 

사노 요코는 <100만 번 산 고양이> 등을 쓴 작가다. 글이 솔직담백하고 직선적이다. 읽으면서 속이 후련해지고 때론 애잔해지는 수필이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도 지겹다고 투덜대던 이 할머니, 2010년 72세에 미련 없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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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에쁜고 젊은 얼굴과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이자 두 고등학생 아이의 엄마인 남부러울 게 없는 그녀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가자는 남편의 제안이 영 달갑지 않다. 해마다 크리스마스면 벌어지는 가벼운 실랑이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이 둘 다 스키 캠프로 떠난 참이라 처음으로 둘 뿐인 사진 나들이인 것이다. 알 수 가 없다. 늘 자신을 사랑해주고 장모님까지 극진하게 모시는 ‘굿보이’지만 정작 그녀는 한 번도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 그녀의 가슴 속엔 이십 년 전 파리 유학시절에 잠깐 함께 살았던 남자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몽마르뜨 언덕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보잘 것 없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지나간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움으로만 남는 법. 히사코는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사진 취미도 포기하고 사업에 매진했던 남편의 사랑이 오히려 버겁기만 하다. 그리고 자신을 렌즈에 담으려는 남편의 성의가 부담스럽다.


삼각대를 세운 남편이 무심코 마로니에 얘기를 꺼냈을 때 그녀는 이미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 렌즈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히사코에게 “뒷모습도 괜찮지만”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기어코 눈물을 터뜨린다. 지난 이십 년 간 단 한 번도 남편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고 거짓말로 살아온 자신이 미워서다. 히사코는 남편에게 말한다. 나 할 얘기가 있어요. 무슨 얘기라도 다 들어준다고 약속해 줄래요?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무슨 얘길 하든 어머니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또 내게도 변함없는 차코(히사코의 애칭)로 남는다고 약속해줘. 알았어요. 나 처녀 시절 파리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당신을 만났을 때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어요. 아이를 지우고 당신과 결혼했지만 그 후로도 이십 년 간 그 사람만을 그리워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나 바보처럼 모든 걸 이해하고 안타깝게만 받아들이며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믿고 있는 이 남자를 믿는 것만큼 사랑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게 그런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그들이 접어든 초상화 거리에서 이십 년 전 그 남자를 만난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얼굴이 변해도 화풍만은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녀는 예전에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다. ‘초상화 오 분 완성’이라는 안내문을 사이에 두고 단박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커피를 사러 갔던 남편은 두 남녀의 표정과 대화를 통해 이십 년 전 그 남자임을 직감하고 말한다. “와이프인데 잘 부탁해요. 오 분 이상 걸려도 좋으니까 젊게 그려주세요.”


신기하게도 그가 그린 초상화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가 아니라 스물세 살의 히사코다. 단박에 이십 년을 가로지르는 슬픈 만남이다.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에나 가능한 이야기랄까. 남편은 남자에게 자기 아내와 식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자신은 커피를 마시고 있겠다며. 눈물겹고 신파스러운 배려다. 그러나 그 부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자가 질척거리지 않고 그림값 이천 엔을 요구하더니 미련 없이 일어섰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라지고 다시 사진을 찍는 두 사람. 이번엔 히사코가 촬영에 아주 협조적이다. 히사코가 남편에게 부탁을 한다. 방금 받은 그림과 남편이 오늘 찍은 사진을 사무실에 나란히 걸어 달라고. 스물세 살의 히사코는 마흔세 살의 히사코를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라며. 이젠 아무 것도 거리킬 것이 없다. 거리에서 남편의 입, 볼, 턱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입을 맞추는 히사코. 바보 같이 이십 년이나 걸려 남편에 대한 사랑을 찾았다. 마침 크리스마스의 일이다. 아시다시피 크리스마스 이브는 매우 특별한 날이니까.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신파스럽고 복고적이지만 스토리텔링의 균형감각은 세계 최고다. 나는 세상이 가끔 살벌하게 느껴지거나 따스함이 그리워질 때 그의 단편을 하나씩 꺼내 읽는다. 그의 <수국꽃 정사>를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리면서도 좋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샐러리맨 같은 무사 이야기를 다룬 눈물나는 장편소설 <칼의 지다>를 읽은 뒤 완전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영화 <파이란>의 원작자도 아사다 지로다(원작은 <러브레터>). 그의 글은 어떤 소재를 다루든지 쉽게 읽힌다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무시하지 말자. 스티븐 킹이 대중작가라고 무시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모두 스티븐 킹에게 무릎을 끓었다. 서점에 나가 베스트셀러들을 잠깐 살펴면 이건 나도 쓰겠다, 싶은 어이 없을 정도로 쉽고 얄팍한 책들이 많을 것이다. 그걸 보고 한심한 세태니 인스턴트 시대라 그렇다느니 한숨 쉬며  탄식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쉽게 읽힌다고 아무 책이나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니다. 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없으면 절대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모르면 쉽게 쓰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시, 결론은 어이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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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 책 - 김현성의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 



오래 전, 조영남이 TV 독서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이 쓴 새 책 <예수의 샅바를 잡다> 얘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여자 아나운서가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첫째는 섹스”라고 대답했고(아, 역시! 하고 아나운서가 아뿔싸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두 번째는 공부” 라고 했다. 아, 공부라니. 천하의 ‘논다니’이자 스캔들 메이커인 조영남이 섹스를 좋아하는 거야 너무도 당연하지만 두 번째는 돈도 술도 권력도 음악도 아닌 공부라니. 


물론 나는 그때 조영남이 말한 공부가 도서관에 앉아 수험도서를 읽고 시험을 치루고 하는 공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리고 그것은 뮤지션 출신의 신예 작가 김현성이 쓴 첫 번째 감성에세이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를 읽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도대체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 걸까. 



김현성의 책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는 연애의 끝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마도 작가는 누군가와의 헤어짐이 새로운 성찰을 위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뭘 하면서 살면 행복할까, 라는 인생고민을 풀기 위해서 여행을 결심한다. 여행. 그것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이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스스로를 객체로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가득 차고 있는데 가진 것은 텅 비어 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김현성이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 글이다. 이건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느끼게 되는 감성인데 문제는 그때 바로 과감하게 여행가방을 쌀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깨달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생각만으로 그치면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여행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작가가 여행자가 되기 위해 가방을 꾸리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알랭 드 보통이 가방에 대해 썼던 글과 철학자 장석주의 가방에 관한 글 들이 떠올랐다. 여행지로 떠나기 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 비로소 한 개의 가방이 꾸려졌을 때, 그게 한 사람 인생에 필요한 모든 물건의 최소부피라는 그들의 글을.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 하는 바람에 우연찮게 가수가 되었던 김현성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는 순간 인생이 달라졌다. 문학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뭘 해야 행복한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뮤지션의 길을 버리고 한예종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서양철학의 형이상학적 해명’이라는 어려운 강의를 들으며 예술과 철학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낚시 애호가가 낚시를 할 때 가장 편하고 행복해하는 것처럼 김현성은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만큼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계속 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태리와 파리 등 유럽 지역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에피소드들은 때로는 정갈한 문장들로, 때로는 유머 넘치는 표현으로 읽는 맛을 더해준다. 나는 특히 가리발디역에서 무임승차를 했던 잘생기고 가난한 호텔리어 줄리안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피렌체공항에서 약속한 후배가 오지 않자 괜히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소매치기 집단이 아닐까 걱정하며 오해의 파장을 키워나가다가 결국 선량한 흑인남자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리던(마마, 난 이제 사람 죽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지쳤다고요. 이젠 정말 조용히 살고 싶어. 그런데 마마, 저 동양인 새끼가 자꾸 우릴 빤히 쳐다보는데, 가서 확 죽여버릴까요?)장면을 읽고 많이 웃었다. 그리고 에밀 졸라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파리는 물론 중세의 천재화가 조토의 벽화를 찾아나서는 책 말미의 이탈리아 여행 에피소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다만 인생이라는 단 한 번 주어진 여정을 걸어가면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이 될수 있을까 고민해본 과정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생각의 지도다. 나는 운좋게도 이 책의 초고를 먼저 읽어보는 행운을 누렸고 어쩌다보니 내가 제안했던 제목(원래는 ‘당신들처럼 나도 외로워서’였는데 작가의 최종 의견에 따라 ‘당신처럼’으로 바뀌었다)으로 책이 나오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내가 지은 제목이라고 무조건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문장수업을 하고 생각의 결을 정련한 신예작가 김현성의 글들이 정말로 좋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서도 모두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요즘 사람들 틈에서 이 책을 펼쳐 읽는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에서 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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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기획한 조중걸 선생의 새 책 <러브온톨로지> 어떤 책일까 궁금해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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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연작 소설 [맏물 이야기]를 이틀 간에 걸쳐 재미있게 읽었네요. 페이스북 간서치의 읍장님께서 예전에 추천하신 걸 잊지 않고 적어놓고 있다가 휴가 막판에 사서 읽게 된 거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몇 년 전 [용은 잠들다]를 시작으로 해서 [모방범] 이후에도 꽤 많이 읽은 편인데 막상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녀의 역사 소설은 처음입니다. '맏물'은 한 해의 맨 처음에 나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를 일컫는 말이죠. 작가는 이 식자재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각각의 사건들을 좀 더 서민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미미여사 소설의 특징은 살인 사건 등이 등장하는 장르물인데도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맏물 이야기]는 '에도시대'라는 특정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들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러운지. 에도 막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삼장군 시대의 일이라죠. 마치 [두 도시 이야기]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핑거 스미스]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시대처럼. 당연히 기록과 상상력에 의지해 글을 썼을 텐데 그 당시의 음식들은 물론 공동주택과 골목골목의 풍경, 옷차림, 바느질에 이르기까지 마치 방금까지 그곳에서 살다 나온 사람처럼 묘사가 자연스럽고 정겹습니다.


저는 아홉 편의 단편 중에서도 <천 냥짜리 가다랑어>와 <원한의 뿌리>가 특히 좋았습니다. 아마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스며 있거나 어긋나 버린 인간관계에 대한 회한이 스며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저는 <천 냥짜리 가다랑어>에서 모시치가 생선장수의 아내에게 냅다 빰을 얻어맞는 장면에서 뭉클해져 하마터면 눈물을 떨굴 뻔했습니다.


이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이름은 모시치인데 직업이 '오캇피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어느 읍의 파출소장 정도나 될까요. 그에겐 두 명의 부하가 있습니다. 어리고 성급하지만 동작이 재빠르고 밥을 많이 먹는 이토키치, 그리고 덩치가 소처럼 크고 둔중하지만 침착하고 세련된 곤조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들은 모시치의 밑에서 수사를 돕지만 저마다 따로 생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토키치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젊은이고 곤조는 술도매상에서 삼십 년 일해 대행수까지 지냈던 사내입니다.


이밖에도 의문의 무사 출신 노점 요리사와 건달 가쓰조도 간간히 등장해 흥미를 돋웁니다. 미미여사는 책날개에 있는 짧은 글에서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전합니다.


작은 마을을 커버하는 선량하고 고지식한 오캇피키에게 무슨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나겠습니까. 더구나 옛날이야기라 CSI 같은 과학수사도 없습니다. 누가 식중독으로 쓰러졌는데 그 동기가 수상하더라, 누가 가다랑어 한 마리를 천 냥에 사겠다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 등등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그런데도 읽다 보면 흥미가 생겨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 속으로 쭉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이게 바로 미야베 미유키라는 소설가의 공력이겠죠. 흔히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뒷맛이 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미미여사의 소설은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하고 애틋해집니다. 그래서 더 권하고 싶은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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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광고계 친구들과 신사동에 있는 대창집에서(그러고보니 이 대창집 주인도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원래 술 마시면서 일 얘기는 잘 안 하는 게 우리들의 불문율이었는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창구이에 소맥을 마시면서 광고 얘기를 제법 했다. 

“야, 광고엔 정답이 어딨냐. 그저 용기가 필요한 거지."
“그래. 광고도 여자도 다 용기야. 늘 용기 있는 놈이 먼저 먹는 거야...” 

다소 거친 표현이고 또 가정이 있는 몸이라 누가 이런 소리를 지껄였는지는 밝힐 수가 없다. 아무튼 뭐든 너무 범생이처럼 접근해서는 빅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건 우리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엄청나게 성공한 선배 광고인이자 [겁나게 중요한 충고]라는 책의 저자인 조지 로이스 할아버지도 수십 년 전부터 똑같은 주장을 해왔다. 


조지 로이스(‘루이스’가 아니다)는 ‘빅 아이디어 광고’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사람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이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그림에 그치지 않았다. 좋은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 아트 디렉터들에게는 '카피부터 시작하라’라고 충고하고 실제로 위대한 광고를 만든 아트 디렉터들 중에는 카피까지 직접 쓴 사례가 있음을 강조한다. 즉, 직종과 상관없이 그림으로 생각하든 글로 생각하든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것이 없고 항상 '관습을 깨뜨리는 독창적이고 과감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전쟁에서 돌아와 일주일만에 CBS텔레비전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때의 일화(33화 당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라!)는 그런 그의 스타일을 잘 말해준다. 방송국의 까마득한 디자이너 선배에게 보여줄 첫번째 디자인 시안을 들고 갔는데 정작 그 선배는 책상에서 자기 일에 골몰하느라 조지는 쳐다보지도 않더라는 것이다(미국에서도 신참자에 대한 선배들의 무시는 유구한 전통이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선배가 알고 있고 심지어 헛기침을 해도 돌아보지 않는 데 화가 난 조지는 밖에 나가 비서가 보고 있던 두꺼운 사전을 빌려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선배 책상에서 1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가슴 높이에서부터 사전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엄청난 소리에 놀란 선배는 그제서야 연필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들며 “오, 조지. 뭘 도와줄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조지는 그 선배의 아내에게서 축하 전화까지 받았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다. 






조지 로이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악의 슬로건은 “조지, 늘 조심해!”였다고 말한다. 크리에이티브에 있어서 조심스럽다는 것은 똑같거나 평범해지는 지름길이며 결국 그 광고는 묻혀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가 만든 광고 중 무하마드 알리를 순교자 성 세바스찬처럼 표현한 에스콰이어 표지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그는 인종차별이나 반전 등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위해서 그의 크리에이티브를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남들이 안 될 거라고 하는 말에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도 충고한다. 이는 마치 어려운 일 앞에서 “해보기는 했어?”라고 물었다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도 궤를 같이 하는 말이다.




‘나는 MTV를 원해’라는 캠페인에 주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을 때 그는 영국에 있는 믹 재거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MTV를 원해!”를 외치게 만들었고, 억울하게 300년형을 선고받은 허리케인 카터를 구하기 위해서는 밥 딜런을 찾아가 딜런에게 ‘허리케인’이라는 노래를 만들고 내친김에 콘서트까지 열게 했다. 밥 딜런은 이 곡을 가지고 ‘허리케인의 밤’이란 콘서트를 두 번이나 열었는데 한 번은 놀랍게도 감방 안이었고 두 번째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만약에…어떻게 될까?”라는 순진무구한 생각을 도중에 접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간 덕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120 개의 충고 내내 잘난척을 삼가지 않는 조지 로이스 할아버지, 하지만 그는 정말 잘난척 할 만하다. 트렌드를 쫒아가는 것은 덫에 빠지는 일이며 ‘안전’은 죽음을 뜻한다고 외치는 그에게서 특히 존경스러운 점은 많은 광고인들에게 "왜 그냥 크리에이터로 남으려고 하느냐, 문화 선동가가 될 수도 있는데!”라고 선동한다는 점이다. 이천 년 전 소크라테스도 젊은이들에게 비슷한 소릴 하다가 독배를 받았지만 현대의 선동가 조지 로이스는 여든 살이 넘은 지금도 팔팔하게 살아서 현역 광고인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마구 던지고 있는 것이다. 


원제가 'Damn Good Advice'인 이 책은 아내가 출판기획자로 근무하는 세종서적에서 며칠 전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인데 난 기획자의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들보다 먼저 이 책을 접하는 행운을 누렸다. 교정쇄로 받아본 책은 일단 내용이 너무 쉬우면서도 통쾌하고 흥미진진했다. 120 개의 충고들은 짤막짤막한 챕터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무 데서나 펴보기도 좋았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 개인적 친분이 있는 카피라이터 정철 선배와 CF감독 백종열 실장님에게 짧은 추천사를 부탁했는데 다행히 두 분 모두 흔쾌히 추천사를 써주셨다. 고마운 분들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나도 그들과 함께 추천사 한 줄을 뒷표지에 같이 올리게 되었다. 내가 쓴 추천사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동료에겐 추천하지 않은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배운 걸 당장 그 사람들에게 써먹고 싶은 욕망에 먼저 시달리게 될 테니까. - 편성준(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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