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4.11 총선. 그 때쯤이면 대선.
이번 크리스마스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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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짧은 글 짧은 여운 2012. 3. 23. 13:27



행복은 사소한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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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도 생전에 신용카드를 만드신 적이 있었을까. 영화 <화차>를 보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카드빚과 사채에 몰려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 남이 되어 살아보려고 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법정 스님께서는 누군가가 선물한 난 화분을 키우다가 무소유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지만, 그건 도 닦는 분들이나 가능한 얘기고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은 사랑이든 건강이든 집이든 뭐든지 소유해야 행복을 느낀다. 아니 그래야 행복과 조금 더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결혼을 앞두고 이제 막 나온 청첩장을 들고 예비 시댁을 찾아가던 선영과 문호. 그런데 휴게소에서 선영이 사라진다. 감쪽같이. 문호는 급하게 줄행랑을 친 흔적이 역력한 선영의 집안을 확인한 뒤에야 망연자실 한다. 전직 형사였던 사촌형 종근의 수사에 의해 선영의 사연이 점차 밝혀진다. 우선 선영이는 강선영이 아니라 차경선이란다. 그리고 전 직장도 가짜, 고향도 가짜. 어제까지 한 침대에 누워 신혼 살림을 꿈꾸던 여자에 대해 문호는 도대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화차>는 미야베 미유키 원작 소설을 변영주 감독이 5년이나 주물러 2012년 대한민국에 맞춰 재구성한 영화다. 이전 영화들이 좀 느슨했고 비교적 저예산에 김민희라는 카드도 그리 미덥지 않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아주 잘빠진 작품이 나왔다.

차경선은 아버지의 빚에 몰려 사채를 쓰게 되고 그 빚에 의해 개인파산을 당한 고아다. 세상에 의지할 데 하나 없는 그녀는 결국 자신과 비슷한 여자를 골라 살해하고 그녀의 신분을 차지해야만 살 수 있다. 물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에게 용서라는 말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달려야 하는 사람의 내면은 얼마나 외로운가.

김민희의 순간 집중력은 놀랍다. 펜션 장면에서 김민희는 놀라운 연기를 펼치는데, 정작 본인은 그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기절했다고 한다. 얼만 전 서울아트시네마 ‘친구들 영화제’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상영 후 변영주 감독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에 나섰던 김민희는 “페이 더너웨이가 잭 니콜슨에게 뺨 맞는 장면을 더 일찍 봤더라면 <화차>에 응응할 수 있었을 텐테…” 라고 아쉬워했다. 그런데 그 마음가짐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이번 영화를 보면 누구든 그녀가 이미 연기파 배우의 반열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을테니. 

미미 여사(미야베 미유키의 별명)의 원작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고 긴장을 늦추지 못한 것은 변영주 감독의 탄탄한 각본과 구성 덕분일 것이다. 거기다 조성하의 안정된 연기는 또 얼마나 영화를 빛내 주는가.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왕세자의 스승으로 나올 때부터 정말 인상 깊었던 배우 조성하는 오락 프로그램 덕에 우연히 뜬 ‘꽃중년’ 이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에서 여실히 증명해 준다. 하다 못해 용산역으로 급하게 달려가야 할 상황이 닥치자 주차장에서 후배 형사에게 “야, 너 나 알아 몰라?” 라고 묻고는 “알죠. 선배님.”이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열쇠를 낚아채고는 “그럼 됐어.”하고 차를 몰고 가는 장면조차도 조성하가 연기해서 쾌감이 더 큰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다소 경직되고 전형적이었던 이선균의 작품 해석력은 좀 아쉽다.


자크 라캉은 “욕망은 빈 공간이 만드는 환상이므로 바랐던 것이 채워지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라고 했다. 문제는 바랐던 것이 채워져도 결국 제로에 가까워지는데 그게 채워지지 않았을 때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건 차경선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회사 CEO 출신 대통령과 5년 간 살아온 대한민국 구성원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참 무섭다. 일요일 심야영화로 봐서 더 후회했다. 욕망을 싣고 달리는 지옥행 급행 열차, <화차>는 마음이 스산해지는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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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이정재와 함께 [정사]를 찍을 때 이재용 감독은 어디선가의 인터뷰에서 “10년 후에 봐도 촌스럽지 않은 화면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이후 이재용의 영화들은 좀 들쭉날쭉한 면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그 영화만큼은 기름기가 다 빠진 무채색의 배경들이 많이 등장하고 또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대사들도 어느 정도 텍스트의 품격을 높여놓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미셸 아자나비시우스의 [아티스트]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역시 기본은 힘이 세다’ 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컬러 사진도 흑백 사진의 깊이 앞에서는 무릎을 꿇듯이 흑백 영화가 주는 묘한 향수와 클래식함은 3D영화 시대에도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전에 허우 샤오시엔이 [쓰리 타임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무성영화 형식으로 처리했을 때도 참 신선하고 고급스럽다고 느꼈었는데 이 영화는 아예 러닝타임 내내 흑백 무성 영화의 관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때는 1937년. 무성영화의 전성기다. 당대 헐리우드 최고의 인기 배우인 조지, 그리고 그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정을 키워가는 한편 차세대 스타로도 발돋움하고 있는 여배우 페피. 그러나 그 때는 무성 영화가 가고 토키 영화가 상승세를 타는 변곡점의 시기였다. 토키 영화를 혐오하던 조지는 자신이 만든 무성 영화가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자 실의에 빠지고 조지를 흠모하는 페피는 그런 그를 도우려 한다…


애잔하고 단순한 스토리 라인은 흑백 영화의 단호함 덕분에 더 크게 탄력을 받는다. 대사가 들리지 않는 주인공들의 마음도 더 애절하게 전달된다. 거기다가 인자하고 따뜻하게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배우 쟝 뒤자르뎅과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불며 손바닥 키스를 날리는 베레니스 베조의 과장된 연기들은 마침내 들리지 않는 않던 것을 들리게 하고 무채색의 화면 위로 풍부한 색감을 상상하게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조금 더 위대한 이유는 결핍을 상상력으로 채울 줄 아는 능력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굳이 영화관까지 찾아가서 흑백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이러한 ‘결핍의 위대함’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임은 물론일 것이다.

화려한 음악과 춤이 있고, 영화사의 계단 장면 같은 멋진 미장센도 있고, 존 굿맨이나 제임스 크롬웰 같은 든든한 조연들의 명연기도 있다. 그리고 인간보다 더 연기를 잘 하는 개도 한 마리 나온다. 다 보고 밖으로 나오면 잠깐 세상이 행복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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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1일 저녁, 저는 갑자기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에 대해 뭔가 정리를 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이 글을 휘갈기고 나가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글은 2년 전에 쓴 메모입니다. 뭐, 그렇다고 그 해 읽은 책을 다 쓴 건 아니고 생각나는 것만 몇 권 추려 간단하게 리뷰를 썼습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한 권씩 다시 써야지'라는 생각이었으나...역시 그런 게 생각대로 될 리가 없죠. (그러고보니 '생각노트'라는 제목도 여기서 나왔군요)



2010년의 장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_ 조너선 샤프란 포어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 911테러 당시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은 아빠의 다급한 전화를 받지 못해 트라우마에 빠진 아이의 이야기,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 남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만 했던 할아버지의 얘기가 겹친다.

그런데 이 슬프고도 웃기고 품격 있는 문체는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어느덧 신선한 파격으로 흐른다. 놀라운 필력과 참신한 기획으로 마음을 흔든 역작. 단연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 저자의 데뷔작 <모든 것이 밝혀졌다>도 출간되어 있다. 는 대학생 때 논픽션으로 구상했던 작품인데 지도교수의 권유로 인해 소설로 개작되었다고 한다. 첫 작품부터 작가의 뚝심과 역량을 느낄 수 있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_ 주노 디아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왕따. 섹스를 좋아하는 친누나와 살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도 숫총각인 찌질이. 게임만 좋아하는 뚱뚱하고 못생긴 오스카 와오의 이야기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악명 높은 독재자 투르히요의 역사와 유머러스하게 엮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처음엔 뭔 얘긴가 하다가 읽을수록 빠져드는 마술 같은 책. 주노 디아스는 올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와 더불어 천재라는 말을 들어도 당연한 작가. 그의 데뷰 단편집 <드라운>은 나 같은 놈이 읽고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책인가 보다. 읽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다시 책장을 들추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날을 잡아서 정갈한 음식만 골라 먹은 다음 맑은 정신으로 다시 천천히 읽을 계획.




 
2010년의 단편

 
암소 _ 토마 귄지그


앙리라는 한 남자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신문 찌라시에서 ‘여자친구를 찾고 계십니까? 자연스럽고 순수한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만 연락 바랍니다.(성적 접촉이나 매춘 아님)’이란 요상한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앙리는 한 여자를 만나 집으로 데려오는데, 알고 보니 이 여자는 어떤 농학자가 유전자를 조작해 여자로 탈바꿈시킨 암소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라는 소설집에 있는 기발하면서도 황당한 단편 <암소>는 이렇게 시작한다.

정말 골 때리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설이 골 때리는 얘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소재를 통해 인간의 모순과 인생의 슬픔, 외로움 등을 잔인할 정도로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암소> 외에도 여섯 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는데, 모두 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란 인간이길래 이따위로 못돼먹고 뒤틀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고 환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가학적인 유머감각에 낄낄거리다가도 갑자기 세상 살기가 싫어질 정도로 살벌한 냉기를 함께 느끼게 해주는 미친 작품들.


 안녕, 인공존재 _ 배명훈

<판타스틱>이란 장르문학 잡지를 통해 배명훈을 만나 그의 작품들에 매료되어 지낸 지 벌써 이삼 년이 되어 간다. 데뷔 당시에 “설정을 굉장히 세게 한 뒤 일반 소설 쓰듯이 쓰고 그냥 SF라고 우기면 되지 않을 까 될까?”라는 생각으로 SF작가가 되었다는, 이 농담같은 그의 소설들은 그래서 그런지 설정만 SF이고 등장 인물들이나 행동양식, 사고방식 등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로봇공학자들이 벌레보다 작은 극소형 로봇으로 벌이는 스파이전 이야기 , 실연 당한 은경 씨가 구입한 중장비가 하필 예비군 훈련 징발 대상이 되는 바람에 화성까지 날아가 "예비군 훈련은 간식 안 주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일삼다가 급기야 기계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게 되는 이야기 , 수면공학을 연구한 덕분에 꼴보기 싫은 총통의 임기 5년 동안 잠을 자게 된 남자 이야기 ...

이번 창작집 <안녕, 인공존재>는 이전의 단편들이나 연작소설 보다 더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들로 그득하다. 난 <안녕, 인공존재>와 다른 창작집 표제작이이기도 했던  <누군가를 만났어>가 특히 좋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과 유려한 문체가 '동시패션'적으로 뛰어난 작가. 어떤 면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더 좋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 휘뚜루마뚜루 세계사1 _ 최제훈

얼마 전 독서일기에도 얘기했던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에 실린 단편. 다채롭고 귀여운 인문학적 지식에서부터 시침 뚝 떼고 덤비는 형식의 변주까지. 이 작가의 입담은 정말 굉장하다. 말이 필요 없다. 내용에 대해 더 이상 발설하고 싶지 않다. 이런 책은 전해 듣는 것보다 직접 읽는데서 오는 쾌감이 훨씬 더 크니까.



대설 주의보 _ 윤대녕

 
당대 젊은 작가들 작품까지 빼놓지 않고 섭렵한다는  탐욕의 학자 김윤식은 이인직의 <혈의 누> 이후 대한민국 문학사의 새로운 연대기를 여는 작품으로 대뜸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선정한 적이 있다. 90년대 혜성처럼 등장해 새로운 감수성으로 사람들에게 '생물학적 상상력'이니 '존재의 시원'이니 '회기'니 하는 알쏭달쏭한 단어들을 주입시키던 그의 섬세함은, 그러나 곧 세상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강산이 한 번 반쯤 변했을까.여름 휴가를 떠나기 직전,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나는 그의 신작 <대설 주의보>를 읽었다. 여전히 윤대녕이었다. 툭하면 여행을 떠나고, 주인공은 먹물이 든 비정규직 지식인이기 일쑤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산사로 섬으로 바닷가로 흘러다닌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뭐가 사연이 있는 여자들을 만나 잠깐씩의 연애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맨날 통속적인 연애 얘기를 다루면서도 윤대녕이 쓰면 그것이 통속에서 벗어나  일정한 품격과 정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재수없는 문어체로 꼰대같은 대사들을 뱉어내기 일쑤인 남자 주인공들에게도 어느덧 중독이 되어서 그런지 결국은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이다. 그 옛날 읽는 사람들 가슴을 뻐근하게 했던 의 연인들이 다시 만나 못다한 뒷얘기를 이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는, 그러나 뜻밖에도 따뜻하고 희망적인 결말을 맞는다. 파리하게 여리고 냉혹하던 윤대녕도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윤대녕의 소설을 읽고 나면 갑자기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물론 내가 당장 집을 나서서 선운사나 속초, 강릉으로 아무리 돌아다닌다 해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랑 술을 마시며 말도 안 되는 화두 몇 개를 서로 집어 던지다가 결국 함께 자는 일은 절대 안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런 아련한 예술적 향취와 수채화적인 풍경에 갇혀 꼼짝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 편 한 편 다 표구를 해서 조용한 화랑에 걸어놓고 싶은 느낌의 예술 소설들. 표제작인 <대설주의보>와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가 그 중 특히 좋았다.

 

  박시은 특급 _ 곽재식

이 단편은 원래 2009년도에 출판된 <U,ROBOT>이라는 작품집에 실린 소설인데 뒤늦게 책을 사서 읽은 내가 개인적으로 감동한 작품이라 그냥 올해의 책에 올리게 되었다.

주인공이 일하는 '한국 천문 정보 해석 연구소'라는 이상한 기관은 사실 별 볼일 없는 곳이었다. 별을 쳐다보는 곳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 볼 일 없는 곳인 이 장소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이 미국에서 보내온 자료들을 해석하다가 우연히 외계인과 통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 최초, 인류 최초로 말이다. 당장 연구소는 수십 배로 확장이 되었고 주인공은 급기야 주요 인물로 부각이 된다. 그런데 주인공은 엉뚱하게도 동료와 한 여자를 두고 싸우며 알력을 쌓다가 이른바 '박시은 문제'로 왕따가 된다.

박시은 문제란 주인공이 예전에 <SBS 단막극장 >에서 방영되었던 탤런트 박시은 주연의 <멋지게 세이 굿바이>라는 드라마에 대해 말다툼을 하다 동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 것을 말한다. 황당한 것은 주인공 말고는 아무도 그 드라마의 존재 자체를 기억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인터넷으로 방송국으로, 심지어 박시은 집으로 전화를 해봐도 사실 확인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외계인과 교신을 하게 되는 날이 왔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문화부장관이자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역사적인 첫 교신 담당자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외계 문명의 신호를 처음 발견한 주인공에게로 그 영광이 돌아가게 되었다. 사필귀정. 역사적인 순간이다.  세계인들의 눈과 귀가 한꺼번에 집중되는 코리아에서 KBS 김경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공은 중앙 통제실로 올라 미국 대통령, 한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고 심지어 키보드 앞에 앉기 직전엔 문근영이 와서 뺨에다 뽀뽀까지 해줬다. 주인공은 외계 문명과의 첫 교신 내용으로 너무 거창하고 철학적인 거 말고, 그냥 간단하고 평범한 인사말을 하라는 데이비드 그로스 박사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혹시 전에 SBS TV에서 단막극으로 방송했던 <멋지게 세이 굿바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가? "

통쾌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곧바로 그 드라마를 찾아 보았다'는  외계인의 성실한 답변에 의해 자신의 오타쿠적인 정체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다음날 SBS 토크쇼에 탤런트 박시은과 함게 출연해 외계 문명과 처음 교신하게 된 계기와 고충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물론 박시은이 출연했던 단막극 <멋지게 세이 굿바이>는 전 세계 107개 방송국에서 우주 문명 특선으로 재방송되었다...


 

 2010년의 에세이

 몰락의 에티카 _ 신형철

현재 대한민국에서 글 좀 쓴다는 작가들이면 누구나 줄을 서서 신형철이 평론을 써주기를 기다린다는 농담은 현재 신형철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평론가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책에서 김훈의 소설에 대해 쓴 평론을 읽어보면 그의 진가를 당장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신기한 것은 신형철은 평론가임에도 불구하고 글에서 어떤 ‘고결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고종석과는 또 다른 느낌의 지식인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폭설로 고립된 산장같은 데서 한가롭게 천천히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이다.

 

 책을 읽을 자유 _ 로쟈(이현우)

전작인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로쟈가 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독서 도중 벌떡 일어나 이 책에 언급된 다른 책을 당장 사러 나가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그가 읽고 소개하는 싸르트르, 도스토예프스키, 강상중, 지젝, 보드리야르, 벤야민에서 타르코프스키나 우석훈, 가라타니 고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독서편력들은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새롭게 만나고 싶어진 저자들의 리스트'로 돌변하게 된다.

이현우는 '그 사람이 읽는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책에 대해 무척 엄격한 편인데, 그게 다 독자의 입장에 서서 취하는 엄격함이라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이 책에서는 특히 번역서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번 지적하는데 아주 구체적인 단락들을 원문과 비교해 자세히 실어놓았다. 옛날에 읽은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왜 다시 새롭게 번역된 책으로 다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프롤로그에서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쓴 그의 글은 평범한 진리면서도 이 책의 집필 의도(또는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해 준다.

"흔히, 인간을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으로 정의하면서, 인간이 똑똑해서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똑똑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한 사정은 독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듯싶습니다. 즉 우리는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집니다. 따라서 독서 능력이라는 '옵션 액세서리'는 있으나마나 한 장신구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_ 장하준

지난 30년 간 전 우주적인 절대 진리처럼 맏들어졌던 '시장 자유주의'라는 개념에 강력하게 '안다리 후리기' 기술을 건 장하준의 역작. 최근 독서일기에 언급을 했으므로 새삼 다시 할 얘기는 별로 없지만, 특히 이 책이 올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우리나라 인문학 독서 시장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는 건 자랑스럽게 다시 거론하고 싶어진다.

언론에서는 올해 이토록 딱딱하고 어려운 책들이 새삼 우리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은 이유가 현 정부의 비도덕성, 무능력이나 세계적인 경제난을 반영한 결과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건 이차적인 문제다. 가장 첫 번째로 꼽아야 할 것은 바로 텍스트의 우수성이다.

이 책은 일단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부터 독자들의 눈길을 확 끌고, 내용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전 인문학 책들보다 우수한 것이다. 그러니 나같은 문외한들도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며칠 전 전철에서 이 책을 읽는 50대 아주머니를 본 적이 있다. 선입견 때문이겠지만 평소 인문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 아주머니의 독서 풍경을 보면서 나는 묘한 동지애까지 느낄 수 있었다.



삼성을 생각한다 _ 김용철

'이 책을 읽으면 뭐하냐? 어차피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도 삼성 꺼고, 전화기도 삼성 제품인데. 삼성 욕하면서 카타르시스는 잠깐 느끼겠지만 너라구 뭐 다르겠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차피 똥 될 거 밥은 먹어서 뭐하나, 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삼성이 힘이 셀수록, 현대가, 효성이 태영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국민들의 돈을 훔치면서도 큰 소리 빵빵 칠수록, 우리는 우리 앞에 던져진 최소한의 진실 앞에서라도 두 눈을 부릅 떠야 예의 아니겠는가.

김용철도 어차피 7년간이나 삼성밥 먹던 놈 아니냐고? 맞다.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이다. 7년 동안 '호의호식'과 '장밋빛 미래'라는 마약 속에 빠져있던 한 엘리트가 뒤늦게 기적적으로 그 늪에서 뻐져나와 목숨 걸고 쓴 책이 바로 다. 어떤가? 가끔 이런 미친놈이 있다는 건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조금 남아 있다는 증거 아닌가?


 

생각 노트 _ 기티노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는 한 번도 영화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신기하지 않은가? 기타노 다케시가 쓴 책 를 읽어보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대학 시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이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대학을 그만 두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날로 만담가의 길로 접어든 그는 그때부터 온 청춘을 코미디에 바친다. 얼마나 열심이었냐 하면 여자와 섹스를 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내일 공연할 만담 소재를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의 얘기도 기타노 다케시가 하면 재미있는 얘기가 된다. 고생하던 시절의 얘기도 기타노 다케시의 입을 통하면 꼭 필요한 과정이나 신기한 무용담처럼 들린다.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유머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는 참 멋진 인간이다. 진정 부러운 사람이다.

 



 2010년의 추리소설

 로마 서브 로사1,2,3,4 _ 스티븐 세일러

<로마 서브 로사>는 올해 읽은 책 중에도 가장 재밌고 뿌듯했던 작품이다. 일단 탐정물인데다가 스케일도 크고 문체도 좋고 캐릭터들도 훌륭하다. 주인공이자 사설 탐정인 '더듬이' 고르디아누스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다. (더듬이라는 별명은 늘 사건의 자료를 수집하고 날카로운 추리를 일삼는 고르디아누스의 명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촉이 있는’ 사람 정도가 되겠다)

소설의 배경이 로마시대이고 키케로나 슐라, 스파르타쿠스, 크라수스 등 실존 인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고르디아누스만은 가상의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작가 스티븐 세일러는 독자들로 하여금 매우 자유스럽고 현실적이면서도 쿨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더구나 로마 시대는 그리스도 이전 세대이기 때문인지 돈, 종교, 윤리, 섹스, 동성애(작가인 스티븐 세일러가 동성애자다) 등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훨씬 자유롭고 심지어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1권 [로마인의 피]에서 키케로와 고르디아누스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도 계속 으르렁거리는 사이로 나온다. 난 이게 이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고르디아누스가 키케로에게 주눅이 들거나 무조건 존경하는 역할이었다면 퍽이나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존경은커녕 열심히 변론을 준비하는 키케로의 목소리를 두고 '앵앵거린다'고 빈정거리는 고르디아누스는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또 둘이 하나로 뭉치기도 하고.

전편에 흐르는 은근하고 현대적인 유머 감각 또한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2권 [네메시스의 팔] 초반부에서 고르디아누스가 사건 의뢰 비용을 평소 임금의 다섯 배로 부풀려 협상하는 데 성공한 뒤에 "마침내 뒷담을 보수하고 아트리움의 부서진 타일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어쩌면 베데스타를 거들 노예 소녀도 하나 들일 수 있을 터..."라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대목에선 나 혼자 킬킬대고 많이 웃었다.

<로마 서브 로사>는 문장이 참 좋다. 번역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장중하면서도 유연하고 기지와 통찰력도 넘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고르디아누스의 캐릭터일 것이다. 힘이 세거나 성격이 거친 것도 아니어서 늘 부상을 당하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또 사건을 맡아 정신 없이 동분서주하는 처지지만 결국 만화 '가제트 형사'처럼 사건 해결의 핵심에서는 조금 비껴나거나 가려지는 씁쓸한 상황들이 그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마침 화제의 미드 <스파르타쿠스>와 소설 2권의 시대가 딱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더 즐거운 여름이었다. 난 아무래도 고르디아누스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건 이제 겨우 4권. 아직 4권은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다. 의 춘희 말마따나 '냉장고에 일주일 치 양식을 쌓아놓은 것처럼 뿌듯'하다.

 

 


2010년의 만화

 심야 식당 _ 아베 야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여는 심야식당이다. 메뉴는 그냥 밥하고 그날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 아무거나. 그래서 어떤 사람은 비엔나 소시지만 잔뜩 먹고 가고 누구는 삶은 계란을 먹고 가기도 한다. 일본 작가 아베 야로가 그리고 쓴 만화책 이다. 일본에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선 소화제 '훼스탈'과 대부업체 '미즈사랑' CF들이 설정과 분위기를  일본 드라마와 똑같이 만들어서 욕을 먹기도 했다.

난 심야식당의 영업시간이 마음에 든다. 밤 열두 시부터 아침 일곱 시까지는 희망이나 활력, 출세, 메이저 등과는 거리가 있는 시간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 되는 새나라의 어린이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시간에 여기 오는 손님들은 대개 밤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야쿠자, 형사, 호스티스, 복서, 스트립 댄서, 가라오케 가수도 있고 작곡가도 있다. 주인장은 음식을 만들지 않을 때는 담배를 꼬나 물고 있는데 눈에 심각한 칼자국이 있는 게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인다.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사소한 사연이 있고 그 얘기가 끝나면서 한 편이 마감되는 연작 만화 형식인데, 그 작은 이야기 하나 하나마다 사람의 인생이 담기는 게 놀랍다. 내공이 있는 이야기 솜씨다. 난 1권의 편을 보다가 울고 말았다. 다섯 권까지 한꺼번에 샀지만 휙 다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아직 3권까지밖에 못 읽었다. 박스세트로 사면 철과 자석으로 된 예쁜 메모판도 준다.

 



2010년의 고전


불멸 _ 밀란 쿤데라

작년에 나의 술친구 국동이 형을 만나서 술을 마시며 요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꼼꼼히 재미 있게 읽었다고 얘기했더니, 국동이 형은 나이 들어서 다시 읽으면 정말 좋은 책이 <불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서점에 가도 은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에 절판이 된 것이다. 국동이 형은 그 후로 만날 때마다 자기 집에 <불멸>있다고 자랑을 했고, 난 그걸 빌려달라고 사정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만나면 늘 술만 진탕 마시고 헤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서점에 가서 미친 척하고 검색을 해보니 민음사에서 다시 찍어낸 2010년 3월 26일 자 초판이 있길래 냉큼 사서 읽었다.

불멸의 시인 괴테와 그런 괴테의 연인으로 남기 위해 평생 애썼던 베티나의 이야기. 그리고 야녜스라는 여자와 그녀의 동생 로라, 그리고 남편 폴의 이야기. 작품 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그 자신이자 아베나리 교수의 친구인 소설가 밀란 쿤데라를 등장시키고, 괴테와 함께 베토벤, 헤밍웨이 등을 불러내 불멸에 대한 토론을 시키기도 한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불멸과 역사에 대한 예시, 그리고 고귀함과 막장을 무시로 오가며 전개되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의 고군분투기가 쿤데라의 요설을 타고 페이지마다 흩뿌려진다.

베티나는 온갖 노력과 협잡질 끝에 결국 역사 속 괴테의 연인으로 남아 불멸을 얻는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불멸에 대해 생각하다가 지미 카터의 예(이것 저것 한 일도 많지만 결국 조깅 도중 쓰러져 일그러진 입을 보여준 ‘우스꽝스런 불멸’ 속으로 들어간)를 통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생기더라도 섹스 비디오만은 찍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꼭 얘기해야겠다는 엉뚱한 교훈을 얻었다.   

 


 안나 카레니나 _ 레흐 톨스토이

 

부러운 것 중 하나가 비교적 교양이 뛰어난 친구들(내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별로 없긴 하지만)을 보면 엄청나게 두꺼운 책들도 휙휙 잘 읽어낸다는 점이다. 난 김용 선생의 무협소설처럼 잘 읽히는 책이 아닌 경우 일단 500페이지가 넘어가면 좀 겁을 먹는 편이다.
그래도 두꺼운 책에 대한 미련을 좀처럼 버릴 수가 없었던 나는 어느날 서점에 가서 3권 짜리 를 과감하게 질렀다. 같은 3권 짜리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경합을 벌인 결과였다(하하, 미쳤군).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가 젊었던 시절 쓴 대작이다. 그러나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길고 방대하긴 하지만 뼈대를 이루는 내용은 러시아의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라는 젊은 장교를 만나 바람 피우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카레니나의 시누이 키티에게 청혼했다 거절 당한 뒤 시골로 돌아가 농장을 개혁하려 하는 젊은 농장주 레빈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룬다.

결과는? 아직 반쯤 밖에 읽지 못했다. 일도 해야하고.....다른 책들도 읽어야 하고...게다가 연말연시에 술자리는 좀 많은가..... 그래도 이 책을 뻔뻔하게 '올해의 고전'에 굳이 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따로 읽은 다른 고전이 없으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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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책이 어딜 갔지? 아, 갑자기 다시 보고 싶어졌는데...아무래도 누군가가 빌려갔겠죠. 누구든 이  글 보고 혹시 기억이 나신다면 제게 돌려주시길. 부탁합니다. 말로 할 때 좀 들읍시다. 자수하여 광명 찾읍시다. ^^ (몇 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은 후 쓴 독후감을 다시 올려봅니다)




이야기 하나.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서로 우의를 다지고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국경인 우스타파야 고개에 예수 동상을 하나 세우기로 했다. ‘안데스의 예수’라는 동상이다.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진행 과정에서 곧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런저런 형편을 따져서 설계하다 보니 동상이 아르헨티나 쪽을 바라보도록 만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졸지에 칠레는 예수의 등만 바라보게 생긴 것이다. 칠레 국민은 화가 났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야 하는가? - 가깝게 지내자고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두 나라는 이 동상 때문에 껄끄러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한 사람은 놀랍게도 외교관이 아니라 신문기자였다. 그는 기사에 이렇게 썼다. “예수님이 아르헨티나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아직 더 많이 돌봐줘야 할 나라이기 때문이다.” 자칫 국가간의 분쟁으로 번질 수 있었던 불씨를 신문기자의 통찰력이 해결한 것이다.
 

이야기 둘.
 
바우하우스를 창시한 위대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디즈니랜드를 만들 때 얘기다. 그는 이미 다른 구조물들은 다 지어놓고도 디즈니랜드 안에 길을 어떻게 내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피우스는 프랑스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포도로 유명한 고장이라 포도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유독 한 곳에만 사람들이 붐비는 것이었다. 그곳은 길가에 포도를 내놓고 파는 게 아니라 길가의 함에 5프랑만 넣고 나면 얼마든지 포도밭에 들어가 포도를 따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이 포도원의 주인은 몸이 불편한 노부부였는데 포도를 따기 힘들어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다.
 
그로피우스는 여기서 얻은 영감을 디즈니랜드에 활용하기로 했다. 시공팀에게 길을 내기로 한 곳에 잔디 씨를 뿌리고 예정보다 일찍 거길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씨를 뿌린 곳엔 파릇파릇 잔디가 돋아났고 사람들이 지나다닌 발걸음들을 따라 작은 오솔길이 만들어졌다. 일정한 모양은 아니지만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난 길이었다. 그 다음해 그로피우스는 이 오솔길을 인도로 만들었다. 이 길은 1971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조경건축 심포지엄에서 가장 훌륭한 내부 도로 설계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야기 셋.
 
일본에 사는 한 여자가 병원에 입원한 외아들을 간호하면서 겪은 일이다. 어느 날 이 여자는 아들에게 우유를 먹이려고 했는데 아들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냥 누워서 우유를 마실 순 없을까?” 고민하던 여자는 마침내 빨대 중간에 주름을 넣으면 환자가 일어서지 않고도 우유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냈다. 이미 주름이 잡힌 호스가 물이나 석유를 배달할 때 많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은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 꺾어지는 주름 빨대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 넷.
 
어느 날 저녁 경선과 단 둘이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신사동에 있는 ‘영덕물회’에 간 우리들은 요즘 함께 진행한 잡지광고 얘기를 비롯한 다른 일 얘기들을 두런두런 하다가 그만 책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요즘 박경리의 <토지>를 다시 읽느라 다른 책을 읽지 못한다고 했더니 경선이 또 <시크릿> 얘기를 한다. 전에 어떤 여자도 대뜸 선 보는 자리에서 그 책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경선은 읽어보면 다 아는 얘기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 하다며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하늘우산(Sky Umbrella)’이란 걸 들어봤냐고 묻는다. <통찰의 기술>이란 책에 나오는 애기란다. 티보 칼만이라는 작가가 만든 이 하늘우산은 우산 안쪽에 맑은 하늘을 그려 넣은 제품이다. 즉 우산을 비 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재해석 한 것이다. 이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난 술자리에서나온 얘기라 곧 잊을까 봐  볼펜과 메모지를 꺼내 책 제목을 적어 놓는다.
 
 
 

통찰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앙투완 앙리 조마니는 ‘한 눈에 알아보는 기술’이라고도 했다. 신병철이란 마케터가 지은 <통찰의 기술>은 ‘통찰’은 무엇인가로 시작해 결핍에서 통찰을 찾아내고 이를 아이디어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 책이다.

흔히 통찰력이 있다, 라는 말은 최고의 상찬으로 통한다. 그것은 발명가든 광고인이든 기업가든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성공의 열쇠다. 최고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말은 무엇일까? 내 생각엔 속담이 가장 근접한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스피드011,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라는 캠페인도 당시 이용찬 사장이 속담집을 보다가 ‘시도 때도 없다’라는 말을 변용해 만든 것이라 들었다. (신병철은 이용찬과 함께 <삼성과 싸워 이기는 전략>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예전에 작가 박범신이 얘기한 일화도 생각난다. 하루는 방에서어머니가 주무시는 줄 알고 불을 끄고 나가려 했더니 어머니가 대뜸 '왜 남의 눈을 빼간댜?" 라고 하시더라는 것이다. 박범신은 그 통찰력 있는 한 마디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통찰은 성공 비즈니스의 핵심 노하우다. 이 책에 소개된 수 많은 사례들은 모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마케팅과 현재까지 통하고 있는 발명 발견 깨달음에 대한 얘기들이다.
 
소비자가 사랑하는 제품들은 한결같이 그 제품의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불필요한 정보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구글이 탄생했고, 고약한 냄새가 싫어 수세식 변기가 출현했다.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당장 보고 싶다는 딸아이의 응석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탄생시켰다.
 
그럼 이런 통찰에 맞춰 ‘대운하’ 를 살펴보면 어떻게 될까?
 
뭔가 확실한 공약이 필요했던 이명박은 이미 짭짤하게 재미를 보았던 청계천에 이어 대운하를 생각해냈다. 처음엔 물류와 고용창출이 존재 이유였다. 그런데 생태계가 걸렸다. 물류효과도 별로라는 검증이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관광 쪽으로 선회했다. 중국엔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보러 오지 않던가.
 
그러나 대운하를 건설하려면 쓸데 없는 돈도 너무 많이 든다. 어떤 통찰을 대입해봐도 이것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보편성과 공감을 획득하지 못한 채 운하 예정지에 땅을 산 사람들과 일부 사업 관계자들에게만 존재의 이유를 가지는 프로젝트가 돼버린 것이다.
 

신병철은 마케터다. 특히 브랜드 전략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뿐 아니라 하이트맥주, 컨디션, SK텔레콤, 처음처럼 등등의 실무 캠페인에 관계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고급한 장사꾼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더듬더듬 읽다 보면 비즈니스 영역뿐 아니라 인생의 영역에도 두루 통하는 통찰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상황에 맞게 '구라'로 변용시킬 수 있는 적절한 예시와 방법론을 던져 준다.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일독을, 꼭 꼬시고 싶은 클라이언트나 멋지게 보이고 싶은 이성이 있는 사람들에겐 재독을 권한다.
 
 

* 책을 꼼꼼히 읽는 방법 중 하나. 오자를 체크하며 읽는 것이다. 난 이 책 144페이지 아홉째 줄에서 오자를 하나 발견했다. (으이구, 쪼잔한 놈)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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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독후감은 쓴지도 꽤 됐고 또 지금도 가끔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기도 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이 책을 찾아 읽어볼 필요가 생겼고, 또 어떤 분께서 이 글을 이메일로 한 번 보내달라 하시는 바람에  다시 들춰보게 된 겁니다.  



다시는 광고인이 낸 책을 구입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나는, 어느날 고속터미널역에 있는 영풍문고에 가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라는 따끈따끈한 새 책을 발견하게 된다. 에잇, 또 광고책이군. 책값도 더럽게 비싸네.(17,500 원이다) 심드렁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책을 들쳐보던 나는 두 시간 동안 꼼짝않고 책 속에 빠져들었다가 결국 읽을 분량이 반 정도 남은 그 책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서고 말았다. 젠장.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엄밀히 말해서 광고인이 낸 책이 아니다. 광고를 하는 박웅현 CD를 출판기획자이자 컬럼니스트인 강창래가 만나 오래도록 인터뷰하고 함께 어울려 고민도 하고 해서 펴낸 공동저작이다. 


어떤 사람은 연애편지를 보낼 때 "보고싶습니다" 라고만 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려지지만 보고 싶은 맘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라고 쓴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더 잘 전달되겠는가. 박웅현은 정지용의 이 시를 인용하면서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보고 싶다는 말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말한다. 가령 박경리의 '토지'를 읽는 것은 당장 광고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기초 체력을 기르는 데는 보약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넉 달 간, 한 첩의 보약을 먹듯 <토지>를 읽었다' 고 한다. 인문학적 소양이 받쳐주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아이디어가 되고 소재가 된다. 길 가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는 사람을 보고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타심'을 새삼 환기한 그는, 이를 그대로 광고에 넣는다.


 왜 넘어진 아이는 일으켜 세우십니까?

왜 날아가는 풍선은 잡아주십니까?

왜 흩어진 과일은 주워주십니까?

왜 손수레는 밀어주십니까?

왜 가던 길은 되돌아가십니까?

 

사람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적 소양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고 하자 그는 베네통 광고의 사진을 찍었던 올리비에르 토스카니의 일화를 얘기해준다.

수녀와 신부의 키스 장면, 천사와 악마로 분장한 백인과 흑인 아이의 포옹 장면, 흑인 여성의 젖을 빨고 있는 백인 아기의 사진 등 수많은 화제작을 남긴 토스카니가 [아카이브]라는 잡지와 인터뷰를 할 때 공산주의에 대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다."라고 말한 것이다.

박웅현은 공산주의라는 돌발적 주제에 대해 이렇게 잘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웬만한 철학적 인문학적 깊이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어딘가에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섭지 않다는 말도 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강창래가 따라가서 목격했다는 박웅현의 상공회의소 강의다. 주제는 '한국에서 효과적인 광고 캠페인'이었는데 이제 곧 한국에 와서 커뮤니케이션을 펼쳐야하는 외국인들에게 해야하는 강의였다. 그때 박웅현의 첫 마디는 "저는 한국말로 하겠습니다."였단다.


 "제가 영어를 전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인해 영어로 말하는 순간 제 지적 수준이 초등학생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석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으로서 석사 학위를 가진 지적 수준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박웅현은 이날 동시통역사를 대동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는 좋은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과감한 장치이기도 했고 프리젠테이션의 주제를 더 깊게 부각시키는 효과까지 발휘했다. 아무리 칸이나 뉴욕페스티벌에서 상를 타는 광고라도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에 맞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우리는 버드와이저 wazzaup~광고를 이해 못한다)을 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동시통역사를 쓰는 것으로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내용과 형식이 강의 내용과 제대로 맞아들어간 예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있다고 해도 언어만 알아서는 그 문화에 깊이 젖을 수 없는 것이고,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웅현은 2002년 월드컵과 촛불집회라는 사회적 이슈 속에서도 또다른 통찰을 발견한다. 아디다스라는 광고주에게 팔려고 만든 이 광고는 결국 집행되지 않았지만 그의 인문학적 소양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기에 인용한다.

 

촛불

 

믿지 못할 일이었다.

월드컵 16강

거리는 기쁨에 넘쳤다.

같은 시각

또 하나의 믿지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두 명의 여중생이 죽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던 길이었다.

언론은 크게 다루지 않았다.

미군은 책임이 없다는 발표를 했고

정부는 침묵했다.

두 명의 소녀가 죽었는데

세상은 조용하기만 했다.

한 네티즌이 있었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촛불을 준비해주십시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작은 제안이었다.

한 개의 촛불이었다.

그것으로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

상대는 미국의 군대였고

모든 이의 시선은 월드컵을 향해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촛불이 옮겨 붙었다.

그해 한국은 월드컵 4강에 진입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해 한 개의 촛불이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만들었던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와 작년 '그리고 대학에 떨어졌습니다...수험생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광고 모두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한 기업의 다짐과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대를 읽고 인간을 연구하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인문학이다.

 박웅현은 나도 전에 3년 남짓 다닌 적이 있던 광고대행사 TBWA/Korea의 ECD다.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뜻이다. 그런 그가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온 적이 있다. 젊은 작가 전아리와 함께 출연했었는데, 나는 그때 그가 진정으로 부러웠다. 광고인으로서 독서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게 부러운 게 아니라 광고인이 TV에 나와서 광고 얘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게 부러웠던 것이다.

 며칠 전 TBWA/Korea에서 박웅현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친구 이문선의 사무실에 카피 알바 때문에 갔다가 이 책 얘기를 해줬더니, 그는 박웅현에 대해 이런 표현을 했다.

 "나는 세상엔 두 가지 CD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웅현과 박웅현이 아닌 CD." 

 이런 게 바로 최고의 찬사다. 쉣.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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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도 읽었던 윤준호의 <젊음은 아이디어 택시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윤준호 선생은 지난 30년 간 깊고 정갈한 카피를 많이 써 온 분이다. 윤제림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광고에 대한 책이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세상의 모든 이치들도 광고 크리에이티브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난 이 책을 읽던 도중 오래 전 책장에 박아 두었던 핼 스테빈스의 [카피캡슐]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뭔가 행동을 유발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명제를 믿는다면,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이 책이 꽂혀있던 교보문고 서가에 때마침 발길이 멈춰 섰던 그 우연에 감사.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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