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꾸물꾸물한 금요일 오전.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으로 꽃을 좀 사러 가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에 자주 가던 곳인데 평일 오전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거든요.  

일단 밥을 든든히 먹고 출발합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삼치도 구웠으니까요.

꽃을 사는 것도 일종의 충전입니다. 

'꽃값'이라고 하면 괜찮은데 '화대'라고 하면 단박에 이상해져요. 그렇죠?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피터팬은 어디서나 나타납니다.

오늘은 승복 입은 피터팬을 만났습니다.

'내 머리도 꽃다발로 만들어 달라고 할까?'

"여기서 먹어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그녀와 함께  짜장면을 시켰습니다. 나는 삼선짜장면, 그녀는 옛날짜장면. 돈은 그녀가 냈습니다.

사람이든 회사든 부도가 나면 이렇게 됩니다. 평소에 잘해야 합니다.

꽃을 좀 샀습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우리는 부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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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역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뚝섬유원지역까지 카메라를 메고 천천히 걸어다녔습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차들이 보이더군요. 매일 보는 것들인데도 유심히 들여다 보면 또 다르게 보인다는 건,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동네엔 주차의 달인들이 많이 사십니다.^^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많구요.

 

고개만 들면 이렇게 파란 하늘인데, 자꾸 까먹습니다.

 

다시, 박대통령의 나라.

 

얘들아, 어른들은 슬픈 일이 많단다.

 

다들 왕년엔 힘 좀 쓰시던 분들.

 

100점 보다 훨씬 정겹다. 100명이라는 말.

 

현실 뒤에 숨어 있는 꿈을 상상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문은 열리리라.  

 

누가 좀 얘기해 주지 않을래? 천천히 가도 결코 늦는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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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시나리오 작가 심산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대부]라고 썼을 때 그 밑에 “깡패영화 좋아하셔서 참 남자다우시겠습니다”라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마음이 언짢았던 기억이 난다. 심산은 깡패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대부]가 얼마나 훌륭한 영화인지를 얘기하고 싶은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는 힘이 세다. 거의 모든 ‘어른영화’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법, 주인공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 하는 법, 가슴에 남는 대사를 쓰는 법, 적재적소에서 캐릭터들이 복무하게 하는 법…한마디로 [대부]는 바보같은 깡패영화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우린 왜 자꾸 ‘깡패영화’를 보는 걸까? [신세계]를 보는 동안에도 온통 그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다. 나아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왜 단란한 가족이 휴일에 대공원에 가서 일부러 무서운 청룡열차를 타고 소리를 지르는가. 왜 귀신의 집에 들르는가. 왜 다정한 연인들이 손에 손잡고 극장에 가서 귀한 돈을 써가며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걸 보고 질질 짜는가. 그러면 좀 낫기 때문이다. 아, 그래도 내가 저놈들보다는 덜 힘들구나. 적어도 나는 지금 당장 영화보고 나가다가 칼에 찔리거나 나이롱줄에 목이 콱 졸려 죽진 않겠구나.


이자성은 강과장이 오래 전에 ‘골드문’이라는 폭력조직에 심어놓은 스파이다. 경찰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조직의 중간 보스급이다. 이건 뭐 [무간도]를 비껴가기 힘든 설정이다. ‘적의 내부에 침투해 활약하다가 점점 그들에게 동화되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이란 공식이 딱 나오지 않는가. 경찰이 폭력조직의 후계자 문제에 적극 개입한다는 설정은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 시리즈와 흡사하다.

 

그런데도 박훈정 감독은 비껴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력한 캐릭터와 상황들로 기존 작품들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이자성을 다그치는 강과장은 [무간도]의 황반장보다 다섯 배는 더 싸늘하고 피를 나누지 않은 ‘브라더’ 정청은 [도니 브레스코]의 알 파치노보다 더 잔정이 많다. 그렇더라도 감독이 수많은 오해를 무릅쓰고 그런 야심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출연 배우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 [베를린]을 보러 나갔다가 극장에서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라는 셀러브리티들이 나란히 등장하는 ‘신종 듣보잡’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박훈정이라는 이름을 보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미 시나리오 작가로 충분히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역시!’로 변했다.

 


황정민은 그야말로 미친듯이 연기를 잘 한다. 달라져 봐야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에서 얼마나 멀어지겠냐 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물을 만난 물고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정청이 처음 등장할 때 비행기 일등석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설정이나 이자성 대신 옆에 있던 부하 뺨을 때리는 장면 등이 모두 황정민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연기뿐 아니라 작품을 입체적으로 대하는 그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혹자는 최민식의 연기가 황정민에 비해 좀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경찰이 깡패들에게 카메라를 빼앗길 때 홀연히 등장해 능청스럽게 대사를 치는 최민식을 떠올려 보라. [넘버 쓰리]의 마동팔 검사 이후 그런 정확하고 적확한 발음과 억양들이 아무한테서나 나오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날고 기는 황정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튀지 않음으로써 극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까지 충분히 해주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그림이 되는 배우 이정재. 연기력이 모자라던 [모래시계] 때처럼 정말로 ‘가만히’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베테랑이다. 그리고 거울 효과라는 게 있다. 이런 귀신 같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서 어떻게 연기가 좋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연기자들이 또 있다. ‘연변거지들’이다. 인천국제공항에 처음 등장할 때는 좀 억지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건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것이었다. 특히 송지효를 습격하다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소풍 왔넨?!” 이라 외치며 저돌적으로 쳐들어가던 무대뽀들이 장례식장에선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먹다 이자성과 눈이 마주치자 쩔쩔매는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연변 거지 삼인방의 이름은 김병옥 우정국 박인수. 미친 존재감이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신선한 캐릭터들을 창조해 멋지게 써먹은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엔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자성의 아내도 나오고 송지효도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가 아니다. ‘빠져나갈 데가 없는’ 이자성의 처지를 설명해주기 위한 도구로 쓰일 뿐, 여성성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이 영화엔 여자가 나오지 않아야 맞다. 마초 영화라서가 아니다.

 


정청은 오랜만에 이자성을 만나서는 “우리 어디 가서 떡이나 치자”고 조른다. 이건 명백히 파트너에게 섹스를 하러 가자고 조르는 남자의 멘트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말미의 6년 전 에피소드에서도 첫 살인 임무를 힘겹게 완수한 정청은 이자성에게 “우리, 목욕탕 가서 깨끗이 씻고 영화나 한 편 보러 가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무슨 영화냐는 파트너의 질문에 “무슨 영화는. 떡영화지.”라고 대답한다. 실지로 섹스를 하진 않을 뿐 이보다 더 징그럽게 가까운 사이가 또 어디 있을까.

 


어제 본 인터넷 기사에서 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를 ‘넥타이 매고 정치하는 영화’라고 설명하더라. 그러나 그건 너무 점잖다.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강과장이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피곤함을 대변해 주는 존재라면, “독하게 살아야 해”라고 죽어가는 순간까지 배신자를 감싸는 정청의 멘트는 존재의 본원적 외로움 때문에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깡패 영화의 탈을 썼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연약하고 지친 남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탄생한 아주 ‘징헌’ 멜로드라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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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서 엉엉 울어버리고싶은 봄날입니다. 까짓거, 시나 한 편 읽읍시다.

 

선운사 동백꽃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섬마을에서 살면 이런 감성이 나오나요? 그나저나 김용택 선생, 참 징하게 멋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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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숀펜이 나오는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보러 인사동에 나갔다가 내친 김에 서촌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창민 사진전]에 갔었습니다. 전에 페북에선가 이 포스터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은 나는데 이렇게 불현듯 사진전까지 보러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사진전 마지막 날이라 화랑에는 작가와 작가의 친구분들이 바닥에 앉아 간단하게 술잔을 나누고 계시더군요.

전시된 사진들은 놀라웠습니다. 포스터에 실린 <브레송에 헌정>이란 작품도 좋았고 <도촬_길거리 쵤영>이나 <우회 혹은 배려>같은 작품들은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도 보는 사람의 시선과 통찰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작품들이 아이폰으로 촬영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는 바로 그 스마트폰 말이죠.ㅠㅜ


저도 요즘 카메라를 배우기 시작한 참이라 그 충격의 강도가 남달랐습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길거리, 학교, 직장, 공원 어디에도 이야기는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때마다 카메라가 없죠. 그래서 우리는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하다가도 “에이, 운이 좋아서 저런 소재와 마주쳤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야 사진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고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이란 논리가 성립되면서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그런데 아이폰 카메라가 DSLR을 비웃기 시작한 겁니다. 아니, 새로운 생각이 고정관념을 비웃기 시작한 거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죠. 한창민은 아이폰 카메라를 들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기도발이 잘 먹히는 계룡산 소백산처럼 이름난 산들은 많지만(정말 거기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 부처님과 접속이 잘 되긴 할까요?) ‘사진발’이 잘 먹히는 장소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창민 작가는 이미 SNS에서 유명인사라고 하더군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많은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텍스트를 제시하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이번 전시회도 지난 일 년간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에 올렸던 사진 3500여 장 중 64장을 골라 인화했다고 합니다. 뭔가 꾸준히 하는 사람은 역시 다르죠? 전시된 작품들 중 이미 팔렸음을 표시한 작품들이 많더군요.

 

저도 내일은 카메라를 들고 오늘 산책 나갔던 곳을 다시 한 번 나가봐야겠습니다. 찍고 싶은 장면들을 아이폰으로 대충 찍었지만 DSLR카메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아직은 노출도 셔터속도도 잘 모르지만 이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으니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아이디어가  모든 것을 결정하죠.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아마 내일도 변함없이 그럴 겁니다.

  

역시 작가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해주는 사진이죠? 

 이 작가가 찍기 전에도 누군가가 이걸 먼저 찍었을 텐데.

 핸드폰으로 찍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고 강렬합니다.

 이 꽉 찬 구도!

 이 사진도 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사진 찍다가 뺨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은 못 찍겠죠. ^^

작가님과 작가의 친구분들. 구도는 어느 정도 제 의도대로 됐는데 촛점도 안 맞고 노출도 형편없는, 바보같은 제 사진 하나 덧붙입니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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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이 점심 때 건대입구역에서 비즈니스 미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쭐레쭐레 쫓아가 롯데백화점 푸드코트에서 그녀가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옆에서 꾸역꾸역 점심을 얻어먹고 혼자 지하1층 반디앤루니스에 들른 나는, 느닷없이 이 땅의 문화 부흥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과 나의 페친인 류근 시인을 더욱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갸륵한 마음이 두서없이 일어나 마침내 그의 시집을 찾아내고야 만 것이었다.

[상처척 체질]…”아 제목도 참 슬퍼…” 하다가 “아니지. 이런 건 류근 식으로 아 씨바 제목도 조낸 슬퍼…해야지” 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문제적 시집을 펼친 것이었다. 페이지마다 술냄새가 진동하는 이 퇴폐적인 시집은 뒤적뒤적할수록 읽을 만한 시들이 꽤 많이 나오지만 나는 특히 ‘유부남’이라는 야비한 시와 ‘가족의 힘’이란 뻔뻔한 시가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일단 ‘가족의 힘’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가족의 힘

                          류근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까지 봐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아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다들 류근 시인이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쓴 사람이란 것은 아실 것이다. 이 시를 읽고 ‘유부남’이라는 시의 내용까지 궁금해진 분들은 나처럼 돈을 내고 이 시집을 사시기 바란다. 물경 팔천 원밖에 안 한다. 그마저 비싸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알리딘 중고서점을 뒤져보는 것도 좋겠다. 류근의 시들이 야리야리하고 좀 슬프고 많이 웃기긴 하지만 연애편지에 인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궁상맞거나 자학적이라 다만 한 번 읽고 즉시 내다 판 놈들도 대략 많을 것이란 것이 나의 짐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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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토커]를 봤습니다. 월요일 오후라 극장 안이 좀 한산하더군요. 영화는 시종일관 묘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다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우리 뒤에 앉아있던 50대 아주머니 두 분이 일어서며 “박찬욱, 한국사람 맞아? 어이구 미친놈…” 하시며 화를 내시더군요. 전 이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묘하게 즐겁습니다. 캐슬린 비글로의 [하트 로커]를 볼 때도 영화를 견디지 못하고 제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욕을 하며 나가신 적이 있습니다.

 

영화는 막판에 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집 밖으로 나가면서 좀 세계 던져놓은 느낌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 박찬욱은 멋집니다. 미아 바시코프스카를 비롯해 니콜 키드만, 매튜 구드 등 출연 배우들도 모두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지난 주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스마트폰이나 전자제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언제인지 좀 애매하게 느껴지도록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저도 본 듯 안 본 듯, 아는 듯 모르는 듯, 생시인 듯 환상인 듯…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들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매혹적인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 박찬욱표 장면장면들이 꽤나 황홀합니다. 특히 오래된 와인 얘길 하며 "어린 것들을 따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라는 대사를 치는 순간  매튜 구드와 미아 바시코프스카, 니콜 키드만을 순간적으로 교차편집한 장면은 짧지만 강렬하고, 아주 교활합니다. 이 영화,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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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잔치’라고 외면하려다가도 자꾸만 보게 되는 아카데미 시상식.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니퍼 로렌스의 여우주연상 수상이었습니다. 무엇이 엠마누엘 리바, 제시카 차스테인, 나오미 왓츠 같은 관록의 후보들을 제치고 스물세 살 여배우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기게 했을까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보고나니 결론은 역시 연기력이더군요.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완전히 장악한 채 온몸을 던져 때론 웃기고 때론 울리는 제니퍼 로렌스의 포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영화 자체도 무척 재밌습니다. 미국의 소도시에 사는, 뭔가 잘 안 풀리고 정체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을 배경으로 섹스와 정신병원, 스포츠 도박, 댄스 경연 등을 시트콤처럼 아주 수다스럽고 구수하게 풀어놓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 한동안 너무 슬퍼서 회사 사람 전부와 잤다고 말하는 제니퍼 로렌스나 다니던 학교 교장과 싸우고 일찍 퇴근해 보니 같은 학교 문학선생인 아내가 역사선생과 샤워를 하며 자신들의 ‘웨딩송’을 틀어놓고 있었던 게 도저히 극복이 안 되다고 말하는 브래들리 쿠퍼나 다들 파격적인 사연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정작 야한 장면 보다는 욕이 많이 나와서 19금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대사에 ‘Fu**’이 자주 등장합니다.

남자 주인공 브래들리 쿠퍼도 거의 완벽한 연기를 펼치지만 로버트 드 니로의 쪼잔한 아버지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어젯밤 CGV압구정에서 10시 영화로 봤는데 관객 모두 깔깔거리고 즐거워하며 보다가 극장을 나섰습니다.

이 영화, 좋습니다. 강추입니다. 몇 년 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무시무시한 작품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선전하던 [주노]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참, ‘실버라이닝(silver lining)’은 구름의 흰 가장자리라는 뜻이랍니다. 한줄기 희망이란 뜻이지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언제나 그렇듯 ‘희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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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면 월요병이 없을 거라 생각하시죠?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그리 만만한가요? 저는 내일 출근을 안 해도 제 여친은 여전히 출근을 하죠. 그러니 제가 놀든 말든 여친의 월요병은 그대로란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저 때문에 더 커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일요일 저녁인 지금 한숨을 폭폭 내쉬고 있는 여친 옆에서 눈치 없이 개콘을 틀어놓고 희희낙낙할 순 없는 노릇이죠.

사실, 월요병은 백수들한테도 있습니다. 경험상 그렇습니다. 오래 전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 저는 월요병을 극복해볼 요량으로 ‘월조회’라는 모임을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당연히 회원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마다 조조를 보는 쾌감을 누려도 월요병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죠. 전쟁통에 손가락을 잃은 병사가 가끔 없어진 손가락에서 가려움증을 느낀다는 걸 어디선 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월요병이란 놈도 그것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우린 이미 ‘월화수목금토일’이라는 시스템에 인이 박혀버린 것입니다. 억울했습니다. 예전엔 월요일을 만든 놈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인류에게 일요일이 생긴 이후로 늘 월요병은 존재했을 거 같더군요.

그러니 너무 심란해 하지 마십시오. 백수라고 월요일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닙니다. 세상에 공평하게 다 행복한 일은 드물지만 공평하게 다 거지같은 일은 가끔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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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면 의례 혼자 짧은 산책을 나가곤 합니다.

예전엔 일행들이랑 식당 문을 나서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니까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양치까지 한 뒤에 천천히 길을 나섭니다. 산책이라고 해 봤자 사무실 근처를 이십여 분 동안 느리게 한 바퀴 도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제겐 이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평화롭습니다.

산책은 그야말로 목적이 없는 행위이니까요. 빨리 걸을 필요도 없고 또 어디까지 꼭 갔다 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걸을 뿐입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효율성이 중요한 세상엔 이 무슨 한가한 소리냐. 시간을 아껴 정신 없이 일해도 모자랄 판에.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억지로 나선 길이 어디 진정한 산책이겠습니까. 밥 먹고 5분도 안 돼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 능률이 올라가겠습니까.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설사 기계라고 해도 가끔은 엔진을 끄고 기름을 쳐야 합니다만.

저는 걷는 걸 참 좋아합니다. 마음이 답답해도 걷고 생각이 어지러워도 걷습니다. 몇 년 전 25년 간 피우던 줄담배를 단박에 끊을 때도 흡연욕구가 일 날 때마다 일어나 걸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도 밖으로 나가 30분씩 한 시간씩 무작정 걸어 다녔습니다.

매일 봐서 하나도 새로울 게 없는 골목길. 봄이면 꽃 피고 가을이면 낙엽 떨어지는 보도블럭 위.  그러나 그 길을 걷다 보면 머릿속은 단순해지고 길은 어느새 내 생각을 따라 움직이는 하얀 백지가 됩니다. 그 백지에 점 하나 찍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단어나 문장 하나 써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냥 백지 상태죠. 당연합니다. 산책은 그런 거니까. 아르키메데스도 목욕탕에 들어갈 때마다 유레카를 외친 건 아니었잖아요.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요즘 들어 하는 생각입니다만 속담은 진리와 가장 맞닿아있는 멘션이 아닌가 합니다. 마음이 무거울수록 천천히 그러나 가볍게 걸으십시오. 보도블럭 하나하나의 무의미가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나가야 새로운 게 보입니다. 바쁠수록 돌아가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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