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 읽는 게 점점 귀찮고 싫어지시죠? 요즘은 페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로 거의 모든 소식들이 실시간으로 오니까요. 그래도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에 대한 심층 보도는 신문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그래서 오늘치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의 사설을 모두 찾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어제 발표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이 도대체 무슨 소린지 궁금해서요.



조선일보는 “통진당은 '진보 정당'임을 내세워 왔지만 사실은 북한 노동당의 대남 적화(赤化) 전략의 하수인 노릇을 해온 위장(僞裝) 정당일 뿐이다”라며 “그런 세력까지 그대로 두면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는 이번 통진당 위헌 심판을 통해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도 대한민국 헌법 질서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라고 합니다. 해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군요. 


중앙일보는 “통진당처럼 국가안보에 위험한 정당에 1년에 27억원의 국고보조금을 계속 주는 게 옳으냐?”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정치권과 사회는 공방을 자제하고 헌재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라는 의견을 냈군요. 중앙일보가 웬일이죠? 


동아일보는 “통진당 해산 심판 맡은 헌재의 역사적 책무 무겁다”라고 헌재에게 공을 넘기는 척 하면서도 결국 “이석기 의원의 RO(혁명 조직)는 일당(一黨) 일인(一人) 독재국가인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여기에 가담해 우리나라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짰다. 이 정도면 통진당을 헌법의 테두리 안에 놓아둘지, 축출할지를 심판해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본다”라고 정부의 손을 들어 줍니다. 아울러 “통진당이 2011년 12월 창당 이후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정당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챙긴 돈이 100억여 원이다”라는 주장도 합니다. 맞는 얘기인지 아니지를 떠나 굳이 왜 이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겨레는 “정당 및 정치세력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며, 정당 존립 여부는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표로 결정한다”라는 당연한 기분 입장 위에서 논지를 펼칩니다. 겨우 종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정당해산 심판 청구의 주요 근거로 삼는 건 한심한 일이라고 일갈합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찌질하죠.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진보당 해산에는 서둘러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자가당착이다”라고 꼬집습니다. 더불어 정부의 이번 조처가 “대선 기간 이정희 진보당 후보의 날선 공격을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감정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라고 걱정합니다. 동감입니다. 뭐, 그분들은 아니라고 펄쩍 뛰시겠지만. 


경향신문은 “정권이 자의적으로 특정 정당을 해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활동의 자유를 부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행태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해산심판 청구는 부적절하며 철회돼야 한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한 주장도 근거가 매우 부실하며 청구 사유도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납득이 가지 않는 것투성이라고 견해를 밝힙니다. 그러니 심판 청구를 기정사실화한 뒤 이를 전제로 청구 사유를 짜맞춘 것 아니냐는 의심도 당연하죠. 그리고 경향신문 역시 한게례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을 두고 “사법부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라고 하며 그 이중잣대를 지적합니다. 



이석기, 통진당, 조중동...참 듣기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골치가 아픈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 나라의 정당이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는 걸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예전에 독일에서도  그런 적이 있다지만, 도대체 그게 언젯적 일입니까. 통진당이 이뻐서가 이러는 거 아닙니다. 정치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돈과 밥과 일자리에 관계된 거니까 이 모든 과정을 좀 더 관심어린 눈으로 지켜보자는 것이지요. 이제 공은 헌재로 넘어갔습니다. 과연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정부의 권력 남용과 헌법 무시 행위를 제어해야 한다’는 쪽일까요, 아니면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도 대한민국 헌법 질서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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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했다가 동네 수퍼에 들렀는데 문득 캔커피가 사먹고 싶어지는 겁니다. 요즘은 늘 집에서 원두커피를 내려서 먹곤 해서 캔커피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캔커피를 하나 들고 와 계산을 하면서 저는 예전에 60만 원짜리 커피를 마셨던 쓰라린 기억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10여 년 전의 일이니 꽤나 비싼 커피를 마신 셈이죠.

 

 

제가 TBWA/Korea라는 광고대행사를 다닐 때였습니다. 12월 말에 웬일인지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들에게 노트북을 하나씩 지급한 사건이 있었죠. 워낙 연봉도 세고 직원들에게 잘 해주기로도 이름난 잘 나가는 회사이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좀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회사의 카피라이터들은 신이 났습니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카피라이터. 생각만 해도 멋진 일 아닙니까.

 

1월 업무 첫날, 시무식을 마치고 돌아온 저는 회사에 있는 밴딩머신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가지고 제 책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하고 노트북을 열고 종이 커피잔을 집는 순간, 커피잔이 살짝 앞으로 튀어나가더니 노트북 자판에 가서 팍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어, 어, 앗, 아악! 안 돼~!!!”

 

 

커피는 이미 노트북 자판 위로 쏟아졌고 제 입에선 알 수 없는 비명들이 쏟아졌습니다. 얼른 전원선을 뽑고 전 버튼을 누르고 노트북을 거꾸로 들어 흔들고 별짓을 다 해봤지만 노트북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차라리 물을 쏟았으면 얼른 전원을 끄고 거꾸로 해서 말리면 되는 수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커피는, 특히 자판기 밀크커피는 설탕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자판에 들러붙어 부품들을 빠르게 부식을 시킨다는 겁니다.

 

아, 새해 첫날부터 이게 뭐람.

 

저는 이 비극적인 소식을 경원지원팀에 알려야 했습니다. 경영지원팀 차장님이 와서 노트북을 가져가더니 좀 있다가 전화를 걸어 저를 위로하더군요. 차라리 데스크탑이었으면 자판만 갈면 되는데 이건 노트북이라 전체를 바꿔야 한다. 이 노트북이 120만 원짜린데 수리비가 물경 80만 원이란다. 그러니 차라리 새 노트북을 사는 게 낫다. 우리, 새 노트북을 사도록 하자. 근데 너무 비싸다. 회사에서 반을 부담할 테니 편성준 씨가 반을 부담해라. 거의 한 번도 안 쓴 노트북인데, 참 안 됐다.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토를 달지 않고 그러자고 순순히 동의를 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경영지원팀이랑 잘 못 지내는 편이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그 예로, 그 전 해 겨울에 회사 동료들하고 스키장 갔다가 오는 길에 삼성동 글래스타워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무릎을 크게 다쳤을 때도 저는 병가를 내지 못했습니다(후배의 차는 폐차를 시킬 정도로 큰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경영지원팀 왈, 다친 건 알겠는데 그게 일하다가 다친 게 아니라 놀러 갔다 오며 다친 거라 병가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몹시 화가 난 저는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따졌지만, “그런 법이 있다”는 차장님의 침착한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의 아니게도 며칠간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단결근’을 해야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참 멍청한 선택도 많이 했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항상 손해 보는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결국 예쁘고 착한 아내와 결혼도 했고 주변에 괜찮은 친구들도 꽤 많은 인생이니까요. 이젠 심지어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한 연설이 생각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했던가요? 저도 계속 그의 말처럼 멋진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비록 앞으로도 제가 하는 선택들이 ‘hungry’보다는 ‘foolish’에 가까울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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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가방

길위의 생각들 2013. 7. 8. 22:51

가방의 상표는 중요하지 않다.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는가가 진짜다. 그 안에 현자들이 쓴 수상록이 한 권 들어있다면, 까무러칠 정도로 재밌는 소설책이나 면도칼처럼 예리한 시집 한 권이 들어있다면, 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의 단초를 메모한 종이조각이 한 장 들어있다면 비닐쌕이라도 명품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비싼 가죽가방이라도 그 안에 화장품, 핸드폰, 카드명세서, 피임기구 같은 잡동사니들만 가득차 있다면 그 가방은 '수고한 자신을 위해 스스로에게 선물한'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가방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당신의 가방은, 당신이다.

 

 

 

(*오늘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불현듯 생각나 페북에 올렸던 글. 그러나 페북에 올린 글은 흘러가기 십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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쌔비(아내의 닉네임)가 제주도를 좋아하는 바람에 저도 벌써 네 번이나 제주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 가는 제주였죠. 우리는 남들과 달리 일요일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쌔비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 평일에 여행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지금 뿐이었거든요. 태풍과 장마전선이 몰려온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 비오면 제주 가서 이박삼일 동안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보고 오면 되지 뭐. 이런 얘길 주고받으면서요.

 

이번 여행의 포인트는 ‘저렴하게, 실속있게’였습니다. 최근의 초호화 결혼식, 초호화 하와이 신혼여행 등등으로 인해 분에 넘치는 소비를 단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경험한 저희들은 이젠 또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고급스런 숙소에서 자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비행기는 민간항공 중에서도 평일 노선으로, 그리고 숙소는 호텔이나 펜션이 아닌 민박집으로 하기로 기준을 세웠습니다.


평소 제주도와 관련된 트위터리안들을 많이 알고 지내는 쌔비가 트위터로 문의를 해보니 몇몇 분들이 ‘써니허니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을 알려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게스트하우스보다는 민박을 원하던 바, 고맙게도 ‘써니허니’의 주인장께서 친히 알려준 민박집이 바로 ‘성산가는길’이었습니다.

 

 

 

 

올레 20코스 근처에 있고, 2인 1실에 5만 원. 방마다 욕실이 딸려있답니다. 우리는 괜찮은 가격이라 생각했습니다. 항공료도 세금까지 합쳐 채 5만 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으니 그야말로 ‘격’이 맞는 셈이었죠. 그런데 막판에 동행이 하나 생겼습니다. 쌔비가 페이스북에 올린 우리의 여행 계획을 듣고 반응을 보인 ‘예전부터 아는 동네 형’이었던 근식이 형을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싱글인 근식이 형은 다름 방에 묵어야 하는데 혼자 5만 원을 내는 건 좀 … 하고 있는데 쌔비가 집주인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4만 원으로 합의를 보았다며 웃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제주시에 있는 ‘오막칼국수집’에서 점심부터 한라산을 부어라 마셔라 하던 우리들은 세화 바닷가에서 맥주를 또 한 잔씩 하고 좀 취한 상태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성산가는길’에 도착했습니다. 세화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잔디밭 위에 보도블럭이 깔린 단아하고 조용한 민박집 입구가 보였습니다.


주인은 50대의 온화한 인상을 가진 사장님과 사모님이셨는데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원래 이곳 분들이 아니고 부천에 사시다가 거기에 20대 딸 둘을 남겨두고 ‘독립’ 하셨다고 하네요. 사장님은 그동안 쭉 건축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제주도에 내려오셔서는 사진을 많이 찍으러 다니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잠깐 나갈 때도 DSLR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집안이 환하고 조용해서 좋았습니다. 흔히 여행을 가면 여러 다른 팀들과 살을 비비고 지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두 팀만 꾸려와도 독채를 온전하게 쓸 수 있고 또 각 방마다 안쪽으로 화장실이 딸려 있어서 아주 마음이 편했습니다. 더구나 두 팀이 오면 나머지 한 팀은 받지 않는다는 방침이 놀라웠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생계형 민박집이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죠. 민박집 뒷뜰엔 두 분이 가꾼 여러 채소와 꽃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3년쯤 뒤면 더 예뻐질 거라는 사모님의 말씀에 쌔비는 벌써 감동을 먹은 눈치였습니다.


가운데에 자리한 거실의 낮은 탁자와 벤치, 그리고 한쪽에 있는 컴퓨터 책상도 간단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주방과 잘 어울리는 구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운데 놓인 책장이 마음에 들었는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단행본들 사이사이로 사진 관련 서적이나 포토그래퍼들의 에세이가 많았습니다. 사장님의 취향이 묻어나는 컬렉션이었습니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를 모토로 삼고 있는 저희들은 이날 저녁도 해녀박물관 근처에 있는 ‘별방촌’이란 횟집에 가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과음을 단행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사모님께서 맛있는 죽을 쑤어서 가져다 주시는 게 아닙니까. 우린 이게 웬떡이냐, 웬죽이냐 하면서 맛있게 먹는 수밖에요. 물론 태어나자마자 서울 생활을 하셨다지만 그래도 사모님은 부산 출신이라는데 의외로 반찬들이 모두 정갈하고 맛깔스러웠습니다.

 

 

 

 

 


둘째날 큰그리오름에 다녀와 좀 지쳤던 우리들은 “오늘 저녁엔 집에서 먹는 게 어떠냐?”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민박집이 편안하고 깨끗해서 그게 더 나을 듯했습니다. 쌔비가 전화로 여쭤보니 고기만 사오면 나머지는 대충 준비를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농협하나로마트에 들러 돼지목살과 술을 사가지고 집으로 갔습니다. 사모님은 벌써 탁자 위에 신문지를 깔고 고기를 구울 수 있도록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먹던 거’라며 같이 내오신 밥까지 염치없이 얻어먹던 우리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시자’고 청한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의외로 두 분이 너무나 반가워하시며 술과 찬을 가자고 건너오시는 게 아닙니까.


그때부터 즐거운 술자리의 향연이었습니다. 월요일 저녁이라 민박엔 다른 손님도 없고 우린 걱정할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점잖게 생긴 두 분이 부천에 과년한 딸들을 남겨두고 연고도 없는 제주까지 내려와 ‘독립’하게 된 사연. 저희들이 각각 카피라이터와 출판기획자, 작곡가 등의 일을 해오면서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 저희 부부가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드라마 등등 이야기마다 웃음과 공감이 끊길 틈이 없었습니다.

 

사모님은 나이가 드셔도 아직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사모님은 [내일을 향해 쏴라]와 [졸업]에 나온 캐서린 로스를 닮았다고 아부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근식이 형이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른 가수 조미미를 닮았다고 초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혜자는 사모님도 미인이지만 사장님이 참 잘 생기셨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 할 때마다 웃음꽃이 피어나는 날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두 부부께서도 오랜만에 마음껏 웃어보았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물론 사장님 사모님께서 안채로 돌아가신 후에도 저희들의 ‘부어라 마셔라’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지요. 센스있는 사장님께서 한라산을 몇 병 더 남겨놓고 가셨더라구요.

 

 

 

 


쌔비는 사모님이 마당에서 자신을 부를 때 “손님!”이라고 하는 대신 “혜자 씨~”라고 부르는 게 정말 정겹고 좋았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나쁜 마음을 먹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 더 즐거운 시너지 효과가 생깁니다. '성산가는길'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저희는 다음날 아침 또 ‘우리가 먹던 거’라는 뻔한 거짓말에 속는 척하며 콩나물국을 얻어먹고 나왔습니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첫날 빼고는 쨍쨍하게 맑기만 했던 제주도 여행. 이번 일정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장소에서 게으르게 지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평화로웠던 B&B(Breakfast & Bed)형 민박집 ‘성산가는길’이 있었죠. 정말 다시 와서 묵고 싶은 집입니다.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657(상도로 5-2)

010-5549-9908 / 010-8294-9908

http://blog.naver.com/stella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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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공항 – 제주시 [오막집국수] – 함덕해수욕장 – 구좌읍 상도리 – 민박집 [성산가는길] -  저녁 해녀박물관 옆 [별방촌] 

 

* 둘째날 / 상도-박물관 점심 [생이소리] – 큰그리오름 - 저녁 민박집 [성산가는길]

 

* 셋째날/ 우도 – 성산 -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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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감독의 인터뷰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류승룡이나 이병헌과 일 할 때는 적어도 주인공이 대사를 못 외워서 NG가 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당대의 스타로 군림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죠. 테너 가수의 진짜 실력은 ‘감기 걸렸을 때 목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뭣뭣 때문에…’, ‘나도 그 위치에 있으면…”, ‘하필 그때…’ , 등등의 핑계를 대며 자신에게 무한정 관대한 판결만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선 저부터 반성해 볼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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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뚝섬유원지로 산책을 나갔었습니다. 저희 커플은 한강변에 사는 게 좋아서 평일 밤에도 강변을 따라 자주 걷고 또 주말이면 거의 매번 이곳으로 나와 역 광장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구경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특별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장터 한쪽 천막 안에서 윤호섭 교수님이 ‘그린 캔버스’라는 프로그램을 열고 계셨습니다. 윤호섭 교수님은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을 통해 환경운동을 전개하고 실천하는 에코 디자이너로 이름이 높은 분입니다. 저와는 IMF시절에 공익광고로 인연을 잠깐 맺은 적이 있죠. 어쩌다 보니 교수님이 아이디어를 내고 제가 거기에 카피를 쓰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땐 제가 연차가 너무 어렸고 또 같은 공간에서 작업한 게 아니라서 교수님은 기억을 못하실 겁니다.

 

 

 


윤호섭 교수님은 사람들이 가져온 티셔츠에 초록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주고 계셨습니다. 그림을 받은 사람들은 옆에 있는 모금함에 환경운동 성금을 성의껏 내구요. 저도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돌고래 제돌이에 대해 아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하고 예전 광고회사 다닐 때 얘기며 공익광고 얘기도 했습니다. 역시 기억을 하진 못하셨습니다. 광고작업을 손에서 놓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티셔츠에 교수님의 그림을 받고 싶었지만 마침 운동복을 입고 나온 상태라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들고 온 카메라 가방을 여친에게 맡기고 집에 가서 흰 티셔츠를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집까지는 15분 거리. 왕복 30분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습니다. 도중에 단골 수퍼 [신화마트]앞에 앉아있는 주인 아저씨를 만나 한참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아저씨가 일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인대수술을 받고 참 오랜만에 가게 앞에 나와계신 거였거든요.

 

집에 가서 흰 티셔츠를 찾아보니 마땅한 게 없었습니다. 의외로 흰색 티셔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에 띄는 티셔츠를 몇 가방에 챙겨 다시 뚝섬유원지역으로 갔습니다. 윤호섭 교수님이 그려주고 있는 그림은 돌고래 ‘제돌이’였습니다. 동물원에 갇혀서 재주를 부리는 돌고래는 행복하지 않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말이죠. 교수님은 이전에도 샴프 안 쓰기나 자전거 타기, 냉장고 안 쓰기 등 환경운동을 실천하기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그 실천적인 면이 존경스럽기도 했구요.

 

 

제가 교수님에게 그림을 받으며 예전 공익광고 얘기도 하고 최근에 아이디어를 낸 ‘뒤집을수록 맛있어지는 패자부활전’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교수님은 별로 관심이 없으시고 그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케이블 채널 TvN의 사진기자와 작가였습니다. 그들은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팀인데 마침 윤호섭 교수님 편을 찍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한테 윤호섭 교수님에 대한 인터뷰를 좀 하자고 해서 졸지에 카메라 앞에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하시는 환경운동에 대한 생각과 교수님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누었습니다. 젊은 여자분인 작가선생이 “다음주 월요일 저녁에 방영될 것”이라고 귀뜸을 해주던군요. 

 

 

집에 와서 교수님이 그려주신 티셔츠를 다시 펼쳐보니 기분이 참 뿌듯하더군요. 왠지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초록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싱그럽게 만들어 주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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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종합소득세 신고가 뭔지 아시는 분?


네.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건 5월 31일까지 꼭 해야 한다는 거. 재작년에도 넋놓고 있다가 후배 차선야 양이 메신저로 얘기하던 중(그날이 아마 5월 31일이었나 봅니다) “지금 당장 택시 타고 세무서로 가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서 강남세무서에 갔었죠. 가서 줄이 아주 길게길게 늘어선(그날은 저 같은 바보들이 거기 많더라구요) 그곳에서 하루 해를 다 보내고 가까스로 어찌어찌 신고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종합소득세의 계절은 돌아왔습니다. 그 말은 저같은 ‘숫자 백치’, ‘관공서 부적응자’의 불행도 같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회사를 다닐 땐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프리랜서가 되거나 백수가 되면 이것 때문에 도대체 괴롭습니다.

 

오늘 용기를 내서 지난번에 성동세무서장 명의로 된 ‘2012년 귀속 종합소득세 확정신고 안내’라는 문서를 펼쳐보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거기엔 ‘홈택스 가입방법’ 등이 친절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렌데 홈택스라면 제가 예전에 한 번 가입을 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포털에서 검색을 해 홈택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로그인 버튼을 누르니 당장 아이디와 패스워드부터 입력하라는 차가운 메시지가 뜹니다. 제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지요.

 

'아이디와 패스워드’ 찾기를 누르니 휴대폰으로 찾는 방법과 공인인증서로 찾는 방법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건방지게도 ‘공인인증서 등록’을 누릅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제 노트북엔 공인인증서가 없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뭔가를 깨달은 뒤 이동식 디스크를 찾아 노트북에 꼽습니다. 얼마 전에 “도대체 공인인증서를 회사 컴퓨처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놓고 퇴직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여친의 핀잔을 듣고나서 다시 퇴직한 회사로 가서 공인인증서를 삭제하고 제 이동식 디스크에 저장을 해놓았거든요.

 

그런데 노트북은 여전히 제 공인인증서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동식 디스크(F:)에 가서 ‘공인인증서 불러오기’를 하고 노트북 어딘가에 저장도 다 했는데 말이죠.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공인인증서가 뭔지 그 개념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차선책인 ‘휴대폰으로 찾기’를 누릅니다. 그랬더니 휴대폰 인증번호를 보내고, 받고, 기입하고 하는 복잡한 절차를 모두 마친 후 ‘인증서 휴대폰 저장 서비스’와 ‘Mobile key 휴대폰 저장서비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나오더군요. 인증서 휴대폰 저장 서비스’를 누르니 거기 필요한 스마트폰 앱을 다시 다운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 산 너머 산입니다. 다시 앱을 다운받아 실행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기가 막히게도 ‘만료된 공인인증서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도대체 알 수 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거의 모든 입금을 스마트폰으로 하고 그때마다 신한은행도 국민은행도 모두 공인인증서를 통해 스마트폰 안에서 들어가는데 뭐가 만료된 공인인증서라는 말입니까.


공인인증서로 찾는 건 일단 포기하고 다시 ‘아이디/비밀번호 찾기’를 시도합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은 제 기존 아이디를 찾아냈고 새로운 비밀번호도 받았습니다. 저는 마침내 홈택스에 로그인 하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그인해서 들어간 홈텍스 안에는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종합소득세 확정신고’라는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도 이번 기회에 혼자 힘으로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서 떳떳한 경제주체로 거듭나고 싶었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홈택스에서 로그아웃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 하 차장님께 도움을 청하자. 작년에도 내가 곤경에 처해 바보짓을 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뻗치신 고마운 분이 아니신가. 약은 약사에게. 세금 문제는 하 차장님에게" 하 차장님, 점심 먹고 찾아갈게요. 제발 저를 뿌리치지 마시고 이번에도 ‘종합소득세 확정신고 족집게 과외’를 좀 해주세요. 제가 이번 토요일에 신혼여행을 가기 때문에 오늘 내일 사이에 이거 꼭 해놔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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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 뚝섬유원지공원을 산책하다가 희한한 버스를 한 대 만났습니다. 알록달록 반짝반짝. 슬쩍 봐도 몹시 ‘키치적’인 버스가 사람들의 호기심 속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도 뭔가 하고 다가가 보니 어떤 아저씨가 스티커를 잔뜩 붙인 버스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버스 옆구리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KBS생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의 이름과 ‘200만 개 돌파’ 등의 글씨들이 씌어 있었구요. 맙소사. 버스에 붙인 스티커가 백만 개라는 말인 모양입니다.

 

 

 

버스 기사이자 주인인 아저씨에게 가서 사연을 들어보니 어느날 차 천정을 꾸미고 싶어서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한 게 방송을 타면서 점점 더 재미를 붙여 현재 230만 개에 달하는 스티커를 붙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붙이는 게 아니라 버스 천정은 붙인 스티커 위에다 하나하나 스테이플러를 덧박았고 바깥면은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게 순간접착제를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닥에 비닐을 까는 것은 물론이구요. 이 정도면 집착을 지나 거의 착란 상태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아무런 기대를 안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런 버스를 만나면 황당해서라도 좀 웃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오늘 내가 이상한 버스를 만났는데…”라고 얘기 보따리를 펼쳐 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잠깐을 위해 이백만 개의 스티커를 붙이라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이런 건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해야하는 거니까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버스 안도 구경시켜 주고 원하는 아이들에겐 직접 스티커를 붙여볼 수도 있게 해주는 이 아저씨는 자신의 옷과 신발에도 스티커가 빼곡합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좋아서 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전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간에 아무튼 뭐든 백만 개 이상을 한 다는 건 ‘백만돌이 에너자이저’만큼이나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해를 기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똘끼를 발휘하는 이런 ‘무해한 똘끼’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내는 숨구멍 역할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밉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무해한 똘끼’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아저씨, 언제나 운전 조심해서 다니세요. 건강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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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가 왕년의 스타 가수 린다 로스태트의 백밴드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일설에는 화끈한 성격의 린다 로스태트가 고마운 마음에 이글스 멤버 전원과 차례로 잠자리를 같이 해줬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확실한 것은 그 때에도 이미 이글스는 실력이 뛰어난 밴드였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임재범이 우리나라에서 리바이벌시킨 노래 'Desparado’도 원래 린다를 위해 그 때 돈 헨리가 만든 곡이었다. 이글스는 지금도 라이브 무대를 통해 미국에서 그 해 돈을 가장 많이 번 밴드로 이름을 올리곤 한다. 놀라운 그룹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역시 요절 가수 김현식의 백밴드로 시작했었다. 마치 오래 전에 이글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며칠 전 나는 봄여름가을겨울의 25주년 콘서트를 보았다. 요즘 결혼식을 앞두고 좀 쪼들리는 형편이긴 하지만 마침 여자친구가 페이스북 콘서트 할인 이벤트에 응모했던 게 덜컥 당첨되는 바람에 가게 된 것이다.

 

 

 벌써 25주년이라니.

 

 

하지만 무대 위로 튀어 올라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김종진의 모습은 흰 머리카락이 많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참 멋졌다. 나이가 들어 배가 나온 뮤지션을 보면 왠지 나태해 보이고 ‘가요무대스러워’ 보이기 마련인데 김종진은 적당히 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고 일렉기타를 잡은 모습도 아직 늠름했다. 그리고 전태관은 여전히 조용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경쾌한 율동과 함께 파워 있는 화음을 선보이던 세 명의 여자 코러스도 실력이 좋았다. 나는 요즘 잘 안 봐서 모르는데 코러스 멤버 중 하나가 요즘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 나오는 이시몬이라고 한다.

 

예전에도 봄여름가을겨울 콘서트 때마다 들었던 연주곡 ‘거리의 악사’를 시작으로 ‘내가 걷는 길’, 그리고 늘 데뷔곡처럼 느껴진다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신인 시절 한영애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관객들이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따라 부르는 걸 보고 엄청난 감동과 용기를 느꼈었노라고 김종진이 말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무대 위로 한영애가 나타났다. 오늘의 게스트인 셈이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한영애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건널 수 없는 강’과 ‘누구 없소’를 부르고 내려갔다.  

 

 

"저기서 지금 기타를 치는 저 친구는 1990년 12월 30일에 봄여름가을겨울 콘서트를 보고 '아, 나도 저런 음악가가 되어야지'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젠 저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가 되어 오늘 함께 무대 위에 선 기타리스트이자 음향회사 사장님이십니다"

 


김종진이 세컨 기타를 치는 뮤지션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아, 김종진과 전태관은 25년 전에 벌써 음악을 통해 '어떤 이의 꿈'을 만들어 주고 있었구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는 나의 청춘과 정확히 겹친다. 나의 청춘엔 ‘산울림’도 있었고 ‘사랑과 평화’도 있었고 ‘벗님들’도 ‘조용필’도 있었지만 나의 20대를 온전히 지배한 음악은 역시 ‘시인과 촌장’과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길래 하품을 하는 척했다. 많이 힘들 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냈다던 옛날 애인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 옆에 있는 여자친구 말고(여친이여, 용서하시라). 브라보, 브라보, 아름다운 나의 인생아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 시절 난 워크맨에 [봄여름가을겨울 1집] 테이프를 넣고 다니며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노래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특정 시간은 물론 그때의 장소 상황, 냄새까지 모두 기억나게 한다. 신기한 일이다.

 

 

 

 

눈물겨운 콘서트였다.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흐뭇한 시간이었다. 이것은 문화의 두께다. 이젠 우리에게도 25년 된, 그러나 전혀 늙지 않은 밴드가 있다. 우리는 기념 T셔츠도 챙기고 CD도 샀다. 싸인 이벤트에도 참석했다. 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무대 위에서 마지막 앵콜송을 부를 때 가방에서 못쓰는 봉투를 꺼내 뒷면에 우리 이름과 사연을 메모해놨다. 좀 더 싸인을 빠르고 쉽게 받기 위해서였다. 친절하고 섬세한 종진 씨. 우리 뒤에 줄이 길게 서 있는데도 내 메모를 보고 “아유, 누구 글씨가 이렇게 이뻐요?” 라고 천천히 묻고 진심어린 결혼 축하도 해준다. 활짝 웃고 있는 내 여자친구에도 “그래서 그렇게 표정이 밝았군요.”라고 말을 건내며 CD에 한자로 ‘祝結婚’이라고 써주는 성의까지 보여줬다.

 

‘철없는 여친’ 덕분에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엔 푸르던 시절의 내 청춘이 있었고 가난하지만 풍요한 현재가 있었다. 그리고 25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대를 품을 수 있는 한 밴드의 미래가 있었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이렇게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브라보 봄여름가을겨울.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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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페이스북 댓글을 달고 있는데 어떤 출판사가 책 제목을 공모한다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오랫동안 육아문제를 연구한 소아정신과의사가 쓴 책인데 '완벽한 부모, 준비된 부모가 되려하기보다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이와 부모 모두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라는 내용이란다. 뽑히면 우크렐레를 비롯한 선물을 준단다. 

나도 우쿠렐레가 탐나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어떤 이들의 댓글을 보고나서 배꼽을 잡으며 웃지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좋은 제목 후보안도 무척 많았다. '아빠 어디가'나 '지금도 괜찮아' 같은 패러디물도 있었고 '힐링 육아법' 같이 트랜드에 민감한 안도,  '너도 자랄 땐 그랬어' 같은 서술형도 있었다 '깊은 한숨'같은 이상한 패러디물도 있었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아프니까 부모다' 

정말 할 말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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