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212117265&code=990303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반대말은 다품종 소량생산이 아니라 공유경제와 공유소비가 되었다는 글쓴이의 통찰, 경청할 만한 시론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유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만 집도 자동차도 책도 남의 것을 빌려 쓰거나 함께 쓰는 게 익숙치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다 따로따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공유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우리 삶에 적용해보면 의외로 쉬운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나의 삶에서도.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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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오늘 혼자 저녁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회사 근처 음식점에 가서 오징어불고기백반을 먹으리라 결심한 나는 아침에 건성으로 읽다 휙 던져버렸던 신문 중 한 장을 꺼내 접어들고 음식점으로 갔다. 경향신문 박찬일 셰프의 칼럼을 읽었다. 


우리는 라면에 나트륨 함량에 벌벌 떨며 싱겁게 먹어야 한다고 난리를 치지만 정작 라면에 곁들여 먹는 김치나 단무지의 짠맛에 대해선 관대하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보기 편한 일부분만 보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오늘 박찬일 셰프의 칼럼 제목은 ‘소금이 뭔 죄야’다. 아기들 분유의 소금 함유량을 다룬 국정감사 얘기로 시작한 이 글은 우리의 상식 속 빈곳을 강타한다. 원리는 너무 간단하다. ‘간을 본다’ 라는 표현은 모든 복잡한 요리기술을 한 마디로 대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소금의 중요성을 잘 전달해주는 말이다. 즉, 우리는 소금을 안 먹고 살 수 없다. 아주 싱겁게 먹는다는 것은 맛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이나 국물을 아무리 싱겁게 먹어도 과식을 하거나 반찬을 많이 먹으면 결국 그게 그거, 말짱 도루묵이다. 소금만 죄악시 할 일이 아니다. 


박찬일은 “이렇게 어떤 사안에는 뒤집어보면 다른 중요한 열쇠가 숨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쓴다. 맞는 말이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뒤집어 생각을 해보면 없던 통찰력이 생긴다… 이런, 또 광고 얘기다. 이것도 병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092132185&code=990100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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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416141&sid1=001







요즘 가장 핫한 전시는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의 사진전일 것이다. 라이언 맥긴리는 약관의 나이에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천재다. 그는 사진을 찍기 전에 자신의 모델들과 수많은 얘기를 나누고 같이 술 마시고 여행하고 놀고  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사진 컨셉을 설계한다. 이미 친구가 되어 싫컷 놀다 진력이 날 정도로 서로에게 완전한 믿음이 생겼을 때 모델들은 비로소 옷을 활활 벗어던지고 라이언의 카메라 앞에 선다. 라이언은 유명한 스타이거나 엔터테이너이거나 현재 활동 중인 젊은 예술가들인 그들을 마음껏 찍음으로써 사진가로서의 명성을 더욱 높여 간다. 



오늘 신문에서 서동진 교수가 쓴 문화비평을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사진전을 보고나면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이 꽤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 처제 금모래 양(아내의 사촌동생)도 아내와 같이 가서 이 사진들을 보고 나오며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그만큼 울림이 큰 것이다. 


그런데 “‘속았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서동진 교수는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들이 불편하고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아니, 그는 팝스타 뺨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스타 포토그래퍼의 ‘스타성’ 강한 사진에 대책없이 열광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유행한 초상 사진들은 지치고 망가진 젊음의 초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그런데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한 점의 얼룩도 없는 젊음을 그리는 사진들이 눈앞에 도착했다.

내가 ‘속았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보는 사진들을 젊은이들은 선망과 감격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그 사진에서 본 것이 과연 젊음이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서동진 교수는 라이언이 설계해 낸 청춘의 눈부신 자유들은 실제가 아니라 ‘가짜’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의 연장선에서 틈만 나면 청춘을 소비하라고 외치는 자본주의는 결국 격정, 저항, 모험, 떠돎, 창의성 등 진짜 청춘이 누려야 할 자유는 주지 않고 ‘그래도 이 세계는 니가 선택할 수 있는 거야’라는 환상만 심어준다고 비판한다. 


서동진 교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라이언과 그의 친구들이 창조해낸 세계는 이상향이다. 마치 60년대 히피들이 꿈꾸었던 세계처럼 거침없고 걱정없고 순수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렇다고 정말 우리 젊은이들이 라이언의 사진에 열광하면 안 되는 걸까? 이게 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선망’이나 ‘미지의 세계로의 도피’이기만 한 걸까? 


그렇게 우리의 젊은이들을 일반화내지는 하향편준화시켜 버리는 것은 너무 씁쓸하고 쓸쓸한 일인 것 같다. 아무리 우리가 “지난 반세기를 통틀어 우리는 최악의 시절을 살아야 할 청년세대를 가지게 되었다”지만, 그저 잠깐 이렇게 대책없이 자유롭고 영악한 기획력 앞에서 대책없이 감탄 한 번 해보는 것도 어느덧 우리에겐 그토록 사치가 되었단 말인가. 나야말로 괜히 신문을 읽는 사치를 부렸다. 그 시간에 일이나 할 걸. 휴일날 회사에 나와서 밤늦도록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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