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열 :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다.

정재승 :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대부분의 회식에 가지 않는다. 술·담배·골프도 안 한다. 혼자 빈둥거리면서 노는 시간이 많다. 여럿이 보내는 시간은 계획을 하고 보낸다. 월·화·수·목요일에는 대전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에 집중한다. 그중 하루는 아무 스케줄 없이 혼자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쓴다. 그리고 금·토·일요일 사흘에 세상살이를 한다.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은 사실 가족들과 보낸다. 딸아이 셋의 귀여움이 최고에 달해 있어 그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한없이 좋기 때문이다.


정재승 :

아침잠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생활 패턴을 바꾸었다. 5년 전부터 저녁 10시에 자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새벽 4시쯤 일어난다. 이때부터 아침 9시까지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한다. 이 시간이 있어서 낮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채워지는 부분이 있다. 이런 시간이 진짜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밤늦게 대전에서 서울로 올 때 운전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런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신경과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 뇌는 체중의 2%를 차지하지만 에너지의 23%를 쓴다. 뇌를 쓴다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따라서 뇌를 쓰는 일은 에너지가 있을 때 해야 한다. 스티븐 코비가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나눠서 하라고 했는데 뇌를 많이 쓰는 일은 뇌에 에너지가 충만할 때 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회사에 가서 신문도 보고 커피도 마시며 아침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퍼져 있을 때 진짜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능률이 오를 수 없다. 하루 중에 뇌의 인지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를 판단해서 가장 창조적인 일을 그때 해야 한다.



http://m.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03


역시 중요한 건 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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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가 두려워질 때 나는 레이먼드 카바의 책을 펴서 "소설가가 그 근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구절 아래 그어놓은 밑줄을 확인하곤 한다. 만약 어떤 시대처럼 소설가가 지식인이고 스승이란면 나는 소설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에 있던 은희경의 단편집 [타인에게 말걸기]를 뒤적이다가 작가후기에서 발견한 글. 그렇다.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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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간성에 관한 일이고 인류의 미래에 관한 일이기에 민족감정 따위에 엮어 묶을 수 없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객관화해야 한다. 


'현상은 복잡하다. 그러나 법칙은 단순하다'라는 리차드 파인만의 말은 인생에서 뭔가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을 때마다 매번 유용한 지표가 됩니다. 일본인으로 태어나 일본 문화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극우 정치가나 제국주의자, 전범들을 미워했다는 황현산 선생의 스승. 황현산 선생은 웬디 셔먼 미국무부정무차관의 발언을 다루면서 과거 자신을 가르친 스승님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스승 같은 사람에겐 어떤 사안을 바라볼 때 그게 옳으냐 그르냐만 중요할 뿐 민족의 입장이나 개인적인 친분 등은 전혀 고려대상이 안 되기 때문이죠. 어때요, 참 간단명쾌하죠? 훌륭한 선생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제자 황현산은 이제 이렇게 이 시대의 좋은 '선생'이 된 것이겠지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0620541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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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Beatles의 'When I'm sixty four'라는 노래를 듣고 정말 대단한 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폴 매카트니나 존 레논 같은 천재가 어떻게 지구상에 존재했을까 하고요. 물론 산울림의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를 듣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음악적인 스타일은 물론 가사를 읽어봐도, 하다못해 TV나 영화의 연기자나 진행자로서도 이래저래 김창완은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잔인하고 뻔뻔한 천재가 아니고 늘 괴로워하고 허덕허덕 겨우 살아가는 '인간적인' 천재 말입니다. 이 노래 가사를 다시 한 번 가만히 음미해 보세요. 이런 게 바로 살아있는 철학이요 표현력 아닐까요. 저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김창완이라는 사람이 늘 부럽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VSxjEJ8eBU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살은 일곱살을 살지

내가 스무살이었을때 일천구백칠십년 무렵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뿐야


여자들은 여자들을 살고

남자들은 남자들을 살지

어린애는 어린애로 살고

어른들은 어른들로 살지

내가  일흔살이 들면 이천이십삽십년무렵

그날은 그날일거고 오늘은 오늘일뿐야


미리 알수있는건 하나없고

후회없이 살 수 있지도 않아

피할수있다면 피하고싶지만

다 겪어봐야 알수있는게있지

꿈이 자라나던 내 어린시절

내 꿈을 따먹던 청춘시절

이젠 꿈을 접어 접어 날려보낸다

묻어버린 꿈 위로 나비춤을 추네

꿈이 춤을 추네

나비 날아가네

꿈이 날아가네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살은 일곱살을 살지


꿈이 자라나던 내 어린시절

내 꿈을 따먹던 청춘시절

이젠 꿈을 접어 접어 날려보낸다

묻어버린 꿈 위로 나비춤을 추네


꿈이 춤을 춘다

나비 날아가네

꿈이 날아가네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살은 일곱살을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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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에 '철학담당 임원'이 따로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그러니까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의 하는 이유가, 세상을 보는 태도가 다른 거지요. 물론 그 사람이 부사장과 마케팅 임원을 담당했던 사람이라도 말이지요. 


파타고니아는 1973년 창업 때부터 기업 이윤보다 자사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자연을 지키는 데 신경써온 기업이고 진짜 그걸 실천함으로써 오히려 더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곳이니까요(참고로 여기는 사장이 직원들에게 근무 중에도 서핑을 하라고 등을 떠미는 회사입니다. 2005년에 회장이 펴낸 책 제목이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입니다. 참 좋은 내용인데 책 만듦새가 좀 아쉽습니다. 누군가 다시 한 번 편냈으면 좋겠습니다) .  


누군가 이본 쉬나드 회장에게 경영철학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모든 의사 결정은 지금부터 100년 뒤가 기준입니다.” 


정말 배포가 다르지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100100&artid=20150224212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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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없이 모진 상대에게 순한 양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결코 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질고 악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큰소리도 치고 당당히 싸우기도 하는 것이 진짜 착한 것이다. 올해는 모두가 착하게 사는 한 해가 되시기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601&artid=201501152113375



진짜 착한 사람은 참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큰 소리도 치고 싸우기도 하는 사람이란 말에 백 번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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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주식은 심심하다. 빵뿐 아니라 쌀밥, 감자, 옥수수가 그렇다. 매일,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심함이란 적당히 간을 하면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심심하다는 건 맛의 부재에 대한 서술이라기보다 맛의 풍부함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그건 우리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심심해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심심해야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심심함은 인생의 맛을 위해 비워 놓은 자리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짜고 맵고 시고 달고 쓰기만 하다. 심심한 때가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지난해 누적된 피로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또 바빠질 한 해를 헤쳐 나가려면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자고 새해 결심을 한다. 이미 지친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며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자고 이를 악문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을 위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07204917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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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설 읽을 시간이 어딨습니까. 다른 책 읽기도 바쁜걸요. 책깨나 읽는다는, 흔히 지식인입네 하는 이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세계적인 트렌드인 피케티니 지제크니 유명 석학들의 신작 쫓아가기도 바쁜데 한가롭게 문학책 뒤적일 시간이 어딨소 하는 뉘앙스들. 이런 반응에서 나는 묘한 ‘꼰대성’을 느낀다. 알다시피 유식과 삶의 지혜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반대이기도 해서 지식, 정보, 교양이 많을수록 그에 치여 오히려 삶에 대해선 수동적, 방어적, 보수적이 되는 아이러니도 흔히 발생한다.


시와 소설을 읽으며 감동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판검사가 되고 교수나 CEO가 되는 건 무서운 일이다. 그 사람들도 스스로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다 '이해'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도 요즘 너무나 일에 관계된 글자나 영상만 쳐다보고 산다. 이러다 망가지겠다. 



http://www.hani.co.kr/arti/SERIES/572/6669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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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좋은 칼럼을 하나 읽었는데 오늘 다시 생각나길래 또 읽어보았습니다. 


상상은 경험의 여백에서 나온다는 생각,어린아이들이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은 대부분 오해거나 거짓이라는 생각, 세상을 살 만큼 살았다고 자부하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지 말자는 생각,그리고 일상에 매몰되어 상상력을 추방하지 말자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110211157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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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오늘 혼자 저녁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회사 근처 음식점에 가서 오징어불고기백반을 먹으리라 결심한 나는 아침에 건성으로 읽다 휙 던져버렸던 신문 중 한 장을 꺼내 접어들고 음식점으로 갔다. 경향신문 박찬일 셰프의 칼럼을 읽었다. 


우리는 라면에 나트륨 함량에 벌벌 떨며 싱겁게 먹어야 한다고 난리를 치지만 정작 라면에 곁들여 먹는 김치나 단무지의 짠맛에 대해선 관대하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보기 편한 일부분만 보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오늘 박찬일 셰프의 칼럼 제목은 ‘소금이 뭔 죄야’다. 아기들 분유의 소금 함유량을 다룬 국정감사 얘기로 시작한 이 글은 우리의 상식 속 빈곳을 강타한다. 원리는 너무 간단하다. ‘간을 본다’ 라는 표현은 모든 복잡한 요리기술을 한 마디로 대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소금의 중요성을 잘 전달해주는 말이다. 즉, 우리는 소금을 안 먹고 살 수 없다. 아주 싱겁게 먹는다는 것은 맛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이나 국물을 아무리 싱겁게 먹어도 과식을 하거나 반찬을 많이 먹으면 결국 그게 그거, 말짱 도루묵이다. 소금만 죄악시 할 일이 아니다. 


박찬일은 “이렇게 어떤 사안에는 뒤집어보면 다른 중요한 열쇠가 숨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라고 쓴다. 맞는 말이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뒤집어 생각을 해보면 없던 통찰력이 생긴다… 이런, 또 광고 얘기다. 이것도 병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09213218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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