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홉 시부터 극장에서 팝콘을 먹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신경을 가진 사람들일까, 하는 헛된 생각을 하며 영회 [신과함께-죄와벌]을 일요일 조조로 보았다. 이미 천사백만 명이 보았고 일요일인데다 상영 시간이 일러서인지 극장 안은 한산했다.

김용화의 영화는 [미녀는 괴로워] 때도 그랬지만 영화라기보다는 잘 짜여진 한 편의 게임이나 쇼프로를 보는 느낌이다. 아이언맨을 감독한 존 패브로가 출연까지 한 영화 [어메리칸 셰프]나 마크 러팔로가 나오던 [비긴 어게인]을 볼 때도 이건 영화라기보다는 하나의 흥미로운 콘텐츠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그것들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전통적인 영화를 벗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가 선명한 주호민 원작 웹툰의 틀을 가져오고 강림, 해원맥, 덕춘 같은 캐릭터들이 적재적소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이야기가 딴 방향으로 새거나 하는 헛짓거리는 없다. 확고한 프레임에 이야기의 핵인 소방관 자홍의 눈물겨운 사연이 펼쳐진다. 이승과 지옥을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풍경은 엄청난 CG를 통해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해준다. 저승 차사들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존재들이기에 시종일관 경쾌한 농담과 투덜거림을 섞어가며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고 차태현이 분한 자홍은 유일하게 현실적인 캐릭터를 맡아 관객들에게 교훈적인 신파 메시지를 끌고 가는데 여긴엔 몇 번의 반전이 숨어 있어 흥미를 더한다.

다만 염라대왕을 비롯한 그 많은 지옥 관련 종사자들이 일개 소방관 자홍의 사연에 이토록 휘둘린다는 건 거의 모든 SF들이 가지고 있는 '패럴렐 월드'의 한계임과 동시에 한 편의 에피소드를 이끌어 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난 아직도 개인적으론 이 평행우주론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인과를 얼버무리기에 너무 편리한 선택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인터스텔라]를 볼 때도 주인공들이 온 우주의 시공간을 돌고 돌아 마지막에 거실 책꽂이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에서 그렇게 허탈해 했던 모양이다.

암튼 김용화는 감독이라기보다는 엔터테이너에 가깝고 일종의 사업가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 영화도 하정우 등 주요 등장인물들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헐리우드 뺨치는 프랜차이즈로 거듭 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 치바' 시리즈에서도 보았듯이 지옥이나 저승사자 이야기 등은 언제나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니까. 막판 쿠키 영상 비슷한 꼭지에서 성주신으로 등장한 마동석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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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픕니다. 위염이 커져서 어젯밤도 끙끙 앓았고 지금도 자리에 누워 움직일 때마다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크리스마스는 계속 집에서 흰죽을 끓이다 아내에게 야단을 맞으며 조신하게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 혜자의 페친 중 한 분이 자신도 '크리스마스 조신 모드'에 동참하겠다며 집콕하며 보기 적당한 코미디 영화와 무조건 재미 있는 영화를 하나씩 추천해 달라 하셨답니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겨울에 볼 코미디 영화는 [다이 하드]시리즈 같은 '떠벌이 액션'이 일단 부담 없습니다. [저수지의 개들]부터 [헤이트풀 에잇]에 이르기까지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들도 늘 수다스러운 악역들이 등장해서 즐거움을 주죠. 그리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정통 로맨틱 코미디가 제격이죠. [노팅 힐]처럼 좋은 시나리오에 대스타들의 풍모까지 돋보이는 영화도 좋구요. 잭 블랙과 캐이트 윈슬렛, 주드 로, 캐머린 디아즈 등이 떼로 나왔던 [로맨틱 할리데이]도 추천합니다. 해매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워킹 타이틀의 [러브 액추얼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그 동안 많이 봐으니까 이번에 또 보시려거든 '무삭제판'을 권합니다. 직업이 포르노 배우라 통편집 당했던 커플 이야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풋풋한 감동을 선사하니까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을 썼던 노라 애프런의 [유브 갓 메일] 같은 작품도 좋구요. 노라 에프런의 뒤를 이었던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의 연기가 정말 뛰어난 수작입니다. 키애누 리브스도 나오죠. 

그런데 이렇게 '핑퐁 대사들'이 난무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모두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원제는 'It Happened One Night'이죠. 1930년대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 봐도 조금도 꿇리지 않는 유머 감각과 편집 타이밍, 연기를 자랑합니다 - 예를 들어 이런 장면 : 티격태격하던 여주인공과 버스에서 내려 냇물을 건나가게 된 클라크 게이블, 여자를 어깨에 둘러매고 가방을 든 채 냇물을 건내줍니다. 그런데 여자가 계속 쫑알쫑알 불만을 토로하죠. 그러자 클라크 게이블이 어깨 위에 있는 여자에게 잠깐 가방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가방을 여자가 건네받자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철썩 한 대 갈기고 다시 가방을 빼앗는 클라크 게이블. 여자는 짧은  비명을 지르고. 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 그가 맞습니다 - 제 이름을 걸고 강추합니다. 

코미디 영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이 찰리 채플린과 우디 앨런입니다. 사회주의자였던 찰리 채플린은 평생을 노동자와 가난에 천착했습니다. 그래서 [모던 타임즈]나 [키드] 같은 작품들은 한참을 웃다가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눈물 때문에 가슴이 아려오곤 하죠. 우디 앨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 코미디 대본을 보내서 용돈을 벌던 천재였습니다. 그의 자기비하 유머가 돋보이는 [애니 홀]이나 [한나와 그의 자매들]을 권합니다. 물론 제일 흥분하며 극장에서 봤던 영화는 최근작 [미드나잇 인 파리]였죠. 저는 개인적으로 여주인공이 매일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스크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험극 [카이로의 붉은 장미]도 정말 좋아합니다. 미아 패로우의 상대역이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미드 [뉴스 룸]의 그 앵커입니다. 

코앤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나 [파고]를 다 시 볼 것을 권합니다 제가 왜 '다시'라고 하냐면 왠지 코엔 형제의 영화는 다 봤다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화가 너무 컨셉추얼하고 지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영화라는 것만큼은 틀림 없습니다.

예전엔 코미디 영화 중  제일 재미 있는 게 뭐냐고 물으면 마크 마이어스의 [웨인즈 월드]를 댔지만 그 작품은 너무 취향이 독특한 '병맛'이기 때문에 이젠 선뜻 권하기가 좀 망설여집니다. 대신에 제니퍼 로렌스와 브래들리 쿠퍼가 나왔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정도라면 마음 놓고 추천할 수 있습니다. 참 좋은 작품입니다. 아, 그리고 숨은 작품 중 로버트 드 니로와 제인 폰다가 나온 [스탠리와 아이리스]가 생각납니다. 비디오 가게가 유행하던 시절 VHS로 빌려본 영화였는데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던 '신파'영화입니다.

올해 본 영화 중 한 작품만 꼽으라고 하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꼽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2016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저와 아내는 2017년 1월에 CGV명동 라이브러리에서 봤습니다. 제목인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실제로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입니다. 어떤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살던 케이시 애플렉이 형의 죽음으로 다시 돌아와 벌어지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인데 정말 푹 빠져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본 작품입니다. 벤 애플렉의 동생인 케이시 애플렉은 '열연을 하지 않음으로써 열연이 되는' 경지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특히 잠깐 술을 사러 간 사이에 아이들이 화재 사고로 모두 죽었을 때 술봉지를 놓지도 못하고 망연자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장면과 경찰서에 가서 간단한 조사를 마치고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다,라는 경찰의 말에 '정말 가도 돼요? 정말 이게 다예요?'라고 묻고는 경찰이 차고 있던 권총을 번개 같이 빼앗아 입안에 넣고 자살을 시도하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로 나왔던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도 끝내줍니다. [우리도 사랑일까]에 나왔던 그 배우입니다. 다른 영화에선 마를린 먼로로도 나왔었죠. 아무튼 저는 이 영화를 너무 감명 깊게 봐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다른 작품 [유 캔 카운트 온 미]도 찾아보았습니다. 그 영화 역시 잔잔한 인간사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마크 러팔로, 로라 리니 등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은 보석 같은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인데, 이건 권하지 않겠습니다. 원래 아이맥스에 최적합하도록 만들어진 이 멋진 영화를 집에 있는 TV로 보는 건 맛있는 파스타를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 먹는 것처럼 서글픈 일이니까요. 저는 못 봤지만 나문희 선생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아이 캔 스피크]가 좋다고들 합니다. 감독의 전작 [스카우트]의 품질을 생각하면 믿음이 가는 영화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와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를 추천합니다. 다들 각각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입니다. 폴 버호벤 감독의 신작 [엘르]도 좋았습니다. 얼마 전 그의 전작 [블랙 북]을 IPTV로 꺼내 아내와 함께 넋을 놓고 다시 본 적도 있습니다. 송강호 주연의 [택시 운전사]는 극장에서 보셨겠지요? 그럼 놓친 영화 중 문소리 감독의 [여배우는 오늘도]를 추천합니다. 그냥 여배우가 만든 영화겠지, 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능글맞은 코미디로 시작해 나중엔 인간사의 심연까지 들여다보는 멋진 작품입니다. 잠깐 등장하는 배우 이승연의 연기를 주목해 주십시오. 홍상수의 영화는 두 편을 개봉했는데 씨네21에서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후]가 더 좋았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인터넷도 찾아보고 하면서 이런저런 영화 얘기를 늘어놔 보았습니다. 아내가 아파 저도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냥 집에 있을 생각입니다. 지금 반 넘어 읽고 있는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을 마저 읽을 생각입니다. 정세랑은 정말 이야기를 잘 만들어 냅니다. 요즘 작가들 중 제일 좋아합니다. 그녀의 장르소설이자 엔터테인먼트 소설인 [보건교사 안은영]을 강추합니다. 물론 다른 책들도 다 재미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도착한 명로진 선생의 신작 [논어는 처음이지?]도 한 번 들춰봐야 하구요(아내가 기획한 책입니다. 저도 명 선생의 논어 강의를 재미 있게 들었구요). 읽다가 회사 일이 바빠서 반쯤 읽다가 중단한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도 다시 읽을 생각입니다. 독후감을 쓰고 싶은 책들도 몇 권 밀려 있는데 좀처럼 시작을 못하겠군요. 그래도 연휴인데 극장에 가서 조조나 심야로 [스타워즈] 같은 거 보고 싶기도 하고. 바쁘네요.

그런데 장례식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오늘 제천 병원에 가야 합니다. 제 대학 써클 뚜라미 동기가 이번 체천 찜질방 화재에서 참변을 당했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사는 게 참. 모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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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6bylpWdfFI



[록키]를 다시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하길래 아내에게 이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마침 그날은 개봉 전날이었고 그 이후엔 계속 회사 일이 바빠서 예매를 못하고 있다. 다음주엔 꼭 시간을 내서 이 영화를 보고야 말 것이다. 

내가 '록키 시리즈'를 만나 것은 불광극장에서 본 [록키2]부터였다. 고등학교 때였나보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고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록키]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 알게 되었고 텔레비전에서 성우들의 더빙판으로 이 영화를 한 번 본 후 홀딱 빠지게 되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더 부은 것은 대학생 때 읽었던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록키였다. [영자의 전성시대]로 유명한 조선작이 예전에 쓴 단편소설 <아메리카>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인 술집 아가씨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무슨 제목인지도 모르고 대낮에 변두리 극장에 들어가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록키였다. 신나게 권투만 하는 영화인줄 알았던 주인공은 마지막에 록키가 경기에서 지고나서 퉁퉁 부은 얼굴로 여자친구인 에드리안을 애타게 찾는 장면을 보면서 대책 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에드리안, 아아 록키. 아아 에드리안.  영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가장 힘들 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는 사실만이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이 영화는 실패담이다. 나이 든 스파링 파트너 출신의 퇴물 복서가 챔피언의 쇼맨십 덕분에 모처럼의 기회를 얻었지만 처절하게 싸운 뒤 결국은 장렬하게 판정패 한다는 이야기. 물론 사람들은 주인공이 실패하는 이야기보다는 성공담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 있다면 말이다. 모든 진정성 있는 실패담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가 김탁환은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쓴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에서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 이야기꾼이 아니라 간절한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 이야기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실베스타 스텔론이라는 이야기꾼이 작두를 탔을 때의 이야기가 맞다. 정말 간절하고 궁핍했던 시절에 그가 직접 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베스타 스텔론은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 경기를 TV로 보다가 뭔가 느낀 게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단 사흘만에 [록키]의 각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람보] 시리즈의 무식한 근육질이나 최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2]에서 뭉툭한 몸매와 목소리로만 연상되는 실베스타 스텔론도 사실 젊었을 땐 대학까지 나온 날렵한 인텔리였다. 영화를 하고 싶어서 도시로 나와 험한 일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슬라이(그의 애칭)는 '록키'의 각본이 헐리우드를 떠돌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도 타협을 하지 않는 뚝심을 보였다. 시나리오에서 흥행의 단초를 예감한 제작자들은 알 파치노 같은 당시 스타나 권투선수 출신의 라이언 오닐 등을 주인공으로 쓰려고 했으나 스텔론이 결사 반대해서 결국 그가 주연까지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고 작품 안에 나오는 낡은 아파트 등도 실제 슬라이가 살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애드리안과의 스케이트장 데이트 장면도 돈이 없어서 야밤에 찍게 되었는데 이건 가난한 록키가 밤 늦게 스케이트장 관리인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링크 전체를 데이트장으로 쓴다는 순애보적 아이디어에 현실성을 더하는 멋진 설정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실제 록키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슬라이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온 덕분에 영화는 수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고 실베스타 스텔론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어메리칸 드림'의 표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실패담이면서 동시에 성공담이기도 하다. [록키]에 비하면 그 뒤 나온 2편 3편 등은 갈수록 기름기가 끼고 거만함이 느껴져 록키라는 복서도 그저 하나의 기름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성공한 밴드의 모든 데뷔앨범이 훌륭했던 것처럼 실베스타 스탤론의 실질적인 데뷔영화 [록키]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이런 전설을 극장 스크린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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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과 레베카 솔닛의 저서 등등을 필두로 페미니즘 논쟁이 한참 달아 올랐을 때 나는 아내에게 '그 논쟁들이 이해는 되지만 저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건 좀 과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했다가 '밤에 혼자 택시를 타거나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가야 하는 여자들의 두려운 심정을 남자들은 모른다’라는 핀잔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 역사를 뜻하는 단어 ‘History’가 he+story, 즉 ‘그의 이야기’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남성 중심적 사고가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온 내가 여자들의 근원적인 공포나 억울함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물론 그래서 자꾸 공부하고 토론하고 해야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여배우’라는 단어는 좀 퇴행적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일단 배우가 감독한 영화, 라는 선입견을 제거한 채 보기는 힘들었고 감독이 문소리라는 여성이지만 ‘여류 작가’라는 말이 사라졌듯이 배우면 배우지 앞에 꼭 젠더를 표시해야 한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이는 첫번째 단편 <여배우> 편을 보고 나면 이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떡끄떡 하게 된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나이 든 여배우로 산다는 게 얼마나 애매하고 힘든 일인지는 문소리가 친구들과 등산길에서 만난 천만 관객 감독과 그 동료들을 통해 뼈저리게, 질리도록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연기 잘 해서 탄 트로피들은 빛 좋은 개살구이고(야, 나 메릴 스트립 아냐) 현실은 젊고 이쁜 여배우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 문소리가 할 역할은 ‘성격 센 정육점 여자’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야, 나 이뻐 안 이뻐?’라고 매니저에게 묻는 장면이나 남편인 장준환 감독의 ‘그럼 술이라도 줄이세요’ 등의 빵 터지는 대사는 페친인 성수선 작가 담벼락에서 이미 읽어서 새로울 게 없었고 여배우 문소리의 고충도 짤막한 영화 소개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리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 영화 내내 그런 투정과 신세한탄만 들입다 쏟아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웬걸, 첫 단편 <여배우>를 지나 두 번째 <여배우는 오늘도>, 그리고 세 번째 <최고의 감독>으로 갈수록 영화의 시야는 넓어지고 시나리오의 유머와 공감대는 신랄하면서도 깊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진 걸까. 이 영화는 문소리가 중앙대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만든 단편에 새로 만든 단편들을 더 붙여서 옴니버스로 구성한 독립영화다. 당연히 문소리라는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했으며 그가 매니저와 함께 타고 다니는 밴 안에서의 일상이 주를 이룬다. 등산길, 주점, 노래방, 일식집, 은행 등의 장소에서 여배우의 피곤한 일상들이 펼쳐지고 성병숙이 연기하는 엄마와의 실갱이나 요양원의 시어머니 같은 픽션들이 더해질 땐 살짝 스테레오타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마지막 장례식장에서 그 포텐이 터진다.

세 번째 작품 <최고의 감독>은 십사년 전에 문소리와 '햇빛 좋은 날’인가 하는 영화 한 편을 찍고 계속 방황하다가 갑자기 작고한 '이 감독님’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얘기다. 예전의 의리를 생각해서 잠깐 문상만 하고 오려던 문소리는 장례식장에서 “어이, 문 스타!”라고 비아냥거리는 옛 동료 배우와 마주치게 된다. 인기도 없고 늙고 비루한, 예전엔 문소리 좋다고 따라다닌 적도 있지만 결국엔 이혼 당한 채 지금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서 술에 취해 문소리에게 주정을 해대는 남자. 서로 가치 돋친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뒤늦게 도착해 대성통곡을 하는 신인배우 서연이와 함께 망자에 대한 엇갈린 평가와 예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싸우게 된다.

처음엔 누가 저렇게 연기를 잘 하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화제의 연극 [미국인 아버지]로 이름을 날린 배우 윤상화였다. 그리고 철없으면서도 속이 빤히 보이는 신인 역은 전여빈이라는 배우였다. 전여빈은 학교 선배인 문소리의 첫 단편 <여배우>를 보고 SNS에 영화의 한 장면을 캡처한 뒤 ‘문소리 감독님, 저와 함께 작업해 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마술처럼 세 번째 영화에 캐스팅이 돼서 마지막 단편을 같이 찍게 된 것이었다. 연기력 좋은 두 배우와 문소리의 케미에 마지막 불을 당기는 건 이 감독의 미망인으로 나오는 배우 이승연이다. “나가 주실래요?” 라는 대사가 순식간에 “나가라고, 이 썅년아!”로 변화되는 짧은 순간에 야무지게 전여빈의 머리채를 움켜쥐는 그의 연기는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뛰어나서 보는 이들에게 대단한 쾌감을 제공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 만화 [음주가무 연구소]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음주가무연구소 소장 겸 술주정뱅이인 나노미냐에요”라고 도도하게 시작하다가 결국엔 망가지고 마는 그 유쾌한 만화처럼 이 영화에서도 문소리는 걸핏하면 썬글라스를 챙겨 쓰고 연예인인 척 하지만 결국엔 찌질하고 불안한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례식장 시퀀스에서는 고슴도치처럼 싸우던 상대들이 함께 ‘화해의 맞담배’를 피운 후 새벽 묘지를 지나 이차를 가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다. 

따지고 보면 아둥바둥 살 일이 뭐 있나. 이 감독의 예술 세계도, 이 감독이 서연이와 잤는지 안 잤는지도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결국 이 밤이 지나면 문소리는 또 한 명의 여배우로 살아갈 뿐이고, 그건 이 영화를 보는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영화는 묻고 있는 듯하다. 문소리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은 모든 사람들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설픈 교훈보다는 공감과 유머를 던질 줄 아는 이 넉넉한 시선이 감독 문소리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한다. 극장에서 보기 바란다. 짧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면 당신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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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은 오랫동안 ‘광주사태’라고 불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항쟁’이라는 명예를 회복했는데 아직도 '그건 불순세력의 폭동이었다'고 말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518기념일에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바로 얼마 전까지 논란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그만큼 상흔이 짙은 역사적 사건이었고, 그 강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참살극이었으며, 37년이 지난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비현실적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나는 518계엄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박정희가 믿었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서울의 봄’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을 어깨 너머로 듣다가 몇 달 후 갑자기 MBC뉴스데스크에서 이득렬 앵커가 “지금 이 시각, 광화문에선 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입니다”라는 오프닝 멘트를 들을 때도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그 해에 존 레논이 암살당했고, 그래서 그의 유작 앨범 [Starting Over>를 라디오에서 매일 들었다든지 하는 건 잘 기억나도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워낙 쉬쉬하는 분위기라 나처럼 어린 놈은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518의 참상을 사진이나 필름으로 목격하고 뒤늦게 치를 떨어야 했다.

대학 1학년 5월 축제기간에 학생회관에서 틀어준 광주 관련 기록물들은 대부분 독일 방송국에서 온 것들이라 해서 약간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나는데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그 의문이 풀린 셈이다. 이 영화는 518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어떻게 화자를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한 점이 가장 큰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독일인 기자와 함께 택시운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너무나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광주까지 태워다주면 십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얼떨결에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 택시기사 만섭. 평범한 속물이었던 그가 뜻하지 않게 독일 기자 피터와 동행하면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은 송강호라는 괴물 연기자의 대사와 눈빛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아니, 평범한 택시운전사의 마음과 목소리였기에 관객들을 그대로 1980년 광주 현장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뒤덮었던 [군함도]의 흥행을 [택시운전사]가 꺾었다고 한다. 만약 거창한 역사의식이나 직업의식에 불타는 주인공이 열변을 토하는 영화였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아, 송강호.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그러나 송강호의 위대함은 다른 곳에 있다. 사실 '연기만 잘 하는 기계'들은 많다. 케빈 코스트너처럼 자유롭고 진보적인 역할을 많이 했던 배우가 알고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면에서 송강호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셀럽이다. 비록 [변호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민주 투사요’ 하는 오버도 없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묵묵히 신념을 지켜내면서 예술적인 성과까지 이루어 내는 것. 이건 정말 어렵고 소중한 능력이다. 그래서 난 송강호라는 배우를 이 시대의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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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50대의 출판사 사장에게도 새로운 연애가 찾아올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나이나 상황과는 상관 없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는 거니까. 연애감정이라는 것은 누가 심지 않아도 이끼처럼 적당한 응달만 있어도 어느새 자라나기도 하니까.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다음엔? 뒤늦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주인공이 결혼생활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로 생긴 젊은 여자랑 멋진 사랑을 이어갈까? 그럴 리가 없다. 적어도 이게 홍상수의 영화라면.  

홍상수의 스물한 번째 장편 영화 [그 후]는 문학평론가이자 작은 출판사 사장인 봉완(권해효)이 여직원 창숙(김새벽)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헤어진 후 새로운 여직원 아름(김민희)을 맞이하는 얘기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봉완은 창숙을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뒤늦게 아내 해주(조윤희)는 이 사실을 알고 격분했으며 아무 것도 모르던 아름은 그 사이에  채 엉뚱한 봉변을 당한다. 얘기만 들으면 상투적인 치정멜로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비슷비슷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자꾸 보는 이유는 섹스나 불륜을 잘 다루어서가 아니라 그런 소재를 다루면서도 상투적인 대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새로움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소하고 한심한 인물이나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 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역시 그의 영화답게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중국집에서 술을 마시던 창숙은 나이 많은 봉완에게 치사하다고 화를 내며 엉엉 운다. 간절하지만 사랑은 늘 이렇게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나중에 입사한 아름을 하루만에 쫓아낼 정도로 굳건해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창숙의 존재는 묘연하기만 하다. 그 뜨겁던 다짐이나 맹세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중국집에서 술을 마시던 아름은 봉완에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람은 믿는 게 중요하다고. 아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무시하는 요즘 풍조 때문에 하나님이란 말을 쏙 빼고 그 얘기를 하려니 믿음에 대한 토론이 본질을 벗어나 자꾸 겉도는 느낌이다(이 와중에도 교인인 아름은 '하나님'이라고 하고 교인이 아닌 봉완은 '하느님'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중요한 차이다). 나중에 출판사에서 쫓겨나면서 열몇 권의 책을 챙겨나오던 아름은 택시 안에서 갑자기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을 실감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아름이 봉완의 출판사에 다시 찾아간다. 이번에 무슨 상을 받게 된 봉완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아내의 눈을 피하면서 연애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을 내쫓았던 창숙의 뒷얘기가 궁금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봉완은 아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던 중에 "아, 우리 전에 만났었죠? 아, 같이 술도 마셨죠."라고 한심한 기억력을 드러낸다. 남아 있어야 할 창숙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다른 여직원이 들어오면서 배고픈데 뭘 시켜먹자고 봉완에게 말한다. 봉완은 중국음식을 시키자며 아름에게도 권한다. 허무하다. 당시에는 간절했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극장으로 들어가 겨울에 찍은 영화를 보는 맛이 각별했다. 더구나 흑백영화다. 이런 작은 영화는 차분한 흑백이 어울린다. 관객이 인물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늘 그렇듯이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권해효부터 김민희까지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는 감독이 배우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습성이나 표정, 버릇을 영화 속에 녹여내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촬영 당일 아침에 장비를 세팅하는 스태프들 사이에 앉아 비로소 디테일한 대사를 쓰는 것도 배우들의 실제 삶을 영화 속에 끝까지 반영하려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권해효와 조윤희는 실제 부부다. 크게 관계는 없지만 그런 걸 알고 보는 것도 영화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늘리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가치는 결과에 있을까 아니면 과정에 있을까? 아무래도 홍상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 과정이, 순간순간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언제나 현재가 제일이다. [그 후]라는 제목은 촬영장으로 쓰인 출판사에 있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즉흥적으로 따온 것이지만 이 모든 사건이 지나간 후에 과연 뭐가 남았는지를 반추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아름이 출판사를 나설 때 새 여직원이 시킨 중국집 철가방과 입구에서 깐 마주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중국음식 배달 오토바이와 비교해 봐도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홍상수의 영화를 무조건 지겨워하거나 키득거리면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펼쳐놓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인생과 이토록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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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인줄 알고 갔는데 이중 삼중으로 설계된 교묘한 심리극에 홀딱 속았다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이자벨 위페르는 알고 보니 칼자루를 쥔 여자였고 가해자는 복수를 당하는 게 아니라 어이 없게도 일종의 '사고사'로 죽는다. 


예상했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을 관객들이 서서히 깨달을 때쯤 맨 마지막 묘지 장면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여자들은 캐롤 리드의 [제3의 사나이]의 엔딩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당당하고 얄밉다.  폴 버호벤의 연출은  그가 평생을 천착해 왔던 폭력과 욕망 사이에 유머까지 끼워넣는 여유를 부리면서도 전체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경쾌한 카메라 워크 역시 '폴 버호벤'이란 감탄을 하게 만든다. 


음악은 예전 [원초적 본능]을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맛이 있고 설정이나 시점이 다소 애매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폴 버호벤스러운 점으로 느껴진다. 이 영화는 원래 미국에서 만들려고 했으나 니콜 키드만, 줄리안 무어, 샤론 스톤 등이 모두 출연을 고사하는 바람에 유럽으로 건너와 이자벨 위페르와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굳이 분류해 보자면 그의 흥행작들인 [로보캅]이나 [토탈 리콜], [스타쉽 투루퍼스]보다는 버호벤 초기작인 [The 4th Man]과 바로 전작인 [블랙북] 사이에 있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씨네21 평론가들 중엔 미카엘 하네케와 비교하면 뭔가 아쉬운 점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던데,  당치 않은 얘기다. 하네케 감독의 도저한 비관주의에 비하면 버호벤은 훨씬 낙관주의자에 가까우니까.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전날 최악의 영화들을 뽑는 ‘골든 래즈버리’ 식장에 가서 최악의 감독상도 받고 주최자들과 낄낄대고 온 최초의 감독이기도 하다. 모두 보통 사람의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폴버호벤짱 #이자벨위페르짱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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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JTBC뉴스가 끝나고 IP-TV로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를 봤다. 처음엔 일찍 자겠다던 아내도 어느덧 TV앞에 앉더니 끝까지 영화를 지켜보았다. [정사]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같은 날렵한 드라마를 만들던 이재용 감독이 웬일로 파고다공원의 박카스 아줌마 얘기래? 했는데 막상 영화는 생각보다 귀엽고 산뜻했다. 이를테면 [친구]를 만들던 곽경택이 어깨에 힘 빼고 [똥개]를 만든 느낌이랄까. 작년 10월에 개봉한 영화다. 


윤여정은 나이로는 분명 노인이지만 그냥 노인이 아니다. 어울리지 않게 청자켓을 입고 새침한 표정을 지어도 어울리고 고양이밥을 들고 마당으로 나오다가 다른 사람의 로맨스를 목격하고 부러워하는 얼굴에도 어울린다. 그렇다. '발리 윤식당'의 셰프도 윤여정이지만 이렇게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숨기지 못하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녀와 마주할 때 우리는 아직 윤여정만큼 '원톱'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여배우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같이 나오는 배우들과의 화학작용도 좋다. 트랜스젠더 배우 안아주나 윤계상이 윤여정과 함께 이태원의 이층집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내가 "완전 루저들의 합창이네?!" 라고 했더니 아내도 빙긋이 웃으며 동의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 성매매로 만난 사이지만 서로 예의를 지키고 품위가 있는 멋진 노인들이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게 가능한 게,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김기덕이 만들었으면 비린내가 났을 영화가 이재용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한층 담백해졌다. 그렇다고 푸근하거나 흐뭇한 것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윤여정이 오랜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살인자가 된 뒤 미련없이 체포되어 경찰차로 실려갈 때 운전하던 경찰이 건내주는 담배 한 가치의 연기는 참으로 위로가 된다. 작품 전체가 열여섯 평짜리 이층 양옥집만 하다면 거기에'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 라는 동의가 두세 평짜리 옥탑방처럼 붙어 있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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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극이 무대에 다시 오른다는 소식만으로도 사람들이 꺄아, 소리를 지르는 작품들이 있다. 지난 달 1년 만에 다시 막을 올린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그랬다면 이번 달엔 2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온 [프로즌] 역시 그렇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 작품들에 열광하는 걸까. 극단 맨씨어터 10주년 기념으로 올린 [프로즌]을 보았다.

연극을 영어로는 'Play'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뭔가를 생산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노는 것에 가까워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한 거짓말을 지어놓고 무대 밑에서, 또 무대 위에서 서로 암묵적으로 진짜처럼 여기며 그 세계를 통해 진실을 말해보려는 '수작'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맞는 거 아닐까. 더구나 [프로즌] 같은 번역극은 분명히 우리나라 배우들이고 우리 말 대사인데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의상, 분장, 배우들의 억양 등에서 어릴 적 TV에서 보던 '더빙 외화'를 보는 듯한 낯섦을 경험하는 재미가 플러스 된다. 물론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능력이 보증되어야만 가능한 쾌감이겠지만.

어린 딸 로나를 유괴당하고 20년 동안 그녀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낸시가 있다. 그리고 로나를 비롯한 수십 명의 소녀를 납치 및 성폭행한 소아성애자이며 연쇄살인범인 랄프가 있다. 두 사람 사이엔 연쇄살인범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정신과의사이자 알코홀릭인 아그네샤가 끼어든다. 그녀는 랄프 같은 사람은 정상인들과는 뇌구조부터 다르므로 그의 납치 강간 살해행위도 범죄라기보다는 일종의 질병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심리 전문가다. 그러나 천진한 미소를 띤 살인마에게 사랑하는 딸을 잃은 낸시도 그렇게 생각할까? 대충 설정만 훑어봐도 만만치 않은 연극이다. 과연 이렇게 꽉 짜여진 등장인물 구도 속에서 배우들은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 것인가.


랄프는 참 표현하기 힘든 인물이다. 관객들에게 혐오와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해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가 무시를 당하면 심하게 상처를 받는 약한 영혼임과 동시에 소녀들을 밴으로 유인해서는 '아프지 않게' 죽였다고 자랑하는 섬뜩한 싸이코패스이기도 하다. 심지어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들의 무능을 지적하기도 하는 전도본말의 캐릭터다. 랄프 역을 맡은 배우 박호산은 흥분하면 말을 더듬거나 쌍욕을 내뱉는 중간중간 해맑은 미소를 내보이는 설정에 '틱장애'라는 신의 한수를 더 얹어 싸이코 살인마의 내면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막판에 격하게 자신의 뺨을 치는 장면에서는 '정말 아프겠다'라는 생각에 저절로 객석에서 비명이 튀어나오지만 나중에 만나 물어본 결과, 그 순간엔 아픈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극 속으로 몰입한 것이다. 낸시 역을 맡은 배우 우현주의 발성과 대사처리능력 또한 탁월하다(극단의 대표인 우현주는 공동번역 작업까지 맡았다).

왜 '프로즌'인가. 대사 중 아그네샤가 아직 탐구하지 못한 인간의 뇌 세계를 '얼어붙은 땅' 비슷하게 표현한 것도 있고 또 20년 전 로나를 유괴당한 순간부터 낸시의 감정이 얼어붙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나는 영국의 극작가  브라이오니 래버리(Bryony Lavery)가 창조한 극단적인 이야기와 한국 배우들의 열연이 보여주는 극한의 시너지가 이 여름의 더위를 꽝꽝 얼려버리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이 연극은 여성 캐릭터인 낸시와 아그네스만 붙박이 출연이고 랄프 역은 세 명의 남자 배우가 돌아가면서 맡는다. 그러면서도 하루 한 번 공연 뿐이다. 하루에 두 번 공연을 올리는 연극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건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연극이 끝나면 배우들이 모두 탈진하기 때문이란다. 2년 전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보여준다는 세평 덕분에 '멘탈 탈곡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심리 스릴러 [프로즌]. 강추하는 작품이다. 7월 16일까지 에그린 씨어터에서 상연한다.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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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를 보았다. 과연 눈물 없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미루고 미루다 가긴 했지만 상영관 입구에서 곽티슈를 한 통씩 나눠주길래 '에이, 이건 좀 오버 아냐?'라고 했던 아내는 막상 안에 들어가서 상영 내내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고 코를 팡팡 풀었다.

눈물의 포인트는 안희정의 인터뷰였다. 별로 슬픈 얘기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노무현은 확실히 별종이었다. 노무현의 운전기사와 전 국정원 직원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평생을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사내. 그에게 우회도로나 지름길은 없었다. 그냥 정도를 뚜벅뚜벅 걷다가 절벽을 만나자 거기서 수직낙하했다. 그가 바로 노무현이다.

아내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인제는 확실한 악역, 강원국은 유머와 코믹 담당"이러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줬다. 나는 나레이션 한 번 없이 내러티브가 이렇게 잘 연결될 정도면 감독이나 구성작가들이 자료화면을 얼마나 많이 봐야 했을까를 생각하며 그 노고에 감탄했다. 감독과 함께 이 영화의 구성을 담당한 작가는 아내의 친구인 양희 씨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와 남대문 부원면옥에 가서 냉면과 닭무침, 그리고 소주를 주문했다. 아내는 한 병만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닭무침 안주가 남아서 할 수 없이 한 병을 더 주문해야 했다. 그리고 나와 서울로를 걷다가 서울로 기획에 첨여했던 시청 직원 온수진 주무관을 만나 커피도 한 잔 했다.

영화는 슬펐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오히려 역설적인 희망이 생겼다.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성공 케이스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선한 사람들이 이기는 경험. 그게 중요하다. 광고회사도 성공경험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PT를 선호한다. 가끔은 우리가 옳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막판에 죽음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누가 이를 실패라 말할 수 있겠는가.

비록 '노사모'는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 노무현과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하자. 어쨌든 그런 희망과 환희를 안겨 준 사람이 있었다니, 고마운 일 아닌가. 노무현의 눈물을 딛고 일어선 문재인 정부는 좀 더 강하고 더욱 세련되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게 '동업자' 노무현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 어제 낮술에 취해 페이스북에 올린 리뷰인데 기록 차원에서 여기에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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