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연극들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대다수다. 문자와 상상력만으로 지유롭게 구성되었던 원작을 두 시간 남짓 스크린이나 연극 무대로 재구성하려면 과감한 생략과 변조가 필수라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겐 상대적으로 아쉬움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아쉬움은 원작을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니 원작을 직접 쓴 사람의 경우는 더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연극 [댓글부대]의 원작자인 소설가 장강명은 이 연극을 보고 너무 놀랍고 재미있어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연출과 연기이기에. 재공연 소식 링크를 공유하며 알리는 그의 이런 페이스북 소개글을 출근길 전철 안에서 읽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나도 소설 [댓글부대]의 열렬한 팬이었으므로) 무심코 댓글을 달았는데 작가가 댓글과 링크 공유를 한 사람들에게 선착순으로 초대권을 두 장씩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행운이었다. 덕분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공연 첫날을 선택해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으로 갔다. 

삼궁과 찻탓캇, 그리고 10査10은 '팀-알렙'이라는 인터넷마케팅 업체의 일원이다. 인터넷 여론을 조작해 학원 강사의 평판을 좌우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보이던 이들은 어느날 수수께끼의 조직 '합포회'로부터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은 여직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망하게 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현장에서의  임금 체불을 문제삼아 가짜 증인, 증언 등을 만들어내 인터넷으로 퍼뜨리자 영화는 초기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몰이에 실패한다. 내친 김에 이들은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여성커뮤니티(여초사이트)에 들어가 사사건건 정당함에 대한 시비를 거는 댓글들을 통해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여기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ectness)이 어떻게 'PC Police'라는 자기검열 체제로 변색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예들이 제시된다. 

그리고 그들은 드디어 이철수라는 정체불명의 실장님이 제시하는 막대한 금액과 함께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회장님'의 지시에 따라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10대들을 선동하는 작업에 투입된 것이다. '팀-알렙'은 원래 왜곡, 조작, 혐오 등이 특기인 일베들이었다. 인터넷에 능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 그러나 실제 인간관계는 서툰 키보드 워리어들. 소설가 장강명은 이들이 '프레임의 전환'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그를 통해 선거에 까지 개입했는지를 치밀한 취재를 통해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자칫 르뽀처럼 건조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름도 괴상한 삼궁과 찻탓캇, 그리고 10査10 등의 캐릭터를 통해 입체적인 인물들로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연극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은진은 원작을 철저히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찻탓캇과 계속 대화를 나누는 신문기자를 임소진이라는 여성으로 바꿈으로써 극의 흐름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연극 무대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도 팀의 브레인인 삼궁의 야망, 넷상에서는 유능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연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찻탓캇, 그리고 대인기피증이 심한 오타쿠 10査10에게 인간적 훈기를 불어넣어 관객들로 하여금 '일베이긴 하지만 알고보면 쟤들도 불쌍하구나'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마지막에 쇠사슬에 묶인 어떤 물체(지금은 밝히지 말아달라는 극단측의 부탁이 있어서)가 천장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간단한 상상력만으로 무대를 얼마나 넓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연출력의 예이다.

커튼을 이용한 공간적 아이디어와 드라마적 완성도도 뛰어나다. 그리고 첫회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호연이 빛났다. 장강명 작가가 예전에 들었다는 "요즘은 일베도 연극하나?"라는 어느 관객의 평은 아마 10査10 역을 맡은 민경희 때문에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캐릭터가 딱이었다. 삼궁이나 찻탓캇 역도 고르게 연기가 좋았고 이철수나 임소진 역할도 든든한 연기력을 선보였지만 가장 인상 깊은 배우는 회장님 역의 김정호였다. 얼마 전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 역을 맡았던 이 배우는 당시엔 '너무 정극에 충심한 연기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실짝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그 '정극스러움'이 빛을 발했다. 한때 권력과 금력의 정점에 서 있었으나 이제는 늙어 꼬부라진, 가운을 입고 꾸부정한 걸음걸이로 나타나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비뚤어진 신념을 설파하는 목소리와 대사 처리는 전율을 금치 못하게 하는 에너지가 있었다. 


장강명은  현재 가장 핫한 소설가이다. 그는 소설가가 되기 전 동아일보에서 11년간 기자를 하며 이런저런 보도상을 받았고 소설가가 된 후에도 오늘의작가상, 한겨레문학상 등 국내 문학상을 휩쓸어 '그랜드 슬럼'을 달성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작품도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었다. 상을 받은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자신의 작업에 얼마나 열심이고 객관적으로 인정받는지를 말하고 싶어서 이 얘기를 굳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작품을 연극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기회라니 신나지 않는가.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표를 사시라. 후회하지 않는 110분을 보장한다. 2018년 6월 24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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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삶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평범함 속에는 어떤 조건들이 숨어 있는 걸까? 대충 이런 것들 아닐까. 엄청난 연봉은 아니더라도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직장에 다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아무 때나 이주일 정도 해외여행을 떠나고, 돈과는 상관 없는 나만의 취미생활을 영위하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하나 하나 열거하다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건 평범보다는 차라리 특별한 삶쪽에 가까운 게 아닌가. 적어도 신자유주의 시대의 폭풍을 온몸으로 맞은 뒤 한반도 남한에서 허덕허덕 살아가고 있는 이삼십 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영화 [버닝]은 무라키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90년대에 이 작품을 읽은 나는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는 주지 않고 오로지 헛간만 조심스럽게 골라 태우는 등장 인물의 무용한 행위가 영화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했을지 몹시 궁금했다(후에 전쟁영화의 레퍼런스급으로 등극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기 전 읽은 시놉도 '2차대전 중 참전용사로 네 명의 아들을 잃은 집의 마지막 아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한 군인들의 노력'이 전부였는데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영화의 분위기를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감독이 이창동이라는 말에 꽤 독한 영화가 나오겠구나, 예상을 했고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유통회사에서 '알바'를 뛰고 있는 소설가 지망생 종수는 일을 하다 행사장에서 춤을 추고 있던 어렸을 적 동네 친구이자 동창인 해미를 만나 가까워진다. 그녀는 취미로 팬터마임을 하기도 하고 고양이 '보일'이를 기르기도 하는데 어느날 종수에게 고양이를 맡기고 아프리카 여행을 훌쩍 떠났다가 벤이라는 돈 많은 남자와 함께 돌아온다. 벤은 특별히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스포츠카를 몰고 방배동의 고급 빌라에서 살고 있는 잘 생긴 싱글이다. 종수는 벤이 마치 피츠제럴드의 소설 속 주인공 개츠비 같다는 생각을 하고 벤은 그런 종수와 대마초를 나눠 피우며 자기는 가끔 들판에 널려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습성이 있다고 고백한다. 불이 나도 대부분 아쉬워하지도 않고 큰 범죄가 되지도 않는 비닐하우스 태우기. 종수는 혹시 자기가 비닐하우스 같은 하찮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몸을 떤다. 이들은 모두 저녁 노을보다는 아침 햇살이 더 어울리는 나이지만 그들이 모이는 곳엔 늘 석양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일 것이다. 해미가 아프라카에 가서 들었다는 얘기. 그냥 배가 고픈 사람은 리틀 헝거이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그레이트 헝거라는 그럴듯한 메타포. 그레이트 헝거는커녕 리틀 헝거라도 한 번 폼나게 해보고 싶지만 매 순간 가진 것 없이 뜨겁기만 한 젊은 육체를 버거워 해야하는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시시각각 색깔이 변해 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죽을 용기는 없고 그냥 저것들처럼 훌쩍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술집에서 운다. 

평생 아쉽거나 슬픈 일이라고는 당해본 적이 없어서 눈물을 흘려보지도 못한 벤은 그런 청승을 떠는 종수와 해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모든 일에 심드렁하다. 여자든 돈이든 원하기만 하면 바로 생기는 데다가 종수처럼 분노조절이 안 돼서 폭력혐의로 재판을 받는 아버지가 있거나 해미처럼 카드빚 다 갚기 전에 집에 들어올 생각 말라 야멸차게 내치는 가족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데, 아다시피 그것도 그리 큰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는 '재밌네'라는 말을 남발한다.  파주에 사는 종수 집으로 갔을 때 마을에 울려퍼지는 소음이 대남방송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는 무심코"재밌네요"라고 말한다. 사실은 뭐든 게 재미 없어서 자신의 여자들이 파티장 친구들 앞에서 신나게 떠들 때도 하품을 하다가 매번 종수에게 들키면서도. 

종수 역을 맡은 유아인은 영민하지만 '세상이 거대한 수수께기 같아서' 소설을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청년 역할을 너무나 잘 소화해 내고 있다. 판토마임으로 없는 귤을 까먹고 노을 앞에서 옷을 훌훌 벗은 채 반나로 춤을 추는 전종서도 해미 역에 딱이다. 그러나 이 영화 최고의 캐스팅은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권태롭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은 벤을 연기한 스티브 연 아니었을까. 이창동 감독의 연출력은 어느 하나 뛰어나지 않은 점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벤을 악역으로 설정하지 않은 점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종수에게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인데 정작 본인은 늘 침착하다못해 천진하기끼지 하다. 도대체 싸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보다 더 무서운 적은 아마 이처럼 무심한 존재일 것이다. 마지막에 종수가 벤을 칼로 찔렀을 때도 그는 아마 "재밌네"라고 중얼거리며 죽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 거나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않겠니? 같은 가짜 위로의 말은 당분간 삼가해 주시기 바란다. 비극의 주인공을 꾸며내려고 해도 '과잉 설정'이라는 소릴 듣게 되는 상황이 바로 하루에 햇빛이 딱 한 번 드는(그것도 남산 타워에 반사된) 해미의 방일 것인데 어쩌면 그 또래들에게 이 영화의 배경은 2018년 대한민국 전체로 확장되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 에스컬레이터에서 에티켓을 무시하고 걷거나 뛰어다니는 승객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는 어른들의 질책에 '나도 언젠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지 않고 그냥 서서 가는 입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대학생 알바생의 가슴 시린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서 바로 그 젊은이의 분노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나리오 작가 오정미 각본가에 의하면 이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지금의 제목 대신 '분노 프로젝트'라고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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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와 존 웨인이 만들어 놓은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신화적 구라들을 1960년대에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귀엽게 비틀었다면 2016년 데이빗 맥킨지와 크리스 파인은 서부라는 세트에 현대의 쓸쓸한 비극을 세련되게 옮겨 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금요일 밤인데 남편의 속이 고장나는 바람에 술도 마시지 못해 심기가 불편해진 아내의 눈치를 보다가 IP-TV에서 이 영화를 찾아냈다. 

황량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소하고 영리한 은행강도 행각과 침착하게 그들을 쫓는 늙은 보안관 콤비. 각본도 연출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끝내준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무심코 던지는데 대사 타이밍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마지막 농장 신에서 크리스 파인과 제프 브리지스가 주고 받는 어른스러운 대사와 표정들은 특히 멋지다. 1,500원밖에 안 하길래 안심하고 아내의 허락을 구하고 틀었는데 우연히 좋은 영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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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만나 보는 나이 든 홍상수 - [클레어의 카메라] 


영화제 때문에 깐느에 왔던 영화감독 소가 술에 취해 영화사 직원인 만희와 하룻밤 자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런데 같이 온 영화사 사장이 그걸 알고 만희를 현지에서 전격 해고한다. 이유는 정직하지 않아서, 라고 하지만 사실은 질투심 때문이다(사장과 소 감독은 오랜 연인 사이다). 만희는 자기가 왜 잘렸는지도 명확하게 알지도 못한 채(비행기표가 워낙 싼 거라 일정 변경이 불가능해서) 깐느 해변을 배회하다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다니는 클레어라는 프랑스 여자를 알게된다. 그 여자는 우연히 소 감독도 만나게 된다. 소 감독과 영화사 사장이 있는 자리에 합석하게 된 클레어는 자신이 며칠 동안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보여주다가 이 사람들이 만희와 아는 사이임을 알게 된다. 만희는 김민희이고 소 감독은 정진영, 영화사 사장은 장미희이다. 

이것은 홍상수 감독이 내놓은 69분짜리 짤막한 장편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다.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편의 단편소설 같다. 그것도 1,2,3 챕터로 구성된 단편소설 중에서 두 번째 챕터만 떼어내 영화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몇 명 나오지 않는 등장 인물로 봐도도 그렇고 백 분이 채 안 되는 길이로 봐도 그렇다. 제목에 등장하는 클레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도 없고 인간적인 고뇌도 없어 보인다. 아마도 클레어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에 대해 알고 싶으면 1이나 3챕터를 따로 찾와봐야 할 것이다. 

아다시피 홍상수는 몇 줄의 시놉으로 구성된 아주 사소한 얘기만으로도 뚝딱뚝딱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관객이 흥미를 불러 일으킬 만한 영화적 소재를 찾는 것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오해받을 수 있는 소재나 배우를 쓰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그럼 내가 이런 얘기 말고 무슨 다른 얘기를 하란 말인가, 라고 매번 묻는 듯하다. 이번에도 프랑스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몇날 며칠 간의 소소한 사건들이 앙상한 배경의 전부다. 그런 미시적인 세계 속에서 '정직, '판단', '변화' 같은 중요하지만 너무 빛이 바래 이젠 우스워진 단어들을 배우들의 입에 담게 한다. 그러다 보면 또 한 번 홍상수만 가능한 영화가 완성된다. 찌질한 연애나 삼각관계, 허영심에 휘둘리는 남자들 등 아주 시시한 세계 속에서 보편적 인간의 속성을 발견하는 것. 아마도 홍상수를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만든 것은 이런 통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홍상수는 변함이 없다. 일상의 미세한 반복을 포착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치찬란한 면을 천재적인 방법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술자리나 섹스 장면이 점점 적어진다. 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굳이 술이나 섹스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얘기가 충분히 전달된다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번엔 그 생략의 빈도가 더 잦아지다 보니 러닝타임도 짧아지고 카타르시스도 적어졌다. 언젠가 홍상수는 영화를 찍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면 그땐 아주 짧은 단편소설 같은 걸 쓰고 있지 않을까, 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그의 예언을 미리 엿본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고 홍상수가 힘이 빠지거나 너그러워지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덜 수다스럽고 덜 그악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고 또 당연한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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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일러 주의) 

내가 광화문에 있던 MBC애드컴이라는 광고대행사에  신입사원으로 일할 때 얘기다. 어느날 아침 출근을 했더니 사람들이 조간신문을 앞에 두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어떤 남자가 조간신문 1면에 5단통광고 지면을 사서 홀딱 벗고 찍은 돌사진을 싣고 그 밑에 'oo야, 나랑 결혼해 줄래?' 라는 청혼광고를 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둘이 같이 명동 거리를 걷다가 TV 방송 프로그램 중 전광판에 뜬 다른 커플의 청혼 이벤트를 보고 여자친구가 너무나 부러워했단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자기 아버지에게 가서 "예쁜 며느리 얻으시려면 돈을 써야 해요"라고 설득해 이백만 원인가를 빌려 그 광고를 집행했다는 것이었다. 정작 광고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그 기발함과 실천력에 감탄했다. 물론 다  좋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대체로 여직원들은 어머, 좋겠다. 너무 로맨틱해! 하고 부러워했고 남직원들은 아유, 미친새끼...하고 담배를 뻑뻑 피우며 화를 내기도 했으니까. 

어떤 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미국 남부 깡촌 미주리주에 사는, 딸이 강간살해로 죽은 뒤에도 경찰이 범인은커녕 단서조차 잡지 못해 울화가 치민 상태로 지내던 밀드레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새벽에 한적한 마을 도로를 운전하고 지나가다가 아무도 쓰지 않는 망가진 광고판(빌보드)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세 개의 광고판에 경찰을 자극하는 카피를 한 줄씩 실어 수사를 촉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경찰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광고판 업자를 만나 광고 금액을 묻고 광고판에 써넣을 문구를 의논한다. "법적으로 쓰면 안 되는 글자가 뭐야? F*ck이나 C*nt 같은 단어는 물론 안 되겠지." 여기서부터 마틴 맥도나 감독의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한다. 빌보드를 붙이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과 흑인 인부들이 나누는 대화 속엔 미국 남부지방에 깊게 뿌리내린 차별과 불합리에 대한 야유들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 대사들이 너무 신랄하고 웃겨서 얼굴이 찌푸려지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워진다. 그녀가 세 개의 빌보드에 나눠 써넣은 문장은 '어떻게 됐어 윌러비 서장, 아직도 체포 못했어? 우리 딸은 강간당하면서 죽어갔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에둘러 경찰이라고 하지 않고 직접 서장의 이름을 거론했고 딸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도 분명히 적었다. 당연히 경찰들은 질색을 하고 주민들도 도를 넘은 그녀의 행동에 우려를 표명한다. 윌러비 서장은 인품이 좋아서 지역사회에서 명망도 높은 데다가 얼마 전에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불쌍한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를 만난 윌러비 서장이 "내가 암에 걸린 걸 알고도 그 광고판을 썼어요?"는 질문에 태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다소 멍청해 보이고 버릇도 없는 경찰 딕슨에게 '고문 경찰'이라고 계속 놀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쯤되면 영화는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서는 방향으로 곧장 흘러가야 할 것 같지만 감독은 이런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는다. 대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이혼을 한 밀드레드의 전남편을 불러 오기도 하고 어린 두 딸과 아내를 두고 가야 하는 윌러비 서장의 눈물 어린 마지막 섹스와 자살 과정을 정감 넘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흑인들을 괴롭히던 폭력 경찰에서 정의로운 히어로로 거듭나는 딕슨의 변화를 보여주며 이 영화가 단순히 살인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인생 자체를 태피스트리처럼 엮은 쫀쫀한 휴먼드라마임을 깨닫게 해준다.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좋은 시나리오를 가진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에도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온다. 새벽 도로에서 손톱을 깨물며 광고판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할 생각을 하는 밀드레드부터 아내와 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자살을 기획하는 윌러비, 그리고 술집에서 일부러 폭행을 유도해 범인의 DNA를 확보하는 딕슨과 불타버린 광고판을 다시 세우게 만들어주는 인부들의 마법 같은 도움까지. 그리고 이런 아이디어들을 빛내주는 프란시스 맥도먼드와 우디 해럴슨, 샘 록웰 등 일급 배우들의 연기가 있다. 

시종일관 등장인물들과 비꼬거나 받아치는 대사를 주고 받으며 웃음을 선사하던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음주운전을 걱정해 차를 빌려달라던 딸의 부탁을 거절하며 무심코 되받았던 막말(나 걸어가다가 강단 당할지도 몰라  - 그래, 강간이나 당하든지)이 현실이 되어버린 장면을 보여줄 땐 정말로 눈물이 나서 혼났다. 이 영화엔 전형적인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장된 연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할 만한 행동을 하고 보일 만한 반응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그'와 '그녀'가 범인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런 건 상관하지 않게 된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게 된 눈빛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기 때문이다. 

가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오래 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끝내주는 작품이 같은 해에 나란히 개봉하는 기적. [쓰리 빌보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했다. 와, 이런 끝내주는 영화를 몇 주 간격으로 계속 보게 되다니! 폴 토머스 앤더슨의 [펜텀 스레드],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그리고 마틴 맥도너의 [쓰리 빌보드]까지 올해(사실은 작년) 미국영화들 정말 대박이다. 두 시간 내내 울다 웃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영화가 빨리 끝나버릴까봐 두려워하다가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극장 문을 나섰다. 이 영화는 작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등 여러 부문 후보에 올랐고 결국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여우 주연상 수상(그녀의 수상 소감도 많은 화제를 모았다)과 샘 록웰의 남우 조연상 수상으로 작품의 위엄을 증명했다. 아이디어도 좋고 연기, 각본, 엔딩 처리까지 너무 좋다. 부디 놓치지 말고 극장에서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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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 가서 남자답게 술을 마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두컴텀한 극장에 혼자 들어가 나보다 더 찌질한 인생을 그린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이건 예전 한석규, 김지수 주연의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고 썼던 리뷰의 첫 대목이었다. 오늘 연극 [모럴 패밀리]를 보고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집에 와서 리뷰를 써볼까하고 노트북을 펼쳤더니 십여 년 전 썼던 그 대목이 고스란히 다시 떠올랐다. 

큰 언니는 술집에 나가고 고등학생인 여동생은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이 입었던 팬티를 판다. 공부를 제법 하는 남동생은 성정체성이 게이라서 너무 괴로워 가출을 할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늘 침대에 누워 지내는 폐인 오빠는 어렸을 때 본드를 너무 많이 해서 몸도 가누질 못해 남들이 시간 날 때마다 똥을 닦아줘야 하는 존재다. 큰 언니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데려와 소파에서 오럴 섹스를 하고 있을 때도 동생들은 무심히 들어와 말을 걸거나 훼방을 놓는다. 고등학생 여동생은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의 팬티를 경매에 붙이다가 마침 들어온 언니에게 한 마디 하라고 하고 언니는 픽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서 "야, 니네들 이런 거 왜 보냐? 이 병신 새끼들아."라고 욕을 한다. 카메라를 이어받은 동생은 우리 언니, 존나 이뻐서 더 나오면 안 된다. 니네들 언니 보고 딸딸이 쳐서 안 된다, 하는 멘트를 거침없이 날린다.

거실에 놓인 소파의 뒷모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심란한 가족의 이야기는 흡사 영국에서 시작해 미드로까지 리메이크 되었던 [셰임리스]와 비슷하다. 실제로 미드에서 에미 로썸이 맡았던 역할은 오늘 본 연극의 큰 언니 연설하 배우와 많이 겹치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연극이 [셰임리스]와 가장 다른 점은 아마도 '언어'일 것이다. 물론 영어가 짧은 내가 미국 드라마의 슬랭을 다 알아 들었을 리가 만무하지만 그래도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씹'이나 '보지', '자지' 같은  날것 그대로의 언어들을 듣고 있다보면 처음엔 재미 있다가도 나중엔 오히려 슬퍼지는 경지에 이른다. 특히 동생 역을 맡은 강선영의 찰진 욕들은 성인 인터넷 방송을 할 때 빛을 발하는데 너무 잘 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프다.  

더구나 이 연극은 1회에 들어올 수 있는 관객 수를 딱 50명으로 제한하고 원래 있던 무대를 더욱 축소해 스테이지와 관객이 거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구성을 했다. 거기에 배우들의 거침 없는 노출 연기, 동성애, 근친상간 암시까지 겹치니 웬만한 사람들은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데 그런 극단적 상황들이 계속 되다 보니 오히려 자학적 쾌감을 지나 기분이 신선해지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고나 할까.

가족은 선택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는 삶의 굴레다. 오죽하면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남들이 안 볼 때 어디론가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을까. 그만큼 힘든 존재인 가족 얘기 중에서도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다루면서 '모럴 패밀리'라는 반어법적인 제목을 붙인 감독의 감성이 믿음직하다. 

우리에게 작품을 권한 연극배우 이승연은 '작품이 너무 세서 일반인들에겐 권하기 꺼려지지만 혜자 언니 부부 정도면 좋아할 것 같아서'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결과적으로 너무나 고마운 추천이었다. 이승연 자신은 이 연극을 보고 한 사흘 정도 빙의가 되어 헤어나질 못했다고 한다. 늘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그다운 반응이요 리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연극을 본 날은 3월 4일 일요일인데 4월 1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 호연을 했던 김선영 배우가 대표로 있는 <극단 나베>의 작품이고 김선영 배우의 남편 이승원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모두 맡았다.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커플이나 각별히 예의를 지켜야 하는 사돈지간만 아니라면 누구랑 같이 봐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재미있는 연극이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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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더 포스트]를 보았다. 1971년 뉴욕 타임즈의 펜타곤 문서 특종 보도를 통해 미국 정부들이 숨겨왔던 월남전의 진실이 밝혀지는 이야기다.

워싱턴 포스트라는 신문사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과 벤 브래들리 편집장 역의 톰 행크스의 연기가 뛰어나고 스필버그의 연출력도 너무나 원숙하다.

영화 중 가장 박진감 있는 장면은 닉슨 정부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이 보도를 결심한 뒤 긴박하게 식자를 만들고 윤전기가 돌아가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갓 나온 신문을 꺼내 들여다 보고 끈에 묶인 신문 뭉치들이 길에 뿌려지는 일련의 장면들이다. 마치 하루키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느끼는 쾌감과 비슷하다. 어제 [팬텀 스레드] 무비토크를 딘행하던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의 윤전기 장면들을 잠깐 언급하며 '어쩌면 감독들은 이런 장면을 찍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동감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글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감동이 느껴지니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대법원 판결문을 관객에게 전하는 방법이었다. 카메라는 대법원을 비추는 대신 시끄러운 신문사 내부로 간다.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여기자가 "모두 조용히 하세요!" 라고 외친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지는 신문사. 기자는 전화를 통해 듣는 판결문을 한 문장 한 문장 큰 소리로 따라 읊는다. 관객이 온몸으로 집중해 듣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고 마지막 문장 '언론이 섬겨야 할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라는 말을 하며 기자가 울먹일 땐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스포트라이트]의 시나리오도 쓴 조시 싱어라는 사실은 영화가 끝난 뒤 큐레이터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내의 친구가 극찬을 하며 이 영화 꼭 보라고 해서 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녀에게 고맙다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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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나이트]를 처음 봤을 때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야, 세상에 마틴 스콜세지를 찜쪄먹는 신인 감독이 나타나다니.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고 나서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야, 폴 토머스 앤더슨은 쉬어가는 영화도 이렇게 멋들어지게 만드는구나. 그리고 [마스터]나 [팬텀 스레드]를 보고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제발 폴 감독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만큼만 장수하시기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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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블랙 팬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절주절 쓰다가 지겨워서 다 지워버렸다. 말이 안 되는 걸 말 되게 하는 게 마블이나 DC코믹스의 큰 특기이긴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인종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그것도 블랙 피플들이이나 제3세계 팬들을 위한 '만들어진 정치적 올바름'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늘 주인공의 혈통을 따지는 후진 세계관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건 [스퍼맨] 때부터 이어지는 히어로물의 한계인 것 같다. 그리고 첨단 무기를 쓰다가도 결국엔 늘 주인공들끼리 칼싸움이나 육박전을 벌이는 전통도 볼 때마다 웃긴다. 이래저래 난 히어로물에선 그닥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다들 열광하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서부영화 세계관도 별로고 수트 갈아 입었다고 목소리가 달라지는 [배트맨] 시리즈도 어이 없어하는 편이다. 그나마 안티 히어로인 주인공의 농담이 쉴새 없이 쏟아지는 [데드풀]이 그 중 제일 재미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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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일곱 시에 CGV압구정에 가서 7시 45분 [올 더 머니] 입장권을 한 장 샀다. 오늘 오후에 CGV 노블레스 회원으로 신규 가입을 한 나는 표를 사면서 혹시 오늘부터 할인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매표소엔 마침 직원과 수습사원 두 명이 근무 중이었다. 둘 다 젊은 여성이었다. 

성준) 저, 오늘 실버회원 가입했는데요.
여1)  네? 실버...? 
여2) 노블레스 얘기하는 거야...(귓속말로) 
성준) 실버나 노블레스나(속으로).

성준) 오늘부터 할인이 되나 해서요.
여2)  아, 그게 오늘 오후 늦게 저희에게
         도착하게 되어 있는데 아직 안 왔네요. 
성준) 오후 늦게라니...
          지금도 상당히 늦은 오후인 거 같은데.
          얼마나 더 늦어야 되는 거예요? 

여2)  그러게요. 하하. 
성준) 그냥 주세요. 

여2)  네, 만천 원. 7시 45분 한 분, 맞으시죠? 
성준) 네. 그럼 CJ 원카드 적립은 되죠? 
여2)  네, 휴대폰으로 보여주세요...
         아, 손님 로그인을 해주셔야.
성준) 아, 제기랄. 로그인...
         비밀번호를 바꿨는데 생각이 안 나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를 봤다. 원제를 보니 'All the money in the world'였다. [러브 액추얼리]도 아마 'Love actually is all around'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제목 싹뚝 잘라먹는 전통은 유구하다.

암튼, 폴 게티라는 사상 초유의 이탈리아 석유 재벌의 손자가 납치되고 범인들이 몸값으로 무려 천칠백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게 이야기의 구심점이다. 그것도 70년도 초에. 그런데 이 노인네가 랜섬 지불을 거절한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있고 그걸 각색한 걸 리들리 스콧이 영화로 만든 것이다. 

난 뭔가 긴박하고 스마트한 납치극을 상상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배경이 1970년대인 줄도 모르고 갔었다. 물론 크리스토퍼 플러머나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는 훌륭했고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이끌어가는 스콧 감독의 연출도 유장했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는 뭔가 허전했다. 내가 부자의 삶을 동경하지 않아서인가. 부자들의 내면적 갈등이나 고통에 좀처럼 동화되지 못했고, 범인들의 애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납치범들에게 귀를 잘린 폴 게티 3세에게 마구 감정이입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전직 CIA요원인 마크 윌버그가 아랍의 왕족들과 협상을 벌이는 자리에서 그들끼리 주고받는 아랍어를 알아듣고 "복수형으로 해주십시오, 폐하."라고 문법을 지적하거나 자신을 비난하는 미셸 윌리엄스에게 'CIA에서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일이고 나는 물건이나 사람을 파는 협상을 주로 했다'라고 말하는 재치 있는 대사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작품 외적으로 더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원래 폴 게티 역으로 캐빈 스페이시가 캐스팅되어 영화를 다 완성했으나 뒤늦게 그의 성추행 논란이 터지면서 주연배우를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바꿔 재촬영을 한 것이다. 2주만에 다시 재촬영을 끝냈다고 하는데 노 개런티로 다시 촬영장에 간 미셸 윌리엄스 등에 비해 마크 윌버그만 재출연료를 비싸게 요구해 구설에 오르게도 했다 한다. 그러나 클리스토퍼 플러머의 연기력이나 발성 등이 하도 훌륭해서 다시 찍었다는 게 믿기지 않은 정도다(원래 감독은 처음부터 이 배우의 캐스팅을 원했으나 제작자들이 더 유명한 배우를 원해 케빈 스페이시가 낙점되었다는 소리도 있다). 

전 세계 최고의 부자, 납치와 몸값 요구 등등은 매우 선정적인 소재다. 영화 말고도 대니 보일이 TV드라마로 이 이야기를 또 찍고 있다고 하니.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건 이런 경우에도 해당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신경전, 그리고 전직 CIA요원의 정의 추구하기에 힘을 쏟다 보니 모티브였던 납치는 느슨해져버리고 범인들은 당위성이나 스마트함이 부족해 균형이 깨져버렸다. 실화를 뒤집을 수 없어서이겠지만 마지막에 납치된 손자를 구출하는 시퀀스는 지루하고 요령부득이라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해프닝에 가깝다. 

그래서 '세상을 다 가지게 된 자가 들여다보게 될 심연'이나 '납치 스릴러를 빙자한 흥미진진 슈퍼리치 해부도감'이라는 씨네21 평론가들의 그럴듯한 한 줄 평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잘 만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울림이 없는 영화. 나의 소감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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