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술 마시면서 택시운전하는 초등학교 동창 한식이한테 들은 얘기가 기억난다. 택시를 몰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고 한다. 이런저런 취객은 말할 것도 없고 가끔 요금 안 내려고 문 열리자마자 냅다 튀어나가는 놈들도 많은데 그런 놈들은 그냥 놔둬야 한다고 한다. 쫓아가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염한 자세와 멘트로 기사를 유혹하는 아줌마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노르스름한 잡지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얘기는 택시비 대신 주고 갔다는 반지나 목걸이 이야기였다. 하긴 세상엔 사랑을 시작하는 옵티미스트들도 많지만 사랑을 끝내는 페시미스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아저씨, 저 이거 더 이상 필요없는 물건인데 택시비 대신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손님들은 야밤에 술에 취해 또는 맨정신에 고즈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사연이 붙어있는 금붙이나 보석들을 택시에 두고 내린다고 한다. 그날 그 친구가 보여준 목걸이도 그런 스토리가 내장된 물건이었다. 처음 그가 들고 온 진주목걸이를 보고 놀라던 그의 아내도 이젠 그런 물건들을 가져다 주면 태연하게 처리한다고 한다. 


잠도 오지 않는 초여름 심야. 내가 심야택시에 두고 내렸던 기억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 생각하다가, 이런 건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떠올려야 하는 이야긴데...하고 창밖을 힐끔 내다본다. 자야겠다.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출근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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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67653





예전에 리처드 브랜슨이 쓴 책에서 ‘버진 레코드’의 이름을 지을 때 일화를 재밌게 읽은 기억인 난다. 젊었을 때 브랜슨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잔뜩 모여 하루 종일 딩굴고 어울려 노는 레코드점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레코드점 이름을 짓자고 결심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바로 ‘버진’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처음하는 사업이라는 뜻에서 ‘Virgin’이었지만 사실은 “근데 여기에 진짜 Virgin은 하나도 없잖아? 하하하” 하고 웃은 이유가 더 컸다고 한다. 이건 마치 예전에 들국화 형님들이 모여 새 앨범 이름을 정할 때 “도대체 ‘추억’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라고 말한 뒤 ‘추억 들국화’라는 앨범 이름을 정한 것과 마찬가지다. 


브랜슨은 60초 만에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하거나 그 아이디어가 어떨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두꺼운 보고서보다는 직감적인 본능에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조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순간적인 판단이나 직감을 따라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나 다이슨청소기를 만든 제임스 다이슨,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시장이 원하는 정답을 내놓으면 결국 ‘평균’ 제품밖에 만들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남의 말만 듣고 망설이다가 아무 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신의 직감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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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가장 

불화가 

심한 날, 

월요일. 


이번주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심심해서 페북에 


즐거운 월요일입니다, 라고 하면 사람들이 화내겠지? 


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장 "페삭 안 당한 걸 다행으로 아셔야"라는 댓글이 달렸더군요. 





그래서 다음날 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즐거운 화요일입니다, 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게 미쳤나?" 그러겠지? 


그랬더니 여러가지 반응들이 쏟아지더군요. 자기도 괴로워 죽겠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래서 "저도 너무 괴로워서 거꾸로 이렇게  말해본 거"라고 중간 고백을 했습니다.



은근 재미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썼습니다. 


즐거운 수요일입니다, 라고 또 쓰려니 크리에이터로서 면이 안 선다. 나는 카피라이터니까 오늘은 이렇게 써보자. "월요일을 구입하시면 수목금은 번들로 드립니다"


그러자 정말 화를 내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월요일을 반품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상품 진열이 후지다고 혹평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친절하게 김여사와 브라우니 사진을 댓글에 올린 분도 계셨고요. ㅋㅋ




목요일이 밝으니 이거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즐거운 목요일입니다, 라는 되도 않는 거짓말.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아하하.

그래서 오늘아침엔 솔직히 자백을 했습니다. '즐거운'이라는 형용사가 꼭 즐거울 때만 쓰는 건 아니니까요. 그랬더니 "별꼴이네"라고 시비를 걸어오시는 분도 있었습니다만... 뭐,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투지가 돋더군요.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내일은 금요일이네요. 뭐라고 쓸까요? 아직은 모릅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 봐야죠. 아무튼 '재미 없는 것도 재미를 붙이니 재미가 생긴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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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둘이 노려보며

서로를 버텨주는 바람에 

내가 먼 길을 오갔다 


어쩌다 만났다가도 

금새 헤어질 줄 아는 

니들 덕분에 

편히 집으로 갔다 



근데 왜 그랬을까  


니들 발목에   

대못을 탕탕 쳐 

평생 쳐다만 보다 죽게 만든  

그 인간은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내 발등에 

대못을 박아 놓고 

잠깐 시장에 갔다오겠다 하고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그 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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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짧은 글 짧은 여운 2014. 1. 3. 14:56

먼 별 



그 별은 은하계에서도 

밝기로 유명했어 

얼마나 밝은지 

한 번 별을 본 사람은 

다신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 별을 본 사람은 아직 지구상에 없어 


사람만이 아니라 

그 별을 본 유인원도 공룡도 나타나지 않았어 

3억5천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단 그 별을 보려면 

3억5천만 년을 기다려야 하거든 


용케도 3억 년을 기다리던 공룡과 유인원들은 

결국 지루함을 못이겨 쓰러져 나갔고 

세상에서 가장 지름이 크다던 그 나무는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어느날 

벼락에 맞아 비명횡사하셨지 



별 한 번 쳐다보는 데도 

3억5천만 년이야


백 년 안짝 인생에 

무슨 사랑이네 슬픔이네 지랄이니 

어쩌다 태어났으면 그냥 

술이나 한 잔 꺾다 가 




몇 주 전 이자람 밴드 공연을 보던 날 홍대앞 따루주막에 가서 혜자랑 금모래 처제랑 술을 마시다 이자람이 천상병 시인의 시에 붙여 부르던 곡을 생각하며 즉흥적으로 공책 뒷장에다 시를 한 번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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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짧은 글 짧은 여운 2013. 7. 29. 05:29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는, 일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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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새벽에 대한 오랜 오해가 풀렸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라고는 빈둥거리는 것뿐이다. 천천히 조간신문도 읽고 책도 읽는다. 인터넷도 한다. 그러면 낮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머리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온다. 모두 순하게 내 것이 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어얼리 버드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뿐, 정말로 행복해지기는 힘들다. 새벽 한량이 되자. 오늘도 난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빈둥빈둥 재밌게 잘 놀았다. 노는 게 남는 거다. 재밌는 게 이기는 거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 한량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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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1 밀전병, 전, 두부김치 등을 떠올리지 않는다

 

2 돼지, 소, 닭 등 안주용 동물을 생각하지 않는다

 

3 짜장면, 오징어튀김 등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을 오후 3시쯤 배불리 먹는다

 

4 스마트폰을 열어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지 않는다

 

5 퇴폐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나 인생 뭐 있냐고 징징대는 소설가의 SNS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지 않는다

 

6 그 자식은, 그 년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따위의 오지랍을 부리지 않는다

 

7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를 듣지 않는다

 

8 라디오헤드의 ‘Creep’도 듣지 않는다

 

9 콜드플레이의 ‘Fix You’도 듣지 않는다

 

10 킹 크림슨의 ‘Epitaph’는 절대로 듣지 않는다

 

11 블랙사바스의 모든 곡을 듣지 않는다

 

12 [병원24시], [다큐멘터리 사랑] 등의 TV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13 동창회장에게 불참통보 메시지를 보낸다

 

14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는다

 

15 학점을 짜게 준 교수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는다

 

16 가스활명수 한 병만 마셔도 취하는 인간과 저녁 약속을 잡는다

 

17 국내 정치뉴스를 보지 않는다

 

18 화장실 물때 청소를 하지 않는다

 

19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는다



20 일찍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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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로 한 이가 30분 정도 늦는다고 한다. 이 30분은 선물이다. 그 선물을 가장 아름답게 받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알고 있다. 아름다운 단편소설 하나를 읽는 일.”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윤대녕의 단편집 [대설주의보] 뒤쪽에 쓴 글이다. 그런데 정말 단편소설 한 편 읽는데 드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삼십 분? 한 시간? 신형철의 말대로라면 30분이면 족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 세상이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어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내 입장이 돼보시오](Put yourself in my shoes)를 읽었다. 아니, 읽기 시작했다. A4지를 가져다가 메모를 하면서 읽기는 했지만(등장인물에 대한 프로필을 메모하는 버릇이 있다) 한 시간 남짓이면 끝날 분량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소설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우리는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다. 만약 백수가 되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 거야!”, “출근을 안 하게 되면 그때부터 하루 종일 미드나 책을 보지 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런데 그들이 정작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현대인은 도대체 심심할 틈이 없다.

 

아침에 현관에서 집어온 신문을 마음먹고 정독해도 삼사십 분은 그냥 사라진다. 뭘 좀 읽거나 쓰고 있으면 금방 밥 먹을 시간이 돌아온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대충 훓어보고 내 글이나 사진에 댓글만 성의있게 달아도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시간을 빼앗길까봐 트위터는 이미 접은지 오래다. 그래도 호시탐탐 택배원나 외판원들이 초인종을 누르기 일쑤다. 잊었던 후배가 전화를 걸어 반갑지 않은 안부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감방에 갇히거나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이상은 늘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하고 뭔가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깊은 심심함’의 중요성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 한다. 현대인은 내적 외적 모티베이션에 의해 늘 뭔가에 쫓기게 되고 그럼으로써 만성적 피로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현대인들이 오래도록 누려보지 못한 깊은 심심함을 느끼는 일이다. 깊은 심심함은 뭔가 창조적인 일을 위한 과정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여지친구와 함께 뭔가 기획을 하고 글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기획안에 손도 대지 못하고 매일매일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도대체 하루 종일 혼자 놀고 있어도 심심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보다 못한 여자친구가 왜 글을 쓰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올 때면 난 늘 이렇게 대답한다. “응, 나 오늘 바빴어.”

 

 

어서 내 몸 안에 깊은 심심함이 흘러 넘치기를 바란다. 아마 곧 그렇게 될 것이다…심심해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이게 무슨 한심한 역설이란 말인가. 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들 마음 독하게 먹고 바쁘게 움직이자. 남들보다 먼저 깊은 심심함을 쟁취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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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서 엉엉 울어버리고싶은 봄날입니다. 까짓거, 시나 한 편 읽읍시다.

 

선운사 동백꽃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섬마을에서 살면 이런 감성이 나오나요? 그나저나 김용택 선생, 참 징하게 멋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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