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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엔 시동을 끄고 30초만 늦게 내려볼 것

태양아래서만 진가를 발휘하던 썬루프의 전혀 다른매력을 발견할테니

쏘나타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

자동차에 감성을 더하다 SONATA

 the Brilliant HYUNDAI -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 "

 

 

 

 자동차 광고는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비싼 제품이기도 하고 관여도가 높은 제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젯밤 TV에서 이 광고를 보고 더 놀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동차에 감성을 더하다'라는 캠페인 슬로건은 이미 들어본 거라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이렇게 감성적으로 차분하게 광고를 풀어갈 줄은 정말 예상 못했었거든요. (1분짜리는 더 좋더군요)

 

게다가 다른 모든 첨단 기능들을 뒤로 숨기고 '썬루프에 대한 재해석'에만 집중한 점이 좋아보였습니다. 마치 아이폰5의 최신 광고가 카메라 기능에만 집중해 우리의 일상을 새로운 문화로 포장한 것처럼 말이죠. 욕심을 버리고 단순함을 추구하면 이렇게 좋아진다는 걸 알면서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을 버린다는 것 자체가 더 큰 욕심이라는 아이러니 때문일까요?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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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파트 앞엔 [신화마트]라는 수퍼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가게처럼 일용잡화를 팔고 밤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간단한 안주에 맥주도 한 잔씩 하는 그런 평범한 수퍼죠. 우리 커플도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들어갔다가 뻔데기통조림이나 골뱅이에 한 잔 한 뒤로는 단골이 되었습니다. 우리 말고도 그런 손님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골들끼리 친해져서 인사도 나누게 되고 가끔은 누군가 집에서 가져온 ‘사제 안주’를 나눠먹으며 작은 파티를 열기도 했습니다. 강남 부자 동네와는 좀 다른 정서죠.

 

 

그런데 이 가게가 얼마 전부터 한쪽 공간을 막더니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사장님께 물어보니 가게를 반으로 줄이고 새로 생긴 공간에 작은 치킨집을 열 생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녁마다 찾아오던 단골 청년들 중 둘은 벌써 며칠째 공사를 맡아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을 거 같았습니다. 이 가게는 바로 옆 토끼굴을 지나 수십 미터만 나가면 한강변이고 뚝섬유원지역도 걸어서 13분 거리입니다. 뚝섬유원지는 여름이면 치킨배달이 엄청 성행하는 곳이죠. 수퍼마켓만 하는 것보다 훨씬 신나는 일일 거 같았습니다. 우리도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사장님 부부도 반색을 하며 좋아하셨습니다.

 


치킨집이라…일단 신화마트가 사업을 확장한 거니까 ‘신화치킨’을 생각하기가 쉽겠죠. 그러나 그건 “아, 신화마트가 치킨집을 냈구나”라는 몇몇 지인들의 반응 말고는 뾰족한 게 없습니다. 별 의미가 없는 네이밍이란 말이죠. 게다가 치킨집 특유의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유머나 특징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닭컴'부터 시작해서 코스닭, 후다닭, 쏙닭쏙닭, 토닭토닭까지 차고 넘치는 게 치킨집 이름이었지만 그래도 치킨집 이름은 그래야 하는 거니까요.

 

 

 

“닭터 어때? 닭터 치킨!” 제가 여친에게 물어봤더니 그거 괜찮은데, 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성이 오 씨니까 닭터오 치킨으로 하자. 그리고 닭터라는 상호명은 이미 많을 테니 ‘성수동 닭터오 치킨’으로 하자는 얘기까지 급속도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표기는 ‘닭터5’와 ‘Dr.5’를 병행하면 패러디 아이덴티티도 더 살릴 수 있을 거 같았구요.

 

 

아울러 윤혜자 양은 ‘닭터오 특별 메뉴’까지 즉석에서 제안했습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닭고기 다섯 조각으로 이루어진 오천 원짜리 특별 상품을 마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치킨이 생각나도 만사천원이나 만육천 원쯤 하는 치킨 한 마리를 혼자 시켜먹기엔 부담이 있습니다. 이럴 때 오천 원짜리 ‘닭터오 스페셜’이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것이죠. 기분 좋게 결론을 낸 우리는 내일 빨리 이 이름을 알려드려야겠다고 조바심을 내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 간단한 네이밍 기획서를 써가지고 [신화마트]에 갔더니 일단 아주머니가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옆에서 공사를 하던 청년들에게도 보여줬는데 다들 좋다고 한 마디씩 하더군요. 닭터5스페셜 메뉴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장님은 며칠 전 다리를 다쳐 네이밍 후보안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오늘 수술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름이 확정되면 간판과 스티커 디자인도 같이 일하던 친구나 동료들에게 부탁해볼 생각입니다. 같은 이름이라도 디자인이 좋으면 더 효과가 좋아지겠죠.

 


뿌듯한 일입니다. 아주머니가 얼마를 내야 하냐고 물으시길래 “저희 비싼 애들이에요. 정식으로 돈 내시려고 하면 너무 비싸니까, 관두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요. 동네에서 그럴 순 없죠. 근데 이름값을 치킨으로 다 받으면 도대체 몇 마리나 되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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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 이후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은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였다. 적어도 쿠엔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는. 이젠 ‘비디오가게 점원 출신의 영화 천재’라는 수식어는 골백 번도 넘게 들어서 식상할 만도 하지만 그래도 타란티노가 변함없이 천재라는 사실에 쉽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천재들, 특히 예술 쪽 천재들의 특징을 한두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자유분방함’과 ‘싸가지’가 될 것이다. 억울한 일이다. 그놈들은 아무렇게나 꾸며대는 거 같은데도 저절로 플롯이 생기고 디테일이 살아난다. 어딘가 혼자 처박혀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결정적 증거를 내놓는 탐정처럼 무심하게 이야기를 툭 던지는 건방진 놈인데도 여자들은 그 앞으로 달려가 콧소리를 낸다. 왜냐하면 그놈들은 하고싶은 대로 해도 좀처럼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니까. 당장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입체적으로 조명해 보면 그게 다 필요한 그림이었고 꼭 필요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니 나 또한 그녀들과 같은 입장이 된다. 생각해 보라. 타란티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일단 흥분이 되지 않던가. 이번엔 또 어떤 얘기로 우리를 낄낄거리게 만들지, 어떤 의외의 캐릭터로 우리의 뒤통수를 칠지 전두엽 근처가 간잘간질해지지 않던가.

 

 

타란티노의 최신작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남북전쟁 발발 이 년 전 시점의 서부극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서부극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놀랄 일은 아니다. 코엔 형제가 그렇듯이 이제 타란티노도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증거를 대볼까? 지금 당장 헐리우드에서 타란티노가 부르면 누구든 달려온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왔고 사무엘 L. 잭슨이 왔다. 윌 스미스는 물망에 올랐다가 너무 매끈하게 생겼다는 지적이 이는 바람에 주연 자리를 제이미 폭스에게 넘겨야 했다. 크리스토프 왈츠는 작년에 [바스터즈;나쁜 녀석들]에 이어 연이은 출연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단지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타란티노의 영화에 출연하는 걸까? 아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데쓰 프루프] 시나리오를 쓸 때였던가? 보통 사람들은 글이 안 풀려 호텔방에서 물구나무를 섰네, 머리를 쥐어뜯었네 어쩌구 하고 있을 때 타란티노는 “어서 이걸 써서 사람들한테 들려줘야 할텐데.”라는 조바심을 가지고 손가락에서 불이 나게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타란티노의 시나리오는 한 마디로 재밌다. 나는 [저수지의 개들]의 그 유명한 오프닝 시퀀스가 지금도 너무너무너무 좋다. 정장을 차려입고 은행을 털러 가기 전 커피숍에 주르르 앉아서 웨이트리스에게 팁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한심한 문제로 마돈나의 [Like A Virgin]까지 들먹이며 싸우는 갱들이라니.

 

그런데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도 똑 같은 장면이 나온다. KKK단원들이 모여 장고와 슐츠 박사를 공격하기 직전에 말 위에 앉아 흰 복면에 뚫린 눈구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문제로 불만과 수다를 끓여붓는 장면이다. 이 장면 하나만 봐도 이건 타란티노표 영화임에 틀림없다. 또 디카프리오가 흑인 노예의 두개골을 들고 골상학 운운하며 깜둥이들의 노예근성을 설명하는 장면은 어떤가. 이 장면은 가난하던 시절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써서 토니 스코트에게 팔았던 [트루 로맨스]에서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아버지 데니스 호퍼가 “이탈리아 놈들은 모두 깜둥이의 자손”이라며 크리스토퍼 월큰을 약올리던 모습 그대로다. 생각해 보면 타란티노는 변한 게 없다. 그런데도 늘 새롭고 재밌다. 오죽하면 꼬장꼬장한 아카데미 심사위원들도 이번만큼은 별다른 고민 없이 타란티노에게 시나리오상을 안겨 줬을까.

 


타란티노가 서부극을 만들면 어떤 얘기가 될까? 아무래도 존 포드보다는 세르지오 레오네쪽이겠지. 그런데 이건 그 정도가 아니다. 일단 주인공이 흑인이다. 디카프리오는 난생 처음 악역이다. 게다가 백인들은 모두 흑인들에게 병신 취급을 받다가 결국 몰살당한다. 꿈 같은 얘기라고?  그렇다면165분간의 불량식품 같은, 그러나 영양가까지 풍부한 롤러코스터를 지금 당장 타보시라. 당신이 놀러 간 역사공원이 순식간에 놀이공원으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짐 크로스의 [I Got A Name]을 비롯한 탁월한 선곡들도 놓치지 마시라)

 


아, 참. 타란티노가 사랑스러운 점 한가지 더. 그도 가끔 자기 영화에 출연을 한다. 이번에도 나온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찌질한 역으로 잠깐 출연한다. 이번엔 허리춤에 다이나마이트를 잔뜩 두르고 있다가 어이없이 폭발해 죽는 역이다. 이건 타란티노가 팬심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더 CSI의 에피소드 ‘무덤 속의 위험’(Grave Danger)에서 범인이 자살하던 것과 똑같은 방법이다. 유머 넘치는 구라는 물론 깨알 같은 디테일까지, 역시 타란티노는 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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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물을 한 잔 마셨는데 잠이 안 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처럼 모듬전에 소주를, 그러나 아주 조금, 아주 간단히 마시고 살짝 졸린 김에 얼른 쓰러져 잔 경우가 그렇다. 계속 자리에 누워있어 봤자 더 자기는 틀렸고 나아가 대한민국 창조경제나 동아시아 문제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나는 옆에서 자고 있는 여친이 깰까봐 조심조심 깨끔발을 하며 마루로 나왔다.

 

 

책장앞을 오래도록 서성이다 고른 게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잽싸게 자기 소설 제목으로 써먹는 바람에 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소설가 이기호의 단편집이었다. 그나마 마음에 들어했던 [원주통신]이나 [나쁜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을까 하다가 ‘그래도 표제작을 읽어줘야지, 이 새벽엔’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단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이미 짐작은 했지만) 이 소설도 전에 내가 읽은 소설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다시 읽어도 이렇게 재미가 있는 건지. 예전엔 별로 안 웃고 넘어갔던 대목까지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웃기네. 이거 이거. 아하하하. 어슴프레 밝아오는 여명을 배경삼아 미친놈처럼 낄낄거리며 책을 읽다 보니 문득 배가 고파졌다. 다행히 부엌엔 그저께 점심에 사다 놓은 유기농 모닝빵이 다섯 개나 남아 있었다.

 

 

커피를 끓일까 하다가(양에 맞춰 커피를 갈고, 비알레떼 주전자에 곱게 넣은 뒤 가스레인지에 얹어 끓이고, 에스프레소 원액에 뜨거운 물을 붓기 전에 재빨리 뜨거운 주전자를 씼어 개수대 위에 널어 말리고 하는 과정을 상상하니, 모든 게 너무 귀찮았다. 더구나 이 새벽에!) 포기하고 씽크대를 뒤져보니 차가 있었다. 그래 우아하게 차를 한 잔 하는 거야. 무심코 손에 잡힌 ‘다미안’이란 차를(뭐가 다 미안한지는 모르겠지만) 한 잔 마시며 책을 마저 읽었다.

 

 

이기호의 소설은 재밌다. 그리고 이기호는 소심하고 찌질하면서도 그 찌질함을 자양분 삼아 전혀 다른 소설을 쓰고야 말겠다는 젊은 소설가로서의 원대한 포부를 펼칠 줄 아는 멋진 사나이다. 그러니 이기호여, 빨리 새 책을 내라. 내 당신 책은 돈 아끼지 않고 엄벙덤벙 사줄테니.

 

 

여친은 자고, 나는 책을 읽고. 해도 뜨지 않은 신새벽부터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다시 자야지. 아, 시도때도 없이 즐거운 나는 아무래도 타고난 백수 체질인 모양이다. 백수체질…아냐, 뭐 다른 말이 없을까? 문화인. 그래, 문화인 체질이 훨씬 낫네. 새벽부터 문화인이 된 나는 이제 슬슬 다시 자러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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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베호벤 감독은 대량 살육의 쾌감을 만끽하고 싶어서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영화를 만들었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걸 화면에 담으면 누구에게나 끔찍하고 잔혹하게 보이지만 그 상대가 우주괴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지치도록 베고 쏘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중세의 ‘마녀사냥’에서 그런 비뚤어진 심리의 힌트를 얻은 바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 죽이고 싶다. 방법은 간단하다. 마녀라고 밀고를 하면 된다. 본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을 하더라도 마녀의 변명일 뿐이므로 그건 거짓말이 된다. 그러다 모진 고문에 못이겨 거짓자백을 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마녀가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은 1948년에 제주에서 정부와 미군들에게 마치 ‘마녀’처럼 몰려 떼죽음을 당했던 4•3항쟁 희생자들과 현재 강정마을에서 정부와 미국의 이해관계에 대항해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한 줄 위에 놓고 바라보는 다큐멘터리영화다.

우리에게 제주란 무엇인가? 구름•돌•바람이 많아 삼다도라 불리던 섬이었고, 최성원의 노래처럼 ‘신혼부부 몰려와 똑같은 사진 찍’던 관광지였다. 지금은 장선우 감독이나 예전 동아기획 식구들이 ‘이민’을 가서 사는 천혜의 휴양지, 그리고 올레길과 크고 작은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있는 이국적인 섬일 뿐이다. 적어도 4•3항쟁의 비극적 진실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임흥순은 제주 사람이 아니다. 그냥 제주에 놀러 오는 흔한 관광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같이 일하는 프로듀서의 할머니가 4•3때 남편을 잃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걸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굉장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던 이 작업은 당시의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기록자로서의 의무감을 갖게 되었고 아울러 현재 강정마을 구럼비바위 폭파 현장을 지켜보면서 상관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하나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입체적인 역사의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1948년 11월 미군정하에 있던 남한정부는 제주해안선 5Km 바깥의 모든 주민들을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소개령을 내렸다. 미녀사냥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폭도로 몰린 도민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군인들과 서북청년단들에 의해 어느날 갑자기 학교 운동장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한라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잡히지 않으면 대부분 굶어죽거나 얼어죽었다고 한다.

 

 

2007년 6월 강정마을 해군기지 조성 공사 후 주민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져 대립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여태까지 잘 어울려 살던 이웃들은 물론 가족끼리도 원수가 되고 서로 말을 섞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는 공사방해금지 명목으로 주민과 종교단체 환경단체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감독은 64년 전 일이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강정마을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은 1948년 당시 제주의 모습을 재현하는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 등을 전공했던 임흥순 감독은 좀 색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보통 다큐멘터리처럼 인터뷰어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카메라가 항상 인터뷰이의 얼굴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4•3사건에 대한 증언이 흘러나올 때 카메라는 제주의 풍경이나 하늘, 감귤나무 같은 고정된 사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기 일쑤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어둡고 거친 밤길을 헤매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누군가 맨발로 눈길을 허정허정 걸어가는 장면을 보고 비로소 감독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의 도민들이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조금이라도 짐작하는 방법은 직접 그들처럼 밤길을 헤매보고 눈길을 헤치며 걸어보는 것뿐이라는 다소 무식한(?) 통찰이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비념’이란 제주에서 행해지는 작은 규모의 굿을 뜻한다. 감독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애도의 행위야말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본성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4•3때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굿을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엔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 아름다운 자연 뒤에는 피로 물든 4•3사건이 숨어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빼어난 자연경관 뒤에는 해군기지라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숨어있다. [비념]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고 설명하기 보다는 스스로 볼 수 있도록 눈을 열게 해주는 영화다.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이는 영화고 알고 나서 다시 보면 더 깊어지는 영화다. 당신이 올해 블록버스터 영화를 세 편쯤 보았다면 이젠 이런 영화도 한 편 보시는 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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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열시에 

카메라를 들고

우리동네를 좀 돌아다녔더니

대체로 이런 모습들이더군요.

 

 

 

지팡이 대신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던 할머니,

고물상 아저씨와 뭔가 한참 얘기를 나누시더니 금방 사라지셨습니다

 

 

 

 위치나 보나 자세로 보나 왼쪽에 앉아있는 아저씨가 이 동네 짱인 거 같죠?

 

 

횟집 앞에 있는 작은 공원엔 쉬는 분도 있고 운동을 하는 분도 있고

 

 

 24시간 언제나 아침뿐인 저의 단골, 모닝마트입니다

 

 

뚝도시장 입구에 있는 가게 아저씨. 오늘 팔 핸드백을 진열하시는 중

 

 

예전엔 중학생들이 많이 매던 '쌕'을 이젠 할머니들마다 매고 다니시더군요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한국사람들은 왜 다들 평소에도 등산복을 입구 다니냐?"고 묻는다죠. 아마 그들은 이해를 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켜세운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수트라는 옷은 그리 활동성이 좋지 않은 옷이거든요. 그래서 양복은 회사에 출근을 하거니 어디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갈 때만 입기 십상이죠. 우리 아저씨들은 평소엔 바지에 점퍼를 많이 입습니다.

 

생각해보면 서글픈 일입니다. 어른들이 그런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도 덩달아 값이 비싼 등산복이었던 '북쪽얼굴'에 목을 매고 그랬으니까요. 사회적 지위가 높거니 부유한 층을 제외한 일반 서민들은 지금도 일할 때나 산책할 때나 가리지 않고 등산복 바지나 점퍼를 입고 다니는 일이 많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다들 '그냥 편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저도 어쩌다 수트를 입을 때는 왠지 스스로를 좀 존중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수트를 입은 날은 괜히 몸도 더 추스리게 되고 양복이 구겨질까봐 아무 데나 앉지도 않게 되거든요. 또 셔츠도 한 두번 입고 나면 드라이크리닝을 맡겨야만 하기 때문에 돈이 들고...아무튼 아침에 등산복을 입고 찡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아저씨들이 다들 수트에 구두를 신고 저러고 있어도 꽤 웃기겠구나 하며 혼자 미친놈처럼 웃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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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우리는 옥천에 있는 친구 부부집에 놀러 갔습니다. 진작에 갔어야 했던 집이었지만 제가 늘 바쁜척을 하며 번번히 약속을 미루고 펑크를 내고 하다가 결혼식을 얼마 안 남긴 시점이 돼서야 겨우 방문하게 된 여친의 가장 친한 여고동창네 집입니다.

 

 

아주 현대적이고 멋진 집인데 흑백으로 찍었더니  좀 그로테스크하죠? 이번 여행에선 모든 사진을 흑백으로만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뭐, 별 이유는 없구요. 괜히 그래보고 싶어서요.

 이 집은 이웃에 살던 교수님께서 직접 설계하고 지으신 집이라는데 어떠어떠한 연유로 인해 이제부터 서로 집을 바꿔 살기로 했답니다. 그러니까 이건 독신으로 살고 계시던 어느 멋진 디자인과 교수님이 자기가 평생 살 생각으로 만들었던 '작품'인 거죠.

 

 

방문하는 차들마다 함부로 들어와 잔디밭을 망쳐 놓는 게 안타까워서 뒤늦게 철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교수님의 아이디어였구요.  

 

 

 

옆집도 멋집니다

 

마당에는 진돗개 한 마리와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습니다. 진돗개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모든 걸 귀찮아하는 할머니 스타일이고 골든리트리버는 아직 호기심이 많아서 사람만 다가서도 꼬리를 흔드는 청소년입니다.

 

 

 

집안엔 멋진 거실과 주방, 그리고 가족들이 있습니다.

 

 

사내 아이 둘이 뛰어놀기엔 꽤 넓은 마당이죠.

 

 

어릴 적 친구 둘이 오랫만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동안

거실에 누워 자던 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저녁 산책을 나갔습니다.

 

 

전 이상하게 창고를 좋아해서 창고만 보면 사진이 찍고 싶어집니다.

 

 

너무 흑백만 찍는 거 같아서 집안에서 컬러도 한 장 찍어봤습니다. 역시 흑백이 낫더군요

 

 

미술과 패션 등을 전공한 이 부부는 10여 년 전에 '귀향'을 해 폐교를 개조한 이 자연체험장에서 얼마 전까지 살았답니다. 아들 둘도 여기서 다 컸구요. 지금은 여기서 살진 않지만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여름마다 친구들과 떼지어 놀러가는 강원도 산촌체험장이랑 거의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맑은 공기, 싱그런 자연, 넓은 산촌체험장...이런 환경에선 도저히 안 마실 수가 없죠.

 

 

 

 아침에 일어났더니 둘은 교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숙취를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침 산책을 나갔습니다. 제 입에서 새나오는 술냄새 말고는 공기도 하늘도 다 맑더군요.

 

 

 

 

 

버스 기다리는 할머니를 만나서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서울에서 전시회 하게 되면 꼭 초대하라고 농담을 하십니다. 멋진 할머니셨습니다.

 

 

 

친구 부부는 자꾸 내려와서 살라고 합니다. 공기도 좋고 정말 평화로운 곳이라고. 아아, 저희들이라고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어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우리는 서울을 싫어하면서도 당분간은, 또는 꽤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불쌍한 인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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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신사동 가는 버스를 타고 멍때리다가 그만 한남대교를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남오거리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터덜터덜 걷다가 '영진설비’라는 간판과 마주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박철 시인의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라는 시에 나오는 바로 그 이름이었죠. 그래서 그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봤습니다. 언제 읽어도 읽을 때마다 술이 땡기는 시,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 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수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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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CF에서 보기

 

 

[포카리스웨트]는 '힐링'이라는 요즘 트렌드를 짜증나지 않게 공감대를 잘 잡아서 풀었더군요.  [바나나맛우유]는 유머코드와 미장센 등이 다 좋은 느낌입니다. 뭐, 제가 김슬기의 왕팬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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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고민이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길을 걷는다. 하염없이 걷다보면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도 있고 마음이 좀 가라앉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만. 그런데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길을 좀 걷는 게 아니라 아예 지리산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한 대책 없는 남자가 있다. 원순 씨다. 지금의 서울시장 박원순 씨 말이다.

 


“무식한 자가 일을 저지른다”

 

2011년 7월 19일부터 49일간 계속된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희망을 걷다] 본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희망제작소 등등 사회적기업 활동으로 평소 일정도 초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하는 형편이고 등산 경험이라고는 지리산 등반 두어 번이 전부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심한 평발이라 남들보다 걷는 게 훨씬 더 힘든 체질이라는 걸 알면서도 덜컥 저질러버린 자신의 무모함을 개탄하며 하는 소리다.

 

박원순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산에 올랐다 한다. 사색의 시간이 절대로 필요한 그 중요한 순간에 그는 오히려 육체적 괴로움을 택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몸과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작부터 좌충우돌 박원순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사실, 남자들끼리 매일 이 산 저 산 옮겨다니는 얘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재미가 있다.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밟아가는 동안 박원순이 버리고, 가려내고, 정리하고, 듣고, 배우고, 자라는 생각의 모습들이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비장하게 또는 유머러스한 문장들로 촘촘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박원순의 처절하도록 철저한 기록 정신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면 다 공감하겠지만 누구나 등산길에 나서서 한나절만 지나면 발이 아프고 기운이 쪽 빠져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휴식시간마다 우리의 원순 씨는 작은 수첩에 메모를 하고 또 했다. 그리고 산장에 들어 모두들 곯아떨어지거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도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그동안의 일기를 정리하곤 했다.

 


누군가를 알고싶다면 그 사람과 여행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박원순이라는 인간이 궁금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솔직하고 친절한 안내서와 같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일행들과 대화하고 질문하며 자연과 교감한다. 그러니 가는 길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이야기와 성찰이 피어난다.

 

예를 들어 육십령이라는 고개는 예전에 산적들이 들끓어서 육십 명이 모여야만 비로소 고개를 넘어가던 곳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미리 알지도 못하고 나중에라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같은 곳을 가더라도 “와, 여기 무척 험하네.”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만약 김훈이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고 경치 좋은 산천만 구경하고 돌아다녔다고 생각해 보라. [자전거 여행] 같은 책이 나왔겠는가.

 


“무기수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구두를 닦는 사람”이란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더 오래 살기 때문이란다. 이 말은 박원순이 함께 팀을 꾸려 온 백두대간 종주팀 ‘다섯 손가락’의 석 대장님이 쉬는 시간에 박원순에게 해준 말이다.

 

박원순은 여행의 의미를 확충시킬 수 있는 감성과 지식을 둘 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 지역에 얽힌 일화와 전설을 들춰내고 거기에 얽힌 고사성어를 떠올린다. 어떤 곳에서는 [장자]의 도척 편에서 공자가 도척이라는 도둑을 설득하러 갔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신영복 선생이 즐겨 이야기 한다는 ‘독버섯의 우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힘든 산행 도중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라는 책이나 시시포스의 신화를 되새겨보기도 한다. 쏟아지는 여름 빗속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강산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하면 고장난 스마트폰 때문에 더 이상 SNS를 할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난 세상을 버렸다”라고 귀여운 한탄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백두대간 깊은 산속까지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가 스며들어와 결국 정치의 바다로 뛰어들 것을 결심하고 안철수 후보와의 만남 때문에 5일 정도 일정을 앞당겨 산을 내려가는 것으로 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사람은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어 냈고 박원순은 서울시의 시장이 되었다.

 

사색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골방에 숨어 몇 날 며칠 끙끙대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박원순처럼 ‘무조건 저지르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사색의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 박원순의 사색은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합리적으로 일하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현재의 시정을 통해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멋진 건 책 뒷부분에 적혀있는 ‘다섯 손가락’ 석락희, 박우형, 김홍석, 홍명근, 그리고 보급대장 신충섭이 쓴 글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멤버들이 하나같이 박원순을 ‘원순 씨’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박원순 씨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2월 어느날, 일산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날 우리는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이 책과 마주쳤다. 여자친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다섯 권이나 사더니 우리가 읽을 책 한 권만 빼고 모인 친구들 부부에게 선물로 주었다. 결과적으로 여덟 사람에게 책을 선물한 셈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 친구들은 여덟 개의 ‘희망’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도 꽤 멋진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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