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소리

공처가의 캘리 2018. 5. 15. 16:11


​저희집은 이렇게 된지 좀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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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공처가의 캘리 2018. 5. 14. 09:05

쓰레기 분리수거를 열심히 수행하고 난 후 녹차를 마시는 공처가의 일요일 오후 정신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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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토요일 오후 두 시에 열리는 '독하다 토요일'의 두 번째 모임이 어제 대학로 카페 겸 서점 '책책'에서 있었습니다. 이번에 같이 읽은 책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단편집이었습니다. 두 시 이전에 모인 몇몇 분들과 함께 먼저 각자 가져온 책을 묵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개인적 미팅 때문에 김인혜 씨가 오지 못하게 되었고 정아름 씨도 출장 후유증으로 몸이 안 좋아 참석을 못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할 수 없으니 다음 달을 기약하자 했습니다. 옆집 총각 서동현 씨는 목요일에 촉발된 숙취에 괴로워하면서도 참석해 묵묵히 책을 읽었습니다.

새로운 멤버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제 후배인 광고인 김휘중 씨였습니다. 제가 몇 주 전 술자리에서 이 모임에 대해 얘기했더니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참석하고 싶다고 너무 간절하게 부탁을 해서 초대했습니다. 타고난 길치라 모임 장소를 찾는 데 좀 고생을 했지만 뒤늦게 도착해 책을 읽고 작품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늦게 도착한 사람도 있고 해서 3시 반까지 책을 읽기로 했고 그 후 십오 분 정도 각자의 독후감과 세줄평 등을 정리하고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노찬성과 에반>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에반이라는 존재는 개를 넘어서 우리가 의지하거나 붙들고 싶어하는 어떤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옆집총각 서동현 씨는 <건너편>이 너무 슬프고 리얼했다고 했습니다. 적나라했고 정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수산시장 장면에서는 마치 '사람들이 줄돔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구요. <풍경의 쓸모>에서는 무리하게 연결을 원하는 아버지와 노회한 박 교수가 교차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묘사가 일상을 마구 긁어대는 느낌이고 등장하는 사건 사고들이 '느슨한 시침질처럼 꿰어져' 오히려 거대한 풍경을 이룬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창단 멤버였지만 지난 달 참석을 못해 이번이 첫 모임이 된 진주 씨는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자기에게도 에반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했습니다. 다들 <노찬성과 에반>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같습니다. 김휘중 씨는 자기는 평소 장르소설을 좋아하는데 김애란의 소설을 읽고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적나라하고 리얼한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그는 <입동>과 <건너편>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건너편>에서 연인에게 차이는 이수의 입장이 잘 이해되어 마음 아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동> 등의 작품들이 현실을 너무 잘 반영해서 '바깥은 여름'이라는 작품집의 제목이 뜻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했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다른 사람들은 그 사정을 모르는 게 세상 일이고 결국 산다는 다 고독하다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죠. 

 영어선생님인 임기홍 씨는 모임에 와서 또 영어책을 읽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했는데 무슨 작품이 좋았냐고 물었더니 <침묵의 미래>가 흥미로웠다고 털어왔습니다.  다른 소설과 달리 화자가 '언어'라는 게 재밌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찬성과 에반>에서 왜 찬성이 할머니한테 '목사님이 할머니 싫어한대'라고 얘기했는지 의문을 제기해서 잠시 토론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목사님이 할머니한테 더 이상 바랄 게 없자 그런 식으로 나온 게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목사님이 나쁘다는 것이죠. 저는 읽은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 했었는데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는 바람에 확 걸렸던 대목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입동>이 좋았는데 '바깥은 여름'이라는 인식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 김애란의 에센스 같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은 다 영화화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눈먼자들의 국가]에서도 이 작가가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미리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며 지난 번 우리 모임의 작가였던 권여선보다 더 대중성이 있는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번 소설도 세월호 사건 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얘기했는데 다들 그 의견에 공감해서 찾아보니 그때 이 작품을 쓴 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손영연 씨는 <건너편>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누가 글을 양동이로 쏟아붓는 느낌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겠죠. 그리고 <풍경의 쓸모>에서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을 박제해 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결국은 '전형적으로' 살게 되는 것' 이란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아버지를 돕지도 못하고 결국 교수 임용에 떨어지는 주인공의 삶도 전형적인 것의 대표격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김휘중 씨는 그게 바로 살아가면서 나이 먹어간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잘 짚어낸 것이라 말하며 김애란이 글을 너무 잘 써서 좋기도 하지만 막상 그 글을 읽어내는 게 자신과 마주하는 것 같아서 힘들고 기분 나쁘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동료 작가와 이 작품집을  올 1월에 이미 읽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쓸 것인지를 얘기를 하느라 조금 다르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입동>이라는 작품이 별로다,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데, 그 이유가 너무 전형적으로 잘 쓴 작품이라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하다 모임에 와 보니 일반 독자들이 이 작품에 대해 반응이 뜨거운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는 것이죠.
그녀는 [침묵의 미래]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룬 [가리는 손]이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아는 언니와 나눈 '세월호와 액체괴물' 얘기도 했습니다. 다 얘기하려면 길지만 짧게 말하면 잘 몰라서, 순수해서 오히려 잔인해질 수 있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러자 김휘중 씨가 [가리는 손]이 정유정의 [종의 기원]이 생각나는 소설이라 인상 깊었다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정유정에 대한 소설 얘기를 중구난방으로 나누다가 결국 김애란은 잘 쓰는 소설가이며, 너무 잘 쓰다 보니 오히려 역설적으로짜증이 나기도 하다는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이나 단편 <입동> 모두 압도적인 소설이라는 상찬을 나누다 모임이 끝이 났습니다.

뒷풀이는 원하는 멤버만 간다는 원칙 하에 광장시장의 '박가네 빈대떡'에 갔었는데 약속이 있다는 김하늬 씨와 손영연 씨만 빼고 모두 달려가 '빈대떡 삼합' 안주에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습니다. 어쩌다 제가 똥에 얽힌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똥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김휘중 씨한테 옮겨가면서 또다른 똥얘기로 번져 오랫동안 각종 똥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다은 달에 한강 작가의 [흰]을 읽기로 하고 다들 무사히 헤어졌습니다. 


다들 세줄평을 발표하지 않아서 제가 쓴 세줄평만 괜히 공유해 봅니다. 

견고한 슬픔들 -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김애란의 소설은 사라진 것들이나 도달하지 못한 곳에 대한 애잔한 반추들이 있어 슬프다. 그러면서도 성실한 취재가 소설의 견고함에 힘을 보탠다. 진작에 끝나버린 연인들의 이야기 <건너편>에 등장하는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 같은 기상청의 캐치프레이즈가 그런 대목이다. 남편을 잃고 영국에 다녀온 주인공이 휴대폰 서비스 시리와 대화를 시도하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서글프다. 다른 단편집 [비행운]에 들어있는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를 추천한다. 그 소설을 읽고나면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에서 탕웨이가 하던 대사가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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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떨려

공처가의 캘리 2018. 5. 9. 17:41

공처가들은 혹시 이런 연습을 하지 않을까 , 괜히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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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문득, 공처가로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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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처가

공처가의 캘리 2018. 5. 9. 17:30

말하자면, 이건 대문사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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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만나 보는 나이 든 홍상수 - [클레어의 카메라] 


영화제 때문에 깐느에 왔던 영화감독 소가 술에 취해 영화사 직원인 만희와 하룻밤 자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런데 같이 온 영화사 사장이 그걸 알고 만희를 현지에서 전격 해고한다. 이유는 정직하지 않아서, 라고 하지만 사실은 질투심 때문이다(사장과 소 감독은 오랜 연인 사이다). 만희는 자기가 왜 잘렸는지도 명확하게 알지도 못한 채(비행기표가 워낙 싼 거라 일정 변경이 불가능해서) 깐느 해변을 배회하다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다니는 클레어라는 프랑스 여자를 알게된다. 그 여자는 우연히 소 감독도 만나게 된다. 소 감독과 영화사 사장이 있는 자리에 합석하게 된 클레어는 자신이 며칠 동안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보여주다가 이 사람들이 만희와 아는 사이임을 알게 된다. 만희는 김민희이고 소 감독은 정진영, 영화사 사장은 장미희이다. 

이것은 홍상수 감독이 내놓은 69분짜리 짤막한 장편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다.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편의 단편소설 같다. 그것도 1,2,3 챕터로 구성된 단편소설 중에서 두 번째 챕터만 떼어내 영화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몇 명 나오지 않는 등장 인물로 봐도도 그렇고 백 분이 채 안 되는 길이로 봐도 그렇다. 제목에 등장하는 클레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도 없고 인간적인 고뇌도 없어 보인다. 아마도 클레어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에 대해 알고 싶으면 1이나 3챕터를 따로 찾와봐야 할 것이다. 

아다시피 홍상수는 몇 줄의 시놉으로 구성된 아주 사소한 얘기만으로도 뚝딱뚝딱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관객이 흥미를 불러 일으킬 만한 영화적 소재를 찾는 것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오해받을 수 있는 소재나 배우를 쓰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그럼 내가 이런 얘기 말고 무슨 다른 얘기를 하란 말인가, 라고 매번 묻는 듯하다. 이번에도 프랑스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몇날 며칠 간의 소소한 사건들이 앙상한 배경의 전부다. 그런 미시적인 세계 속에서 '정직, '판단', '변화' 같은 중요하지만 너무 빛이 바래 이젠 우스워진 단어들을 배우들의 입에 담게 한다. 그러다 보면 또 한 번 홍상수만 가능한 영화가 완성된다. 찌질한 연애나 삼각관계, 허영심에 휘둘리는 남자들 등 아주 시시한 세계 속에서 보편적 인간의 속성을 발견하는 것. 아마도 홍상수를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만든 것은 이런 통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홍상수는 변함이 없다. 일상의 미세한 반복을 포착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치찬란한 면을 천재적인 방법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술자리나 섹스 장면이 점점 적어진다. 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굳이 술이나 섹스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얘기가 충분히 전달된다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번엔 그 생략의 빈도가 더 잦아지다 보니 러닝타임도 짧아지고 카타르시스도 적어졌다. 언젠가 홍상수는 영화를 찍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면 그땐 아주 짧은 단편소설 같은 걸 쓰고 있지 않을까, 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그의 예언을 미리 엿본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고 홍상수가 힘이 빠지거나 너그러워지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덜 수다스럽고 덜 그악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고 또 당연한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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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화장실에 다녀 오다가 충동적으로 그제 서촌 벼룩시장에서 한 권에 천 원씩 주고 산 책 들 중 정이현의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을 집어 들었다. 예전에 읽은 책이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제목이 제일 낯익은 <삼풍백화점>부터 다시 읽었다. 분명 전에 읽은 소설인데도 다시 읽으니 제목 말고는 기억 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신기했다. 아니, 주인공인 여자애가 대학 졸업 후 구직 중이었다는 것은 어슴프레 기억이 났고 그에겐 삼풍백화점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있었다는 게 희미하게 떠오르긴 했다. 그러나 주인공 여자가 구직의 일환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 삼류 에로영화 사무실에 찾아가서 사장에게 "떡 영화라고 들어봤지?"라는 질문을 받는 장면은 맹세코 전혀 새로운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장면만 건너뛰고 이 소설을 읽었단 말인가.

삼품백화점이 무너지던 날을 기억한다. 마포에 있는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 초년생으로 근무하던 나는 몇 미터 저편에 앉아 있던 선배 아트디렉터(당시엔 디자이너라는 호칭을 더 많이 썼다) 김 차장이 아내의 전화를 받으며 "어? 뭐라구?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라고 외친 뒤 즉시 켠 TV를 통해 흉측하게 무너진 분홍색 건물을 보았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바로 전 해에 성수대교가 끊어져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더니 이젠 멀쩡하던 백화점이 무너졌단 말인가. 머리가 멍해졌지만 당장 급한 카피를 쳐내야 했고 회의 준비도 해야 했다. 당장 삼풍백화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다음날 내가 모시고 있던 카피라이터 박 부장님이 사내 카피라이터들을 불러모아 특별 점심을 샀다.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들에게 그는 '무사귀환기념 점심턱'이라고 고백했다. 전날 퇴근시간이 되기 전에 몰래 회사를 빠져나간 박 부장님은 만년필이나 하나 살까 하고 삼풍백화점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화장실이 급해 다른 곳에 잠깐 멈췄고, 내린 김에 현금인출기에 들어가 돈도 찾으려 했는데 고장이 났는지 작동이 잘 되지 않아서 시간을 좀 지체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백화점 언덕으로 올라가니 차들이 꽉 막혀 있었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교통경찰에게 물었더니 백화점이 무너졌으니 어서 차를 돌리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때 마침 화장실이 급하지 않았다면, 또는 현금인출기가 말을 잘 들었다면 자신은 지금 여기서 여러분과 함께 점심을 먹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부장님은 웃었다. 

소설 속 중주인공에겐 삼풍백화점에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 R이 있었다. 힉교 다닐 때 친하진 않았지만 대학 졸업 후 우연히 만나 뒤로 취직을 못했던 주인공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고 하던 순한 친구였다.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 일기장에 '나는 오늘,'이라고 쓰던 순간 백화점은 무너졌다. 한 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에 지나지 않았다. 사고가 난 뒤 주인공은 조간신문에 난 사망자와 실종자 명단을 읽지 않았다. 옆면에는 삼풍백화점 사고를 다룬 명사 칼럼이 있었다. 호화롭기로 소문난 강남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은 사치와 향락에 젖었던 대한민국에게 하늘이 내리는 경고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필자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는 독자부의 담당자에게 소리를 쳤다.

그 여자가 거기 한 번 와본 적이나 있대요? 거기 누가 있는지 안대요? 나는 하아하아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전화를 들고 있어 주었던 그 신문사 직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맙게 생각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텅 빈자리로 남아있던 백화점 자리에 2004년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이사를 갔고 그곳을 떠난 뒤에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맨 마지막 '글을 쓸 수 있었다'는 말에서 이 소설이 어느 정도 자전적 이야기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몇날 며칠 뉴스만 틀면 삼풍백화점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수백 시간 동안 콘크리트 잔해에 깔려 있을 때 노래를 부르며 버티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된 어느 이십 대 여자가 '콜라가 먹고 싶다'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어느 음료회사가 평생 그녀에게 콜라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화제였다. 우리는 마포의 사무실에 모여앉아 "나 같으면 나오면서 콜라 대신 포르셰라고 외쳤을 텐데..."같는 농담을 하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때 모여서 웃던 사람들 중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없다. 다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소설을 읽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수학여행 가던 고등학생 삼백 병이 물에 잠겨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는 우리들.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건가,라고 소설은 뒤늦게 내게 묻는다. 그러게.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우리는 멀쩡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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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서강대 김대건홀에서 열리는  '김아라 배우 아카데미'에 아내를 따라가 이명세 감독의 특강을 들었다. 이명세 감독은 오래 전부터 한 번 만나뵙고 싶었는데 드디어 오늘 강의를 통해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영화는 정말 ET와 같은 존재다'라는 명제로 말문을 연 이명세 감독은 1895년 '열차의 도착'이라는 최초의 영화부터 시작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연기론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쳤다. 특히 연극 워크샵에 참여하는 배우들에게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의 차이에 대해 얘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강의는 이명세 감독이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함께 실제 제작 현장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화들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흔히들 알랑 드롱이 잘 생기긴 했지만 그를 명배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뭔가 열연을 하지 않고도 잘 생긴 얼굴 덕분에 날로 먹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야말로 가만히 세둬 두기만 해도 그림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굉장한 미덕이라고 이명세 감독은 말한다. 말하자면 이런 정도 분위기의 남자배우와 여자배우는 금새 사랑에 빠질 수 있지만 만약 송강호 같은 배우였다면 수 많은 작업과 과정이 있어야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걸 관객들이 납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은 바로 이런 것에서 시작된다. 연극과 달리 배우의 얼굴과 아우라를 밀착해 잡아내는 카메라와 촬영 이후에 벌어지는 '편집의 마술'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배우들에게 연기력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정교하고 깊은 연기력이 필요하다. 다만 스타니스랍스키가 설파한 '메소드 연기'에만 너무 의존하다 보면 '오버'라는 페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연극과 달라 20 정도만 연기해도 200의 효과가 나올 수 있는 장르라고 한다. 그 예로 이 감독은 [겨울 나그네]라는 영화에서 이혜영이나 안성기보다 연기를 더 잘 한 배우는 다름 아닌 강석우였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불필요한 오버를 하지 않음으로써 영화 속에서 말 그대로'민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명세 감독은 만나는 배우들마다 마이클 케인의 강연집인 [명배우의 연기수업]이라는 책을 추천한 얘기를 하며 그 책 안에 자신이 썼다는 추천사 얘기도 해줬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오명(Notorious)] 때의 일화다. 키스씬을 찍을 때 어떻게 하면 두 남녀의 사랑을 더 강렬하게 보일 수 있을까 궁리하던 히치콕 감독은 캐리 그랜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하체를 강제로 묶어놓고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얼핏 생각하면 미친 짓처럼 느껴지지만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영화 사상 가장 애절한 키스신으로 남았다고 한다. 영화란 궁극적으로 '화면 속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다'라는 이명세 감독의 주장을 정확하게 뒷받침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강의가 끝나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가 자전거를 타고 온 이명세 감독과 함께 커피숍에 들러 잠깐 커피를 마셨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아내와 감독님이 지난 얘기를 나누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지내게 된 계기가 무슨 인터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아내가 예전에 기자 생활을 했었으니까) 사실은 당시 아내가 '이명세 감독 후원회'를 사칭했던 사람에게 돈을 뜯길 위기에 처했다가 그걸 해결하는 과정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어이 없는 계기로 친분을 텄던 두 사람은 뒤늦게 그걸 기억해 내고는 깔깔깔 웃었다. 

그날 들은 강의 얘기를 했고 우리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배우들 얘기도 좀 했다. 연극은 물론 박정범 감독의 영화 [산다], 문소리 감독의 [여배우는 오늘도]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이승연 얘기를 시작으로 뒤늦게 결혼한 뒤 성북동으로 이사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박호산이나 김혜나 얘기도 하게 되었다. 한 동네 선후배라는 친분 덕분에 얼마 전 온에어 된 '화재안전' 공익광고에 박호산이 출연한 얘기를 했더니 그 광고를 당신이 만들었냐며 감독님이 반가워 하셨다. 이명세 감독은 무릎에 물이 차는 등 건강이 안 좋아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무릎도 낫고 담배도 끊었다고 했다. 요즘은 자전거로 돌아다니다가 예쁜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고 책 읽으며 다니는 게 새로운 낙이라고 했다. 새로운 작품은 거의 다 구상이 끝났는데 투자자가 잡히는대로 제작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M]이나 [형사:듀얼리스트] 등 우리가 좋아했던 감독님의 작품들을 거론하며 어서 새 작품이 극장에 걸렸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아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감독님과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였고 나만 샷을 하나 추가해서 마셨는데 커피 맛이 좋았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얘기를 하고 가볍게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감독님의 뒷모습이 청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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