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간을 살인병기로까지 만들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복수'라는 단어만큼 강력한 성취동기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전설은 물론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가 앞다투어 복수극이라는 테마를 즐겨 사용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의 부모 형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의 복수에 평생을 바치는 것도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연극 <조씨고아 - 복수의 씨앗>은 그런 의문을 테마로 만들어진 연극이다.

중국 진나라때 조정의 충신인 조순은 정적이자 간신인 도안고의 계략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자신은 물론 일가 300명이 멸족되는 대재앙을 겪는다. 조순에게 사랑 받았던 시골 의원 정영은 마흔 다섯 살에 늦게 자식을 하나 얻었는데 낳은지 한 달이 지난 그 자식을 대신 죽게 함으로써(도안고가 바닥에 세 번 패대기를 쳐서 죽었다고 한다)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씨고아를 살린다. 그리고 간신 도안고 밑으로 들어가 조씨고아를 도안고의 양아들이 되게 한다. 스무 살이 되면 조씨고아에게 복수를 하게 하려는 일념으로.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다. 그리고 이십 년 후 정영과 조씨고아는 드디어 도안고에게 복수를 하는 데 성공한다. 황석영의 역작 [손님]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가족을 도륙하는 이 비극의 끝엔 무엇이 남을까.

이 연극은 13세기에 살았던 기군상이 사마천의 <사기>에 있던 기록을 토대로 쓴 희곡이 원작이다. 이를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연출가인 고선웅이 각색해 재작년 처음 무대에 올렸는데 어느새 '명불허전'이라는 평을 들으며 전회매진을 기록하는 작품이 된 것이다. 그제 내가 명동예술극장에 가서 본 [조씨고아 - 복수의 씨앗]은 본토인 중국 베이징 공연을 거쳐 국내에서 세 번째로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군신을 위해 초개 같이 목숨을 버리거나 적장으로 들어가 신분을 숨기고 오랜 세월을 견디다가 복수를 감행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인이 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설정은 많았으니까. 그러나 그건 개념적으로 따졌을 때 얘기고 실제로 숨 쉬고 밥 먹고 소리 지르며 살아가는 인간군상들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게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연극이 상연되는 지금은 진나라나 원나라 시대와는 가치관이 다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에서도 정영의 아내는 "당신이 한 약속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그런다고 제 자식을 죽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라고 남편에게 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영은 조순의 아들이자 부마인 조삭과 공주의 눈물어린 부탁을 저버리지 못한다. 간단치 않은 캐릭터를 앞에 두고 연출가의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 작품을 21세기에 한국에서 상연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가 선택한 것은 '존재론적 질문과 유희정신의 조화'였던 것 같다. 군신을 위한 복수극이라는 테마를 다루고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머코드로 무장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심각함과 유머가 공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간신인 도안고나 시골 의원 정영은 물론 하물며 복수를 부탁하는 공주의 대사와 몸짓에도 경쾌한 유머가 스며있어서 관객들이 1, 2부로 나뉘어진 150분 동안 여러 번의 감정적 이완을 느끼며 연극을 즐길 수 있다. 이건 훌륭한 각본과 연기가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한 일인데 이 연극은 그것을 해내고 있다. 극의 중심이자 복잡한 주제의식을 실어나르는 정영 역의 하성광은 그 중에서도 눈이 부신다. 장엄할 때는 장엄하게, 소심할 때는 소심하게 천의무봉의 연기를 펼치는 것이다. 특히 높은 목소리로 길게 이어지는 그의 탁월한 대사 능력은 놀랍다.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연극대사가 아니라 랩처럼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극에서 누군가 죽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 부채를 펼치는 묵자라는 캐릭터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감초 역할을 적절히 수행한다.

도안고 역을 했던 장두이는 초반에 좀 대사를 불분명하게 처리해 눈쌀을 찌푸리게 했으나 이내 컨디션을 회복하고 극의 중심 역할을 해낸다. 그 밖에도 공손저구 역의 정진각, 조순 역의 유순웅, 정영의 아내 역을 맡은 이지현, 공주 역의 정새별 등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게 딱 맞는 열연을 펼친다. 대사 처리에서 가장 미숙한 사람은 조씨고아 역을 맡은 이형훈이었는데 이는 맡은 역할이 열혈청춘인 스무 살의 젊은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흠이 되진 않았다.

무대는 아주 미니멀하하게 꾸며져 흡사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아내는 예전에 LG아트센터에서 보았던 피터 브룩의 <마술피리>가 떠오른다고 했다). 고선웅은 천정이 높은 명동예술극장의 장점을 살려 소도구들에 줄을 매달아 천정에서 내려오게 하거나 올리는 무대연출을 선보인다. 두 겹으로 되어 있는 커튼은 공간의 폭을 더욱 넓게 만들어 몇 사람만 등장하는데도 당장 옛 중국 대륙과 왕실의 스케일이 느껴지게 만든다.

연극을 보기 전 프로그램을 한 권 샀다. 연출가 인터뷰가 실려 있었는데 인터뷰어 김민정이 원작인 기군상의 [조씨고아]와 고선웅 각색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내가 아무리 뛰고 날아봤자다. [조씨고아 - 복수의 씨앗]은 결국 기군상 작가의 손바닥 안에 있다."라고 하는 대답이 믿음직스러웠다. 그의 말대로 이 작품은 원작의 문제의식을 가볍게 뒤집거나 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복수에 성공하고 그 복수극 때문에 죽은 사람들과 정영이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아내를 비롯한 죽은 자들이 그를 아는척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침으로써 복수의 허망함을 전할 뿐이다. 그렇다고 복수를 하지 말았어야 할까. 그건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연극은 즉답을 회피함으로써 우리에게 '살아가는 원동력'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고선웅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릴림픽 개폐회식 연출을 맡아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보냈던 스타 연출가다. 5·18광주민주항쟁을 다룬 ‘푸르른 날에’를 연출한 것 때문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가 문체부 차관이 당시 초연인 이 작품을 보고 리스트 삭제를 부탁했다 해서 유명세를 치룬 적도 있다. 1부를 보고 인터미션에 잠깐 밖으로 나오다가 우리 좌석 맨 뒷열에 앉아 있는 배우 이혜영을 보았다. 얼마 전 이 극장에서 그가 주연했던 [메디아]를 보았기에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연극을 보았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가 십만 원을 내고 국립극단 회원으로 가입하면 할인 혜택도 많고 또 일 년 간 국립극단에서 올리는 작품만 제대로 찾아 보아도 좋은 연극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길래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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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닌 인생이

              
                              마광수



별것도 아닌 인생이
이렇게 힘들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결혼이
이렇게 스트레스를 줄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이혼이
이렇게 복잡할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시가
이렇게 수다스러울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똥이
이렇게 안 나올 수가 없네 



어제 글 쓰는 친구 우근이가 마광수 교수 1주기를 기념해 올린 글을 보고 예전에 스크랩 해놨던 그의 시를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마광수 교수는 연세대에 가서 연극반 지도교수를 하기 전에 홍익대 뚜라미 지도교수이이기도 했다. 당시로는 드물게 스물여덟 살에 교수에 임용된 천재였다는데 마침 우리 써클인 창작곡동호회 '뚜라미'의 지도교수를 맡은 것이었다. 뚜라미 10주년 때 동아리 임원이었던 나는 마광수 교수를 모셔와 같이 생일 파티를 했는데 그때 교수님이 재미 있는 후일담을 들려주며 우리를 웃겼다. 

"학교 써클 지도교수를 하라는데, 블랙테트라와 뚜라미 둘 중 하나를 하라는 거예요. 근데 블랙테트라엔 여자가 없잖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에세이나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써서 옥고를 치뤘던, 야한 것만 좋아하는 이상한 교수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윤동주 시 연구에 독보적인 존재였고 시와 그림에도 조예가 깊은 문인이었다. 

오늘 아침 그의 시 '별것도 아닌 인생이'를 다시 읽어보니 그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살았는지가 새삼 느껴진다. 기회가 되면 당시 책 출판 문제로 그와 함께 어이없는 옥고를 치뤘던 장석주 시인에게 고인에 대한 작은 이야기라도 한 토막 듣고 싶어진다. 물론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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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오학년 때 담임 선생은 참 말씀을 재밌게 하는 분이셨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이태리타올'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깔깔이 치마'가 대유행을 한 적이 있었단다. 그런데 누군가 뒤늦게 깔깔이 천을 잔뜩 수입해 놨는데 다음 해 여름엔 유행이 지나는 바람에 더 이상 깔깔이치마를 찾는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다. 판단 착오로 많은 빚을 지게 된 사업가는 자살을 결심했단다. 집에서 목을 매려다가 죽기 전에 목욕이나 하고 깨끗하게 죽자, 라는 생각이 들어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마침 깔깔이 천이 눈에 띄길래 아무 생각 없이 살갗에 갖다 대보니 때가 국수처럼 밀리더라는 것이다. 그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다! 그렇게 해서 이태리타올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물론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와 내 친구들은 정말로 넋을 잃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구라나 스토리텔링이란 이런 것이다. 극적인 구조를 기반으로 반전이 있고 적당한 교훈까지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니, 만드는 게 아니라 찾아야 한다. 우리 안에 이미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고 우리 곁에도 사연들은 널려 있다. 우리가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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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독하다 토요일' 첫 시즌을 마감했다. 책을 읽은 회원들과 함께 이차로 '혜화동 칼국수'에 가서 간단하게 식사와 음주를 하고 우리집인 '성북동 소행성'으로 올라와 옥상파티를 단행했다.  미리 준비한 간단한 안주 말고는 다른 음식 없이 캔맥주를 마셨는데 다들 매우 즐거워했고 모든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맥주를 정말 많이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 옆집 총각과 함께 종로에 있는 '이문설농탕'에 가서 해장을 하면서 아내가 영화 [서치]를 예매했다. 

'부재중 전화 세 통만 남기고 사라진 딸을 찾는 아빠의 이야기'라는 것 말고는 아무 정보 없이 보기로 한 영화였다. CGV대학로에 들어서자 아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11층 투썸플레이스에 가서 커피를 사가지고 오는데 가족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50대 아저씨가 자신의 딸에게 "...그러게.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여주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재미 있게 만들었냐."라고 감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이 짧은 촌평만으로 영화를 잘 골랐다는 것을 직감했다. 

굉장한 영화였다. 푸른 잔디밭과 하늘이 보이는 평범한 데스크톱 배경화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그녀의 SNS를 뒤지기 시작하는 장면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배우가 카메라에 그대로 노출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원칙을 지킨다. 대신 맥북, 페이스타임, TV보도화면, CC-TV, 텀블러, 유투브, 유캐스트 등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각종 매체에 비친 모습이으로 등장하고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그들이 찾는 정보도 구글 검색이나 G메일 등을 통해서 전해진다. 언뜻 우리 스스로 가두고 있는 SNS 상황을 비판하려고 이러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런 사회적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스릴러의 문법에 충실한 전개를 착착 선보인다. 

보통 이런 컨디션이었다면 잠깐 졸거나 연신 하품을 해대겠지만 평소와 달리 영화에 깊이 빠져 좌석에서 등을 떼고 화면을 향해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 촘촘하고 속도감 있는 영화라 숙취까지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존 조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연기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정확함의 미덕을 가지고 있었고 1991년생인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적어도 세 번의 커다란 반전을 가지고 있는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다. 컴퓨터나 휴대폰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좀 차갑거나 평면적일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마우스를 조작하는 손의 동작만으로도 주인공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폴더 안에 있던 가족들 동영상을 플레이 해보고 지우려다가 망설이거나 예전에 딸이 찍어놓은 유캐스트 화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은 자신의 딸이지만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아빠의 슬프거나 놀라운 감정들을 섬세하게 전달해준다. 그리고 후반에 밝혀지는 '악역'들도 다 자신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어서 스토리 전개상 전혀 무리가 없게 느껴진다(늘 느끼는 거지만 악역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능력이 뛰어난 극작의 기본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아내가 "와, 이 영화 끝내준다. 올해 본 영화 중 최고다!"라고 외쳤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정말 100분 남짓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의 기분 좋은 몰입감이었다. 뒤늦게 숙취가 몰려와서 집에 와서 한잠 자고 일어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니쉬 차간디는 직접 제작한 구글 글라스 홍보 영상으로 24시간 만에 100만 뷰를 돌파한 뒤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 스카우트된 매우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다. 한 마디로 천재라는 소리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영화사에서 제공한 예고편 밑에 달린 댓글을 읽다가 '내가 실종되고 부모님이 내 SNS를 뒤져보는 것만으로도 올해의 호러'라고 쓴 글에서 빵터졌는데 그 밑에 친구들을 소환해놓고 '우리 엄마가 우리들 단톡방을 본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라는 둥 '자살하기 전에 트위터, 페북 계정부터 폭파시키고 죽어야 합니다. 물론 자살은 무척 안 좋은 겁니다 여러분' 이라는 둥 각종 두려움에 떠는 댓글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 이거 스토리 상 내 이야기면 아빠가 날 찾는 이유가 죽이러 오는 거로 바뀔 것' 라는 댓글이었다. 우리가 SNS에 얼마나 의존하며 사는지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돈이 별로 안 든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노력만큼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가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 수 많은 페이스북 화면들과 사진, 동영상, 유캐스트 화면 들을 감독과 스태프들이 일일이 다 밤새워 만들었을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촬영은 13일 간 했는데 후반작업은 2년이 걸렸다'는 제작 에피소드를 읽을 수가 있었다. 천재적 능력에 인내심까지 갖춘 이 젊음이의 앞날이 기대된다. 강추한다. 그런데 [서치]의 원제는 'Searching'이었다. 배급사에서 알아서 한 거겠지만 도대체 서칭보다 서치가 왜 더 나은 건지는 정말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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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광고인이자 글쟁이인 카피라이터인 정철 선배는 [틈만 나면 딴생각]이라는 저서의 책날개에 '좋은 생각, 맞는 생각만 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머리가 굳는다'라고 썼다. 나는 거기에 이렇게 덧붙여보고 싶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보면 몸 축나고 머리도 비어 결국엔 바보가 되거나 기계로 전락한다고.

3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놀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은 다 열심히 일을 할 시기에, 놀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만 놀게 되었으니 당연히 돈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더구나 내게는 학력, 학식, 재능, 배경, 배짱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한 상황이고 남아도는 건 오로지 시간 뿐이었다. 그래도 뭔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몇날 며칠 시간을 펑펑 써가며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게 바로 '월조회'라는 단체였다. '월요일 아침에 조조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었는데 명색이 단체이긴 했지만 회원은 달랑 나 하나뿐이었다. 그 시간에 나와 놀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었다. 남들은 월요병에 시달려가며 주간업무회의를 하고 있을 시간에 혼자 텅 빈 극장에 앉아 조조영화를 보는 맛은 각별했다. 아, 이게 주류 이탈자의 쾌감이구나. 나는 그 새로 취직이 될 때까지 그 소심한 행복을 많이 즐겼다. 

월조회에서 한 번 깨소금맛을 경험한 나는 틈만 나면 '쓸 데 없는 짓'을 구상하는 편이다. 어느날은 아내와 옆집 총각 이렇게 셋이서 밥을 먹으며 '수요미식회'처럼 우리도 날을 정해서 뭘 먹으러 다녀보면 어떨까? 라는 얘기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토요식충단'을 만들기도 했다. 이름은 내가 제안을 했는데 자칫 '벌레 충 자'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먹을 것에 충성한다는 뜻의 '토요食忠團'을 병기하기로 했다. 토요식충단은 미식가인 옆집 총각의 취재력과 출판 기획자인 아내의 추진력 덕분에 정식 회원도 모집하고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개설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여전히 토요일에 성북동 삼총사가 식당을 찾아다니는 일이 주업무지만 두 달에 한 번씩은 회원들을 불러모아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고 함께 즐기는 정기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나만큼이나 쓸 데 없는 일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아내는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남편 덕에 매일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수고를 떠안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식탁 사진을 찍어 올리는 '매일매일밥상'이라는 페이지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이제는 수많은 구독자들이 우리들의 소박한 아침 밥상 사진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쓸 데 없는 생각이라 여겼던 행위가 사실 아주 쓸 데 없는 생각은 아닌 경우가 많은데 지나고 보니 '매일매일밥상'이 그런 경우였다. 

연말에 동네에 있는 커피숍 '성북동 콩집'에 앉아 '올해 읽은 책 베스트5'를 작성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가 '그러지 말고 사람들과 같이 모여서 소설을 읽는 모임을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떠냐'고 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라 생각해서 만들어진 게 '독하다 토요일'이다. 우리가 만든 이 모임은 이름만 독할 뿐 사실은 매우 널널한 독서클럽이다. 다른 그룹처럼 책을 전투적으로 읽고 와서 열띤 토론을 벌이거나 하는 것은 우리 성격에 맞지도 않으니 자제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인 회원들은 내가 미리 공지한 6권 중 '이달의 책'을 들고와 모임 장소에서 한 시간 정도 묵독한 뒤 각자 책에 대한 소감을 얘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사실 처음엔 한 시간 뒤 각자 '세 줄 평'을 작성해 읽어보기로 했었으나 이마저도 시들해져서 요즘은 나만 하고 있다). 우선 육 개월만 시험삼아 모임을 가져보기로 하고 내가 6권의 한국 소설을 선정했는데 생각보다 회원들도 빨리 모였고 다들 우리나라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고 말해줘서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오늘이 여섯 번째 모임이니 빨리 이 글을 마감하고 대학로 '책책'으로 달려가야겠다. 

생각해보면 위에 열거한 짓거리들 중 돈이 되는 모임은 하나도 없다. 요즘 인스타그램에 쓰고 있는 '공처가의 캘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떠랴. 언제나 그랬듯이 인생에서 돈보다 중요한 게 바로 이런 '즐거움' 아니던가. 그러니 쓸 데 없는 짓을 두려워하지 말자. 장담하건데 가끔 딴생각을 할수록 인생은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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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프리랜스 카피라이터로 일할 때 모 그룹 회장님의 '추모 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다. 병원에 있는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서 틀어놓고 하객을 맞을 중요한 영상이었다(대기업엔 그런 의전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회장님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공부를 하고 그분의 인품과 업적이 드러나도록 정성을 다해 추모 카피를 썼다. 같이 일하던 PD도 열심히 관련 자료를 모으고 편집을 해서 썩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았다. "큰 산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카피도 심금을 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오랜 기간 혼수상태에 있던 회장님께서 좀체 돌아가시질 않는 것이었다. 처음엔 다행이라고 얘기를 하긴 했지만 막상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딱히 할 일이 없던 홍보실 직원들이 틈만 나면 우리를 불러 추모영상을 수정하다 보니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수정에 지친 우리들은 급기야 저녁에 모여 소주를 마시며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회장님이 돌아가 주셔야 수정 편집도  끝나고 대금 결제도 될 것 같다'며 울분을 토했다. 우리의 바람과 상관 없이 결국 회장님은 돌아가셨지만 맹세코 그때 말고는 '누가 죽었으면' 하고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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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그가 올린 연극들이 오늘날처럼 전 세계를 풍미하는 고전이 되리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전 세계의 대학에서 그의 극작만을 평생 연구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지만 당시에는 그도 그냥 연애하는 남녀가 나오고 고민하는 왕자나 고리대금업자, 권력을 쥐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왕족들이 등장하는 '대중 연극'을 만드는 것이고 자신은 극단을 운영하기 위해 계속 대본을 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니까. 그런데 결국 그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들은 거창한 얘기보다는 이처럼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일 경우가 많지 않은가. 

물론 어제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본 [장군슈퍼]라는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비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느 시대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이즈'가 아니라 '공감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얘기하고 싶은 것 뿐이다. 이 연극은 아들 장군이의 이름을 딴 슈퍼마켓에서 일어나는 잔잔하고 착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편의점과 마트가 판을 치는 세상에 왜 굳이 슈퍼마켓 이야기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게 커지고 자동화된 공간보다는 조금 뒤쳐져도 그 덕분에 아직 '아날로그'가 남아있는 곳에 따뜻하고 정감있는 사연들이 피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슈퍼가 마트에 밀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엄마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슈퍼 일을 보는 장군이, 그리고 동네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장군이의 이모 선희, 옆집에 사는 재수생 성환, 그리고 성환이 약사라고 얘기해서 그런 줄 알았던 미선, 슈퍼에 와서 혼자 맥주를 마시곤 하는 미남 등이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언제나 믿고 보는 배우 이승연과 이모 역의 박진호가 극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장군 역의 김상균과 성환 역을 맡은 오영윤이 웃음코드와 눈물이 나는 장면들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잔잔한 이야기지만 미선의 정체나 장군의 친모 이야기 등 극을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복선들도 있어 90분 간 전혀 지루할 틈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어제는 연극계의 아이돌이라는 오영윤의 팬들이 많이 온 모양이었다. 그가 나와 연기를 할 때마다 객석에 있는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배우 이승연과 함께 간단하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녀는 공연이 끝나고 배우, 연출 등과 함께 짧게 오늘 공연에 대한 리뷰와 보완점 등을 얘기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다며 미안해했으나 우리들은 오히려 이렇게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게 연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 등으로 이루어져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날을 체크해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춘천거기]등을 쓴 작가 김한길(소설가이자 정치인인 그 김한길 말고)의 작품이라 이미 탄탄한 적품성을 인정 받았지만 이번에 극단 '가족의 탄생'이 새롭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이려 노력한 마음이 느껴진다. 9월 21일까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상연한다. 시간 내서 보시길 추천한다. 우리는 인터파크로 티켓을 예매하서 봤는데 티켓값이 너무 싸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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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

짧은 글 짧은 여운 2018. 8. 27. 18:54

문병


엄밀하게 말해서 사람들은 모두 환자다.
가벼운 감기부터 고혈압, 당뇨, 비만,
스트레스...하다못해 어린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상사병까지.

그 환자들 중에서 조금 더 아픈 사람들은
병원에 가거나 입원을 하고 덜한 사람들은
그냥 참고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우리들은 모두 난치병 환자거나
또는 약간의 정신병자다. 

그러니 오늘 당장 친구에게 문병을 가라.

입원한 친구는 병원으로 찾아가고
그냥 아픈 친구는 술집으로 찻집으로 
불러내서 따뜻하게 위로하라. 

우린 모두 서로에게 문병할 의무가 있다. 
그게 사는 거다. 



(*10년 전에 썼던 글을 우연히 발견해서 괜히 만년필로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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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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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폐간된 잡지 [판타스틱]에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그 잡지엔 별별 기괴한 상상력을 지닌 SF작가들이 많이도 등장했는데 SF를 잘 모르는 제게는 역설적으로 듀나나 김보영 같은 인기작가들보다는 배명훈이나 정세랑 같은 '약간 삐딱한' 작가들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약간 삐딱하다는 것은 우주나 물리학을 다루거나 하는 본격 SF라기보다는 개인들의 사소한 관심사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이야기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명훈은 어디에선가 인터뷰에서 '일반 소설에다가 과학적 지식을 첨가해서 쓴 다음 SF라고 우기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스마트 D>라는 데뷔작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도 있었구요. 아무튼 그래서 오래 저부터 제가 좋아했던 [안녕, 인공존재]라는 작품집을 '독하다 토요일'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을 했습니다.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크레인 크레인>, <누군가를 만났어>, <안녕, 인공존재!>, <변신합체 리바이어던>만 다시 읽고 대학로 책책으로 갔습니다. 손영연 씨는 SF인지 모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데 일단 글이 신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표제작에 나오는 쓸 데 없는 물건, 즉 '무용지물'에 대해 호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반면 윤혜자 씨는 시종일관 불편한 책이었다고 했습니다. 일단 '너희들은 이렇게 못 쓰지?'라고 뻐기는 듯한 작가의 잘난 척이 싫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책 뒷쪽에 붙어있는 '출간사유서'를 읽고 더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존재성에 대해서 나는 이 정도 쓸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태도가 몹시 거슬린다는 것이었죠.  윤혜자 씨는 언제나 그랬듯이 남편이 가진 책 말고 이번에 새로 똑같은 책을 구입했는데 2010년 초판인쇄를 시작한 책이 아직도 초판인 것은 그런 태도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작가의 태도에 대해서는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배명훈의 작품엔 적어도 '인간'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소심한 항변을 했습니다. 

서동현 씨는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그 기발함이 정통 SF와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이나 기술을 소재로 샤먼이나 초월까지 자유롭게 다루는데 이는 마치 예전 [퇴마록] 시리즈를 썼던 이우혁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기발함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는데 <안녕, 인공존재!>에 등장하는 발명품들은 만약 실제로 존재하기만 한다면 당장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고 했고 특히 <얼굴이 커졌어>를 읽고 많이 웃었다고 했습니다. 

김성희 씨는 다른 사람처럼 별다른 의심이나 고민 없이 그냥 읽었는데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이 제일 재미 없었고 기중기의 신이 등장하는 <크레인 크레인>의 상상력이 돋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오의 침대>는 동화 같았다고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녕, 인공존재?'의 안녕이라는 말이 만나서 하는 인사일까 아니면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일까도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존재는 아름답다'라는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외교학과를 나온 작가의 이력 때문에 '요즘은 뭐 할까?'라며 혹시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궁금함도 등장했습니다. 솔직히 글만 써서 먹고 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글 쓰는 스타일로 봐서 다작을 하거나 전업작가로 생활 할 것 같지는 않아서 나온 궁금증이었겠죠. 윤혜자 씨는 자기 혼자는 절대로 읽지 않을 작가인데 이런 모임 덕분에 억지로라고 읽에 되어 좋다고 하며 웃었습니다. 정아름 씨는 세 번이나 이 책을 읽었다는 말로 소감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이해가 안 돼서 되풀이 읽기 시작했다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커졌다>는 너무 웃겼는데 좀 유치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매뉴얼>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1500년 전 얘기가 갑자기 나와버려서 어리둥정 했다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 작품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더 의견을 보탤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정아름 씨는 <누군가를 만났어>에 나오는 '고고심령학자'라는 직업이 실제로 있는지 알았다며 웃었는데 얼마 전 같은 제목으로 장편소설이 또 나온 걸 보면 배명훈은 이 가상의 직업에 대한 애착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진주 씨는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계속 참석을 못하다가 이날 처음 책책에 와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안녕, 인공존재!>에 나오는 신우정 박사의 유서의 내용과 비슷하게 최근에 4년 전 남자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펼쳐주었습니다. 소설에 나온 존재론적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쿨하게 엮어 얘기하는 모습이 멋져보였습니다. 

임기홍 씨는 이 소설집을 읽고 자신이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는데, 예를 들면 건축에 있어서도 자신은 벽의 마감은 물론 조명 벽지색깔까지 모두 맞아야 집이 완성되었다고 보는 입장인 반면 이 소설들은 어딘가 미완성 같다고(마치 당인리에 있는 커피숍 '엔트러싸이트'처럼 벽마감이 안 되어 있고) 느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과학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가의 경우는 여러가지 매력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자기 필요한 대로 써먹는 느낌이라 그게 못마땅하다고도 했습니다. 마치 착한 친구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용해먹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독특한 견해였습니다. 

윤혜자 씨는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 즉 김탁환의 [이토록 고고한 연예]와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를 비교해본 느낌을 전했는데 [이토록 고고한 연예]가 물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안녕, 인공존재!]는 SF이면서도 문학의 완결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게 오히려 '문청'이 쓴 소설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조금 더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했더니 이 책이 나온 곳이 '북하우스 퍼블리셔스'라는 곳이라 어느 정도는 전형성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공식적 루트로 등단한 작가들이게는 뭔가 '공식'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린 모여서 등단한 작가의 작품만 읽었는데 만약 그렇지 않은(이를테면 웹작가라든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면 고른 문장력이나 작품성을 보증받기 힘들다는 점도 있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서동현 씨의 지적대로 정통 SF도 아닌 소설에 제목도 SF 팬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라 잘 안 팔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솔직히 배명훈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좋다고 하며 특히 감동스러웠던 작품 중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를 인터넷 이용자들이 집단으로 구해내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더니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라고 제꺼덕 알려주었습니다. 그밖에도 배명훈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은경'이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예전에 인기 높았다가 이제는 존재감이 없어진 웹작가 '귀여니'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다는 신춘문예 이야기 등등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다가 다음엔 정세랑의 연작소설집 [피프티 피플]을 읽자고 합의하며 2차를 가기로 했습니다. 원래 윤혜자 씨와 손영연 씨는 광화문 월향에서 이여영 대표가 번개를 쳤던 '브라쟈 풀고 마십시다' 라는 여성들만의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시간이 애매해서 포기하고 같이 2차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대학로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이어진 이차에서 매우 많은 양의 고기와 술을 먹고 마셨고 3차로 대학로 '나무요일'에 가서 또 맥주를 마시다 헤어졌습니다. 사실은 위에 쓴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는데 제가 회사 일이 바빠서 - 사실은 다음날 즉시 써야하는데 숙취와 게으름 때문에 - 후기를 너무 늦게 쓰는 바람에 빼먹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모임은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제가 쓴 세 줄 평과 함께 이번에 참석하지 못했던 김하늬 씨가 카톡으로 보내온 작품평을 첨부합니다. 

편성준의 세줄평 : SF이면서도 서사가 능숙한 소설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안녕, 인공존재!]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뒤에 존재론적 성찰까지 깔려 있어서 읽는 맛이 남다른 단편들이었다. [팔란티어] 이후 종적이 묘연한 김영민과 달리 배명훈은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활동을 계속 해줄 것으로 묻는다. 


김하늬 씨가 카톡으로 보내 온 평들 : 헉... 보낸다는게 시간을 못봤습니다ㅠㅜ 뒤풀이중이실거 같지만 첨부합니다.

안녕, 인공존재! / 배명훈

■ 총평
데우스엑스마키나를 사랑하나보다. 뭘 말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구성이 흔들리지 않아서 제목만 봐도 내용이 기억난다. 재미있다! 각 단편 별로 화자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인물의 특성을 잘 살린 것 같다. 그간 읽은 단편작가들(김애란, 레이먼드 카버 등)은 그들의 특징이 글에 많이 묻어났다. 배명훈의 소설 연결고리는 발랄함과 SF라는 점 정도만 있고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본받을 점이 보이는 소설집.

■ 크레인 크레인
크레인을 신적 존재로 보는 것 까지 참신하고 좋았는데 신이 등장하며 참신함을 부셔버렸다.

■ 누군가를 만났어
세 국가를 모은 이유는 외교상황을 빗대고 비꼬려고 하는 것이었을까? 역시 데우스엑스마키나...

■ 안녕, 인공존재!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교류를 해야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증명해 폭발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한 자갈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글의 전개 내용도 안정적이다.

■ 매뉴얼
참신하다. 매뉴얼을 마로하, 신적 존재와 연결한게 인상적이지만, 끝이 너무 허무하고 끝나지 않은 느낌이 아쉽다.

■ 얼굴이 커졌다
알레고리 소설이었다. 얼굴이 커짐을 프로로 의미했으나 가정, 즉 행복을 찾은 나는 얼굴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행복을 얼굴의 크기로 비유한 것 같다. 가장 좋다.

■ 엄마의 설명력
아이의 세계는 부모라고들 하는데, 그런 걸 보면 주인공은 30대가 되어서도 부모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건 현 세대를 풍자한게 아닐까.

■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홉스의 사회계약론에서 영감받은듯. 로봇의 합체로 국회를 비꼰 것도 참신. 신을 죽이는 행위로 현대 예술을 일컫는 것 같다. 두번째로 좋다.

■ 마리오의 침대
사랑은 돌고 도는 것? 배우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점도 재미있고 문제를 몰래 해결하는 것도 사랑스럽다. 세번째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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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그녀는 그들의 정원에서 키운 당근 하나를 들어 보인다. 이상하게 생긴 돌연변이로, 두 개의 인간 몸이 서로 얽혀 성교 중인 모습과 닮았다. 이걸 해나에게 보여줘. 그녀가 말한다. 우리의 카마수트라 당근이야. 특별할 때 쓰려고 따로 두었던 거란다. 차에서 다시 혼자가 된 비트는 그 외설적인 것을 손에 들자 두 여인의 즐거움이 귓가에 울리는 듯해 기쁘다.




죽어가는 엄마 해나를 간호하던 주인공 비트가 마을 자연식품가게에 들러 당근을 선물로 받던 이 장면을 아침에 전철에서 읽으며 슬며시 웃었다. 로런 그로프의 <아프카디아>를 조금씩 읽고 있다. [운명과 분노]만큼 재밌지는 않지만 이런 대목들은 정말 사랑스럽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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