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링 디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작은 이랬다. 점심시간에 서점에 가서 벼르고 있던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내려놓고 나왔다. 그날 산 다른 책들과 신형철의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고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신형철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들을 같이 읽을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만큼 신형철의 문장들은 밀도가 높고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책의 목차를 펼쳤을 때 1부의 첫 번째 단락이 '당신의 지겨운 슬픔 - <킬링 디어>가 비극인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놓쳤던 것이다. 어떻게 맨 처음 나오는 글부터 텍스트의 내용을 몰라 공감대가 전혀 없이 책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라는 고지식한 이유에서 나는 당장의 독서를 포기했다. 

어제 영화 [킬링 디어](요르고스 란티모스, 2017)를 내려받아 노트북으로 보았다. 굉장한 영화였다.  아르테미스와 아가멤논에 얽힌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놓은 차갑고 상징적이며 현대적인 이 영화는 겉으로는 복수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딜레마'에 대한 내용이었다. 외과의사인 스티븐 곁으로 마틴이라는 소년이 맴돈다. 처음엔 그 둘이 무슨 사이인지 관객은 알 수가 없는데 차차 대화가 이어지면서 스티븐이 예전에 수술을 하다가 실수로(아마도 술을 마신 채 수슬을 하다가) 마틴의 아버지를 죽였음이 밝혀진다.  스티븐은 죄의식과 측은지심으로 마틴에게 매우 친절하고 다감하게 대해주지만 마틴은 그 정도로는 곤란하다고 말하며 더 큰 것을 요구한다. 니가 내 가족을 죽였으니 나도 니 가족을 죽여야겠다는 것이다. 

마틴에게는 저주의 능력이 있다. 스티븐의 아들 밥에게 하체 마비가 오더니 딸인 킴까지 똑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이제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다 죽게 된다고 말하는 마틴. 방법은 마틴이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을 직접 죽여야 하는 것뿐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세 명이 모두 죽는다. 망설이는 것은 더 큰 비극을 부르는 옵션일 뿐이다. 이제 중요해진 것은 마틴이 가진 초능력이 아니라 그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하는 마틴 가족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가장 고전적인 복수란 무엇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니던가. 그러나 타인의 슬픔을 내 아픔처럼 똑같이 이해하고 공감해서 기꺼이 상대의 복수극에 생명을 내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형철은 선택의 기로에 선 스티븐을 보며 '여기에는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역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스티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된 가족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스티븐에게 비굴하게 사정한다. 어차피 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게 꼭 나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이 책의 제목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고 붙은 것은 아내 신샛별 평론가의 조언 덕분이었다고 한다. 신형철이 슬픔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 것은 2014년 4월 16일 때문이기도 하고 2017년 1월 23일 때문이기도 한데, 아다시피 전자는 세월호가 침몰한 날짜이고 후자는 아내가 수슬을 받았던 날짜였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슬퍼해야 할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같이 겪지 않고는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세월호를 추모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지겨우니 그만 해라'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킬링 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틴의 원한과 억울함을 다른 등장인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야멸찬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신형철은 이 영화가 그 명제를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영화이므로 슬픈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슬픔을 이해하는 슬픔'이라는 책의 맨 처음 이야기로 등장하게 된 된 것이다. 

이 글을 영화일기에 올려야 할지 독서일기에 올려야 할지 잠깐 망설였는데 결국은 독서일기에 올리기로 했다. 신형철의 책이 [킬링 디어]라는 영화로 나를 이끌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읽지 않은 채 독서일기까지 써놓았으니 이제 할 일하고는 앞으로 이 책을 천천히 한 장씩 한 장씩 곱씹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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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에서 오이지무침 부분을 읽다가 난데없이 반성 아닌 반성을 해야 했다. 오이지무침은 소설가 권여선이 여름 내내 떨어뜨리지 않고 해먹는 밑반찬인데 탈수가 생명이란다. 그런데 여자의 악력으로는 꼬들꼬들한 오이지 식감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목을 보호하기 위해 오이지를 짜던 베보자기를 그대로 펼쳐 냉장고에 넣고 서너 시간 말렸다 무치는 꾀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평소 음식용 짤순이가 있는 작은어머니를 부러워하던 그녀가 그러다 어느 날 발견한 방법은...


"요즘은 한결 수월하게 애인을 불러 짤 것을 명한다. 애인이 인정사정없이 쥐어짠 오이지는 꼬들꼬들을 넘어 오독오독하다. 정말 내 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이 친구가 악력 하나는 타고났다. 그러니 날 놓치지 않고 잘 붙들고 사는 것이지 싶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렇지. 애인이나 남편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지...'라고 중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악력이 약하다. 일단 손이 작기도 하고 요령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손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와인을 딸 때도 늘 아내가 와인병을 잡는다. 내가 따면 따개 스프링이 코르크마개를 비뚤게 관통해 마개가 쪼개지기 일쑤라 늘 야단을 맞는다. 게다가 난 손목도 약하다. 군대 가서 오른쪽을 다쳤기 때문이다(군대 가서 다쳤다고 하면 다들 훈련하다 다친 것으로 오해해 줘서 약간 폼이 나긴 하는데 사실은 이등병 때 내무반에서 걸레질 하다가 손목에 너무 힘을 주고 미끄러져 크게 접지른 것이었다). 

아무튼 안 그래도 약한 게 많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항목에 '악력'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되었다는 슬픈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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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샀습니다. 수백 편의 시 중 아무 페이지나 넘기다가 전부터 좋아했던 '남편'이나 '초대받은 시인' 같은 시도 다시 만나고 슬픈 억척 어멈을 그린'찬밥'이라는 시도 만나고 '치마', '내가 한 일', 동백꽃', 칸나' 같은 싱싱한 시들이 발견될 때마다 페이지 윗쪽 귀퉁이를 접어놓고 하다가 마침내 '그 소년'이라는 시를 만났습니다.


시인이 삼성동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만난, 입이 거친 남도의 택시운전사와 얘기를 나누다가 어린 시절 어떤 소녀를 사랑했던 순수한 소년까지 만나게 되는 이야기('그러고는 속으로 이 시를 시대 풍자로 끌고 갈까 그냥 서정시로 갈까 망설이는 순간그에게서 믿을 수 없는 한 소년이 튀어나왔다')를 시로 풀어놓은 내 누님 같은 시인 문정희.


택시라는 곳은 일차적으로 장소 이동의 수단이지만 때로는 정치 토론의 장, 나아가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저도 예전에 '심야택시'에 관한 글을 두 편 쓴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택시운전을 하는 초등학교 동창 한식이한테 들었던 얘기고 또 하나는 야근을 하고 오다가 택시 운전사와 죽이 맞아 인생과 죽음에 대해 수다를 떨었던 내용입니다. 감히 대 시인의 글과 제 글을 나란히 놓는 게 죄스럽긴 하지만 '택시'라는 공통분모가 있는데 못 할건 또 뭐냐, 라는 건방진 마음으로 이어붙여 봅니다.


그 소년 / 문정희


터미널에서 겨우 잡아탄 택시는 더러웠다

삼성동 가자는 말을 듣고도 기사는

쉽게 방향을 잡지 않더니

불붙은 담배를 창밖으로 획 던지며

덤빌 듯이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욕을 하기 시작했다

삼성동에서 생선탕집을 하다가

집세가 두 배로 올라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했다

적의뿐인 그에게 삼성동까지 목숨을 내맡긴 나는

우선 그의 사투리에 묻은 고향에다 안간힘처럼

요즘 말로 코드를 맞춰보았다

그쪽이 고향인 사람과 사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속으로 이 시를 시대 풍자로 끌고 갈까

그냥 서정시로 갈까 망설이는 순간

그에게서 믿을 수 없는 한 소년이 튀어나왔다

한 해 여름 가난한 시골 소년이 쳐다볼 수 없는

서울 여학생을 땡볕처럼 눈부시게 쳐다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가을날 불현듯 그 여학생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마치 기적을 손에 쥔 듯

떨려서 봉투를 쉽게 뜯지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친구 녀석이 획 낚아채서

편지를 시퍼런 강물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밤이 되면 흐르는 불빛 속을 가면서

그때 그 편지가 떠내려가던 시퍼런 급류 앞에서

속으로 통곡하는 소년을 본다고 했다

어느새 당도한 삼성동에 나는 무사히 내렸다

소년의 택시는 그 자리에서 좀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심야택시>


야근을 하고 열두 시 넘어 택시를 타고 오면서 기사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마흔일곱 살에 뒤늦게 결혼을 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자긴 서른넷에 하면서도 늦게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결혼한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며 웃는다. 다시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저희는 아이 없이 살 거니까 둘이서만 재밌게 살다 깨꾸닥 죽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했더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저는 어머니가 삼 년을 꼬박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아파트 한 채를 병원비로 다 쓰고 가셨어요. 근데 그 뒤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이게 복구가 안 되네...'라고 말하는 기사 아저씨. '저는 어머니가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게 정말 가슴 아팠는데' 라고 말하는 나.


이미 택시기사와 손님이라는 관계를 망각한 우리는 죽을 때 돼서 금방 죽는 것도 복이라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얘기가 흘러간다. 아저씨는 행여 자신이 죽기 전에 오래 아프거나 치매 같은 거 걸려서 자식들에게 폐라도 끼칠까봐 그게 걱정이라고 한다. 나도 우리 부부 둘이 재밌게 살다가 같이 죽는 게 바람이라고 소원을 얘기한다.


앞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겐 인도적인 안락사나 자살 같은 방법은 좀 열어놔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데까지 얘기했을 때 택시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 알아서 잘 죽읍시다' 라는 이상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밤 12시 52분이었다.


<심야택시에 두고 내린 옛사랑들>


몇 년 전에 술 마시면서 택시운전하는 초등학교 동창 한식이한테 들은 얘기가 기억난다. 택시를 몰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고 한다. 이런저런 취객은 말할 것도 없고 가끔 요금 안 내려고 문 열리자마자 냅다 튀어나가는 놈들도 많은데 그런 놈들은 그냥 놔둬야 한다고 한다. 쫓아가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염한 자세와 멘트로 기사를 유혹하는 아줌마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노르스름한 잡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얘기는 택시비 대신 주고 갔다는 반지나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긴 이 세상엔 사랑을 시작하는 옵티미스트들도 많지만 사랑을 끝내는 페시미스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아저씨, 저 이거 더 이상 필요없는 물건인데 택시비 대신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손님들은 야밤에 술에 취해 또는 맨정신에 고즈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사연이 붙어있는 금붙이나 보석들을 택시에 두고 내린다고 한다. 그날 그 친구가 보여준 목걸이도 그런 스토리가 내장된 물건이었다. 처음 그가 들고 온 진주목걸이를 보고 놀라던 그의 아내도 이젠 그런 물건들을 가져다 주면 태연하게 처리한다고 한다.


잠도 오지 않는 초여름 심야. 내가 심야택시에 두고 내렸던 기억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 생각하다가, 이런 건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떠올려야 하는 이야긴데...하고 창밖을 힐끔 내다본다. 자야겠다.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출근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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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재개봉한 [프로리다 프로젝트]를 명동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관람했다. 사실 이렇게 슬픈 영화인지는 모르고 봤다. 위악을 떨던 꼬마애 무니가 마지막에 친구 앞에서 울 때는 나도 눈물이 나서 혼났다. 미혼모 핼리와 그의 딸 무니, 그러고 모텔 지배인 바비 역을 맡았던 윌리엄 데포까지 모두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예전에 디즈니랜드를 건설할 때 사업명이었고 지금은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의 이름이라고도 한다.

영화 마지막에 가족과 헤어지는 장면은 올해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떤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다 '사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들까'라며 한숨을 내쉬게 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심란한 영화를 굳이 극장에 와서 돈까지 내고 보는걸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던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아마 이런 거 아닐까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더니 하늘은 파랗고 햇볕 쨍쨍한 목요일 오후가 거짓말처럼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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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말>

최근 학계의 연구 발표에 따르면 꽃들이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꽃들의 말을 번역하는 '꽃말번역기 - 스피킹플라워스'까지 함께 개발했는데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꽃들이 전한 말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지만 유비통신에 따르면 수선화는 "내가 언제 고결과 자만을 얘기했다고 그러냐? 억울하다"라는 심정을 토로했고 국화는 "시대에 뒤떨어지게 정조, 순결이 웬말이냐"며 엄중 항의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개나리는 "내가 희망을 얘기한 것은 맞다"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는데 옆에서 듣고있던 백합이 "나는 순결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는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를 극히 혐오한다. 내 꽃말이 순결이란다. 꽃말협회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이 소동을 전해들은 해당화가 "이기고 지는 일은 다 허무한 것인데 이제 피고 지는 것만 알던 꽃들까지 인간에게 물들어 이기고 지는 것을 논한다"며 개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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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꼴라가 있는 풍경

혜자 2018. 9. 24. 11:54



마당에 나와 빨래를 널고 있는데 아내가 따라 나와 날씨가 너무 좋다고 소리를 지르더니 텃밭에 있는 루꼴라를 딴다. 햇볕은 쨍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소행성으로 이사오길 참 잘했다. 이 여자와 결혼하길 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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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을 어제 오늘 휘리릭 다 읽었다. 이 에세이는 문화웹진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글과 <씨네21>에 기고했던 글, 그리고 1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썼던 짤막한 일기 등을 발췌해서 꾸민 책이다.

제목인 '잘돼가? 무엇이든'은 이경미 감독이 처음 만든 단편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경미 감독이 졸업을 하고 '성공 신화를 이룬 거대 중소기업'에 다니던 시절의 얘기를 각색해서 만든 단편인데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등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었다. 아마 이 작품 때문에 박찬욱 감독과 공동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감독이니까 당연히 영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첫 챕터의 제목이 '실연당하는 게 끔찍할까, 시나리오 쓰는 게 더 끔찍할까?'일 정도로 영화 만드는 고충은 사사건건 크다.  그런데 이경미 감독 글의 미덕은 자신의 이야기를 재료로 자조적인 유머를 잘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소심하거나 이기적인 성격이 많이 드러나고 연애나 사회생활, 영화, 친구 관계 등 각종 분야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실패담들이 자주 등장한다.

우선 아름답고 총명한 여성 감독이 쓴 글답지 않게 똥이나 변비 같은 더러운 얘기가 많이 나오고 고학력 지식인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점이나 운세를 보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가 이 책의 주제인 모양인데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를 만들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얘기들과 [비밀은 없다]를 개봉하고 나서 그 영화 때문에 만난 백인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되는('백인 포비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까지 읽고 나면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쪽으로 조금 괘도를 수정하는 듯도 하다.

아무튼 찌질한 듯하면서도 공감대를 자아내는 글들은 매우 경쾌하면서도 솔직한 면이 있어 어느덧 이경미 감독이라는 캐릭터와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데, 특히 창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계속해서 꾼 꿈들을 일기로 기록한다든지 대작가의 글을 읽고 절망하는 대목 등이 특히 공감감다.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아다. (박완서)

아이 씨, 어떡하지.

2005. 05.12


뒷부분엔 평소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틈만 나면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엄마 얘기, KBS <동물의 세계>에서 "짝짓기를 합니다" 같은 나레이션을 했던 유명한 성우인 아빠 얘기, 언니와 심하게 싸우지만 결국 이 책의 일러스트를 맡아주었던 여동생 얘기 등도 재미있게 펼쳐진다. 

책이 많이 팔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도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글솜씨에 잘난 척하지 않는 마이너한 감성이 독자들을 끌어들였으리라. 책도 예쁘게 나왔다. 추천한다. 서점 가판대에 누워서 '괜찮아, 그냥 너 생긴 대로 살아' 라거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는데 안 그래서 차암 다행이야'라고 외치는 설탕물 같은 에세이들보다 열 배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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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건데
오랜만에 여기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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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356796


저희 회사가 찍은 첨단 블랙박스 '아이나비 커넥티드' 광고가 온에어되었습니다. 

아이디어 내고 카피 쓸 땐 열심히 했는데 정작 강소라 씨 촬영할 땐 바빠서 촬영장에 못 갔네요. 그러나 메시지도 분명하게 전달되고 전체적으로 광고가 깔끔하게 잘 나와서 기쁩니다. 

주차장에서 누가 접촉사고를 내면 다른 곳에 있는 차 주인에게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정보가 전달되는 첨단 제품입니다. 저도 차를 사게되면 이거 달아야겠는데요? 제품력 좋으니까 많이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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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보고 재밌으니 한 번 보시라고만 했는데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러고 끝나면 안 될 것 같아 매우 간단하게라도 리뷰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니까 이건 영화를 한 명이라도 더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는 '낚시성' 글입니다. 

왜 이렇게 흥분하냐 하면 이 영화는 우리가 예고편을 보면서 가졌던 나쁜 기대들을 배반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나쁜 기대냐. 제목에서 풍기는 아마추어 같은 느낌, 성의만 넘치는 독립영화일 것 같은 느낌, 카메라 한 대 가지고 조지는 어설픈 일인칭 시점일 것 같은 느낌. 네, 맞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 돈 300만 엔의 터무니 없는 제작비로 완성된 인디영화 맞습니다. 그러나 1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지만 점점 입소문이 커져 결국 각종 국제영화대회의 상들을 휩쓴 최고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2차세계대전 때 군수공장으로 쓰였던 건물 안에서 좀비 영화를 찍던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진짜 좀비를 만나 고생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37분의 원컷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까지 올라가고 나면 이 영화를 찍기 전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발단은 방송국에서 좀비물을 찍는 영화인들의 고군분투를 생방송으로, 그것도 원컷으로 보여준다는 기획안입니다. 기획안부터 워낙 황당하다보니 아무도 안 할 것 같아 뭐든지 대충대충 찍는 것으로 우명한 어느 퇴물 감독에게 기회가 돌아간 거죠.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기획이라며 이 감독 역시 거절을 하지만 자신처럼 영화 일을 시작한 딸이 이 좀비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아이돌 가수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승락을 합니다. 그러면서 우여곡절 끝에 감독과 배우 출신인 감독의 부인까지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영화를 찍는 장면들이 보여지면서 왜 1부의 장면들이 진지하면서도 약간 어설픈 구석들이 있었는지 밝혀지는데, 이 복선과 전복의 아이디어들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생방송 좀비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태프들의 야단법석 코미디를 그린 영화.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될 수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엔 그런 웃음 포인트 말고도 찡한 감동과 페이소스까지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뒤늦게 전 세계의 극찬을 받고 다시 개봉이 된 것이겠죠. 우리나라에서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다가 다시 개봉이 된 케이스랍니다. 상영하는 극장이 많지 않으니 성의를 갖고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안 보면 손해인 영화니까요. 맨 마지막에 지미집이 망가져 고공촬영을 못하게 되었을 때 이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호신술에 대한 복선도...음, 입이 간지러워 못견디겠습니다. 그냥 , 얼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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