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윈드 리버]를 감상함으로써 헐리우드에서 떠오르는 배우 출신의 각본가 테일러 쉐리던의 국경 삼부작을 모두 본 셈이다.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와 [로스트 인 더스트] 그리고 [윈드 리버]까지 탁월한 설정과 각본을 보여준 테일러 쉐리던. 오늘 본 영화도 참 좋다. 잔재주 없이 묵직하게 이어지는 진솔한 호흡과 배우들의 무심한 듯한 연기가 조화를 이룬다. 

셋 다 좋은데 굳이 베스트를 꼽으라고 하면 [로스트 인 더스트]다. 농장을 지키기 위해 소량의 은행강도 행각을 연이어 벌이는 형제의 아이디어가 좋았고 황량한 텍사스였지만 라스트 씬이 세 영화 중 그나마 산뜻했다. 피곤해서 나중에 볼까 하다가 꾹 참고 끝까지 봤다. [체실비치에서] 이후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는데 다 보고 나니 뿌듯하다. 캔맥주나 한 잔 마시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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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책방 '디어 마이 블루'에서 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다가 갑자기 느낀 점을 쓰고 싶어서 포스트잇을 꺼냈다. 이건 독후감이 아니라 독중메모라고 해야 하나? 암튼 우발적인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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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능을 치룬 수험생의 부모이기도 한 페친 한 분께서 '두 아이, 세 번 모두 시험장에 혼자 보낸 이야기'를 올렸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아이가 나오면 껴안고 울고 하는 부모도 있지만 이 아버지는 '담담한 태도로 다른 날과 똑같이 다녀 와, 라고만 했던 게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으로 존중하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아이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나는 거기에 "훌륭한 부모이십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나는 자식이 없지만 대입 시험 보는 날 교문 앞에서 추위를 참아가며 하루 종일 기다리는 부모에게 숨어 있는 '보상심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자식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자식의 인생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식이 가령 법대나 상대를 졸업한 뒤 엉뚱하게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서양도 똑같다. '부모에게 자신이 게이라는 걸 밝힐 배짱이 없다면 예술가가 되겠다는 희망은 애저녁에 포기하는 게 낫다'라고 말한 작가가 누구였더라) 그 부모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딴 소릴 해?' 라고 울부짖을 게 뻔하고 마음에 차지 않는 여자를 데려오면 나중에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여우 같은 년이 들어와서 우리 집안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조질 게 백 퍼센트에 가깝게 때문이다. 살다가 바람이 나거나 의견 충돌로 이혼하는 커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는 원망이 쏟아질 것이다. 난 사실 그게 좀 무섭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구속과 억압이 얼마나 많은가. 아, 수능 얘기하다가 흘러흘러 이혼 얘기라니. 금요일인데 반주로 소주를한 병만 마시고 그냥 들어와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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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새길까?" 
"같이 죽자, 어때?" 
"좋네. 같이 죽자!" 

내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다고 했더니 별 모양의 도자기로 유명한 '나니쇼 공방'의 창시자이자 후배인 란영에게서 결혼선물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공방에서 굽는 머그잔에 란영 특유의 멋진 캘리그래피로 문구를 새겨주는데 그 내용을 미리 주문할 수 있다고 하길래 '같이 죽자'와 '늦은 연애는 없다'로 해달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태어난 날은 다르더라도 죽는 날은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했으므로 '같이 죽자'라는 문장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얼마 후 정말 그 글씨들이 새겨진 머그잔과 시계, 그리고 스마트폰용 도자기 스피커 등이 도착했다.  물론 도자기 스피커는 조심성 없는 내가 떨어뜨려서 깨져버렸지만 소주잔과 글씨가 새겨진 머그잔, 시계 등은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결혼한지 5년이 지났다. 

아무런 계획 없이 졸지에 11월 한 달 휴가를 쓰게 된 나는 아내의 배려로 혼자 제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출판사 북스피어에서 기획한 '제주유랑단'이라는 북콘서트 겸 독립책방 순례 여행길에 참석하는 게 주 목적이지만 행사가 끝난 뒤엔 나 혼자 나니와 우동 부부가 운영하는 렌트 하우스 '한량한림'에 묵기로 일정을 잡았던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이박삼일 간의 일정이 끝나고 일요일 낮에 한림읍에 있는 란영의 집 근처로 와 연락을 했더니 두 사람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이 부부는 일산에 있는 공방을 여전히 운영하면서 제주에서 사는 생활을 일 년 반째 이어오고 있었다.  트렁크와 배낭을 들고 매고 나타난 나를 보고 란영과 우동 씨가 반가워했다. 한량한림은 '한 달살이'를 원칙으로 하는 게스트하우스라고 생각했었는데 란영의 말을 들어보나 기간이든 뭐든 특별한 규칙은 없는 '렌트 하우스'라고 했다. 아무튼 이 집은  주인들의 숙소와 손님동이 나란히 서 있는 건물이었고 마침 장기 예약이 차지 않아서 내가 손님동에 묵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넓은 집을 나 혼자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쾌적하고 좋은 숙소를 받았다. 소파와 식탁이 조화를  이룬 거실은 천정이 높았고 식탁 옆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또다른 침실 두 개가 있었다. 어느 침실을 써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데나 쓰세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는 한 가족이 쓰는 집인데 지금은 나 하나밖에 없으니 당연한 얘기이긴 했다. 란영은 주인집이나 손님집이나 문을 잠그지 않으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한다. 첫날 저녁은 란영이 무명서점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한다고 해서 우동 씨와 내가 먼저 저녁을 먹었다. 우동 씨는 평소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나 문어 등을 수렵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는데 덕분에 첫 날 저녁에 냉방고에 보관되어 있던 문어와 한치 숙회에 칡주를 마실 수 있었다. 뒤늦게 란영이 한라산 소주를 사오기도 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환대를 받을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뻔뻔하게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까지 혼자 놀다보면 란영이나 우동 씨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럼 나는 아침을 먹으러 간다. 요즘 위염으로 고생하는 란영 때문에 식탁은 부담이 적고 신선한 식재료들로만 채워진다. 덕분에 나도 미니멀한 자연식단으로 매 끼니를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내 숙소로 돌아와 놀고 있노라면 제주도 구경을 시켜줄 테니 나오라는 연락이 또 온다. 나는 또 달려나가 그들의 차를 타고 제주 어딘가를 돌아다닌다. 그래도 내 생활은 자유롭기 그지없다. 어제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고 하다가 란영과 함께 곶자왈에 갔었다. 한낮인데도 나무와 덩쿨이 어우러져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원시림을 걷는 기분은 각별했다. 함께 걸으며 란영이 오래 전 여행길에서 우동 씨 형제와 여행 파트너로 만난 이야기, 인사를 나눈지 한 달만에 외국 여행지에서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열 살 아래 신랑을 맞을 결심을 한 이야기 등을 들었다. 나이는 아래로 차이가 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기보다 더 성숙한 인간인 남자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삶을 만든 것이리라. 란영은 그러면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 숲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줬고 아름드리 나무들을 감싼 넝쿨들을 가리키며 나무와 덩쿨들의 보이지 않는 사투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나무들은 덩쿨이  마음대로 자라는 걸 막기 위해 다른 나무보다 더 많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꾀를 낸다는 것이었다. 곧자왈이에서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신기한 이야기였다. 이 곳은 자신이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오면 늘 좋은 기운을 전해 준다고 하며 나에게도 심호흡을 크게 하고 숲의 기운을 받아보라고 했다.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하고 자유를 갈망하던 란영 부부는 판에 박힌 서울생활에 싫증을 느껴 여기저기를 노마드처럼 돌아다니다가 이런저런 연이 닿아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을 하고 살지는 정확히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량한림'이라는 렌트 하우스를 만들고 에어비앤비에 등록한 뒤 한 달살이 하는 사람들을 맞기 시작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 말고도 가끔은 섬에서 필요로 하는 일들을 과외로 하며 돈을 벌기도 하는데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없단다. 이들 뿐 아니라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뭔가를 하는 보람보다는 뭔가를 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한 이들은 '앞으로 뭐해 먹고 살려구?' 라는 질문에서 하루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에 비하면 확실히 특별한 존재다. 

아침을 먹으며 내가 오늘은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 놀았다고 했더니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느냐고 묻길래 언제든지 졸리면 다시 잘 수 있기 때문, 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한 달에 삼주일은 제주 생활을 하고 일주일은 서울에서 보내기로 했지만 너무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엔 가지 않는 것처럼 나도 여행지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했더니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와서 선배처럼 제주도 관광지를 전혀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라는 말도 하며 웃었다. 생각해 보면 '하기 싫은 걸 안 할 자유'라는 컨셉이 그들과 나를 묶어주는 지점이었다. 다만 그게 나에게는 이박삼일 간의 꿈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일 년 반 전부터 시작해 앞으로 먼 나날까지 계속 된다는 게 큰 차이였다. 공항으로 가기 전 두 사람의 권유에 의해 차를 타고 '봄날의 카페'와 GD가 만들었다는 카페까지 가 해안길을 걷고 있노라니 화요일 오전에 제주 앞바다에 서 있는 내가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고마운 한량 부부다. 

부록) 제주도에서는 극장에 가는 게 큰 행사이므로 대부분의 영화는 다운을 받아서 본다고 한다. 곶자왈에서 내려오면서 두런두런 영화 얘기를 좀 했더니 란영이 요즘 볼 만한 작품들을 좀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내가 본 영화 중 몇 편을 꼽아보았다. 

어느 가족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서치
레이디 버드
킬링 디어
체실비치에서
여배우는 오늘도
혹성탈출:종의 기원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러스트 앤 본
류조와 일곱 명의 졸개들
태풍이 지나가고
스포트라이트
팬텀 쓰레드
쓰리 빌보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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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간다고 했다. 5월 말에 <남자요리교실>에서 나에게 '데리야끼 스테이크 요리' 특별강의를 해주셨던 김승용 선생이 너무도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나를 만나셨던 게 마지막 수업이었다고 하니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비극적인 부음이었다. 정정하던 분이 그렇게 갑자기 가시다니. 나도 함께 가서 조문을 하고 싶었지만 회사에 급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5년 당시 우리나라는 메르스가 창궐하는 중이었고 믿었던 삼성병원과 서울대병원이 그 전염병의 주요 확산지라는 게 뒤늦게 밝혀지면서 모두들 분노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 혼자 그런 곳에 보내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성격상 말린다고 안 갈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갈 때 가더라도 마스크라도 단단히 하라고 당부를 할 뿐이었다. 

회사 회의실에서 메르스 관련 뉴스를 보다가 서울대병원이 스쳐 지나가길래 "어, 아내도 지금 저기 문상 가 있는데..."라고 했더니 같이 일하던 고재영 실장님이 "진짜요? 지금 당장 나오라고 하세요. 큰일 나요! 당장이요!"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늘 천하태평이던 고 실장님이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건 처음 보았다.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얼른 거기서 나와. 응, 글쎄 빨리 나오라니까!" 

나하고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가 구체적으로 내 삶에 개입을 시도한 날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착한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덤비는 무서운 전염병 메르스. 마스크도 하지 않고 병원을 활보하던 아내는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곧 메르스를 잊었다. 정부 당국에서 이제 다 완치 되었다고 했으니까. 우리나라는  메르스 안전국가라고 했으니까. 그러다가 2018년 가을 김탁환의 소설 [살아야겠다]를 통해 메르스와 다시 만났다. 이번엔 메르스가 아니라 '메르스의 진실'과 만났다. 

"2015년 여름, 한반도를 휩쓸었던 메르스는 186명의 확진 환자와 38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런 간단한 기사문이나 뉴스 한 꼭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숫자로만 표시된 환자와 피해자들에게선 아무런 고통이나 애환이 느껴지지 않는다. 메르스라는 전염병도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 그게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일단 질병이란 게 그렇다. 걸렸거나 안 걸렸거나 딱 두 가지 뿐이다. 걸린 사람은 왜 하필 나한테 이런 불행이 온 걸꺼 억울해 하고 안 걸린 사람은 어휴, 다행이다 하고는 곧장 외면하는 비정한 세계. 그 중간에 서서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공감과 의심을 불러 일으켜주는 존재가 바로 소설가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고 그게 바로 작가의 효용 중 하나라고 김탁환은 믿고있는 듯하다. 

[살아야겠다]는 관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2년 동안 메르스 완치자와 유가족을 인터뷰하고 당시 벌어진 일을 촘촘하게 취재한 뒤 에두르지 않고 메르스가 창궐하고 있는 병원과 병실 한가운데로 돌진한다. 그리고 김석주와 길동화, 이첫꽃송이처럼 피와 살을 가진, 방금 전까지 펄펄 살아있던 사람들의 얘기 속으로 들어간다. '번호'가 아닌 '사람'을 찾고자 했던 작가 김탁환이 르포 형식을 포기하고 '피해자들의 서사'가 있는 소설로 구성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첫꽃송이의 직장 상사인 선우 기자의 입을 통해 이렇게 밝힌다. 

"전쟁이든 참사든 전염병이든, 생사를 넘나드는 사건의 기록일수록 어떤 그룹의 서사인지가 명확해야 해. 이대로 간다면 메르스 피해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숫자로만 남을 거야. 통계 자료로만 호출될 거고. 피해자 각자가 어떤  개성을 지녔고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상처를 입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사람 됨됨이를 기록해야 해. 그리고 피해자들의 서사는 지구 전체로 확산해야 해."  

선우 기자의 말대로 그들은 어떤 개성을 지녔고 어떤 꿈을 꾸던 사람들이었나. 치과의사였던 김석주는 인간의 고통을 줄이거나 없애고 싶어서 뒤늦게 의사가 되었지만 어느날 림프종 환자가 되었고 결국 그걸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왔다가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출판사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베테랑 직원 길동화는 책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중년 여성인데 여동생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왔다가 메르스  환자가 되었다. 방송국 수습기자인 이첫꽃송이는 병원에 와서 죽음에 이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다가 메르스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유난히 우애가 깊었던 그녀의 친척들도 그 장례식에 조문을 오는 바람에 단체로 메르스에 걸려 목숨을 읽거나 큰 봉변을 당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머물렀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첫 번째는 운이 없어서다. 전염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거나 작동되지 않아서다. 사실 우리는 두 번째에 더 분노해야 한다. 평소엔 놀다가도 위기가 오면 우리를 보호하라고 나라에 세금도 내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거니까. 그런데 어이없게도 사람들은 두 번째보다 첫 번째에 더 쉽게 기댄다. 그래, 운이 안 좋았던 거지. 다행히 나나 우리 가족은 괜찮았지만. 안타까워... 사람이 운에 인생을 맡기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인데. 적어도 문명화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회에서는. 그런데 정부나 관계 당국에선 메르스를 어떻게 대처했던가. 초동 대처도 늦었고 제대로 된 콘트롤타워도 없었다. 감염된 사람은 이름 대신 번호로 호칭되었고 사람이라기보다는 '병균덩어리'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감염자가 다른 사람에게 병을 전염시킨다는 것 때문에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인식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환자들은 이미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로부터 감염되니까 언뜻 들으면 옳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이건 정말 비인간적인 의견이다. 이런 생각들이 많은 메르스 환자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정부나 기관이 피해자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이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해 이첫꽃송이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말은 잘못된 인식이며 '몇 명을 감염시켰든 메르스 환자는 모두 피해자'라고 울부짖는다. 바로 그런 잘못된 인식 때문에 김석주는 격리변동에서 림프종 환자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메르스 발병자로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전염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보호장구로 중무장을 하고 집으로 찾아온 병원 직원을 보고 누구냐 묻는 다섯 살 우람이의 질문에 "아빠 친구 중에 안드로메다 우주인이 있는데..."라고 거짓말을 하는 남영아의 모습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살아야겠다'라는 김석주의 간절한 희망과 '살려내겠다'라는 남영아의 처절한 저항이 우주복보다 더 두텁고 단단한 이 사회의 무관심과 두려움에 의해 사그러지고 마는 장면이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말한다. 

김탁환은 이 소설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포기할 뻔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큰 시각이 존재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우왕좌왕, 뒤늦게 형식적인 백서나 내놓을 게 뻔했고 감염자나 그가족들도 매우 개별적이고 비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이 재난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다행히 의사이자 피해자였던 김석주와 간호사 출신의 보호자 남영아 부부가 나타나 그들의 기록과 일기를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함으로써 소설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소설을 잘 써서라기보다는 소설 속에 나열된 팩트들이 너무 답답하고 슬프고 화가 나서 나오는 눈물이었다(라고 하긴 하지만 이건 결국 소설가가 소설을 잘 써서,라는 도돌이표가 된다). 김석주는 억울하게 죽었고 길동화는 잘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 반쪽난 폐를 움켜쥔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이첫꽃송이 같은 경우에만 겨우 정상적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메르스 환자였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차 피해를 두려워하며 신분을 숨긴채 살아가고 있는데 국가는 아직까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작가는 책 뒷쪽에 실린 '감사의 글'에서 메르스 관련 재판이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썼다. 그 재판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메르스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그 배에 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안주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 앞으로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해결책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메르스에 대한 소설을 넘어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묻는 질의서나 다름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메르스가 내 문제이기도 했음을 인식하게 하고 뭔가 변화를 원하게 만드는 것, '나는 메르스에 걸리지 않았으니까'라는 허망한 안심이 얼마나 부질 없는것인지를 일깨우는 것, 그걸 소설만큼 잘 할 수 있는 장르가 또 있을까? 그제 전철 안에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눈물을 삼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 탄 사람들 모두 메르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냥 한 때 있었던 전염병이고 이미 다 끝난 거라고만 생각하겠지. 나도 [살아야겠다]를 읽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필요한 거다. 김탁환 작가는 그래서 고마운 사람이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탁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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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하고 불렀더니

혜자 2018. 11. 6. 17:49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에게 잠깐 가서 인사를 하고 나오다 다시 돌아가 여보, 하고 부르니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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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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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CGV압구정 안성기관에서 이언 매큐언 원작의 영화 [체실비치에서]를 관람했다. 서로 사랑하지만 첫날밤 섹스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서로 오해하거나 다른 방안을 내놓거나 하다가 결국 결혼 여섯 시간만에 헤어진 성급한 젊은 남녀의 이야기. 배경이 1962년도 영국이긴 하지만 그래도 첫 섹스 때문에 헤어진다는 게(그것도 딱 한 번 시도해보고) 그리 와닿진 않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인생이라는 건 정말 생각지도 않던 부분에서 어긋날 수도 있다는 반증이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섹스 때문에 헤어진다는 다소 마음에 차지 않는 모티브를 이겨내는 것은 이언 매큐언 작가 본인의 훌륭한 각색과 도미닉 쿡의 고급스러운 연출, 그리고 시얼샤 로넌과 빌리 하울의 탁월한 연기다. 특히 시얼샤 로넌의 대사 처리능력과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촬영과 음악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지. 영화를 보고 나와 인터넷을 찾아보니 카메라 감독이 [노예 12년]을 찍은 숀 밥빗이란다. 체실비치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엇갈리는 남녀를 롱숏으로 잡아낸 마지막 장면은 너무 정답같으면서도 참으로 멋지다. 

수십 년 후까지 두 사람을 이어준 척 배리의 음악 같은 팝송도 등장하지만 시얼샤 로넌이 바아올린 연주자인만큼 대부분 바흐나 모짜르트 등의 현악이 화면 전체를 휘감는다. 45년이 지난 후 시얼샤 로넌의 쿼텟 은퇴공연 장면은 지금보다 좀 덜 신파적으로 처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품 역시 히트한 중편소설을 영화화한 케이스다. 훌륭하게 만들었지만 소설에서만 가능한 섬세한 인물의 내면 묘사까지는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원작 소설을 꼭 한 번 찾아 읽어봐야지, 라고 결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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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기쁨 -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요즘 출퇴근길에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라는 반어법적인 제목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2부 첫머리에 말썽쟁이 딸 메리 때문에 장갑 공장을 찾아온 비키라는 여자에게 스위드가 장갑 생산 공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무두질 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가죽 무역 이야기, 그리고 장갑 사업의 역사를 거쳐 재단 재봉작업에 대한 아주 세세한 공정과 일화까지 장장 18페이지에 걸쳐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 스펙터클한 묘사는소설가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하나의 교본이나 다름없다.  

필립 로스는 이 한 장면을 쓰기 위해 가죽과 장갑 생산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섭렵했을까. 책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전철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무릇 소설을 읽는 쾌감은 이런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카메라로 보여주고 스토리라인으로 알려주는 것만으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서술의 세계. 필립 로스의 전작을 다 구해서 읽고싶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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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친구 신청자 명단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이름 때문에 눈쌀을 찌푸릴 때가 있다. 일단 도저히 사람 이름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닉네임이 분명한 단어나 문장 뒤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도 탐탁지 않지만 그보다는 너무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난 이름의 부담감 때문에 선뜻 친구로 받아들이기 망설여진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책을 쓴 작가나 방송에 나오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김구라, 같은 이름은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한다는 것을 '구라' 라는 속어로 치환한 것인데 처음엔 정말 듣기 거북했다(지금은 워낙 오래 되기도 했고 김구라라는 개인의  진정성이 많이 인식되어서 괜찮아졌지만). 마찬가지로 이름에 '글'이나 '작가'가 들어간 경우도 안쓰럽다. 내가 그런 불만을 토로했더니 같이 술을 마시던 한 선배는 "그 사람은 얼마나 작가가 되고 싶었으면 그랬겠어?"라고 반문했다. 

딴에는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 작가가 되고 싶으면 글을 열심히 쓸 것이지 왜 이름으로 배수진을 치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추리소설 작가 에드거 앨런 포우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일본어를 가지고 그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물론 일본 추리문학엔 '에도가와 란포상'이라는 게 있을 정도로 그 사람 역시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지만(그의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으니 이런 글을 쓰는 나도 떳떳하진 못하다)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름은 그렇게 지었는데 막상 뛰어난 추리소설가가 못 되었으면 어쩔 뻔했느냔 말이다.이름은 영혼의 문신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김철수, 이영아 같은 이름이 자연스럽게 몸에 난 점이나 무늬라면 '에도가와 란포' 같은 예명은 난 이런 사람이 될 테야, 하고 온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문신은 쉽게 눈에 띄고 한 번 새기면 쉽게 지우기 힘들다.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어떤 음악 평론가가 나와 새로 생긴 헤비메틀 그룹(이름이 로즈였던가) 멤버 전원이 결속을 과시하기 위해 온몸에 장미 문신을 새겼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걱정은 '장미 문신은 가까이서 보면 아름답지만 멀리서 보면 매우 기괴하다. 게다가 밴드는 걸핏하면 깨지기 쉬운데 탈퇴 후 그 문신은 어떡할 것인지 걱정된다' 정도였던 것 같다. 지금 그 멤버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조니 뎁의 어깨에도 문신을 지운 흔적이 있다. 위노나 라이더와 살 때 새겼던 '위노나 포에버'라는 글자였다. 사람의 마음이나 처지는 쉽게 변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절대로'라는 부사다, 라는 농담도 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이름에까지 그렇게 명백한 의도를 넣고 살아야 하나. 그냥 좀 설렁설렁 사는 건 정녕 죄악이란 말인가. 일 때문에 일찍 나온 주제에 엉뚱한 생각에 젖어 자판 앞에 달라붙어 있는 나는 또 뭐냔 말이다. 어서 일이나 하자.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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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희한한 일이 있었다. 난데없이 해외 결제로 100만 원이 넘게 빠져나가게 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뜬 것이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황당한 사건이라 아침에 출근해서 페이스북 담벼락에 사연을 남겨놨었다. - 기록 차원으로 여기에도 다시 한 번 남긴다. 왜? 그냥. (또는 저 이렇게 멍청해요, 라는 자조적인 자랑) 


아내는 일이 있어서 신새벽에 나가고 나 혼자 좀 더 자다가 여섯 시에 깨보니 그새 문자메시지가 세 개나 떠 있었다. 내가 해외에서 물품을 구입했는데 금액이 무려 백십만 원이란다. 어엇. 기가 막혔다. 해외라고는 여름에 일본에 잠깐 다녀온 게 전부인데 거기서 내가 뭘 얼마나 샀단 말인가. 더구나 날짜가 오늘 새벽 한 시 삼십육분이었다. 내가 무슨 수로 새벽에 해외로 날아가 물건을 산 뒤 곧바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다시 돌아와 자고 있단 말인가. 몸은 이렇게 말짱한데.


잠이 확 깼다. 아, 왜 나한텐 맨날 이런 일만 일어나는거야. 통장에서 백만 원이 빠져나가면 이번 달엔 진짜 심각한데... 누군가 해외에서 장난질을 친 모양이었다. 범인은 아이튠즈를 통해 내 돈을 빼내간 것이 확실했다. 내 마음을 읽기라고 한 것처럼 결제금액 표시 바로 밑엔 '해외원화결제시 가맹점이 추가수수료를 가산할 수 있어 현지통화 거래가 유리합니다.'라는 안내문까지 적혀 있었다.


그렇지. 이런 건 당장 전화를 해야 해. 아침 6시 15분에 우리카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안내방송에 따라 휴대폰 번호와 주민번호 앞자리를 누르고 상담원과 연결이 되었다.


상담 :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성준 : 카드사용내역을 보고 놀라서 전화 드렸는데요.


상담 : 네.

성준 : 엉뚱한 게 해외결제가 됐다고 나와서...


상담 : 잠깐 사용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Pause)


상담 : 아이튠즈 사용하셨네요

성준 : 네. 그런데 결제금액이요...


상담 : 혹시 아이클라우드 사용하시나요?

성준 : 네. 그런데 결제금액이 어떻게 백만 원이 넘게...


상담 : 천백 원인데요, 고객님?

성준 : 네?


상담 : 천백 원이요.

아, 지난 달부터 원화로 표시되고 있습니다.

성준 : 아...


자세히 보니 KRW라는 알파벳이 선명했고 '1,100'이라는 글자 뒤에 있는 건 콤마가 아니라 점이었다. 그러니까 1,100.00 원이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카드회사가 나쁘다. 이 자식들이 사람 헷갈리게 뒤에다 .00은 왜 붙이는 거야?


상담 : 고객님, 더 도와 드릴 건 없으십니까?

성준 : 네. 죄송합니다. 아, 고맙습니다.


상담 : 아, 아닙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성준 : 네. 감사합니다.

(Pause)


상담 : 고객님, 전화를 먼저 끊어주셔야 합니다.

성준 : 아, 네.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정말 화가 난다. 새벽에 일어나 바로 스마트폰을 보면 점이나 뒤에 붙은 '00' 같은 숫자는 잘 안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침부터 이런 시련을 주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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