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을 조조로 봤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비행기가 허드슨강으로 비상착륙 하기 전에 여승무원들이 침착하게 매뉴얼에 따라 커다란 목소리로 '머리 숙이고! 몸은 낮추고!'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장면부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났다. 그래, 그냥 저렇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승객들이 물 위에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양쪽 날개 위에 가지런히 서 있다가 한 명씩 구조되는 모습을 보며서도 눈물이 났다. 아니, 그냥 물에 반쯤 잠긴 비행기 선체를 보면서(사실은 아, 세월호 때랑 똑같네, 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을 때부터)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아침에 출퇴근용 보트 선원들이 달려와 사람들을 구조하는 장면에서도, 지나가던 헬기가 관제센터와 무전을 주고받고 구조작업을 펼치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나고 울화통이 터졌다. 아, 저 나라와 이 나라는 얼마나 다른가. 155명 전원이 구조되었고 시작부터끝까지 모두 24분만의 일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연출력에 대해 새삼 더 보탤 말이 없다. 그냥 담백하게 한 시간반의 러닝터임 안에 사고와 반성과 해야할 일과 가족애와 정의로움과 떳떳함을 모두 담아냈다. 기장과 부기장이 공청회 중간에 잠깐 나와 서로 나누는 짧은 대화 중 "We did our job." 한 줄엔 그 떳떳함이 가득 차 있다. 옆자리를 보니 아내도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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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작가나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고 이 작가가 그랬다. 예전에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소설가 김훈이 추천한 50권 중 이 책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느낌은 '김훈은 후배 작가들의 책도 참 많이 찾아 읽는구나' 정도였다. 그러면서 책 제목을 메모까지 해놨었는데 왜 정작 찾아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름이나 그 작가가 지닌 분위기가 지나치게 ‘운동권스럽지 않나’ 하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생각을  혼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선옥은 왠지 뭔가 진지할 것 같고 거룩할 것 같고 게다가 작가의 고향이 전라남도이니 왠지 묵직한 주제의식이나 치열한 의무감을 가졌을 것만 같고…그래서 자꾸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뤘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서점에서 만났을 때 수채화로 그려진 표지가 너무 ‘나이브’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아, 이 정도면 병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이비인후과 갔다가 들른 강남역 알라딘에서 이 책을 다시 보고는 ‘책값도 삼천 원밖에 안 하는데 어디 사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집어들었다. 그러나 웬걸, 책을 읽기 막상 시작하자마자 너무 재미있어서 출퇴근길과 휴일 지방 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쓸 데 없는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려주는 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1980년대 광주 언저리에 살던 파릇파릇한 청춘들의 이야기인데 주인공은 해금이라는 여자애다. 해금이 위로는 언니가 셋 있는데 그 이름이 순금이 정금이 영금이다. 할아버지가 비단금(錦) 자를 정해놓고 이래저래 한자를 한 개씩 돌려 이름을 짓다가 네 번째도 또 딸입니다,라는 아들의 소릴 듣고는 “니무랄, 암거나 허라고 혀’라고 화를 내는 바람에 ‘혀금이'가 될 뻔 했는데 그나마 애 아버지가 바다 해(海)자를 쓰는 바람에 해금이가 되었고 그 다음에 태어난 막내딸은 드디어 '비단 금'자를 벗어나 영미가 되는 바람에 해금이만 가장 억울하게 되었다는 조금 웃기는 사연이다. 해금이는 예쁘지도 공부를 썩 잘하지도 않지만 속이 깊고 착한 아이였다. 이 이야기는 해금이와 그의 친구인 경애, 승희, 정신이, 수경이, 그리고 4.19기념일에 도청 앞에서 우연히 만나 음악실에 가는 바람에 평생 친구가 된 남자애들 승규, 진만이, 태용이, 만영이 들의 ‘청춘스케치’인 것이다. 

어디서나 스무 살 무렵의 이야기에는 늘 피끓는 우정과 연애가 있고 꿈이 아직 뭔지도 모르면서 내지르는 무모한 도전과 좌절, 그리고 희망이 있지만 이들이 있던 곳은 80년대 광주였으니 그 남다르고 슬프고 웃기고 아스라한 사연들이야 오죽하랴. 작가는 하나하나 애정이 가는 친구들의 사연에다 그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얹고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와 쌍욕까지 곳곳에 뿌려서 다 읽고 나면 들큰하면서도 아주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니, 만들어냈다기보다는 들려줬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혹시 작가 친구들의 실제 얘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그들이 방금까지 살았던 것마냥 생생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모두 평범하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자기들이 얼마나 예쁜 나이인지 모르는. 그러다가 광주항쟁 때 날아온 유탄에 경애가 맞아 죽고 이에 충격을 받은 수경이가 자살을 하고 집안꼴이 마음에 안 들어 밖으로 나돌던 승희는 성질 급하게 스무 살에 애를 낳는다. 승희를 좋아했던 진만이는 화를 내고 승희를 진짜로 좋아했던 만영이는 승희의 아이를 거둔다.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던 정신이는 대학을 그만 두고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고 서울대학을 다니며 힉생운동을 하던 승규는 남산으로 끌려가 죽도록 맞은 뒤 군대로 끌려갔다가 자살을 한다. 자살을 할 애가 절대로 아닌데. 그 중간에 해금이도 '나타나기만 하면 세상이 환해지는’ 이환과의 첫사랑을 경험하고.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눈부시도록 아름답지만 또한 얼마나 불안정하고 가뭇없던가. 살아남은 아이들끼리 모여 비명에 간 친구 승규의 장례를 치루는 장면이 마지막이간 하지만 이상하게 슬프지 않다. 그들이 방금 아주 힘든 인생의 쓴맛을  봤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꽃향기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뚜벅뚜벅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앞부분에 발췌해 놓은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일부분은 이 소설 제목의 연유를 밝히는 것과 동시에 해금이를 비롯한 주인공들에게 대한 작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것으로 읽힌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당신이 가장 예뻤던 때는 언제였던가.그 때 당신 곁에는 누가 있었던가.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무 불행했고 
나는 너무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_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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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7일]을 읽으면서 맨 처음 드는 생각은 '뭐 이런 우수한 소설가가 다 있나' 였다. 개성 강한 캐릭터가 떡하니 받쳐주니 웬만한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플롯이 좋으니 극의 흐름에 치우침이 없다. 게다가 적당한 교양과 블랙 유머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이 정도면 정말 장인의 경지 아닌가. 이사카 코타로는 '사신 치바'라는 쿨한 캐릭터를 단편집에서 탄생시킨 뒤 8년 만에 장편으로 그 폭을 넓힘으로써 자신의 소설이 '엔터테인먼트'로서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치바는 정해진 대상을 일주일 동안 관찰한 뒤 그가 죽어 저승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보류할 것인지 결정하는 사신이다. 즉, 저승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보험조사원 같은 신분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조사 대상 야마노베는 젊어서 데뷰하고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소설가인데 일 년 전 이웃에 사는 사이코패스에게 딸을 살해당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 부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살해용의자는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고 이에 격분한 야마노베 부부는 개인적인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당연히 인간에 대해서는 중립적일 수밖에 없는 치바지만 이번엔 그들의 삶에 개입해서 함께 움직이기로 한다. 물론 복수를 도와주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치바는 다른 사신들이 이승에 와서 일주일 중 딱 하루만 일하고 나머지 엿새를 빈둥대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축이라 '나라도 일을 열심히 하자'는 취지에서 그러는 것이다. 

사신 치바가 일을 하는 동안 그 주변은 늘 비가 온다는 설정이다. 업무를 위해 사람들 앞에서 인간인 척하는 사신들은 사실 아프지도 않고 배가 고프거나 졸립지도 않다. 그런데 자신이 사신이라는 걸 밝히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기므로 적당히 배고픈 척, 졸린 척을 하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스멀스멀 재미가 피어난다. 더구나 치바는 교통체증을 싫어하고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음악을 들으려 노력하고 실제로 인간이 만든 것 중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을 도와주는 경우에도 사실은 큰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일을 빨리 해결하고 음악을 듣고 싶어서'인 것이다. 인간의 말을 잘 이해하지만 때로는 '데스크'가 편집장인지 책상인지 헷갈리는 치바. 그는 결국 저수지에서 야마노베 부부를 끝까지 돕게 되지만 자신은 한 일이 없고 '그건 부력이 한 일'이라고 눙을 친다(그래서 이 책의 원제도 '死神の浮力'이다). 치바의 이런 시종일관 엉뚱하면서도 쿨한 태도는 딸이 살해당한 뒤 웃을 일이 전혀 없었던 작가 부부에게 의외의 웃음을 선물하는 포인트가 된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와 인연이 잘 이어지지 않았는데 그건 [집오리와 야생오리의 코인로커]라는 소설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은 읽으려고 하면 무슨 일이 생겨서 그냥 책장을 덮게 되고 그 다음에 수십 페이지 읽었는데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읽히지 않아서 집어던지고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책도 인연이란 게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작가의 책을 읽는 걸 포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이원흥CD라는 분이 '최인아책방'에 추천도서들을 제시할 때 좋은 책이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글을 읽고 사서 읽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제 나도 이사카 코타로의 팬이 되었으므로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나 [중력 삐에로], [마왕] 같은 소설들을 계속 사서 읽을 것이다. 

살인사건이 있고, 죽음을 앞둔 작가가 있고 그를 데려가야 하는 사신이 있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거기에 싸이코패스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함께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도드라지는 '인간의 길'도 따뜻한 국물처럼 담겨져 있다. 어떤가. 한 번 연휴에 한 번 읽어볼 만 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나라 소설 중에도 비슷한 소설이 있다.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이다. 그 책도 이사카 코타로 작품 못지 않게 재미 있다. 양심을 걸고 둘 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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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라고 하는 한심하고 야비한 방송사를 그래도 시청자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한도전’이나 ‘복면가왕'과 같은 킬러 콘텐츠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PD수첩’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황우석 사건 등등에 대한 정권의 입맛을 해치는 취재와 방송 이후 PD수첩의 주요 PD들이 좌천되고 해직되었다. 뉴스타파로 간 최승호 PD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그는 뉴스타파에서 일하면서 만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이상한 사건을 한 번 깊게 파보기로 결심한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라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21세기 액션 블럭버스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다분히 과장된 유머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리 틀린 타이틀도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일단 ‘스파이’가 등장한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강력한 방어기제가 있으며 그걸 파헤치는 PD의 담대함은 ‘저러다 어디 한 군데 크게 다치는 거 아냐?’라고 염려가 될 정도로 ‘무대뽀’일 때가 많다. 이 영화는 최승호라는 ‘공익적인’ 인간의 집념이 어떻게 실천적으로 진행되고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결과물이다.

북한에서 살았던 유우성의 동생 유가려는 오로지 친오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이유로 서울에 온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와 국정원은 그녀를 합동신문센터라는 곳으로 데려가 6개월 간이나 감금한 채 협박과 회유, 폭행을 일삼는다. 하이힐이나 구둣발로 자신을 때리다가 조금 후엔 같이 눈물을 흘리고 껴앉아주는 ‘언니’와 ‘큰삼촌’ 수사관들의 농간에 판단력이 흐려진 그녀는 결국 '오빠를 위해’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게 된다. 당연히 그것 때문에 유우성은 체포되어 감방으로 끌려간다. 아무래도 이 나라엔 ‘간첩’이 꼭 필요한 모양이다. 영화 곳곳에 재판정에서의 실제 녹음 분량이 나오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살살 유도하는 검사의 목소리는 간교하기 이를 데 없고 기가 막힌 유우성의 목소리와 주눅이 든 유가려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차 있다. 최승호PD팀과의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리던 유가려는 결국 오빠를 만나지도 못하고 중국으로 추방되고 만다. 공항에서 취재진의 카메라에 대고 힘없이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련하다. 

모든 것은 국정원이 꾸민 짓이다. 유우성 사건을 취재하다가 만난 한종수 사건(본명은 한준식. 역시 간첩으로 몰려 수사를 받다가 감옥에서 자살했고, 무연고자 묘지에 묻혀있다)도 마찬가지다. 간첩은 해마다 생겨났고 그때마다 억울한 사람들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 70년대 대학생 간첩사건이나 유학생 간첩사건 얘기가 나올 때 등장하는 남산의 살벌한 지하 고문실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최승호는 안기부를 찾아간다. 법원 앞에서 몇날며칠을 기다려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드는 검사를 인터뷰하고 유가려를 때렸던 ‘언니’에게 말을 건넨다. 중국으로 날아가 유우성이나 한준식의 주변인물들을 만난다. 중국에서 북한에 있는 열여덟 살짜리 한준식의 딸과 통화하며 뒤늦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는 대목에선 정말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합동신문센터는 영화팀이 묻는 것에 대해 ‘일체에 대한 아무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들이대는 카메라를 손으로 막고 끄라고 고함을 치는 건 어디서나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당장 달려들어 깨버릴 기세다. 그래도 최승호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에게 달겨들어 유우성 사건에 대해 묻고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예전 대공분실 팀장이었던) 김기춘에게 가서 학생 간첩단 사건에 대해 묻는다. 당신이 직접 쓴 메모가 여기 있지 않냐고. 지금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용의는 없냐고. 당신은 대답할 의무가 있다고. 그러나 묵묵부답. 소이부답. 외면이 이어진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르는 일입니다. 왜 이러세요? 당신 누굽니까. 명함을 주십시오. 적반하장. 철면피…이것만이 그들의 대답이다.  원세훈과 그의 부인은 결국 우산으로 카메라를 가려버리고 공항에서 만나 처음엔 반가워하던 김기춘은 최승호의 정체를 알고나자 굳은 얼굴로 돌아선다. 

영화의 뒷부분에 최승호 팀은 서울대를 다니다가 끌려가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한 뒤 정신병에 걸려 평생을 허비한 재일교포 김승효를 찾아간다. 40년 만에 찾아간 친구들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던 김승효는 차츰 기억이 돌아오자 수십 년간 쓰지 않았다는 한국말로 ‘한국 무서워’, ‘한국 나빠’를 중얼중얼 외친다. 누가 이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영화 말미엔 지금까지 있었던 간첩사건 일지가 연도별로 쭈욱 나온다. 모든 간첩사건 끝엔 ‘무죄 판결’이라 씌여 있는데, 지금까지 해마다 빠지지 않고 간첩 사건이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이 기록에 의해 밝혀진다. 신기하게도 중간에 딱 십 년 간만 간첩사건이 없었는데 그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다. 그때만 북한이 정신을 차려 간첩을 양성하지 않았던 것일까. 간첩은 북한이 만드는 걸까, 안기부가 만드는 걸까.


서울극장에서 있었던 시사회장엔 영화 상영 직전 최승호 PD가 나와 인사를 했다. 보통 영화를 개봉하고 무대인사를 할 때는 감독이 주연배우들을 데리고 나와 인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은 모두 고위직인데다 한결 같이 바쁜 사람들이라 나오지 못했노라 너스레를 떠는 그는 이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 ‘뉴스타파’ 회원들과 이름 없는 후원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천안함 프로젝트]도 [다이빙벨]도 멀티플렉스라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좌절됐다. 영화를 만들어도 극장을 잡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철저하게 상업논리로 무장한 멀티플렉스 시스템을 뛰어넘는 방법은 역시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것 뿐이다.

엔딩 크레딧엔 이 영화의 제작과 상영이 가능하도록 펀딩을 해준 사람들의 명단이 ㄱㄴㄷㄹ순으로 나온다. 길고 긴 그 명단이 우리에게 남은 힘이고 시대를 바꾸는 희망이다. 영화를 같이 본 배우 김혜나는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는 심정을 토로했고 배우 박호산은 쉽게 흥분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영화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으나 또한 그것 때문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는 말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박수를 치는 것으로 제작진의 노고를 치하했다. 

논리적인 이론과 언변으로 보는 이를 설득하는 텍스트가 있는가 하면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강한 펀치를 날리는 영화도 있다. 다큐멘터리 [자백]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괜찮다고 생각하냐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이다. 물론 그 대답은 영화를 보기 전과 후로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골치 아프고 힘든 것일수록 외면하면 마음은 편해진다. 그러나 두 눈 부릅뜨고 현실과 마주하는 사람이 있어야 희망의 불씨는 생겨난다. 어렵지만 지금 그런 걸 만드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 그곳에 영화 [자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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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도 추리소설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찬호께이라는 직가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 [13.67]이라는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매우 뛰어난 추리소설이라는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휴대폰에 제목과 작가 이름을 메모해 놨다가 서점에 가게 된 어느날 드디어 사서 읽게 되었다. 한창 일이 바쁜 때라서 일과시간엔 읽지 못하고 자기 직전이나 출퇴근하는 전철에서 주로 읽었는데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그런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며칠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소설은 탁월한 추리력과 기억력을 가진 관전둬라는 홍콩 경찰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여섯 개의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인 <흑과 백 사이의 진실>은 놀랍게도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누워있는 관전둬가 등장한다. 관전둬의 후배인 뤄샤오밍 독찰은 ‘Yes’또는 ‘No’만 할 수 있는 그의 두뇌 반응을 이용해서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낸다. 처음부터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다. 그게 2013년의 일이고 그 다음 작품부터 시간을 거슬러 점점 젊어지는 관전둬의 활약성이 펼쳐지는데 맨 마지막 작품인 <빌려온 시간>에서는 이제 막 경찰이 된 관전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게 1967년이다. 즉 이 책의 제목 ‘ 13.67’은 은 2013년과 1967년에서 따온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한 것은 독자들의 흥미를 돋구는 것은 물론 주인공의 숨은 사연이나 캐릭터의 입체성을 구축하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인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작가인 찬호께이는 홍콩에서 태어난 공학도였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취미로 추리소설을 쓰다가 작가가 된 케이스다. 그러나 취미로 시작했다고 하기엔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필력을 자랑한다.  

그는 원래 현장에 나가지 않고 셜록 홈즈처럼 추리력만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소파탐정소설’을 구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고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원하는 공모전에 낼 수가 없게 되어버리자 아예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 장편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의 열려있는 사고 덕분에 ‘관전둬’라는 멋진 경찰이 탄생하게 된 것이니까. 찬호께이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홍콩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과 어렸을 때부터 흠모했던 용감하고 정직한 경찰의 모습을 소설 속에 함께 녹여냈다. 원해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촘촘한 트릭과 정교한 플롯들이 이야기 하나하나를 빛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완벽한 반전이 하나씩 등장해 독자들의 뒤통수를 친다.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사회파 추리소설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경찰 내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 이해관계에도 밝은 편이다. 마치 수십 년 동안 경찰에서 근무한 사람이 나와서 회고록을 쓴 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사실성이 넘친다. 

홍콩 반환 이전과 이후 얘기가 공존하는 이 소설들은 점점 서구화되는 홍콩 사람들, 그리고 홍콩에 와서 점차 홍콩사람들처럼 변모하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홍콩이라는 작고 복잡한 도시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은 ‘홍콩 느와르’라 불리는 많은 영화들을 통해서도 언뜻언뜻 비춰졌었는데 이 소설에서도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이야기는 두기봉이나 오우삼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다가 사건의 피해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홍콩이라는 도시를 관통하는 어떤 슬픈 정서와 만나게 된다. 이런 식의 사회파 추리소설 속에 경찰 내부의 내막에 얽힌 이야기까지 고루 담는 걸 보면 작가의 역량이 참 대단하다 아니할 수가 없다. 

이 소설엔 유머가 거의 없다. 대신 정직하고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주인공들의 면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즉 잔재주 없이 선명한 사건과 캐릭터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고전소설의 틀 안에서도 얼마든지 현대성과 함께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찬호께이는 안정된 필력을 통해 증명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타이페이 국제 도서전 대상을 수상했고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이야기의 뼈대만 남고 디테일들은 새롭게 변할 것이다. 오랜만에 소설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줬던 ‘웰메이드’ 추리소설이라 웬만하면 책으로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데뷔작이자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받은 [기억나지 않음, 형사]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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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1243.html



김훈이 쓰면 '추석 에세이'도 이렇게 다르다. 뭐 꼭 이 글이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글엔 기자들의 의무감과 클리쉐가 만들어내는 한가위의 풍성함이나 가족애에 대한 기대따위는 없다. 서울이 고향인 김훈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향수 대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경복궁으로 생각의 물꼬를 튼다. 임금이 도망가자 격분하여 경복궁을 불태웠던 백성들, 그리고 돌아와서 전소된 성터를 끼고 앉아 그냥 살았던 당시 지도층과 지식인들.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를 생각하던 김훈은 어린 시절 더러운 하천이 흐르던 자신의 동네를 회상한다. 박완서의 <그남자네 집>이 있던 바로 그 동네였고 박수근의 <빨래터>라는 그림보다 더 비참하고 고단했던 고향의 모습이다. 뼛속까지 리얼리스트인 그는 "나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읽을 때마다 내 고향의 저 더러운 하천을 생각한다."라고 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눈은 1592년의 경복궁 방화, 2008년의 남대문 방화, 2009년의 용산참사로까지 이어져 머문다.


한가위라고 갑자기 고향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명절이라고 냉랭하던 가족관계가 갑자기 살가워지는 게 아니듯이. 이래저래 난 명절이 싫다. 일년에 큰 명절이 두 번 있고 내 나이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50세니 평생 백 번 가까이 명절을 싫어하면서 살아왔구나. 올 명절도 술이나 마시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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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소설 [하얀전쟁]에는 베트남 전쟁터 후방에서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던 정훈병들이 정신교육 시간에 대한뉴스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엔 단지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만으로 다들 배꼽이 빠지도록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조금만 내용을 뒤집거나 주인공의 설정을 살짝만 바꿔도 이상하게 새로운 재미가 생겨난다.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는 '바람둥이'라는 주인공 설정을 남자 대신 여자로 바꿈으로써 색다른 재미와 깊이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바람둥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 뭘까. 바로 거짓말이다. 무용을 전공한 배우 지망생 은희는 연기 선생한테는 표정이나 대사가 뻣뻣하다고 야단을 맞지만(연극과 영화에서 맹활약 중인 이승연 배우가 연기 지도선생으로 나온다) 실생활에서는 남자들에게 아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잘 한다. 거짓눈물을 순식간에 흘리는 것은 물론이고 말하는 톤도 상대와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자신이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길을 물어온 일본 소설가 료헤이에게는 자신이 '거짓말 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며 자랑까지 하니 말이다.

료헤이와 헤어진 은희는 남자친구인 현오를 만나기 위해 남산으로 간다. 아침드라마에 출연하는 주제에 썬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약속장소에 나타난 현오를 비웃는 은희. 차라리 모텔에서 옷 다 벗고 있을 때가 더 멋있다는 농담을 날리자 현오는 자기가 데려간 곳은 모텔이 아니라 '부티크 호텔'이라며 화를 낸다. 남자친구라고는 하지만 서로 완전히 믿지는 못하는 사이라는 게 금방 드러나는 허약한 장면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소한 말실수로 크게 싸우고 헤어진 은희는 혼자 남산 벤치에 앉아 사진을 한 장 찍어 무심코 트위터에 올리는데 그걸 보고 냉큼 운철이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은희와 사귀었던 이혼남이다. 은희는 그 남자와 커피를 마시다가 결국 이혼한 전 부인과 다시 합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격렬하게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 이 영화는 하룻동안 북촌과 남산을 오가며 세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은희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문제는 은희가 두 남자 사이에서 연기를 펼치다가 어느 순간 딱 셋이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도 하루 종일 오가던 남산 산책로에서. 현오와 운철은 서로 자기가 진짜 남자친구, 또는 더 오래된 남자친구라고 우기다가 그동안 은희가 자기들에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양다리를 걸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희는 미칠 지경이다. 자기도 도무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모순된 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나의 모순됨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다니. 정말 아까 연기 지도선생과 함께 연습하던 대사처럼 하나님이 내게 오늘 최악의 하루를 주기로 아주 작정을 하신 모양이구나.

화가 난 현오와 운철은 졸지에 피해자 연합으로 의기투합해 내려가서 소주나 마시자고 한다. 가기 전에 현오가 "너는 거기서 그냥 땅 파고 뒈지시던가"라고 모진 소리를 내뱉지만 달리 할 말이 없는 은희는 "어, 그럴게."라고 대답할 뿐이다.

나는 사실 한예리처럼 별로 예쁘지도 않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여자는 좀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은희역으로 한예리 이외의 배우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딱 맞는 옷이다. 같은 여자 바람둥이라도 홍상수 감독이 만든 [우리 선희]의 정유미는 남자들이 더 설쳐서 저절로 그렇게 된 수동형 바람둥이이라면 이 영화의 은희는 스스로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능동형 바라둥이라 더 통쾌하고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 그리고 한예리는 이와세 료와 영어 연기를 펼치는데 그게 아주 자연스럽고 좋다. 한 마디로 연기를 참 잘하는 똑똑한 배우인 것이다.

적은 예산 때문이겠지만 이 영화는 한예리, 권율, 이희준, 이와세 료 뿐 아니라 남산의 산책로와 서촌의 골목길도 어엿한 주인공으로 엔딩 크레딧에 오를 만하다. 솔직히 김종관의 예전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핸드헬드가 난무하는 바람에 보다가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카메라가 매우 안정적이고 정적인 화면들이 아름다워서 아주 놀라웠다.

적은 예산 덕분에 하룻동안 벌어진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었는지는 몰라도 연기와 극본, 카메라까지 좋은 영화라 누구에게든 한 번 보라고 자신있게 권할 만하다. 게다가 제목은 '최악의 하루'지만 영화 말미엔 이와세 료와의 마지막 대사들을 통해 어렴풋이 해피엔딩을 암시하고 있기까지 하다. 아마 그래서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한 주가 저물어가는 금요일 저녁쯤에 보면 최적일 영화'라고 썼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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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들에게 가장 큰 애증의 대상은 누구일까. 아마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 없이 전해준 스승, 그리고 걷는 법부터 시작해 창작의 방법론까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다시 배운 제자. 서로는 너무나 잘 아는 사이이면서도 주종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애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제자들에게는 제 스승을 넘어서야 하는 무의식적인 의무감까지 있다. 흔히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스승을 존중하고 어려워하는 말로 해석하지만 사실은 스승이 이룩한 길을 피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애증의 결정판 같은 이야기가 있다. 토종 연극 <도둑맞은 책>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을 쓸 정도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가 된 서동윤은 어느 날 자신의 보조작가였던 조영락에게 납치를 당한다. 영락은 스승의 방과 똑같이 꾸민 곳에 그를 집어넣고 최소한의 음식과 커피만 제공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쓰라고 위협한다. 주제는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살인을 하고 그의 작품을 훔친다'이다. 동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게 다 무슨 미친 짓인가 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제자에게 욕을 하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휠체어에 자신의 두 팔을 결박한 채 골프채를 휘두르며 달겨드는 영락을 본 후로는 쉽게 웃을 수 없게 되었다. 자, 좋든 싫든 살기 위해선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어디서 많이 본 얘기라고? 그렇다. 모티브만 놓고 보면 캐시 베이츠가 출연했던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미저리>가 떠오른다. 그러나 모티브는 비슷해도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에 각 작품이 도달하는 위치는 사뭇 다르다.


이 연극은 원래 영화를 위해 씌여진 글(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심리 드라마'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한 '미저리'를 생각하면 이 컨셉은 스릴러나 심리 드라마로서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없이 글을 쓰던 서동윤이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자신의 시나리오에 애착을 갖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영락과 함께 '좋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진정으로 고민하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급속도로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시나리오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기는 플래시백을 통해 맨 처음 수업 시간에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 작가가 누구인가를 묻는 장면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영화지식 겨루기'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오타쿠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즐거운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동윤을 위협하면서 예전 스승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지금 동윤이 쓰는 시나리오에 적용시키며 비웃는 영락, 그리고 그에 맞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동윤. 이 연극은 어쩌면 그런 두 남자의 불꽃 튀는 화학작용이 가장 큰 '스펙터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장르적 분류는 작가를 위협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글을 쓰게 하는 미친 팬심 스릴러 <미저리>보다는 기존 공포영화의 온갖 룰들을 들먹이며 가지고 놀던 <스크림>의 악동들 쪽에 더 가까운 듯하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객석을 둘러보니 오른편 뒤쪽에 배우 송영창이 혼자 앉아 있었다. 더블 캐스팅 중인 배우가 다른 팀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며 자신의 대사도 한 번 더 점검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날 밤 연극이 끝나고 서동윤 역을 맡은 박호산 배우와 술을 한 잔 하며 들어보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캐스팅 중 송영창 박용우 팀은 '클래식'에 가깝고, 자기네팀은 '재즈' 분위기를 내기로 해서 똑같은 연출가와 각본이라도 아주 다른 연극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고 한다. 욕심 같아서는 다른 팀의 공연도 한 번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내가 뭐 평론가도 아니고 또 그렇게 시간을 낼 자신도 없다. 사실은 그날도 갑자기 업무가 길어지는 바람에 야근하는 동료들을 놔두고 혼자 도망치듯이 뛰쳐나와 겨우 관람한 연극이었으니까.


얼마 전 성북동으로 이사를 와서 새로 생긴 이웃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박호산 배우였다(도대체 우린 이게 무슨 인복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같이 연극을 본 아내는 박호산 배우가 '너무도 능글맞게 연기를 잘 하는 바람에 무대 위로 달려가서 머리를 한 대 탁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하며 웃었다. 노련하고 안정감 있는 배우와 연출의 힘이 균형감 있게 느껴지는 흐뭇한 공연이었다. 다만 소극장이라고 하기엔 공간이 약간 크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소극장 공연은 관객이 바로 옆에서 피부로 느끼는 맛도 있는 법인데 말이다. 


9월 1일부터 25일까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있는 충무아트센터 블루에서 만날 수 있다. 한가위 연휴 빨간날들 중 하루 골라서 이 연극을 한 번 보시는 건 어떨까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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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광고 얘기를 좀 해야겠네요. 바로 겐조가 새롭게 내놓은 향수 '겐조 월드' 캠페인입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 〈Her〉 등을 연출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작품인데, 한 마디로 기존의 향수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광고주의 생각이 웬만큼 열려 있지 않다면 시도하기도 힘든 작업입니다. 저도 페이스북으로 처음 보고 놀랐는데 인터넷을 조금 찾아보니 본 사람들마다 모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더군요. 


제가 잘 아는 감독님의 소개글에서 "예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만들고 크리스토퍼 월큰(Christopher Walken)이 출연한 Fatboy Slim의 Weapon of Choice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같은 감독이 연출. 그의 동생 Sam Spiegel이 작곡한 Mutant Brain을 OST로 사용했으며 동시에 곡의 뮤비이기도 하다"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밑의 URL을 누르시면 유투브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GmNwbWRKs



파티장에서 멀쩡하게 연설을 듣고 있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울먹이며 밖으로 뛰쳐나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고 기괴하게 몸을 비틀면서 춤을 추는 이 광고, 확실히 뭔가 이상하고 충격적입니다. 조각상을 핧질 않나 경호원을 때려눕히질 않나, 하는 짓마다 이브닝드레스를 차려 입은 예쁜 여주인공이 하긴엔 굉장히 '또라이'스럽습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성을 위한 향수'라는 ‘Kenzo World’의 컨셉을 스파이크 존즈 감독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결과랍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계시는데,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이런 광고야말로 분석하는 대신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감독도 감독이지만 연기를 한 여배우도 참 대단힌 것 같아요. 마가렛 퀄리(Margaret Qualley)라는 친구네요. 그리고 이 친구를 이 이상한 음악에 맞춰 미친 듯 춤추게 만든 사람은 가수 시아(Sia)의 〈샹들리에(Chandelier)〉 뮤직비디오의 안무를 연출한 라이언 헤핑턴(Ryan Heffington)이랍니다. 




겐조는 신제품을 내면서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보죠. 나이키 제품을 입거나 신는 사람은 왠지 그냥 승부에만 집착하는 대신 스포츠맨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 어디에선가 그걸 구현하고 있는 인간처럼 보입니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느껴지구요. 겐조도 자사의 제품을 쓰는 여성들에게 '난 굉장히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살고 그걸 즐기면서도 원할 땐 언제든 그곳에서 과감히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기질을 가진 사람이야' 이라는 포지셔닝을 선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만약 맞다면 이게 바로 우리가 자주 말하는 '브랜딩'이라는 것일 테고요. 


‘Kenzo World’ 공식 홈페이지(www.kenzoworld.com/en)에 가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고 음악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화면 오른쪽 아래 그녀의 익살스런 표정들이 시시각각 바뀌는 디테일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홈피에도 한 번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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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옆집 남자가 지나간다. 늘 비슷한 표정에 약간 수수한 옷차림을 한 평범한 남자다. 뭐 하는 사람일까. 애가 하나나 둘 정도 있는 것 같고 그냥 회사원이 듯 보인다.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한밤중에 다투는 소릴 듣지 못한 걸 보니 가정 문제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냥 소심하게 집과 회사를 왔다갔다 하고 주말이면 하루 종일 밀린 잠이나 쳐자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아재'겠지 뭐.


그런데 만약 이 아저씨가 알고 보니 아마존을 안방 드나들듯 하는 '직구족'이고 해외와 국내를 가리지 않는 여행광에 고양이를 사랑하는 낭만파라면? 심지어 집에서 멸치육수를 만들어 때때로 국수도 삶아먹고 김치찌개도 끓여내는 요섹남에 SNS와 블로그로 젊은이들과도 자유자재로 소통하는 네티즌이라면?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 소리다. 에이, 지가 무슨 차승원도 아니고. 옆집에 무슨 그런 수퍼맨이 살아?


 

이경수의 신작  에세이 <옆집남자가 사는 법>은 그런 수퍼맨이 옆집에 사는 것도 모자라 자기집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그런 '수퍼맨스러운' 일들을 매일 수행하며 살고 있노라고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생활백서다. 말하자면 이건 이름조차 평범한 이경수라는 50대 초반의 대한민국 남자가 어떻게 평범한 아재에서 수퍼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이경수는 말한다. 품안의 아이들도 어느덧 다 컸고 평생을 따라다니던 생계 걱정도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나 자신은 어디 가고 텅빈 껍데기만 남은 듯 공허해지더라. 아, 그동안 나는 무얼 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억울하다. 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을 위해 살 순 없을까. 


저자는 조금 엉뚱하게도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그 답을 찾았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 가진 커플을 꼽는다면 단연 용이와 월선이일 것이다. 이어질 만하면 다른 여자가 끼어들고 맺어질 만하면 다른 사건이 끼어들어 끝내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던 두 사람.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두 남녀. 그런 월선이 암에 걸려 용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려 한다. 친엄마도 아닌 월선을 끔찍이 따르던 아들 홍이는 죽어가는 월선을 챙기라고 제 아비를 닥달하지만 산판에만 머물며 꿈쩍도 안 하던 용이는 월선이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뒤에도 한참 후에야 그녀를 찾아가 '츤데레 화법'으로 묻는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눈물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경수는 바로 이 장면에서 보통 독자와는 사뭇 다른 걸 캐치해낸다. 난데없이 '여한'이라는 단어가 날아와 뇌리에 콱 박힌 것이다. 그래, 나도 생의 마지막을 맞을 때 누가 "니 여한이 없제?" 하고 물으면 "그래, 아무 여한도 없다"하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면 자기가 먼저 미련 갖지 않도록 여한이 없이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자동으로 미쳤다. 


행복을 위한 첫 번째 실천으로 그는 쇼핑에 나선다. '아마존 직구'를 통해 50인치 LED TV를 구입하기에 도전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각종 후기를 읽고 동호회에 가입하고 까다로운 해외 약관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제품이 도착한 뒤 마지막 '로컬 변경'까지. 처음 직구에 성공한 저자는 신이 나서 'Made in Germany' 압력밥솥을 구입해 부인에게 선물한다. 당장 가장으로서 아빠로서의 주가가 올라간 것은 물론이다. 



이경수는 이런 식으로 '여한이 없이' 세상을 즐기는 방법을 자신만의 '7가지 행복 동사'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쇼핑하다', '키우다', '홀로 서다', '운동하다', '추억하다', '여행하다', '소통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외출 하기 전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쉬운 것부터 하면 된다. 고양이 키우기에 메말랐던 감성이 훌쩍 자라기도 하고, 빨래나 청소도 제대로 하면 없던 재미와 보람이 생길 수도 있다. 걷는 일도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디테일'을 느끼며 걸으면 세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마음에 맞는 동성 친구들과의 정기적인 여행은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정신적 휴식과 풍요를 선물한다. 



10년 전 <마흔의 심리학>을 통해 대한민국 40대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넸던 작가 이경수가 이번에도 특유의 쉽고 편안한 글로 50대 남자들을 위한 저작을 내놓았다. '50대에 해야 할 몇몇 가지' 같은 성공처세술 책에 지친 우리에겐 이런 된장국 같이 순하고도 밀도 높은 인생 안내서가 필요했다. 지금 서점에 가서 당장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시라. 이 사람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군,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얘기들이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테니. 



(마지막으로 저자의 가족들이 유럽 여행을 갔을 때의 한 단락을 인용하며 리뷰를 끝내고 싶다. 여행지에서의 여유와 즐거움이 흠뻑 묻어나는 흐뭇한 문장들이라 굳이 소개하고 싶어서 그런다)



캠핑장 중에는 수영장이 있는 곳도 많았다. 유난히 지치는 날은 돌아다니는 걸 그만두고 하루 종일 캠핑장에서 놀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책을 읽고, 그것도 지겨우면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스페인의 이름 모를 마을에 있는 캠핑장 수영장은 유난히 물이 깊었다. 수영장 일부 구역은 내 키를 훌쩍 넘었다. 처음엔 얕은 곳에서 놀다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아이들과 잠수한 뒤 숨을 누가 오래 참는지, 돌 하나를 빠뜨려놓고 누가 먼저 찾아오는지 내기를 하며 놀았다. 그곳 날씨는 살이 익을 듯 햇살이 뜨거웠지만 습기가 없어 그늘이나 물속에 들어가면 서늘했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입술이 새파래질 때까지 놀다가 밖으로 나와 뜨거운 햇빛에 몸을 데웠다. 그리고 또다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올려다 본 하늘이 파랗게 흔들리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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