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압구정역 4번출구쪽에 세워져 있던 코발트블루색 포르쉐를 보고 생각했다. 포르쉐를 타면 행복할까?

안 그럴 것 같다. 아직 부자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수 많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들은 좋은 차를 타면서도 늘 화를 내거나 누군가와 싸우고 있지 않던가.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오너들은 뻑하면 형제 자매들과 이전투구를 벌이지 않던가.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회장님의 딸도 외국에서 자살을 하지 않던가.

박연준과 장석주가 함께 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엔 시드니의 어느 운동장에서 월요일 아침부터 부메랑을 던지면 혼자 노는 남자와 마주친 얘기가 나온다.

'월요일인데 저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것일까?'

열심히 일을 해야만 윤리적인 삶이라 교육 받으며 살아 온 글쓴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를 쳐다본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아무리 불행해도 좋으니 죽기 전에 포르쉐나 한 번 타봤으면 좋겠다고? 글쎄...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한 당신도 나도 행복해지긴 힘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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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이 떠져 물을 마시러 밖으로 나왔다가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물을 마시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잠이 안 와서 책이나 읽으려고 나왔는데 아내가 잠결에 설거지나 하라고 해서 하게 된 것이었다. 간밤에 친구들이 놀러와서 술을 마셨으므로 싱크대엔 많은 술잔과 접시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 그릇들을 보니 책을 읽고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책을 읽기 전에 설거지부터 하자고 마음 먹었다. 처음엔 하기 싫었는데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어서 열심히 하게 되었다. 설거지를 다 하고 마른 행주로 유리잔과 그릇들의 물기까지 다 제거하고 난 뒤 비로소 식탁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집어들었다. 


제목을 읽고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마지막 챕터 소제목이 '카레닌의 미소’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쇼코의 미소>는 제목과 달리 그리 서정적인 작품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와서 홈스테이를 하며 주인공 소유를 만나게 된 쇼코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중편 소설이다. 그런데 유창한 영어로 “언젠가는 유두 근처에 애벌레 모양 타투를 할 거야.”라고 말해 주인공 소유를 웃게 만들었던 쇼코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유와 점점 괴상하고 살벌한 대화를 주고받게 되고 소설은 이 부분부터 범상치 않은 공력을 발휘한다. 

소설을 읽기 전 평소의 버릇대로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는데 거기엔 작가가 등단하기 전에 얼마나 여러 번 좌절하고 절망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었고 그 심정은 소설 속 소유가 영화감독 지망생이 되어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 영화를 만들며 주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을 때의 모습으로 그대로 투영된다. 나는 훌륭하게 쓰인 거의 모든 소설은 실패담이라고 믿는 편인데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소유는 끝내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하지 못한다. 아니, 그녀가 성공했더라면 이 이야기는 쓰이지 못했을 것이고 만약에 작가가 살짝 미쳐서 그렇게 썼더라면 아무런 재미도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쇼코가 일본어로 주고받는 편지에 대한 질투, 소유가 일본으로 찾아갔을 때 쇼코가 보여줬던 이상한 행동 등은 나중에 할아버지와 엄마의 비밀들과 반전으로 얽히면서 기이한 감동을 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아내에게 ‘당신은 술이 취하면 안주를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주의를 듣고 짧게라도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띠지에 ‘소설가들이 뽑은 2016년 올해의 소설 1위!’라고 쓰여 있더니 정말 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이다. 이 느낌을 한 마디로 뭐라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년에 읽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와 더불어 책꽂이에 나란히 세워두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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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술관 관장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수잔에게 어느날 우편물이 날아온다. 전남편인 에드워드가 쓴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의 초고다. 그 소설엔 토니 헤이스팅스라는 남자가 나오는데 가만히 읽어보면 토니는 전남편 에드워드의 페르소나이고 그의 부인과 딸은 수잔이 살았을지도 모르는 또다른 삶의 모습이다. 

수잔은 겉으로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사실 재정적으로 그리 편치 못한 상황이고 남편과도 냉랭한 사이다. 하물며 자신이 하고 있는 미술 일도 사실은 마음이 떠난지 오래다. 그런데 에드워드가 쓴 소설의 내용은 예전에 수잔이 잔인하게 에드워드를 떠난 일에 대한 비난처럼 읽힌다. 에드워드는 왜 이 소설을 그녀에게 보낸 것일까. 이 영화는 이런 ‘액자소설’ 구조를 통해 현재와 과거, 그리고 이루지 못한 미래를 굴곡진 시각으로 보여주는 ‘심리 스릴러’다. 

우선 소설 속에 등장하는 폭력씬이 너무 길고 지루해서 힘들었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소설을 통해 추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괴로웠다. 감독은 ‘선택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하던데 수잔의 잘못된 선택이 이런 소설을 낳았고 그게 결국 교묘한 복수의 형태라면 이건 너무 졸렬한 게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다 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이동진의 영화평을 읽어보니 그는 이 영화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알레고리로 놓고 작품 안에 등장하는 수 많은 상징들을 해석해서 매우 고급스럽고 안정된 심리 스릴러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동진은 이전에 원작 소설도 읽었고 또 평소처럼 장면 속에 숨어 있는 상징성을 찾아 해석하는 재미(현실 속 수잔이 앉은 빨간 소파와 소설 속 아내와 딸이 강간 당한 뒤 피 흘린채 누워있는 소파 등)에 이 영화가 좋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일단 소설과 현실이 주고받는 공통점이나 연계성이 적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각도 너무 일방적이었다. 심지어 소설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캐릭터도 평면적이어서 좋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이는 주인공인 에이미 아담스나 제이크 제렌할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음악도 좋다. 그런데 전체를 이끌어 가는 플롯의 개연성이 떨어지는데다 마지막 장면까지 너무 고급스럽게 폼을 잡은 듯해서  영화 전체가 각본 감독까지 겸한 톰 포드의 아우라와 유명세에 기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솔직히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유수 영화제에서 격찬을 받고 있는 영화라는 게 좀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영화의 어디에 그리 열광하는 걸까. 

내가 밥을 먹으며 휴대폰으로 검색한 결과들을 띄엄띄엄 말해주자 아내는 “근데 좋다는 사람들은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든대?”라고 묻길래 “몰라, 이동진이 빨아줘서 그런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하하 웃으며 ‘빨아준다’라는 표현은 너무 저속하니 쓰지 말았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아내도 이 영화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급스러운 식기에 담긴 그저그런 음식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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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한 [러브 액추얼리]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크리스마스 시즌 하면 떠오르던 영화 [다이 하드] 시리즈를 내 마음 속에서 밀어낸 콘텐츠인데, 특히 자신의 친한 친구와 결혼한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찾아가 스케치북을 넘겨가며 프리젠테이션 하듯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이 유명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인터넷에서 ‘러브 액추얼리 무삭제판’이라는 제목의 파일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영화에 무슨 무삭제판이 있어, 하면서도 호기심에 다운을 받아보았더니 거기엔 우리나라 상영 당시 통째로 삭제된 포르노 배우 커플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성인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 둘 다 직업이 포르노 배우이다 보니 첫 만남부터 나체일 수밖에 없었다. 촬영 현장에서 조명 체크를 하는 스태프 사이로 둘 다 벌거벗은 채 점잖게 인사를 하는 두 사람의 상황이 묘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껴버린 두 사람이 촬영을 마친 뒤 가벼운 데이트를 하고 저녁에 집앞까지 여자를 바래다 주면서 마지막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장면이 그렇게 풋풋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연애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 아닐까 생각한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에 더 공감이 가는 아이디어였다. 

사람들 생각은 다 똑같다. 아무리 프리 섹스와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이라 해도 결국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연애의 가능성을 탐지하는 순간, 그리고 연애가 막 시작될 때의 그 짜릿한 환희 아닐까. 그래서 연애 감정은 중요하다. 특히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의 연애감정은 더욱 그렇다. 

뚱딴지 같이 무슨 아내와 연애냐고 질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내와의 연애만큼 유리한 행위는 없다. 결혼을 하고도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번민하는 수많은 불행아들을 보라. 나는 '가장 예쁜 여자는 처음 만난 여자'라고 외치는 카사노바들이 부럽지 않다. 그들은 그만큼 상상력과 관찰력이 부족한 것이다. 혹시 당신이 이혼남이나 이혼녀라면 한 번 생각해 보라. 당신과 이혼한 그 사람이 왜 다른 파트너와는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인간은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보면 볼수록, 파면 팔수록 새로운 점이 나오는 화수분 같은 존재다. 그리고 좋은 관계란 그것들을 잘 찾아내고 소중히 가꾸는 사람들에게서 생겨나는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아직도 나를 만나러 오는 길이면 가슴이 뛴다고 한다. 아직은 볼 때마다 내가 반가운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확실히 행운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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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한 호텔이다. 설 연휴, 아내의 넓은 마음과 배려 덕분에 아무 것도 안 하고 혼자 지낼 수 있는 24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고심 끝에 호텔방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들을 데려왔다([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무라키미 하루키 잡문집] 그리고 [유혹하는 글쓰기]를 가져왔다). 이건 참으로 폼 안 나는 선정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통속적인 작가들이라니. 더구나 이 책들은 여기저기 책장을 접고 밑줄을 치고 손때가 묻어있을 정도로 전에 여러번 읽은 책들이다. 

내가 왜 이 책들을 들고 왔는지는 저녁에 교보문고에 가서 새 책을 한 권 더 산 후에 깨달았다. 요즘 잘 나가는 에세이 중 하나를 사서 그 문장의 흐름과 내용을 살펴보았는데(무슨 책인지는 안 알랴줌) 애써 고른 그 책을 읽다보니 역설적으로 하루키나 킹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이었다. 

일단 둘 다 문장이 참 좋다. 쉽고 평이한 단어들을 사용하되 에둘러 가는 일 없이 하고싶은 말을 차근차근 할 줄 안다. 독자들이 혹시 못 알아 들을까 걱정해서 부사를 남발하지도 않는다(실제로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그가 쓸데 없는 부사 사용을 얼마나 경계하는지 들려준다). 작가는 스토리나 플롯만 짜는 사람이 아니다. 쉽고 친절한 문장으로 어려운 내용을 잘 묘사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작가가 아니더라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 

아침이다. 그래봤자 먹고 자고 하는 것을 빼면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 내가 쓰고싶은 글까지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광고 카피가 아닌 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그러면서도 편안하게 궁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공간이었다. 더구나 내 곁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스티븐 킹이라는 엉청난 선생님들이 있었으니. 나는 하루키나 킹 같은 작품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대의 문장 고수들에게 한 칼 가르침을 받으려 해 본 것이었는데 다행히 그들이 나를 내치지 않고 친절하게 거두어 주었을 뿐이다. 이만하면 워런 버핏과의 백만 불짜리 점심식사보다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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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전에 소설의 수준은 결정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가가 초고를 쓰기 전 어딜 가는가, 무엇을 읽는가, 누굴 만나는가에 따라 소설의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법이다.”

소설가 김탁환이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 감사의 글’에 쓴 문장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기 전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들을 듣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과 디테일이 달라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 텐데, 왜 그는 굳이 이런 얘기를 책 말미에 써놨을까. 아마도 그는 언론 보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접하는 것과 직접 현장으로 나가 관련된 사람들과 인터뷰 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주하는 세월호의 이면이 얼마나 다른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너무, 자주 기가 막혔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하려고 해도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얘기와 상황들. 나도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에서 주인아줌마가 TV뉴스를 보다가 “아유, 유족들 한 사람당 삼 억씩 받았다메?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받으려고 저 난리래…”라고 말하는 걸 듣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사장님,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으셨어요? 라고 말하던 나는 그 순간의 무력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노란 리본 좀 안 달고 나오면 안 되냐고, 이젠 세월호 지겹다고 말하던 청중 속 아줌마에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호통치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심정이 그때 나와 같지 않았을까.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맹골수도에서 선체 수색과 실종자 수습을 위해 일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이다. 김탁환은 세월호 사건 이후 조선 후기 조운선 침몰 사건을 다룬 장편 [목격자들]을 펴냈지만 역사적 사건의 비유만으로는 도저히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가 없어서 결국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을 다시 쓰게 된 것이다. 마침 세월호 유족들이 출연하는 팟캐스트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목격자들]을 읽고 김탁환을 사회자로 초빙하면서 소설의 구성은 더욱 객관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설의 주인공을 단원고 학생들이나 유족 대신 민간 잠수사로 정한 것이었다. 사건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유족들처럼 마냥 슬픔에 잠겨 있는 게 아니라 뭔가 구체적인 ‘작업’을 수행했던 사람들. 그러면서도 그 선의를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한 건’ 하러 내려갔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도록 일만 하다가 신체적 외상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심지어 정부로부터 민간 잠수사로 인정도 받지 못한 그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이었고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던 던 잠수사 나경수가 이 소설 [거짓말이다]의 주인공이다.

 소설 속 이름은 ‘나경수’로 나오지만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은 김관홍이다. 김탁환은 팟캐스트 진행을 하다 민간인 잠수사였던 김관홍을 만나면서 세월호 침몰 이후 벌어진 일련의 참담한 과정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일테면 희생자를 인양하는 방법은 오로지 두 팔로 시신을 껴안고 올라오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신문이나 뉴스를 봐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나라에서 끝끝내 바디팩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아직도 배가 인양되지 않았으니 침몰된 선체의 내부를 직접 본 사람들은 잠수사들 뿐인 것이다.

작가는 세월호 유족들 뿐 아니라 진도 어민, 생존 학생과 그 부모들, 공무원, 동료 잠수사들, 심지어 일베 회원들까지 만나면서 이 사건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의 연속이고 동시에 사실들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르포타쥬 형식으로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돈 벌려고 간 겁니다. 간단해요…잠수사 일당이 백만 원이고, 시신 한 구당 오백만 원을 더 얹어 준다면서요? 민간 잠수사가 한 달 잠수하며 시신 열 구를 건졌다고 칩시다. 그럼 얼맙니까? 월수 3천만 원에서 시신 건진 값이 5천만 원이니, 한 달에 자그마치 8천만 원을 버는 겁니다. 그렇게 두 달이면 1억 하고도 6천만 원이죠. 두 달 동안 국가에서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줬습니다. 생활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죠. 나야 핸들 잡는 재주밖에 없어 이러고 있지만, 잠수기능사 자격증만 있다면 당장 그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잠수사들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바로 맹골수돕니다.”

소설가 김탁환이 만난 대리운전 기사 공환승(60세) 씨의 이야기다. 누가 이 사람을 욕할 수 있을까. 우리도 한때 이런 흉흉한 소문을 듣지 않았던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었다. 잠수사들이 그렇게 많았다는데도 단 한 명을 구조하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이기도 했고 또 너무나 기가 막힌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김관홍을 비롯한 많은 잠수사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내려간 것이지만 그러한 마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다 죽은 뒤에 내려가면 뭐하냐', '돈 벌러 가는 것 아니냐'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을 뿐 이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해군이나 해경과는 달리  작업일자 내내 육지나 항공모함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바지선에서 생활했던 민간 잠수사들은 결국 일을 끝내지도 못하고 나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

김관홍은 잠수사 일을 그만두고 대리운전을 했고 아내는 꽃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바닷속에 들어가 활보하던 사람이 대리운전을 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맹골수도에 다시 간 나경수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장면으로 끝나는 소설의 마지막을 작가에게서 듣고 마음에 들어 했다던 김관홍 잠수사는 결국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이 독후감은 2016년 11월 6일에 쓰다가 만 것이었다. 일요일에 시작해서 그날 다 쓰려다가 무슨 일이 있어서 미뤄둔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인터넷에서교보문고가 2016년도 '올해의 한국소설10'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1위로 뽑힌 소설이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라는 기사를 읽고 그때 쓴 메모를 다시 찾아보았다. 참담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천 일이 지났지만 선체는 여전히 인양되지 않았고 참사 당일 대통령의 일곱 시간 행적도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희생자들도 건져내지 못한 우리들은 역사의 죄인이 아닌가.

그래서 [거짓말이다]라는 소설이 고맙다. 역사소설을 주로 써오던 김탁환은 세월호를 기점으로 난생 처음 르포에 가까운 현대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의 인세는 전부 세월호 규명 활동을 위해 기부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김탁환 덕분에 우리는 세월호라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아주 외면하지는 않고 잠시 들여다 보았다는 치사한 위안을 얻는다.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비겁한 우리들을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 같은 소설인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간악한  무리들이 저지른 국정농단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기 힘든 시절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옳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 오늘 다시 들춰본 이 소설책에서 김관홍이 후배 잠수사인 박정두에게 일갈했던 구절이 눈에 아프게 밟힌다.

"정두야! 작년 봄 맹골수도로 내려오란 권유를 받고 내가 무슨 생각한 줄 알아? 간단해. 이게 옳은 일인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지금도 마찬가지야. 옳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난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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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러스트 앤 본]을 ‘Watcha play' 서비스로 보았다(서비스 가입을 해놓고 시간이 없어서 못보다가 며칠 전 해약을 했는데 이번달 말까지는 뭐든 볼 수 있다고 해서 문득 어제 이 영화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녹과 뼈’라는 이 제목은 동명 소설집에서 따왔다는데 불어와 연관되어 가깝게는 ‘주먹다짐’을 뜻하기도 하고 넓게 보면 ‘녹을 벗겨내다’라는 의미로까지 확장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영어나 불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좀 더 심오한 뜻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냥 그 정도로 어림짐작을 할 뿐이다. [예언자]나 [내 심장을 건너뛴 박동]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영화지만 내게는 마리옹 코띠아르의 영화라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마리옹 코띠아르의 얼굴과 표정이 좋다.[인셉션] 같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그 번듯한 미모가 빛나지만 이 영화처럼 캐릭터 중심의 작품에서는 잘생긴 얼굴이면서도 한편 평범하기도 하고 회한이 서려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연기를 참 잘 한다는 얘기다. 

이번 작품에선 사고로 두 다리가 잘린 전직 범고래 조련사 역이다(특수효과를 잘 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정말 두 다리가 잘린 채로 나온다). 그런 여자가 사고 이후 처음으로 남자에게 안겨 머뭇머뭇 바다 수영을 하는 장면도 좋았고 남자의 제안에 의해 첫 섹스를 한 뒤 또 하고 싶어질 때마다 ‘출장 가능?’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도 좋았다. 나중에는 남자친구의 브로커 역할을 맡아 의족을 달고 길거리 싸움 현장에서 유유히 지폐를 세는 장면조차도 그녀라서 잘 어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알리로 나오는 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의 연기도 훌륭했다. 몸으로 살아가는 전직 복서이자 현 경비원인 짐승남의 역할을 무심한 척 능숙하게 연기한다. 

이 영화는 스테파니의 잘린 다리로 시작해 알리의 길거리 주먹싸움 장면에서 튀는 핏방울들과 상처와 치아, 마지막 얼음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빙판을 부수는 장면 등 육체를 날것으로 다루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아마도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살아간다는 것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이처럼 매순간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처럼 살아가기 팍팍한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들을 관조적으로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아들을 구하느라 주먹뼈를 다친 알리가 병원에서 아들이 깨어난 후 스테파니에게 처음으로 휴대폰을 통해 사랑고백을 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음악이나 촬영도 훌륭하다.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작이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게 밀려 수상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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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택이라는 아트디렉터가 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광화문 집회 때마다 나가 전경버스 차벽에 영화 패러디 포스터를 붙이는 열혈 청년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도 광고일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라 그리 한가하지 않을 텐데 그 열정과 정성이 놀랍습니다. 이용택 실장은 작년에 제가 존경하는 카피라이터 정철 선배님과 세월호를 잊지말자는 공익광고를 몇 편 제작해서 페이스북에 공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게도 세월호 카피를 쓸 수 있는지 문의를 해왔습니다. 망설였습니다. 자칫 하찮은 잔재주나 공명심으로 비쳐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친한 사이도 아닌데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용택 실장의 용기와 진심을 믿고 몇 개의 카피를 썼습니다. 


'너희를 가라앉힌 건 우리가 아니지만 너희를 건져내지 못한 건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죄인이다’라는 카피를 제일 먼저 썼습니다. 써놓고 나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다이렉트하게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슬픈 빅뱅.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 304개의 우주가 사라졌다’ 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세월호 아이들 하나하나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주들이었으니까요. 


푸르른 하늘과 힌 구름들 위에 떠 있는 노란 종이배 그림을 보며 천국을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안에 안에 갖혀있는 아홉 명을 생각하며 ‘그 누구도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어. 아직도 아홉 명은 바닷속에 있으니까. 함께 가야지’ 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라는 카피를 붙일까 말까 하다가 붙였습니다.

 

‘4월 16일’이라는 날짜를 가지고 카피를 써봐야지 생각한 뒤 '4월16일'이라는 헤드라인 밑에 ‘4월 16일 생일인 분들 미안합니다. 4월 16일 결혼기념일인 분들 미안합니다…해마다 4월 16일만은 옷깃을 여미고 조용히 눈물을 흘립시다’라는 바디카피를 썼습니다. 마지막 줄은 '4월16일이 소중한 날인 모든 분들 죄송합니다'로 고치고 싶었는데 업무에 쫓겨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첫 출근일이 4월 14일인데 해마다 그때가 되면 세월호 생각만 하는 저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그런 분들이 많을 거란 생각에 써본 카피였습니다. 



이용택 실장이 보내온 의자 그림에 ‘다시는 가만히 있으라 하지 않으마. 다시는 어른들을 믿으라 하지 않으마. 다시는 대한민국으로 너희를 부르지 않으마’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너무 과격한 것 같다는 이 실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시는 너희들을 그냥 보내지 않으마’라는 문장으로 고쳤습니다(지금 보니 오자가 나 있군요. 나중에 고치겠습니다). 



어두운 막에 손을 대고 절규하는 듯한 그림이 왔길래 ‘2014년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세월호 안에 있습니다’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세월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겠다’라는 카피는 제 업무수첩에 적혀 있던 글입니다. 언젠가 광고에 써먹으려고 메모해 놓은 글이었는데 이렇게 세월호 카피로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네이버사전을 찾아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하겠다’의 ‘못’은 떼고 ‘그 누구도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어’의 ‘못’은 붙이는 것이라는 맞춤법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우리말은 참 어렵습니다. 


또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걸까요. 우리는 평생 세월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입니다. 카피를 쓰면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지만 한 조각이라도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에겐 저 말고도 더 훌륭한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감독님들이 많이 계시니 광고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작업은 계속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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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출근날, 우리회사는 시무식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하나 진행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과 손편지 전해주기였습니다. 사실은 출근 전날 저녁에나 이 행사를 하기로 한 게 겨우 기억나는 바람에 집에 있는 썬블럭으로 선물은 겨우 마련했지만 편지는 쓰지 못했죠. 누가 받을지 모르는 편지를 도대체 어떻게 쓰란 말야, 하면서.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한 저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를 인용하기로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인터넷으로 '행운의 편지'를 검색하고는 펜을 꺼내 단숨에 쓰기 시작했죠.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라는 편지를 받았다면 당신은 기분 더러운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그런 행운의 편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지금 2월31일이라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그래서 저와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나눈 사이라면 말입니다. 우리 '2월31일'은 올해도 더 발전하고 더 인간적인 회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당신이 받은 이 편지는 행운의 편지가 분명합니다. 

2017년 1월1일 편성준 드림 



이 편지는 저와 같이 일하는 후배 카피라이터 이승찬 씨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편지를 받고 잠깐이라도 좋아했다면 다행입니다. 아니면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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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한 번 본 것 말고는 어떤 사전지식도 없이 갑자기 어젯밤 신사동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극장에 혼자 가서 [마스터]를 봤다. 올해 12월 31일까지 쓰지 않으면 휴지가 되는 영화초대권이 있어서였다. 별 생각 없이 선택한 흥행작이었는데 감독이 [감시자들]의 조의석 감독이라는 걸 알고 나서 '최소한 스피디하고 영리하긴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감시자들]을 보고 조금 놀랐었다. 특히 서울시내에서 감행한 몹씬이나 추격신이 인상 깊었다.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도둑들]이 생각나는 케이퍼 무비. 등장 인물들의 선악 구분이 뚜렸하고 사건도 명쾌하지만 이리저리 속도감 있게 엎치락 뒤치락 하는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색다른 금융지식을 등장시키고 실제 인물들의 일화까지 반영하는 등 시나리오에 골고루 양념을 쳤다. 그러다 보니 러닝타임이 무려 143분. 영화 두 편을 한꺼번에 몰아본 기분이 든다. 하지만 길다고 꼭 지루한 건 아니다. 일단 이병헌이라는 확고부동한 스타가 중심을 잡아주고 강동원과 김우빈도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 하기 때문이다. 연기를 잘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잘 수행하는 느낌이랄까. 왜 그런 거 있잖은가. 수퍼세션맨들이 모여서 한 무대에 섰는데 어느 하나 튀지 않고 각자의 연주가 온몸으로 골고루 스미는 쾌감. 엄지원, 진경, 오달수는 물론 잠깐 나오는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까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적절하게 열연을 펼친다.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가벼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영화다. 악당들은 수 조원의 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표정이나 말투가 장난치듯 경쾌하고 경찰들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악당들에게 이죽거리는 여유를 부릴망정 크게 주눅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이게 이 영화의 승리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대한민국은 영화나 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역동적이고 엽기적인 일이 많았는데 영화에서까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달려나간다면 참 견디기 힘든 노릇이 아니겠는가. 최근 김성수의 [아수라]가 대박을 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그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입만 열면 들리는 3조 원, 6조 원 등의 금액이 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걱정 마시라. 내년에도 박근혜 최순실 패거리들이 벌인 국정농단 사건이 베일을 벗을 때마다 우리는 계속 그런 단위에 익숙한 서민들이 되어야 할 테니까.  

이 영화가 '천 만 관객'을 찍을지 안 찍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몇 년 후 다시 봐도 배우들의 활약만큼은 '미친 존재감'의 레퍼런스로 남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영화가 끝나고 송년 회식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뒤늦게 전화를 했다가 치사하게 혼자 그런 영화를 보느냐고 야단을 맞았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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