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각박해지고 국정농단까지 겹치는 바람에 겨울이 와도 크리스마스 기분이 안 나는 건 꽤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이맘때쯤엔 연극이나 뮤지컬을 꼭 한 편 보고 지나가자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올해도 아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창작 뮤지컬을 하나 예매했다. 유정민 작가가 극본을 쓰고 연기도 하는 일인극 뮤지컬 [오늘 하루]다.

유정민의 출연작으로는 [식구를 찾아서]와 [스페셜 딜리버리]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인 것 같다. 유산을 한 번 한 경험이 있는 30대 동화작가가 4년만에 새 아기를 임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작가가 직접 쓰고 연기를 해서인지 세세한 디테일까지 대사가 아주 수다스러우면서도 오밀조밀하다. 유정민은 주인공인 동화작가 민지원도 되었다가 친구인 자현도 되었다가 남편 태주도 된다. 심지어 둘이 결혼할 때 반대했던 경상도 시어머니와 전라도 친정엄마 역할까지 '변검'처럼 척척 해낸다. 디테일도 훌륭하다. 속이 타는 연기를 할 때는 백산수 한 병을 벌컥벌컥 다 마셔버리고 휴대전화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네 번이나 기종이 바뀐다.

일인극이라고는 하지만 휴대전화 통화, 스크린 이용 등을 통해 여러 배우들을 보고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고 무대 왼쪽엔 일렉과 어쿠스틱을 오가며 연주하는 기타와 키보드, 바이얼린 연주자들, 그리고 극 중간 중간 동화를 낭독하는 여섯 살짜리 꼬마 오유주까지 있어 무대가 꽉 찬다(오유주는 이 연극의 연출가인 오준석 PD와 유정민 배우의 딸이다. 딸이 셋인데 갓난아기까지 둘이 이 연극에 잠깐 출연을 한다).

연기는 물론 노래 솜씨까지 빼어난 유정민의 스토리를 따라 깔깔거리고 웃다보면 어느새 따뜻한 눈물이 흐르게 되는 뮤지컬이다. 유정민은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데 6년 전 첫 딸을 낳고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럴게 재미 있고 진심으로 가득한 연극이 내일까지 단 나흘간만 상연된다는 게 안타깝다. 아마 또 다른 곳에서 또 볼 날이 곧 오겠지, 라고 희망을 걸어본다. 크리스마스가 여름에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오늘 본 [오늘 하루]는 힘겹게 또 한 해를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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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는 몇 초면 컴퓨터에서 모든 영화를 다운받을 수 있는 이 시대에도 왜 우리가 굳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영화라는 예술의 진정한 줄거움은 영화를 보는 순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를 예매할 때의 기대부터 당일 극장으로 가는 길,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 감동을 조금 더 연장하고 싶어서 들른 커피숍의 진한 커피향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영화다.

어두컴컴한 극장에 들어거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현실 속의 우리는 사라지고 객석의 모든 남녀는 라이언 고슬링이 되고 엠마 스톤이 된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던 내가 어느덧 노래를 잘 부르게 되고 프레드 아스테어나 진 켈리처럼 춤도 잘 추게 된다. 심지어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고 어쩐지 코도 더 뾰족해진 느낌이 든다. 표정이 풍부해지고 결정적으로 젊어진다. 그렇다.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두 시간 동안 세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꿈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아주 로맨틱한 쉼표인 것이다.


꽉막힌 LA 고속도로에서의 첫 장면부터 관객을 압도하는 이 영화는 현실과 뮤지컬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번번히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배우 지망생과 재즈 피아노 연주자가 어떻게 만나서 사랑하고 노력하고 성공하고 어른이 되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얼굴을 약간 찌푸려야 더 매력적인 엠마 스톤은 이 영화에서 노래와 춤, 연기 등 모든 분야에서 그야말로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오른다. 그리고 재즈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역의 라이언 고슬링이 연주하는 모든 곡의 멜로디는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이라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귓가를 간지럽힌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Stars in the city'를 들으며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의 OST를 사야겠군. 이건 전작 [위플래시]에 이어 또다시 음악을 영화의 중심에 놓은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 지난번 작품의 주제가 음악과 음악인 사이의 처절한 사투였다면 이번 영화는 그보다 부드럽고 단순한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맨 처음 만남에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미아의 차를 채근하며 길게 클랙션을 울려대던 세바스찬은 그 이후 그녀를 만날 때마다 늘 길게 클랙션을 울림으로써 두 사람만의 암호로 삼는다. 함께 주차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눈 앞에 펼쳐진 LA의 야경이 별로라며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밤하늘의 낭비인가'라는 노래를 부른다. 야경이 별로라던 두 사람의투덜거림과는 달리 그 순간 이미 둘은 서로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모노 드라마를 준비하는 미아를 위한 '연구 목적으로(for research)' 보게 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을 계기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그러나 원만한 직선으로만 흘러가는 사랑이나 인생이 어디 있으랴. 두 사람이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갈수록 사이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이고 사랑 영화지만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컬러부터 앵글, 그리고 배우들의 춤과 노래들에선 이전 헐리우드 영화들에 대한 향수가 물씬 배어난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영화들을 무조건 베끼거나 숭배하진 않는다. 다만 감독은 헐리우드 시스템이 최고 전성기를 구가할 때 유행하던 뮤지컬 형식을 가져와 그동안 선배들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행복과 슬픔과 노스텔지어를 심어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배우들에게 계속 춤 추고 노래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마치 그게 인생이라는 듯이.

스포일러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마지막 시퀀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겠다. 다만 이런 진부한 표현을 써서라도 그 느낌만은 좀 남겨두고 싶다. 아마 당신도 마지막 장면에서 라이언 고슬링을 바라보는 엠마 스톤의 그렁그렁한 눈과 미소를 바라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알싸하게 저려오고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질 것이라고. 그리고 이 영화를 보러온 오늘은 참 좋은 날로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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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에세이 중 가장 좋았던 책은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다.

문단에 소설가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해서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걱정하는 소설가가 없는 것으로 보아 소설가 집단이야말로 배타성이 가정 적은 곳, 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긴 에세이는 하루키라는 사람이 자신의 평생 직업인 소설가에 대해서, 그리고 소설이라는 것을 쓰는 이유와 자세, 독자에 대한 생각 등을 아주 성실하면서도 쉽고 다정한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당연히 데뷔 전과 데뷔 초기 얘기도 많이 나오고 인터넷에 뜨는 독자들의 반응과 온갖 구설을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서 일생일대의 히트작 [노르웨이의 숲]을 쓰던 얘기도 나온다. 퇴고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온다. 자신이 [양을 둘러싼 모험]이던가, 아무튼 어떤 소설 원고의 일부분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써야 했다고 한다. 한 번 썼던 글을 기억에 의존해 다시 쓰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다가 더 걱정인 것은 다시 쓰는 글이 처음 썼던 글보다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후에 우연히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찾아 읽어보니 새로 쓴 원고가 예전 원고보다 나아서 크게 안심했다는 얘기였다. 이런 얘기까지 술술 읽고 있노라면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진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소설에 대한 얘기를 실로 많이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Ritual'에 대한 것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일하고 오후에는 수영이나 조깅을 한 뒤 아홉 시면 잠자리에 드는 패턴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 전설로 남은 천재 예술가들처럼 방탕한 생활을 흉내내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평생 단 한 번도 주문에 의해 쓰지 않고 자기가 쓰고 싶을 때만 즐겁게 글을 썼다는 그의 비결 아닌 비결인 것이다. 하루키는 이걸 애기하며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를 소개하기도 한다. 며칠 전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내도 매일 아침마다 식탁 사진을 찍어 '매일매일밥상'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고 또 출근길에 한 곳을 정한 뒤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같은 프레임으로 꾸준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에 와서 아무리 이 책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주 들춰보는 책은 사무실 책상 근처 탁자 위에 두고 읽은지 좀 된 책은 PD들과 함께 쓰는 책꽂이에 두는데 두 군데 다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빌려준 모양이다(책을 잃어버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루키의 왕팬인 김건익 실장님에게 빌려야만 했다. 아내가 읽고 나면 나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고맙습니다. 김건익 실장님. 


부탁 1.
제 책을 빌려가신 분은 속히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족1.
우연히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소설가가 될 결심을 하고 서점에 갔을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다. 이것은 나에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비록 그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았지만..."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이 그의 책을 하나도 읽지 않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고 이 책부터 읽는 것은 음...뭐랄까. 교과서는 안 읽고 참고서부터 보는 격이랄까. 아니면 고기도 안 씹고 이쑤시개로 이부터 쑤시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물론 김지운이 [달콤한 인생]을 만들기 전에 오우삼의 [영웅본색]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건 워낙 그 사람이 천재였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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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예매 어플에 뜬 <비치 온 더 비치>라는 영화 제목은 단박에 'Sex on the beach'라는 칵테일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정가영이라는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홍상수가 생각난다는 평이 있었다. 조금 더 궁금해져서 유투브에 들어가 그가 만들었다는 단편영화 <내가 어때섷ㅎㅎ>이라는 작품을 먼저 찾아 보았다. 그냥 콘도 응접실 같은 데에 카메라 한 대 뻗쳐놓고 13분동안 두 남녀가 앉아 맥주 마시며 수작질하는 내용이 전부였는데 놀랍도록 재미가 있었다. 감독이자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정가영은 '여자가 들이대는 영화를 만들어보면 재밌을 거 같아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는 정말 그의 생각대로 어이 없이 웃기면서도 귀여운 맛이 있었다. 내친 김에 <처음>이라는 단편도 찾아보았다. 연기과에 다니는 남학생이 두 여학생이 있는 방에 찾아와서 영화 촬영 전 첫 키스를 경험하고 싶으니 협조해 달라고 얘기하는 황당한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정가영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특히 평범하면서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억양이 일품이다. 성적 욕망에 충실하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 캐릭터, 하면 그동안 윤성호 감독만 떠올랐었는데 이제 정가영이라는 막강 캐릭터가 하나 더 생긴 거 같아서 반가웠다. 개봉한지 며칠 되지 않은 영화 <<비치 온 더 비치>.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은 <라라랜드>가 더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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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거기 수련 한포기가 살고 있습니다. 
나는 수련에게 왜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 내리고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진흙이야말로 존재의 바탕이요 수련의 현실이요 운명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왜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느냐고 묻습니다. 
진흙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현실 아닐까요.
아비규환의 현실, 고통과 절규와 슬픔과 궁핍과 몸부림의 현실. 

그 속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요.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찍으려면 몸에 흙이 묻습니다. 집을 고쳐 지으려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지난 사년간 온몸에 흑을 묻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 시들을 썼습니다. 

구도의 길과 세속의 길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행을 통해 가고자 하는 길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가고자 하는 길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10월 
도종환


오늘 점심시간에 서점에서 집어든 도종환의 새 시집 [사월 바다]에 실린 '시인의 말' 전문이다. 도종환은 그 옛날 [접시꽃 당신]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낸 시인이기도 하지만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 현재 재선에 성공한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었던 그가 왜 뒤늦게 국회의원이 되어 시정잡배들과 어울릴까. 왜 스스로 문체부장관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가며 답답한 현안들을 붙들고 시장바닥보다 지저분한 곳에서 나딩구는 걸까.
 
브레히트는 나치 이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했지만 도종환은 이미 브레히트의 절망도 아도르노의 엄살도 아랑곳하지 않을 결심이 선 모양이다. 그래서 기꺼이 아이들이 수장된 사월의 바다로 들어가고 중상모략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진흙탕 속에 들어가 온몸으로 세상과 역린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이런 서정시들을 손바닥에 쓴다. 

나는 그런 그가 든든하다. 이런 강철 같은 정신력의 서정시인이 우리 옆에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쁘다. 사무실에 들어와 급하게 휘리릭 들춰본 시집 중 '해장국'이라는 시가 눈에 띈다. 우리 시대의 서정시는 이런 것이라는 듯, 시에서 김이 난다. 따뜻하다 못해 이내 뜨거워진다. 일단 그 시를 여기에 남기며 짧은 메모를 접는다. 



해장국


사람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가 여기 있다
밤새도록 벌겋게 달아오르던 목청은 쉬고
이기지 못하는 것들을 안고 용쓰던 시간도 가고
분노를 대신 감당하느라 지쳐 쓰러진 살들을
다독이고 쓰다듬어줄 손길은 멀어진 지 오래
어서 오라는 말 안녕히 가라는 말
이런 말밖에 하지 않는
주방장이면서 주인인 그 남자가 힐끗 내다보고는
큰 손으로 나무 식탁에 옮겨다놓은
콩나물해장국 뚝배기에 찬 손을 대고 있으면
콧잔틍이 시큰해진다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랴
떨어진 잎들이 정처를 찾지 못해 몰려다니는
창밖은 가을도 다 자나가는데
사람에게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받는 날
세상에서 받은 쓰라린 것들을 뜨거움으로 가라앉히며 
매 맞은 듯 얼얼한 몸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한숟갈의 떨림에 가만히 눈을 감는 
늦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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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은 후배인 혜원을 좋아한다. 그런데 혜원은 동욱의 마음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과 사귀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오늘도 동욱이 조르고 졸라서 겨우 만든 둘만의 술자리이지만 얘기는 겉돌기만 한다. 테이블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새로 옮긴 혜원의 직장 얘기를 하다가 혜원이 육 개월 전부터 동욱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일하는 임창수 대리와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옆자리 직장 동료와 몰래 사귀고 있다는 사실에 격분한 동욱은 일방적으로 혜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동욱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던이 술집의 주인이자 선배 영식은 혼자 남은 동욱을 위로하고자 중국에서 가져 왔다는 술을 한 잔 따라 준다. 그런데 동욱이 이 술을 한 잔 마시고 고개를 든 순간 영식은 사라지고 눈앞에 사라졌던 혜원이 다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시점은 둘이 새로 옮긴 직장 얘기를 하던 불과 몇 분 전 상황이다. 동욱은 이미 알고 있지만 혜원은 자신이 임창수 대리와 사귄다고 고백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다시 얘기를 이어가다가 임창수 대리와 그의 전 애인 은나가 사귄 기간 얘기를 하며 싸우는 두 사람. 이번엔 동욱이 나가고 술집 주인 영식이 중국술을 마시게 된다.그리고 또 타임슬립.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비밀은 술이다. 이 술은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의 약이었던 것이다.

흔히 단편영화라고 하면 웬지 예술적이라 뭐가 뭔지 모르는 알쏭달쏭한 내용일 거라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흥행과는 담을 쌓은 듯 어렵게만 만든 단편영화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일반론을 가볍게 뒤집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정말 좋았건 이유는 타입 슬립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능력으로 지구를 구한다거나 복권을 산다거나 하는 거창한 게 아니라 동생이 훔쳐먹은 푸딩을 다시 차지한다거나 너무나 갑작스러운 첫사랑의 고백을 되돌린다는 사소함에 쓰이는 게 더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도 그렇다. 타임 슬립을 일으키는 중국술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하이컨셉이지만 여기서는 각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도구 이상으로 쓰이지 않는다. 대신에 연애나 질투 같은 사소한(?) 감정들이 개연성 있는 플롯 속에서 대활약을 한다. 장소 한 번 바꾸지 않은 술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임창수 대리는 얼굴 한 번 나오는 일 없는데도 신기하게도 영화 내내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 건 감독의 뛰아난 각본 감각과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30분남짓 되는 이 단편은 나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백영욱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얼마 전 이 작품이 외국의 어떤 영화제에서 뒤늦게 상을 또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림으로써 알게 되었다. 우리 회사의 김건익 실장님에게 영화 [한 잔] 얘기를 했더니 자신은 시사회 때 후배인 백영욱 감독은 물론 그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고 자랑을 하셨다. 맨 마지막에 혜원이 중국술을 한 잔 마시고 처음의 설전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은 아주 어릴 적 읽었던 <기적을 일으키는 사나이>라는 동화가 생각나서 더욱 반가웠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이런 멋진 영화를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안 그래도 어렴풋이 술 약속을 해놓긴 했는데 11월이 가기 전에 백영욱 감독님하고 만나 이 영화 얘기 하면서 소주 '한 잔'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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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떤 평론가가 작가 이병주를 평하면서 그가 일제시대와 815해방, 625사변, 419혁명, 516쿠데타 등등 파란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라 그만큼 할 이야기도 많은 작가라고 쓴 걸 읽은 기억이 난다. 작가에게 할 얘기가 많다는 것은 일단 축복일 것이나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몸에 저장하기 위해 그가 살아내야 했던 힘겹고 유난한 세월 또한 그에겐 축복이었을까. 


김이정의 소설 [유령의 시간]을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할 정도로 똑똑하던 이섭은 독립운동을 하던 실천적 지식인인 숙부의 영향으로 인해 사회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한때 '이마가 아름다운 여인' 진을 만나 아이 셋을 둔 행복한 가장이었으나 자신이 수배되어 도망 다니는 동안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남과 북으로 갈린 생이별을 하게 된다. 실의에 젖어 살던 이섭에게 미자라는 여자가 왔다. 그녀 또한 전쟁이 터지던 날 폭발사고로 남편을 잃은 불운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네 아이를 더 낳게 된다. 작가의 분신인 ‘지형’은 그들의 첫째 딸인 것이다. 

제주도에서 말을 키우기도 하고 서해안에 와서 새우를 키우기도 하던 이섭. 사람들은 신수가 번듯하고 배운티도 많이 나는 이섭이 왜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못하고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사업을 하며 전국을 떠돌아야 하는지 궁금해 하지만 이섭은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쓰게 웃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한 번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힌 사람은 취직을 하기도 어디 한 군데 정착하며 살기도 힘든 것은 물론 오촌 친척의 해외 지사 발령까지 불가능하게 만드는 ‘연좌제’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제주도 말 목장도 해안의 새우 양식장도 결국 예전 장인의 도움 없이는 차릴 수 없었던 것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았던 이섭. 그는 새로운 가족들과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예전 아내와 아이들을 잊지 못한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자칫 무겁고 답답하기만 한 내용일 수도 있는 이야기는 김이정의 물 흐르듯 유려한 필력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의 글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건너 온 이모 윤과 그녀의 딸 미희를 지형이 처음 만날 때의 느낌을 간단하게 묘사한 이런 글을 보라. 

“서울 사람들은 전부 얼굴이 하얗디야. 우리 언니가 서울 갔다 왔는디 거기 사람들은 수돗물을 먹어서 얼굴이 다 그렇게 하얀 거랴.” 
  지난봄, 숙자가 자랑처럼 한 말이었다. 숙자의 언니가 방직 공장에 취직하러 서울에 다녀 온 직후였다. 
  일본은 서울보다 수돗물이 더 잘 나오는지, 그들은 유난히 희었다. 몸 전체에 석회라도 발라 놓은 것 같았다. 미희는 밑단에 흰 수술이 달린 큰 꽃무늬 반팔 상의와 곧은 다리가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신고 있는 흰 에나멜 구두가 내리꽂히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작가는 소설에서처럼 실제로 어느 날 아버지가 자기 형제들을 불러 앉혀놓고 이제부터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리며 ‘유령의 시간’이라는 제목까지 그때 정해 두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김이정은 아버지가 시작한 글을 40년 만에 완성하게 된 셈이고 어차피 그 일은 오빠 대신 소설가가 된 자신의 몫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소설의 초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였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도서관에 나가 글을 쓰는 것 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이 소설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이 글이 그에게 구명보트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꼭 해야 할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게 김이정의 개인사처럼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의 질곡과 만나는 지점에 있을 경우에는 많은 독자들에게 더욱 묵직한 울림이 되는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 농단 등으로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시기에 허무를 견디는 심정으로 출퇴근 시간마다 전철 안에서 악착 같이 이 책을 읽었다. 책 뒷표지에 실린 소설가 김미월의 글 일부가 내 소감과 거의 똑같기에 이 글의 결론을 대신해 여기에 옮겨둔다.

모든 훌륭한 소설이 그러하듯이 [유령의 시간]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마침내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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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재법 선이 굵은 사회파 드라마를 연출했으나 요즘은 '살짝 막장성 드라마'로 외도를 함으로써 시청률의 달콤함을 맛본 모 PD에게 동료 PD가 장래가 촉망되는 어린 작가를 하나 소개해 줬다. 

"야, 얘가 아주 골때려요. 제2의 임성한이라는 소릴 듣는다는 앤데, 사고가 아주 자유롭고 튀어." 

호기심이 생긴 모 PD는 다음날 그녀를 방송국으로 불렀다.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자신이 요즘 구상하고 있다는 작품에 대해 피처링을 시작하는 그녀.

"일단,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해요. 그런데 대통령직을 시작하는 수락 연설문부터 그녀 대신 읽고 고쳐주는 여자가 있어요. 최 마담이라고. 그녀는 대통령이 어렸을 때부터 따르던 어떤 사이비 교주의 다섯번째 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의 인연으로 그녀는 대통령이 읽는 모든 연설문의 초고를 첨삭지도해요. 아, 인사에도 개입해요. 장관도 추천하고 고위 공직자도 자르고 그래요. 그리고 대통령 옷이나 핸드백도 죄다 이 여자가 챙겨줘요..." 


잠깐, 그럼 대통령은 뭘 하지? 모 PD가 중간을 자르고 물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대통령은 그녀가 시키는대로 읽고 말하고 입고 오가며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게 돼요. 그녀 역할이 좀 비는 거 같아서 제가 '유체이탈화법'을 하나 고안했어요. 자기 책임이 불거질 일이 생길 때마다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화법이에요. 그녀는 스스로는 얘길 잘 안 해요. 어쩌다 최 마담이 바빠서 첨삭지도를 놓치는 날엔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만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같은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 튀어나와요. 이렇게 대본을 쓰면 욕을 먹겠지만 상관 없어요.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계속 이 드라마를 볼 테니까요. 그리고 아주 가끔씩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같은 코엘류 식의 잠언을 하나씩 심어요. 여당은 살아남기 위해 이 사실들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죠. 야당은...에, 야당은 그냥 병신들이라 몰랐다고 할까요? 좀 리얼리티가 떨어지긴 하지만 뭐 꼭 틀린 말도 아닌 거 같고. 

최 마담이 재단을 설립하면 하루만에 허가가 나와요. 자주 다니던 마사지센터 사장을 바지사장으로 앉혀도 다 돼요. 재벌들이 수백 억씩 거둬주니까. 아, 그리고 막판엔 CF감독도 하나 등장해요. 그 사람을 거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문화판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데 그를 최 마담한테 소개한 남자는 전직 호빠 마담쯤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황당할수록 재밌잖아요. 이왕 지르는 거 막 쓰죠 뭐. 최 마담의 딸은 말을 타는데 얘가 말 타면서 여러 사람의 목을 베요. 스물 살에 애도 하나 낳구요. 애 아빠는 아직 어리니까 그냥 '전직 삐끼' 정도로 처리할까요?

그러다가 최 마담이 도망가면서 컴퓨터를 건물 관리인한테 맡겨요. 그런데 어떤 기자가 그걸 우연히 손에 넣고 보니 거기 그동안의 대통령 연설문이나 외교문서가 고스란히 다 들어있는 거죠. 말하자면 최 마담의 집이 사실상의 청와대 집무실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거죠. 바로 전날 대통령은 개헌을 하자고 쉴드를 쳐놓은 상태인데...

눈이 동그래져서 그녀의 얘기를 듣던 모 PD는 손을 번쩍 들어 그녀를 멈추게 하고는 급히라 부하직원을 불렀다. 

"야, 이년 당장 치워라. 어따대고 이런 개막장을...도대체 지금 니가 씨부린 것들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이 미친년아?"


그 후로 장래가 촉망되던 그 어린 작가는 모 PD가 하도 여기저기 치를 떨며 악소문을 내는 바람에 아주 연예계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고 그리하여 우리는 '제2의 임성한'이 될 아까운 재목 하나를 놓치게 되었다는 아주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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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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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이승연 배우가 나오는 독립영화를 논현동에 있는 '이디야커피랩'에서 보게되었다. 이디야 커피랩 사장께서 매장 한 곳에 'E씨네'라는 아주 작은 상영관을 만들어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한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어제 상영작은 [내 청춘에게 고함]으로 잘 알려진 김영남 감독의 [뜨거운 차 한잔]. 2005년도에 찍은 40분가량의 단편이다. 불치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어쩐 일인지 다시 건강해졌다는 진단을 받고 어리둥절해 하는 딸. 병원에서 나온 딸은 아버지에게 택시를 타고 돌아가라 하지만 아버지는 걸어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화가 나서 아버지와 헤어진 딸은 네 살난 아이와 함께 읍내로 나갔다가 당구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던 남자를 만나 모텔로 간다. 그들이 섹스를 하는 동안 모텔 주변에서 놀던 아이는 사라진다. 

아이에게 낚시를 가르치는 할어버지, 새로 생긴 남자친구에게도 위안을 얻지 못하는 엄마, 서울에 있는 친오빠와의 가시돋힌 전화, 엄마의 불안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어린 아들, 전남편에게서 온 편지...등등 영화는 숨겨진 많은 애기들을 뒤로한 채 아버지와 딸 사이에 놓인 차 한잔을 바라보다 끝을 맺는다. 

비록 톤이나 화법은 달랐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롱테이크로 천천히 움직이다가 장면전환할 때마다 약간의 여운을 주는 카메라워크가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필름으로 찍었다는데 정작 어제는 필름으로 보지 못해 아쉬웠다. <뜨거운 차 한잔>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장편으로 개작을 하려다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엎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이승연의 연기는 11년 전인데도 그 내공이 엄청나다. 그녀가 내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다. 작은 영화관에 열 명 남짓 모인 관객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그 열기와 진지함은 어떤 시서회장보다도 뜨거웠다. 이렇게 작은 영화들이 일반 관객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라꼴이 하도 말이 아닌 때라 영화 보는 것도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지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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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새벽 산길을 혼자 걷는 상상을 해보자. 아니면 해가 뉘엇뉘엇 지는 풍경이 무심히 펼쳐지는 홍대앞이나 서촌의 골목 또는 이면도로도 좋다. 이 그림들이 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펼쳐지는 건 상상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시간에 그 길을 걸어본 적이 있어서다. 그렇다. 나도 산책을 좋아한다.

'나도' 라고 쓴 이유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인간들이 산책을 좋아한다고 이미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어지간히 걷는 것을 좋아했는지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떠올린다”라고 했고 칸트는 매일 마을길을 산책했는데 그 시간이 늘 일정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칸트처럼 강박적으로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는 건 미친 짓이다. 왜냐하면 산책의 진정한 묘미는 '목적이 없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은 어디어디까지 걸어봐야지' 하는 정도의 마음을 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목적지가 너무 분명하거나 몇 시까지 어디를 꼭 갔다와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걸 산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마 이번에 [산책 안에 담은 것들]이라는 산문집을 낸 이원 시인도 나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새벽에 깨어 홀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원 시인. 그녀는 왜 산책을 좋아하는 것일까. 내 생각엔 산책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는 걸으면서 하는 '비움'일 수도 있겠다. 산책하는 사람의 발걸음은 가볍고 허허롭다. 두 다리는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은 머릿속에 있는 상념들 사이를 거닐고 있다. 그 상념들은 도서관에서 마주쳤던 책들이기도 하고 극장에서 보았던 수천 편의 영화이기도 하고 자신이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원 시인이 걷는 길은 그곳이 절두산 성지든 홍대앞이든 결국은 시인의 마음 속 길에 다름 아니다.

어떤 때는 울 일이 있어 9Kg의 몸무게가 빠지도록 몇 달을 계속 울기도 했던 시인은 결국 또 다시 힘을 낸 자신의 두 다리 위에 몸을 실어 산책길에 나선다. 그녀에게 '산책은 한가로운 시간인 동시에 뜨겁고 깊은 시간'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는 곳이 달라질때마다 어떤 날은 경복궁역 2번출구로 나와 이상이 살았던 집터 앞에 무한정 서서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 골목을 찾게 만드는 힘, 문화는 다름 아닌 그것이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은평구에 있는 진관사 입구까지 걸어가 합장을 하기도 한다. 그녀가 그동안 걸어다닌 홍대, 한강, 명동, 시장, 골목, 동네, 갤러리는 물론 멀리 파리의 골목에 가서도 그녀는 어떤 특별한 것을 하지 않는다. 그저 걸음으로써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들 뿐이다. 


이 산문집은 한 번에 휘리릭 읽히는 책이 아니다. 어떤 때는 시인다운 아름다운 문체로 이루어진 깊은 잠언을 들려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수다스러운 누나처럼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의 비밀들을 알려주기도 하는 이원의 산문들. 그러니 이 책을 한 번에 휘리릭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저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우리가 하루에 한 번씩 짧은 산책을 하듯 이 책도 한 챕터씩, 또는 몇 장씩 아껴가며 읽는 것은 어떨까. 나는 이번주 토요일에 저자와 함께 이 책을 들고 홍대와 절두산 주변을 산책할 것이다. 아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 나도 운 좋게 그 행사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책을 들고 시인과 함께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산책이라니. 벌써부터 토요일 아침이 기다려진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쓴 '우리동네'에 대한 짧은 글을 여기에 옮겨본다. 

우리 동네가 된다는 것. 슬리퍼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어슬렁거리는 동선이 생긴다는 것. 잘 모르는 가게 주인과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뒷골목에 있는 오래된 빵집과 오래된 떡집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 가장 맛있는 떡과 빵을 고를 수 있다는 것. 지도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곳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 길을 자꾸자꾸 발견하게 된다는 것. 알게 되는 골목만큼 잠시 멈춤, 즉 간단(間斷)의 시간도 늘어난다는 것.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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