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어지럽거나 뭔가 머릿속이 정리가 잘 안 되는 느낌이 들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들을 다시 꺼내 읽는 버릇이 있다. 오늘도 그런 이유로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 중 <시나가와 원숭이>를 먼저 읽고 다음 작품으로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를 골랐다. 신기한 것은 읽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군데군데 내가 볼펜으로 밑줄을 쳐놓은 문장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단편은 메릴린치에서 증권 거래인을 하다가 갑자기 아파트 계단 사이에서 맨몸으로 사라져버린 남편을 찾으러 온 여자의 사연을 듣게 된 탐정의 얘기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얼마 전에 읽은 [달과 6펜스]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폴 고갱도 주식 중개인이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어느 날 부인과 아이들을 남겨둔 채 혼자서 타히티로 떠나 버렸다. 어쩌면...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설사 고갱이라고 하더라도, 지갑을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테고, 만약 그 시절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가 있었다면, 그것도 잊지 않고 가져갔을 것이다. 어쨌든 타히티까지 가야 하니까.

여기까지 읽고 나서 나는 에버노트에 끄적여놨던 [달과 6펜스] 독후감의 초안을 다시 꺼냈다. 책을 읽은 다음날 급하게 메모를 조금 했다가 일이 바빠져서 중단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래, 오늘은 이 책의 독후감을 마져 써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초반의 영국 런던. 성실한 가장이자 증권 브로커였던 평범한 남자가 갑자기 집을 나간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여자나 노름에 미쳐서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화가가 되고 싶어서란다. 너무나도 유명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도입부다. 나는 이 소설을 고등학교 때 삼중당문고라는 작은 문고판으로 읽었다(신기하게 아직도 내 책꽂이에 그 문고본이 꽂혀 있다). 어린 나이에 읽기에는 조금 버거운 내용이었는데 당시에도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일탈은 꽤나 매력적이었고 그게 화가 폴 고갱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대목에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 [달과 6펜스]를 마흔 살쯤 다시 읽어보면 새로운 게 보일 것이라고 쓴 글을 읽었다. 마음이 혹했다. 다시 읽어서 새롭지 않은 소설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서울 변두리에 살던 어느 고등학생의 겨울을 흔들어 놓았던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라면 다시 한 번 만날 만 하지, 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회고록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스스로가 성공한 극작가이기도 했던 서머싯 몸은 화자를 런던에서이제 막  필명을 얻기 시작한 풋내기 극작가로 정하고 그가 만나게 된 찰스 스트릭랜드의 첫인상으로부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아무런 느낌이 없는 평범하고 덩치가 큰 남자였다, 로 요약된다. 주인공이라고 멋지거나 특이하거나 굳은 신념이 있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시작부터 사람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영웅담을 경계해야 한다 말하며 자신만의 '현대적인' 캐릭터 작법을 펼친다. 즉, 신화나 옛날 이야기에 나오던 멋진 주인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만으로도 얼마든지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1919년에 발표된 소설임을 생각하면 놀랍도록 모던하고 스마트했던 작가다. 훗날 영국 첩보국의 비밀 스파이로도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던 서머싯 몸은 작가이면서 동시에 멋진 카피라이터이기도 했다. 자신의 소설을 팔기 위해 백만장자 미망인의 이름으로 '서머싯 몸의 신작 장편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와 닮은 남편감 구함'이라는 가짜 신문광고를 냈던 것이다. 그 꼼수 덕에 그의 소설이 날개 돋힌듯 팔렸음은 물론이다.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샜다. 아무튼 그렇다면 이 평범하던 남자 찰스 스트릭랜드는 어떻게 해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서머싯 몸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고갱의 일화를 찾아 타히티로 여행을 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타히티에 찾아 간다고 고갱의 일생이 일목요연하게 짠, 하고 펼쳐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판단하기보다 알고자 하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서머싯 몸의 이 문장은 소설가라는 직종이 학자나 기자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 어떤 남편이 이유 없이 가출한 사건이 있다고 치자. 기자는 육하원칙에 따라 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쓴 짧은 기사는 그것만으로 명쾌하게 사건의 개요를 말해 준다. 필요하다면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심리학자의 의견을 덧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몇 줄의 기사만으로는 그 사건의 주인공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오다가 어떤 순간에 그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잘 설명되지도 않는다. 인간은 논리적으로만 행동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소설가의 몫이다. 소설가는 단 몇 줄로 요약될 수도 있는 사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이야기의 뼈대를 다시 맞추고 살을 붙여 입체적인 작품으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에겐 서머싯 몸 같은 입심 좋은 소설가가 필요한 것이다. 작가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부인을 옆에서 지켜보는 젊은 극작가를 등장시켜 주인공이 떠난 파리에 가서 그를 만나게 한다. 그런데 막상 만나본 그는 예술가로서 성공하려는 야심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고 딱히 돈이나 편안함을 바라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지만 남의 평판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뼈져 죽어요.' 라고 뇌까리며 그림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만을 표출할 뿐이다.

"그 사람 정말 천재일세. 확실해. 지금부터 백 년 후에 말일세. 사람들이 자네나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와 알고 지낸 덕분일걸세." 

지금이라도 누군가에게 팬심을 나타내고 싶을 때 써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 이 문장은 파리에서 찰스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감탄하던 더크 스트로브의 말이다. 그러나 찰스는 자신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더크에게 내내 시쿤둥할 뿐 아니라 나중에 찰스에게 반해 남편을 버리고 자신에게로 달려 온 블란치 스트로브에게도 매몰차게 굴어 결국 자살에 이르도록 만든다. 그런데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찰스는 자신의 생활이나 행복에 대해서도 철저히 무관심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의자에 앉을 때도 편한 의자에 앉는 법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생겨났을까. 

위에서도 한 번 얘기했듯이 작가는 판단하기보다 알고자 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서미싯 몸은 이런 이상한 사내의 삶을 파고들어 역설적으로 보편적 인간들의 특질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소설을 빌어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특질로 형성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라고 털어놓는다. 그렇다.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모순과 순리를 잘 나타내기 위해 작가는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인생의 굴곡이 뚜렷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다. 

'달과 6펜스'란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기저기서 마르고 닳도록 다루어 새삼 얘기하기에도 입이 아프니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찰스의 인생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 있고 그의 그림에 대한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눈부시지만 그것 말고도 사랑이라든지 사람, 소설 작법 또는  하다 못해 인상파 화가들에 대해서까지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가 지뢰처럼 여기저기 심어놓은 영리하고도 능숙한 달변들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크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면 소설 쓰는 일과 소설가의 자세에 대한 서머싯 몸의 독설은 이런 식이다.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책들, 책들이 출판될 때 저자들이 갖는 밝은 희망,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생각하다 보면 그것이야말로 유익한 수양이 된다. 어떤 책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봐야 한철의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책을 산 독자에게 그저 몇 시간의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또는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애를 썼으며, 얼마나 쓰라린 체험을 하였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서평을 통해 판단해 보건데, 이들 책 가운데는 심혈을 기울여 쓴 좋은 책들이 많다. 구상에 고심한 책도 많다. 심지어는 평생의 노고를 바친 책들도 있다. 내가 여기에서 얻는 가르침은 작가란 글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읽으면 한숨을 내쉬며 절망할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정작 서머싯 몸은 글로 돈을 아주 많이 벌어 대저택에서 살다가 1965년 91세로 영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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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말 중에 '간이 부었냐'는 표현이 있죠. 겁을 상실했냐는 놀림성 질문입니다. 


여기 그런 표현과 딱 맞는 광고가 있습니다. 콘돔 광고입니다. 원자력 사고 현장에서 보호 장구 없이 일을 한다거나 시가전에서 혼자 빨개벗고 있다거나, 유조선 화재사고에서 방화복 없이 일을 하는 것이나 모두 정신 나간 짓이겠죠. 콘돔 없이 섹스 하는 게 이런 것과 똑같은 행위라는 얘기를 직설화법으로 풀어놨습니다. 그리고 패키지엔 '너 자신을 보호하라(D'ONT BE STUPID : Protect yourself)는 경고가 크게 쓰여 있구요. 외국의 콘돔 광고들은 재미있는 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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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으로 이사를 와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었다. 아파트에서는 없던 우리만의 뒷마당이 생겼고 거기엔 동네 길고양이들이 이따금씩 출몰했다. 단독주택이긴 했지만 내부는 단칸방처럼 좁디좁은 집이고 또 우리 부부는 고양이나 개를 기르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지나가는 고양이라도 우리에겐 반가운 손님이었다. 아내가 어느날 고양이 사료를 사오더니 뒷마당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사료와 물을 놓아 두기 시작했다. 그릇은 이가 빠지긴 했지만 노란색 루꾸르제 대접이었다. 그러자 길고양이들이 와서 먹이를 챙겨 먹었다. 계단 밑에 스티로폴 상자에 담요를 깔아두기도 했지만 거기 와서 잠을 자는 고양이는 없었다. 

길고양이들의 겨울나기는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길에서 아무 거나 먹고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 시동이 꺼진지 얼만 안 되는 자동차 엔진 밑에서 잠을 자다가 아침에 변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병원에 데려가주는 주인이 없으니 병에 걸리면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거나 앓다가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길고양이들의 수명은 아주 짧다고 한다. 

아내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 와서 사료를 먹던 고양이 두 마리를 양일이, 양이라고 불렀다.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녀석이들이었는데 새끼가 먹이를 먹을 동안 어미는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제 새끼가 배불리 먹이를 먹고 나면 비로소 자기도 와서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일이 양이 사이로 양삼이가 나타나기도 했고 나중에 양사까지 나타나 먹이를 두고 서로 으르렁거렸다. 우리는 큰 덩치로 기존의 고양이들을 윽박지르고 먹이를 독차지하는 양삼이를 미워했다. 게다가 어느날인가부터 양일이와 양이가 차례차례 보이지 않게 되자 그 미움은 더 커졌다. 양삼이는 덩치가 크고 검은 색깔 털을 가진 고양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양삼이도 양사도 결국은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 신세인 것을. 그래, 너라도 많이 먹어라. 아내는 양삼이, 양사, 그리고 양오까지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아낌 없이 사료를 퍼주었다. 양오는 한쪽 귀가 조금 잘린 놈이었다. 나는 고양이들끼리 싸우다가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내는 어딘가 잡혀가서 중성화를 당하고 다시 풀려났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렇게 번갈아 먹이를 나누어 먹다가 어느날인가엔 결국 모두 사라지고 양오 하나만 남게 되었다. 

양오는 도대체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면 베란다 위에 앉아서 우리를 힐난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이제야 일어나는 거야? 이 게으른 것들. 어서 먹이를 줘."라고 하는 듯한 얼굴을 한 채 발걸음을 계단쪽으로 향했다. 어떤 날은 저녁때도 찾아와 먹이를 요구했다. 아내는 기가 막힌다고 하면서도 그때마다 양오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양오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우울한 목소리를 “여보, 양오가 안 보여.” 하며 걱정을 했다. 아침마다 마당으로 나가면 늘 우리를 쳐다보던 놈이 안 보이니까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작은 집에 사는 두 사람에겐 길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가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그런데 만우절인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거짓말처럼 양오가 돌아와 있었다. 없어진지 사흘 만이었다. 다행이다. 어딜 갔다 이제 온 거야.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저 어서 밥을 달라고 우리를 노려볼 뿐이다. 아, 이런 놈에게 계속 밥을 줘야하는 건가. 생각해 보면 우리도 참 불쌍하다. 그래도 잘 돌와왔어. 웰컴백이다, 양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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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311812


누구나 일탈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정해진 길은 재미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우림이라는 밴드는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하고 노래했었죠. 그런데 그런 현대인의 욕구를 잘 건드린 캠페인이 나왔습니다. On-air 된지 며칠 안 된 유니클로 '감탄바지'바이럴입니다. 사실 본편 CM까지 그리 재미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좀 더 길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바이럴에서는 드라마틱한 설정과 과장, 유머를 마음껏 살렸습니다. 남궁민이라는 모델도 흡입력이 있고 '감탄바지'라는 네이밍조차도 캠페인을 도와주고 있는 느낌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보셨나요? 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아니냐고 애기하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유머의 디테일을 이토록 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바이럴이 범람하는 요즘 같은 시대라면.  요즘은 클라이언트들마다 바이럴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다 넣고 오너들의 개인 취향까지 반영한 이상한 바이럴을 만들게 하고는 그게 널리널리 퍼지길 바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실 바이럴은 말 그대로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퍼지는' 건데 말입니다.

오늘 이 바이럴을 보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외국 레퍼런스를 보고 잘 만들었다고 하는 것과 우리나라 동업자들이 만든 작품을 보고 좋다고 칭찬하는 건 정말 다른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도 당장 '재미있는' 바이럴 아이디어를 내라는 명령을 받고 끙끙대고 있는 빚쟁이 같은 입장이라서 괴롭습니다. 방법이 있나요.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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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그라나다 방송국에서 송출감독으로 20여 년간 일했던 리 차일드라는 사내는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난다. IMF가 기승를 부리던 시절,구조조정에 휩쓸린 것이다. 퇴직 소식을 들은 그는 밖으로 나가 곧장 '6달러짜리 펜과 노트'를 산 뒤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그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 머리 좋은 람보 - '잭 리처' 시리즈의 첫 권이었다. 


근대 이후 어떤 시대든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하는 가장 크고도 지속적인 고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일 것이다. 존재론과 맞닿는 이 고민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고민으로 옮겨가기 일쑤인데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 두 가지 질문에 힌트를 주는 반가운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홍순성의 [나는 1인 기업가다]이다. 과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위에서 예를 든 리 차일드 같은 경우는 정말 꿈 같은 얘기다. 직장을 그만 두고 이렇게 대중소설을 써서 단박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분명한 건 싫든 좋든 누구에게나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 이제 우리는 거의 80세까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저자가 책 앞머리에서 소개한대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나 [쿨하게 생존하라]의 저자 김호 씨는 '직장과 직업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직업은 직장과 관련은 있지만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 직장'보다 중요한 '평생 직업’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먼저 모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홍순성은 블로그 필명 '혜민 아빠'로 잘 알려진 1인 기업가다. 그도 한 때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직장을 버리고 독립을 결심했다. 그의 전공은 IT와 스마트 워킹이었지만 점점 작업과 공부의 지평을 넓혀 지금은 스마트워킹 컨설턴트, 전문 인터뷰어(팟캐스트 운영), 1인 기업 매니저(액셀러레이터), 그리고 8권의 책을 쓴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무엇이 그를 ‘1인 기업가’로 변신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우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었다’고 말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 한 번 하고 서류 작업 좀 하다가 점심 먹고 들어오면 시간이 훌쩍 간다. 자기 일만 해도 모자랄 판에 단체 생활을 위한 ‘쓸데 없는 일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독립을 하면 최소한 그런 일들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좋아서 하는 일보다 시켜서 하는 일이 더 많다. 물론 전문적인 일일 순 있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서도 그 전문성이 나를 따라다니며 계속 아이덴티티를 지켜줄까? 뭔가 나만의 컨텐츠를 개발해야 했다. 그는 그 길을 ‘온라인’에서 찾았다. 

그전까지는 일단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 책상 앞에 앉아야만 사무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거의 모든 게 온라인과 모바일 디바이스로 해결 가능해졌다. 홍순성은 아침에 커피숍으로 출근을 할 때가 많다. 거기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혼자 생각한 것들을 노트북에 정리하고 자료도 서치한다. 강의 준비를 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한다. 뭔가 생각한 것을 남기는 곳은 우선 블로그다. 1인 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일단 남과 다른 생각이 필요한데 그 생각은 글로 증명되어야 하고 어딘가에 남겨져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여기 저기서 ‘글쓰기와 블로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블로깅, 또는 SNS를 하기 때문에 글쓰기의 중요성은 한층 더 커졌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누차 말한다. 잘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라고. 

이 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1인 기업가’가 되라는 허무맹랑한 강요를 하진 않는다. 대신 직장에 있을 때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차근차근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하는 일에 더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이 없으면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 해도 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세 가지를 버렸다는데 그 첫 째는 운전대다.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다니며 시간적 여유도 즐기고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리고 무거운 가방과 조급한 마음도 버렸다. 새처럼 가볍게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 뿐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하우들도 알려준다. 새로운 생각은 수첩에 적기도 하고 마인드맵이나 워크 플로위, 에버노트 등에 수집, 기록한다. 구글 알리미 서비스를 이용하면 좋다고도 알려 준다(난 아직 쓰지 않고 있지 않지만). 그는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다 알았을까. 아마도 스마트 워킹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버린 것이고 그 노하우들은 그대로 독자들에게도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나도 홍순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에버노트 전문가’ 로서였다.



예전에는 10년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10년 일하면 감각이 다하고 진이 빠져 물러나야 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의 특별한 가치와 ‘즐겁게 일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저자는 말한다. 초기엔 하고싶은 것만 하는 만용을 부리기 쉬운데 그것은 ‘예술가 마인드’다. 이건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는 ‘장사꾼 마인드’도 있다. 예술가에서 장사꾼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사람만이 ‘1인 기업가’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 다닌다고 남의 사업을 다 성공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창업 관련 전문가라고 해서 창업 상담할 때마다 대박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홍순성은 좀 믿을 만하다. 일단 남들보다 먼저 바람 부는 벌판에 나와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1인기업’을 몸소 일구어봤고 지금도 끊임없이 구체적인 노하우를 축적, 전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 경험은 여전히 블로그, SNS, 팟캐스트 등 다양한 채널로 업데이트 되며 누구나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여러번 주장했듯이 책만큼 생각이 잘 정리되고 집약적으로 전파되는 매체도 드물다. 

이 책은 당장 ‘1인 기업’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고마운 선물이 되겠지만 나는 그보다 지금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독립이 필요한 사람에겐 그대로 따라해야하는 메뉴얼일지 몰라도 아직 약간의 심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는 ‘인문학적’ 접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의 마지막 페이지는 늘 새로운 생각을 위해 백지로 비워져 있다고 했던가.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 마음의 불씨는 홍순성이라는 저자가 피웠을지 몰라도 그 불을 가꾸어 가는 것은 오직 독자인 당신의 몫이다. 정답은 없고 이미 경험한 자의 진솔한 충고만 있을 뿐이다. 다행히 그 충고는 매우 유용하고도 구체적인 듯하다. 

 (*사족 : 내가 읽은 책은 초판1쇄인데, 218페이지 셋째 줄에 이원태 작가를 ‘이원탁’ 이라고 썼다. 아마도 같은 문장에 나오는 김탁환 작가 때문인 것 같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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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책꽂이에서 J.D 샐린저의 단편집 [아홉 가지 이야기]를 꺼내 <웃는 남자>라는 단편을 읽었다. 1920년대 맨해튼에 살던 꼬마의 이야기다. 소년은 '코만치 클럽'이라는 어린이 야구단에 소속되어 주말마다 낡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시합을 하러 갔는데 이 팀의 코치 겸 운전사가 '추장'역할을 맡고 있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추장은 버스를 운전하고 가다가 어느 순간 멈춰서서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 아이들을 매료시킨다. 그 주에 하던 얘기는 '웃는 남자' 였다. 어렸을 때 중국인들에게 납치를 당해서 얼굴이 망가진 남자의 복수극인데 매번 클라이막스에서 끝나고 다음 주를 기약하는 방식이라 아이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버스 운전석에는 어떤 여자의 사진 액자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녀는 추장의 애인인 메리 허드슨이라고 했다. 정말인가 아닌가 궁금해 하던 차에 어느날 추장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여자를 태우고 야구장으로 갔다. 그녀가 바로 메리 허드슨이었다. 그녀는 포수 그러브를 끼고 그날 감기에 걸려 시합에 빠진 친구 대신 이루수를 맡아 경기를 하며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웃는 남자와 메리 허드슨. 소년은 아마도 이 두 가지 때문에 매주 코만치 클럽 시간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메리 허드슨은 추장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소년의 행복한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추억의 드라마 <캐빈은 열두 살>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저녁 TV에서 들려오던 캐빈의 목소리. 캐빈의 형이 월남전에 나갔다가 죽었으니 이 소설과는 연대가 안 맞지만 그래도 이 단편을 각색해서 그때처럼 드라마로 만들고 배한성이 더빙을 하면 그 느낌이 얼마나 애잔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노란 석양을 배경으로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떠난 뒤 힘없이 현관문을 들어서는 소년의 뒷모습이 꽤나 쓸쓸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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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명동 엘칸토 예술극장에서 피터 한트케의 언어유희극 <카스파>를 본 적이 있다. 아무런 사정 정보 없이 보게 되었는데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인극이라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연극 도중에 목이 칼칼해서 계속 '음,음...'하고 헛기침을 했는데 배우가 갑자기 연극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노려 보며 "거, 연극을 볼 때는 그 목으로 음,음...소리 좀 내지 말아요!"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배우도 좀 너무 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인 나는 너무 놀라고 무안해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었다. 그러니 어찌 그 연극을 잊을 수가 있으랴.  


내게 명동은 구두와 연극의 거리였다. 엘칸토 예술극장이라는 이름도 금강제화라는 구두회사의 후원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을 것이다.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본 것도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창고극장은 사라졌고, 엘카토예술극장도 없어졌다. 그런데 언제인가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동네에 사는 김진경 연출가가 이 연극을 우리에게 추천했고 아내가 김광덕 배우에게 예약을 부탁했는데 마침 예약 취소된 자리가 있다고 해서 운 좋게 빨리 그 연극을 보게 되었다. 어제 저녁 연극을 보고 나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급하게 관람후기를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오늘 정신을 가다듬고 독서일기를 하나 올린 뒤 오자 수정을 해서 여기에도 다시 한 번 올려 본다. 


아아. 내가 이렇게 문화 생활을 자주 해도 되는 걸까. 성북동으로 이사 온 뒤로 영화는 좀 줄었는데 오히려 연극 나들이가 부쩍 늘었다. 배우들이 이웃에 살아서 그런가 보다. 오늘은 명동예술극장에서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로버트 알폴디가 새로 해석한 연극 [메디아]를 관람했다. 성북동에 사는 여배우 김광덕 씨가 코러스로 출연하는 작품인데 오랜만에 보는 배우 이혜영 주연 작품이라 더욱 기대가 되는 연극이었다.

난 어렸을 때 엉터리로 읽은 기억이 조금 나긴 하는데(그리스 비극이 다 그렇듯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배신, 분노, 복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나는 이혜영의 목소리와 억양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번 연극의 타이틀 롤인 메디아 역으로는 이혜영 이외의 배우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딱 적역이었다(단 8분 간 출연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남명렬 배우 - 요즘 아로나민 골드 CM에 나와 '드신 날과 안 드신 날의 차이을 경험해 보십시오' 라고 말하는 분 - 도 좋았다) 같이 출연한 김광덕 씨는 이혜영 선배와 출연하며 그 카리스마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믿었던 남자 이아손에게 배신을 당한 메디아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배신자에게 가장 큰 아픔을 남기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그건 바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최고의 복수는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스스로 용서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비극의 장치로서 이보다 더 센 선택은 없을 듯하다. 감독은 신들의 이야기였던 원작에서 신의 영역을 모두 삭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러브 스토리'로 개작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혜영 배우에게 들은 얘기지만 '분노는 큰 사랑에서 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앞뒤로 움직이는 기다란 의자를 이용한 심플한 무대도 멋졌고 그리스 비극이지만 모두 현대 의상을 입고 나오는 점도 좋았다. 다만 유머가 거의 없는 정극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좀 힘들었다. 그리고 해설을 대신해 가끔 나오는 직설적인 대사는 너무 친절해서 짜증이 났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내 앞에서 일어서던 여자 관객은 옆 친구에게 "야, 내 기가 다 빨린 느낌이다." 라며 웃었다. 두 시간 내내 계속된 열연과 긴장감에 약간 탈진을 한 것이다. 물론 연출가도 배우도 관객도 쉬운 길을 마다하고 일부러 선택한, 고되지만 뿌듯한 탈진감이었다.

끝으로 이혜영 얘기 하나만 더.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두 아이를 죽인 뒤라 옷과 손에 피를 묻힌 상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이혜영이 개인적인 얘기를 언급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동안 계속 작품 활동을 하긴 했지만 지난 이십 년간 엄마와 아내로서 아이들 키우는 데만 집중하다가 작년에 연극 [갈매기]를 기점으로 '숨어있던 욕망'을 다시 발견했음을 깨닫고 작품이 끝난 뒤 집에서 일주일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추동력 삼아 이번에 다시 [메디아]라는 작품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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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문체의 향연’에 있어서 우리 글이 도달할 수 있는 빼어남의 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되는 에세이 [자전거 여행] 어딘가에서 김훈은 시장에서 파는 해산물들을 바라보며 ‘인간은 기본적으로 개불과 다를 바 없다. 입과 항문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다 부속물이다’라는 생각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매우 인색한 평가지만 평소 거대담론이나 인간의 신념따위를 도무지 믿지 못하는 그의 솔직한 심정이 서려있는 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비록 역사소설이라 하더라도 권력이나 영웅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개인’으로 귀결된다. <칼의 노래>가 임진왜란 당시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이순신 개인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 것이나 <흑산>도 천주교 박해 당시 나라 안팎의 역사정치적 상황을 파고드는 대신 황사용이나 정약전이라는 개인의 선택에 집중했던 게 그 까닭이다. 

그런 김훈이 일제시대부터 8.15해방, 6.25와 월남전을 지나 10.26과 1980년대를 아우르는 소설을 쓴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 해답이 바로 6년 만에 새로 나온 소설 [공터에서]다. 소설은 마동수라는 한 사내의 초라하고 쓸쓸한 죽음으로 시작된다. 독립문 근처 빈민들이 모여 사는 쪽방촌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그의 생애는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서 매 맞던 모습에서부터 만주를 떠돌아 아나키스트 운동을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영원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던 인물의 약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1979년에 독재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그의 죽음이 다른 소설에서처럼 한 세대를 마감시키고 새로운 탄생을 축복하는 도식도 아니다. 그는 북에서 젖먹이를 잃고 내려온 아낙을 만나 그 사이에서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첫 아이는 장세, 둘째는 차세라 이름 지었다. 

마장세는 월남전에 나가 훈장까지 탔지만 그 이력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대 후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괌으로 가서 고철 사업을 하며 살아간다. 적진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직 살아있던 동료를 죽였던 죄책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터이고 정작 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묘비 사이를 걸어가면서 마장세는 1972년 9월 25일 롱하이에서 덜 죽은 김정팔을 사살한 일은 잘한 일도 아니고 잘못한 일도 아니며, 거기에 잘잘못을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을빛에 반짝이는 말뚝들이 마장세의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끌어당겨주었다. 그때 죽이지 않았더라면 김정팔은 밀림 속에서 혼자 죽거나, 적에게 끌려가서 심문받다가 죽었을 것이고, 실종으로 분류되어 무공훈장도 묘비도 없었을 것이지만 딱히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김정팔을 쏘아 죽인 것은 일이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대로 되어진 것이라고 마장세는 비석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이 잘못되었단 마인가. 마장세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김훈의 소설에서 인간은 똥을 싸고 토악질을 하거나 물비린내에 시달리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존재들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좀처럼 착한 사람이나 악한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닥친 상황과 세상을 겨우 또는 기진맥진 ‘살아내는’ 개인들이 존재할 뿐이다. 김훈의 이러한 비관은 역사소설에서는 비장함과 멋스러움으로 다가오는데 현대소설에서는 그대로 비참함이 된다. 그들은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변방을 떠돌며 고철이나 쓰레기 수거사업을 하고 광야를 달리는 대신 어중간한 ‘공터에서' 서성일 뿐이다. 동생 차세도 오랜 실직 상태에 시달리다 형과 친구의 일을 돕지만 다시 실직 상태가 된다. 모두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달리 방법을 알지 못한다. 

김훈이 이렇게 여러 세대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는 역사와 사회로 곁가지를 치고 뻗어나가지 않고 개인 차원으로 수렴하는 작가의 특질 때문에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로 마감되었다. 그러면서도 근 60년을 살아온 한 집안의 내력과 그 주변인물들에 대한 쓸쓸한 소회가 마음을 서늘하게 적신다. 더구나 형용사와 부사를 배제하는 그의 글쓰기는 주어와 술어의 단조로운 반복이지만 화려하지 않아서 더 화려해지는 역설을 낳는다. 

그도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멋진 영웅담이나 복수극을 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장에 깊은 허무를 탑재하고 있는 김훈이라는 캐릭터는 결코 그런 글을 쓰지 못할 것이고 쓰지도 않을 것이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장석주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허무를 말할 때 그의 문체는 가장 화사해진다’라고 했다. 나도 김훈이 쓴 벚꽃 지는 날에 대한 짧은 글을 기억한다. 미인은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일 때 그 아우라가 더욱 빛난다. 김훈의 글이 그렇다.   


*사족 : 내가 읽은 것은 초판5쇄인데, 188페이지 마동수의 묘지 얘기를 할 때 ‘마차세의 동지들이 거기 묻을 것을 요구했다’라는 문장은 ‘마동수의  동지들’을 잘못 쓴 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마동수에 관한 이야기이고, 마차세에겐 이렇다 할 동지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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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가 일을 저지른다’라는 말이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덥썩 뭔가 시작해버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오늘 아내와 함께 참석한 명로진의 북콘서트 [논어 당일치기]가 그런 경우다. 아무리 요즘 다양한  북콘서트가 유행이라지만 무려 2500년 전 공자의 4대 제자들이 쓴 ‘논어’의 북콘서트라니. 게다가 토요일 아침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당일치기’로 가는 강행군이다. 이만하면 무모한 도전 아닌가.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요즘 경험한 일상 중에 가장 ‘핫’한 시간이었다. 

기자 출신에 한때 연기자로도 활약했던 명로진은 수십 권의 책을 쓴 작가인 동시에 오래 전부터 ‘인디라이터 양성’으로 이름 높은 스타 강사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중국 고전을 소개하는 인기 팟캐스트도 운영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논어를 좀 화끈하게 공부하는 시간을 가질 순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일곱 시간 연속 강의를 생각해 낸 것이다. 

강의는 약속대로 오전 10시 정각에 시작되었다. 명로진 선생이 직접 만든 교재를 펼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읽으면 학생들이 이어서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면 정말 기쁘지 않겠느냐’라고 한글 해설을 읽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소개하면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서당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논어’라는 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도 플라톤의 [국가]나 [소크라테스의 변명] 같은 서양 고전들이 무시로 끼어들고 ‘스키십’이나 ‘사교육’ 같은 현대어들이 적절하게 사용되는가 하면 우병우, 최순실 같은 인물들이 공자님 말씀의 예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진중함을 잃지 않는 철학적 고찰과 해석들이 초롱초롱한 수십 개의 눈동자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약 두 달 전에 이 강의가 기획되었는데 처음에는 강의 신청자가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강의 시간도 길고 강의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명로진 선생은 강의 도중 그런 얘기를 하면서 맨 처음 공고가 나자마자 신청해준 아내 윤혜자를 비롯한 몇몇 분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전달했다. 선생이 공자의 고향에 가서 사온 ‘향나무 공자상’이 그것이다. 비싼 것은 아니라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런 선물을 받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점심 시간에 김밥을 먹을 때 수육을 가져와 나눠주신 분도 있었고 강의 후 간단한 뒷풀이 자리에서는 황현호 선생이 가져 온 ‘마약두부’를 맛보기도 했다. 심지어 꽃다발을 가져 온 플로리스트도 계셨고 커피 머신을 가져와 행사를 도운 제자도 있었다.    

북콘서트 도중에 초대 가수의 진짜 콘서트도 있었다. '술을 마시고’라는 곡으로 유명한 ‘금주악단’이 와서 세 곡을 불렀다. 워낙 독특한 인디밴드라 아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나중에는 앵콜곡으로 ‘낙타’라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가 ‘공자님 말씀 하고 앉았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은 정작 공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명로진 선생은 공자 강의를 기획하면서 스스로 만든 교재 맨 앞장에 이런 글을 인용해 놓았다. 

‘논어를 읽기 전에도 그저 그런 사람이요, 
읽은 후에도 그저 그런 사람이라면 
곧 논어를 읽지 않은 것과 같다.” 
- 정이천(1033~1107) <논어 집주> 

위 글이 아니더라도 한 자리에 모여 논어를 읽고 듣는 일은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정이천의 말대로 논어를 읽은 후에도 '그저 그런 사람'인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왜 그럴까. 

논어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몇 줄의 문장으로 엑기스만 담긴 책이다. 당시에는 그 정도 문장만 있어도 사람들이 다 맥락을 이해 했겠지만 이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그 글만 읽어서는 앞뒤 사정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 '사실 그때 공자의 수제자 자공은 이러이러한 성격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안회라는 제자는 공자에게 어떻게 편애에 가까운 사랑을 받았는지 등등을 설명해 주면서 그 시대에 이러이러한 일화들이 있었기에 아마 이런 문장이 나왔을 것이다'라고 배경을 깔아 준다면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강의를 듣는 동안 우리는 공자라는 인물이 수천 년 전 죽은 전설의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얼마 전까지 존재했었던 '셀럽' 같은 느낌으로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진지하게 그의 사상과 철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이노베이션은 옛것에서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는 눈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오늘 논어를 접하고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변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작은 단초라도 제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은 힘들어서 국악인들도 판소리 완창을 안 한다는 그 일곱 시간 동안 연속 강의를 마친 명로진 선생은 막판엔 기진맥진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오후 다섯 시에 이르니 아이 하나 낳은 아낙처럼 해맑고 뿌듯한 얼굴이 되었다. 

 오늘은 1강에서 5강까지 들었는데 앞으로 20강까지 들어야 ‘논어’를 다 떼는 것이라 한다. 아내는 강의실을 나오면서 앞으로 일요일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있을 논어 강의를 신청했노라 통보했다. 오늘 특강 때문에 회사 가서 일하는 것을 내일로 미뤄 놨는데 앞으로는 당분간 일요일을 피해 토요일에 특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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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을 많이 한 내게 

어느날 산신령님이 내려와 

소원을 한 개만 말해보라 하면 


잘난 놈들 다 죽어버려랏, 

하고 외칠 테고

그러면 나랑 안 친한 애들은 

거의 다 죽어 나자빠질 테고 


나랑 특히 친한 

몇몇 바보들만 

피둥피둥 살아서 

바닷가 술집에 앉아 있겠지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술집에 앉아 있는 

바보들 얼굴이 

벌써 마구 떠오르니




(*3년 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과 사진을 다시 가져와 봤습니다. 비기 와서. 싱숭생숭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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