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한림대 강의 가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결혼정보회사 광고입니다.

결혼을 원하는 타겟들의 심리를 부케라는 소재를 이용해 간단하지만 재미있게 표현했네요. 

요즘은 휴대폰 카메라도 참 쓸만하죠?. 반대편 좌석에 앉아서 당겨 찍었는데도 이 정도로 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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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는 박웅현 ECD. 벌써 몇 년째. 그를 넘어서는 사람이 없다.

 

(저도 어디 가서 강의할 때면 뉴튼의 사과와 아르키메데스의 목욕탕 얘길 자주 하는데 여기서 똑같은 얘기가 나오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하긴 워낙 유명한 에피소드니까요. 이 동영상은 오늘 후배 정신이 페북에서 알려주는 바람에 허락도 없이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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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길위의 생각들 2013. 4. 1. 16:23

 

 

누구든 흔적을 남긴다. 어떻게 남기느냐가 다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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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누군가 제게 그동안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을 다섯 편만 꼽아보라고 하면 무슨 책을 대야 할까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저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 그리고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얘기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소설 중 하나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영화로 옮긴 작품을 IPTV를 통해 보았습니다. 이런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습니다.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누구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오랜만에 찰진 작품을 하나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당장 원작소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감독은 [빌리 엘리어트]와 [더 리더 : 책 읽어 주는 남자]를 만든 스티븐 달드리. 톰 행크스와 산드라 블록 같은 스타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주인공 오스카 역을 맡은 소년 토마스 혼의 연기가 대단합니다. 오스카의 할아버지로 나오는 막스 폰 시도우는 그 존재만으로도 대배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고요. 오스카네 맨션의 도어맨으로 특별출연하는 뚱땡이 존 굿맨도 참 반가웠죠.

 

영화는 매우 독창적이면서 유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오스카의 할아버지가 왜 말을 못하게 됐는지, 또 왜 양 손에 ‘YES’와 ‘NO’를 문신으로 새기고 다니며 의사소통을 하게 됐는지가 원작소설에선 자세히 다뤄지는데 영화에서 생략된 게 아쉽습니다. 소설에선 뉴욕 이야기 못지않게 2차대전 당시의 드레스덴 얘기가 기가 막히게 전개되거든요.

 

천재 작가가 쓴 엄청난 작품을 안정된 연출로 잘 만든 영화이고, 9/11을 다룬 영화라고만 쳐도 폴 그린그래스의 [플라이트93]을 능가하는 작품입니다. 전 이 책이 두 권이나 있었는데 모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받지를 못했습니다. 누구한테 빌려줬는지 기억도 안 나고 해서 결국 오늘 서점에 가서 또 한 권을 샀네요. 전에 써놨던 독후감을 다시 한 번 올려봅니다. 영화도 책도 강추입니다.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면 글은 당연히 무거워지기 쉽다. 반면에 아무렇게나 몸을 놀리며 가볍게 칠렐레팔렐레 쓰는 거 같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보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비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칠렐레팔렐레 천의무봉으로 자유롭게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불가능한 일을 해낸 사람도 가끔은 있는 법이다. 내 생각엔 그가 바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다. 그리고 그가 쓴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홉 살이다. 그의 아빠는 9·11 때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었다. 아빠는 죽기 직전에 다급하게 집으로 여러 통의 전화를 했고 오스카는 그때 자동응답기에 녹음이 되는 걸 알면서도 너무 무서워서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극적인 일이다. 오스카는 그 이후로 전화를 무서워한다.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한다. 전화기를 무서워하는 오스카는 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얘기를 할 때는 무전기를 사용한다. 난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말투를 창조해 낸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가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할머니? 할머니?” “오스카니?” “전 잘 있어요. 오버.” “밤이 늦었어. 무슨 일이냐? 오버.” “저 땜에 깨셨어요? 오버.” “아니다. 오버.” “뭐하고 계셨어요? 오버.” “세입자한테 얘기를 좀 하던 참이었다. 오버.” 그 사람도 아직 안 자고 있어요? 오버.” 엄마는 세입자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단다. 하지만 방금 막 나갔어. 심부름할 것이 좀 있어서. 오버.” “하지만 지금은 새벽 4시 12분인데요? 오버.”

 

 

  오스카는 전화를 무서워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에게 자기를 제자로 삼아달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제인 구달에게서 답장을 받기도 한다. 호킹도 나중에 정중한 답장을 보내온다. 그는 쉴 때마다 공상을 하고 발명을 한다. 보통 아홉 살이 아니다.

 

  어느날 오스카는 아빠의 방을 뒤져보다가 파란색 꽃병을 깼는데, 그 속에서 ‘블랙’이라고 씌여진 봉투와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낸 뒤 여덟 달에 걸쳐 그 사람들을 방문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유는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기 위해서다.

 

  한편, 할머니는 오스카의 아버지를 임신했을 때 남편과 헤어졌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2차대전 당시 드레스덴에서 폭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말을 못하는 상태였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에서처럼 여기서도 드레스덴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그 책도 비극적인 현실을 블랙유머로 펼쳐낸 책이었다. 보네거트와 사프란 포어는 이렇게 만나는 건가?)

 

  노트에 필기를 해서 대화를 했고 왼손엔 “예스”, 오른손엔 “노”라고 문신을 해서 의사소통을 했다. 할머니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제발 저랑 결혼해 주세요.” 그리고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을까 봐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인 일이다. 둘 다 아주 젊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아,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하다 보니 이상해진다.

 

  그냥 짧게 말하겠다. 이 소설은 엄청난 입심과 다채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시도들로 이루어진 멋진 작품이다. 페이지 사이사이 사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글이 딱 한 줄만 써있는 페이지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글씨들이 서로 겹쳐져 볼 수 없게 만든 페이지도 있다. 근데 놀라운 건 그런 시도들이 조금도 치기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가가 말하려는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을 워낙 잘 쓰다 보면 그렇게도 되는 모양이다.

 

  정말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아니, 너무 슬프면 울지 못한다. 그래서 오스카도 아빠의 장례식에 가는 날 리무진 운전기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오스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완벽하게 이해한다.

 

 

넌 운전사와 농담을 하고 했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운전사를 웃겨야 할 만큼 넌 고통스러웠던 거야.


 

 

  이 소설은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로 똑 같은 장면을 찍을 것처럼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화자가 바뀌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깨달음을 선사해 준다. 그런 시선들과 사건들이 쌓이면서 여덟 달 만에 이야기는 마침내 이상한 감동과 함께 따뜻한 위로와 화해의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게 확실해 보인다. 아직 새파란 1977년생인데. 아무래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엄청나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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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건대앞에 있는 서점 반디앤루니스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동네를 가로지르는 구성수동골목을 지나다가 간판이 누워있는 식당이 눈에 들어오길래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마침 식당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나오시더니 제게 묻습니다.

 

"뭘 찍어요?"

"아, 네. 간판이 누워있는게 게 재밌어서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쟤도 나처럼 허리가 아파서 누웠어." 하고 농담을 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 식당이 오래된 건물이라고 저번에도 사람들이 막 와서 사진 찍어가고 그랬어." 아주머니가 또 자랑을 하십니다. 먼저 질문을 던지셨던 젊은 아주머니는 "깔끔하지 않고 이렇게 지저분해도, 뭐 그런대로 괜찮죠?"라고 제법 멋스런 멘트를 날리십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는 저를 이상한 놈으로 보지 않고 편하게 대거리까지 해주시는 아주머니들이 고마웠습니다. "다음엔 밥 먹으러 한 번 올게요." 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안 그래도 된다면서도 좋아하십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주엔 꼭 가야겠네요. 그런데 제 사진 기술이 서툴러서 그런지 대낮에 찍었더니 분위기가 영 안 사는군요. 다음엔 저녁 어스름에 다시 한 번 찍어봐야겠습니다.

 

 

 

동네에서 빠져나와 영동대교 남단으로 걸어가면 보이는 식당입니다. 친구가 식당 한다고 하니까 "그럼, 나도 할래" 그래서 나도식당일까요, 아니면 전라도 식당인데 줄여서 그냥 나도식당이라고 하는 걸까요?

 

 

우리동네엔 곳곳에 진보세력들이 숨어서 활동 중이라고 전에 말씀드렸었죠? ^^

 

 

건대입구쪽으로 가다가 차이나타운을 발견했습니다. 양꼬치를 많이 파는 곳이더군요.

 

 

이런 한자들은 중국인거리에 오지 않으면 보기 힘들죠. 연남동 중국식당가도 생각나네요.

 

 

[연변신세기미용실]. 미용실 이름 죽이죠?

 

 

점을 보거나 무당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 걸 보면 인간은 누구나 다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 봅니다. 그게 보살집이든 타로까페든 앞날이 궁금하고 불안하다는 본질은 다 똑같은 걸테니까요. 그나저나 작두도령은 정말로 작두 위를 걸어다니는 겁니까?

 

 

서점에서 돌아오다가 보니 아파트 들어서는 골목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은 우체통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더라구요. 이삿짐센터나 하수구 수리점, 솜틀집 들은 그새 이걸 또 광고판으로도 활하구요. 처음엔 식용유가 담겼을 저 플라스틱통은 앞으로도 참 오랫동안 저렇게 매달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겠죠? 편지나 고지서, 또는 찌라시라도 가슴에 품으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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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와서 술을 마시던 친구가 책을 한 권 추천했습니다. 책이름은 [꿀벌의 언어]. 최근에 읽은 책 중 최고랍니다. 추천자는 남정욱이라는 교수님인데, 지금 둘이 소주를 다섯 병이나 마셨으므로 믿으란 말은 못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먼저 읽어보고 독서일기를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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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를 구사한 글이 읽고 싶어졌다.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를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빌 브라이슨이 쓴 글을 읽으면 된다. 며칠 전에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산책]이라는 신간이 서점에 나왔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지만 그걸 읽으려면 당장 서점까지 가야 하므로 그냥 집에 있는 책을 찾아서 읽기로 했다. 책꽂이를 찾아보니 [나를 부르는 숲]이 있었다.


그런데 320페이지에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3M 테잎이 붙어있는 걸 보니 빌 브라이슨이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끝내지 못한 것처럼 나도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이 나오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빌 브라이슨의 친구 카츠가 등장하는 장면을 읽다가 이상한 문장들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상하냐면…음. 매우 ‘좀스럽게’ 이상하다. 제정신인 사람들이라면 절대 나누지 않을 어색한 대화들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이 책 88페이지에 있는 메리 앨런이란 여자와 빌 브라이슨의 대화를 인용해 보자.

 


“우리도 거기서 시작했어. 여기까지 13.44킬로미터밖에 안 돼.”
그녀는 마치 집요한 파리라도 흔들어 쫓아내려는 듯 머리를 강하게 흔들며 “22.7킬로미터가 맞아.”라고 말했다.
“아니야. 정말로 그건 13,44킬로미터밖에 안 돼.”


 

13.44킬로미터, 22.7킬로미터…황당한 수치들이다. 난 우리가 대화 중에 절대로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에 거액을 걸 용의가 있다. 이건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와도 거리가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마 미터법 표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킬로미터보다 마일을, 밀리리터보다 온스나 갤론을 많이 쓴다. 물론 그건 그들의 잘못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미터법이 기준이 된 마당에 아직도 자기들에게 익숙한 단위를 멋대로 쓰는 건 엄연한 반칙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책에 나오는 대화까지 “13.44킬로미터” 식으로 번역하는 건 좀 오버가 아닐까? 내 짐작엔 이건 번역자인 홍은택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출판사가 정한 엄한 기준이 있거나 관련 법규를 지키려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일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장면이라 해야 했던 우리의 웃긴 과거가 떠올랐다. 뭐든지 억지로 하는 건 좀 이상해지기 마련이다. 이봐요, 빌. 당신이 원체 웃기기도 하지만 한국에 있는 당신 책에는 이렇게 당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웃긴 일도 좀 있다오. 듣고 있나요,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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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우리동네 사람들은 디지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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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들은 속수무책으로 떨어져내렸다. 그것들의 삶은 시간에 의하여 구획되지 않았다. 그것들의 시간 속에서는 태어남과 절정과 죽음과 죽어서 떨어져내리는 시간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태어나자마자 절정을 이루고, 절정에서 죽고, 절정에서 떨어져내리는 것이어서 그것들의 시간은 삶이나 혹은 죽음 또는 추락 따위의 진부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절대의 시간이었다. 꽃잎 쏟아져내리는 벚나무 아래서 문명사는 엄숙할 리 없었다. 문명사는 개똥이었으며, 한바탕의 지루하고 시시껍적한 농담이었으며, 하찮은 실수였다. 잘못 쓰여진 연필 글자 한 자를 지우개로 뭉개듯, 저 지루한 농담의 기록 전체를 한 번에, 힘 안 들이고 쓱 지워버리고 싶은 내 갈급한 욕망을, 천지간에 멸렬하는 꽃잎들이 대신 이행해주고 있었다. 흩어져 멸렬하는 꽃잎과 더불어 농담처럼 지워버린 새 황무지 위에 관능은 불멸의 추억으로 빛나고 있었다.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에. 불현듯 김훈의 [풍경과 상처]를 열어 맨 처음 밑줄 그었던 문장들을 읽는다. 도대체 떨어지는 벚꽃들을 이토록 찬란하게 추모해도 되는 일인가. 아닌밤중에  마음속에서 벚꽃들이 지랄염병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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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도시장에서 배우는 새로운 냉장고 단속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동네 분들은 좀 멋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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