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베호벤 감독은 대량 살육의 쾌감을 만끽하고 싶어서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영화를 만들었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걸 화면에 담으면 누구에게나 끔찍하고 잔혹하게 보이지만 그 상대가 우주괴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지치도록 베고 쏘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중세의 ‘마녀사냥’에서 그런 비뚤어진 심리의 힌트를 얻은 바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 죽이고 싶다. 방법은 간단하다. 마녀라고 밀고를 하면 된다. 본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을 하더라도 마녀의 변명일 뿐이므로 그건 거짓말이 된다. 그러다 모진 고문에 못이겨 거짓자백을 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마녀가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은 1948년에 제주에서 정부와 미군들에게 마치 ‘마녀’처럼 몰려 떼죽음을 당했던 4•3항쟁 희생자들과 현재 강정마을에서 정부와 미국의 이해관계에 대항해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한 줄 위에 놓고 바라보는 다큐멘터리영화다.

우리에게 제주란 무엇인가? 구름•돌•바람이 많아 삼다도라 불리던 섬이었고, 최성원의 노래처럼 ‘신혼부부 몰려와 똑같은 사진 찍’던 관광지였다. 지금은 장선우 감독이나 예전 동아기획 식구들이 ‘이민’을 가서 사는 천혜의 휴양지, 그리고 올레길과 크고 작은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있는 이국적인 섬일 뿐이다. 적어도 4•3항쟁의 비극적 진실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임흥순은 제주 사람이 아니다. 그냥 제주에 놀러 오는 흔한 관광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같이 일하는 프로듀서의 할머니가 4•3때 남편을 잃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걸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굉장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던 이 작업은 당시의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기록자로서의 의무감을 갖게 되었고 아울러 현재 강정마을 구럼비바위 폭파 현장을 지켜보면서 상관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하나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입체적인 역사의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1948년 11월 미군정하에 있던 남한정부는 제주해안선 5Km 바깥의 모든 주민들을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소개령을 내렸다. 미녀사냥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폭도로 몰린 도민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군인들과 서북청년단들에 의해 어느날 갑자기 학교 운동장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한라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잡히지 않으면 대부분 굶어죽거나 얼어죽었다고 한다.

 

 

2007년 6월 강정마을 해군기지 조성 공사 후 주민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져 대립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여태까지 잘 어울려 살던 이웃들은 물론 가족끼리도 원수가 되고 서로 말을 섞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는 공사방해금지 명목으로 주민과 종교단체 환경단체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감독은 64년 전 일이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강정마을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은 1948년 당시 제주의 모습을 재현하는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 등을 전공했던 임흥순 감독은 좀 색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보통 다큐멘터리처럼 인터뷰어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카메라가 항상 인터뷰이의 얼굴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4•3사건에 대한 증언이 흘러나올 때 카메라는 제주의 풍경이나 하늘, 감귤나무 같은 고정된 사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기 일쑤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어둡고 거친 밤길을 헤매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누군가 맨발로 눈길을 허정허정 걸어가는 장면을 보고 비로소 감독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의 도민들이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조금이라도 짐작하는 방법은 직접 그들처럼 밤길을 헤매보고 눈길을 헤치며 걸어보는 것뿐이라는 다소 무식한(?) 통찰이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비념’이란 제주에서 행해지는 작은 규모의 굿을 뜻한다. 감독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애도의 행위야말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본성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4•3때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굿을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엔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 아름다운 자연 뒤에는 피로 물든 4•3사건이 숨어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빼어난 자연경관 뒤에는 해군기지라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숨어있다. [비념]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고 설명하기 보다는 스스로 볼 수 있도록 눈을 열게 해주는 영화다.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이는 영화고 알고 나서 다시 보면 더 깊어지는 영화다. 당신이 올해 블록버스터 영화를 세 편쯤 보았다면 이젠 이런 영화도 한 편 보시는 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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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열시에 

카메라를 들고

우리동네를 좀 돌아다녔더니

대체로 이런 모습들이더군요.

 

 

 

지팡이 대신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던 할머니,

고물상 아저씨와 뭔가 한참 얘기를 나누시더니 금방 사라지셨습니다

 

 

 

 위치나 보나 자세로 보나 왼쪽에 앉아있는 아저씨가 이 동네 짱인 거 같죠?

 

 

횟집 앞에 있는 작은 공원엔 쉬는 분도 있고 운동을 하는 분도 있고

 

 

 24시간 언제나 아침뿐인 저의 단골, 모닝마트입니다

 

 

뚝도시장 입구에 있는 가게 아저씨. 오늘 팔 핸드백을 진열하시는 중

 

 

예전엔 중학생들이 많이 매던 '쌕'을 이젠 할머니들마다 매고 다니시더군요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한국사람들은 왜 다들 평소에도 등산복을 입구 다니냐?"고 묻는다죠. 아마 그들은 이해를 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켜세운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수트라는 옷은 그리 활동성이 좋지 않은 옷이거든요. 그래서 양복은 회사에 출근을 하거니 어디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갈 때만 입기 십상이죠. 우리 아저씨들은 평소엔 바지에 점퍼를 많이 입습니다.

 

생각해보면 서글픈 일입니다. 어른들이 그런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도 덩달아 값이 비싼 등산복이었던 '북쪽얼굴'에 목을 매고 그랬으니까요. 사회적 지위가 높거니 부유한 층을 제외한 일반 서민들은 지금도 일할 때나 산책할 때나 가리지 않고 등산복 바지나 점퍼를 입고 다니는 일이 많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다들 '그냥 편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저도 어쩌다 수트를 입을 때는 왠지 스스로를 좀 존중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수트를 입은 날은 괜히 몸도 더 추스리게 되고 양복이 구겨질까봐 아무 데나 앉지도 않게 되거든요. 또 셔츠도 한 두번 입고 나면 드라이크리닝을 맡겨야만 하기 때문에 돈이 들고...아무튼 아침에 등산복을 입고 찡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아저씨들이 다들 수트에 구두를 신고 저러고 있어도 꽤 웃기겠구나 하며 혼자 미친놈처럼 웃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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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우리는 옥천에 있는 친구 부부집에 놀러 갔습니다. 진작에 갔어야 했던 집이었지만 제가 늘 바쁜척을 하며 번번히 약속을 미루고 펑크를 내고 하다가 결혼식을 얼마 안 남긴 시점이 돼서야 겨우 방문하게 된 여친의 가장 친한 여고동창네 집입니다.

 

 

아주 현대적이고 멋진 집인데 흑백으로 찍었더니  좀 그로테스크하죠? 이번 여행에선 모든 사진을 흑백으로만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뭐, 별 이유는 없구요. 괜히 그래보고 싶어서요.

 이 집은 이웃에 살던 교수님께서 직접 설계하고 지으신 집이라는데 어떠어떠한 연유로 인해 이제부터 서로 집을 바꿔 살기로 했답니다. 그러니까 이건 독신으로 살고 계시던 어느 멋진 디자인과 교수님이 자기가 평생 살 생각으로 만들었던 '작품'인 거죠.

 

 

방문하는 차들마다 함부로 들어와 잔디밭을 망쳐 놓는 게 안타까워서 뒤늦게 철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교수님의 아이디어였구요.  

 

 

 

옆집도 멋집니다

 

마당에는 진돗개 한 마리와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습니다. 진돗개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모든 걸 귀찮아하는 할머니 스타일이고 골든리트리버는 아직 호기심이 많아서 사람만 다가서도 꼬리를 흔드는 청소년입니다.

 

 

 

집안엔 멋진 거실과 주방, 그리고 가족들이 있습니다.

 

 

사내 아이 둘이 뛰어놀기엔 꽤 넓은 마당이죠.

 

 

어릴 적 친구 둘이 오랫만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동안

거실에 누워 자던 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저녁 산책을 나갔습니다.

 

 

전 이상하게 창고를 좋아해서 창고만 보면 사진이 찍고 싶어집니다.

 

 

너무 흑백만 찍는 거 같아서 집안에서 컬러도 한 장 찍어봤습니다. 역시 흑백이 낫더군요

 

 

미술과 패션 등을 전공한 이 부부는 10여 년 전에 '귀향'을 해 폐교를 개조한 이 자연체험장에서 얼마 전까지 살았답니다. 아들 둘도 여기서 다 컸구요. 지금은 여기서 살진 않지만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여름마다 친구들과 떼지어 놀러가는 강원도 산촌체험장이랑 거의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맑은 공기, 싱그런 자연, 넓은 산촌체험장...이런 환경에선 도저히 안 마실 수가 없죠.

 

 

 

 아침에 일어났더니 둘은 교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숙취를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침 산책을 나갔습니다. 제 입에서 새나오는 술냄새 말고는 공기도 하늘도 다 맑더군요.

 

 

 

 

 

버스 기다리는 할머니를 만나서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서울에서 전시회 하게 되면 꼭 초대하라고 농담을 하십니다. 멋진 할머니셨습니다.

 

 

 

친구 부부는 자꾸 내려와서 살라고 합니다. 공기도 좋고 정말 평화로운 곳이라고. 아아, 저희들이라고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어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우리는 서울을 싫어하면서도 당분간은, 또는 꽤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불쌍한 인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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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신사동 가는 버스를 타고 멍때리다가 그만 한남대교를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남오거리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터덜터덜 걷다가 '영진설비’라는 간판과 마주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박철 시인의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라는 시에 나오는 바로 그 이름이었죠. 그래서 그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봤습니다. 언제 읽어도 읽을 때마다 술이 땡기는 시,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 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수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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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로 한 이가 30분 정도 늦는다고 한다. 이 30분은 선물이다. 그 선물을 가장 아름답게 받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알고 있다. 아름다운 단편소설 하나를 읽는 일.”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윤대녕의 단편집 [대설주의보] 뒤쪽에 쓴 글이다. 그런데 정말 단편소설 한 편 읽는데 드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삼십 분? 한 시간? 신형철의 말대로라면 30분이면 족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 세상이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어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내 입장이 돼보시오](Put yourself in my shoes)를 읽었다. 아니, 읽기 시작했다. A4지를 가져다가 메모를 하면서 읽기는 했지만(등장인물에 대한 프로필을 메모하는 버릇이 있다) 한 시간 남짓이면 끝날 분량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소설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우리는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다. 만약 백수가 되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 거야!”, “출근을 안 하게 되면 그때부터 하루 종일 미드나 책을 보지 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런데 그들이 정작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현대인은 도대체 심심할 틈이 없다.

 

아침에 현관에서 집어온 신문을 마음먹고 정독해도 삼사십 분은 그냥 사라진다. 뭘 좀 읽거나 쓰고 있으면 금방 밥 먹을 시간이 돌아온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대충 훓어보고 내 글이나 사진에 댓글만 성의있게 달아도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시간을 빼앗길까봐 트위터는 이미 접은지 오래다. 그래도 호시탐탐 택배원나 외판원들이 초인종을 누르기 일쑤다. 잊었던 후배가 전화를 걸어 반갑지 않은 안부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감방에 갇히거나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이상은 늘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하고 뭔가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깊은 심심함’의 중요성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 한다. 현대인은 내적 외적 모티베이션에 의해 늘 뭔가에 쫓기게 되고 그럼으로써 만성적 피로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현대인들이 오래도록 누려보지 못한 깊은 심심함을 느끼는 일이다. 깊은 심심함은 뭔가 창조적인 일을 위한 과정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여지친구와 함께 뭔가 기획을 하고 글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기획안에 손도 대지 못하고 매일매일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도대체 하루 종일 혼자 놀고 있어도 심심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보다 못한 여자친구가 왜 글을 쓰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올 때면 난 늘 이렇게 대답한다. “응, 나 오늘 바빴어.”

 

 

어서 내 몸 안에 깊은 심심함이 흘러 넘치기를 바란다. 아마 곧 그렇게 될 것이다…심심해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이게 무슨 한심한 역설이란 말인가. 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들 마음 독하게 먹고 바쁘게 움직이자. 남들보다 먼저 깊은 심심함을 쟁취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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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CF에서 보기

 

 

[포카리스웨트]는 '힐링'이라는 요즘 트렌드를 짜증나지 않게 공감대를 잘 잡아서 풀었더군요.  [바나나맛우유]는 유머코드와 미장센 등이 다 좋은 느낌입니다. 뭐, 제가 김슬기의 왕팬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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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페이스북 댓글을 달고 있는데 어떤 출판사가 책 제목을 공모한다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오랫동안 육아문제를 연구한 소아정신과의사가 쓴 책인데 '완벽한 부모, 준비된 부모가 되려하기보다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이와 부모 모두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라는 내용이란다. 뽑히면 우크렐레를 비롯한 선물을 준단다. 

나도 우쿠렐레가 탐나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어떤 이들의 댓글을 보고나서 배꼽을 잡으며 웃지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좋은 제목 후보안도 무척 많았다. '아빠 어디가'나 '지금도 괜찮아' 같은 패러디물도 있었고 '힐링 육아법' 같이 트랜드에 민감한 안도,  '너도 자랄 땐 그랬어' 같은 서술형도 있었다 '깊은 한숨'같은 이상한 패러디물도 있었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아프니까 부모다' 

정말 할 말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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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고민이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길을 걷는다. 하염없이 걷다보면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도 있고 마음이 좀 가라앉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만. 그런데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길을 좀 걷는 게 아니라 아예 지리산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한 대책 없는 남자가 있다. 원순 씨다. 지금의 서울시장 박원순 씨 말이다.

 


“무식한 자가 일을 저지른다”

 

2011년 7월 19일부터 49일간 계속된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희망을 걷다] 본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희망제작소 등등 사회적기업 활동으로 평소 일정도 초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하는 형편이고 등산 경험이라고는 지리산 등반 두어 번이 전부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심한 평발이라 남들보다 걷는 게 훨씬 더 힘든 체질이라는 걸 알면서도 덜컥 저질러버린 자신의 무모함을 개탄하며 하는 소리다.

 

박원순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산에 올랐다 한다. 사색의 시간이 절대로 필요한 그 중요한 순간에 그는 오히려 육체적 괴로움을 택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몸과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작부터 좌충우돌 박원순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사실, 남자들끼리 매일 이 산 저 산 옮겨다니는 얘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재미가 있다.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밟아가는 동안 박원순이 버리고, 가려내고, 정리하고, 듣고, 배우고, 자라는 생각의 모습들이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비장하게 또는 유머러스한 문장들로 촘촘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박원순의 처절하도록 철저한 기록 정신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면 다 공감하겠지만 누구나 등산길에 나서서 한나절만 지나면 발이 아프고 기운이 쪽 빠져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휴식시간마다 우리의 원순 씨는 작은 수첩에 메모를 하고 또 했다. 그리고 산장에 들어 모두들 곯아떨어지거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도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그동안의 일기를 정리하곤 했다.

 


누군가를 알고싶다면 그 사람과 여행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박원순이라는 인간이 궁금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솔직하고 친절한 안내서와 같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일행들과 대화하고 질문하며 자연과 교감한다. 그러니 가는 길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이야기와 성찰이 피어난다.

 

예를 들어 육십령이라는 고개는 예전에 산적들이 들끓어서 육십 명이 모여야만 비로소 고개를 넘어가던 곳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미리 알지도 못하고 나중에라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같은 곳을 가더라도 “와, 여기 무척 험하네.”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만약 김훈이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고 경치 좋은 산천만 구경하고 돌아다녔다고 생각해 보라. [자전거 여행] 같은 책이 나왔겠는가.

 


“무기수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구두를 닦는 사람”이란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더 오래 살기 때문이란다. 이 말은 박원순이 함께 팀을 꾸려 온 백두대간 종주팀 ‘다섯 손가락’의 석 대장님이 쉬는 시간에 박원순에게 해준 말이다.

 

박원순은 여행의 의미를 확충시킬 수 있는 감성과 지식을 둘 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 지역에 얽힌 일화와 전설을 들춰내고 거기에 얽힌 고사성어를 떠올린다. 어떤 곳에서는 [장자]의 도척 편에서 공자가 도척이라는 도둑을 설득하러 갔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신영복 선생이 즐겨 이야기 한다는 ‘독버섯의 우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힘든 산행 도중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라는 책이나 시시포스의 신화를 되새겨보기도 한다. 쏟아지는 여름 빗속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강산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하면 고장난 스마트폰 때문에 더 이상 SNS를 할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난 세상을 버렸다”라고 귀여운 한탄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백두대간 깊은 산속까지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가 스며들어와 결국 정치의 바다로 뛰어들 것을 결심하고 안철수 후보와의 만남 때문에 5일 정도 일정을 앞당겨 산을 내려가는 것으로 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사람은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어 냈고 박원순은 서울시의 시장이 되었다.

 

사색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골방에 숨어 몇 날 며칠 끙끙대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박원순처럼 ‘무조건 저지르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사색의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 박원순의 사색은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합리적으로 일하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현재의 시정을 통해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멋진 건 책 뒷부분에 적혀있는 ‘다섯 손가락’ 석락희, 박우형, 김홍석, 홍명근, 그리고 보급대장 신충섭이 쓴 글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멤버들이 하나같이 박원순을 ‘원순 씨’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박원순 씨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2월 어느날, 일산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날 우리는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이 책과 마주쳤다. 여자친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다섯 권이나 사더니 우리가 읽을 책 한 권만 빼고 모인 친구들 부부에게 선물로 주었다. 결과적으로 여덟 사람에게 책을 선물한 셈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 친구들은 여덟 개의 ‘희망’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도 꽤 멋진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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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언어].지난 주말에 우리집에 와서 술을 마시던 친구가 최근에 읽은 책 중 최고라며 추천한 책인데 알라딘에서 중고서적을 주문했더니 오늘 도착했네요. ‘이재룡의 문학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맨 처음 번역한 이재룡 교수가 2004 1월부터 2005 12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평론집이랍니다.

 

택배봉투를 열고 표지를 넘기니 누군가 지인에게 선물했던 흔적이 남아 있네요. 서글픈 일입니다. 책을 열어보면 압니다. 책을 받은 후 단 한 장도 읽지 않고 곧장 내다판 게 분명하군요. 이 책을 선물한 남자는 그날 저녁에 “모처럼 그녀에게 좋은 책을 선물했다는 흐뭇한 마음으로 한 잔 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녀 대신 저라도 열심히 읽고 나중에 독후감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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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전철역 앞에 있는 동네 포장마차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었습니다. 나란히 세 개가 붙어있는 포장마차는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장사를 합니다. 오늘은 세번째 집에서 먹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종이컵에 샌드위치를 담아주시는데 따뜻하고 맜있습니다.

어쩌다 새벽에 나가보면 전철역 앞에서 이걸로 아침을 때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맞춤법 좀 틀리면 어때? 맛있으면 됐지

 

 

 

 

사무실이라고 주장하는 정체불명의 건물

 

 

 

저도 대학 다닐 때 벽보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가끔 작업 결과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날은 아주 심란해지죠

 

 

 

자세히 보십시오. 우리동네엔 '어제'를 담는 우체통도 있습니다

 

 

 

'이보살'일까요, '만이보살'일까요?

 

 

 

동네 사랑방에 모여있던 할아버지들을 찍으려고 했더니 슬쩍 나무 뒤로 숨으시더군요

 

 

 

할아버지들이 없는 사랑방은 참 쓸쓸하던데 말이죠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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