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강변에서 옴니버스 영화 [키스]를 관람했습니다. 2년 전에 만든 영화인데 우여곡절끝에 이제야 개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덟 편의 키스에 얽힌 이야기들로, 거의 하룻동안에 다 찍은 영화들이라고 합니다. 제작비도 적고 시간, 장소 등에 제약이 많은 인디영화였기 때문이겠죠. 

저는 북한의 핵발사로 인해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에 갇힌 채 청취자들에게 유언처럼 서로의 오랜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디제이와 PD의 이야기인 '행복한 오후 2시' 와 골목에서 친구 삥뜯던 반장을 혼내주던 여고생 이야기 '소녀시대', 그리고 키스방에서 일하는 키스 알바생에게 훈계를 당하는 고시생 시봉이 이야기인 '달인' 이 재밌었습니다. 

배우 김혜나 씨는 제 여친과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 마침 이 영화에 출연하는 열 아홉 명의 배우 중 열 한 명을 감독과 제작진에게 소개한 '캐스팅' 담당으로 오늘 와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잠깐 인사를 하더군요. 아마 인간성이 좋거나 대인관계가 대단히 넓은 배우인 거 같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저희와 잠깐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요즘은 이런저런 재능기부도 하고 EBS에서 무슨 낭독 프로그램도 맡아 한다고 하더군요. 저와 예전에 일로 잠깐 만날뻔했던 얘기를 했더니 당시 상황을 너무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김혜나 씨는 앞으로 소셜테이너로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영특한 배우입니다.

이 영화엔 제 페친인 연극배우 서민성 씨도 잠깐 나옵니다. 실력 있는 연극배우들과 홍대앞 인디밴드 멤버도 배우로 출연을 하는 꽤 흥미로운 프로젝트입니다. CGV강변에서 사흘간 상영을 하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데 앞으로 다른 극장에 더 걸리게 될지 아니면 IPTV등으로 옮기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발표 때는 전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었다던데 이렇게 상영관을 잡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중에 케이블이나 IPTV로라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지만 이야기나 연기는 결코 허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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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토커]를 봤습니다. 월요일 오후라 극장 안이 좀 한산하더군요. 영화는 시종일관 묘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다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우리 뒤에 앉아있던 50대 아주머니 두 분이 일어서며 “박찬욱, 한국사람 맞아? 어이구 미친놈…” 하시며 화를 내시더군요. 전 이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묘하게 즐겁습니다. 캐슬린 비글로의 [하트 로커]를 볼 때도 영화를 견디지 못하고 제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욕을 하며 나가신 적이 있습니다.

 

영화는 막판에 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집 밖으로 나가면서 좀 세계 던져놓은 느낌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 박찬욱은 멋집니다. 미아 바시코프스카를 비롯해 니콜 키드만, 매튜 구드 등 출연 배우들도 모두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지난 주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스마트폰이나 전자제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언제인지 좀 애매하게 느껴지도록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저도 본 듯 안 본 듯, 아는 듯 모르는 듯, 생시인 듯 환상인 듯…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들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매혹적인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 박찬욱표 장면장면들이 꽤나 황홀합니다. 특히 오래된 와인 얘길 하며 "어린 것들을 따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라는 대사를 치는 순간  매튜 구드와 미아 바시코프스카, 니콜 키드만을 순간적으로 교차편집한 장면은 짧지만 강렬하고, 아주 교활합니다. 이 영화,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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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기 전 햇볕이 따스하게 비치는 거실 창가에 앉아 로저 젤라즈니의 SF단편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를 읽었다. 


이 소설은 뉴욕의 밤거리에서 세 명의 강도에게 둘러싸인 백발의 노인이 지팡이로 그들을 가볍게 제압한 뒤 운수점을 치는 여인의 집으로 들어서며 시작된다. 알고 보니 이 노인은 성배를 찾아 헤매는 아서왕의 기사 랜슬럿이었던 것이다. 점장이 여인은 천년 동안 죽지 않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 온 랜슬럿을 알아보고 끝나지 않는 그의 생애엔 마법사 멀린의 계략이 숨어있음을 알려준다. 


아서왕의 전설을 현재까지 끌어 온 이 짧은 이야기는 젤라즈니의 학식과 통찰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천년 만에 깨어나  "그동안 세상은 어떻게 변했느냐"고 묻는 멀린에게 랜슬럿은 편리하게 변한 것도 많지만 그만큼 세상은 더 복잡해졌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전쟁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음을 개탄한다. 


책 뒷쪽에 붙은 짧은 해설을 읽어보니 이 단편은 조지 R.R. 마틴의 각색으로 [환상특급(Twilight Zone)]의 한 에피소드로 방송된 적도 있다고 한다. 로저 젤라즈니 원작에 조지 R.R. 마틴 각색이라니,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이 책은 몇 년 전에 김은하 사무실에 꽂혀있던 걸 빌린 건데. 은하야, 쫌만 더 읽다 줘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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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은 글입니다. 


SNS와 모바일의 시대로 변하면서 ‘스포일러’에 대한 경각심은 어느 때보다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젠 누구나 영화를 본 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적 관계망’에 감상평을 실시간으로 올리기 때문에 영화의 주요 내용이나 감상평도 미리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죠.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에 대한 기사나 리뷰를 절대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스포일러는 그렇게 나쁜 것일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스포일러가 정말 그렇게 흔한 걸까요? 스포일러는 스릴러나 추리물 등에서 반전이나 의외의 결말을 미리 알려 보는 이의 김을 빼는 행위를 말합니다.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남자가 버스 창문을 열고 “범인은 절름발이다!”라고 소리친 사건이 가장 유명한 스포일러 사례입니다. 물론 저도 어느날 저녁 [디 아더스]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제 자리로 일부러 와서 “걔네들, 다 귀신이다?”라고 속삭였던 사악한 후배 카피라이터년의 만행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스포일러라는 단어는 스릴러나 추리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다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젠 영화에 대해 무슨 얘기만 좀 하면 다 스포일러라고 합니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러 갔을 때도 스포일러를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주인공인 파이가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인 보험조사원들에게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이 영화의 반전이라는 것이죠. ‘두 개의 이야기’라는 반전, 맞습니다. 그런데 이걸 미리 알고 가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감동의 폭이 줄어든다구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전 얀 마텔의 원작 소설을 읽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파이가 구출되는 장면까지만 읽고 (아마 바쁜 일이 생겨서 거기까지만 읽다가 팽개치고 다시 안 집어 든 거겠죠) 병원 부분부터는 읽지 않았더군요.

가장 중요한 장면을 빼먹은 덕에 저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영화가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와 파이라는 소년이 작은 구명보트 위에서 227일간 표류하다가 결국 살아남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기’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맨 마지막에 파이가 영화의 화자인 소설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느 게 더 마음에 드느냐?”라고 물었을 때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요. 이건 정말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소년과 호랑이의 믿을 수 없는 227일간의 표류기’에서 그쳤다면 이 이야기는 신기하고 감동적이지만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에 머물렀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마지막에 또 한 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관객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즉 [파이 오브 라이프]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거나 또는 믿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 껍질을 한 겹 벗겨냈을 때는 본질이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가, 라는 깨달음으로 외연을 확장합니다. 소년의 성장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단숨에 인식론의 사다리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집에 와 원작 소설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파이가 일본 운수성 해양부 직원들의 과자를 빼앗아 먹으며 두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책 어디에도 그로 인한 새로운 인식에 대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황당하더군요.

 


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언어의 마술사 얀 마텔이 펼치는
놀랍고 감동적인 227일산의 인도 소년 표류기

- 인간이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드문 경험이었다. 중앙일보
- 파이의 희망이 점점 커져 당신 심장 안에서 노랫가락이 되어 흐르기를. 조선일보
-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백경]을 잇는 최고의 모험소설 마거릿 애트우드
- 거칠고, 의미심장하고, 드라마틱하며, 재미있는 진정한 소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소설책 [파이 이야기]의 책 뒷면과 띠지에 붙어있는 서평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 ‘또 다른 이야기’에 대한 언급조차 없습니다. 번역자의 후기를 읽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나올 당시 서평자들이나 번역자까지도 이 작품의 진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승리’나 ‘희망, 또는 신의 문제’ 등으로만 파악하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안 감독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영화로 만들면서 파이의 또 다른 이야기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면 이것은 그냥 소설의 부록쯤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로 남았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대목은 이안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시네아티스트인지 다시 한 번 증명해주는 사례이기도 하구요.


원작소설도 끝까지 읽지 않고 다른 매체의 리뷰도 읽지 않은 채 영화관에 간 덕분에 전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씨네21]에 쓴 글을 읽고 거기에 제 나름의 생각까지 보탠 뒤에야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그 진가를 마음껏 즐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전에도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화끈한 첩보물인 줄 알고 갔다가 그 진중한 분위기에 눌려 두 시간 동안 몸을 배배 꼬며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야구에 대한 지식이나 비즈니스적 감각이 전무한 상태로 [머니볼]을 보고 나와 “이게 뭐지?” 하고 당황한 적도 있구요. 스필버그의 [뮌헨]도 1972년 당시의 국제 정세와 사회적 분위기를 좀 더 익히고 갔더라면 훨씬 더 풍부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라고 후회를 했습니다.

 

스포일러를 두려워한다는 건 텍스트를 대하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난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상태에서 그것과 마주치고 싶어요”는 언뜻 들으면 순결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눈앞에 있는 것만 겨우 보고 듣고 만족하겠다는 심뽀인 것입니다.

여행을 가면서 그 지역에 대한 역사나 문화를 일부러 공부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로마의 역사나 로마 황제들의 에피소드를 하나도 모르고 간다면 포로로마노의 콜로세움에 가더라도 그에겐 그저 무너져가는 오래된 돌담에 불과하겠죠. 나중에 “야, 로마가 경치는 참 좋더라,” 뭐 이런 정도의 얘기야 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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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잔치’라고 외면하려다가도 자꾸만 보게 되는 아카데미 시상식.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니퍼 로렌스의 여우주연상 수상이었습니다. 무엇이 엠마누엘 리바, 제시카 차스테인, 나오미 왓츠 같은 관록의 후보들을 제치고 스물세 살 여배우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기게 했을까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보고나니 결론은 역시 연기력이더군요.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완전히 장악한 채 온몸을 던져 때론 웃기고 때론 울리는 제니퍼 로렌스의 포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영화 자체도 무척 재밌습니다. 미국의 소도시에 사는, 뭔가 잘 안 풀리고 정체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을 배경으로 섹스와 정신병원, 스포츠 도박, 댄스 경연 등을 시트콤처럼 아주 수다스럽고 구수하게 풀어놓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 한동안 너무 슬퍼서 회사 사람 전부와 잤다고 말하는 제니퍼 로렌스나 다니던 학교 교장과 싸우고 일찍 퇴근해 보니 같은 학교 문학선생인 아내가 역사선생과 샤워를 하며 자신들의 ‘웨딩송’을 틀어놓고 있었던 게 도저히 극복이 안 되다고 말하는 브래들리 쿠퍼나 다들 파격적인 사연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정작 야한 장면 보다는 욕이 많이 나와서 19금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대사에 ‘Fu**’이 자주 등장합니다.

남자 주인공 브래들리 쿠퍼도 거의 완벽한 연기를 펼치지만 로버트 드 니로의 쪼잔한 아버지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어젯밤 CGV압구정에서 10시 영화로 봤는데 관객 모두 깔깔거리고 즐거워하며 보다가 극장을 나섰습니다.

이 영화, 좋습니다. 강추입니다. 몇 년 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무시무시한 작품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선전하던 [주노]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참, ‘실버라이닝(silver lining)’은 구름의 흰 가장자리라는 뜻이랍니다. 한줄기 희망이란 뜻이지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언제나 그렇듯 ‘희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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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쓸모없고 흔해빠진 에너지 소모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ART&FEAR)]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을 의심하고 미리 걱정하며 노력도 해보지 않은 채 지레 포기하고 맙니다. 그것은 어떤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알고 보면 이‘재능’이라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라고 합니다. 성공은 타고난 재능과 크게 관계가 없다는 말이죠. 과연 그럴까요? 물론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한 가지 실험을 살펴보면 더 이해가 빠를 겁니다.

수업 첫날 도예 선생님은 학급을 두 조로 나누어서, 작업실의 왼쪽에 모인 조는 작품의 양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오른편 조는 질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평가 방법은 간단했다. “양 평가” 집단의 경우는 수업 마지막 날 저울을 가지고 와서 작품 무게를 재어, 그 무게가 20킬로그램 나가면 “A”를 주고 15킬로그램에는 “B”를 주는 식이었다. 반면 “질 평가”를 받는 집단의 학생들은 “A”를 받을 수 있는 완벽한 하나의 작품만을 제출해야만 했다. 자, 평가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모두 양으로 평가 받은 집단에서 나온 것이다. “양” 집단들이 부지런히 작품들을 쌓아 나가면서 실수로부터 배워나가는 동안, “질” 집단은 가만히 앉아 어떻게 하면 완벽한 작품을 만들까 하는 궁리만 하다가 종국에는 방대한 이론들과 점토 더미 말고는 내보일 게 아무 것도 없게 되고 만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완벽한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명작을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완벽하게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작가가 되고 싶다면 그저 미련하게 읽고 꾸준하게 쓰고 무조건 해보는 게 성공할 수 있는 ‘재능’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미 재능을 다 타고 난 셈이네요. 다만 그 재능을 쓰지 않고 걱정만 터지게 하고 있으니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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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임종진 작가가 운영하는 [달팽이사진골방]의 '첫걸음반'이라는 곳에 등록을 했습니다. 

첫 시간에 가보니 개인 카메라가 없는 사람은 저 하나 뿐이더군요. '소통으로 사진하기-천천히깊게느리게' 라는 커리큘럼 제목이 마음에 들어 등록했습니다. (사실은 여친이 적극 권해서 얼결에 결심했습니다)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거기에 글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거나 더하는 작업을 자주 많이 해왔고 또 좋아하니까 열심히 배워 사진일기를 써볼 생각입니다. 잘 하면 제가 하는 커뮤니케이션들이 좀 더 깊어지거나 다원화될 수 있겠죠. 


그런데 선생님이 좀 이상합니다. 사진 가르칠 생각은 안 하고 무슨 책을 자꾸 읽어오랍니다. 그런데 다음 시간엔 누군가가 그 책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한다고 하길래 저도 모르게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좀 이상하니까 저도 좀 이상해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일단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이 책,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그리고 얇아서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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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구두골목 이야기 [드림핸드메이드]에서 명품 수제화를 만나다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날인 2 13, 여친과 저는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성동구청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결혼식은 5월 예정이지만 최근에 제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의료보험 처리 등등 혼인신고를 먼저 해야 할 이유가 몇 가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기억하기 쉽게 2 14일에 신고를 하자고 약속을 해놨었는데 마침 여친이 몸살이 나 회사를 하루 쉬는 바람에 그냥 앞당겨 다녀오기로 한 것이었죠.

 

저희 아파트에서 성동구청에 가려면 성수역까지 걸어가 왕십리역으로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입니다. 우리들은 평소처럼 쉬엄쉬엄 걸어 15분 걸리는 성수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뚝도시장을 지나 성수동 구두골목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지붕이 낮고 아담한 일 층짜리 수제화 가게가 하나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엔 관심이 없어 반대편 길로만 다녔는데 그날은 웬일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친이 눈을 반짝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진열되어 있는 구두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이런저런 많은 구두들이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벌써 어떤 구두 한 켤레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캐주얼화로 보통 구두처럼 브라운이나 블랙 대신 잘 쓰지 않는 피코크 그린컬러를 쓴 것부터가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래, 저 구두야.이심전심이랄까. 평소에 양복을 거의 입지 않아 제대로 된 구두를 장만할 기회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저였습니다. 게다가 발이 아주 작은 편이라 구두를 살 때마다 늘 마음에 드는 구두 대신 사이즈에 맞춰 구두를 고르곤 했습니다(아버지, 어머니, 형까지발 작은 건 집안 내력입니다). 245mm 남자구두는 그리 흔하지 않은 편이니까요.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성수동에서 마음에 쏙 드는 구두를 하나 만난 것입니다.

 

 

 

 

사장님, 이거 얼마에요? 우리의 질문에 사장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신어서 맞으면 삼십만 원, 새로 만들면 사십만 원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뭐 이런 노란 고무줄 같은 가격대가 다 있어? 아마 새로 만들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새로운 노력과 품이 더 드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 그래요? 저는 245인데. 발이 작아서 여기 있는 건 안 맞을 거예요. 그랬더니 사장님 왈 저게 245예요.” 그러시는 게 아닙니까. 에이, 설마.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쇼윈도에 있던 구두를 꺼내 신어보니 정말 요술처럼 제 발이 구두 속으로 쏙 들어가 노는 것이었습니다. 물건마다 주인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 있죠. 아마 이 구두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건 현찰박치기를 해야 맛이 나죠. 저는 당장 길 건너 은행으로 달려가서 빳빳한 5만 원 권으로 현금 삼십만 원을 인출해 사장님께 드렸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는 저희들을 바라보는 사장님의 표정에도 내가 만든 구두가 오늘 주인을 제대로 찾아가는구나하는 흐뭇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구두는 처음 신는 것인데도 아주 부드럽고 편했습니다. 새 구두로 갈아 신고, 헌 운동화를 종이가방에 넣은 뒤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가게를 둘러보니 매장 안에 있는 구두는 거의 다 남성용이었습니다. 여자 구두는 안 만드세요? 라고 물었더니 싸우기 싫어서요.”라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성 고객들은 하나같이 까다로워서 이젠 상대하기 지치셨다는 겁니다. 어딜 가나 정여사 같은 분들이 여전히 맹활약 중이신 모양입니다.

 

 

성수동 구두 거리 [드림핸드메이드] 유홍식 대표.

 

그는 우리나라 수제화 역사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1960년도부터 구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손수 구두를 제작한다고 하니 그 열정과 집념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힐끗 보니 사장님의 손은 그 동안의 역사를 증명해주듯 아주 거칠고 상처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장인의 손이죠. 제가 산 구두도 사장님께서 손수 한땀한땀 바느질해서 만든 세상에 단 한 켤레밖에 없는 구두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해 주시네요. 구두 수명이 다 될 때까지 A/S를 해줄 테니 언제든지 오라는 말도 믿음직스러운 대목이었습니다.

 

작년 8월 저희가 아무런 연고도 없으면서 괜히 이사 온 성수동은 수제화산업 중심지로 서울시에서 집중 육성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연히 찾아간 수제화점 [드림핸드메이드]는 이 시점에서 성수동 수제화의 중흥을 상징하는 핸드메이드의 메카였던 것입니다.

 

 

사실 나는 구두 더 팔아먹으려고 A/S 해주는 거예요. 구두 고치러 와서 새 구두 또 사가는 경우가 꽤 많거든. 하하.”

 

 

보통 50~60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고가 수제화를 A/S 받으러 와서 또 새 구두를 사간다는 유홍식 대표의 이 솔직한 이야기에는 핸드메이드의 우수한 품질과  명품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전 잘 차려 입은 양복에 구두까지 잘 갖춰 신은 남자의 모습을 참 좋아합니다. 캐주얼한 청바지에 징 박힌 구두를 맞춰 신은 모습도 좋아하죠. 좋은 구두는 발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편안하고 자신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건 유명 브랜드를 달고 나온 기성 제품보다는 장인의 손길에서 탄생한 온리원제품일 때 더 하겠지요.

 

운수가 좋은 날이었습니다. 구청 가는 단 몇 시간 만에 명품 구두도 얻고 또 명품 아내도 얻었으니까요. 아무래도 이 구두는 당분간 제가 가장 애정하는신발이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 신랑이 피코크 그린컬러 구두를 신고 입장해도 괜찮을까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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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면 월요병이 없을 거라 생각하시죠?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그리 만만한가요? 저는 내일 출근을 안 해도 제 여친은 여전히 출근을 하죠. 그러니 제가 놀든 말든 여친의 월요병은 그대로란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저 때문에 더 커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일요일 저녁인 지금 한숨을 폭폭 내쉬고 있는 여친 옆에서 눈치 없이 개콘을 틀어놓고 희희낙낙할 순 없는 노릇이죠.

사실, 월요병은 백수들한테도 있습니다. 경험상 그렇습니다. 오래 전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 저는 월요병을 극복해볼 요량으로 ‘월조회’라는 모임을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당연히 회원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마다 조조를 보는 쾌감을 누려도 월요병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죠. 전쟁통에 손가락을 잃은 병사가 가끔 없어진 손가락에서 가려움증을 느낀다는 걸 어디선 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월요병이란 놈도 그것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우린 이미 ‘월화수목금토일’이라는 시스템에 인이 박혀버린 것입니다. 억울했습니다. 예전엔 월요일을 만든 놈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인류에게 일요일이 생긴 이후로 늘 월요병은 존재했을 거 같더군요.

그러니 너무 심란해 하지 마십시오. 백수라고 월요일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닙니다. 세상에 공평하게 다 행복한 일은 드물지만 공평하게 다 거지같은 일은 가끔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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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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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면 의례 혼자 짧은 산책을 나가곤 합니다.

예전엔 일행들이랑 식당 문을 나서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니까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양치까지 한 뒤에 천천히 길을 나섭니다. 산책이라고 해 봤자 사무실 근처를 이십여 분 동안 느리게 한 바퀴 도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제겐 이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평화롭습니다.

산책은 그야말로 목적이 없는 행위이니까요. 빨리 걸을 필요도 없고 또 어디까지 꼭 갔다 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걸을 뿐입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효율성이 중요한 세상엔 이 무슨 한가한 소리냐. 시간을 아껴 정신 없이 일해도 모자랄 판에.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억지로 나선 길이 어디 진정한 산책이겠습니까. 밥 먹고 5분도 안 돼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 능률이 올라가겠습니까.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설사 기계라고 해도 가끔은 엔진을 끄고 기름을 쳐야 합니다만.

저는 걷는 걸 참 좋아합니다. 마음이 답답해도 걷고 생각이 어지러워도 걷습니다. 몇 년 전 25년 간 피우던 줄담배를 단박에 끊을 때도 흡연욕구가 일 날 때마다 일어나 걸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도 밖으로 나가 30분씩 한 시간씩 무작정 걸어 다녔습니다.

매일 봐서 하나도 새로울 게 없는 골목길. 봄이면 꽃 피고 가을이면 낙엽 떨어지는 보도블럭 위.  그러나 그 길을 걷다 보면 머릿속은 단순해지고 길은 어느새 내 생각을 따라 움직이는 하얀 백지가 됩니다. 그 백지에 점 하나 찍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단어나 문장 하나 써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냥 백지 상태죠. 당연합니다. 산책은 그런 거니까. 아르키메데스도 목욕탕에 들어갈 때마다 유레카를 외친 건 아니었잖아요.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요즘 들어 하는 생각입니다만 속담은 진리와 가장 맞닿아있는 멘션이 아닌가 합니다. 마음이 무거울수록 천천히 그러나 가볍게 걸으십시오. 보도블럭 하나하나의 무의미가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나가야 새로운 게 보입니다. 바쁠수록 돌아가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이 보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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