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영되고 있는 삼성카드 광고.

 

'실용'이라는 컨셉에 어울리는 적절한 사례를 찾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땅콩집 편' 이후에도 계속 캠페인을 이끌어갈 엔도서로 스마트한 이미지의 이적이 나온 것도 좋구요. 예전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따위의 신자본주의 표상같은 표현으로 서민들을 짜증나게 만들던 광고보다 훨씬 좋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서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때로는 국민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설교까지 하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어쩔 수 없이 싫군요. 얼마 전 '멀리 있는 당신에게 향기를 보내고 싶다' 는 감동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던 한 섬유유연제 회사도 알고 보면 회장님이 걸핏하면 임원들을 폭행하고 청부폭력까지 행사해 매번 합의금을 물어주느라 바빴던 어처구니 없는 진실이  숨어 있었죠. 광고 캠페인이 좋다고 회사까지 훌륭한 건 아닙니다. 광고는 좋지만 그 브랜드는 싫다...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광고인의 딜레마로군요.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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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꾸물꾸물한 금요일 오전.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으로 꽃을 좀 사러 가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에 자주 가던 곳인데 평일 오전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거든요.  

일단 밥을 든든히 먹고 출발합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삼치도 구웠으니까요.

꽃을 사는 것도 일종의 충전입니다. 

'꽃값'이라고 하면 괜찮은데 '화대'라고 하면 단박에 이상해져요. 그렇죠?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피터팬은 어디서나 나타납니다.

오늘은 승복 입은 피터팬을 만났습니다.

'내 머리도 꽃다발로 만들어 달라고 할까?'

"여기서 먹어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그녀와 함께  짜장면을 시켰습니다. 나는 삼선짜장면, 그녀는 옛날짜장면. 돈은 그녀가 냈습니다.

사람이든 회사든 부도가 나면 이렇게 됩니다. 평소에 잘해야 합니다.

꽃을 좀 샀습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우리는 부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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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작업했던 공익광고가 지금 전파를 타고 있군요. 어쩌다 "패자부활전이라는 전을 파는 음식점 이야기를 소재로 써보자"라는 제 아이디어가 채택되었었는데 저는 아이디어에만 관여하고 빠지게 되었고 그 후 경쟁PT에서 승리해 수정/보완하고 찍기까지 많은 분들의 고생이 있었습니다. 20초 CM은 나레이션이 죄다 빠져서 내용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는데 30초로 보니 훨씬 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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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역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뚝섬유원지역까지 카메라를 메고 천천히 걸어다녔습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차들이 보이더군요. 매일 보는 것들인데도 유심히 들여다 보면 또 다르게 보인다는 건,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동네엔 주차의 달인들이 많이 사십니다.^^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많구요.

 

고개만 들면 이렇게 파란 하늘인데, 자꾸 까먹습니다.

 

다시, 박대통령의 나라.

 

얘들아, 어른들은 슬픈 일이 많단다.

 

다들 왕년엔 힘 좀 쓰시던 분들.

 

100점 보다 훨씬 정겹다. 100명이라는 말.

 

현실 뒤에 숨어 있는 꿈을 상상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문은 열리리라.  

 

누가 좀 얘기해 주지 않을래? 천천히 가도 결코 늦는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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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시나리오 작가 심산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대부]라고 썼을 때 그 밑에 “깡패영화 좋아하셔서 참 남자다우시겠습니다”라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마음이 언짢았던 기억이 난다. 심산은 깡패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대부]가 얼마나 훌륭한 영화인지를 얘기하고 싶은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는 힘이 세다. 거의 모든 ‘어른영화’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법, 주인공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 하는 법, 가슴에 남는 대사를 쓰는 법, 적재적소에서 캐릭터들이 복무하게 하는 법…한마디로 [대부]는 바보같은 깡패영화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우린 왜 자꾸 ‘깡패영화’를 보는 걸까? [신세계]를 보는 동안에도 온통 그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다. 나아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왜 단란한 가족이 휴일에 대공원에 가서 일부러 무서운 청룡열차를 타고 소리를 지르는가. 왜 귀신의 집에 들르는가. 왜 다정한 연인들이 손에 손잡고 극장에 가서 귀한 돈을 써가며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걸 보고 질질 짜는가. 그러면 좀 낫기 때문이다. 아, 그래도 내가 저놈들보다는 덜 힘들구나. 적어도 나는 지금 당장 영화보고 나가다가 칼에 찔리거나 나이롱줄에 목이 콱 졸려 죽진 않겠구나.


이자성은 강과장이 오래 전에 ‘골드문’이라는 폭력조직에 심어놓은 스파이다. 경찰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조직의 중간 보스급이다. 이건 뭐 [무간도]를 비껴가기 힘든 설정이다. ‘적의 내부에 침투해 활약하다가 점점 그들에게 동화되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이란 공식이 딱 나오지 않는가. 경찰이 폭력조직의 후계자 문제에 적극 개입한다는 설정은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 시리즈와 흡사하다.

 

그런데도 박훈정 감독은 비껴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력한 캐릭터와 상황들로 기존 작품들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이자성을 다그치는 강과장은 [무간도]의 황반장보다 다섯 배는 더 싸늘하고 피를 나누지 않은 ‘브라더’ 정청은 [도니 브레스코]의 알 파치노보다 더 잔정이 많다. 그렇더라도 감독이 수많은 오해를 무릅쓰고 그런 야심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출연 배우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 [베를린]을 보러 나갔다가 극장에서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라는 셀러브리티들이 나란히 등장하는 ‘신종 듣보잡’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박훈정이라는 이름을 보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미 시나리오 작가로 충분히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역시!’로 변했다.

 


황정민은 그야말로 미친듯이 연기를 잘 한다. 달라져 봐야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에서 얼마나 멀어지겠냐 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물을 만난 물고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정청이 처음 등장할 때 비행기 일등석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설정이나 이자성 대신 옆에 있던 부하 뺨을 때리는 장면 등이 모두 황정민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연기뿐 아니라 작품을 입체적으로 대하는 그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혹자는 최민식의 연기가 황정민에 비해 좀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경찰이 깡패들에게 카메라를 빼앗길 때 홀연히 등장해 능청스럽게 대사를 치는 최민식을 떠올려 보라. [넘버 쓰리]의 마동팔 검사 이후 그런 정확하고 적확한 발음과 억양들이 아무한테서나 나오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날고 기는 황정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튀지 않음으로써 극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까지 충분히 해주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그림이 되는 배우 이정재. 연기력이 모자라던 [모래시계] 때처럼 정말로 ‘가만히’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베테랑이다. 그리고 거울 효과라는 게 있다. 이런 귀신 같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서 어떻게 연기가 좋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연기자들이 또 있다. ‘연변거지들’이다. 인천국제공항에 처음 등장할 때는 좀 억지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건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것이었다. 특히 송지효를 습격하다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소풍 왔넨?!” 이라 외치며 저돌적으로 쳐들어가던 무대뽀들이 장례식장에선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먹다 이자성과 눈이 마주치자 쩔쩔매는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연변 거지 삼인방의 이름은 김병옥 우정국 박인수. 미친 존재감이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신선한 캐릭터들을 창조해 멋지게 써먹은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엔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자성의 아내도 나오고 송지효도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가 아니다. ‘빠져나갈 데가 없는’ 이자성의 처지를 설명해주기 위한 도구로 쓰일 뿐, 여성성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이 영화엔 여자가 나오지 않아야 맞다. 마초 영화라서가 아니다.

 


정청은 오랜만에 이자성을 만나서는 “우리 어디 가서 떡이나 치자”고 조른다. 이건 명백히 파트너에게 섹스를 하러 가자고 조르는 남자의 멘트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말미의 6년 전 에피소드에서도 첫 살인 임무를 힘겹게 완수한 정청은 이자성에게 “우리, 목욕탕 가서 깨끗이 씻고 영화나 한 편 보러 가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무슨 영화냐는 파트너의 질문에 “무슨 영화는. 떡영화지.”라고 대답한다. 실지로 섹스를 하진 않을 뿐 이보다 더 징그럽게 가까운 사이가 또 어디 있을까.

 


어제 본 인터넷 기사에서 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를 ‘넥타이 매고 정치하는 영화’라고 설명하더라. 그러나 그건 너무 점잖다.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강과장이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피곤함을 대변해 주는 존재라면, “독하게 살아야 해”라고 죽어가는 순간까지 배신자를 감싸는 정청의 멘트는 존재의 본원적 외로움 때문에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깡패 영화의 탈을 썼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연약하고 지친 남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탄생한 아주 ‘징헌’ 멜로드라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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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서 엉엉 울어버리고싶은 봄날입니다. 까짓거, 시나 한 편 읽읍시다.

 

선운사 동백꽃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섬마을에서 살면 이런 감성이 나오나요? 그나저나 김용택 선생, 참 징하게 멋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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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숀펜이 나오는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보러 인사동에 나갔다가 내친 김에 서촌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창민 사진전]에 갔었습니다. 전에 페북에선가 이 포스터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은 나는데 이렇게 불현듯 사진전까지 보러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사진전 마지막 날이라 화랑에는 작가와 작가의 친구분들이 바닥에 앉아 간단하게 술잔을 나누고 계시더군요.

전시된 사진들은 놀라웠습니다. 포스터에 실린 <브레송에 헌정>이란 작품도 좋았고 <도촬_길거리 쵤영>이나 <우회 혹은 배려>같은 작품들은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도 보는 사람의 시선과 통찰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작품들이 아이폰으로 촬영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는 바로 그 스마트폰 말이죠.ㅠㅜ


저도 요즘 카메라를 배우기 시작한 참이라 그 충격의 강도가 남달랐습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길거리, 학교, 직장, 공원 어디에도 이야기는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때마다 카메라가 없죠. 그래서 우리는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하다가도 “에이, 운이 좋아서 저런 소재와 마주쳤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야 사진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고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이란 논리가 성립되면서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그런데 아이폰 카메라가 DSLR을 비웃기 시작한 겁니다. 아니, 새로운 생각이 고정관념을 비웃기 시작한 거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죠. 한창민은 아이폰 카메라를 들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기도발이 잘 먹히는 계룡산 소백산처럼 이름난 산들은 많지만(정말 거기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 부처님과 접속이 잘 되긴 할까요?) ‘사진발’이 잘 먹히는 장소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창민 작가는 이미 SNS에서 유명인사라고 하더군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많은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텍스트를 제시하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이번 전시회도 지난 일 년간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에 올렸던 사진 3500여 장 중 64장을 골라 인화했다고 합니다. 뭔가 꾸준히 하는 사람은 역시 다르죠? 전시된 작품들 중 이미 팔렸음을 표시한 작품들이 많더군요.

 

저도 내일은 카메라를 들고 오늘 산책 나갔던 곳을 다시 한 번 나가봐야겠습니다. 찍고 싶은 장면들을 아이폰으로 대충 찍었지만 DSLR카메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아직은 노출도 셔터속도도 잘 모르지만 이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으니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아이디어가  모든 것을 결정하죠.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아마 내일도 변함없이 그럴 겁니다.

  

역시 작가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해주는 사진이죠? 

 이 작가가 찍기 전에도 누군가가 이걸 먼저 찍었을 텐데.

 핸드폰으로 찍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고 강렬합니다.

 이 꽉 찬 구도!

 이 사진도 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사진 찍다가 뺨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은 못 찍겠죠. ^^

작가님과 작가의 친구분들. 구도는 어느 정도 제 의도대로 됐는데 촛점도 안 맞고 노출도 형편없는, 바보같은 제 사진 하나 덧붙입니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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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부하고 있는 사진 수업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영화일기를 썼던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2005년 3월 20일에 올렸으니 8년 전에 쓴 글이로군요.

섹스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배제된 멜러 드라마가 존재할 수 있을까.
여기 그런 영화 한편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25번째 감독 작품, 밀리언달러 베이비.
왕년에 컷맨(링의 응급치료 트레이너)으로 이름을 날리다 지금은 허름한 체육관을 운영하는 트레이너 프랭키에게 매기라는 서른 한살 짜리 여자애가 권투를 하고싶다며 찾아온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세살부터 지금까지 웨이트리스를 하고있는 순 깡촌년이다. 여자 선수는 키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프랭키는 일언지하에 그녀의 제의를 거절한다. 하지만 매일 식당 일을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체육관에 찾아오는 그녀의 열의까지 막을 도리는 없다. 왕년의 복서이자 지금은 체육관의 잡일을 맡아 하고 있는 스크랩(모건 프리먼)은 밤늦게까지 혼자서 무턱대고 샌드백을 두드리는 그녀를 보다못해 조금씩 기본기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날 ‘펀치볼’ 사건을 계기로 프랭키는 드디어 그녀의 트레이너가 되기로 결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누구인가. 우리가 어렸을 적 KBS나 MBC 주말의 명화 같은 데서 엔리오 모리코네의 노르스름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홀연히 망토를 뒤집어쓰고 나타나 시가를 입에 문 채 인상을 구기고 총질을 해대던 ‘황야의 건맨’ 아니던가. 그러나 가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수십년의 세월은 어느덧 그를 75세의 할아버지로 만들어 놓았다. 비교적 최근작인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는 너무 늙어보여 과연 메릴 스트립 앞에서 제대로 발기나 할 수 있을까, 하고 관객을 민망하게 만들었던 그가 이번 영화에서는 정말 눈이 움푹 파이고 깡마른 노인 피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늙은 건 배우로서의 육체일 뿐 감독으로서의 역량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깊게 단련되어 이제는 찬란한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된다. 이번 아카데미가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 대신 백만달러 짜리 소녀 매기의 손을 들어준 것은 어쩌면 헐리우드에 ‘클린트 월드’ 같은 저력이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프랭키는 매주 편지를 써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냉정한 딸이 하나 있고, 매기는 어렵게 번 돈으로 집을 사줘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차라리 돈으로 줄 것이지 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냐’고 화를 내는 엄마를 비롯해 몹쓸 싸가지로 똘똘 뭉친 형제자매가 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인간같았던 아버지는 일찍 죽어버렸다. 프랭키는 애써 키워 놓은 선수들은 돈을 좇아 떠나버리기 일쑤고, 23년간 매주 빼놓지 않고 가는 성당의 신부에게나 오랜 동료인 스크랩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반쯤 밖에 열지 못한다.

‘피붙이’는 있어도 ‘마음붙이’가 없는 두 사람은 서로 권투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디어 ‘아버지와 딸’ 이 된다. 그리고 프랭키의 노련한 지도와 매기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은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둔한 몸짓으로 샌드백을 두드리던 그녀는 프랭키와 스크랩에게서 ‘서고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하더니 결국 일년 반만에 한마리 날렵한 맹수로 새롭게 태어난다. 영화 속 권투 경기 장면들은 너무나 박진감 넘쳐서 ‘저것이 진정 여자들의 주먹이란 말인가’ 경악하게 되고 힐러리 스웽크의 코뼈가 부러지는 씬에서는 나도 모르게 객석에 앉아 내 코가 멀쩡한지 몇번이나 감싸쥐어야 할 지경이었다. 흔히 ‘배우들은 운 좋게 재능과 인물을 타고나 일이 없을 땐 섹스 스캔들이나 일으키고 약물이나 해대는 존재’라고 헐뜯는 사람이 있는데 난 절대로 그런 선입관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영화로 두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가져간 힐러리 스웽크는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것은 물론 석달 동안 일주일에 6일씩 두시간의 권투 연습과 두시간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반복했고, 계란 흰자를 꾸역 꾸역 먹어가며 6Kg의 근육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더라도 노력하지 않는 존재에겐 좀처럼 운을 허락하지 않는 냉정한 양반인 것이다.

연전 연승. 맞붙는 선수마다 1회 KO로 때려눕히길 거듭해 더 이상 상대 선수가 나서질 않는 경지에 오른 매기에게 오랜만에 런던에서의 시합 제의가 들어온다. 도약의 기회다. 틈만 나면 ‘늘 자신부터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읇어대는 프랭키는 시합 직전 그녀에게 ‘100% 올 실크’로 제작된 화려한 선수 가운을 입혀 준다. 그 가운의 등판엔 매기 핏제랄드라는 그녀 이름 대신 ‘무쿠슈라’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새겨져 있다. 매기는 이 경기에서도 화끈하게 승리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쿠슈라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마침내 대전료 100만달러 짜리 세계 타이틀 도전자가 되어 라스베거스 특설링에 오르게 된다.

여기까지가 매기 권투인생의 정점이다. 매기는 반칙을 일삼아 인기를 끌던 사나운 챔피언년과 맞서 싸우다 뒤통수를 얻어맞고 넘어져 전신마비가 된다. ‘늘 자신부터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프랭크의 충고를 단 한번 어긴 죄로 천국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얼굴 뿐이다. 프랭키는 모든 일을 작파하고 성심성의껏 그녀를 돌보지만 그녀의 몸은 욕창이 나서 점점 썩어 들어간다. 오직 그녀의 돈만을 노리고 나타나 장례식까지 운운하며 서류에 싸인을 요구하던(입에 펜을 물려주며!) 가족들을 쫒아보낸 매기는 프랭크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하자 혀를 깨물고 자살을 시도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장르 영화의 관습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절묘한 복선들을 곳곳에 치밀하게 깔아놓고 관객의 마음을 찢어발기다가 어느 지점에서 완만했던 서사 구조를 일시에 뒤집어 대단한 감동과 신선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프랭크와 티격 태격 유머러스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대사들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영화 전체의 나레이션까지 맡아 인생의 지혜를 끊임없이 들려주던 스크랩이라는 인물은 원작에 없었다는 점이다. 즉 70세에 ‘불타는 링’을 쓴 원작자 F.X 툴이 이 영화의 뼈와 근육을 만들어 놓았다면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각색자 폴 해기스는 영화에 살과 체온을 불어넣은 것이다.

권투 영화이면서도 멜러 영화이고, 장르 영화이면서도 파격적 주제를 담고 있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결론적으로 ‘소통’에 관한 영화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할 것처럼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프랭키는 매기와 완벽하게 소통하는 순간, 번민을 넘어 중대한 결심을 한다. 매기의 청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 옛날 다리를 절던 개를 안락사 시킨 뒤 삽을 들고 나타났던 매기의 아버지처럼.

프랭크는 밤에 주사기를 들고 병원에 나타나 매기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부터 네 산소 호흡기를 떼주겠다. 약물을 함께 주사할테니 편안하게 잠들거라… 그리고 무쿠슈라는 겔릭어로 ‘나의 혈육’이라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프랭키를 바라보는 매기의 눈에서 고마움과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매기에게 트레이너이자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주문을 마친 프랭키는 꾸부정한 뒷모습으로 어두운 병원 복도를 빠져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다. 어쩌면 그가 병상에서 읽어주던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에 나오는 오두막을 진짜 찾아나서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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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이 점심 때 건대입구역에서 비즈니스 미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쭐레쭐레 쫓아가 롯데백화점 푸드코트에서 그녀가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옆에서 꾸역꾸역 점심을 얻어먹고 혼자 지하1층 반디앤루니스에 들른 나는, 느닷없이 이 땅의 문화 부흥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과 나의 페친인 류근 시인을 더욱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갸륵한 마음이 두서없이 일어나 마침내 그의 시집을 찾아내고야 만 것이었다.

[상처척 체질]…”아 제목도 참 슬퍼…” 하다가 “아니지. 이런 건 류근 식으로 아 씨바 제목도 조낸 슬퍼…해야지” 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문제적 시집을 펼친 것이었다. 페이지마다 술냄새가 진동하는 이 퇴폐적인 시집은 뒤적뒤적할수록 읽을 만한 시들이 꽤 많이 나오지만 나는 특히 ‘유부남’이라는 야비한 시와 ‘가족의 힘’이란 뻔뻔한 시가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일단 ‘가족의 힘’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가족의 힘

                          류근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까지 봐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아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다들 류근 시인이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쓴 사람이란 것은 아실 것이다. 이 시를 읽고 ‘유부남’이라는 시의 내용까지 궁금해진 분들은 나처럼 돈을 내고 이 시집을 사시기 바란다. 물경 팔천 원밖에 안 한다. 그마저 비싸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알리딘 중고서점을 뒤져보는 것도 좋겠다. 류근의 시들이 야리야리하고 좀 슬프고 많이 웃기긴 하지만 연애편지에 인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궁상맞거나 자학적이라 다만 한 번 읽고 즉시 내다 판 놈들도 대략 많을 것이란 것이 나의 짐작인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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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사람들은 욕도 참 성의있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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