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 어느 때가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토요일 아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중의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라디오 켜고 화장실 가고 씻고 밥 먹고 출근하느라 다람쥐처럼 바쁘지만 토요일 아침에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이불 속에서 한참을 시시덕거리기 때문이다.

잘 잤냐는 아침인사부터 시작해 고양이 순자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오늘은 영화를 한 편 보든지 서촌이나 홍대로 가든지 아무튼 뭘 하며 놀아볼까 하는 사소한 계획들을 세우기도 한다. 우리 둘은 모두 '토요식충단' 창단멤버들이라 토요일엔 근사한 외식을 꿈꾸는 경우가 많은데 요 몇 주는 내가 주말에도 계속 회사를 나가는 바람에 모임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은 오늘도 오후에는 회사를 나가야 한다(아내는 내가 어제 '일요일 저녁 회의가 토요일 저녁 아홉 시로 변경되었다'라고 하자 도대체 그 회의를 소집한 사람이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그 회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지 알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다). 

내가 토요일 아침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는 '방해 요소'가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금요일에 술을 마시고 잠들면 늦게까지 잘 것 같지만 의외로 토요일 새벽에 깨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는 다시 잠드는 대신 기쁜 마음으로 거실로 나가 차를 끓이고 책을 읽는다. 아내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쌔근쌔근 자고 있고 온 세상은 아직 고요하다. 식탁에 의자를 바짝 붙여놓고 스툴 위에 발을 올려놓은 채 책을 읽는 시간은 그 무엇보다 충만하고 소중하다. 나는 이런 시간에 전에 읽었던 하루키나 윤대녕이나 정미경의 옛 단편, 테드 창이나 배명훈의 SF단편, 또는 장석주 시인의 에세이 등을 다시 뽑아 읽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이 시간의 독서는 정보 수집이나 지식 충전이 아니라 순전히 즐기는 시간인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다가 졸리면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면 그만이다. 

가끔은 밖으로 나가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옥상에 올라가기도 한다. 옆집 총각 말고는 우리집 위로 아무도 살지 않는 산꼭대기라 맑은 공기와 하늘은 온전히 나의 차지다. 이럴 땐 성북동으로 이사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평일엔 일에 쫓겨 이렇게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된다.  

아내가 밥을 짓는 동안 이 짧은 글을 썼다.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려니 압력솥이 치익~소리를 내며 밥이 다 되었음을 알려왔다. 김치찜에 가까운 김치찌개에 하얀 쌀밥을 비벼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내가 차를 준비했다. 차를 마시며 '무한도전 스페셜'을 시청한다. 사소하고 게으른 아침이다. 비록 오후에는 회사에 가서 일을 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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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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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

사진일기 2018. 1. 31. 00:09



하루 종일 눈이 내렸고 나는 일찍 집에 가서 눈을 치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밤에라도 가서 눈을 쓸어야 하지만 집에 있는 빗자루는 자루가 빠져서 쓸 수 없는 상황. 끝나고 나가면 철물점들이 모두 문을 닫으므로 저녁 7시 회의를 앞두고 회사 앞 철물점으로 가서 플라스틱 빗자루를 샀다. 플라스틱 빗자루 한 개에 6천 원이라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다. 

회의를 마치고 아홉 시 경에 빗자루를 들고 버스를 탔다. 버스 승객들이 애써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오늘 집으로 가서 눈을 치워야 하는데. 빗자루를 타고 날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전철로 갈아타고 아내에게 카톡 메신저를 했더니 자기도 지금 광화문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 안이라고 했다. 전철역에서 아내를 조금 기다렸다가 만나 같이 골목길을 올라왔다. 거의 다 올라와서 아내가 잠깐 서 보라고 하더니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집으로 올라와 옆집 총각과 함께 집안팍의 눈을 쓸고 치웠다. 털모자를 쓰고 한참 작업을 했더니 영하의 날씨인데도 땀이 나서 머리가 젖고 온몸이 후끈후끈했다. 오늘밤에라도 이렇게 눈을 치워놓지 않으면 내일은 눈이 얼어 빙판이 된 언덕과 골목길을 다녀야 한다. 아내 말대로 겨울의 산꼭대기 단독주택 생활이 '쫄기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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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수의 [뜨거운 피]를 읽고 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작가 김언수가 '구암'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희수라는 건달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데, 우선 놀라운 것은 쫀득쫀득한 대화들이 장난 아니게 재미 있다는 것이다. 원래 건달들이 주먹보다는 입으로 먹고 산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얘기이긴 하지만 여기 나오는 희수나 만리장 호텔 사장 손영감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반말과 존대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부산 사투리의 유연함에 힘입어 한 마디 한 마디가 퐁당퐁당 튀어다니는 느낌이다. 장르가 느와르 소설이기에 범죄 얘기가 영화차럼 흥미롭게 펼쳐지고 기기묘묘한 불법과 사기, 도박 시퀀스들이 흘러넘친다. 나이 마흔이 되어 집 한 칸 없이 호텔방을 전전하는 희수의 처지에선 짙은 우수도 흐른다. 

김언수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전쟁 때 내려온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판자촌에서 자랐는데, 거기 섞여 살던 건달, 창녀, 사기꾼, 살인자 들의 모습이 그대로 소설 속 구암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책 뒤에 붙어있는 '작가의 말' 중 일부를 읽어보자(난 소설을 읽기 전에 작가의 말부터 읽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비밀은 없고, 마음은 안타깝고, 피는 뜨겁다. 그래서 그 동네 술자리에선 싸움이 벌어지고 술판이 엎어지는 일이 흔했다. 죄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백수에, 건달에, 루저 주제에 서로에게 훈장질을 어찌나 해대는지, 사실 술자리가 엎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한 남자가 점잖게 충고를 한다. "니가 일을 그딴 식으로 처리하니 망조가 드는 거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니 내 말 들어라." 그러면 앞의 남자가 발끈한다. "너나 잘해라. 이 새끼야. 마누라한테 처맞고 다니는 주제에 어따 대고 훈장질이고." 그러면 어김없이 술판이 뒤집어지고 소주병이 날아다니고 주먹질이 이어진다.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다시 또 술을 마시며 "어제는 미안했다." "미안은 무슨. 우리가 뭐 남이가." 이 난리를 치는 동네 말이다.  

출퇴근 시간에만 조금씩 아껴서 읽고 있는데 마침 김동식의 [회색인간]을 비롯한 소설집 세 권도 도착해서 걱정이다. 뭐부터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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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씨에게 

유창선 씨, 안녕하십니까? 유창선 씨가 쓴 책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를 읽고 문득 편지글로 독후감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당장 저자와 만날 수는 없지만 편지글이라면 함께 앉아서 얘기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우리나라 말이나 글은 종적인 인간관계 덕분인지 호칭이 꽤나 까다롭습니다. 처음 말을 거는 경우엔 더 조심스럽지요. 약간 고민을 해보다가 그래도 요즘 많이 쓰는 '님'보다는 '씨'가 더 꾸밈이 없고 무심한 것 같아서 그냥 '유창선 씨'라고 부르기로, 제멋대로 정해 버렸습니다. 괜찮으시죠? 


세상은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것은 나의 마음이다. 지난 밤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세상의 색깔이 다음 날 아침이면 환해 보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유창선 씨가 사는 게 힘들고 외로울 때 읽었다는 니체에 대한 글 중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다가 팍 꽂힌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세상은 잔인하지도 따뜻하지도 않고 그저 늘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 사는 게 힘들 때마다 나도 이 구절을 다시 한 번 떠올려야겠다 생각하게 된 것인데, 이는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방송 일이 다 끊기자 정권에 줄을 서거나 반대편에 서는 대신 동네 독서실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유창선 씨의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었겠죠. 

근대의 탄생과 함께 신으로부터 개인을 되찾아왔다는 우리들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인들은 일과 일상에 매몰되어 또다시 '나'를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혼자 있을 시간, 즉 가만히 앉아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 볼 시간을 좀처럼 가질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늘 버릇처럼 '정신이 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TV 광고 만드는 일을 이십 년 넘게 하고 있 는 저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허구헌날 남의  상품이나 브랜드를 어떻게 하면 빛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느라 정작 자신의 인생은 챙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카피라이터는 배우 이나영의 입을 빌어 '내 생각이라는 녀석은 잘 지내고 있는지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 봅니다'라는 카피를 쓰기도 한 것이겠죠. 

광고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물건이 많이 팔리거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광고를 만들어 줄 것을 원하지만 그게 어떤 각도로, 어떤 포인트로 제작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광고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자신이 행복해지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어느 순간 일상을 멈추고 자신을 들여다 볼 계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유창선 씨가 동네 독서실로 들어가면서 비로소 진짜 내가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결단에 따라서는 여러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새로운 삶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행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근무하던 곳에 사표를 내고 나오며 '돌아갈 다리를 내 손으로 끊어버린 셈'이라 생각했던 유창선 씨. 저도 사표를 여러 번 써보았기 때문에 그게 어떤 심정이었을지 약간은 이해가 됩니다만 다른 건 몰라도 당시의 결심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했을 것이라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마음이 온전히 내 것이고 나를 채우는 전부라면 정신은 그저 테크니컬하게 사용하는 무형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마음이 시킨는 대로 사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진보적인 정치평론가였던 유창선 씨는 양심이 시키는 대로 세상을 버리고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을 택했죠. 그리고 그 결심은 '나의 고민은 이천몇백 년 전 소크라테스의 고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추진력을 얻은 것 같습니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그대로 당시 유창선의 처지를 설명하는 우화이기도 했고 유창선을 대신해 선배 철학자가 목숨 걸고 먼저 써 놓은 '양심선언'이이기도 했으니까요.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을 읽으며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카프카가 쓴 소설 [변신] 속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면서 현대인의 태생적인 불안을 실감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백이 숙제의 신화를 해체했던 루쉰의 글은 또 어떤가요. 정치를 비롯한 인간의 삶은 그것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일진대, 지고지선한 얼굴을 한 영웅의 모습은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의 통찰은 빅토르 위고가 쓴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보여준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는 깨달음과 상통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오독일 수도 있겠지만 책의 목차를 다시 더듬으며 유창선 씨가 책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제 마음대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왜 제목이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였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려면 부단히 싸워야 한다는 유창선 씨의 말에 공감하기에 일단 책에서 언급되었던 책들을 찾아 꼼꼼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독서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예쁜 여자에 대한 동경만 채우는 일이라면 그 텍스트를 찾아 읽는 일은 직접 그녀를 만나 손을 잡고 살결을 만지고 입김을 불어넣어 결국 내 애인으로 만드는 일이니까요. 

자신의 결단에 따라 누구나 여러 번을 살 수 있다는 유창선 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제 생각에 당신은 두 번째 인생을 멋지게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문화계도 허지웅처럼 얄쌍하거나 김어준처럼 지랄스럽거나 아무튼 좀 튀어야 하는데 유창선 씨는 너무 고지식한 아저씨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좀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깊게 읽고 넓게 생각함으로써 얻은 정신의 수려함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책의 부제가 '존엄하게 살기 위한 인문학 강독회'인 것처럼 존엄하게 살고 싶은 눈 밝은 독자들이라면 유창선 씨의 숨은 가치를 단박에 알아볼 테니까요. 너무 일이 바빠 사 놓고도 읽지 않을 게 뻔해 전작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를 아직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쯤엔 사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 며칠 날씨가 미친듯이 춥고 미세먼지도 많았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더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총총.

독자 편성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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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778350.html 


생은 하나의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이 열린다. 매일 머리 아프게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는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에 본인을 둘 필요가 없다. 인생의 한 부분이 끝나버렸다고 해서 (전체가) 다 끝난 건 아니다. 나는 영화 몇 편이 될 정도의 재밌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좋은 인생’이다. 늘 재밌는 일이 생겨 인생이 불안하지 않다.


일 년 전 오늘 아내가 소개해줘 읽고 공유했던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의 인터뷰. 머리가 복잡했던 당시에 많은 용기와 위로를 받았는데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좋다. 좋은 위스키처럼 킵해 놓고 가끔 꺼내 음미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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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역시 너무나 바쁜 한 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사 일도 바빴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엄청 바빠서 한가하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청와대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모든 영화와 연극 공연들이 망했습니다. 제가 그 기간에 봤던 한국 영화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이나 [스플릿]도 도 대중적 흡인력이 뛰어난 영화들이었는데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오죽하면 박근혜와 최순실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들이 난생 처음 치킨과 맥주를 시켜놓고 저녁 뉴스를 기다렸다고 할까요. 그러나 이런 모든 핑계에도 불구하고 '낭중지추'처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들이 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소설들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2017년의 국내 소설 Best5'를 마음대로 뽑아 보았습니다. 물론 제가 읽은 책 중에서만 뽑은 거니까 한 번 읽어보고 무시하셔도 좋습니다(순전히 제가 아직 못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김영하, 김애란 같은 일급 소설가들의 작품이 빠졌습니다). 

[82년생 김지영] 

방송작가 출신인 조남주가 쓴 이 소설을 올해의 베스트로 올리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2년도에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학 가고 연애하고 직장 잡고 결혼하고 애 낳았던 김지영 씨에 대한 이야기. 마침 레베카 솔닛 등의 저작으로 불붙기 시작했던 페미니즘 논쟁은 이 담담하면서도 탄탄한 소설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관습과 사고가 반성의 시간을 시간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의는 충분합니다. 쉬운 문장과 탄탄한 구성이 어우러져 흡사 르포타쥬를 읽는 듯한 사실감까지 선사합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나러 가는 자리에 선물해서 화제가 된 책이기도 하죠.



[거짓말이다]

우리 윗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이나 '광주항쟁'이 큰 상흔을 남긴 사건이라면 우리 세대는 '세월호'라는 커다란 트라우마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습니다. 소설가 김탁환은 단순히 세월호 유족의 슬픔을 다루는 데서 벗어나 세월호 잠수사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봅니다. 소설가의 임무는 당사자들과 같이 슬퍼하는 것보다 그 사건의 내면으로 들어가 원인과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데 있으니까요. 그래서 만나 사람이 바로 김관홍이라는 잠수사였습니다. 배가 물에 잠긴 뒤 희생자들이 다 숨진 후에 김관홍 잠수사가 진도 앞바다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냉정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인터뷰와 분명한 사건 재구성 등으로 읽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해 기어이 몇 번의 눈물을 쏟아내게 합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기뻐하다가 결국 목숨을 버린 김관홍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작업 일지처럼 쓰인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에서도 자세히 만날 수 있습니다. 두 권 다 추천합니다. 뒤늦게라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거짓말이다] 리뷰를 첨부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346?category=470827  


[사랑의 생애] 

우리나라에서 관념적인 지식인 소설을 가장 완성도 있게 쓰던 이는 아마도 [광장], [회색인]의 작가 최인훈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대를 잇는 작가로 저는 이승우를 꼽고 싶습니다. [생의 이면]이나 [식물들의 사생할] 등에서 보여준 그 사유의 힘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죠. 그런 그가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룬 소설을 냈습니다. 책의 제목은 '사랑의 생애'. 사랑이라는 관념을 유기체로 여기는 순간 인간의 몸 또는 마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사멸하는 과정이 생겨닙니다. 이승우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라는 냉정한 문장을 시작으로 사랑의 본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합니다. 그의 문장은 관념적이지만 논리의 고리가 탄탄해 지루하지 않고 같은 계보라 할 수 있는 최수철이나 이인성, 한유주 등에 비해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아 호감이 갑니다. 마침 며칠 전 쓴 리뷰가 있으니 그것도 첨부를 할까 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431?category=470827 


[채식주의자] 


조용하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형식은 엄격하지만 내용은 늘 파격적인 소설을 쓰는 젊은 소설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한강입니다. 그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는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작년에 이 작품이 번역자에게 주어지는 맨부커상을 수상함으로써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죠. 저는 수록되어 있는 세 작품 중 두 번째인 <몽고반점>의 끝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로 치면 이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을 볼 때의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올해의 책은 아니었지만 수상 이후 계속해서 팔려 '스테디 셀러'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광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혹시 안 읽으셨다면 나중에라도 꼭 읽으시길 권합니다. 단지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내가 이렇게 잘 쓴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라는 감탄을 하실 거라 장담합니다. 



[아무도 아닌] 


그런 소설이 있습니다. 뭔가 개인적인 경함담을 읽은 것 같은 현실감을 느끼다가 다 읽고 책 밖으로 나와보면 비로소 한 편의 우화로 느껴지는 이야기. 황정은이 쓴 소설들이 그렇습니다. 저는 맨 처음 그의 소설 <백의 그림자>를 읽고 너무 좋아서 며칠간 몸살을 앓았습니다. 진지하게 하는 농담을 듣다가 홀딱 빨려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이번 소설집에 있는 <명실>이나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정은은 착하고 선량한 사람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 는 걸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작가와 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만, 괜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상하죠?  제가 예전에 썼던 [백의 그림자] 리뷰를 첨부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197



[피프티 피플] 

'베스트5'라고 시작은 했지만 섭섭해서 한 작품 더 붙이렵니다. 바로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입니다. 한두 명이 주인공이 아니라 등장하는 50명이 모두 주인공인 소설을 쓸 순 없을까, 생각하면서 창비 블로그에 연재했던 소설. 그러나 62.5매를 쓰고는 힘에 부처 그만 쓰겠다고 말했을 때 편집자의 격려에 힘입어 마저 쓸 수 있었던 소설. 정세랑은 정말 이야기를 잘 만드는 작가입니다.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본격 엔터테인먼트 소설도 잘 쓰고 [이만큼 가까이] 처럼 아련한 청춘소설도 씁니다. 그리고 이번 소설처럼 병원이 무대인 경우엔 '56번 찔린 남자'를 다루거나 '케이크 자르는 칼로 270도로 목이 잘린 여자'를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비극적인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무슨 곤란한 일도 하하하하하, 라는 웃음소리와 함께 긍정적인 일도 돌려버리는 중년 여자가 등장하고 그녀가 자르면 수술부위에 피가 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수술을 잘 해서 '천재소녀'라 불리는 외과 여의사를 짝사랑하던 마취과 의사가 결국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되는 귀여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프트하지만 섹스나 불륜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잘 다루는 작가입니다. 제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마지막에 붙였습니다만, 특히 이 소설집은 인물과 인물들이 희미한 끈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숏컷]이 생각나는 소설입니다. 올해가 아니라면 내년 초라도 일독을 권합니다(작가가 재목을 '피프티 피플'이라고 쓰고사실은 51명을 등장시켰다고 작가의 말에 썼던데, 저도 'Best 5'라고 쓰고 6 작품을 등장시켰네요. 뭐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한 권이라도 더 소개할 수 있으면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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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에 대해 몇 자 기록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17년 1월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중 딱 한 권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한국 소설 쪽에서는 이 작품을 꼽고 싶으니까(외국 작품은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형이상학적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심각 보이' 이승우가 이번에 잡은 주제는 '사랑'이다. 그런데 소재도 '사랑'이다. 주제가 사랑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소설에 적용되는 것이니 그렇다 친다 해도 소재조차 사랑이라는 건 일단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주인공도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다. 첫 문장을 보자.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우주괴물들이 인간의 몸을 인큐베이터처럼 이용한 것처럼 이번엔 형체도 체취도 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우리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오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언뜻 관념의 장난이나 궤변처럼 느껴지는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작가는 형배와 선희라는 구체적인  인물들을 데려온다. 소설 초반에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는 말로 이별을 통보하는 형배. 그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혀서 " 지금,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흡사 독립선언문 낭독하듯 하고 있는 거 알아?" 라고 묻는 선희. 두 남녀는 그렇게 헤어지고 그들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가, 형배가 자학에 가까운 선언을 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에 있어서 진정한 약자와 강자는 누구인가 등에 대한 작가의 상념들이 유려하면서도 집요한 문장으로 쫀쫀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몇 년 후 두 사람은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때 형배는 그녀의 귀가 하트 모양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 뒤늦게 혼자 사랑에 빠진다. 쉽게 말해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왜 대개의 사랑은 이렇게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 것일까.

자기가 찍은 거의 모든 여자와 자는 바람둥이 준호는 그런 형배를 '진실한 사랑은 평생 한 번 뿐'이라는 그릇된 신화에 사로잡혀 그런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작가는 평생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파혼한 프란츠 카프카의 예를 들며 준호의 입장을 옹호한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중 '감옥에 갇힌 죄수'의 욕망과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죄수는 탈옥을 해서 감옥 밖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감옥을 잘 개조해서 그 안에 살고 싶은 욕망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갑자기 나타난 해결점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흡사 영화 [빠삐용]에서 드가가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은 작가가 카프카의 약혼 이야기를 몰스킨에 메모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몰스킨에 적힌 단상이 스마트폰의 메모장으로 옮겨 갔고 그 후에 생각날 때마다 메모한 문장들이 그대로 소설의 소제목들이 되었다. 그리고 형배, 선희와 그녀의 새로운 사랑 영석, 그리고 친구 준호와 민영, 그리고 형배의 어머니까지 소환해 사랑이라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이용하고 지배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집요한 문장에 매번 감탄했다. 처음엔 형이상학적인 것 같아 저항이 일었지만 곧 저항을 포기하고 리드미컬하게 그 문장에 몸을 실으면 어느 순간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쾌감이 몰려왔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사랑에 대처하는 어이 없는 상황마다 카프카는 물론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등 고전들이 등장해 인간 심연에 숨어있는 보편적인 심리를 새삼 일깨워주기도 해서 더 흥미로웠다. 

이승우는 프랑스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소설가다. 그만큼 관념적으로 뛰어난 직조를 선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황석영이나 고은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못 타고 작고한다면 나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은 아마 이 작가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보기도 한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듣고 자랐다. 아마 그때도 사랑은 중요했고 그 본질이 무엇이지에 대해서도 다들 궁금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 것만큼 어리석을 일이 또 있으랴. 물어봤자 답이 없는 것이 사랑일 텐데. 다행히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라로 소설책 한 권을 채운 이승우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신은 일한다. 일하는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신의 존재 근거나 방식에는 관심 없다.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 사랑하느라 바쁜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의 근거나 방식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니 걸핏하면 '도대체 자기는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야?'고 묻는 여자친구가 았다면 이 책을 선물하라.  그리고 사랑은 하는 것이지 묻는 게 아니라고 점잖게 말하라. 이때 모텔 간판을 가리키며 말하면 빰을 맞을 것이요, 꽃이나 목도리를 내밀고 말하면 미소와 키스를 받을 것이다(자매품으로 조중걸의 [러브 온톨로지]라는 에세이도 있다. 사랑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책이다. 내 아내 윤혜자가 기획한 책이라 그런 건 물론,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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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픕니다. 위염이 커져서 어젯밤도 끙끙 앓았고 지금도 자리에 누워 움직일 때마다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크리스마스는 계속 집에서 흰죽을 끓이다 아내에게 야단을 맞으며 조신하게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 혜자의 페친 중 한 분이 자신도 '크리스마스 조신 모드'에 동참하겠다며 집콕하며 보기 적당한 코미디 영화와 무조건 재미 있는 영화를 하나씩 추천해 달라 하셨답니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겨울에 볼 코미디 영화는 [다이 하드]시리즈 같은 '떠벌이 액션'이 일단 부담 없습니다. [저수지의 개들]부터 [헤이트풀 에잇]에 이르기까지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들도 늘 수다스러운 악역들이 등장해서 즐거움을 주죠. 그리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정통 로맨틱 코미디가 제격이죠. [노팅 힐]처럼 좋은 시나리오에 대스타들의 풍모까지 돋보이는 영화도 좋구요. 잭 블랙과 캐이트 윈슬렛, 주드 로, 캐머린 디아즈 등이 떼로 나왔던 [로맨틱 할리데이]도 추천합니다. 해매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워킹 타이틀의 [러브 액추얼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그 동안 많이 봐으니까 이번에 또 보시려거든 '무삭제판'을 권합니다. 직업이 포르노 배우라 통편집 당했던 커플 이야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풋풋한 감동을 선사하니까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을 썼던 노라 애프런의 [유브 갓 메일] 같은 작품도 좋구요. 노라 에프런의 뒤를 이었던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의 연기가 정말 뛰어난 수작입니다. 키애누 리브스도 나오죠. 

그런데 이렇게 '핑퐁 대사들'이 난무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모두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원제는 'It Happened One Night'이죠. 1930년대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 봐도 조금도 꿇리지 않는 유머 감각과 편집 타이밍, 연기를 자랑합니다 - 예를 들어 이런 장면 : 티격태격하던 여주인공과 버스에서 내려 냇물을 건나가게 된 클라크 게이블, 여자를 어깨에 둘러매고 가방을 든 채 냇물을 건내줍니다. 그런데 여자가 계속 쫑알쫑알 불만을 토로하죠. 그러자 클라크 게이블이 어깨 위에 있는 여자에게 잠깐 가방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가방을 여자가 건네받자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철썩 한 대 갈기고 다시 가방을 빼앗는 클라크 게이블. 여자는 짧은  비명을 지르고. 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 그가 맞습니다 - 제 이름을 걸고 강추합니다. 

코미디 영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이 찰리 채플린과 우디 앨런입니다. 사회주의자였던 찰리 채플린은 평생을 노동자와 가난에 천착했습니다. 그래서 [모던 타임즈]나 [키드] 같은 작품들은 한참을 웃다가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눈물 때문에 가슴이 아려오곤 하죠. 우디 앨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 코미디 대본을 보내서 용돈을 벌던 천재였습니다. 그의 자기비하 유머가 돋보이는 [애니 홀]이나 [한나와 그의 자매들]을 권합니다. 물론 제일 흥분하며 극장에서 봤던 영화는 최근작 [미드나잇 인 파리]였죠. 저는 개인적으로 여주인공이 매일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스크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험극 [카이로의 붉은 장미]도 정말 좋아합니다. 미아 패로우의 상대역이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미드 [뉴스 룸]의 그 앵커입니다. 

코앤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나 [파고]를 다 시 볼 것을 권합니다 제가 왜 '다시'라고 하냐면 왠지 코엔 형제의 영화는 다 봤다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화가 너무 컨셉추얼하고 지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영화라는 것만큼은 틀림 없습니다.

예전엔 코미디 영화 중  제일 재미 있는 게 뭐냐고 물으면 마크 마이어스의 [웨인즈 월드]를 댔지만 그 작품은 너무 취향이 독특한 '병맛'이기 때문에 이젠 선뜻 권하기가 좀 망설여집니다. 대신에 제니퍼 로렌스와 브래들리 쿠퍼가 나왔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정도라면 마음 놓고 추천할 수 있습니다. 참 좋은 작품입니다. 아, 그리고 숨은 작품 중 로버트 드 니로와 제인 폰다가 나온 [스탠리와 아이리스]가 생각납니다. 비디오 가게가 유행하던 시절 VHS로 빌려본 영화였는데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던 '신파'영화입니다.

올해 본 영화 중 한 작품만 꼽으라고 하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꼽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2016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저와 아내는 2017년 1월에 CGV명동 라이브러리에서 봤습니다. 제목인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실제로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입니다. 어떤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살던 케이시 애플렉이 형의 죽음으로 다시 돌아와 벌어지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인데 정말 푹 빠져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본 작품입니다. 벤 애플렉의 동생인 케이시 애플렉은 '열연을 하지 않음으로써 열연이 되는' 경지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특히 잠깐 술을 사러 간 사이에 아이들이 화재 사고로 모두 죽었을 때 술봉지를 놓지도 못하고 망연자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장면과 경찰서에 가서 간단한 조사를 마치고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다,라는 경찰의 말에 '정말 가도 돼요? 정말 이게 다예요?'라고 묻고는 경찰이 차고 있던 권총을 번개 같이 빼앗아 입안에 넣고 자살을 시도하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로 나왔던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도 끝내줍니다. [우리도 사랑일까]에 나왔던 그 배우입니다. 다른 영화에선 마를린 먼로로도 나왔었죠. 아무튼 저는 이 영화를 너무 감명 깊게 봐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다른 작품 [유 캔 카운트 온 미]도 찾아보았습니다. 그 영화 역시 잔잔한 인간사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마크 러팔로, 로라 리니 등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은 보석 같은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인데, 이건 권하지 않겠습니다. 원래 아이맥스에 최적합하도록 만들어진 이 멋진 영화를 집에 있는 TV로 보는 건 맛있는 파스타를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 먹는 것처럼 서글픈 일이니까요. 저는 못 봤지만 나문희 선생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아이 캔 스피크]가 좋다고들 합니다. 감독의 전작 [스카우트]의 품질을 생각하면 믿음이 가는 영화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와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를 추천합니다. 다들 각각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입니다. 폴 버호벤 감독의 신작 [엘르]도 좋았습니다. 얼마 전 그의 전작 [블랙 북]을 IPTV로 꺼내 아내와 함께 넋을 놓고 다시 본 적도 있습니다. 송강호 주연의 [택시 운전사]는 극장에서 보셨겠지요? 그럼 놓친 영화 중 문소리 감독의 [여배우는 오늘도]를 추천합니다. 그냥 여배우가 만든 영화겠지, 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능글맞은 코미디로 시작해 나중엔 인간사의 심연까지 들여다보는 멋진 작품입니다. 잠깐 등장하는 배우 이승연의 연기를 주목해 주십시오. 홍상수의 영화는 두 편을 개봉했는데 씨네21에서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후]가 더 좋았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인터넷도 찾아보고 하면서 이런저런 영화 얘기를 늘어놔 보았습니다. 아내가 아파 저도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냥 집에 있을 생각입니다. 지금 반 넘어 읽고 있는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을 마저 읽을 생각입니다. 정세랑은 정말 이야기를 잘 만들어 냅니다. 요즘 작가들 중 제일 좋아합니다. 그녀의 장르소설이자 엔터테인먼트 소설인 [보건교사 안은영]을 강추합니다. 물론 다른 책들도 다 재미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도착한 명로진 선생의 신작 [논어는 처음이지?]도 한 번 들춰봐야 하구요(아내가 기획한 책입니다. 저도 명 선생의 논어 강의를 재미 있게 들었구요). 읽다가 회사 일이 바빠서 반쯤 읽다가 중단한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도 다시 읽을 생각입니다. 독후감을 쓰고 싶은 책들도 몇 권 밀려 있는데 좀처럼 시작을 못하겠군요. 그래도 연휴인데 극장에 가서 조조나 심야로 [스타워즈] 같은 거 보고 싶기도 하고. 바쁘네요.

그런데 장례식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오늘 제천 병원에 가야 합니다. 제 대학 써클 뚜라미 동기가 이번 체천 찜질방 화재에서 참변을 당했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사는 게 참. 모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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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획, 전략, 우린 그딴 거 없다. 목표도 없다.”
 “우리 기업은 3년 혹은 5년이면 망할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 회사나 개인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자폭 발언만 일삼아 '야노 어록'이란 것까지 떠돌았던 100엔숍 '다이소'의 창업자 야노 히로다케의 말들이다. 도대체 회장이 이런 정신상태를 가진 기업이 어떻게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성공했을까. 하지만 이런 기행을 통해 야노 회장은 다이소라는 브랜드를 소비자들 머릿속에 깊이 새기는 데 성공했다. 더구나 모든 상품을 100엔에 팔기로 한 이유가 젊었을 때 아내가 임신을 하자 장사하는 게 귀찮아져서 물건값을 100엔으로 통일했다는 재미 있는 스토리텔링까지 만들어냈다. 그래서 다이소는 망하기는커녕 전 세계로 사세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브랜딩 얘기를 하면서 나는 왜 엉뚱하게 다이소의 얘기를 꺼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극단적 사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은 결코 놓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자기다운 것이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세상에 전달하려 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과 대답을 통해 얻어지는 유무형의 자산을 '브랜딩'이란 부른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까지 수없이 검증된 방법론을 통해 꾸준히 브랜딩을 하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 여기고 또 그렇게 한다. 그러나 시간과 돈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대기업과 같은 침착한 브랜딩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은 급하고 가진 자산은 없다. 그런 신생 기업들의 브랜딩을 도와주기 위해 나온 책이 바로 [창업가의 브랜딩 -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다]이다. 

먼저 외국 기업과 국내 스타트업 등을 고루 거친 저자들(우승우, 차상우 두 명이다)은 'Why me?'라는 화두를 던진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브랜딩을 하기에 앞서 먼저 '나답다'라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소비자들은 왜 다른 브랜드가 아닌 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명확하게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규명되어야만 '좋은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 29CM, 72초TV...지금 가장 확실하게 자기만의 브랜딩에 성공한 핫한 브랜드들이다. 그들은 무슨 방법을 썼길래 자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모두가 뛰어난 브랜딩을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해진 방법론은 그 누구도 말해줄 수 없다. 즉 브랜딩의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는 브랜드 수만큼 많은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원칙은 몇 가지 존재한다. 저자들은 그 몇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열 개의 챕터를 나누고 각 장마다 요즘 뜨고 있는 스타 창업가 10명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원래 브랜드라는 말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소의 엉덩이에 찍던 불도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어라서 그런지 몰라도 브랜딩, 하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브랜딩에는 많은 선입견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브랜드를 개발하려면 많은 리소스가 필요하고 반드시 전문가를 거쳐야 한다는 생각 등이다. 그런데 마포구 도화동에서 한국의 스페셜티 시장을 견인해 온 프릿츠커피 컴퍼니(사실은 'ㄷ'받침인데 자판이 말을 안들어 이렇게 썼다)의 김병기 대표는 '브랜드를 위해 특별히 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성실하게 일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고객들에게 잘 전달될 거라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이라는 결과물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프릿츠가 존재하는 이유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강조한다. 

진리는 늘 단순명쾌하다. 책을 자세히 읽어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단순하게 본질에만 집중해야 브랜드가 산다. 내가 왜 이걸 만들어야 하는지, 소비자는 왜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지, 내가 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어야 한다.  

'당신의 일이 세상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책 표지에 제목과 함께 적혀 있는 문장이다. 브랜딩을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한다. 쫄지 말고 거창하게 덤비지도 말고 본질에만 집중하면 된다. 브랜딩은 짧게 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일에 다름 아니니까. 그래서 저자들은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고 결국은 브랜딩이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본질이라든지 질문의 중요성 등은 얼마 전 읽었던 최상학의 [Change The Question]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중 한 명이자 페이스북 친구인 우승우 대표가 우리 부부에게 각각 한 권씩 보내왔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브랜드 '셰어하우스 우주'와 '로우로우' 대표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더욱 즐거운 독서였다. 책의 마지막 부분 맺음말의 제목은 '이제 나만의 브랜드를 시작하자'이다. 아마도 편성준, 윤혜자라는 이름이 좋은 브랜드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권을 선물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푹 빠져 읽었고 우선 급한대로 짧은 리뷰를 써본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저자들의 바람대로 당장 '퍼스널 브랜딩'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렇다. 나는 결국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어떤 브랜드로 남고 싶은가. 덕분에 다시 한 번 내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게 된다. 그래서 또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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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지날 때마다 생각한다. 

이 역 이름을 처음 지을 때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정말 누군가는 한 글자라도 줄이고 싶었을 텐데. 그러나 뭐든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우선 '동대문'을  뺄 순 없었을 것이다. 동대문은 그 지역의 여러 가게와 거리를 거느리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니까. 

그렇다고 '역사'를 뺄 수 있었을까. 그냥 동대문공원이라고 하고 싶어도 '역사'와 '문화' 중 하나를 빼서 관계자들에게 욕을 먹을 생각을 하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라는 긴 이름을 눈물을 머금고 결정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오늘 내가 했던 일의 결과처럼. 집으로 가야겠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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