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단추를 다시 다 풀어야 하고 지휘관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면 부대원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서 몰살을 당하기도 한다. 광고도 마친가지다. 클라이언트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거나 매출을 올려줄 답을 간절히 원하는데 정작 자신은 정답이 뭔지 모른다. 그건 광고회사나 컨설팅 회사가 할 일이고 그래서 클라이언트는 돈을 낸다. 그런데 광고회사가 떳떳하게 돈을 받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바꾸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책 [Change The Question]의 저자 최상학이다. 

최상학은 광고에 있어서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다. 옳은 답을 찾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저자는 책 초반에 소설가 이윤기의 자전적 소설 <하늘의 문>에서 할머니와 인민군의 대화를 예로 들며 질문이 어떻게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정치에서도 광고에서도 '진실'보다 중요한 건 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프레임' 인 것이다.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광고주가 지금 목말라하는 게 맞는 단계일까. 광고회사인 우리가 정한 광고 목표는 맞는 설정일까. 하지만 말이 쉽지 이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보자. 하루 대여섯 개의 과목을 바꿔가며 계속 공부한다. 시험 시간엔 45분동안 풀어야 할 문제가 수십 개다. 하나하나 곰곰히 생각해보고 본질을 따져볼 시간 같은 건 전혀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빠르게 문제를 풀고 실수를 안 하느냐가 우등생과 열등생을 만들고 당락을 결정한다. 그러니 시험지나 시험문제를 의심해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문제(질문)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질문'은 당신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들은 앞부분에 모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는 부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뒤쪽에 있는 내용이 쓸 데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앞부분에 있는 '질문'과 '본질'이 그만큼 중요하게 반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광고회사 AE 출신이라 그런지 이 책은 독서를 한다기보다 잘 만들어진 PPT 기획서로 프리젠테이션을 받는 느낌이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소중한 덕목들을 이 책이 하나하나 다 일깨워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도 쉬운 언어로, 풍부한 경험과 메타포를 통해서. 

예전에 다른 회사에 있을 때 최상학 이사와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매우 치밀하고 박식하며 무엇보다 '성의'가 있는 기획자였다. 당시에 그가 원하는 것에 비해 내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는 거 다 가르쳐 줘도 괜찮아. 왜냐고? 가르쳐 줘도 안 해. 다들 안 하더라." 

책이나 강의에서 당신이 아는 것들을 다 쏟아부으면 나중에 어떡하냐는 아내의 말에 그가 했다는 대답이다. 그렇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다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고 당장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 읽은 사람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난 앞으로 이 책을 책상에 놔두고 막연할 때마다 한 번씩 들춰볼 생각이다. [CTQ]는 당장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니까. 

최상학은 마지막에 로버트 드 니로를 예로 들면서 연기자에게 '메소드 연기'가 있다면 광고인에겐 '메소드 광고'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광고인이 직접 소비자나 생산자 입장이 되어 몰입하는 광고 창출과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 삼아 이런 글로 그 챕터를 마감한다. 

"Method Advertising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8개의 키워드가 모두 필요합니다. '합목적적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DOING'해야 합니다. 'YOU'의 입장에서 새롭고 진정성이 느껴져야 하고, 가고자 하는 그것이 브랜드, PT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예측'을 통해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아무도 안 했던 방식이라고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당당하게 해버리는 'MINOR'가 되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항상 지금 갖고 있는 '질문'이 틀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합니다. 결국 'Method Advertising '은 '진짜 질문을 통해 진짜 답을 찾는'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광고를 더 잘 하고 싶고 답을 더 잘 찾고 싶어서 쓴 아홉 가지 방법론들이지만 모든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 역시 크게 보면 인생을 잘 사는 방법과 흐름이 같다. 우수한 광고인의 생각법을 엿보기 위해 산 책에서 인생의 길까지 탐색할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남는 장사 아닌가. 당신이 광고인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이 책을 사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하고 싶은 얘기를 일목요연하게 펼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비로소 정말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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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두 번째 보았을 땐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어쩌다가 나까지 배우들과의 술자리에 합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회식 장소에 늦게 도착한 박근형 작가는 내 옆에 앉은 아직 군대도 안 간 스물두 살쯤 먹은 연극 지망생 청년에게 술을 따라주며 '뭐든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살라'고 말해 주는 것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멋진 충고였다. 뭐든 안 되는 게 당연한 거고, 그러다 뭐라도 하나 되면 정말 기뻐해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일요일에 회사에 나와 아이디어를 짜내다가 이런 부정적이고 퇴폐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뭐든 안 되면 안 되는데. 내일은 뭔가 똑똑한 게 있어야하는데. 아...저녁은 뭘 먹을까. 아내에게 전화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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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오

길위의 생각들 2017. 12. 8. 10:15



건강검진을 받으러 와서 문진표를 다 작성해 냈더니 간호사가 선생님은 올해 검진 대상이 아닌데요, 라고 한다. 회사에서 올해 안으로 안 받으면 벌금 문다고 해서 왔는데요, 라고 했더니 건강관리공단에서 이름을 가끔 누락시키는 경우가 있으니 전화를 해보라고 한다. 공단에 전화를 해보니 나는 대상자가 아닌 게 확실하다고 한다. 그럼 누구의 착오냐고 물었더니 모른단다.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고만 한다. 이럴 걸 괜히 어제 저녁부터 공복으로 버텼잖아. 지금 김밥천국에 앉아 있다. 아, 또 욕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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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날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계속 욕을 내뱉는 것이었어. 아, 씨. 아, 발. 아씨. 이런이런. 난 욕 정말 안 하는 인간이었는데 오늘은 미친놈처럼 혼자 열 번도 넘게 욕을 하네. 이거 신종 정신병인가. 회의실에서 카피라이터 박수 앞에서 욕을 하려다가 흠칫 놀라 아, 나 왜 이렇게 욕을 자꾸하지? 라고 한탄을 했더니 실장님은 욕 잘 안 하시다가도 한 번 하면 찰지게 하시잖아요, 라며 웃는 것이었어. 그랬던가? 내가 욕을 찰지게 했던가. 일을 하려고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머리가 아파서 들어왔어, 이런 날은 혼자서 수육이나 오뎅에 소주 한 병 마시고 쓰러지면 딱 좋은데 내일 아침 건강검진이라 저녁 아홉 시부터 금식이야. 아, 씨. 하필 내일로 예약을 잡은 거야.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시집 가는 날 등창 난다더니. 자꾸 욕 나오네. 오늘밤은 잠꼬대도 쌍욕 쓰리콤보로 해대겠군. 순자야, 놀라지 마라. 아저씨 원래 이런 사람 아니다. 그냥 오늘까지만 욕하고 일요일 혜자 아줌마 오는 순간부터 예쁘고 고운 말만 쓸 거야. 뭐, 지랄이 풍년이라고? 요 며칠 세상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러니 좀 봐다오. 고양이인 니가 뭘 알겠냐마는. 자야겠어. 자자. 순자야, 즐겁게 노래 부르며 자자. 우라질레이션. 제기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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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것은 나의 마음이다. 지난 밤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세상의 색갈이 다음 날 아침이면 환해 보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제 산 유창선의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를 출근길에 읽다가 이 대목에서 팍 꽂혔다. 그렇다. 세상은 잔인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그저 늘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는 게 힘들 때마다 이 구절을 생각해야겠다. 유창선은 시사평론가로 활동했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방송 일이 다 끊기자 정권에 줄을 서거나 반대편에 서는 대신 동네 독서실에 처박혀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독서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고 그 첫번 째가 니체를 읽던 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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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일 등에 두 번 당첨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길 가다가 벼락을 두 번 맞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평생 한 번만 일어나도 기적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주 로또 일 등에 당첨되는 사람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벼락 맞아 죽는 사람도 꾸준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인생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나에게도 놀라운 행운이 찾아 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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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6bylpWdfFI



[록키]를 다시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하길래 아내에게 이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마침 그날은 개봉 전날이었고 그 이후엔 계속 회사 일이 바빠서 예매를 못하고 있다. 다음주엔 꼭 시간을 내서 이 영화를 보고야 말 것이다. 

내가 '록키 시리즈'를 만나 것은 불광극장에서 본 [록키2]부터였다. 고등학교 때였나보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고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록키]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 알게 되었고 텔레비전에서 성우들의 더빙판으로 이 영화를 한 번 본 후 홀딱 빠지게 되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더 부은 것은 대학생 때 읽었던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록키였다. [영자의 전성시대]로 유명한 조선작이 예전에 쓴 단편소설 <아메리카>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인 술집 아가씨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무슨 제목인지도 모르고 대낮에 변두리 극장에 들어가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록키였다. 신나게 권투만 하는 영화인줄 알았던 주인공은 마지막에 록키가 경기에서 지고나서 퉁퉁 부은 얼굴로 여자친구인 에드리안을 애타게 찾는 장면을 보면서 대책 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에드리안, 아아 록키. 아아 에드리안.  영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가장 힘들 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는 사실만이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이 영화는 실패담이다. 나이 든 스파링 파트너 출신의 퇴물 복서가 챔피언의 쇼맨십 덕분에 모처럼의 기회를 얻었지만 처절하게 싸운 뒤 결국은 장렬하게 판정패 한다는 이야기. 물론 사람들은 주인공이 실패하는 이야기보다는 성공담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 있다면 말이다. 모든 진정성 있는 실패담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가 김탁환은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쓴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에서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 이야기꾼이 아니라 간절한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 이야기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실베스타 스텔론이라는 이야기꾼이 작두를 탔을 때의 이야기가 맞다. 정말 간절하고 궁핍했던 시절에 그가 직접 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베스타 스텔론은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 경기를 TV로 보다가 뭔가 느낀 게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단 사흘만에 [록키]의 각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람보] 시리즈의 무식한 근육질이나 최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2]에서 뭉툭한 몸매와 목소리로만 연상되는 실베스타 스텔론도 사실 젊었을 땐 대학까지 나온 날렵한 인텔리였다. 영화를 하고 싶어서 도시로 나와 험한 일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슬라이(그의 애칭)는 '록키'의 각본이 헐리우드를 떠돌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도 타협을 하지 않는 뚝심을 보였다. 시나리오에서 흥행의 단초를 예감한 제작자들은 알 파치노 같은 당시 스타나 권투선수 출신의 라이언 오닐 등을 주인공으로 쓰려고 했으나 스텔론이 결사 반대해서 결국 그가 주연까지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고 작품 안에 나오는 낡은 아파트 등도 실제 슬라이가 살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애드리안과의 스케이트장 데이트 장면도 돈이 없어서 야밤에 찍게 되었는데 이건 가난한 록키가 밤 늦게 스케이트장 관리인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링크 전체를 데이트장으로 쓴다는 순애보적 아이디어에 현실성을 더하는 멋진 설정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실제 록키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슬라이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온 덕분에 영화는 수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고 실베스타 스텔론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어메리칸 드림'의 표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실패담이면서 동시에 성공담이기도 하다. [록키]에 비하면 그 뒤 나온 2편 3편 등은 갈수록 기름기가 끼고 거만함이 느껴져 록키라는 복서도 그저 하나의 기름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성공한 밴드의 모든 데뷔앨범이 훌륭했던 것처럼 실베스타 스탤론의 실질적인 데뷔영화 [록키]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이런 전설을 극장 스크린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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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가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며 억울해 하던 후배 여자애 생각이 났다. 어릴 땐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 유부남과 바람도 나보고 결혼도 해보고 하니 그것도 다 한때더라는 것이다. 나도 술 마시고 돌아다니며 노는 게 가장 재미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술, 담배, 외박이 인생의 삼대 지표였고 심지어 술 마시는 게 좋아 '음주일기'라는 글을 따로 연재하기까지 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것도 그냥 다 그러했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인생일까. 돈을 많이 벌어 인정 받고 높은 지위로 올라가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게 최대의 목표요 보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우리끼리만 잘 살면 되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생은 그렇게 몇 가지 목표나 가치로 홀딱 채워지지 않는다.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가족, 친구, 일, 휴식도 필요하고 재미나 의미, 성취, 야망, 좌절도 필요하다. 심지어 썅년이나 개새끼들도 필요하다. 그렇게 온갖 잡것들이 채워지고 하나로 섞일 때 인생이 완성된다. 그래서 인생엔 불순물이 많다. 우린 모두 공평하게 불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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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화장실에 가서 [해피 투데이]라는 잡지를 읽다가 들고나와 계속 읽었다. 이 책엔 매달 아내 윤혜자가 쓰는 칼럼 ‘방방곡곡 탐식유랑단’이 실리기 때문이었다. 이번달엔 마천중앙시장의 두부 전문점 <내일도두부>와 시장 입구에 있는 호떡 포장마차에 대한 글이었다. 나도 두 군데 다 같이 갔던 곳인데 특히 그 호떡집은 맛이나 역사에 있어서도 보물 같은 곳이었다(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나온 사람들 중에 그 집 아저씨에게서 호떡을 배운 분들이 여럿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아내의 글 말미에 프로필이 실리는데 내 얘기도 조금 섞여 있어서 읽을 때마다 웃긴다.

​필자소개 윤혜자 :
책을 비롯한 다양한 컨텐츠를 엮는 기획자로 일했다. 나이 들어 결혼,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 일과를 시작하지 못하는 남편과 살며, 그리하여 즐거이 매일 아침밥을 지어 상을 차린다. 손수 밥을 지어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고 음식 공부를 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동네 술집과 밥집을 어슬렁거리며 맛있고 즐거운 음식점을 만나면 여기저기 소문내는 일을 즐거워 한다.


같은 책에 실린 도올 김용옥 선생의 글 ‘도올곤지’를 읽으며 깔깔깔 웃었다. 자신이 제주도에서 한 강의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으며 <월간중앙>에 실으려 하는 글도 크게 환영 받을 것이다, 라는 식의 특유의 잘난척이 넘쳐남은 물론이고 월간중앙 한기홍 기자가 ‘선생님 글이 너무 래디컬에서' 실을 수가 없다라고 하자 ‘내가 먼저 쓰겠다고 한 글도 아니고, 자기들이 부탁해놓고 못 싣겠다고 하면, 내 피땀은 어디로 가나?그까짓 고료나 시간낭비의 문제는 용서할 수도 있지만, 문재인정부의 새시대에 나의 논리가 언론의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서글픔은 나의 존재의 시대적 기능이나 사명에 관해 근원적인 회의감을 불러 일으켰다’라고 투덜거리는 대목의 솔직함이 너무 너무 천진하고 귀엽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투덜거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르던 닭 두 마리가 죽자 먹지 않고 향나무 밑에 묻어 준 얘기도 나오고 추석 연휴에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소설가 김훈에게 전화를 건 얘기도 나온다. 물론 김훈에게 맨 처음 소설 쓰기를 권한 사람이 자기였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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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W9EHsn-9oto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홍보영상에 인공지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건 처음 있는 일이라죠? 저희는 수십 년 후 미래의 세계에서 인공지능의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A.I들이 인간과 전쟁을벌였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던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에서 해마다 만드는 '국가이미지' 필름을 이번에 저희 회사가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쟁PT를 통해 이 프로젝트를 따내긴 했지만 막상 제작 단계에 들어서자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올해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해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동시에 올림픽 홍보까지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는 문체부 담당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몇 달 간 회의를 거듭한 결과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A.I)들이 인간들과 십 년 전투를 벌여 패배한 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A.I '케이'가 인간에 대해 연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잔치'라는 축제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어쨌든 저희가 꾸민 얘기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들에게 처절하게 패배합니다. 화력으로는 우세했던 인공지능들이 결국 인간을 이길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인공지능은 가지고 있지 않은 마음이나 열정, 또는 평화에 대한 인간들의 열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모델료가 굉장히 높은 유명 한류스타(영화배우였습니다)가 저희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마음에 든다며 기꺼이 출연료 없이 A.I역할을 맡아주겠다는 러브콜을 보내오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결국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오디션을 거쳐 가장 신비롭고 무국적의 A.I스러운 인물을 뽑을 수 있어서 그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할 수 있었습니다(한국인입니다-그래도 우리나라 홍보물인데 금발의 외국인을 쓰는 건 좀 그렇죠). 어제부터 유투브에 릴리즈가 되었는데 결과가 어떨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호의적인 반응이 들려오고 있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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