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뭘 배우러 다니는 걸 좋아한다. 강연도 많이 듣고 음식이나 꽃을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사실은 나도 아내처럼 뭔가 배우러 다니고 싶지만 회사 일만으로도 벅차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할 뿐이다. 세상에 시험 안 보는 공부만큼 재미 있는 건 없다. 인생을 헤아려 보아도 주로 돈 안 되는 일을 할 때가 더 재미 있었다. 일단 누가 시켜서, 또는 먹고 사느라 할 수 없이 하는 일과 내 자유의지로 하는 일은 모든 면에서 천지차이다. 매일 일에 치여 사는 샐러리맨들에겐 그래서 휴일이 필요하고 사생활이 필요한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질 때만 비로소 커피 한 잔이나 럼주 한 잔도 더 맛있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었고, 담배 연기와 무더운 날 바다에서 하는 수영, 토요일마다 보는 영화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렝게 음악, 이 모든 게 육체와 정신에 더 좋은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염소의 축제]를 읽다가 눈에 번쩍 뜨여 잠시 멈추고 밑줄을 그으며 이 대목을 되새겼다. 이승우의 [가시나무 그늘]을 읽을 때도 느꼈던 ‘자유의지’의 소중함에 대한 한 구절이다. 오늘 같은 토요일 한가하게 한 잔 하는 차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소중한 행복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새엄마 찬양] 이후 처음인데 노벨문학상을 탔던 만큼 대단한 필력과 통찰력에 유머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런 우수한 작가가 말년에 극우파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고 가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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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간서치의 책 이야기’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책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나도 한때 이 모임의 회원이었으나 그들의 엄청난 독서량과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에 질려 활동은 안 하고 가끔 눈팅만 하고 지내는 신세다. 간서치는 옛날 조선시대에 살았던 이덕무처럼 책만 읽는 바보를 이르는 말이라고 들었다. 아무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이런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틈만 나면 책속에 파묻혀 지내기를 꿈꾼다.

여기 세계 최고의 간서치라고 소문난 할아버지가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이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다. 일찌기 서점 점원으로 일할 때 눈이 먼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는 전설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이 작가는 [은유가 된 독자]라는 이번 저작에서도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쏟아내고 있다.

‘은유가 된 독자’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의 중요한 주제 또는 아젠다는 독서에 대한 온갖 메타포, 즉 은유들이다. 흔히들 책은 앉아서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면서 읽는 책이라 했다. 여기에 인생이 끼어든다. 인생은 여행이고 독서는 인생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삼담논법은 이렇게 해서 인생, 여행, 독서로 이루어진 ‘은유 삼종세트’로 완성된다.


망구엘은 기원전 7세기에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구약성서, 아우구스티누스, 몽테뉴, 셰익스피어, 돈키호테, 플로베르, 톨스토이, 그리고 21세기의 전자책을 읽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책을 쓰고 읽는다는 것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진정한 어른들만 낼 수 있는 경험과 지혜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물론 내가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었을 리가 만무하다. 구약성서나 아우구스티누스도 읽지 못했고 보바리 부인은 어렸을 때 삼중당문고로 겨우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오히려 플로베르가 법정에서 ‘마담 보바리는 바로 나다!’라고 외쳤다는 가십이 더 생생하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독서의 대가가 이끄는 대로 한 발 한 발 따라 걸어가기만 해도 햄릿의 고뇌와 돈키호테의 야망, 안나 카레니나의 주체성, 오르한 파묵의 통찰 등을 차례대로 만날 수 있고 결국엔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로 분류되는 독자의 지위를 삼위일체로 한꺼번에 다 경험할 수 있는데.


나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단테의 [신곡] 첫 문장에서 따왔다는 걸 알베르토 망구엘의 이 책을 읽으며 처음 깨달았다. 페터 한트케가 독일 사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극작가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프롤로그에서 '우리 인간은 세상이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간주하는 유일한 종’이라 말하던 작가는 여행자가 됐든, 상아탑의 거주자든 아니면 책벌레든 우리는 모두 ‘독서하는 피조물’이며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결론을 전해준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우며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라는 소리다. 스마트폰에 둘러싸인 채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꾸역꾸역 전철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 위로가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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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락객

길위의 생각들 2017. 10. 31. 11:22

어젯밤 숙소에서 뉴스를 보니 단풍철을 맞아 전국의 산마다 행락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행락이라는 말의 어감이 왠지 불량스럽고 낮춰보는 것 같아 사전을 찾아보니 ‘놀거나 즐기러 온 사람’이란 뜻이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릇 사람이란 노는 것보다는 열심히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해야 한다고 배웠고 뭔가 즐기는 것은 쾌락(아, 여기에도 락이 들어가네)과 연결되어 괜히 떳떳치 못하다는 자기검열에 시달리며 살았던 모양이다.

순천에 내려온 김에 나도 행락객의 일원이 되기로 한다. 단풍이 이렇게 좋은데, 바람이 이렇게 시원한데 여기서 행락을 안 하면 뭘 한단 말인가. 단풍만큼이나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강천산 등산객들은 깔깔대고 웃으며 걷다가도 폭포가 나오면 멈춰서 사진을 찍었고 아름드리 세타콰이어가 나오면 얼른 가서 나무에 팔을 척 얹고 사진을 찍었다. 전망대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빼곡해서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즐거웠다. 단지 단풍과 계곡을 구경하기 워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란히 걷고 있다니. 울긋불긋 유치찬란한 자연과 울긋불긋 찰칵찰칵 히히하하 유치찬란한 행락객들. 이래저래 좋은 날이다. 이런 날을 자양분 삼아 또 일주일을 버텨봐야지. 아, 서울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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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제과에게 빼빼로데이는 중요한 날이다.이 기념일은 기업측에서 유포한 게 아니라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날이라 더 자랑스러워 하는 자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11월11일이 빼빼로데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혹시 한 번쯤 "11월 11일은 농업의 날입니다. 장애인의 날이기도 하구요. 롯데 빼빼로가 알려 드렸습니다" 같은 광고를 내보내면 어떨까. 새로 온에어된 빼빼로 광고를 오늘 아침에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물론 그 기업의 정서로는 매우 힘든 일이겠지만.


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329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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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프로필을 다시 써본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다운 적이 없었고 
막내로 태어났지만 어리광을 부린 기억이 없었고 
문학소년이었지만 문청은 아니었고

<월간팝송>구독자였지만 이젠 음악을 거의 안 듣고 
‘뚜라미’였지만 기타를 잘 못 치고 
여자를 좋아했지만 연애는 잘 못했고

영문과를 나왔지만 영어를 잘 한 적이 없고
카피라이터 출신이지만 아직도 광고를 잘 모르고

책을 좋아하지만 많이 읽지 않고 
여행을 싫어하지만 가끔 여행을 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하고 
술을 좋아하지만 소주 두 병이면 취하고

칼럼을 가끔 쓰지만 칼럼니스트는 아니고 
[대부]와 [웨인즈 월드]를 모두 좋아했고

노무현을 좋아했지만 노사모는 아니고 
문재인을 지지했지만 문빠는 아니고

이사 오면서 자전거는 누구 줘버렸고 
십여 년 전부터 차가 없는 뚜벅이고 
수영 배운지 다섯 달만에 겨우 물에 뜨고

결혼을 했지만 아직 철이 안 들었고 
애는 없고 고양이 순자는 우리 애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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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저버리겠습니다"
"뭐든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다"
"되는 대로 살아보겠습니다"

"많이 노시기 바랍니다"
"심심한 일상 되십시오"


'과한 것보다는 살짝 부족한 게 낫다'는 어떤 소설가의 짧은 포스팅을 읽으면서 이번 추석엔 이런 덕담을 주고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해봤다. 물론 진짜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려면 정말 친하거나 정말 안 친하거나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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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과 레베카 솔닛의 저서 등등을 필두로 페미니즘 논쟁이 한참 달아 올랐을 때 나는 아내에게 '그 논쟁들이 이해는 되지만 저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건 좀 과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했다가 '밤에 혼자 택시를 타거나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가야 하는 여자들의 두려운 심정을 남자들은 모른다’라는 핀잔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 역사를 뜻하는 단어 ‘History’가 he+story, 즉 ‘그의 이야기’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남성 중심적 사고가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온 내가 여자들의 근원적인 공포나 억울함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물론 그래서 자꾸 공부하고 토론하고 해야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여배우’라는 단어는 좀 퇴행적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일단 배우가 감독한 영화, 라는 선입견을 제거한 채 보기는 힘들었고 감독이 문소리라는 여성이지만 ‘여류 작가’라는 말이 사라졌듯이 배우면 배우지 앞에 꼭 젠더를 표시해야 한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이는 첫번째 단편 <여배우> 편을 보고 나면 이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떡끄떡 하게 된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나이 든 여배우로 산다는 게 얼마나 애매하고 힘든 일인지는 문소리가 친구들과 등산길에서 만난 천만 관객 감독과 그 동료들을 통해 뼈저리게, 질리도록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연기 잘 해서 탄 트로피들은 빛 좋은 개살구이고(야, 나 메릴 스트립 아냐) 현실은 젊고 이쁜 여배우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 문소리가 할 역할은 ‘성격 센 정육점 여자’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야, 나 이뻐 안 이뻐?’라고 매니저에게 묻는 장면이나 남편인 장준환 감독의 ‘그럼 술이라도 줄이세요’ 등의 빵 터지는 대사는 페친인 성수선 작가 담벼락에서 이미 읽어서 새로울 게 없었고 여배우 문소리의 고충도 짤막한 영화 소개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리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 영화 내내 그런 투정과 신세한탄만 들입다 쏟아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웬걸, 첫 단편 <여배우>를 지나 두 번째 <여배우는 오늘도>, 그리고 세 번째 <최고의 감독>으로 갈수록 영화의 시야는 넓어지고 시나리오의 유머와 공감대는 신랄하면서도 깊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진 걸까. 이 영화는 문소리가 중앙대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만든 단편에 새로 만든 단편들을 더 붙여서 옴니버스로 구성한 독립영화다. 당연히 문소리라는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했으며 그가 매니저와 함께 타고 다니는 밴 안에서의 일상이 주를 이룬다. 등산길, 주점, 노래방, 일식집, 은행 등의 장소에서 여배우의 피곤한 일상들이 펼쳐지고 성병숙이 연기하는 엄마와의 실갱이나 요양원의 시어머니 같은 픽션들이 더해질 땐 살짝 스테레오타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마지막 장례식장에서 그 포텐이 터진다.

세 번째 작품 <최고의 감독>은 십사년 전에 문소리와 '햇빛 좋은 날’인가 하는 영화 한 편을 찍고 계속 방황하다가 갑자기 작고한 '이 감독님’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얘기다. 예전의 의리를 생각해서 잠깐 문상만 하고 오려던 문소리는 장례식장에서 “어이, 문 스타!”라고 비아냥거리는 옛 동료 배우와 마주치게 된다. 인기도 없고 늙고 비루한, 예전엔 문소리 좋다고 따라다닌 적도 있지만 결국엔 이혼 당한 채 지금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서 술에 취해 문소리에게 주정을 해대는 남자. 서로 가치 돋친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뒤늦게 도착해 대성통곡을 하는 신인배우 서연이와 함께 망자에 대한 엇갈린 평가와 예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싸우게 된다.

처음엔 누가 저렇게 연기를 잘 하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화제의 연극 [미국인 아버지]로 이름을 날린 배우 윤상화였다. 그리고 철없으면서도 속이 빤히 보이는 신인 역은 전여빈이라는 배우였다. 전여빈은 학교 선배인 문소리의 첫 단편 <여배우>를 보고 SNS에 영화의 한 장면을 캡처한 뒤 ‘문소리 감독님, 저와 함께 작업해 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마술처럼 세 번째 영화에 캐스팅이 돼서 마지막 단편을 같이 찍게 된 것이었다. 연기력 좋은 두 배우와 문소리의 케미에 마지막 불을 당기는 건 이 감독의 미망인으로 나오는 배우 이승연이다. “나가 주실래요?” 라는 대사가 순식간에 “나가라고, 이 썅년아!”로 변화되는 짧은 순간에 야무지게 전여빈의 머리채를 움켜쥐는 그의 연기는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뛰어나서 보는 이들에게 대단한 쾌감을 제공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 만화 [음주가무 연구소]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음주가무연구소 소장 겸 술주정뱅이인 나노미냐에요”라고 도도하게 시작하다가 결국엔 망가지고 마는 그 유쾌한 만화처럼 이 영화에서도 문소리는 걸핏하면 썬글라스를 챙겨 쓰고 연예인인 척 하지만 결국엔 찌질하고 불안한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례식장 시퀀스에서는 고슴도치처럼 싸우던 상대들이 함께 ‘화해의 맞담배’를 피운 후 새벽 묘지를 지나 이차를 가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다. 

따지고 보면 아둥바둥 살 일이 뭐 있나. 이 감독의 예술 세계도, 이 감독이 서연이와 잤는지 안 잤는지도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결국 이 밤이 지나면 문소리는 또 한 명의 여배우로 살아갈 뿐이고, 그건 이 영화를 보는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영화는 묻고 있는 듯하다. 문소리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은 모든 사람들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설픈 교훈보다는 공감과 유머를 던질 줄 아는 이 넉넉한 시선이 감독 문소리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한다. 극장에서 보기 바란다. 짧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면 당신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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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의자'라는 시가 있다. 몇 년 전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시다.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갑자기 이 시를 떠올린 것은 출근길에 '허먼 밀러'라는 의자 회사가 눈에 들어와서였다. '의자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허먼 밀러는 비싸서 그렇지 정말 앉는 순간 몸에 착 붙는 것이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물건이었다. 포털회사 네이버에서는 수습사원들에게도 이 의자를 내준다고 했던가.

맨 처음 가정집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쓸 때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던 의자들은 품질이 그리 좋지 못했다. 오래 앉아서 일을 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었다. 나는 어느날 회사 대표에게 제안을 했다. 개인용 의자로 허먼 밀러를 하나 마련하고 싶은데 비용이 비싸니 이렇게 딜을 하면 어떠냐. 일단 의자값을 회사와 내가 반반씩 부담하자. 그리고 내가 자진해서 회사를 그만두면 의자를 두고 나가고 내가 쫓겨나는 경우엔 의자를 들고 간다. 어때, 합리적이지 않냐.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대표는 무슨 조건이 그리 복잡하냐고 웃으며 거절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사를 하면서 회사 의자는 '시디즈'로 전면 교체되었다. 허먼 밀러 정도는 아니지만 시디즈도 매우 품질이 좋은 의자였다. 특히 시디즈는 '하루 종일 우리 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의자'라는 컨셉으로 진행된 캠페인이 매우 설득력 있고 잘 만들어진 광고였다. 좋은 의자는 일의 능률도 높이고 허리도 보호해주니 여러 모로 좋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척추전문병원을 지나다가 병원 담벼락에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라는 구절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저 구절은 시인에게 허락을 맡고 가져다 쓴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혹시 좋은 의자들이 우리를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허구헌날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하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역설한 '셀프 착취'가 아닐까.

아내가 이사 오면서 집에 있는 내 책상 앞에 좋은 의자를 하나 사줄까 묻길래 싫다고 했다. 집안에서까지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집에서는 의자보다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마음껏 딩굴거나 TV를 보면서 놀고 싶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어울리는 곳은 의자가 아니라 바닥이었다. '일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일을 할수록 피곤해진다는 게 그 증거다'라는 프랑스 소설가의 농담을 난 진담으로 생각한다. 일은 조금만 효과적으로, 노는 건 오래 많이. 목표는 이건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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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광장시장 빈대떡집 '박가네' 앞에서 촬영하는 사진을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린 적이 있었죠. 그 때 찍은 광고입니다. 사실은 저희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국민통합 캠페인' 경쟁PT에 참가했습니다. 다행히 우리 회사가 낸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문재인 정부가 공식적으로 처음 집행하는 광고를 찍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구요.

'누군가 내게 어떤 나라에 살고 싶냐 물으면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라고 대답하겠습니다'라는 카피는 저희들의 바람이기도 해서 정말 진심을 다해 찍고 카피를 가다듬었습니다. 

기존의 정부광고보다는 일반 기업PR처럼 느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맨 처음 아이디어에 비하면 많이 두리뭉실해진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버전을 더 좋아하는데, 결국 위에 소개한 버전으로 온에어가 되었습니다. 
여기는 제 블로그니까, 제가 좋아하는 버전도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B안 카피] 

누군가 내게
어떤 나라에 살고 싶냐고 물으면

돈이 많은 나라보다
땅이 넓은 나라보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보다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한 만큼
보람을 느끼고

원칙과 공정함이 지켜져

모두가 더불어
행복해지는 나라


여기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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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와 한 여자가 뒤늦게 만나
살림을 합쳤다.

각자의 애인이나 옛 추억이야
당연히 정리를 했지만
책꽂이에는 아직도
과거의 편린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두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한 집에 사는 두 사람이
할 일이라 생각했다.

[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들을
먼저 원하는 사람들에게 한 질씩 주었다.

시시한 추리소설이나
값싼 베스트셀러들은
그냥 버렸다.

그래도 책꽂이엔 이상하게 
책들이 많았다. 

어느날 저녁
거실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각자 가지고 있던 시집들만 모아 보았다.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정호승의 <새벽편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정호승의 <별들은 따뜻하다>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황지우의 <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모두 두 권씩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당대에 화제가 되었거나
후대까지 스테디 셀러로
사랑을 받았던 시집들.

너무 흔하고 트렌디해서
살짝 민망하기까지 했던,
그러나 전생에 나누어 가졌던
깨진 거울조각처럼

이제 와서야 두 권이
제짝처럼 야하게 몸을 맞댄
그 시절의 공감대.

'2-1=1'

이 간단한 수식이
삶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2013년 9월의 어느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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