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건대앞에 있는 서점 반디앤루니스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동네를 가로지르는 구성수동골목을 지나다가 간판이 누워있는 식당이 눈에 들어오길래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마침 식당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나오시더니 제게 묻습니다.

 

"뭘 찍어요?"

"아, 네. 간판이 누워있는게 게 재밌어서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쟤도 나처럼 허리가 아파서 누웠어." 하고 농담을 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 식당이 오래된 건물이라고 저번에도 사람들이 막 와서 사진 찍어가고 그랬어." 아주머니가 또 자랑을 하십니다. 먼저 질문을 던지셨던 젊은 아주머니는 "깔끔하지 않고 이렇게 지저분해도, 뭐 그런대로 괜찮죠?"라고 제법 멋스런 멘트를 날리십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는 저를 이상한 놈으로 보지 않고 편하게 대거리까지 해주시는 아주머니들이 고마웠습니다. "다음엔 밥 먹으러 한 번 올게요." 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안 그래도 된다면서도 좋아하십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주엔 꼭 가야겠네요. 그런데 제 사진 기술이 서툴러서 그런지 대낮에 찍었더니 분위기가 영 안 사는군요. 다음엔 저녁 어스름에 다시 한 번 찍어봐야겠습니다.

 

 

 

동네에서 빠져나와 영동대교 남단으로 걸어가면 보이는 식당입니다. 친구가 식당 한다고 하니까 "그럼, 나도 할래" 그래서 나도식당일까요, 아니면 전라도 식당인데 줄여서 그냥 나도식당이라고 하는 걸까요?

 

 

우리동네엔 곳곳에 진보세력들이 숨어서 활동 중이라고 전에 말씀드렸었죠? ^^

 

 

건대입구쪽으로 가다가 차이나타운을 발견했습니다. 양꼬치를 많이 파는 곳이더군요.

 

 

이런 한자들은 중국인거리에 오지 않으면 보기 힘들죠. 연남동 중국식당가도 생각나네요.

 

 

[연변신세기미용실]. 미용실 이름 죽이죠?

 

 

점을 보거나 무당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 걸 보면 인간은 누구나 다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 봅니다. 그게 보살집이든 타로까페든 앞날이 궁금하고 불안하다는 본질은 다 똑같은 걸테니까요. 그나저나 작두도령은 정말로 작두 위를 걸어다니는 겁니까?

 

 

서점에서 돌아오다가 보니 아파트 들어서는 골목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은 우체통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더라구요. 이삿짐센터나 하수구 수리점, 솜틀집 들은 그새 이걸 또 광고판으로도 활하구요. 처음엔 식용유가 담겼을 저 플라스틱통은 앞으로도 참 오랫동안 저렇게 매달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겠죠? 편지나 고지서, 또는 찌라시라도 가슴에 품으면서 말이죠. ^^

 

 

Posted by 망망디
,

 

 

갑자기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를 구사한 글이 읽고 싶어졌다.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를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빌 브라이슨이 쓴 글을 읽으면 된다. 며칠 전에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산책]이라는 신간이 서점에 나왔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지만 그걸 읽으려면 당장 서점까지 가야 하므로 그냥 집에 있는 책을 찾아서 읽기로 했다. 책꽂이를 찾아보니 [나를 부르는 숲]이 있었다.


그런데 320페이지에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3M 테잎이 붙어있는 걸 보니 빌 브라이슨이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끝내지 못한 것처럼 나도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이 나오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빌 브라이슨의 친구 카츠가 등장하는 장면을 읽다가 이상한 문장들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상하냐면…음. 매우 ‘좀스럽게’ 이상하다. 제정신인 사람들이라면 절대 나누지 않을 어색한 대화들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이 책 88페이지에 있는 메리 앨런이란 여자와 빌 브라이슨의 대화를 인용해 보자.

 


“우리도 거기서 시작했어. 여기까지 13.44킬로미터밖에 안 돼.”
그녀는 마치 집요한 파리라도 흔들어 쫓아내려는 듯 머리를 강하게 흔들며 “22.7킬로미터가 맞아.”라고 말했다.
“아니야. 정말로 그건 13,44킬로미터밖에 안 돼.”


 

13.44킬로미터, 22.7킬로미터…황당한 수치들이다. 난 우리가 대화 중에 절대로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에 거액을 걸 용의가 있다. 이건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와도 거리가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마 미터법 표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킬로미터보다 마일을, 밀리리터보다 온스나 갤론을 많이 쓴다. 물론 그건 그들의 잘못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미터법이 기준이 된 마당에 아직도 자기들에게 익숙한 단위를 멋대로 쓰는 건 엄연한 반칙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책에 나오는 대화까지 “13.44킬로미터” 식으로 번역하는 건 좀 오버가 아닐까? 내 짐작엔 이건 번역자인 홍은택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출판사가 정한 엄한 기준이 있거나 관련 법규를 지키려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일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장면이라 해야 했던 우리의 웃긴 과거가 떠올랐다. 뭐든지 억지로 하는 건 좀 이상해지기 마련이다. 이봐요, 빌. 당신이 원체 웃기기도 하지만 한국에 있는 당신 책에는 이렇게 당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웃긴 일도 좀 있다오. 듣고 있나요, 빌?

 

 

 


 

Posted by 망망디
,

 

 

 

알고보면 우리동네 사람들은 디지 스타일.  

Posted by 망망디
,

 

 

뚝도시장에서 배우는 새로운 냉장고 단속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동네 분들은 좀 멋지죠?^^

 

'길위의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적  (0) 2013.04.01
우리동네 사람들 3  (0) 2013.03.27
우리동네 사람들  (0) 2013.03.13
성수동 구두골목 이야기 – [드림핸드메이드]에서 명품 수제화를 만나다  (4) 2013.02.17
산책 알리바이  (0) 2013.01.15
Posted by 망망디
,

 

 

요즘 방영되고 있는 삼성카드 광고.

 

'실용'이라는 컨셉에 어울리는 적절한 사례를 찾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땅콩집 편' 이후에도 계속 캠페인을 이끌어갈 엔도서로 스마트한 이미지의 이적이 나온 것도 좋구요. 예전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따위의 신자본주의 표상같은 표현으로 서민들을 짜증나게 만들던 광고보다 훨씬 좋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서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때로는 국민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설교까지 하는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어쩔 수 없이 싫군요. 얼마 전 '멀리 있는 당신에게 향기를 보내고 싶다' 는 감동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던 한 섬유유연제 회사도 알고 보면 회장님이 걸핏하면 임원들을 폭행하고 청부폭력까지 행사해 매번 합의금을 물어주느라 바빴던 어처구니 없는 진실이  숨어 있었죠. 광고 캠페인이 좋다고 회사까지 훌륭한 건 아닙니다. 광고는 좋지만 그 브랜드는 싫다...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광고인의 딜레마로군요. ㅜㅠ

 

 

Posted by 망망디
,

날도 꾸물꾸물한 금요일 오전.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으로 꽃을 좀 사러 가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에 자주 가던 곳인데 평일 오전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거든요.  

일단 밥을 든든히 먹고 출발합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삼치도 구웠으니까요.

꽃을 사는 것도 일종의 충전입니다. 

'꽃값'이라고 하면 괜찮은데 '화대'라고 하면 단박에 이상해져요. 그렇죠?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피터팬은 어디서나 나타납니다.

오늘은 승복 입은 피터팬을 만났습니다.

'내 머리도 꽃다발로 만들어 달라고 할까?'

"여기서 먹어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그녀와 함께  짜장면을 시켰습니다. 나는 삼선짜장면, 그녀는 옛날짜장면. 돈은 그녀가 냈습니다.

사람이든 회사든 부도가 나면 이렇게 됩니다. 평소에 잘해야 합니다.

꽃을 좀 샀습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우리는 부자입니다. ^^

 

Posted by 망망디
,

 

회사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작업했던 공익광고가 지금 전파를 타고 있군요. 어쩌다 "패자부활전이라는 전을 파는 음식점 이야기를 소재로 써보자"라는 제 아이디어가 채택되었었는데 저는 아이디어에만 관여하고 빠지게 되었고 그 후 경쟁PT에서 승리해 수정/보완하고 찍기까지 많은 분들의 고생이 있었습니다. 20초 CM은 나레이션이 죄다 빠져서 내용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는데 30초로 보니 훨씬 쉽네요. ^^

 

Posted by 망망디
,

성수역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뚝섬유원지역까지 카메라를 메고 천천히 걸어다녔습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차들이 보이더군요. 매일 보는 것들인데도 유심히 들여다 보면 또 다르게 보인다는 건,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동네엔 주차의 달인들이 많이 사십니다.^^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많구요.

 

고개만 들면 이렇게 파란 하늘인데, 자꾸 까먹습니다.

 

다시, 박대통령의 나라.

 

얘들아, 어른들은 슬픈 일이 많단다.

 

다들 왕년엔 힘 좀 쓰시던 분들.

 

100점 보다 훨씬 정겹다. 100명이라는 말.

 

현실 뒤에 숨어 있는 꿈을 상상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문은 열리리라.  

 

누가 좀 얘기해 주지 않을래? 천천히 가도 결코 늦는 게 아니라고.

 

 

 

Posted by 망망디
,

 

오래 전 시나리오 작가 심산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대부]라고 썼을 때 그 밑에 “깡패영화 좋아하셔서 참 남자다우시겠습니다”라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마음이 언짢았던 기억이 난다. 심산은 깡패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대부]가 얼마나 훌륭한 영화인지를 얘기하고 싶은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는 힘이 세다. 거의 모든 ‘어른영화’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법, 주인공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 하는 법, 가슴에 남는 대사를 쓰는 법, 적재적소에서 캐릭터들이 복무하게 하는 법…한마디로 [대부]는 바보같은 깡패영화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우린 왜 자꾸 ‘깡패영화’를 보는 걸까? [신세계]를 보는 동안에도 온통 그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다. 나아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왜 단란한 가족이 휴일에 대공원에 가서 일부러 무서운 청룡열차를 타고 소리를 지르는가. 왜 귀신의 집에 들르는가. 왜 다정한 연인들이 손에 손잡고 극장에 가서 귀한 돈을 써가며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걸 보고 질질 짜는가. 그러면 좀 낫기 때문이다. 아, 그래도 내가 저놈들보다는 덜 힘들구나. 적어도 나는 지금 당장 영화보고 나가다가 칼에 찔리거나 나이롱줄에 목이 콱 졸려 죽진 않겠구나.


이자성은 강과장이 오래 전에 ‘골드문’이라는 폭력조직에 심어놓은 스파이다. 경찰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조직의 중간 보스급이다. 이건 뭐 [무간도]를 비껴가기 힘든 설정이다. ‘적의 내부에 침투해 활약하다가 점점 그들에게 동화되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이란 공식이 딱 나오지 않는가. 경찰이 폭력조직의 후계자 문제에 적극 개입한다는 설정은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 시리즈와 흡사하다.

 

그런데도 박훈정 감독은 비껴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력한 캐릭터와 상황들로 기존 작품들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이자성을 다그치는 강과장은 [무간도]의 황반장보다 다섯 배는 더 싸늘하고 피를 나누지 않은 ‘브라더’ 정청은 [도니 브레스코]의 알 파치노보다 더 잔정이 많다. 그렇더라도 감독이 수많은 오해를 무릅쓰고 그런 야심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출연 배우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 [베를린]을 보러 나갔다가 극장에서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라는 셀러브리티들이 나란히 등장하는 ‘신종 듣보잡’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박훈정이라는 이름을 보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미 시나리오 작가로 충분히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역시!’로 변했다.

 


황정민은 그야말로 미친듯이 연기를 잘 한다. 달라져 봐야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에서 얼마나 멀어지겠냐 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물을 만난 물고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정청이 처음 등장할 때 비행기 일등석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설정이나 이자성 대신 옆에 있던 부하 뺨을 때리는 장면 등이 모두 황정민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연기뿐 아니라 작품을 입체적으로 대하는 그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혹자는 최민식의 연기가 황정민에 비해 좀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경찰이 깡패들에게 카메라를 빼앗길 때 홀연히 등장해 능청스럽게 대사를 치는 최민식을 떠올려 보라. [넘버 쓰리]의 마동팔 검사 이후 그런 정확하고 적확한 발음과 억양들이 아무한테서나 나오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날고 기는 황정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튀지 않음으로써 극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까지 충분히 해주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그림이 되는 배우 이정재. 연기력이 모자라던 [모래시계] 때처럼 정말로 ‘가만히’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베테랑이다. 그리고 거울 효과라는 게 있다. 이런 귀신 같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서 어떻게 연기가 좋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연기자들이 또 있다. ‘연변거지들’이다. 인천국제공항에 처음 등장할 때는 좀 억지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건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것이었다. 특히 송지효를 습격하다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소풍 왔넨?!” 이라 외치며 저돌적으로 쳐들어가던 무대뽀들이 장례식장에선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먹다 이자성과 눈이 마주치자 쩔쩔매는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연변 거지 삼인방의 이름은 김병옥 우정국 박인수. 미친 존재감이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신선한 캐릭터들을 창조해 멋지게 써먹은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엔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자성의 아내도 나오고 송지효도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가 아니다. ‘빠져나갈 데가 없는’ 이자성의 처지를 설명해주기 위한 도구로 쓰일 뿐, 여성성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이 영화엔 여자가 나오지 않아야 맞다. 마초 영화라서가 아니다.

 


정청은 오랜만에 이자성을 만나서는 “우리 어디 가서 떡이나 치자”고 조른다. 이건 명백히 파트너에게 섹스를 하러 가자고 조르는 남자의 멘트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말미의 6년 전 에피소드에서도 첫 살인 임무를 힘겹게 완수한 정청은 이자성에게 “우리, 목욕탕 가서 깨끗이 씻고 영화나 한 편 보러 가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무슨 영화냐는 파트너의 질문에 “무슨 영화는. 떡영화지.”라고 대답한다. 실지로 섹스를 하진 않을 뿐 이보다 더 징그럽게 가까운 사이가 또 어디 있을까.

 


어제 본 인터넷 기사에서 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를 ‘넥타이 매고 정치하는 영화’라고 설명하더라. 그러나 그건 너무 점잖다.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강과장이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피곤함을 대변해 주는 존재라면, “독하게 살아야 해”라고 죽어가는 순간까지 배신자를 감싸는 정청의 멘트는 존재의 본원적 외로움 때문에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깡패 영화의 탈을 썼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연약하고 지친 남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탄생한 아주 ‘징헌’ 멜로드라마인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

 

어디 가서 엉엉 울어버리고싶은 봄날입니다. 까짓거, 시나 한 편 읽읍시다.

 

선운사 동백꽃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섬마을에서 살면 이런 감성이 나오나요? 그나저나 김용택 선생, 참 징하게 멋있죠?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