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는 집에

엄마의 마음을 잇자


빈 집에

여행간 주인을 잇자


부모님 집에

손주의 재롱을 잇자


집에

새로운 생활을

이어주자





저는 이 광고가 차라리 전처럼 코믹 어프로치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누군가 말싸움을 하고 있는데 TV화면에서 제3자가 나타나서 훈수를 둔다든지, 아니면 부모 몰래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아빠가 TV 안에서 헛기침을 한다든지…그래서 “에이, 그런 게 어딨어?!”라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 내용은 다 이해가 가는 그런 광고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요. 


왜냐하면 이 광고는 놀랍게도 ‘따뜻하고 훈훈한 내용’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있는 엄마가 아이에게 멀리서도 모정을 전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신혼여행 가서도 집에 있는 고양이의 상태를 살필 수 있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어린 아들의 재롱을 큰 사진으로 전송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전 이게 불편합니다. 이거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죠. 아이는 엄마가 직접 집에서 보듬어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고양이도 직접 쓰다듬어줘야 정이 더 생기구요. 할머니에게 손자 얼굴을 벽걸이 TV로 어루만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시골에 놀러 가야죠. 물론 이 광고처럼 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편리하니까요.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그러나 아름다운 모습은 아닙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광고주가 “왜 남의 돈으로 하는 캠페인에 딴지를 거는 거냐?”고 화를 내거나 광고회사가 “그럼 니가 한 번 해봐라” 하고 화를 내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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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닳고 단 명제를 살짝 뒤집으니 이렇게 멋진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는군요. 일본 구직사이트인 리쿠르트의 최신 광고 ‘인생은 마라톤이다’편은 기존의 통념을 뒤집음으로써 통쾌한 자유와 함께 개인의 자존감까지 되씹어보게 해줍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승점을 향해 성실하게 달려가는 마라톤 대열이 보이다가 갑자기 주인공의 입에서 이렇게 반문하는 카피가 나온 뒤부터는 전혀 새로운 해석이 펼쳐집니다. 그렇게 정해진 코스대로 달리기엔 인생이 너무 재미 있고 또 다양한 가능성으로 넘친다는 것 때문이죠. 마라톤 코스를 달리던 선수들이 제멋대로 이탈해서 보여주는 새로운 길은 호수, 운동장, 침대 위, 바다, 창공, 눈밭 등등 참 다양한 곳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불꽃놀이를 하는 언덕에서, 누군가는 교실에서, 또 누군가는 요트 위에서 각자의 꿈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리쿠르트는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는만큼 다양한 꿈이 있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라고 말합니다.  



길은 하나가 아니야

결승점은 하나가 아니야 

그건 인간의 수만큼 있는 거야 

모든 인생은 훌륭하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했나? 

리쿠르트 포인트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취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불안하고 조급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무능력에 좌절하기도 하고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괴로워하게 되죠. 그럴 때 어떤 구직전문 회사가 젊은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져준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요? 아마도 마포대교를 걷다가 마주친 “밥은 먹었어?”라는 전혀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생명보험회사의 자살방지용 카피보다는 훨씬 더 타겟의 마음속 깊게 파고 들어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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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이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사실 저와 저의 아내 윤혜자에게는 분수령이 되는 날 찍은 사진입니다. 이른바 '오십만 원짜리 소주 사건' 일어난 날이지요.


제가 프리랜스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던 시절, 직장 동료의 소개로 어떤 디자인 업체와 일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을 즈음, 디자인 부띠끄의 대표가 대뜸 소주나 하자며 저를 불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도중에 만나 술을 마실 정도의 사이가 아닌데 불러내길래 의아해 하면서도 저는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로 나갔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압구정동의 전집이었습니다. 저와 디자인 업체 대표, 그리고 저를 소개해 동료까지 나와 셋이 모여 술을 마셨습니다.


소주가 서너 들어가자 그 대표는 제게정말 미안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카피료를 오십만 원만 깎아줄 있겠느냐?” 묻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사정이 어려우면 이렇게 따로 불러내서 그런 부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죠. 그깟 오십만 , 하면서 말이죠. 사업하다 보면 어려운 일도 생기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술을 마시며 생각해 보니 제가 지금 얻어 마시고 있는 소주가 바로 50 원짜리 소주더군요. 에라, 병신아… 순식간에 스스로가 한심해졌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대범한 계속 술을 마셨죠. 멍청하게 술을 마시며 건너편을 쳐다보니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들 하얀 벽에 누가 화를 내는듯한 그림을 그려놨길래, 재밌는데? 하고 휴대폰으로 사진도 한 방 찍었습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카피료 삭감에 성공한 그 대표는 대단히 만족한 표정으로 소주값을 내고 돌아갔고 제 동료도 일이 있다며 곧 일어섰습니다. 졸지에 혼자가 저는 아까보다 좀 더 기분도 나빠지고 술도 모자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디가서  생맥주라도   하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결심했습니다. 역시 지금은 없어진 가로수길의아지트라는 단골 바에 갔습니다. 딱 오백씨씨 한 잔만 하기로 했기 때문에 테이블 하나를 다 차지하기도 그렇고 해서 카운터에 딸린 바에 앉아 생맥주를 주문했습니다. 마담과 가볍게 대화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앉아 혼자 보드카를 마시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하더군요.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도 저도 그 가게의 단골이었으니까요. 


"그거, 한 잔 만 마시면 안 돼요?” 

“네. 그러세요.” 


저는 그녀에게 보드카를 한 잔 얻어마시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윤혜자라고 했습니다. 몇 번 스쳐 지나며 만난 적이 있었으나 이름을 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저는 휴대폰에 그녀의 이름을 저장하고 생맥주 한 잔과 보드카 두 잔을 마시고 일어났습니다. 왜 벌써 일어나나고 묻길래 오늘은 딱 한 잔만 더 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마시면 취해서 실수할 거 같아서, 라고 고지식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날이 2011년 4월 1일, 거짓말 같은 만우절이었습니다. 



그리고 5월 23일 저녁, 그녀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고노와다에 소주 한 잔 하실래요?”라는 문자를 보내온 날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해습니다. 고노와다(해삼 내장)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그녀가 말하더군요. 그날 제가 무척 외로워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지분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일어서는 뒷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고. 물론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 결혼까지 해서 살게 될 줄은 몰랐죠. 그리고 드디어 오늘 이렇게 ‘천 일’을 맞이하게 될 줄도 몰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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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국문학 강의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다가 요즘 문창과 학생들의 꿈이 대부분 동화작가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젊은 애들이 너도나도 갑자기 동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나? 그럴 리가 없다. 졸업 후 순수 소설가나 시인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 그나마 잘 팔린다는 동화 쪽으로 발길을 들여 놓겠다는 속셈이다.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누가 동화작가는 먹고 살 만하다는 환상을 심어 주었단 말인가?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서점에서 [Why?] 같은 아동 학습물이 꾸준히 팔린다고 해서 동화를 쓰는 일이 만만할 리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장르가 아니라 내용이다. 코난 도일이 ‘먹히는’ 장르인 추리물을 선택해서 쓰는 바람에 지금도 셜록 홈즈가 TV시리즈 등으로 계속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단 말인가? 아니다. 내용과 캐릭터가 훌륭해서다. 스티븐 킹의 수많은 소설들은 원래 대중 소설이라 영화계와 방송국에서 앞다투어 작품 계약을 하는가? 아니다. 그의 작품은 흥미진진하고 뭔가 새롭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탁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소설들은 서점에 나오기가 무섭게 [조선 명탐정] 같은 대중 영화로, [불멸의 이순신]이나 [나, 황진이] 같은  드라마로 판권이 팔려 나간다. 그런데 그가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아마 몇 년 있으면 이순신이 뜰 거야”, 라거나 “이번엔 백탑파를 한 번 띄워 볼까”라고 생각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작년에 마포의 문화공간 숨도에서 열렸던 '기획자의 마음'이라는 강의에서 소설가 김탁환을 만난 적이 있다.


어떻하면 그렇게 내놓는 소설마다 현재 트렌드에 부합되는가? 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본질이 트렌드다’라는 획기적인 답변을 대뜸 내놓았다. 본질이 트렌드라니? 자기가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예측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인간의 모습과 역사의 물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뭔가 본질적인 것이 보이고 그것들을 입체적인 시각과 설계로 불러일으키고 나면 결국은 그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트렌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사랑, 행복, 고통, 질투, 꿈, 비루함 등 몇몇 단어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삶이다. 아울러 역사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곧은 길과 굽은 길의 대결, 도전과 실패의 반복과 교차, 합리와 불합리를 넘어서는 막막함, 만약을 허용치 않는 냉정함, 끊임없이 반추하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가 인간의 역사다.



그런 김탁환이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바로 ‘금융’이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라는 괴물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민족자본이 형성되던 시절에 그 곳에선 어떤 인물들이 살고 있었는지를 작정하고 탐구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3권짜리 장편소설 [뱅크]다.


구정 연휴에 무심코 책꽂이에서 꺼내 들었던 [뱅크] 1권은 빠른 속도로 읽혔다. 개성 상인 장훈, 인천 상인 서상진, 서울 상인 홍도깨비 등 한반도 주요 지역의 상권을 대표하는 세 거상이 모여 급격하게 밀려드는 외세의 자본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자고 맹세하는 술자리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곧 그들의 아들 딸들인 장철호와 박진태, 최인향의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1868년생 동갑내기로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모두 아홉 살이었던 이들은 인천 부두를 배경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모험과 도전, 경쟁, 배신, 살인, 섹스, 러브스토리 등이 난무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김탁환은 소설을 쓰기에 앞서 자료를 많이 모으고 공부를 많이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역사적 고증에 철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100권이 넘는 책을 사고 그 중 10권 넘는 책을 샅샅이 읽는다고 하니 소설가의 근면함과 장인정신에 고개를 숙일 따름이다. 이번 소설도 마지막 권 말미에 실린 참고문헌록을 보면 ‘국역 경성부사, 서울특별시시사편찬위원회’,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처럼 개화기를 다룬 수 많은 책과 논문들은 물론 우리가 읽었던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나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같은 대중서적도 쉽게 눈에 띔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그도 이 소설을 쓰면서 두 번이나 집필을 중단했다고 한다. 은행의 역사에 대해 빠삭하게 공부를 하고 나면 곧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을 써나가다 보니 이 땅의 주식회사가 생겨난 배경이  필요해졌고, 주식회사 역사를 섭렵하고 나자 다시 조선 후의 경제상황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전까지는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고종 등 정치적 인물들만으로 가득했던 구한말의 이야기는 작가 김탁환의 노력으로 인해 드디어 경제적인 부분의 상상력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나는 오랜 버릇대로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등장인물들의 개요와 인상착의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장편소설을 읽을 때는 이렇게 독자 스스로 인물들의 개요를 정리하면서 읽어야 훨씬 입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장훈, 서상진, 홍도깨비를 시작으로 해서 어린 철호와 진태, 인향 등은 내 메모의 양이 늘어감에 따라 나이를 먹고 도중에 권혁필 같은 악인도 만나게 된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훌륭한 이유는 김범우나 염상진보다 염상구를 잘 그렸기 때문입니다.”



김탁환은 [태백산맥]의 염상구를 예로 들면서 ‘악인 캐릭터 창출의 매력’에 대한 소설가적 쾌감을 만끽했음을 고백했다. 이번 소설 [뱅크]에는 절대 악인 권혁필이 등장한다. 15살에 인천 부두에 흘러 들어 온 권혁필은 타고난 지혜와 집념으로 내거간을 거쳐 인천 상단을 접수함은 물론 나중에는 대한제국 상권을 좌지우지할 위치에까지 다다른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협잡과 배신, 살인, 음모 등이 배경도움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권혁필의 야심 덕분에 천민의 아들로 태어나 멋진 복수극을 꿈꾸던 박진태는 배신자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고, 기생으로 시작해 천하의 절창으로까지 성공한 장철호의 여동생 장윤주도 결국 아편중독에 이어 비극적 죽음을 맞게 된다.


1권을 하룻밤 새 다 읽은 나는 다음날 건대점 반디앤루니스까지 달려가 바로 2,3권을 샀다. 이번 소설은 각 권마다 꽤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손에 잡기만 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 나도 모르게 술술 읽히는 흡입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나는 책이 너무 빨리 읽히는 게 아쉬워 중요한 장면마다 줄을 치기도 하고 페이지를 접어놓기도 하다가 결국은 한 챕터를 다 읽고 나면 즉시 챕터 시작 페이지로 돌아와 간단한 내용을 메모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 동안 별 생각 없이 읽던 소제목들의 의미가 한결 더 분명하게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희한한 경험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뱅크]는 100년 전을 불꽃처럼 뜨겁게 살다 간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2014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하고 간절한 사랑을 꿈꾼다.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한 의지로 가득 찬 사람도 있다. 다만 우리의 인생은 이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그렇게 극적이지도 못하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못할 뿐이다. 그래서 흡입력 있는 소설 [뱅크]를 읽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외에도 우리의 인생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을 살아본다는 차원에서 ‘대리만족’의 기능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곧 TV드라마로 방영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드라마나 영화가 그렇듯 원작 특유의 분위기와 촘촘한 플롯을 드라마가 따라잡기는 어렵다. 정말로 재미를 느끼려면 소설로 읽어야 한다. 그것은 비범하고 성실한 작가가 튼실한 자료와 상상력으로 축조해 놓은 세계로 함께 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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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예정되었던 일정들도 미리 앞당겨져 다 소화되는 바람에 졸지에 사무실에 한가한 바람이 불길래 옆방의 윤PD를 꼬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보러 가자. CGV압구정, 3시 20분 있네. 표는 내가 살게.” 


대뜸 넘어오는 윤PD. 그래서 오래 전부터 보고 싶어했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NHK의 대하드라마 [료마전]의 타이틀롤을 맡았던 미남 배우죠.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탐정물 [갈릴레이] 시리즈의 주인공이기도 하구요. 언제 봐도 준수한 외모와 좋은 인상,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자기관리 등으로 이름이 높죠. 1969년생인가 그런데 아직도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지금도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고 싶은 연예인’ 같은 앙케이트 조사에서 해마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훈남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죠? 나 참. 


그런데 후쿠야마 마사하루만큼이나 저를 반갑게 했던 인물은 상대역으로 나오는 릴리 프랭키였습니다. 이름이 좀 이상하죠? ‘Frank Goes to Hollyood’ 라는 영국 그룹이 있었는데 거기서 따온 예명이랍니다. 이 사람은 연기자이기 이전에 일러스트레이터였고 칼럼니스트였고 작곡가였고 라디오 DJ였으며 소설가였습니다. 보잘것없게 생겼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눈부신 재능을 뿜어내는 인간이죠. 예전에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함께 [료마전]에도 특별출연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라는 자전적 소설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전 이 소설을 읽고 정말 펑펑 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광고 카피가 ‘우는 얼굴을 보이기 싫다면 전철에서는 읽지 마라’였다네요. 나 참. 그런데 아마 지금 읽어도 또 울 겁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 책을 읽고 그렇게 울었는데 이젠 저도 릴리 프랭키처럼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요. 



영화는 아이가 병원에서 바뀐 줄도 모르고 육 년 동안이나 친자식으로 키워오다가 어느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당황하는 두 집안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매우 극적인 사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늘 그렇습니다. 죽어서 림프계에 머물게 된다거나(원더플 라이프), 엄마가 아이들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버린다거나(아무도 모른다), 실직한 사실을 숨기고 형의 기일을 챙기러 부모님댁으로 찾아 온다거나(걸어도 걸어도) 하는 돌발상황을 던져놓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살아가며 변화하고 변화시키는 인간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관찰하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묵직한 울림이나 깨달음이 다가오는 것이지요. 특수한 상황을 통해 인류 보편적 가치까지 서서히 끌어올리는 통찰력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젊은 거장으로 불리게 한 힘일 것입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맡은 아버지 역은 빈틈없고 세련된 성공 비즈니스맨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이 문제도 아주 이성적으로 풀어가려고 하죠. 반면 상대편 아버지 역을 맡은 플랭키 릴리는 시골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문제의 아들 말고도 두 명의 아이를 더 키우고 있는 40대의 중년이구요. 당연히 영화는 후쿠야마 마사하루 부부의 입장에서 진행이 됩니다. 어쩐지…수학이나 피아노를 잘 못하는 거 보면 역시 핏줄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거야. 저렇게 초라한 전파상을 하면서 애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걸까? 차라리 우리가 두 아이를 모두 키우면 안 될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얼굴은 점점 초조해지는 반면 릴리 프랭키의 표정은 늘 여유가 있습니다. 그건 두 가족이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엘리트 아빠는 자기 친아들과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서먹서먹해 하는데 전파상 아빠는 패스트푸드점 놀이시설에서 아이들과 한덩이가 되어 뒹굴고 웃으며 순간을 즐깁니다. 어떤 가정이 더 행복할 지는 관객이 눈으로 지켜보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히로카즈 감독은 아이들을 참 잘 찍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를 찍을 때는 아이들에게 연기지도를 하는 대신 촬영 직전에 아이들에게 다가가 앞으로 찍을 내용을 귀에 조용히 속삭여 주고는 그냥 마음대로 놀게 했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자연스러운 연기들이 나오는 것이겠죠. 저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이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사랑스럽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생각이 있다’ 라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영화 도중 초밥 먹는 장면이 나오자 “외, 맛있겠다!”라며 입맛을 다시던 윤PD는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대뜸 초밥 얘기부터 합니다. 



윤PD : 정했어요. 오늘 저녁엔 혼자라도 회를 먹을 생각입니다. 

성준 : 영화 참 좋지? 


윤PD : 그러게요. 잔잔하게 찍었는데도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아요. 

성준 : 저런 게 바로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윤PD : 예, 애를 하나 낳아볼까 하는 생각이 다 들더라니까요. 

성준 : 하하. 잘 생각해. 



윤PD나 저나 둘 다 아이가 없는 놈들인데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상관 없습니다. 이 영화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영화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인지를 질문하게 하는 영화니까요. 그리고 좋은 인간이 되는 법을 함께 고민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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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점에 가면 주로 소설책 코너에서만 서성이는 ‘이야기 중독자’이지만 뭔가 아이디어에 쫓길 땐 남들이 써놓은 ‘아이디어 내는 법’ 같은 책들도 자주 삽니다. 이번에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김하나가 쓴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도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그런 심정으로 산 책입니다. 


주인공이 종로구 누하동에 있는 조그만 술집(이곳의 사장 황영주는 실제로 지은이의 오랜 친구라고 합니다)에서 어떤 모르는 남자와 ‘미스티’라는 노래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로, 또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대화를 나누게 된다는 설정의 책입니다. 대화체로 계속 이어지다 보니 다른 실용서처럼 딱딱 떨어지는 맛은 덜하지만 이런저런 상식들을 토대로 ‘아무 것도 아닌 것들도 다 훌륭한 아이디어로 변할 수 있’고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것들이나 역사 속의 사건들에도 사실은 굉장한 아이디어들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어 시시때때로 가볍게 들춰보기 좋습니다. 


오늘도 막연한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신영복 선생에 대한 다음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녀 : 제가 ‘신영복식 층간소음 해결법’이라고 부르는 건데요. 언젠가 신문에 실린 신영복 선생 인터뷰를 봤더니, 위층에서 쿵쿵 뛰는 애가 있으면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면서 얼굴도 보고 이름도 묻고 해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좀 낫대요. 

나 : 왜요? 

그녀: ‘아는 애가 뛰면 덜 시끄럽다’는 거예요. 

나 : 허! 완전히 다른 방향의 해결책이네요. 

그녀 : 네. 전 이 얘기를 듣고 너무 좋았어요. 생각의 방향이 틀어지는 게 느껴지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못 뛰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디 되나요.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의 한계상 아무리 소음을 줄이는 설계를 해도 윗집에서 애가 뛰면 울리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상자는 물리적 완화가 아니라 심리적 완화라는 결론을 도출한 겁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상황이 마음에 안 들면 항의를 하거나 규탄을 합니다. 신영복 선생은 위층 사람에게 항의를 하는 대신, 그 상황을 나아지게 할 현명한 아이디어를 냈지요. 

동시에 이 이야기는 소통을 강조하는 선생의 뜻을 전달하는 도구로도 쓰이고 있지요. 층간소음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아이디어이기도 한 겁니다. 




신영복 선생의 정신세계는 정말 섹시하지요? 이 이야기는 당장 그대로 따다가 어느 건설회사나 통신회사의 기업PR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네요. 전 책 한 권에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나 소재 한 가지만 건져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시집에서도 딱 시 한 편 건지면 좋은 거구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벌써 본전은 넘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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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윤경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맨 처음 읽은 건 후배 송인덕이 저희집까지 찾아와 선물로 주고 갔던 책들 중 하나인 [달의 제단]이었는데, 어느 양반댁 종손이 주인공으로 나오서 자칫 엄격하고  고풍스러운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소설은 뜻밖에도 아주 탐미적이고 영리하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원작을 가지고 KBS [TV문학관]에서 단막극으로 만든 적도 있더라구요. 


영화기획자인 제 친구 김유평 씨가 어느날 “요즘은 심윤경의 소설을 야금야금 꺼내 읽는 맛에 산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도 저는 뭐 그냥 시쿤둥했었는데 어느날 헌책방에서 그녀의 데뷔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나서는 그 말을 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은희경의 데뷔작 [새의 선물]을 연상시키는 ‘홍제동 버전 성장소설’이었는데 역시 문장이 탄탄하고 진한 유머와 페이소스는 물론 이야기를 능숙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한레문학상 수상작이었죠. 


그 다음 읽은 책이 [사랑이 달리다]입니다. 이건 뭐 작가가 대놓고 독자를 웃겨 쓰러뜨리기 위해 쓴 듯 빵빵 터지는 캐릭터들이 종횡무진하는 굉장한 작품입니다.  서른아홉 살이 되도록 아빠의 신용카드만 믿고 취직 한 번 안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잘 생기고 학벌 좋지만 섹스리스인 남편’ 말고 언제나 새로운 남자와의 연애를 꿈꾸는 똘끼 충만녀 혜나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수십 억원의 빚을 지고도 태평스럽게 오픈카를 몰고 다니는 말썽쟁이 작은 오빠가 있고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가버린 아빠, 돈 오만 원에도 벌벌 떠는 사업가 큰 오빠 등등 시트콤스러운 캐릭터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정말 스피디하고 유쾌합니다. [사랑이 채우다]가 후속작이라는데 아직 그 책은 못 구했습니다. 


며칠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서라벌 사람들]이란 연작소설이 있길래 또 샀습니다. 심윤경이 역사소설을 쓴다고 하길래 어떤 식일까 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황당함과 대담함이 공존하는군요. 


심윤경은 신라의 황실 사람들을 거인으로 상정합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군림하려면 일단 겉모습부터 일반인보다 월등하게 커야 한다는 거죠. 등장인물 중 하나인 지증제의 음경은 한 자 다섯 치에 이르러, 아무리 색사에 능한 여성이라도 그의 거대한 양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바람에 황손은 황위를 잇지 못하고 몽달귀신이 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그의 신하가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중 기골이 장대한 여인을 드디어 찾아내(“바로 내가 원하던 바요! 내가 모시는 어른의 기골이 또한 장대하오! 그분과 동침하다가 옥문이 찢어져 목숨을 읽은 여인이 그간 여럿이었더니, 그분의 배필이 되실 분을 이제야 찾았소”) 태후로 봉하게 되죠. 이들은 이차돈의 순교 이전의 사람들이기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기도 대신 ‘교합례’를 지냅니다. 즉, 조상을 모신 자리에서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대표로 섹스를 하는 겁니다.  


이날 천제에서 지증제와 연제황후는 그들의 몸을 받친 뱀 모양 제단을 와지끈 무너뜨리고도 교합을 멈추지 않았다. 그 먼지 오르는 잔해 속에서도 한 식경이나 합환을 계속 했으니 그들의 땀과 애액 제단 아래로까지 흘러내려 태자 법흥의 비단옷을 적셨고 그 벽력 같은 교성에 동해 바다의 용까지 잠에서 깨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합화례가 끝나면 황제와 황후는 서로 노고를 치하하며 특별한 수라상을 받으시었는데, 각각 검은 돼지와 흰 돼지를 한 마리씩 드시었다.



일연스님의 저작을 연구한 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경건한 심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눙을 치는 호방한 작가의 변이 믿음직스럽습니다. 오늘 이차돈의 목을 자르는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연제태후’ 한 편 읽었는데 앞으로도 ‘준랑의 혼인, ‘변신’, ‘혜성가’, ‘천관사’ 등의 연작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도 재미있을 거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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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는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싸가지’조차 없어서 늘 다른 놈들에게 당하고 얻어터지기만 하는 ‘상 찌질이’다. 그러나 그는 싸움이 끝나고 나면 늘 자신이 이번에도 결국 이겼노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리는 ‘정신적 승리법’의 달인이기도 하다. 100년 전 대문호 루쉰은 ‘작금의 중국 동포들의 정신상태가 바로 이런 모습 아니겠냐’고 신랄하게 꼬집느라 이 소설을 쓴 것이었지만, 자고로 동서고금의 약자들에겐 그런 소심하고 편리한 상상력이라도 있어야 이 험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법이다. 그건 20세기 최고의 사진전문잡지 ‘라이프 매거진’ 구석방에서 16년째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하며 살아가고 있는 소심남 월터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는 모히칸족 헤어스타일을 하고 스케이트보드 챔피언 대회에 나갈 정도로 도전적인 삶을 살’뻔’도 했으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로는 식구들을 봉양하느라 회사 생활에만 매진하다 보니 결국 일탈도 성공도 연애도 꿈꾸지 못하며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소시민이 되어버린 월터 미티. 그런 월터가 가장 잘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도때도 없이 멍때리기’다. 상상 속의 월터는 매우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힘이 세다. 한마디로 못하는 게 없는 수퍼 히어로다. 그러나 미망에서 깨어나 보면 회사에서 멋대가리 없는 점퍼를 입고 네거티브 필름실로 향하다가 기면발작하듯 ‘데이드림’에 빠지는 얼간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새로 나타난 재수없는 수염투성이의 구조조정 전문가에게 “야, 그런 수염은 덤블도어에게나 어울리지, 새꺄!”라고 쏘아붙이는 월터의 모습은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상형일 뿐이다. 


그런 월터에게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오프라인 잡지시대를 마감하고 온라인으로 전향하는 라이프지의 마지막 표지를 장식할 사진작가 션 오코너의 사진 중 사라진 ‘스물다섯 번째 컷’을 찾아 직접 그린란드로 날아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늘 행방이 묘연하고 세계 곳곳을 떠돌아 다니면서도 휴대폰이나 디지털 기기조차 쓰지 않는 괴짜 포토그래퍼 션을 찾아 떠나는 일에 월터가 처음부터 발벗고 나섰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가 몰래 짝사랑하는 회사 내 동료여직원 셜리의 눈빛과 미소가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그녀가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얘기만 듣고 자기도 그녀에게 ‘디지털 윙크’ 한 번 보내고 싶어서 덜컥 가입했던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의 상담원도 그를 부추긴다. “월터, 이제 망설임은 접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해 봐” 라고. 



영화는 20세기 한복판을 가로지른 역사적인 잡지 ‘라이프’의 몰락이라는 큰 그림 위에 월터의 정신적 성장이라는 구체적인 갈등을 던져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데뷔작으로 [위노나 라이더의 청춘스케치]라는 멋진 영화를 만들어 냈던(편의점에서 “맘,맘,마,마이 섀로나!”라는 노래에 맞춰 미친듯이 춤추던 주인공들의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헐리우드의 재간둥이 벤 스틸러는 이번 영화에서도 적절한 개연성과 깨알같은 유머로 관객들에게 일정량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전체적인 영화의 짜임새는 더소 헐겁지만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히말라야의 풍광들, 스케이트 보드 모티브, 빨간 마티즈 파란 마티즈,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 ‘A Space Oddity’ 등  곳곳에 숨어있는  촘촘한 에피소드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엷은 미소를 띄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뒷부분에 잠깐 등장하면서도 영화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숀 펜의 그 존재감이란. 월터의 어머니로 등장해 중요한 순간마다 슬기로운 조언을 해주는 셜리 맥클레인은 또 어떤가. 1983년 [애정의 조건]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자리에서 “난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외치며 데보랑 윙거의 눈물어린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를 어찌 잊으랴. 


미리 예상은 했지만 션이 "월터는 그 누구보다도 내 사진을 잘 이해했던 사람"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선물처럼 건냈던 문제의 ‘스물다섯 번째 컷’은 역시 우리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그것은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임과 동시에 상상에만 머물고 차마 실천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우리 모두의 '잃어버린 꿈'에 대한 아련한 찬가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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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짧은 글 짧은 여운 2014. 1. 3. 14:56

먼 별 



그 별은 은하계에서도 

밝기로 유명했어 

얼마나 밝은지 

한 번 별을 본 사람은 

다신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 별을 본 사람은 아직 지구상에 없어 


사람만이 아니라 

그 별을 본 유인원도 공룡도 나타나지 않았어 

3억5천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단 그 별을 보려면 

3억5천만 년을 기다려야 하거든 


용케도 3억 년을 기다리던 공룡과 유인원들은 

결국 지루함을 못이겨 쓰러져 나갔고 

세상에서 가장 지름이 크다던 그 나무는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어느날 

벼락에 맞아 비명횡사하셨지 



별 한 번 쳐다보는 데도 

3억5천만 년이야


백 년 안짝 인생에 

무슨 사랑이네 슬픔이네 지랄이니 

어쩌다 태어났으면 그냥 

술이나 한 잔 꺾다 가 




몇 주 전 이자람 밴드 공연을 보던 날 홍대앞 따루주막에 가서 혜자랑 금모래 처제랑 술을 마시다 이자람이 천상병 시인의 시에 붙여 부르던 곡을 생각하며 즉흥적으로 공책 뒷장에다 시를 한 번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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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애플 광고를 좀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특히 이번 광고는 언급을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군요. 바야흐로 전 세계인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세상입니다. 애플의 새 광고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도 마찬가지군요. 크리스마스를 맞아 온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시간에도 이 아이만 혼자 떨어져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이건 요즘 어느 집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죠. 

그런데 잔잔하던 피아노 음악이 멈추는 순간, 반전이 일어납니다. 소년이 아이폰5와 애플TV를 무선으로 연결하자 아이폰에 담겨있던 가족의 사진들이 아주 감성적인 편집과 훌륭한 음악을 깔고 가족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알고 보니 소년은 그 동안 누구보다도 더 간절하게 가족들간의 시간을 잘 담아내려고 애쓰고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광고의 제목이 ‘오해’였던 것이군요. 


 ‘논리적 감성’이라는 형용모순이 허락된다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아이폰5는 성능이 좋아서 찍은 사진을 쉽게 편집하는 것은 물론 
 거기에 배경음악까지 깔아 즉시 애플TV로 연결해 볼 수 있어요. 그것도 무선으로.” 

 라는 내용을 자랑하듯이, 직접적으로 말하는 광고였다면 우리에게 이런 감동이 전해질까요? 치밀한 디테일을 통해 할 얘기를 다 하면서도 보는 이들의 감성까지 흔드는 애플의 광고들. 이상하게도 애플 광고를 만드는 광고회사 직원들은 참 착한 사람들일 거라는 선입관을 갖게 됩니다. 물론 그것도 오해겠지요. 모든 개그맨이 다 유쾌한 건 아니듯이. 그리고 모든 동화작가가 다 순진한 건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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