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정말 많이 벌었다 치자.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게 뭔가. 인간 본능으로 들어가보면, 정말 인간이 하고 싶은 건 디지털 세상 안에 있지 않을 거다. 친구랑 놀고, 요트 타고, 책 내고, 옷 만들어 팔고, 자기 집 짓고 싶어 한다.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다. 우리 회사 미션이 ‘나중에 하고 싶은 걸 지금 한다’다.”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어, 이게 브랜딩이다. 브랜딩이 잘 되면 디자인은 거저 주워 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 인테리어를 할 때 ‘벽 컬러를 뭐로 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이 가게를 왜 하려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온다. 옷을 입을 때 ‘당신이 어떤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가’가 중요하지, ‘진한 수트가 좋은가, 밝은 수트가 좋은가’가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JOH&컴퍼니 조수용 대표 






"예를 들어 식당 인테리어를 할 때 ‘벽 컬러를 뭐로 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이 가게를 왜 하려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온다."


내가 하는 일인 광고도 그렇지 않을까? 왜 하려는지를 알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그 일을 왜 하는지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거짓말 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도그렇고 크리에이터나 기획자들도 그렇다. 그래서 세상 대부분의 일은 더디고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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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67653





예전에 리처드 브랜슨이 쓴 책에서 ‘버진 레코드’의 이름을 지을 때 일화를 재밌게 읽은 기억인 난다. 젊었을 때 브랜슨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잔뜩 모여 하루 종일 딩굴고 어울려 노는 레코드점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레코드점 이름을 짓자고 결심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바로 ‘버진’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처음하는 사업이라는 뜻에서 ‘Virgin’이었지만 사실은 “근데 여기에 진짜 Virgin은 하나도 없잖아? 하하하” 하고 웃은 이유가 더 컸다고 한다. 이건 마치 예전에 들국화 형님들이 모여 새 앨범 이름을 정할 때 “도대체 ‘추억’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라고 말한 뒤 ‘추억 들국화’라는 앨범 이름을 정한 것과 마찬가지다. 


브랜슨은 60초 만에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하거나 그 아이디어가 어떨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두꺼운 보고서보다는 직감적인 본능에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조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순간적인 판단이나 직감을 따라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나 다이슨청소기를 만든 제임스 다이슨,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시장이 원하는 정답을 내놓으면 결국 ‘평균’ 제품밖에 만들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남의 말만 듣고 망설이다가 아무 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신의 직감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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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다는 것은 일부러 돈과 시간을 내고 컴컴한 극장으로 들어가 남들이 만들어놓은 거짓말에 기꺼이 속아줄 마음을 먹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이건 좀 미친 짓인 거 같다. 그런데 얼마 전 개봉한 [그랜드 브다페스트 호텔] 같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오늘 이런 미친 짓 하길 참 잘 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해보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니 이를 또 어쩌랴.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옛날 남부러울 것 전혀 없고 아라비아의 왕이기도 했었던 그 자는 왜 매일밤 아름다운 샤라자드의 옷을 벗기는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달라고 너드짓을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어렸을 때 잠들기 전이면 할머니에게 호랑이든 곰이든 나무꾼이든이 나오는 뻔한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매일 졸랐을까?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던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지구인들 유전자 어딘가엔 권태를 이기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거나 아니면 ‘이야기 본능’이라고 하는 의외의 요소가 찰지게 아로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이야기. 그렇다. 이야기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래서 누구든 틈만 나면 ‘이빨’을 까고 ‘구라’를 푼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놈이 하느냐에 따라, 또는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이야기의 깊이와 재미는 시시각각 달라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요즘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듣고 보고 느끼는 공감각의 시대라 그 방법론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래서 요즘 잘 나가는 소설가나 철학자, 교수들 중에는 자신의 직업명을 제껴버리고 ‘이야기꾼’이라는 닉네임을 이름 앞에 달고싶어 안달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원한다고 다 이룰 수는 없는 법. 품새가 어설프거나 도그마적인 한계에 부딪혀 엉뚱한 길을 헤매는 수많은 중생들을 뒤로 하고 단연 괴팍한 천재로 우뚝 빛나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웨스 앤더슨이다. 그는 자신만의 강박적인 스타일과 자유로운 상상력, 복고적 화법, 강렬한 색채, 미친 속도감과 블랙유머 등을 무기로 단숨에 그 분야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흥미진진한 가상 공간을 삽으로 푹 떠서 통째로 들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1930년대 동유럽의 가상국가 주브라스카 공화국에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총지배인 구스타프가 고객이자 연인이었던 마담 D의 아들에 의해 그녀의 살인범으로 몰린 뒤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비싼 그림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무자비한 암살자에게 쫓기는 것은 물론 투옥과 탈옥 등 갖은 고초를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코스처럼 두루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누명을 벗게 되지만 그만 허무하게 사망해 버리고 그 호텔은 벨보이였던 무스타파(또는 제로)가 물려받게 된다는 코믹 환타지 역사 미스터리 모험극, 이라고 거칠게 줄거리를 요약하고 나면 그 무신경함에 분개한 나머지 나를 죽이려 드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나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그 구조가 너무나 빈약하다. 더구나 코미디라고 하기엔 고급스러운 유머가 너무 많이 등장하고 역사극이라고 하긴엔 그 연대가 흐릿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일단 너무 재밌어서 지난 몇 달 간 봤던 다른 영화들이 어느 하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호텔 부다페스트 호텔]이 관객 40만을 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2014.04.08. 경향신문 24면 하단) 소위 ‘다양성 영화’로서는 초대박을 친 것이다. 무엇이 이 영화를 이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작품으로 만들었던가. 우선 이전 웨스 앤더슨의 이전 영화들(이르테면 ‘로얄 테넌바움’이나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 같은)에 열광했던 매니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감독의 필모그라피는 물론 카메라나 렌즈의 종류, 영화 속의 세세한 미장센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형식미를 중요시하는 시네필들의 헌신적인 입소문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영화감독 박찬욱 등 문화계 유명인사들의 ‘투 썸즈 업’ 추천이 그 인기몰이에 더욱 불을 지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앞서는 요인들이 있으니 그것은 이 영화가 그 자체로도 참 이쁘고 경쾌하고 재밌다는 사실이다. 우선 주인공들의 말이나 행동이 엄청 빠르다. 주인공 구스타프는 물론 그의 천적인 드미트리, 벨보이 제로, 그리고 벨보이의 여자친구이자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는 빵집 아가씨 아가사까지 이들은 한결같이 대사가 빨라서 이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흡사 우리나라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이나 표정들도 옛날 무성영화 시절의 배우들처럼 속도가 급하고 경쾌해서 어떤 슬픈 장면에서도 결코 완전 슬퍼지지는 않고 위험한 순간에 이르러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덜 졸이게 되는 것이다. 



옛날 옛적에 어떤 마을에…하고 고전적으로 이야기 파일을 여는 형식들은 결국 ‘이거 내가 누군가에게서 들은 얘긴데…’라는 조건이 전제됨으로써 전달자의 각색이 더 흥미진진해지는 법인데 이 영화는 그림 속의 그림이 몇 개나 겹치고 책속의 책처럼 이중삼중 구조를 가지고 있는 ‘챕터식 구조’라 이야기의 변용이나 화면비율이 만화나 동화처럼 자유롭고 또 그로 인해 어느 시점에서 카메라가 멈추든 결국 그 시절의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오고 마는 의외의 효과까지 거두게 된다. 


거기다가 웨스 앤더슨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하찮은 소품 정도로  취급해도 상관없다는 듯 작정하고 모여든 수많은 일급 배우들 -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시얼샤 로넌, 윌렘 데포, 애드리언 브로디, 에드워드 노튼, 주드 로, 빌 머레이, 하비 케이틀, 레아 세이두 등을 동시패션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런 대스타들을 한꺼번에 스크린 안에 담을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배우들을 병렬식 구조로 줄줄이 세우는 데 일가견이 있는 ‘대규모 앙상블’의 대가 로버트 알트먼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어느 면에선 이게 더 쉬울 수도 있다고 한다. 뭐 하나가 삐끗하면 다른 쪽으로 도망갈 구석이 생기니까.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수의 등장인물들로 인한 복잡함이나 지루함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미스터리 구조를 슬쩍 끼워넣는 것이다. 이 영화의 시작도 틸다 스윈튼이 분한 마담D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이었다. 물론 이 살인사건이나 누명은 일종의 ‘맥거핀’ 효과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고 사소하다. 그러나 이 모티브 덕분에 주인공들이 호텔을 벗어나 알프스 산등성이에 있는 수도원까지 올라가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히치콕의 옛 영화를 보는 듯한 흐뭇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된다. 거기다 ‘체크포인트19 교도소’ 등을 잡을때의 카메라 앵글이 보여주듯 웨스 앤더슨의 좌우대칭에 입각한 엄격한 카메라 워킹과 대담한 컬러감은 불현듯  팀 버튼의 초기 영화를 떠오르게 하고 때로는 박찬욱의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가장 큰 덕목은 방금 말한 영화들나 감독의 생산물과 어느 정도는 유사할지언정 결코 같다고는 할 수 없는 또다른 ‘향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즉, 이 영화에서 제 3의 텍스트나 영화가 떠오른다며 자랑하는 것은 영화 마니아적인 취미를 즐기는 호사가의 잘난 척일 뿐이다. 



베를린 영화제는 작년에 이 영화에 심사위원 대상을 안겼다. 아마 그들의 시상 이유에는 웨스 앤더슨의 독창적인 미학과 그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테크닉들, 유려한 음악들,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지평을 넓힌 뛰어난 기획력, 그가 영화 말미에 언급한 오스트리아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에 대한 예우까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그럴듯한 이유보다 앞서는 것은 역시 상영관에서 엔딩 크레딧을 보고 일어서는 순간 ‘아, 이런 영화라면 한 두 번쯤은 더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거웠던 시간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웬만하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는 극장문을 나서지 마시길 바란다. 웨스 앤더슨은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깨알 재미’를 선사하는 성실한 감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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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밀회] 1,2편을 방금 보았다. 사실 나는 요즘 김희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굳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회사 동료인 우변이 며칠 전부터 이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며 “이거, 몰입도가 장난 아닌데요. 오랫만에 우리나라 드라마에 푹 빠져서 보네.”라고 귀뜸을 한 다음부터 그 궁금증이 커졌던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알려진 것처럼 40살 유부녀와 스무 살 청년이 우연히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진다는 통속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신물나는 억지설정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시청률이 상승하고 많은 지상파 시청자들까지 이 종편 드라마를 찾아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연출이나 각본, 또는 배우들이 매우 뛰어나거나, 아니면  그 셋 다 골고루 뛰어나서가 아닐까. 



우선 연출 안판석을 보자. 방송국을 튀쳐나가 [국경의 남쪽]이라는 영화를  크게 말아먹긴 했지만 안판석은 [아줌마], [현정아 사랑해] 등을 만들 시절 MBC  드라마 왕국의 좌장 노릇을 했던 인물이다. 그 후 나온 [하얀 거탑]은 일본 작품의 리메이크라는 핸디캡에도 치밀하고 입체적인 연출로 감독 인생의 정점을 찍은 바 있다. 


그리고 각본의 정성주. 역시 안판석과 함께 [아줌마]와 [장미와 콩나물]이라는 작품을 했고 그 후엔도 많은 드라마 극본을 쓴 베테랑 작가다. 나는 특히 최진실이 광고회사 직원으로 나왔던 [매혹]이라는 작은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정성주는 ‘씨네21’이었던가,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작가는 시키면 뭐든 다 쓰는 사람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드라마 작가란 예술혼을 불태우는 천재라기보다는 경험과 노력으로 당장 계약된 일들을 무슨 일이 있든 쳐내고야 마는 ‘고도의 기능직’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괜히 뭔가 있는 것처럼 폼을 잡는 사람들보다 이처럼 명쾌하고 직선적으로 자신의 일을 표현하는 정성주 작가에게서 짜릿한 신선함과 믿음직스러움을 느꼈다. 



‘연봉 일 억짜리’ 예술재단 기획실장인 오혜원은 자신이 근무하는 재단에서 진행하는 클래식 음악회를 진행하다가 퀵서비스 직원인 이선재가 놀라운 피아노 연주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리허설이 끝난 잠깐의 빈 시간에 배달 왔던 이선재가 무대에 놓여 있던 피아노를 무심코 연주하는 바람에 공연 진행자들 전체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이건 마치 영화 [굿 윌 헌팅]에서 학교청소부였던 맷 데이먼이 대학 복도 칠판에 써있던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던 것과 같은 설정이다. 졸지에 ‘조율된 피아노를 건드린 범인’이 되어버린 선재는 공연장 주변을 맴돌며 쫓기다가 그의 실력을 대번에 알아본 오혜원의 남편 강준형 교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리고 강준형은 그를 자기 제자로 삼을 생각으로 아내인 혜원에게 선재의 연주를 오디션삼아 들어보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등의 다양한 클래식 음악들 덕분이 아닐까 한다. 우에노 주리가 나왔던 화제의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볼 때도 그랬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장면은 늘 박력이 넘치고 새로우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샤인]에서 데이비드 헬프갓이 빗속을 뚫고 술집으로 들어와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 드라마에서도 유아인이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지켜보던 김희애는 단숨에 그의 재능에 매료되어 몰래 눈물까지 흘린다.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근육질의 남자가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모습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상한’ 매력까지 있다. 



아직까지는 둘 사이에 연애는 없다. 그냥 순수하게 음악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청자들도 그 느낌을 안다.누군가를 알아보는 기쁨, 누군가에게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뿌듯함… 그 여운. 물론 여러 매체에서 이미 본 ‘화제의 키스신’ 이후로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만만치 않은 속도감을 자랑한다. 콘서트 시작 전의 팽팽한 긴장감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잘 버무려 넣었고 예술재단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이해하기 쉽도록 대사 속에 자연스럽게 잘 녹여낸다. 음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입학비리와 비즈니스적인 이합집산, 암투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 잡념 없이 클래식을 연주하는 소년의 순수함이 있다. 게다가 고상한 척하던 심혜진과 김혜은의 ‘화장실 격투신’, 김혜은과 김희애의 ‘사무실에서 집어던지기신’ 등 단도직입적인 묘사들과 ‘전화녹음내용 까발리기’ 등도 통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지상파라고 점수를더 주고 종편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밀회]는 연출과 각본, 연기 모두 수준급 이상인 웰메이드 드라마다. 게다가 트렌드로만 따져봐도 꽤나 앞선 감각이다. 다시 말하느니 입만 아프겠지만 역시 문제는 ‘콘텐츠의 질’ 이라는 평범한 결론이다. 언제나 센 놈이 이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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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가장 

불화가 

심한 날, 

월요일. 


이번주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심심해서 페북에 


즐거운 월요일입니다, 라고 하면 사람들이 화내겠지? 


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당장 "페삭 안 당한 걸 다행으로 아셔야"라는 댓글이 달렸더군요. 





그래서 다음날 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즐거운 화요일입니다, 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게 미쳤나?" 그러겠지? 


그랬더니 여러가지 반응들이 쏟아지더군요. 자기도 괴로워 죽겠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래서 "저도 너무 괴로워서 거꾸로 이렇게  말해본 거"라고 중간 고백을 했습니다.



은근 재미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썼습니다. 


즐거운 수요일입니다, 라고 또 쓰려니 크리에이터로서 면이 안 선다. 나는 카피라이터니까 오늘은 이렇게 써보자. "월요일을 구입하시면 수목금은 번들로 드립니다"


그러자 정말 화를 내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월요일을 반품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상품 진열이 후지다고 혹평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친절하게 김여사와 브라우니 사진을 댓글에 올린 분도 계셨고요. ㅋㅋ




목요일이 밝으니 이거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즐거운 목요일입니다, 라는 되도 않는 거짓말.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아하하.

그래서 오늘아침엔 솔직히 자백을 했습니다. '즐거운'이라는 형용사가 꼭 즐거울 때만 쓰는 건 아니니까요. 그랬더니 "별꼴이네"라고 시비를 걸어오시는 분도 있었습니다만... 뭐,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투지가 돋더군요.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내일은 금요일이네요. 뭐라고 쓸까요? 아직은 모릅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 봐야죠. 아무튼 '재미 없는 것도 재미를 붙이니 재미가 생긴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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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은 신기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 국악을 배워 국악인으로 생활하는 한편, 자신의 일렉트릭 밴드도 가지고 있다. 운 좋게도 몇 달 전엔 홍대앞 클럽에서 ‘이자람밴드’의 공연을 보았는데 지난 토요일엔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이자람이 혼자 공연하는 판소리 [억척가]를 보았다. 이 공연은 2011년 초연부터 관객과 평단의 만장일치 찬사를 받고, 프랑스와 루마니아 등 세계적으로도 기립박수를 받으며 큰 화제를 뿌린 바 있다고 한다. 






판소리는 모든 등장인물의 대사와 노래, 동작을 혼자 하는 종합예술이다. 나에게는 얼마 전 타계한 이은관 선생이 ‘TBC향연’이라는 TV프로그램에 나와 ‘배뱅이굿’을 할 때 넋을 잃고 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접하는 판소리였다. 놀라운 건 두 시간 반 동안 무대를 꽉 채우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판소리꾼 이자람 뿐 아니라 애초에 브레이트의 희곡을 읽고 영감을 얻어 이 극의 모든 대사와 작창(작곡)까지 해낸 사람 역시 이자람이라는 사실이다. 


숙련된 기교나 타고난 천성을 자랑하는 예술가들은 많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지성과 감성,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창조력까지 두루 갖춘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이자람은 우리 예술계의 소중한 자산이라 할 것이다. 


무대가 열리면 이자람이 나와 의고체로 된 ‘적벽가’의 첫 소절을 한 번 읊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어려워서 어디 알아먹겠느냐?”면서 더 쉽게 고친 ‘억척가’를 하겠다고 의뭉을 떤다. 김순종이라는 이름처럼 ‘순종적이었던’ 여인이 어떻게 우여곡절 끝에 남편과 헤어져 달구지 하나만 끌고 어린 아이들과 전쟁통을 살아가면서 김안나(이제 애는 더 안 낳아, 안 낳아…하다가 안나킴이 됨), 김억척이라는 이름으로 변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이 대단한 일인극은 부채 하나를 든 소리꾼 이자람과 고수, 그리고 기타와 드럼, 키보드로 이루어진 밴드와 함께 두 시간 반 동안 관객들을 칼칼칼 웃게 만들고 어흐어흐 눈물 흘리게 만든다. 


그녀의 절창, 능청, 액션, 절묘한 의성어까지…아, 길게 써봐야 손가락만 아프다. 기회가 되거든 다음엔 꼭 놓치지 마시고 직접 보시라. 이런 공연은 ‘Seeing is believing’이요, ‘보는 게 남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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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도널드슨 감독의 흥미진진한 스파이 영화 [노웨이 아웃]을 보면 파티에서 처음 만나 서로 뿅간 캐빈 코스트너와 숀 영이 격정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리무진 뒷자리로 달려가 급하게 섹스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짧은 정사가 끝난 다음 비로소 캐빈 코스트너가 던진 첫 마디는 "My name is Tom." 이었습니다. 숀 영도 “I’m Suzan.” 이라고 대답을 하구요. 전 상병 때 중대 외출외박 스케줄이 뒤죽박죽 꼬이는 바람에 부산 사는 병장 대신 졸지에 외박을 나갔다가 중앙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이 장면에서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 섹스 먼저 하고 통성명을 나중에 하는 경우도 있구나. 미국은 정말 멋진 나라야…

 

어제 페이스북을 통해 ‘First Kiss’라는 화제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 LA의 렌스튜디오(Wren studio)라는 곳에서 촬영한 이 영상은 서로 모르는 20명의 남녀를 초대해 첫 인사를 시킨 후 다짜고짜 키스를 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이들 중엔 이미 촬영에 익숙한 모델이나 배우, 뮤지션도 있었고 또 스튜디오 측에서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대충 듣고 왔겠지만 막상 처음 만난 사람과 키스를 하려니 되게 쑥스럽고 이상했겠죠. 커플들 중에는 카메라가 돌아가자 어쩔 줄 모르고 조명을 좀 꺼주면 안 되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아까 들은 상대방의 이름을 다시 물어보거나“당신은 배우니까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겠죠?”라고 상대방에게 조언을 구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첫 키스’를 합니다.


 




“당신은 방금 처음 본 사람과도 키스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듯한 이 당돌한 영상은 한 의류 메이커가 만든 바이럴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한 일간지 기자는 이런 필름을 만든 의도에 대해 “’낯선 사람들도 마음을 열면 따뜻한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더군요. 


그런데 조금 자세히 뜯어보면 여기에는 좀 더 세련되고 구체적인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이 영상을 제작한 ‘Wren studio’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 회사가 다양한 중저가 의류를 생산하는 일종의 SPA 브랜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옷을 하나 사려면 무척 고심을 하고 큰맘 먹고 사야 했지만 유니클로나 H&M, Zara 같은 중저가 브랜드들이 생긴 뒤부터는 별 큰 고민 없이 누구나 그럭저럭 옷꼴을 갖춘 의상들을 손쉽게 바꿔가면서 연출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나타내던 ‘그 사람만의 옷’이라는 스토리가 사라지는 아쉬움도 생겼습니다. 

Wren studio’의 창업자이자 크리이에티브 디렉터인 Melissa Coker는 SPA 브랜드의 이런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방법을 고민하다가‘Kiss’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방금 산 옷보다는 자기가 자주 입어 길이 들고 편안한 옷을 더 좋아하게 마련이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방 만나 사람과는 악수 정도는 해도 키스를 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방금 본 SPA브랜드 옷을 스스럼 없이 사 입는 건 ‘방금 본 사람과 스스럼 없이 키스하는 것과 닮은 것이 아닐까?’ 라는 데까지 생각이 흘러간 겁니다. 자신이 만든 브랜드는 처음 입더라도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무모한 발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무모한 발상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바로 치밀한 실행력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Melissa Coker와 감독인 Tatia Pilieva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 효과적인 바이럴이 될 수 있도록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먼저 최대한 ‘리얼’한 상황을 유지할 것, 출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유롭고 호감 가는 캐릭터로 선정할 것, 나이와 직업 등에 맞게 다양한 의상을 준비할 것(모두 “wren’ 제품들입니다), 게이 커플을 둘 넣어 시각의 유연성을 확보할 것…이상이 그들이 준비한 ‘촬영 컨셉’일 것입니다. 

드디어 촬영이 시작됩니다. 정말 처음 만난 사이인 듯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열 쌍의 커플들은 곧 장난스럽게 또는 긴장감을 유지한 채 키스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다양한 반응이 나옵니다. 억지로 키스를 하다가 더는 못하겠다며 고사를 하는 여자도 나오고 그런대로 부드럽게 키스를 이어가는 커플도 나옵니다. 머뭇거리던 짧은 순간이 지나 의외로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커플도 있습니다. 이 모든 장면들이 정말 설레면서도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깁니다. 제가 특히 감탄했던 것은 게이 커플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입니다. 남자 커플의 경우 입은 옷도 굉장히 점잖고 키스 행위도 과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는 눈빛이나 행동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옵니다. 여성 게이 커플의 경우엔 ‘우리, 키스를 하기 전 잠깐 눈을 맞추는 게 어떠냐?’는 성숙한 제의까지 합니다. 이처럼 ‘리얼함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은 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한 프로들만의 세심함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바이럴은 지난 월요일에 유투브 사이트에 공개되어 단숨에 3,500만 뷰가 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흔히 유곽의 여자들도 ‘비록 몸은 허락할지라도 입술은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다’ 라는 속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바뀌어도 ‘키스’라고 하는 내밀하고 개인적인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늘 뜨겁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걸 캐치해서 이처럼 막강한 바이럴로 성공시킨 사람들의 작업 또한 언제 봐도 참 대단합니다. (지금 ‘Wren Studio’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바이럴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입고 있던 그 옷들에 친절하게 가격표가 매겨져 있습니다) 


이 영상은 아무 배경도 없는 일명 ‘무지 백’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등장인물들에게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흔한 촬영기법입니다. 화면이 흑백으로 처리된 점도 마찬가지 이유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배경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인들의 도시적이면서도 쓸쓸한 자화상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씁쓸합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도 옷을 사고 아무런 스토리 없이도 첫 키스를 할 수 있는, 우리 현대인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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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네이버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예전에 대행사 그만둔 후 썼던 백수일기 한 토막을 발견했습니다. 강남역 근처 혼자 살 때였는데 날짜를 보니 무려 2003년 4월이네요. [간장선생]이란 영화 참 좋아했는데.





2003.4.24 PM 3:00

낮잠에서 깨어나 늦은 점심을 먹기 전 케이블TV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며 지난주 놓친 연속극들을 섭렵하다가 충동적으로 시티문고로 달려가 허겁지겁 책을 몇 권 구입함.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을 썼던 H.G 웰스의 ≪세계문화사≫, 

다큐멘터리 영화 <보울링 포 컬럼바인>의 감독이 쓴 <<멍청한 백인들≫, 

그리고 일본의 드라마 작가이자 소설가 카마타 토시오의 ≪29세의 크리스마스≫ 1, 2권. 



2003.4.24 PM 5:00

느닷없이 '이게 몇 년만이냐'며 해도 지기 전 동네로 찾아온 후배 이종혁과 순대집에서 소주를 마심. 전날의 음주행각과 늦은 점심식사 등의 영향으로 인해 소주 두 병을 겨우 비우고 일어섬. 카운터 앞에서 미적미적하고 있는데 이종혁이 마침 잔돈이 없다고 선수를 치며 오천 원을 내밈. 두 지갑의 돈을 합쳐봐도 이천 원이 모자람. 짧게 절망하고 카드를 꺼낸 뒤 이종혁에게 차비조로 삼천 원을 돌려줌. 백수의 카드를 쓰게 하다니... 얄미운 놈.



2003.4.24 PM 8:00

저녁뉴스를 보다가 인터넷에 들어가 평소처럼 약간의 포르노를 다운받음. 태풍권의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끝나고 <위풍당당하지 못한 그녀>를 건성으로 보다가 TV를 끈뒤 ≪29세의 크리스마스≫를 집어듬.


비가 오기 시작함. 소설은 생각보다 재밌고 몹시 맥주가 땡김. 옆 건물의 편의점으로 달려가 카스 500cc를 두 캔 사고 냉동만두를 레인지에 데운 뒤 맥주를 홀짝거리며 소설을 탐독함. 1권을 다 읽고 맥주 두 캔을 다 마시니 어느덧 새벽 3시. 2권은 내일 마저 읽기로 하고 침대로 올라감.



2003.4.25 AM 9:00

계획보다 일찍 깨어난 자신을 원망하며 조간신문을 집으러 나가다가 이사를 가는 옆집 아줌마와 마주침. 조만간 첼로를 하는 처녀가 혼자 이사올 거라는 아줌마의 귀뜸에 환호작약함. 화장실에서 신문을 대충 훓어보고 간단한 아침을 끓여먹은 후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면서 미소지음. '어서 침대로 들어가라고,다시 자도 된다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따뜻하게 속삭여 주는 듯한 착각속에 평화롭게 잠이 듬. 



2003.4.25 PM 12:00

이틀전에 약속한 전 회사 동료 김욱현 부장과의 점심식사. 탕수육에 빼갈을 네 잔 정도 마심.

회사로 잠깐 올라가 마주치는 동료들마다 '잘 지내고 있다'고 과장되게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킬킬대다 귀가함.



2003.4.25 PM 5:00

어제 인터넷으로 대여신청한 DVD <간장선생>이 도착함. 영화를 보기 전 백수일기를 토닥거리고 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초인종을 누름. 주간지 [Film2.0] 2년 정기구독 사은품으로 고른 공짜 DVD 16장이 등기우편으로 도착함.



내일을 향해 쏴라(SE)

타이타닉

에이리언1(SE)

에이리언2(SE)

사운드 오브 뮤직

가위손

다이하드1(SE)

다이하드2(SE) 

로마의 휴일(SE)

THE BEATLES "A HARD DAY'S NIGHT"

바닐라 스카이

가게무사

판타스틱 소녀백서

더 도어즈(SE)

터미네이터2(UE) - 2장으로 침




갑자기 쏟아진 DVD의 세례에 잠시 어이없어 함. 일단 내일 반납해야 하는 <간장선생>을 보기로 결정함. 내일은 전주영화제에 가서 밤새도록 네 편의 영화를 봐야 하므로 컨디션 조절이 절실함. 오늘은 일체의 저녁약속을 삼가기로 다짐함. 


백수, 바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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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와, 좋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주제의식이나 플롯이 아주 선명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좋다고 느끼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좋긴 좋은데 도대체 뭐가 좋은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서 자고 일어나도 생각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본 영화 [노예 12년]은 후자였죠. 영화를 보고 나서 직후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며칠이 흐른 후에야 이렇게 천천히 리뷰를 써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벙찐 표정으로 멀뚱멀뚱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목화농장 노예들의 모습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몇 초간 지속됩니다. 감독이 “자, 이제부터 시작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인상 깊은 첫 장면입니다.


1841년 뉴욕의 사라토가에서 바이얼린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는 흑인 솔로몬 노섭은 어느날 예술단을 사칭한 사기꾼들에게 속아 폭음을 한 뒤 쇠사슬에 묶여 노예상에게 팔려가게 됩니다. 당시엔 흑인들이 자유롭게 사는 지역과 노예로 사는 지역이 혼재하던 시절이었는데 노섭은 하룻밤의 실수로 졸지에 자유인에서 플랫이라는 이름의 노예로 신분이 달라지게 되어버린 것이죠. 그로부터 12년 간 솔로몬 노섭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가까스로 다시 자유인이 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영화는 얼핏 150여 년 전 한 흑인 남자의 기막힌 삶을 통해 우리가 살던 세상의 야만성을 돌아보고 자유의 소중함을 설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로 운명의 비가역성을 이겨낸 안티히어로의 인간승리 이야기’로만 볼 수 없는 게 바로 스티브 맥퀸이라는 감독의 이름 때문이죠. 데뷔작 [헝거]는 못 봤지만 전작인 [셰임]만 보더라도 이 젊은 아티스트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평범한 인간드라마에 만족할 리가 없다는 선입관이 생깁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선입관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은 똑똑한 인간이니까 이번에도 허튼 짓은 하지 않을 거야. 또는 저 사람은 업계 평판이 대단하니까 아이디어도 무궁무진하고 통찰력도 뛰어날 거야. 또는 저 여자는 얼굴이 예쁘니까 분명 남자친구가 있을 거야…)



스티브 맥퀸은 놀라운 미술적 재능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획득한 비주얼 아티스트 출신 영화감독입니다. 당연히 그가 만드는 영화는 한 장만 한 장면이 다 당장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도 좋을만큼 때깔이 좋고 구도가 탁월합니다. 이번 영화도 그런 장면들이 차고 넘치게 나옵니다.배가 처음 나타날 때 돌아가는 터빈의 모습과 배 안에서 느닷없이 벌어지는 정사신에서 보여주는 빅클로즈업은 정말 압도적이죠. 그리고 배 안에서 어떤 흑인 여자가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할 때 노섭의 동료가 그걸 막으려다가 허무하게 칼에 찔려 죽는 장면에서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 드라마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진행이 되는 편입니다. 첫 장면 이후의 플래시백 말고는 영화 속 사건들도 그냥 시간 순으로 진행이 됩니다. 말하자면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절제하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어쩌면 감독은 현란한 비주얼적 장치들을 거둬들임으로써 관객들이 보다 더 영화 속의 다른 이야기에 집중하길 바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더 집중적으로 봐줬으면 하는 얘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영화는 오래 전 이야기이고 또 솔로몬 노섭이라는 사람이 겪은 특이한 실화이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비슷하듯이 영화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합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세상을 유영하다가 갑자기 불의의 덫에 걸려들지만 끝까지 자존감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노섭, 비교적 인간적이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충될 때는 그저 허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주인 윌리엄 포드,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휘둘려 바닷물을 마시듯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리는 두 번째 주인 에드윈 엡스까지.



노예로서의 생활은 끔찍한 것입니다. 우리도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종이나 하인이라는 노예제도가 있었죠. ‘식모’라는 이름으로 임금과 성을 착취당하기 일쑤이던 반노예도 있었구요. 그런데 이 노예들도 ‘뒤웅박 팔자’라고나할까, 정해진 주인이나 환경에 따라 고생의 차이가 천차만별입니다. 노섭은 첫 번째 주인인 포드 밑에서는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자신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펼치기도 하고 나름대로 중간 관리자와 싸움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드가 빚에 쫓겨 그를 잔인하고 포악하기로 소문난 엡스에게 팔아버리죠. 그때부터는 더 생지옥입니다. 목화밭에서 하루 종일 아무리 열심히 목화를 따도 저녁에 결산하는 자리에선 목표량에 모자라는 무게만큼 매일 채찍을 맞아야 했습니다. 도망가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해봤지만 그 때마다 명백하게 깨닫는 건 잡혀서 나무에 목 매달리기 전에는 탈출할 방법이 없다는 절망뿐이었습니다.



이런 지옥 같은 삶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걸까요? 농장에서 목화를 가장 잘 따는 팻시는 노섭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합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육체적 고생은 물론 주인인 엡스에게 당하는 성폭력, 그리고 주인마님의 노골적인 질투까지 더해지니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말이죠. 그러나 노섭은 그 부탁을 거절합니다. 그녀에게 버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돌보기도 벅차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은 견디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오히려 화면 밖의 감독이 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영화의 폭력장면은 매우 사실적입니다. 처음 노섭이 술에서 깨어나 자신은 플랫이 아니라고 말하다가 등을 얻어 맞을 때를 시작으로 수많은 채찍질, 주먹질, 마님이 팻시에게 던지는 술병, 마지막에 나오는 길고 긴 롱테이크 신의 채찍질 등 어느 하나 편안한 장면이 없이 가장 높은 레벨의 압박감을 유지합니다. 덕분에 괴로운 건 영화 속 노예들만이 아닙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도 그 잔혹한 장면들을 참아내는 건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런데 스티브 맥퀸 감독은 눈 돌리지 말고 그 장면들을 똑바로 보라고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인터뷰를 읽어보니 마지막에 팻시를 채찍질 하는 장면은 그 중요성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단 한 번의 테이크로 찍어냈다고 하더군요. 밀도가 대단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마도 노섭이 작업반장과 싸우다가 결국 나무에 목이 매달려 선 채 진흙탕에 발을 디디고 간당간당 서 있는 장면일 겁니다. 두 손조차 묶인 채 미끌미끌한 진흙탕 위에 까치발을 하고 서 있는 노섭은 살짝 미끌어지기만 해도 목숨을 잃을 지경이지요. 그런데 카메라는 이 장면을 롱테이크 기법으로 잔인하게 오래오래 잡아냅니다. 감독의 재능이 빛나는 명장면이죠. 처음엔 안타깝게 지켜보던 동료들도 결국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정말 사는 게 이래도 되는 걸까요?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됩니다. 아, 인생이라는 건 정말 참는 것의 연속이구나.‘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결국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서 참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참는 경우가 더 많은 거구나, 하는 아픈 깨달음이죠. “제가 가진 선의는 제가 소유한 만큼의 동전 갯수를 넘지 못합니다”라는 노예상의 말처럼 세상의 선의에 기대 산다는 건 헛된 망상일 뿐입니다.노섭도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는 행운을 잡게 되었을 때 자신을 죽여달라던 팻시를 한 번 꽉 껴안아주고는 그대로 도망치듯 마차로 오릅니다. 혼자 살기도 바쁜데 남의 챙길 여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사정이 이 정도인데도 우리는 배를 타기 전 노섭이 내뱉었던 말 “I don’t wanna survive, I wanna live!”라는 말을 기억해야 하는 걸까요? 멋진 말이긴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감독은 오스카 작품상을 타고 난 직후 이 대사를 다시 한 번 언급했지만.


아무튼 참 세고 진하고 묵직한 영화였습니다. 요즘 여유가 없어서 이 영화와 함께 등장한 화제의 작품들을 아직 못 보았지만 한동안 이 영화를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이 모든 훌륭한 얘기를 이끌어 가는 데는 명배우들의 명연기가 있었습니다. 요즘 ‘셜록’ 시리즈로 인기 절정에 있는 베네딕트 컴버베치와 스티브 맥퀸의 모든 영화에 출연 중인 마이클 패스빈더가 연기 경연을 벌이고, 얄미운 작업 반장 역을 맡은 폴 다노의 연기도 [데어 윌 비 블러드]에 이어 또 한 번 대박이죠. 팻시 역을 맡았던 루피타 니용고는 결국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탔군요.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도 뒷부분에 잠깐 출연하는데, 너무 천사 같은 역으로 나와서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쟁쟁한 스타들을 조연으로 만들어버린 치웨텔 에지오프의 연기는 정말 발군입니다. 이 친구를 어디서 본 듯 하다구요? 저도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러브 액추얼리]에서 키이라 나이틀리의 남편으로 나왔더군요. 그 유명한 ‘스케치북 고백 신’에서 거실 안 소파에 앉아있던 흑인 남자가 바로 그였습니다. 엡스의 부인으로 나왔던 사라 폴슨은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이라는 아론 소킨의 드라마에서 매튜 페리의 전 애인이자 돌고래 소리를 잘 내던 코미디언이었구요. 중요한 건 아닙니다. 뭐, 그렇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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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도 아니다. 그렇다고 뮤지컬도 아니다. 무대 위에 이러저러한 소도구들이 보이고 연기자들이 손가락으로 연기를 시작하면 한 사람이 그걸 진지하게 ENG카메라로 찍고 나머지 사람들은 부지런히 다음 장면에 등장할 소도구들을 준비한다. 카메라에 찍힌 장면들은 무대 위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영화처럼, 뮤직비디오처럼 실시간 투사된다.  


지젤이라는 여자가 어느 기치역 벤치에 앉아 있다(그녀는 레고인형으로 표현된다). 우선 어렸을 적 13초 간 만났던 첫사랑의 남자부터 회상해 본다. 뒤이어 또 다른 남자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는 지젤이라는 여성이 평생 사랑하고 떠나보내고 잊어야 했던 다섯 명의 남자들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가 연기자의 얼굴과 몸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표현된다. 손가락은 마치 벗은 몸처럼 느껴지고 두 손가락이 엉킬 땐 매우 에로틱하기까지 하다. 손톱을 기른 손가락은 그대로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된다. 손가락이라는 기관이 얼마나 섬세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놀라운 건 손가락 연기만이 아니다. 카메라 웍도 장난이 아니다. ‘접사’라는 방식이 이렇게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지 정말 몰랐다. 아주 작은 소도구들, 물 속에서 퍼지는 잉크, 책상 위의 비닐이나 모래 등이 접사를 통해 순식간에 거대한 회오리와 바다, 해변, 기억 속의 마을 등으로 변한다. 그리고 탁월한 음향효과는 물론 한 곡 한 곡 들을 때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끝내주는 선곡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황홀경에 빠트린다.  아울러 감독이 직접 듣고 낙점했다는 유지태의 사려 깊고 귀족적인 나레이션도 정말 멋지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식탁해서 시작된 이 ‘손가락 공연’은 친구들의 수 많은 아아디어와 공감각적인 장치들이 더해져 이젠 가는 곳마다 전 세계인들을 놀래키는 공연이 되었다. '키스 앤 크라이'라는 제목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연기를 끝내고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를 기다리는 공간을 뜻한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곳은 사랑과도 많이 닮은 것 같아서 이 작품 제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라는 범상치 않은 소설집을 냈던 작가 토마 귄지그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토토의 천국]과 [제 8요일]의 자코 반 도마엘이 감독이다. 그의 부인은 안무 담당자. 아마 맨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일 것이다. 손가락으로 하는 장난 같은 공연인데 열 명이 넘는 어른들이 아주 진지하게 움직이는 모습들도 이상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보면서 저 아이디어 중 어느 하나만 베껴서 CF에 써먹어도 대박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직접 베끼면 안 되겠지만. 거기서 영감을 얻어 창조적으로 변형을 해야겠지만. 아, 안다 알아. 그냥 너무 멋진 장면이나 장치들이 많아서 하는 소리지. 최근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을 읽었다. 크리에이터들은 이 공연을 보고나면 정말 몇 주일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이다. 아니, 배가 고파질 것이다. 아니, 목이 마를 것이다. 그러니 이 공연을 꼭 봐라. 아니, 보지 마라. 아니, 당신 마음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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