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랑 얘기를 하다가 [멋진 하루]라는 영화를 둘 다 좋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하정우와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죠. 당시 짤막한 리뷰를 쓴 기억이 나는데 어디 있나 한참을 찾다가 예전 싸이월드 미니홈피 '편성준의 음주일기'에서 찾았습니다. 그 분께 한 번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여기로 옮겨 봅니다. 날짜를 보니 2008년 10월 쓴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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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이 남자, 수단이 보통이 아니다. 음식점이든 술집이든 어딜 가나 주인들이랑 다 친하고 어딜가나 덤으로 뭔가를 더 받아 먹는다. 인간관계가 좋은 것이다. 여자는 생각한다. 그래, 이런 남자라면 인생을 맡겨도 무방하겠어.한참을 밀고 당기다 드디어 함께 여관으로 간다. 그런데 여관 주인 아줌마가 그 남자에게 반색을 하며 말한다. “오랜만이네? 근데 아가씬 왜 달고 왔어. 방값만 내면 내가 덤으로 하나 넣어줄 텐데.”

 


<멋진 하루>의 남자 주인공 조병운이 바로 이런 놈 아닐까. 허황되고 느물느물하고 말발 세고 그러면서도 또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만은 없는 페이소스를 가진 캐릭터. 이 영화는 어느 토요일 오전부터 밤까지 한나절 동안 일어나는 - 꿔준 돈 받으러 옛 애인 찾아 간 쩨쩨한 여자와 그 350만 원을 치사한 방법으로 갚으려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 과천 경마장 로비에서 동창생들에게 경마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는 조병운에게 느닷없이 김희수가 나타난다. 일년 전에 헤어진 애인이다. 다짜고짜 “돈 갚어. 350만 원 꿔간 거.” 라고 앙칼지게 소리치는 그녀. 현금이 없다고 발뺌하는 병운에게 그녀는 오늘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돈을 받아가겠다고 버틴다.

 


그래서 ‘하룻동안 돌아다니며 350만 원 마련하기 투어’라는 짧은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병운은 희수를 데리고 아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찾아 다니거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까지 거의 삥을 뜯는수준으로 돈을 마련한다.

 

 

하정우는 정말 연기를 잘한다. 대사를 외운게 아니라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자기 대사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투와 속도, 몸짓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밀양>에서 전도연의 열연 덕분에 송각호가 상대적으로 가려진 느낌이 든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전도연의 훌륭한 연기가 하정우의 포스에 의해 좀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다.

 

 

사업하는 사모님을 찾아가 골프 자세에 대한 정확한 조언을 하고(어머, 내 골프 강사도 그런 얘기 하던데!) 돈 백만 원을 받자마자 차용증을 내밀며(사모님, 제가 혈서를 쓰려고 했는데 빈혈이라…)너스레도 떤다. 술집 나가는 동생, 대학 서클 후배와 그 남편, 스키강사 시절의 후배들, 그리고 할리 데이비슨 타는 사촌 형.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자 동창생까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많든 적든 돈을 얻어낸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모두 병운의 부탁을 듣고 선뜻 돈을 꿔준다. 돈을 뜯어내려고 특별히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희수는 어이가 없다. 왜 이러구 사냐. “너 그 아줌마랑 잤지?”  아니란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함께 술을 마시게 된 서클 후배의 남편도 묻는다. “전에 우리 집사람하고 잤어요?” 아내가 술에 취해 병운이를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병운이는 믿을 수 없는날건달이 틀림없는데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사촌 형에게 찾아간 희수는 술에 취한 사촌형의 입을 통해 병운이가 ‘그 많던 조씨네 재산 다 말아먹고, 결국마누라까지 도망간 놈’ 이란 걸 알게 된다. 면전에서 그 정도 모욕을 당하면 화를 낼 만도 한데 병운이는 “뭐, 이미 다들 아는 얘긴데.”라고 싱글거리며 고기를 굽는다.

 

 

병운은 돈을 구하러 다니는 중간 다른 사람의 부탁도 이행해야 한다. 아는 형의 딸년이 학교를 안 가서 정학을 당했는데 학교에 가서 걔를 집까지 좀 데려다 달라는 것이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여자애를 데리고 나왔더니 그 사이 교문 앞에 세워둔 희수의 차가 견인을 당했다. 화가 치민다. 희수는 병운에게 지랄을 한다. 그러나 병운은 “차량보관소 여기서 안 멀어. 얘부터 데려다 주고 차 찾으러 가자.”라고 태연히 말한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문제아 여학생은 “병운이 삼촌처럼 어리광 심한 남자, 좀 곤란하죠. 그래두 전 병운이 삼촌 괜찮던데요?” 라고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 지하철을 타고 견인차량 보관소로가는 길은 쓸쓸하고 구질구질하다. 병운이 전철 안에서 효도르 선수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을 때 희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파마끼도 오래 전에 풀리고 단발로서도 어정쩡한 헤어스타일에 과하다싶은 마스카라를 칠한 채 그깟 350만 원을 받아내겠다고 옛 애인에게 하루 종일 끌려 다니는 자신의 옹졸한 모습을 문득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일년 동안 안 갚았다면서요?  그러게 왜 저렇게 헐렁한 놈한테 돈을 꿔줘요?”

 


낮에 만났던 병운의 초등학교 동창생 싱글맘을 다시 만났더니 40만 원이 든 봉투를 내밀며 웃는다. 병운이는 차에 있는 휴대전화를 가지러 주차장에 갔다. 희수는 봉투를 다시 여자에게 내민다. “저 이 돈 못 받겠어요.” 여자와 희수는 서로 괜찮다고 한참을 옥신각신한다. “절대 안 물러나실 거죠? 그럼 이렇게 해요 우리. 20만 원씩 나눠요.” 결국 그렇게 해서 하루 종일 330만 원을 돌려받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엉뚱하게 일본 애니메이션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이 자꾸 생각났다. 돌담, 신호등, 육교, 골목길 등 둘이 돌아다니는 동안 보여지는 서울 구석구석의 모습 때문이다. 새롭지만 낯설지않게, 서울을 이렇게 이쁘고 정감 있게 찍은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밤에 약속이 있다는 병운이 전철역에서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내리자 희수는 작별을 고한다. 병운이가 차를 가리키며 손짓을 한다. 희수가 여자에게서 20만 원을 받는 동안 병운은 고장 났던 희수 차의 와이퍼를 고쳐놓은 것이다. 희수가 희미하게 웃는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그녀는 문득 병운이가 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닿고 다시 전철역으로 간다.

 

할 일 없이 전철역에 들어갔다가 나온 병운은 역앞에서 판촉을 하고있는 건강음료 데스크에서 한가롭게 시음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내려서 뭘 할 것인가. 희수는 그냥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한다. 맨 처음 병운을 만났던 때가 자꾸 생각난다. 다시 한 번 작게 미소를 짓는다.

 

 

강파른 마음으로 찾아가서 빚을 받겠다고 온종일 끌려 다녔지만 마지막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채 돌아가게 된 희수. 쓸쓸한 위로랄까.일본 영화 <바이브레이터>의 마지막 장면처럼 뭔가 알싸하고 조금 더 착해진 느낌이 드는, 그런 엔딩이다. 집에 돌아와 영화일기를 쓰는 동안 캔맥주 하나를 따서 마셨다. 나에게도 오늘은 조금 괜찮은 하루였다고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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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좀 우스웠던 것 중 하나는 미스코리아나 수퍼모델 선발대회 같은 미인대회를 할 때마다 출연자나 사회자가 결론처럼(또는 기획의도처럼) ‘결국 내면의 아름다움이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를 반복하는데 하필이면 그게 수영복 심사일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아니,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면서 왜 영혼과 별 상관 없는 쭉쭉빵빵 몸매를 뽐내는 수영복 심사 때 그런 얘기를 나누는 것일까. 하긴 나도 아름다운 몸매가 좋긴 했다. 일단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에는 아름다운 영혼이 깃들기 힘들 것 같았고 이쁜 여자와 못 생긴 여자 중 누가 더 착할 것 같냐고 물으면 왠지 이쁜 여자일 것만 같은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예쁘고 귀여운  강아지일수록 주인에게 더 사랑받는 이치나 들판에 핀 꽃 중에서도 예쁜 꽃들이 아이들에게 먼저 꺽이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진리처럼 보였다. 보기 드문 추남이었다던 소크라테스도 만약 헐리우드 배우인 브래드 피트나 데인젤 워싱턴처럼 매력적인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쉽게 독배를 마시고 죽어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조금만 진지한 자리가 되어도 무조건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교조주의를 내게 강요했고 나도 자발적으로 그들의 거짓 정서에 굴복하는 일반인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야만 했다.

오늘 본 백감독의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제목 그대로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말 자체가 품고 있는 아이러니가 얼마나 큰가.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심한 부담감을 안고 들어가는 불리한 프로젝트였다. 사실은 백종열 감독이 장편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었다. 지난 20여 년간 광고계나 뮤직비디오 업게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별 실패 없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백종열 감독이 왜 하필 인텔인사이드와 도시바가 만들어서 이미 '깐느광고영화제 그랑프리'라는 단물을 다 빼먹은 유명 콘텐츠에 도전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더구나 6부작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광고영화는 ‘매일 밤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뀐다’라는 빅 아이디어가 이미 알려질대로 다 알려지고 한글자막까지 나돌던 유투브의 인기 콘텐츠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예전 왕가위의 영화를 한 콤마 한 콤마 그대로 베껴 재기불능의 상태가 될때까지 욕을 먹었던 김의석 감독이나 히치콕의 [싸이코]를 컷바이컷으로 그대로 모사해 비웃음을 샀던  브라이언 드 팔머 꼴이 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는 그런 여러가지 구차한 걱정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극복해 버린 특이한 경우라고 해야할 것이다.  원작처럼 주인공 우진은 아침에 눈을 뜨면 나이, 성별, 인종에 이르기까지 먀번 전혀 다른 사람으로 깨어난다. 어떤 사람이 될지 ‘미리보기’ 따위는 존재하자 않는다. 그것은 ‘절대고독’을 전제로 하는 잔인한 운명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 것은 '관계를 이루는 존재’라는 점 때문인데 열여덟 살 이후로 우진에게 지속적인 관계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절친인 상백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진의 삶에 어느날 이수라는 여자가 들어온다.

영화는 마술적이고 동화적인 기본 설정답게 생활의 냄새는 최대한 지우고 두 사람의 로맨틱한  상황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본 영화를 보는 것처럼 따뜻하고 착한  아날로그적 분위기로 일관한다. 이는 무려 스물한 명에 달하는 우진 역의 남녀 배우들이 그들의 개성을 살리기보다는 매일밤 새로운 얼굴을 맞아야 하는 우진이라는 캐릭터에 충실하게 복무한 까닭이기도 하고 가구점이나 가구 디자이너라는 나무 질감이 많이 등장하는 인간적인 직업설정이나 공간, 소품배치 등에도 기인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훗날 따뜻한 기억으로 남고 뭔가 작고 흐뭇한 에피소드들이 자꾸만 생각난다면 그 공은 아마도 여주인공 이수 역을 맡은 한효주 덕분일 거라고 생각된다. 아름답지만 독하거나 격정적이지 않고, 스물아홉 살의 젊은 여자지만 마치 누나나 여동생처럼 나의 이야기를 찬찬히 잘 들어줄 것만 같은 여자. 이수는 그런 넉넘함을 표정과 제스추어에 탑재하고 있는 흔치 않는 캐릭터였다. 더구나 우진의 비밀을 알고 한참 사귀다가 너무 힘들어 헤어지려는 마음을 먹었을 떄(이수의 언니가 우진이 만들어준 의자에 앉아 “이건 너무 니 싸이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수를 안아줄 때)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연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물론 우진의 이야기를 아버지 세대로까지 확장시킨 후반부나 ‘내면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예쁘고 잘 생긴 주인공들 때문에 정신과 의사까지 동원해 틈만 나면 설교하듯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반복 강조하는 후반부는 좀 성기고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이건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설정에서부터 관객과 감독 배우 모두 서로 이해하고 들어가는 로맨틱 코미디 아닌가. 더구나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이 기본 아이디어가 모두 공개된 콘텐츠이기도 한데 뭐 더 새로운 것을 그렇게 바라나. 

이미 나이가 든 우리 커플은 초대형 팝콘 박스와 음료수컵을 든 젊은 커플들에 밀려 맨 오른쪽 자리로 피해가야만 했다(영화 보는 도중 옆에서 우적우적 팝콘 먹는 소리가 정말 싫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러 온 커플 중에 아직 손을 못 잡은 커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풀어져서 서로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한다면 어떨까. 아니면 맥주를 한 잔 걸치고 처음으로 같이 잔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그런 종류의 공감을 가진 작품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라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더 급하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관객들이 두 시간 동안 소소한 에피소드에 웃음짓거나 안타까워 하다가 결국 기분 좋은 추억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영화. 그래서 친구들에게 추천하게 되고 비록 평론가들은 낮은 평점을 부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극장에 찾아가기 위해 시간을 비우는 영화. 원래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은 클라크 케이블이 나왔던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젯밤에 생긴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늘 그런 이유로 사랑받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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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늦게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하다가 하마터면 횡단보도에서 피자배달 오토바이에 치일뻔 했습니다.잠깐이지만 아찔한 순간이었죠. 오토바이 아저씨랑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 사람도 원래 나쁘거나 성질이 급한 사람은 아닐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무슨 아이디어가 희미하게 떠오르길래 얼른 아이폰에 녹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아까 그 녹음을 다시 들으며 손가는대로 카피를 한 번 써봤습니다. 피자회사에서 이런 캠페인 한 번 해보면 어떨까요. 뭐, 도미노피자든 피지헛이든 어디라도 상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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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을 그리는 이화여대 교수이자 작가인 조덕현이 어느 날 인터넷에서 조덕현이란 이름을 발견한다. 영화배우 조덕현이다. 작가 조덕현은 배우 조덕현을 만나 가상인물 조덕현(1916~95)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한다. 일제시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조덕현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가 1960년대 한국 영화계도 전전하다가 결국 독거노인으로 쓸쓸하게 죽는 최후까지. 이야기 구성에는 소설가 김기창이 합류했다고 한다. 그걸 연극무대처럼 만들어 전시를 한다.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읽었다. 이런 게 스토리텔링이지. 재밌을 거 같다. 10월 25일까지란다. 일민미술관. 보러가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312145275&code=9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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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연작 소설 [맏물 이야기]를 이틀 간에 걸쳐 재미있게 읽었네요. 페이스북 간서치의 읍장님께서 예전에 추천하신 걸 잊지 않고 적어놓고 있다가 휴가 막판에 사서 읽게 된 거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몇 년 전 [용은 잠들다]를 시작으로 해서 [모방범] 이후에도 꽤 많이 읽은 편인데 막상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녀의 역사 소설은 처음입니다. '맏물'은 한 해의 맨 처음에 나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를 일컫는 말이죠. 작가는 이 식자재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각각의 사건들을 좀 더 서민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미미여사 소설의 특징은 살인 사건 등이 등장하는 장르물인데도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맏물 이야기]는 '에도시대'라는 특정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들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러운지. 에도 막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삼장군 시대의 일이라죠. 마치 [두 도시 이야기]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핑거 스미스]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시대처럼. 당연히 기록과 상상력에 의지해 글을 썼을 텐데 그 당시의 음식들은 물론 공동주택과 골목골목의 풍경, 옷차림, 바느질에 이르기까지 마치 방금까지 그곳에서 살다 나온 사람처럼 묘사가 자연스럽고 정겹습니다.


저는 아홉 편의 단편 중에서도 <천 냥짜리 가다랑어>와 <원한의 뿌리>가 특히 좋았습니다. 아마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스며 있거나 어긋나 버린 인간관계에 대한 회한이 스며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저는 <천 냥짜리 가다랑어>에서 모시치가 생선장수의 아내에게 냅다 빰을 얻어맞는 장면에서 뭉클해져 하마터면 눈물을 떨굴 뻔했습니다.


이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이름은 모시치인데 직업이 '오캇피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어느 읍의 파출소장 정도나 될까요. 그에겐 두 명의 부하가 있습니다. 어리고 성급하지만 동작이 재빠르고 밥을 많이 먹는 이토키치, 그리고 덩치가 소처럼 크고 둔중하지만 침착하고 세련된 곤조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들은 모시치의 밑에서 수사를 돕지만 저마다 따로 생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토키치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젊은이고 곤조는 술도매상에서 삼십 년 일해 대행수까지 지냈던 사내입니다.


이밖에도 의문의 무사 출신 노점 요리사와 건달 가쓰조도 간간히 등장해 흥미를 돋웁니다. 미미여사는 책날개에 있는 짧은 글에서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전합니다.


작은 마을을 커버하는 선량하고 고지식한 오캇피키에게 무슨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나겠습니까. 더구나 옛날이야기라 CSI 같은 과학수사도 없습니다. 누가 식중독으로 쓰러졌는데 그 동기가 수상하더라, 누가 가다랑어 한 마리를 천 냥에 사겠다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 등등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그런데도 읽다 보면 흥미가 생겨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 속으로 쭉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이게 바로 미야베 미유키라는 소설가의 공력이겠죠. 흔히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뒷맛이 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미미여사의 소설은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하고 애틋해집니다. 그래서 더 권하고 싶은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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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기업의 고위직들이 하는 일들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얼핏 대단한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감당한 만한 교육을 받았으며 그동안 일로써 얻은 통찰력 또한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 성과는 대부분 논리적이고도 아름답게 포장된다(대부분의 위인전이나 인터뷰 기사가 그렇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것처럼 보이던 천문학적 액수의 사업적 결단이 나중에 알고 보면 단순히 오너 일가의 취미 때문인 것으로 밝혀질 때도 있고 한 나라의 미래 비전도 지도자의 터무니 없는 낙관론이나 잘못된 것이든 아니든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고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결론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 판단이 언제나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놈의 '위치' 때문에 아무도 그들의 결정을 막거나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다는 것. '산다는 것은 불합리한 것을 견디는 것'이라는 말과 글을 알고는 있지만...그래도 이래저래 아침부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1721202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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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네

길위의 생각들 2015. 8. 11. 15:47





박가네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마포에 있는. 아, 최대포는 아신다구요. 네. 사실 마포는 최대포라는 고깃집이 제일 유명하죠. 그런데 오늘은 최대포 말고 박가네라는 집 얘기 좀 하려구요. 제가 두 번째로 다니던 광고회사가 MBC애드컴이라는 곳이었는데요, 정동MBC빌딩에 있던 그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마포 태영빌딩이란 곳으로 이사를 간 겁니다. 정동MBC빌딩은 덕수궁과 광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나름 정취가 있었고 또 당시만 해도 경향신문과 MBC라디오방송국이 남아 있어서 가끔 ‘별밤' 공개방송 같은 녹화방송 프로그램이 열리는 날엔 여중생들이나 여고생들이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인기 연예인이 나타나면 광화문이 떠나갈 정도로 비명을 지르는 소소한 재미가 있던 곳이었죠. 아,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를 지낸 정수장학회도 그 건물에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정' 자와 육영수 여사의 수' 자를 따서 이름이 그랬다죠. 그런데 회사가 마포로 옮겨가면서 그런 분위기나 재미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마포라는 새로운 공간에 재빨리 적응을 했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밥집. 마침 회사 바로 앞에 공덕시장이라는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어서 우리의 점심과 저녁은 그곳에서 손쉽게 해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팀은 곧바로 시장 안에 있는 명재네라는 분식집과 단골을 텄습니다. 오후 네다섯 시쯤 되면 두세 명씩 가서 간식으로 떡볶이도 먹고 라면도 먹고 하던 집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생인 명재네집 아들 명재가 우리 팀장님인 국동이 형을 보면 저쪽에서부터 달려오며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공덕시장은 이후에 두 번 크게 신문에 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전국에서 가장 붕괴위험이 큰 건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사였고 또 한 번은 IMF를 맞아 저렴한 시장 전집이 뜬다, 5천 원이면 배부른 안주에 막걸리까지...라는 내용의 조금 서글픈 기사였습니다)  바로 근처에 건물이 있던 한겨레 기자들도 많이 오고 그랬지만 어쨌든 공덕시장은 너무 오래된 건물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예나 지금이나 밥보다는 술이었죠. 눈만 뜨면 회사에 와서 허구헌날 부대껴가며 회의하고 야근하고 툭하면 주말에도 나와 일하고정말 어이 없게도 가족들보다 오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이였고 또 쓸데없이 체력은 넘쳐나던 신입사원 시절, 절대적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는 건 업무 중간 틈틈이 마시는 술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우리 회사 뒤에는 제일빌딩이라는 적당한 크기의 베이지색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일층의 맥주집부터 2,3층의 파발마 같은 단란주점, 그리고 지하에 ‘언니들’이 T/C 없이 자유롭게 근무하는 야릇한 술집들까지 즐비해서 우리는 매일 밤 선택의 폭을 넓혀가며 그 빌딩에 출근부 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밤에 MBC애드컴 직원들을 만나고 싶으면 제일빌딩으로 가라' 는 말이 생겨났고 실제로 밤이면 그 빌딩 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동료들과 자주 마주치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빌딩은 어느새 우리들 사이에서도 ‘환락빌딩’이라는 직관적인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게는 최대포였죠. 우리도 당연히 처음엔 최대포를 갔었습니다. 그러나 곧 시들해지고 만 것이, 소문과 달리 고기 질이 그리 좋지 못했고 서비스도 그저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이유는 고기를 굽는 연료가 숯불이 아니라 브루스타’ 라 불리는 이동식 가스렌지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건 회사에서 가까운 '그냥 대포'든 마포 굴다리 밑에 있는 '원조 최대포'든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십 년 이름 높은 최대포가 가스렌지로 고기를 구워주다니. 우린 마포라는 지역의 문화적 자존심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이 숯불로 고기를 구워주는 집이 하나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회사앞 제일빌딩 맞은편 박가네'였습니다. 

환락빌딩 바로 맞은편에 있던 박가네였으니 우리들의 회식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어쩌다 경쟁PT라도 따는 날이면 당연히 팀 전체가 몰려갔고 그냥 별 이유 없이 저녁에 술 한 잔 걸치고 싶은 날도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새 김유신의 말처럼 박가네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술, 담배, 외박을 인생 삼대지표로 삼고 살았을 정도로 한창 팔팔했던 저는  바쁘든 한가하든 어떤 경우에도 집에는 일찍 들어가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살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툭하면 술이요, 뻑하면 외박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부지런한 박가네 사장님은 우리가 갈 때마다 활짝 웃으시며 가게 옆 숯막에서 빨갛게 익은 숯불을 들고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잘 생기고 붙임성도 좋은 우리 선배 김동만 차장은 원래도 사장님과 친했지만 두 사람이 동향이라는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즉시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가 되어 한가한 저녁이면 가게에 가서 함께 숯불을 지피기까지 했습니다. 가게는 부지런한 사장님 사모님 덕분인지 나날이 번창했고 늘 만석에 가까울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우리는 번지르르한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MBC애드컴 직원놈들보다 박가네 사장님이 훨씬 더 돈도 많이 벌고 실속 있다고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 부부는 에이, 말도 안 된다고 손을 내저으며 웃으셨구요. 

매번 관광도시를 강간도시로 발음하던 바보 같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갑작스럽게 IMF가 왔고 많은 사람들이 나이 서른에 명퇴를 당하며 회사를 떠났습니다. 동료들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환송회를 하던 곳 역시 대부분은 박가네였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IMF시절은 어떻게 버텨냈지만 그 다음 해엔 회사 다니기가 너무 지겨워져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십대를 넘어 서른 언저리, 아직 마흔이 되기 전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던 마포 시절은 그렇게 힘없는 산문처럼 한 줄 한 줄 흩어져 추억의 책갈피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이제는 PD프로덕션의 기획실장 일을 하고 있는 저는 작년 어느날 마포의 HS애드라는 광고대행사에 회의를 하러 갔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실로 오랜만에 박가네를 갔습니다. 카운터에 앉아서 활짝 웃는 사모님과 여전히 저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을 보고 함께 간 PD들이 “실장님, 여기 단골이었나봐요?라고 물었습니다. 단골이었지. 그것도 아주 찐한 단골이었지. 고기를 시키고 소주도 시켰습니다. 여전히 사장님이 웃는 낯으로 숯불을 피워 들고 오시더군요.


"아유, 이제 숯불 피우는 건 다른 사람 시키시지...동만이 성은 요즘도 와요?"
하하, 안 와."

예나 지금이나 그저 하하 웃기만 하는 사장님을 보니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아니, 그 동안 번 돈은 다 어쩌고 아직도 이러고 계세요. 사모님은 다리를 다치셨는지 카운터 의자에 앉아 다리 위에 덮은 담요를 한 번도 치우지 않으셨습니다. 반가워 하면서도 저한테 가까이 와 인사도 못하고 그냥 카운터에 앉아 박꽃처럼 하얗게 웃기만 하는 사모님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가게에 손님은 여전히 넘쳐나는데, 돈은 여전히 많이 버는 거 같은데. 왜 이 분들은 여전히 이러고 살고 있는 거야. 그 돈 다 누가 쓰는 거야. 아, 씨발.


박가네 사장님, 반가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들이라고 뭐 다른 게 있나요. 십여 년쯤 후엔 나도 뭔가 다르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때쯤이면 내 친구나 동료들도 이런 힘겨운 일들 졸업하고 지금보다는 더 여유 있게 살아가고 있겠지...하지만 막상 오랜만에 만났을 때 우리들의 손에도 저마다의 숯불화로들이 하나씩 들려 있는 거죠. 그게 광고를 굽는 숯불이든 IT를 녹이는 숯불이든 뭐 별 차이가 있겠어요. 어디서 일을 하고 있든 여전히 우리의 얼굴은 그 숯불 때문에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는 걸요. 다만 아직은 사장님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빨간 숯불을 솜씨있게 집어낼 자신이 없어서요. 그리고 아직은 그 숯불에 우리들 꿈이 다 타버린 건 아니라고 우겨보고 싶어서요. 여름은 아직 다 지나가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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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061915061&code=990201 


조선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가끔은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신념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보며 전율하곤 한다. 이를테면 김훈의 소설 [흑산]에 나오는 정약전과 황사영 같은 사람들이다. 또는 독립운동을 하다 감방에 간 한용운 선생 같은 분. 선생은 감방에서도 전혀 기가 죽거나 회유를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문을 당하느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뭐가 아프단 말이냐”고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대단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 


어제 경향신문 <여적>에서 읽은 남자현 선생의 ‘피 묻은 적삼’ 일화도 감동적이다.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저 분들의 십분의 일이라도 따라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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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껴안고 슬프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화가 나면 문을 쾅 닫는 버릇도 오래전부터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적인 제스추어인 모양입니다. 

여기 그런 인간의 속성을 잡아내 광고로 만든 작품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몇 년 전에 나온 우리나라의 순두유 CM이 하나는 최근에 나온 독일 폭스바겐 CM입니다. 우리나라 광고가 훨씬 전에 나온 것이고 독일 광고는 최근 것입니다. 둘 다 생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을 재치있게 잡아 제품의 속성과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매일순두유 - 순해져라 순두유 편> 

https://www.youtube.com/watch?v=ljMxxhReDyQ


<폭스바겐 - 문은 내가 닫는다 편>

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256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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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광고계 친구들과 신사동에 있는 대창집에서(그러고보니 이 대창집 주인도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원래 술 마시면서 일 얘기는 잘 안 하는 게 우리들의 불문율이었는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창구이에 소맥을 마시면서 광고 얘기를 제법 했다. 

“야, 광고엔 정답이 어딨냐. 그저 용기가 필요한 거지."
“그래. 광고도 여자도 다 용기야. 늘 용기 있는 놈이 먼저 먹는 거야...” 

다소 거친 표현이고 또 가정이 있는 몸이라 누가 이런 소리를 지껄였는지는 밝힐 수가 없다. 아무튼 뭐든 너무 범생이처럼 접근해서는 빅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건 우리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엄청나게 성공한 선배 광고인이자 [겁나게 중요한 충고]라는 책의 저자인 조지 로이스 할아버지도 수십 년 전부터 똑같은 주장을 해왔다. 


조지 로이스(‘루이스’가 아니다)는 ‘빅 아이디어 광고’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사람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이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그림에 그치지 않았다. 좋은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 아트 디렉터들에게는 '카피부터 시작하라’라고 충고하고 실제로 위대한 광고를 만든 아트 디렉터들 중에는 카피까지 직접 쓴 사례가 있음을 강조한다. 즉, 직종과 상관없이 그림으로 생각하든 글로 생각하든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것이 없고 항상 '관습을 깨뜨리는 독창적이고 과감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전쟁에서 돌아와 일주일만에 CBS텔레비전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때의 일화(33화 당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라!)는 그런 그의 스타일을 잘 말해준다. 방송국의 까마득한 디자이너 선배에게 보여줄 첫번째 디자인 시안을 들고 갔는데 정작 그 선배는 책상에서 자기 일에 골몰하느라 조지는 쳐다보지도 않더라는 것이다(미국에서도 신참자에 대한 선배들의 무시는 유구한 전통이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선배가 알고 있고 심지어 헛기침을 해도 돌아보지 않는 데 화가 난 조지는 밖에 나가 비서가 보고 있던 두꺼운 사전을 빌려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선배 책상에서 1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가슴 높이에서부터 사전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엄청난 소리에 놀란 선배는 그제서야 연필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들며 “오, 조지. 뭘 도와줄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조지는 그 선배의 아내에게서 축하 전화까지 받았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다. 






조지 로이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악의 슬로건은 “조지, 늘 조심해!”였다고 말한다. 크리에이티브에 있어서 조심스럽다는 것은 똑같거나 평범해지는 지름길이며 결국 그 광고는 묻혀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가 만든 광고 중 무하마드 알리를 순교자 성 세바스찬처럼 표현한 에스콰이어 표지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그는 인종차별이나 반전 등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위해서 그의 크리에이티브를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남들이 안 될 거라고 하는 말에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도 충고한다. 이는 마치 어려운 일 앞에서 “해보기는 했어?”라고 물었다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도 궤를 같이 하는 말이다.




‘나는 MTV를 원해’라는 캠페인에 주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을 때 그는 영국에 있는 믹 재거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MTV를 원해!”를 외치게 만들었고, 억울하게 300년형을 선고받은 허리케인 카터를 구하기 위해서는 밥 딜런을 찾아가 딜런에게 ‘허리케인’이라는 노래를 만들고 내친김에 콘서트까지 열게 했다. 밥 딜런은 이 곡을 가지고 ‘허리케인의 밤’이란 콘서트를 두 번이나 열었는데 한 번은 놀랍게도 감방 안이었고 두 번째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만약에…어떻게 될까?”라는 순진무구한 생각을 도중에 접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간 덕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120 개의 충고 내내 잘난척을 삼가지 않는 조지 로이스 할아버지, 하지만 그는 정말 잘난척 할 만하다. 트렌드를 쫒아가는 것은 덫에 빠지는 일이며 ‘안전’은 죽음을 뜻한다고 외치는 그에게서 특히 존경스러운 점은 많은 광고인들에게 "왜 그냥 크리에이터로 남으려고 하느냐, 문화 선동가가 될 수도 있는데!”라고 선동한다는 점이다. 이천 년 전 소크라테스도 젊은이들에게 비슷한 소릴 하다가 독배를 받았지만 현대의 선동가 조지 로이스는 여든 살이 넘은 지금도 팔팔하게 살아서 현역 광고인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마구 던지고 있는 것이다. 


원제가 'Damn Good Advice'인 이 책은 아내가 출판기획자로 근무하는 세종서적에서 며칠 전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인데 난 기획자의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들보다 먼저 이 책을 접하는 행운을 누렸다. 교정쇄로 받아본 책은 일단 내용이 너무 쉬우면서도 통쾌하고 흥미진진했다. 120 개의 충고들은 짤막짤막한 챕터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무 데서나 펴보기도 좋았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 개인적 친분이 있는 카피라이터 정철 선배와 CF감독 백종열 실장님에게 짧은 추천사를 부탁했는데 다행히 두 분 모두 흔쾌히 추천사를 써주셨다. 고마운 분들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나도 그들과 함께 추천사 한 줄을 뒷표지에 같이 올리게 되었다. 내가 쓴 추천사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동료에겐 추천하지 않은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배운 걸 당장 그 사람들에게 써먹고 싶은 욕망에 먼저 시달리게 될 테니까. - 편성준(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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