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라는 캐머런 크로우의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연극도 ‘거의 메인이 될 뻔한’ 이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오로라가 보이는 메인 주 북쪽에 있는 가상의 마을 ‘올모스트’에서 일어나는 아홉 커플의 이야기더군요. 연극은 벤치에 앉은 어린 남녀의 짧은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느닷없이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자신들이 정한 명제와 지구의 둘레 길이를 재는 데서 이견이 생겨 어처구니 없이 헤어집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올모스트 마을로 오로라를 보러 온 여자가 그 동네 사는 남자 집 마당에 다짜고짜 텐트를 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입니다. 여자는 관광 가이드에 나온대로 이 동네 사람들은 오로라 관광객들에게 매우 호의적이라 자기는 이 집 마당에다 텐트를 쳐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고 남자는 그러는 여자에게 갑자기 사랑을 느껴 키스를 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신의 부서진 심장을 봉지에 넣어 들고 다닌다고 말하고 사실은 죽은 남편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오로라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종의 부조리극처럼 느껴지는 이 시퀀스는 번역투의 문장들과 과장된 제스추어들로 인해 역설적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번역극의 묘미는 관객들이 우리나라 사람인 줄 뻔히 아는데도 배우들이 외국인 이름을 달고 외국인 연기를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전에 다 서로 속고 속아주기로 짜고 보는 셈이지요. 그러다보니 너무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나 몸짓보다는 서양 사람들처럼 약간 과장된 제스추어들이 더 대본의 의미를 잘 전달해 줍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특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여배우의 대사 처리가 뛰어나 더 좋았습니다. 

그밖에도 세탁실에서 만난 커플, 결혼기념일에 스케이트장에서 싸우는 커플, 누가 더 불행한 지(사실은 누가 더 한심한지) 내기를 하다가 동성끼리의 사랑을 깨닫고 당황하는 남-남 커플, 그리고 천둥벌거숭이 불알친구처럼 지내다가 남녀관계로 돌입하는 커플들의 이야기까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도 모아놓았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하는 짱짱한 구성입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연극은 2002년에 뉴욕에서 초연된 이후로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흥행작이라고 하네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의 대본을 쓴 사람이 미국 TV시리즈 ‘로 앤 오더’로 유명한 배우 존 카리아니(John Cariani)라는 사실이죠. 배우 출신 천재 극작가가 애런 소킨 말고도 또 있다니, 참 살 수가 없습니다. 연극을 보기 전에 잠깐 얘기를 나눈 유정민 배우는 이 작품은 대단히 쉽게 쓰여진 즐거운 작품처럼 보이지만 두 번 이 상 보면 현대인의 슬픈 단면을 잘 잡아낸 연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귀뜸해 주셨습니다. 연극을 보고 난 뒤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됩니다.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연극입니다. 겨울에 보면 더 좋은 연극이라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아주 따뜻하고 웃기고 슬픈 연극이라 사랑하는 사람과 보기 참 좋은 연극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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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하죠. 

여기 그런 거짓말이 있습니다. 

허쉬 초콜릿 광고입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화상회의를 하는 아빠 테드. 딸인 스칼렛이 할 얘기가 있어 다가가지만 아빠는 미안한 미소만 지은 채 계속 일을 합니다. 아빠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스칼렛이 어디론가 가게로 들어가서 주인과 상의를 합니다. 아빠 테드의 등신대를 만드는군요. 등신대기 그럴듯해 보이는지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는 "안녕하세요,테드."라고 인사까지 합니다. 


스칼렛은 등신대를 들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테드의 화상회의 파트너들은 테드의 등신대를 보고 열심히 회의를 진행하고 있고 스칼렛과 테드 부녀는 그들 몰래 주방에 가서 허쉬 초콜릿으로 만든 간식을 즐기고 있군요. 행복해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Hello Happy, Hello Hershey's'라는 자막이 뜹니다. 



때로는 영화처럼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광고들이 있습니다. 이 커머셜 필름도 2분이 넘는 작품인데 따뜻하고 유려한 화면 구성 덕분에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초콜릿이 주는 작은 행복. 거기엔 딸의 따뜻한 마음과 유쾌한 상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죠. 어때요, 이 정도면 허쉬 초콜릿과 행복을 같은 문장 안에 나란히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27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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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브레이크]의 스코필드를 석호필이라고 부르고 가수이자 제작자인 토니 안을 '토 사장'이라 부르듯이 우리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를 '파 교수님’이라 부른다. 이미 트위터의 유명인사이고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는 지식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그가 이렇게 역사에 관한 정확한 지식과 민주사회에 대한 논리정연한 생각을 두루 갖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신작 에세이 [미래시민의 조건]은 3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언어학자이자 교육자인 실천적 지식인 파 교수가 헬조선에 보내는 따뜻한 충고다. 일본어를 전공하던 학생이었던 로버트 파우저는 1982년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후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3년을 지내며 교토대와 서울대 등에서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번갈아 가르쳤다. ‘한국인의 따뜻한 정과 라틴적 감수성’에 매료되어 어느덧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던 그는 오랜만에 다시 돌아와 변해버린 한국에 놀란다. 그가 처음 봤던 활기차고 역동적인적인 대한민국은 어디 가고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날아다니는 체념의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꼭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촌에 한옥을 사서 다시 짓고 지역 공동체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기도 하던 그는 어느날 문득 서울대를 그만두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떠나면 더 잘 보인다고 했던가. 29년만에 고향에 돌아가 한국생활을 반추하던 파우저 교수는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민주주의'로 귀결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이다. 

대한민국은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 지수도 높게 나왔고 GDP도 2만달러에 달하는, 심지어 '2050클럽'에 속하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나라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 큰 원인은 사회 시스템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안위를 우선으로 여기는 '각자도생'의 생활방식이  온 나라에 팽배하게 되었다. 파우저 교수는 시스템 불안의 원인으로 혈연, 지연과 같은 '사회적 자본'에 집중하는 한국인들의 특성이 주목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스펙을 많이 쌓고 이용할 수 있는 연줄은 다 걸어서 스스로 안전망을 만들어 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파우저가 어떻게 서울대 교수가 된 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들의 작용이었다. 로버트 파우저는 한국 학계에서 그리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뭘 시켜준다고 해서 금방 크게 자라 세력화 될 염려가 없는 인물인 것이다. 더구나 그가 '첫 외국인 국어교육학과 교수'가 되면 대외적으로 서울대 이미지도 올라갈 수 있다. 꿩먹고 알먹고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파우저 교수가 우리 사회를 더 사심(?) 없이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왜 '민주주의'인가. 파우저 교수는 언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사람이다. 언어는 단지 말이나 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방식 등을 그대로 담고 있다. 따라서 언어에 능하면 그만큼 통찰력도 늘어나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는 모국어 하나만 하면 흑백의 세상을 사는 것이고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면 컬러 세상을, 세 개 이상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 3D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는 그가 수평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한국사회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큰 덕목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본이나 미국이 나쁘고 한국은 무조건 좋다, 는 식의 단순무식한 사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사라진 활력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데 이는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 파우저 교수는 책의 첫머리부터 '시민'에 대해 이야기 한다. 중요한 모든 것들이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애초부터 한국어로 씌여졌는데 가만히 읽다보면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시민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훓어보는 세계사와 근대사는 마치 중고등학교 교과서처럼 짧으면서도 요점적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중간중간부분은 인간적인 체취가 넘친다. 맨 뒤쪽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글도 있는데 막상 그의 생애와 관심사에 관해 우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아 놀라웠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미래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비전은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현황을 보고 제시한 비전과 비교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논의할 수도 있다. 미래 비전은 사실 또는 진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따라서 이 책은 미래에 대한 희망 이야기인 셈이다.



파우저 교수는 책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대신에 어떻게 하면 '헬조선'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의 단초들을 던져준다. 지금처럼 각자 스펙을 쌓아 남들을 짓밟고 올라가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갑자기 메시아가 나타날 리도 없다. 각자의 올바른 생각과 참여를 통해 시민의식을 깨우는 것만이 방법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좀 더 발전적인 공동체 건설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파우저 교수는 이를 '국민'의 사고에서 공동체 주인으로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장으로 역설한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라는 장 자끄 루소의 말이 있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 시기에 로버트 파우저 교수 같은 지식인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얇은 책이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무게는 만만치가 않다. 일독을 권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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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속 바빠 아내와 함께 일찍 출근을 하다가 오늘은 좀 여유가 있길래 아내 먼저 출근시킨 후 혼자 침대에 누워 단편소설을 하나 읽고 회사로 갔다(광고 프로덕션 특성 상 일반 직장인보다 출근시간이 좀 늦다). 



김연수의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라는 짧은 단편이다. 전에 분명히 읽었는데 ‘읽었다는 기억’만 나고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 전엔 그래도 기억력이 좀 좋았는데 이젠 정말 바보가 되어간다. 2009년 3월, 소설가인 주인공이 세브란스병원 암병동 복도에서 정대원이라는 노인을 만나는 장면을 읽으니 어렴풋이 소설의 도입부를 읽은 기억이 났다. 노인이 쓴 소설 ‘24번 어금니로 남은 사랑’이라는 제목을 읽으니 그가 들려준 어금니의 비밀도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어금니를 뽑고 나와 기념사진을 찍다가 자살을 기도한 이야기. 자신의 이를 뽑아주고 사진을 찍어준 간호사와 몇 달 간 동거를 했던 이야기. 그녀가 어느날 볼펜 한 박스를 사다 주며 그 사연을 소설로 쓰게 했던 이야기. 그가 세브란스에서 작가와의 만남 이후 그 이야기를 빨간색 펜으로 써서 보내왔던 뒤늦은 원고. 그리고 마침내 그해 5월 23일 아침, 정대원이라는 원로 소설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기사. 동시에 갑작스러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알리는 친구의 전화. 소설가가 찾아갔던 대한문 앞의 조문행렬.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모습.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볼펜에 대한 이야기는 김연수가 쓴 다른 책 <소설가의 일>에서 주장하던 그의 창작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책을 다시 펼치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던 것은 아마 책을 ‘천천히’ 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어느덧 나는 책을 천천히 읽으며 곱씹는 즐거움을 읽어버리고 살게 된 것이다. 

이 작품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는 좋은 단편들이 많다. 김연수는 자신의 경험이나 실제 있었던 일을 소설에 녹이면서도 핍진성을 잃지 않는 작가다. 첫 번째 실린 소설 ‘벚꽃 새해’에 나오는 영화 <몽중인>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이 소설에 나오는 정대원이라는 소설가도 실제로 이름과 작품이 존재한다. 알면 알수록 재밌어지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그냥 휘리릭 읽어버리고 곧바로 잊기엔 너무 아깝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다시 읽음으로써 비로소 김연수의 소설은 나의 것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좀 천천히 읽자. 김연수처럼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못 누리더라도 책 읽는 이들의 한 가지 즐거움, 즉 천천히 음미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순간의 기쁨은 좀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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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극장에 들어가 좌석에 앉을 때마다 '비행기 모드'로 전환을 하는 편이다. 방해금지가 아니라 왜 비행기 모드냐고? 비행기를 탈 때 처음 이 버튼을 눌렀었는데 평상시에도 비행기 모드로 전환만 해놓으면 전화벨이나 문자 알림음, 또는 진동이 울리지 않는다는 걸 확실하게 알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아무래도 큰 사건이다. 출장이 잦은 비즈니스맨이라도 그렇다. 그것에 비하면 '비행기 모드'를 누르는 건 매우 가벼운 행위다. 그런데 대한항공 광고팀은 그 가벼운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비행기를 타는 것만이 아니라 비행기 모드로 전환만 하는 사소한 행동으로도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 종일 쉴새 없이 몰입을 방해하는 스마트폰의 알림음들, 수많은 콘텐츠들.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작은 비행기 버튼'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광고 소재였다. 심지어 항공사들이 이 기능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그런데 대한항공팀이 멋지게 그걸 선점했다. 탁월한 선택이요 기획력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카피도 좋다. 


이 작은 비행기로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대한항공은 바랍니다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캠페인 이후로 대한항공은 정말 광고를 잘 한다. 지난번 '게스트 하우스 인 프랑스' 는 약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지만 이번에 '나는 비행기를 탑니다'로 다시 멋지게 돌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광고를 잘 하면 뭐하나. 대한항공의 오너와 그 딸들이 앞다투어 진상을 떨며 애써 올려놓은 이미지를 깎아먹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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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탈영병 얘기가 뉴스에 나오면 사람들은 한숨부터 내쉰다. 아니 어쩌자고 탈영을 해? 도대체 쟤는 무슨 생각에 저랬을까. 이해를 할 수가 없네. 물론 나도 똑같은 소리를 한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총을 들고 탈영을 하면 잘해야 다시 끌려가 징역을 오래 살거나 아니면 검거현장에서 사살되는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물론 본인에게는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애인이 변심을 했거나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고참 새끼가 있거나. 그러나 제3자는 죽었다 깨나도 그 이유를 모르고 이해도 못한다. 그게 세상의 이치니까.

 

그런데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심정을 헤아려 보는 방법이 뭐 없을까. 기자 또는 학자가 나와서 그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 우리는 소설로, 영화로, 또는 연극으로 그 현장에 다시 들어가 보는 경험을 선택한다. 그러면 몇 줄로 요약될 수도 있었던 앙상한 사실은 픽션이라는 드라마 장치를 통해 육화되고 비로소 사람들에게 사건 밑에 깔려있던 입체적인 진실을 들려준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라는 이 직설적인 제목의 연극은 탈영병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2015년 현재 모 군부대에서 소총을 들고 탈영한 말년병장. 그 놈은 제대 한 달을 남겨두고 왜 탈영을 한 것일까. 연극은 현재의 탈영병 이야기로 시작해 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의 반군들, 그리고 1944년 일본 오키나와의 가미카제 특공대로 지원했던(사실은 끌려간 것이지만) 조선의 젊은이들 얘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2010년 서해 백령도의 초계함 안으로 들어간다.

 

명백히 천안함 침몰사건을 연상시키는 백령도 초계함 챕터는 생일을 맞아 동료들로부터 초코파이를 선물 받았던 병사 이야기, 돌 지난 육지의 아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취사병 이야기, 매번 지각을 해서 매를 맞던 고문관 이야기 등등 병사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통해 그들이 군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라크 병사들이나 탈영병, 가미카제 병사들의 이야기를 돌아 다시 이들의 이야기로 돌아왔을 때 아까 관객에게 들려주었던 각자의 대사들을 똑같이 한 번 더 반복하게 한다. 물론 그냥 반복은 아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초계함 안에서 사망한 그들은 자신의 대사가 끝날 때쯤 나타난 의사와 간호사들에 의해 머리 위에 검은색 직사각형 삼베봉투를 쓰고 그대로 서 있게 된다. 그렇게 저마다의 분분했던 사연들은 죽음이라는 공통분모 앞에서 일제히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 저마다의 사연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검은 봉투가 씌어지는 순간 로봇처럼 멈추어 설 때 코를 훌쩍이던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뿌린다. 나도 눈물이 나서 손수건을 꺼냈다.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간 젊은 영혼들의 심정이 가슴으로 뜨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공감할 수 없었던 그들의 사연이 잘 짜여진 연극의 플롯과 대사, 그리고 절제되면서도 정확하고 열성적인 연기들을 통해 되살아 나면서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곁에서 일어났던 일임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반복해서 일어날 일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배우 이원재를 비롯해 캐스팅 일순위에 들어간다는 명배우들이 열 일을 제쳐두고 이 연극에 몰려든 것은 극을 쓰고 연출한 예술감독 박근형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나도 박근형이라는 이름 때문에 금요일의 바쁜 일정을 가까스로 소화한 뒤 저녁을 굶은 채 남산예술센터까지 달려 왔으니까. 박근형은 전작 [개구리]에서 전직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창작지원사업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다. 이 작품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바람에 정부에서 주는 창작자원금 후보에서 밀렸다는 뉴스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관객들은 전회 매진이라는 뜨거운 성원과 집단지성을 통해 이 연극의 의의와 작품성을 인정해 주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인간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가지는 고유한 기능인 픽션을 만들어내고 믿는 능력때문이라고 했다. 픽션은 거짓말이지만 진실을 밑천으로 하는 핍진성 있는 거짓말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끌려가 비행기 안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자폭했다라거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초계함에 타고 있던 46명의 병사들 전원이 사망했다는 건조한 문장으로는 도저히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진실들은 픽션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우리들의 지성과 구체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연극을 보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이번 주말까지만 상연한다. 그러나 다시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놓치지 말고 꼭 예매를 하시기 바란다. 10월에는 일본 도쿄에서도 무대를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놓치기 너무 아까운 연극이라며 티켓을(그것도 배우할인 가격으로!) 확보해 준 배우 이승연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의 신작 발표 행사 때문에 아깝게 이 연극을 놓친 아내 윤혜자 여사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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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결혼이라는 걸 안 하고 살 줄 알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결혼생활이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또 혼자 살아도 별로 외롭거나 비참한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게 좋았다. 이게 대인기피증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게, 평소에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거나 노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혼자 소파에 늘어져서 다리 까딱이며 신문을 보거나 멍때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지고 이내 그 상태가 몹시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예쁜 여자가 혼자 우리집에 놀러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밤 어찌어찌 잠자리를 가질 때까지는 좋았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면 ‘근데 쟨 집에 안 가나?’라는 한심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뱃속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이었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남들이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상대를 만날 때도 나는 여자들에게 객적은 농담이나 픽픽 날리고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리는 한없이 가벼운 연애상대나 그냥 '아는 오빠'로 비춰지고 있었다.


그래, 가끔 이렇게 연애나 하며 살지 뭐, 결혼은. 이렇게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나름 정리하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몇 개의 우연이 겹치는가 싶더니 마치 교통사고 당하듯 생각지도 않게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무엇에 홀린듯 사귀고 동거하고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상하게 아내와 있으면 힘들거나 지겹지 않고 '혼자 소파에 늘어져서 다리 까딱이며 신문을 보거나 멍때리고 있는 나의 모습'도 더 이상 그려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한다. 어떤 얘기를 하냐고? 많은 커플이 그렇듯 우리도 '오바마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이나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같은 심오한 얘기는 잘 나누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회사에서 있었던 소소한 얘기나 TV 프로그램 얘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자잘한 뒷담화 등을 나눈다. 그리고 서로 힘든 얘기를 거침없이 나눈다. 이게 중요하다.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일수록 화를 자주 내거나, 무서워하거나, 무감각해지는 등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어딘가에, 또는 누군가에게 표현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심리학자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걸 모두 말한다.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멍충한 짓을 했는지, 얼마나 창피한지. 아무리 바보 같은 얘기를 해도(하다못해 출근하다 바지에 똥싼 얘기를 해도)...그녀는 다 받아준다. 다 받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부자로 만든다.


(*사진의 전당포는 총신대입구역 사당우체국 근처에 지금도 실제로 있는 가게입니다. 예전에 침맞으러 갔다가 찍어놨던 사진인데, 이 글과 잘 맞는 거 같아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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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책장을 정리하자고 한다. 올 8월이면 이 집으로 이사온 지 4년이 된다. 7층에서 바라보는 한강이 한 눈에 보이고 거실에는 친구들과 술 마시기 좋은 테이블도 있고 책꽂이도 양쪽으로 큰 게 있어서 더 살고 싶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 아내가 눈대중으로 세어보니 대략 1,500권 정도란다. 책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가지고 있는 책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줄일까.


일단 무슨 책을 남기고 무슨 책을 없앨 것인가부터 정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 출근길에 아내와 한강변을 함께 걸으며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며칠 전 친구 표문송과 술을 마시다 무슨 얘기 끝에 내가 '십수 년 전에 홍명희의 <임꺽정> 열 권을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 읽었다'고 했더니 그 책만큼은 절대 버리지 말고 나중에라도 꼭 읽으라고 한 게 기억난다. 그 책을 기준으로 남겨야 할 책과 없애야 할 책들을 생각해 보자.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 중엔 아무래도 <태백산맥>을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아리랑>은 읽으면 가슴이 너무 아리고 답답해져서(특히 정신대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부분) 다시 읽기 힘들 것 같고 <한강>은 두 책에 비하면 개인적으로 크게 당기지가 않았다. 그러니 <아리랑>과 <한강>을 다른 데로 보내고 필요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도록 하자.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책들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늘 잘 팔리는 작가의 책들은 초기 희귀본이 아니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 모두 내보내자. <용은 잠들다>나 <방과 후> 같은 건 기념으로 한 권씩 남겨 놓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도 몽땅 내보내기로 하자. 이미 후배 윤보라가 내가 개포동 옥상 있는 집에 살 때 놀러와 우리집에서 술을 마시고 <개미> 전집 다섯 권을 빌려가다가 그날 밤 택시 안에서 분실한 터라 이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창간호부터 절판될 때까지 읽었던 SF잡지 [판타스틱]은 놔두자. 거기서 배명훈의 소설들도 만났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저자 정세랑의 단편도 처음 접했으니까. 1983년도쯤 문학잡지 [현대문학]을 일 년치 구독한 것은 순전히 당시 대성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권희돈 선생님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 '벌레'인지 '벌레구멍'인지 하는 시를 칠판에 적어주셨는데 시 말미에 '현대문학 몇월호'라고 출처가 씌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분히 허영심에서 선택한 정기구독이었지만 나에게는 당시 몇 달치 용돈을 모아 저지른 작은 사건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 잡지에 막 연재를 시작했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제목으로나마 먼저 구경할 수 있었다. 현대문학 과월호도 지금은 구하기 힘든 책이 분명하니 그냥 놔두기로 하자. 

김용 선생의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는 어떻게 할까. 난 <사조영웅전>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머지 중독성 때문에 <신조협려>까지 선뜻 손을 대지 못하다가 여태 못 읽은 케이스다. 엉뚱하게도 무협지를 좋아하는 뚜라미 동기이자 '오근네닭갈비'1,2호점의 사장님인 고한우가 빌려다가 며칠 밤 통독을 하고 다시 돌려줬다. 허멘 멜빌의 <모비딕>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백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 읽다가 만 책들은 그냥 놔둘 생각이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등은 너무 어렸을 때 읽었으므로 다시 읽으려고 일단 눈에 들어올 때마다 사놨으나 아직 읽지는 못한 책이다. 일단 놔두자. 대신 아멜리 노통브나 무라카미 류, 마루야마 겐지, 야마다 에이미 등 한때를 풍미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 모두 내보내자. 아,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떻게 할까. 왠지 이 사람 책은 그냥 놔두고 싶어지는데. 그냥 무시하고 싶다가도 그 꾸준함이나 향상성 때문에 자꾸 생각나는 작가다. 최근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단편들만 읽어봐도 그렇다. 어쨌든 참 잘 쓴다. 

황석영의 소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무기의 그늘>과 <손님>만 남길까 한다. <손님>은 어쩌다보니 세 번이나 같은 책을 샀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없게 가까운>도 세 번째 산 책이다. 내보낼 순 없을 것 같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같은 책은 쉽게 절판될 것 같으니 놔둬야 한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이나 <나라 없는 사람> 같은 책을 어찌 내보낼 수 있으랴. 밀란 쿤데라의 책들도 일단 다 품고 있어야 한다. 이런 책을 내보내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새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도 누군가 훔쳐가는 바람에 다시 샀던 책이다. <벨벳 애무하기>라면 혹시 몰라도 이 책은 안 된다. 모옌의 <홍까오량 가족>은 인덕이한테 선물받은 책인데 아직 안 읽었고 <탄샹싱>은 정말 정말 어렵게 구했던, 애지중지하는 책이다. 그런데 바르가사 요사의 책들은 다 어디 간 걸까. 


김훈의 책들은 일단 모셔 두기로 한다. 윤대녕의 단편집들도 마찬가지다. 폴 오스터의 책 중 그래도 <뉴욕 통신>쯤은 남겨둘까. 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서 집에 가서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 이러다가 몇 권이나 내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재 결혼시키기'보다 어려운 게 '서재 시집보내기' 인 것 같다. 이건 일단 거실 왼쪽에 있는 내가 산 책들 중심의 책장 이야기다. 오른쪽에 아내가 산 책들까지 생각하면 정신이 약간 아득해진다. 아내는 그 책들 중에서 또 어떤 걸 골라낼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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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고 있는 사람!” 

“반창고 있는 사람~!” 

“반.창.고.있.는.사.람.” 

“반창고 있는 사람!” 

“반창고~없어?” 

“반창코 있는 사람!” 

“반창고 내놔!” 

 

까진 뒤꿈치에 붙일 반창고를 찾는 여주인공의 새된 목소리를 싣고 스테디캠이 좁은 분장실 복도를 이리저리 누비는 첫 장면부터, 난 이 영화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중국 6세대 감독 중 대표주자인 지아장커의 <세계>를 몇 주 전 EBS에서 프리미어로 방영했다. 하지만 이 날은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심하게 해야 하는 상황. 바쁜 카피를 대강 엉터리로 정리한 후  한상이가 옆에서 썸네일 스케치를 하는 동안 나는 밤 11시부터 TV속 영화에 코를 박고 떨어질 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고 일은 일이다. 한상이는 넋을 잃고 있는 나를 TV에서 떼어놓았고, 우리는 일요일에 출근을 안 하기 위해 TV를 끈 뒤 기를 쓰고 새벽 한시 반까지 일을 해야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영화를 못 봐 너무 아쉬워하는 나를 한상이가 안타깝고 한심하게 쳐다본다. 

 

일요일.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서울아트센터(구 허리우드극장)에서 <세계>를 상영 중이란다. 너무 반가워 망설일 틈도 없이 예매를 한 뒤 뿌듯한 마음으로 종로까지 달려간다. 

 

 

‘하룻동안에 세계일주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커다랗게 걸려있는 베이징의 세계공원. 타오와 타이쉥은 여기서 무용수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둘은 연인 사이다. 에펠탑, 런던브릿지, 피사의 사탑 등이 삼분의 일 사이즈로 오밀조밀 흩어져 있는 이 거짓말 같은 공간에서 타오는 춤을 추고 타이쉥은 관광객들을 돌본다. 타이쉥의 사촌동생 얼샤오도 여기서 일하는데 그 놈은 영 적응을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동료들과 함께 화려한 무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타오는 늘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사실 안을 들여다보면 마음은 춥고 불안하다. 매일 쳇바퀴처럼 도는 공원 생활이 그렇고 아직 몸을 허락하지 않은 남자친구 타이쉥이 떠나갈까봐 안절부절 하기도 한다. 

 

어느 날, 고향에서 잠깐 사귀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인사차 찾아왔을 때 셋은 같이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은 뒤 작별을 고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타오의 옛 남자친구를 배웅한 타이쉥은 그 날 둘이 함께 가곤 하던 초라한 여관에서 타오에게 사랑을 나누자고 조르다 또 거절당하자 ‘우리 애인 사이 맞아?’라며 화를 낸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여관이 너무 지저분해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알아, 우비를 입고 잤다고 했잖아.” 

“내 아이디어, 좋지 않았어?” 

 

측은한 마음에 더 이상 요구를 하지 못한 타이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타오를 말 없이 꼭 껴안아주는 것뿐이다. 

 

잠깐 다녀 올 일이 있어 고향에 가게 된 타이쉥은 함께 길동무를 하게 된 유부녀 췬과 가까워진다. 췬은 노름과 여자 문제로 늘 사고를 치는 남동생에게 또 돈을 가져다 주기 위해 타이쉥과 함께 길을 떠난 것이다. 십 년이나 남편과 떨어져 사는 외로운 여자 췬은 어느덧 타이쉥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감정을 그대로 밀어붙인다. 세계공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애인 타오가 눈에 밟히는 타이쉥도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비밀스런 관계를 갖게 된다. 

 

타이쉥이 없는 공원에서 일을 마치고 쓸쓸하게 걸어오던 타오는 동료 무용수 하나가 나이 든 공원 사장과 사진을 찍으며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두 사람은 절대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타오는 벤처사업으로 갑부가 된 젊은 남자에게 청혼을 받지만 거절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러시아 출신 안나를 만나게 된다. 함께 일할 땐 같은 무용수였지만 지금은 호스티스가 된 안나를 보고 타오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고향 친구와 후배를 베이징으로 잠깐 데려 온 타이쉥은 공원 여기저기를 안내하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저건 런던브릿지, 저건 자유의 여신상, 저건 에펩탑이야. 모두 삼분의 일 사이즈로 제작됐지. 와, 에펠탑이랑 똑같이 생겼네. 진짜 에펠탑 가봤어? 아니… 고향 후배는 신이 나서 자기도 여기서 일할 수 없겠냐고 묻는다. 난감해진다. 어차피 가짜로 가득 찬 공원에서 혹시 자기 인생도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또 쓸쓸해진다. 

 

공원 생활에 잘 어울리지 못하던 사촌동생이 결국 팀원들의 물건을 훔치다 걸려 쫒겨난다. 심란한 마음에 타오와 함께 자기 고향으로 내려간 타이쉥은 전에 친구와 놀러 왔던 고향 후배가 공장에서 일하다 다쳐 죽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가 죽기 직전에 유서로 내민 쪽지엔 누구누구에게 꾼 돈과 어느어느 가게에 진 외상값들이 꼼꼼하게 적혀있다. 산업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고향은 더 이상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흙먼지 섞인 바람이 황량하게 두 사람 사이를 훓고 지나간다. 

 

어느 날 공원 사장이 회의를 소집해 모두를 불러모으더니 예전 팀장을 해임하고 젊은 여자 무용수를 팀장으로 임명한다고 전격 선언한다. 새 팀장은 예전에 타오가 사장과 데이트하는 현장을 목격했던 바로 그 친구다. 

화려했던 불빛이 모두 꺼진 시간, 숙소로 돌아가다 그 친구와 마주친 타오는 팀장 된 걸 축하한다고 약간 비아냥거리지만 ‘그냥 직함만 달라진 것뿐인데 뭘.’ 이라고 하는 친구의 허탈한 대답에서 타인의 고단한 삶과 마주친 걸 깨닫고 당황한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자오타오는 실제로 세계공원에서 무용수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지아장커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탄 영화 <스틸라이프>에서도 주인공을 맡았다. 남자 주인공인 첸타이쉥도 베이징에서 연기과를 전공했지만 배우의 길이 막연해 ‘평생 불법DVD나 팔고 살아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인물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둘의 모습에서는 연기 이상의 깊이와 사실감이 절절이 묻어난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어요.” 

 

남자친구의 의처증 때문에 맨날 싸우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또 다른 공원 커플이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던 날, 피로연장에서 즐겁게 건배를 하던 타오는 우연히 췬이 파리로 떠나면서 타이쉥에게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보게 된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잠자리까지 가진 타이쉥이 자신을 배신을 한 것이다. 

 

숙소를 뛰쳐나온 타오는 돈을 아끼기 위해 값싼 여관으로 간다. 지저분한 여관에서 우비를 꺼내 입고 침대에 몸을 눕이는 타오. 우비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단추를 꼭꼭 여민 타오의 모습은 마치 누에고치 같다. 

 

몇날 며칠 타오를 찾아 헤메던 타이쉥은 결국 신혼여행 떠난 동료의 빈 숙소에서 타오를 발견한다. 문을 열어주지 않고 바닥에 앉아 타이쉥에게 욕을 해대는 타오와 문 밖에서 용서를 구하는 타이쉥. 

 

어느덧 날이 밝아 새벽이 되었고, 숙소에선 사람들의 요란한 비명과 고함이 다급한 발걸음과 뒤섞인다. 연탄 까스를 마신 사람이 있으니 빨리 119를 부르라는 소리와 함께 업혀 나온 남녀는 술을 마시고 잠들었던 타오와 타이쉥이다. 119는 아직 오지 않고 담요에 싸여 새벽 길바닥에 눕혀진 두 연인의 모습 위로 타오와 타이쉥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된다. 

 

“타이쉥, 우리 죽은 거야?”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야.” 

 

마지막 대사는 왠지 낯이 익다. 아,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리턴>에서도 맨 끝에 이런 대사가 나오지.(형, 우린 끝난 건가요?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한 영화 기자는 <세계>를 보고 나서 ‘어떤 감독은 삼십대 중반에도 거장이 된다’ 라고 했다. 귀엽고 경쾌했던 <키즈리턴>에 비해 <세계>는 훨씬 남루하고 고통스러운데, 이상하게도 그게 더 좋다. 정말 가슴이 뻐근해진다.     2006.11.22 17:44

 


* 오늘 페이스북 댓글로 어떤 페친께서 지아장커의 <산하고인>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예전에 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했던 <세계>의 영화일기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10년 전이군요. 다시 보고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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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카피 고민을 할 때면 별 게 다 신경이 쓰인다. 필기구도 그 중 하나. 연필로 썼다가 볼펜으로 썼다가 괜히 만년필로 바꿨다가. 아내가 쓰던 몽블랑 볼펜도 있고 파버카스텔 만년필, 일본 츠타야서점에서 산 빠이롯트 만년필, 노란 파버카스텔 연필, 이마트에서 산 일본 우노4색볼펜, 그리고 얼마 전 교보에 갔다가 괜히 심을 구입한 워터맨 볼펜까지. 그런다고 잘 써지는 것도 아닌데. 책상 위 연필꽂이를 바라보니 실로 많은 펜들이 꽂혀 있다. 결국 자판으로 정리할 거면서도 이렇게 많은 펜들이 필요하다니. 나중에 죽어 염라대왕 앞에서 대질심문 할 때도 생각이 안 나 못썼지 필기구 없어서 못썼다는 말은 못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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