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기계발업계에서 '아침형 인간'이 크게 우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더라는 이론이었는데 그건 나처럼 잠이 많고, 특히 아침잠이 많은 인간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렇다고 야밤에 일을 잘 하는 스타일도 아닌 나는 그저 '느즈막히 일어나 최선을 다 하다가 해 지면 술 마시고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정도의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던 터라 일찌감치 성공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행히 뜨겁던 '어얼리 버드' 열풍도 지나가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든 늦게 일어나든 신자유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누구나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도래함으로써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되었다.

라이프 코치 조정화가 쓴 [휴대폰 소녀 밈의 시간의 발견]은 어얼리 버드 열풍 이후 지금까지 여러 번 등장했던 시간 활용법에 대해 새로운 힌트를 제공하는 탄탄한 에세이다.

우선 반가운 것이 이 책은 '억지로 관리할 필요가 없는 시간관리법’을 표방한다는 사실이다. 즉, 정색을 하고 인생을 바꾸거나 할 필요 없이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인데, 조금 더 책 안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하루 24시간 중 우리가 정말로 일에 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직장이나 학교까지 가는 데 한 시간 남짓을 사용하고 자기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볼 때도 일과 관계없는 인터넷 서핑이나 휴대폰 사용, 메신저 대화 등등으로 호시탐탐 방해를 받다보면 어느덧 점심시간, 퇴근시간이 되기 일쑤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모자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지은이는 일단 '시간의 상대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님과의 한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가지만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무간지옥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원리 말이다. 지은이는 최신 영화 [인터스텔라]까지 예로 들며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척'만 하는 우리들의 생활습관 또한 매섭게 지적한다. '멀티태스킹'이 그 예이다. 철학자 한병철도 얘기했듯이 현대인은 멀티태스킹과 어울리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의 발달 등으로 인해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결과 어떤 한 가지에 몰입하기는 더 힘들어진 것이다.

이 책은 멀티 태스킹에서 싱글 테스킹으로 가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 예를 들면 '불필요한 외부 정보를 차단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정한다',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등을 정확하게 조언해준다. 똑같은 시간이라도 몰입을 잘 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왜 한 가지 목표에만 끝까지 매달리면 안 되는지,혼자 있을 때 뭘 해보면 좋은지 등등도 페이지마다 깨알 같은 실제 정보를 통해 전해준다. 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처럼 애매하게 개인을 추궁하다 잠깐 위로하는 척하고 마는 슈퍼 베스트셀러들보다 나은 이 책의 미덕이다.


에우리피데스, 아우구스티누스, 벤저민 프랭클린, 허레이쇼 넬슨, J.P 모건, 장 폴 싸르트르, 톨스토이…등등 이 책에는 시간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들려주는위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철학자 한병철, 강신주,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 등도 기꺼이 출연해서 쓸모있는 통찰들을 들려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름난 사람들이 남긴 말들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문학적 주제와 상통하기 마련인데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정화는 우리가 시간에 끌려다니면 시간의 노예가 되지만 시간의 주인이 되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노라고 단언하다. 그리고 '시간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를 잘 사는 사람'이라는 통찰력 있는 결론을 내놓는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그런데 성공에 대한 갈망이 클수록 조급증을 낳게 되고 또 매순간 남과 비교됨으로써 끊임없이 시간에 쫓기게 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리고 성공을 이루어야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비극이다.

[휴대폰 소녀 밈의 시간의 발견]은 뜬구름 잡는 형이상학적 문장이나 간지러운 메타포 대신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을 짧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특히 매 챕터마다 등장하는 휴대폰 소녀 ‘밈’ 의 활약이 크다. 밈은 SNS를 통해 유명해진 캐릭터인데 24시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휴대폰 중독자다. 어찌보면 이 책의 주제인 시간관리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인물인 셈인데, 이 아이가 보여주는 짧은 만화 속 행태들이 영락없이 현대 젊은이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지면 공포심을 느끼고 액정이 깨지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이. 왠지 하루 종일 휴대폰 속에 빠져 사는 현재 대한민국 도시인들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가.


내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이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백날 묻고 다녀봤자 속시원히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이렇게 유용한 '참고서' 하나 읽어보는 것은 어떨는지. 내가 이 책을 통독하고 느낀 점을 한 줄로 요약해 보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간을 잘 다루는 사람이 삶의 주인이다'

한 권 사서 휘리릭 읽고 친구에게 줘도 좋고 한 권 더 사서 들고 다니다 생각날 때마다 펼쳐봐도 좋은 책이다. 혹시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이 책은 사랑 받을 가능성이 크다. 휴대폰 소녀 밈이 등장하는 만화 페이지만 대충 들춰보려고 펼쳤다가도 흥미롭고 공감가는 내용들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본문과 이어지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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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가 두려워질 때 나는 레이먼드 카바의 책을 펴서 "소설가가 그 근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구절 아래 그어놓은 밑줄을 확인하곤 한다. 만약 어떤 시대처럼 소설가가 지식인이고 스승이란면 나는 소설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에 있던 은희경의 단편집 [타인에게 말걸기]를 뒤적이다가 작가후기에서 발견한 글. 그렇다.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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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간성에 관한 일이고 인류의 미래에 관한 일이기에 민족감정 따위에 엮어 묶을 수 없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객관화해야 한다. 


'현상은 복잡하다. 그러나 법칙은 단순하다'라는 리차드 파인만의 말은 인생에서 뭔가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을 때마다 매번 유용한 지표가 됩니다. 일본인으로 태어나 일본 문화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극우 정치가나 제국주의자, 전범들을 미워했다는 황현산 선생의 스승. 황현산 선생은 웬디 셔먼 미국무부정무차관의 발언을 다루면서 과거 자신을 가르친 스승님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스승 같은 사람에겐 어떤 사안을 바라볼 때 그게 옳으냐 그르냐만 중요할 뿐 민족의 입장이나 개인적인 친분 등은 전혀 고려대상이 안 되기 때문이죠. 어때요, 참 간단명쾌하죠? 훌륭한 선생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제자 황현산은 이제 이렇게 이 시대의 좋은 '선생'이 된 것이겠지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0620541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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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Beatles의 'When I'm sixty four'라는 노래를 듣고 정말 대단한 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폴 매카트니나 존 레논 같은 천재가 어떻게 지구상에 존재했을까 하고요. 물론 산울림의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를 듣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음악적인 스타일은 물론 가사를 읽어봐도, 하다못해 TV나 영화의 연기자나 진행자로서도 이래저래 김창완은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잔인하고 뻔뻔한 천재가 아니고 늘 괴로워하고 허덕허덕 겨우 살아가는 '인간적인' 천재 말입니다. 이 노래 가사를 다시 한 번 가만히 음미해 보세요. 이런 게 바로 살아있는 철학이요 표현력 아닐까요. 저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김창완이라는 사람이 늘 부럽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VSxjEJ8eBU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살은 일곱살을 살지

내가 스무살이었을때 일천구백칠십년 무렵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뿐야


여자들은 여자들을 살고

남자들은 남자들을 살지

어린애는 어린애로 살고

어른들은 어른들로 살지

내가  일흔살이 들면 이천이십삽십년무렵

그날은 그날일거고 오늘은 오늘일뿐야


미리 알수있는건 하나없고

후회없이 살 수 있지도 않아

피할수있다면 피하고싶지만

다 겪어봐야 알수있는게있지

꿈이 자라나던 내 어린시절

내 꿈을 따먹던 청춘시절

이젠 꿈을 접어 접어 날려보낸다

묻어버린 꿈 위로 나비춤을 추네

꿈이 춤을 추네

나비 날아가네

꿈이 날아가네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살은 일곱살을 살지


꿈이 자라나던 내 어린시절

내 꿈을 따먹던 청춘시절

이젠 꿈을 접어 접어 날려보낸다

묻어버린 꿈 위로 나비춤을 추네


꿈이 춤을 춘다

나비 날아가네

꿈이 날아가네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살은 일곱살을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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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에 '철학담당 임원'이 따로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그러니까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의 하는 이유가, 세상을 보는 태도가 다른 거지요. 물론 그 사람이 부사장과 마케팅 임원을 담당했던 사람이라도 말이지요. 


파타고니아는 1973년 창업 때부터 기업 이윤보다 자사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자연을 지키는 데 신경써온 기업이고 진짜 그걸 실천함으로써 오히려 더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곳이니까요(참고로 여기는 사장이 직원들에게 근무 중에도 서핑을 하라고 등을 떠미는 회사입니다. 2005년에 회장이 펴낸 책 제목이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입니다. 참 좋은 내용인데 책 만듦새가 좀 아쉽습니다. 누군가 다시 한 번 편냈으면 좋겠습니다) .  


누군가 이본 쉬나드 회장에게 경영철학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모든 의사 결정은 지금부터 100년 뒤가 기준입니다.” 


정말 배포가 다르지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100100&artid=20150224212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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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역사상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이 곡이라는 외신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마침 은희경의 단편소설 '인 마이 라이프' 도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어느 겨울 신촌에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지루한 영화를 혼자 소리내어 울며 보던 여주인공이 3층에 있는 카페 '인 마이 라이프'를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손님 중 한 남자가 기타를 치며 비틀즈의 '인 마이 라이프'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세 번 목격하게 되는 이야기. 


내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소가 있지. 
어떤 곳은 변하고 어떤 곳은 영원하고 
어떤 곳은 사라지고 어떤 곳은 남아 있어도 
이 모든 장소는 그들만의 순간을 지니고 있네. 


이 모든 친구와 사랑하는 이들 중에서도 
당신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당신과의 사랑은 나날이 새로워
지나버린 추억들은 모두 의미가 없네 


함께 한 친구들 지나간 세월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네 
때로 걸음을 멈추고 그때를 생각하겠지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 뿐이라네
인 마이 라이프, 아이 러브 유 모어 


 은희경이 2001년에 쓴 이 수필 같은 소설 속에서 직접 번역한 '인 마이 라이프'의 가사입니다. 어때요, 난로가 빨갛게 타고 있는 그 카페에서 몇 명이 빙 둘러 앉아 작은 노래를 부르고 듣던 그 겨울이 기억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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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만든 스팸 문자 차단 앱 '후후(Whowho)'의 인터넷 광고입니다. 할인문자를 허위로 보내오는 스팸을 잡는다는 이야기를 "분위기 잡지 마, 후후한테 잡혔어!" 라는 카피로 재미를 준 작품인데 매체량이 별로 없어서 눈에 띄진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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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주식은 심심하다. 빵뿐 아니라 쌀밥, 감자, 옥수수가 그렇다. 매일,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심함이란 적당히 간을 하면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심심하다는 건 맛의 부재에 대한 서술이라기보다 맛의 풍부함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그건 우리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심심해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심심해야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심심함은 인생의 맛을 위해 비워 놓은 자리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짜고 맵고 시고 달고 쓰기만 하다. 심심한 때가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지난해 누적된 피로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또 바빠질 한 해를 헤쳐 나가려면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자고 새해 결심을 한다. 이미 지친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며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자고 이를 악문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을 위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07204917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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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던가, 시드니 셀던의 데뷔작인 [네이키드 페이스] 읽다가 깜작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 속에선 헐리우드에 입성한 무명 여배우가 스튜디오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꼬마 사환에게 어찌어찌 꼬투리를 잡히는 바람에 즉석 섹스를 하게 되는데, 꼬마가 '엉뚱한 삽입을 하려는 바람에 여배우가 매우 당황하는 장면이 있었죠. 알고보니 10 꼬마는 항문섹스를 즐기는 변태성욕자였던 것입니다


어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 투 더 스타(Maps to the stars)]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소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이 영화에 나오는 아역배우 벤지 때문이었죠. 벤지는 어렸을 때 출연했던 시트콤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지만 지금은 자기보다 더 어린 배우에게 밀려 초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열세 살짜리 소년입니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 그에게 뭔가 충고를 해주는 남자 매니저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언사("차라리 바지를 내리고 그 안에 든 보지를 보여주지 그래? 이 뚱땡이 게이새끼야!")로 앙칼지게 욕을 해대는 걸 보고 저는 그만 기가 질려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만나 권총을 뽑아들고 러시안 룰렛 흉내를 내다가 개를 쏘아 죽이는 아슬아슬한 장면은 정말 섬뜩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늘 집에서 가운 비슷한 옷을 입고 지내는 그의 표정이나 몸짓은 권태롭지못해 ‘데까당’ 하기까지 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이 지경입니다. 얼굴과 목에 화상 자국이 선명한 채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녀 애거서, 어렸을 때 엄마에게 당한 성적 학대를 잊지 못하며 늘 캐스팅에 대한 초조함에 시달리는 여배우 하바나, 아들 벤지의 약물문제와 일탈 때문에 늘 전전긍긍하는 크리스티나,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방화범 딸에게서 나머지 가족을 보호하고 심리치료사로서의 자신의 명성에도 누가 되지 않게 하려 애쓰는 샌포드까지. 이들이 벌이는 근친상간과 쓰리썸, 살인, 방화, 화형(태워 죽임) 등이 이 영화의 스토리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들은 걸핏하면 눈앞에 유령이 나타나는 신경쇄약증세까지 보이고 있죠.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처럼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들을 한꺼번에 모아 일렬종대로 전시해 놓고는 “여기 제정신인 사람이 어딨어? 하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비디오 드럼]이나 [플라이], [그래쉬] 같은 ‘신체변형’영화들을 거쳐 근작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러미스]로 어둡지만 품격 있는 신화의 세계를 직조해 내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왜 새삼 이렇게 적나라한 메타포에 달겨들었을까요. 


크로넨버그 감독은 이미 오래 전에 이야기를 완성해 놓은 작가 브르스 와그너의 시나리오를 보고 ‘헐리우드가 근친상간 관계로 유지된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문제를 극단적으로 풀어내기엔 헐리우드만한 무대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인 브르스 와그너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대로] 첫장면이 호화저택 풀장에서 빠져죽은 시나리오 작가의 대사로 시작되는 데서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등장 인물 중 애거서와 사귀면서 하바나와도 섹스를 하게 되는 제롬 역의 로버트 패틴슨이 리무진 운전기사로 나오는데, 시드니 셀던이 17살에 이미 허리우드에 들어와 각본가로 활동했던 것처럼 브르스 와그너도 젊었을 때 헐리우드에 와서 리무진 기사로 시작해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고 하죠.



이 영화는 일반인들은 도저히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들만의 정신세계’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 정치인들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정치란 원래 사람들의 삶을 이롭고 조화롭게 하기 위한 행위라지만 실제 정가는 정의보다는 거대한 욕망의 수레바퀴를 따라 굴러기기 때문입니다. 욕망 앞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데,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고,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수 없다,는 개 같은 삼단논법이 성립됩니다. 



멀쩡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모두 외롭거나 비정상인 사람들. 그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열연이 눈부십니다. 특히 칸느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안 무어의 변화무쌍한 연기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지만 그래도 막상 보고 다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출연하고 싶었던 영화에 먼저 캐스팅 되었던 동료 여배우가 갑자기 아들을 잃는 바람에 영화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슬퍼하는 척 하다가 곧바로 신이 나서 춤을 추는 장면이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될 것 같습니다. 그 장면에서 옆에 있던 미아 와시코브스카에게 같이 춤을 추라 명령하며 자신도 몸을 흔드는 장면은 정말 사악하고도 기괴하죠.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친한 친구들과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장면 바로 다음에 점프컷으로 그 멤버들이 쓰리썸을 하는 장면이 더 좋았습니다. 이상한 건 남자 배우도 그리 호색한으로 생기지 않았고 줄리안 무어의 동성 친구도 그냥 평범한 비즈니스 파트너나 오랜 친구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리썸을 한다는 건 그들의 평소 삶이 윤리적으로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서로가 공범의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 의문의 소녀 애거서 역을 맡은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재감 또한 무시무시합니다. 자신의 부모가 남매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애거서는 7 년만에 다시 가족 앞에 나타나 그들의 삶에 균열을 만듭니다. 약간 또라이처럼 보이는 보이시한 여자 역할을 미아 와시코브스카만큼 잘 소화해내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그림이 되는 특이한 배우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하 [스토커]에서도 마지막에 살인을 저지르는 역할이었는데 여기서도 마지막에 영화상 트로피로 줄리안 무어를 때려죽이는 역을 진짜 리얼하게 해냅니다. 그밖에도 벤지 역의 에반 버드도 천재인 거 같습니다. 마치 요즘 우리나라의 감초배우 안내상처럼 어느 영화에 나와도 제 역할을 다 하는 존 쿠삭을 보는 것도 즐겁구요.



헐리우드 뿐만 아니라 매스미디어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얘기이고 공감하는 명제 중 하나는 ‘연예인들은 부업을 해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인기라는 건 언제 시들어질지 모르는데 한 번 그 생활에 맛을 들이면 다른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지금도 기획사에서 또는 골방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이 땅의 수백 만 연습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오르려 했던 나무는 다름 아닌 ‘욕망의 나무’인데 그 나무 끝에는 뭐가 있을까요. 그게 찬란하고 달콤한 열매는 아닌 것 같다고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0억 원이 있으면 행복할까. 잘 나가는 스타나 CEO가 되면 행복할까.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는 삼성 이건희 가족들도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던데…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많아진다고 해서 마냥 심란하기만 한 영화는 아닙니다. 장면장면의 몰입도가 높고 배우들의 대사 구사력도 압권입니다. 일단 좋은 시나리오라서 그렇겠지요. 어쨌든 시간이 된다면 한 번 극장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제 술을 마시며 이 영화 생각을 다시 하다가 엉뚱하게도 줄리안 무어가 미아 와시코브스카게 맞아죽을 때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던 피투성이 트로피가 오스카였는지 골든글로브였는지가 궁금하더라구요. 뭐, 어느 쪽이라도 비참하고 씁쓸하긴 마찬가지겠지만 말입니다. (맥스무비에 실린 허남웅 기자의 리뷰에서 많은 내용을 참조해 썼습니다. http://m.maxmovie.com/news/news_view.asp?mi_id=MI010077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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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엔 연극을 한 편 보자고 전부터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 크리스마스에 선택한 작품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걸이가 언제나 옳아요]라는 창작극입니다.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연극을 보면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기드 모파상의 [목걸이], 그리고 안데르센의 [영감이 하는 일은 언제나 옳아요] 세 편을 묶어 한편의 뮤지컬로 만들었으니까요.  이 연극은 100% 노래만 하는 뮤지컬이 아니고 등장인물들이 라디오 공개방송을 진행하면서 잘 알려진 단편소설들을 극으로 재연해 보여주는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왜 이런 노래를 부르는지, 또 기왕의 단편소설이나 동화들이 현대에 와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고 작가나 연출자의 기획 의도도 명확히 알 수 있죠. 진행자와 초대손님들, 그리고 밴드가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따뜻하고 편안하게 진행되는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두 훌륭합니다. 소극장이라 배우들의 목소리나 동작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는 장점도 있구요. 뮤지컬 장면들의 화음도 뛰어납니다. 


무대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는 배우들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별로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닐 텐데 언제나 어딘가에선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한 것이죠. 이런 일은 취미삼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작년에 봤던 연극 [식구를 찾아서]의 배우와 스탶들이 다시 뭉친 연극이라 들었습니다. 그때도 참 재밌게 봤는데. 각본을 쓴 오미영 작가의 작품은 다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에 들어있는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이 연극은 12월 28일까지 대학로 아리랑소극장에서 계속 상연됩니다.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 사랑하는 사람과 연극을 한 편 보는 건 참으로 옳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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