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던가, 시드니 셀던의 데뷔작인 [네이키드 페이스]를 읽다가 깜작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 속에선 헐리우드에 갓 입성한 무명 여배우가 스튜디오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꼬마 사환에게 어찌어찌 꼬투리를 잡히는 바람에 즉석 섹스를 하게 되는데, 그 꼬마가 '엉뚱한 곳’에 삽입을 하려는 바람에 여배우가 매우 당황하는 장면이 있었죠. 알고보니 그 10대 꼬마는 항문섹스를 즐기는 변태성욕자였던 것입니다.
어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맵 투 더 스타(Maps to the stars)]를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소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역배우 벤지 때문이었죠. 벤지는 어렸을 때 출연했던 시트콤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지만 지금은 자기보다 더 어린 배우에게 밀려 초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열세 살짜리 소년입니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 그에게 뭔가 충고를 해주는 남자 매니저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언사("차라리 바지를 내리고 그 안에 든 보지를 보여주지 그래? 이 뚱땡이 게이새끼야!")로 앙칼지게 욕을 해대는 걸 보고 저는 그만 기가 질려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만나 권총을 뽑아들고 러시안 룰렛 흉내를 내다가 개를 쏘아 죽이는 아슬아슬한 장면은 정말 섬뜩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늘 집에서 가운 비슷한 옷을 입고 지내는 그의 표정이나 몸짓은 권태롭지못해 ‘데까당’ 하기까지 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이 지경입니다. 얼굴과 목에 화상 자국이 선명한 채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녀 애거서, 어렸을 때 엄마에게 당한 성적 학대를 잊지 못하며 늘 캐스팅에 대한 초조함에 시달리는 여배우 하바나, 아들 벤지의 약물문제와 일탈 때문에 늘 전전긍긍하는 크리스티나,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방화범 딸에게서 나머지 가족을 보호하고 심리치료사로서의 자신의 명성에도 누가 되지 않게 하려 애쓰는 샌포드까지. 이들이 벌이는 근친상간과 쓰리썸, 살인, 방화, 화형(태워 죽임) 등이 이 영화의 스토리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들은 걸핏하면 눈앞에 유령이 나타나는 신경쇄약증세까지 보이고 있죠.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처럼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들을 한꺼번에 모아 일렬종대로 전시해 놓고는 “여기 제정신인 사람이 어딨어? 하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비디오 드럼]이나 [플라이], [그래쉬] 같은 ‘신체변형’영화들을 거쳐 근작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러미스]로 어둡지만 품격 있는 신화의 세계를 직조해 내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왜 새삼 이렇게 적나라한 메타포에 달겨들었을까요.
크로넨버그 감독은 이미 오래 전에 이야기를 완성해 놓은 작가 브르스 와그너의 시나리오를 보고 ‘헐리우드가 근친상간 관계로 유지된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문제를 극단적으로 풀어내기엔 헐리우드만한 무대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인 브르스 와그너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대로] 첫장면이 호화저택 풀장에서 빠져죽은 시나리오 작가의 대사로 시작되는 데서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등장 인물 중 애거서와 사귀면서 하바나와도 섹스를 하게 되는 제롬 역의 로버트 패틴슨이 리무진 운전기사로 나오는데, 시드니 셀던이 17살에 이미 허리우드에 들어와 각본가로 활동했던 것처럼 브르스 와그너도 젊었을 때 헐리우드에 와서 리무진 기사로 시작해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고 하죠.
이 영화는 일반인들은 도저히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들만의 정신세계’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 정치인들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정치란 원래 사람들의 삶을 이롭고 조화롭게 하기 위한 행위라지만 실제 정가는 정의보다는 거대한 욕망의 수레바퀴를 따라 굴러기기 때문입니다. 욕망 앞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데,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고,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수 없다,는 개 같은 삼단논법이 성립됩니다.
멀쩡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모두 외롭거나 비정상인 사람들. 그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열연이 눈부십니다. 특히 칸느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안 무어의 변화무쌍한 연기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지만 그래도 막상 보고 다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출연하고 싶었던 영화에 먼저 캐스팅 되었던 동료 여배우가 갑자기 아들을 잃는 바람에 영화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슬퍼하는 척 하다가 곧바로 신이 나서 춤을 추는 장면이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될 것 같습니다. 그 장면에서 옆에 있던 미아 와시코브스카에게 같이 춤을 추라 명령하며 자신도 몸을 흔드는 장면은 정말 사악하고도 기괴하죠.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친한 친구들과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장면 바로 다음에 점프컷으로 그 멤버들이 쓰리썸을 하는 장면이 더 좋았습니다. 이상한 건 남자 배우도 그리 호색한으로 생기지 않았고 줄리안 무어의 동성 친구도 그냥 평범한 비즈니스 파트너나 오랜 친구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리썸을 한다는 건 그들의 평소 삶이 윤리적으로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서로가 공범의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 의문의 소녀 애거서 역을 맡은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존재감 또한 무시무시합니다. 자신의 부모가 남매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애거서는 7 년만에 다시 가족 앞에 나타나 그들의 삶에 균열을 만듭니다. 약간 또라이처럼 보이는 보이시한 여자 역할을 미아 와시코브스카만큼 잘 소화해내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그림이 되는 특이한 배우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하 [스토커]에서도 마지막에 살인을 저지르는 역할이었는데 여기서도 마지막에 영화상 트로피로 줄리안 무어를 때려죽이는 역을 진짜 리얼하게 해냅니다. 그밖에도 벤지 역의 에반 버드도 천재인 거 같습니다. 마치 요즘 우리나라의 감초배우 안내상처럼 어느 영화에 나와도 제 역할을 다 하는 존 쿠삭을 보는 것도 즐겁구요.
헐리우드 뿐만 아니라 매스미디어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얘기이고 공감하는 명제 중 하나는 ‘연예인들은 부업을 해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인기라는 건 언제 시들어질지 모르는데 한 번 그 생활에 맛을 들이면 다른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지금도 기획사에서 또는 골방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이 땅의 수백 만 연습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오르려 했던 나무는 다름 아닌 ‘욕망의 나무’인데 그 나무 끝에는 뭐가 있을까요. 그게 찬란하고 달콤한 열매는 아닌 것 같다고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0억 원이 있으면 행복할까. 잘 나가는 스타나 CEO가 되면 행복할까.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는 삼성 이건희 가족들도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던데…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많아진다고 해서 마냥 심란하기만 한 영화는 아닙니다. 장면장면의 몰입도가 높고 배우들의 대사 구사력도 압권입니다. 일단 좋은 시나리오라서 그렇겠지요. 어쨌든 시간이 된다면 한 번 극장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제 술을 마시며 이 영화 생각을 다시 하다가 엉뚱하게도 줄리안 무어가 미아 와시코브스카에게 맞아죽을 때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던 피투성이 트로피가 오스카였는지 골든글로브였는지가 궁금하더라구요. 뭐, 어느 쪽이라도 비참하고 씁쓸하긴 마찬가지겠지만 말입니다. (맥스무비에 실린 허남웅 기자의 리뷰에서 많은 내용을 참조해 썼습니다. http://m.maxmovie.com/news/news_view.asp?mi_id=MI0100775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