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1243.html



김훈이 쓰면 '추석 에세이'도 이렇게 다르다. 뭐 꼭 이 글이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글엔 기자들의 의무감과 클리쉐가 만들어내는 한가위의 풍성함이나 가족애에 대한 기대따위는 없다. 서울이 고향인 김훈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향수 대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경복궁으로 생각의 물꼬를 튼다. 임금이 도망가자 격분하여 경복궁을 불태웠던 백성들, 그리고 돌아와서 전소된 성터를 끼고 앉아 그냥 살았던 당시 지도층과 지식인들.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를 생각하던 김훈은 어린 시절 더러운 하천이 흐르던 자신의 동네를 회상한다. 박완서의 <그남자네 집>이 있던 바로 그 동네였고 박수근의 <빨래터>라는 그림보다 더 비참하고 고단했던 고향의 모습이다. 뼛속까지 리얼리스트인 그는 "나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읽을 때마다 내 고향의 저 더러운 하천을 생각한다."라고 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눈은 1592년의 경복궁 방화, 2008년의 남대문 방화, 2009년의 용산참사로까지 이어져 머문다.


한가위라고 갑자기 고향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명절이라고 냉랭하던 가족관계가 갑자기 살가워지는 게 아니듯이. 이래저래 난 명절이 싫다. 일년에 큰 명절이 두 번 있고 내 나이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50세니 평생 백 번 가까이 명절을 싫어하면서 살아왔구나. 올 명절도 술이나 마시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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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소설 [하얀전쟁]에는 베트남 전쟁터 후방에서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던 정훈병들이 정신교육 시간에 대한뉴스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엔 단지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만으로 다들 배꼽이 빠지도록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조금만 내용을 뒤집거나 주인공의 설정을 살짝만 바꿔도 이상하게 새로운 재미가 생겨난다.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는 '바람둥이'라는 주인공 설정을 남자 대신 여자로 바꿈으로써 색다른 재미와 깊이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바람둥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 뭘까. 바로 거짓말이다. 무용을 전공한 배우 지망생 은희는 연기 선생한테는 표정이나 대사가 뻣뻣하다고 야단을 맞지만(연극과 영화에서 맹활약 중인 이승연 배우가 연기 지도선생으로 나온다) 실생활에서는 남자들에게 아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잘 한다. 거짓눈물을 순식간에 흘리는 것은 물론이고 말하는 톤도 상대와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자신이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길을 물어온 일본 소설가 료헤이에게는 자신이 '거짓말 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며 자랑까지 하니 말이다.

료헤이와 헤어진 은희는 남자친구인 현오를 만나기 위해 남산으로 간다. 아침드라마에 출연하는 주제에 썬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약속장소에 나타난 현오를 비웃는 은희. 차라리 모텔에서 옷 다 벗고 있을 때가 더 멋있다는 농담을 날리자 현오는 자기가 데려간 곳은 모텔이 아니라 '부티크 호텔'이라며 화를 낸다. 남자친구라고는 하지만 서로 완전히 믿지는 못하는 사이라는 게 금방 드러나는 허약한 장면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소한 말실수로 크게 싸우고 헤어진 은희는 혼자 남산 벤치에 앉아 사진을 한 장 찍어 무심코 트위터에 올리는데 그걸 보고 냉큼 운철이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은희와 사귀었던 이혼남이다. 은희는 그 남자와 커피를 마시다가 결국 이혼한 전 부인과 다시 합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격렬하게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 이 영화는 하룻동안 북촌과 남산을 오가며 세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은희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문제는 은희가 두 남자 사이에서 연기를 펼치다가 어느 순간 딱 셋이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도 하루 종일 오가던 남산 산책로에서. 현오와 운철은 서로 자기가 진짜 남자친구, 또는 더 오래된 남자친구라고 우기다가 그동안 은희가 자기들에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양다리를 걸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희는 미칠 지경이다. 자기도 도무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모순된 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나의 모순됨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다니. 정말 아까 연기 지도선생과 함께 연습하던 대사처럼 하나님이 내게 오늘 최악의 하루를 주기로 아주 작정을 하신 모양이구나.

화가 난 현오와 운철은 졸지에 피해자 연합으로 의기투합해 내려가서 소주나 마시자고 한다. 가기 전에 현오가 "너는 거기서 그냥 땅 파고 뒈지시던가"라고 모진 소리를 내뱉지만 달리 할 말이 없는 은희는 "어, 그럴게."라고 대답할 뿐이다.

나는 사실 한예리처럼 별로 예쁘지도 않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여자는 좀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은희역으로 한예리 이외의 배우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딱 맞는 옷이다. 같은 여자 바람둥이라도 홍상수 감독이 만든 [우리 선희]의 정유미는 남자들이 더 설쳐서 저절로 그렇게 된 수동형 바람둥이이라면 이 영화의 은희는 스스로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능동형 바라둥이라 더 통쾌하고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 그리고 한예리는 이와세 료와 영어 연기를 펼치는데 그게 아주 자연스럽고 좋다. 한 마디로 연기를 참 잘하는 똑똑한 배우인 것이다.

적은 예산 때문이겠지만 이 영화는 한예리, 권율, 이희준, 이와세 료 뿐 아니라 남산의 산책로와 서촌의 골목길도 어엿한 주인공으로 엔딩 크레딧에 오를 만하다. 솔직히 김종관의 예전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핸드헬드가 난무하는 바람에 보다가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카메라가 매우 안정적이고 정적인 화면들이 아름다워서 아주 놀라웠다.

적은 예산 덕분에 하룻동안 벌어진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었는지는 몰라도 연기와 극본, 카메라까지 좋은 영화라 누구에게든 한 번 보라고 자신있게 권할 만하다. 게다가 제목은 '최악의 하루'지만 영화 말미엔 이와세 료와의 마지막 대사들을 통해 어렴풋이 해피엔딩을 암시하고 있기까지 하다. 아마 그래서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한 주가 저물어가는 금요일 저녁쯤에 보면 최적일 영화'라고 썼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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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들에게 가장 큰 애증의 대상은 누구일까. 아마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 없이 전해준 스승, 그리고 걷는 법부터 시작해 창작의 방법론까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다시 배운 제자. 서로는 너무나 잘 아는 사이이면서도 주종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애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제자들에게는 제 스승을 넘어서야 하는 무의식적인 의무감까지 있다. 흔히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스승을 존중하고 어려워하는 말로 해석하지만 사실은 스승이 이룩한 길을 피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애증의 결정판 같은 이야기가 있다. 토종 연극 <도둑맞은 책>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을 쓸 정도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가 된 서동윤은 어느 날 자신의 보조작가였던 조영락에게 납치를 당한다. 영락은 스승의 방과 똑같이 꾸민 곳에 그를 집어넣고 최소한의 음식과 커피만 제공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쓰라고 위협한다. 주제는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살인을 하고 그의 작품을 훔친다'이다. 동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게 다 무슨 미친 짓인가 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제자에게 욕을 하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휠체어에 자신의 두 팔을 결박한 채 골프채를 휘두르며 달겨드는 영락을 본 후로는 쉽게 웃을 수 없게 되었다. 자, 좋든 싫든 살기 위해선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어디서 많이 본 얘기라고? 그렇다. 모티브만 놓고 보면 캐시 베이츠가 출연했던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미저리>가 떠오른다. 그러나 모티브는 비슷해도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에 각 작품이 도달하는 위치는 사뭇 다르다.


이 연극은 원래 영화를 위해 씌여진 글(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심리 드라마'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한 '미저리'를 생각하면 이 컨셉은 스릴러나 심리 드라마로서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없이 글을 쓰던 서동윤이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자신의 시나리오에 애착을 갖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영락과 함께 '좋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진정으로 고민하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급속도로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시나리오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기는 플래시백을 통해 맨 처음 수업 시간에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 작가가 누구인가를 묻는 장면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영화지식 겨루기'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오타쿠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즐거운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동윤을 위협하면서 예전 스승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지금 동윤이 쓰는 시나리오에 적용시키며 비웃는 영락, 그리고 그에 맞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동윤. 이 연극은 어쩌면 그런 두 남자의 불꽃 튀는 화학작용이 가장 큰 '스펙터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장르적 분류는 작가를 위협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글을 쓰게 하는 미친 팬심 스릴러 <미저리>보다는 기존 공포영화의 온갖 룰들을 들먹이며 가지고 놀던 <스크림>의 악동들 쪽에 더 가까운 듯하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객석을 둘러보니 오른편 뒤쪽에 배우 송영창이 혼자 앉아 있었다. 더블 캐스팅 중인 배우가 다른 팀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며 자신의 대사도 한 번 더 점검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날 밤 연극이 끝나고 서동윤 역을 맡은 박호산 배우와 술을 한 잔 하며 들어보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캐스팅 중 송영창 박용우 팀은 '클래식'에 가깝고, 자기네팀은 '재즈' 분위기를 내기로 해서 똑같은 연출가와 각본이라도 아주 다른 연극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고 한다. 욕심 같아서는 다른 팀의 공연도 한 번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내가 뭐 평론가도 아니고 또 그렇게 시간을 낼 자신도 없다. 사실은 그날도 갑자기 업무가 길어지는 바람에 야근하는 동료들을 놔두고 혼자 도망치듯이 뛰쳐나와 겨우 관람한 연극이었으니까.


얼마 전 성북동으로 이사를 와서 새로 생긴 이웃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박호산 배우였다(도대체 우린 이게 무슨 인복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같이 연극을 본 아내는 박호산 배우가 '너무도 능글맞게 연기를 잘 하는 바람에 무대 위로 달려가서 머리를 한 대 탁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하며 웃었다. 노련하고 안정감 있는 배우와 연출의 힘이 균형감 있게 느껴지는 흐뭇한 공연이었다. 다만 소극장이라고 하기엔 공간이 약간 크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소극장 공연은 관객이 바로 옆에서 피부로 느끼는 맛도 있는 법인데 말이다. 


9월 1일부터 25일까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있는 충무아트센터 블루에서 만날 수 있다. 한가위 연휴 빨간날들 중 하루 골라서 이 연극을 한 번 보시는 건 어떨까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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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광고 얘기를 좀 해야겠네요. 바로 겐조가 새롭게 내놓은 향수 '겐조 월드' 캠페인입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 〈Her〉 등을 연출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작품인데, 한 마디로 기존의 향수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광고주의 생각이 웬만큼 열려 있지 않다면 시도하기도 힘든 작업입니다. 저도 페이스북으로 처음 보고 놀랐는데 인터넷을 조금 찾아보니 본 사람들마다 모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더군요. 


제가 잘 아는 감독님의 소개글에서 "예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만들고 크리스토퍼 월큰(Christopher Walken)이 출연한 Fatboy Slim의 Weapon of Choice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같은 감독이 연출. 그의 동생 Sam Spiegel이 작곡한 Mutant Brain을 OST로 사용했으며 동시에 곡의 뮤비이기도 하다"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밑의 URL을 누르시면 유투브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GmNwbWRKs



파티장에서 멀쩡하게 연설을 듣고 있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울먹이며 밖으로 뛰쳐나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고 기괴하게 몸을 비틀면서 춤을 추는 이 광고, 확실히 뭔가 이상하고 충격적입니다. 조각상을 핧질 않나 경호원을 때려눕히질 않나, 하는 짓마다 이브닝드레스를 차려 입은 예쁜 여주인공이 하긴엔 굉장히 '또라이'스럽습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성을 위한 향수'라는 ‘Kenzo World’의 컨셉을 스파이크 존즈 감독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결과랍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계시는데,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이런 광고야말로 분석하는 대신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감독도 감독이지만 연기를 한 여배우도 참 대단힌 것 같아요. 마가렛 퀄리(Margaret Qualley)라는 친구네요. 그리고 이 친구를 이 이상한 음악에 맞춰 미친 듯 춤추게 만든 사람은 가수 시아(Sia)의 〈샹들리에(Chandelier)〉 뮤직비디오의 안무를 연출한 라이언 헤핑턴(Ryan Heffington)이랍니다. 




겐조는 신제품을 내면서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보죠. 나이키 제품을 입거나 신는 사람은 왠지 그냥 승부에만 집착하는 대신 스포츠맨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 어디에선가 그걸 구현하고 있는 인간처럼 보입니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느껴지구요. 겐조도 자사의 제품을 쓰는 여성들에게 '난 굉장히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살고 그걸 즐기면서도 원할 땐 언제든 그곳에서 과감히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기질을 가진 사람이야' 이라는 포지셔닝을 선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만약 맞다면 이게 바로 우리가 자주 말하는 '브랜딩'이라는 것일 테고요. 


‘Kenzo World’ 공식 홈페이지(www.kenzoworld.com/en)에 가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고 음악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화면 오른쪽 아래 그녀의 익살스런 표정들이 시시각각 바뀌는 디테일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홈피에도 한 번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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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옆집 남자가 지나간다. 늘 비슷한 표정에 약간 수수한 옷차림을 한 평범한 남자다. 뭐 하는 사람일까. 애가 하나나 둘 정도 있는 것 같고 그냥 회사원이 듯 보인다.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한밤중에 다투는 소릴 듣지 못한 걸 보니 가정 문제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냥 소심하게 집과 회사를 왔다갔다 하고 주말이면 하루 종일 밀린 잠이나 쳐자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아재'겠지 뭐.


그런데 만약 이 아저씨가 알고 보니 아마존을 안방 드나들듯 하는 '직구족'이고 해외와 국내를 가리지 않는 여행광에 고양이를 사랑하는 낭만파라면? 심지어 집에서 멸치육수를 만들어 때때로 국수도 삶아먹고 김치찌개도 끓여내는 요섹남에 SNS와 블로그로 젊은이들과도 자유자재로 소통하는 네티즌이라면?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 소리다. 에이, 지가 무슨 차승원도 아니고. 옆집에 무슨 그런 수퍼맨이 살아?


 

이경수의 신작  에세이 <옆집남자가 사는 법>은 그런 수퍼맨이 옆집에 사는 것도 모자라 자기집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그런 '수퍼맨스러운' 일들을 매일 수행하며 살고 있노라고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생활백서다. 말하자면 이건 이름조차 평범한 이경수라는 50대 초반의 대한민국 남자가 어떻게 평범한 아재에서 수퍼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이경수는 말한다. 품안의 아이들도 어느덧 다 컸고 평생을 따라다니던 생계 걱정도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나 자신은 어디 가고 텅빈 껍데기만 남은 듯 공허해지더라. 아, 그동안 나는 무얼 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억울하다. 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을 위해 살 순 없을까. 


저자는 조금 엉뚱하게도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그 답을 찾았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 가진 커플을 꼽는다면 단연 용이와 월선이일 것이다. 이어질 만하면 다른 여자가 끼어들고 맺어질 만하면 다른 사건이 끼어들어 끝내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던 두 사람.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두 남녀. 그런 월선이 암에 걸려 용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려 한다. 친엄마도 아닌 월선을 끔찍이 따르던 아들 홍이는 죽어가는 월선을 챙기라고 제 아비를 닥달하지만 산판에만 머물며 꿈쩍도 안 하던 용이는 월선이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뒤에도 한참 후에야 그녀를 찾아가 '츤데레 화법'으로 묻는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눈물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경수는 바로 이 장면에서 보통 독자와는 사뭇 다른 걸 캐치해낸다. 난데없이 '여한'이라는 단어가 날아와 뇌리에 콱 박힌 것이다. 그래, 나도 생의 마지막을 맞을 때 누가 "니 여한이 없제?" 하고 물으면 "그래, 아무 여한도 없다"하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면 자기가 먼저 미련 갖지 않도록 여한이 없이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자동으로 미쳤다. 


행복을 위한 첫 번째 실천으로 그는 쇼핑에 나선다. '아마존 직구'를 통해 50인치 LED TV를 구입하기에 도전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각종 후기를 읽고 동호회에 가입하고 까다로운 해외 약관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제품이 도착한 뒤 마지막 '로컬 변경'까지. 처음 직구에 성공한 저자는 신이 나서 'Made in Germany' 압력밥솥을 구입해 부인에게 선물한다. 당장 가장으로서 아빠로서의 주가가 올라간 것은 물론이다. 



이경수는 이런 식으로 '여한이 없이' 세상을 즐기는 방법을 자신만의 '7가지 행복 동사'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쇼핑하다', '키우다', '홀로 서다', '운동하다', '추억하다', '여행하다', '소통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외출 하기 전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쉬운 것부터 하면 된다. 고양이 키우기에 메말랐던 감성이 훌쩍 자라기도 하고, 빨래나 청소도 제대로 하면 없던 재미와 보람이 생길 수도 있다. 걷는 일도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디테일'을 느끼며 걸으면 세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마음에 맞는 동성 친구들과의 정기적인 여행은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정신적 휴식과 풍요를 선물한다. 



10년 전 <마흔의 심리학>을 통해 대한민국 40대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넸던 작가 이경수가 이번에도 특유의 쉽고 편안한 글로 50대 남자들을 위한 저작을 내놓았다. '50대에 해야 할 몇몇 가지' 같은 성공처세술 책에 지친 우리에겐 이런 된장국 같이 순하고도 밀도 높은 인생 안내서가 필요했다. 지금 서점에 가서 당장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시라. 이 사람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군,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얘기들이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테니. 



(마지막으로 저자의 가족들이 유럽 여행을 갔을 때의 한 단락을 인용하며 리뷰를 끝내고 싶다. 여행지에서의 여유와 즐거움이 흠뻑 묻어나는 흐뭇한 문장들이라 굳이 소개하고 싶어서 그런다)



캠핑장 중에는 수영장이 있는 곳도 많았다. 유난히 지치는 날은 돌아다니는 걸 그만두고 하루 종일 캠핑장에서 놀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책을 읽고, 그것도 지겨우면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스페인의 이름 모를 마을에 있는 캠핑장 수영장은 유난히 물이 깊었다. 수영장 일부 구역은 내 키를 훌쩍 넘었다. 처음엔 얕은 곳에서 놀다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아이들과 잠수한 뒤 숨을 누가 오래 참는지, 돌 하나를 빠뜨려놓고 누가 먼저 찾아오는지 내기를 하며 놀았다. 그곳 날씨는 살이 익을 듯 햇살이 뜨거웠지만 습기가 없어 그늘이나 물속에 들어가면 서늘했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입술이 새파래질 때까지 놀다가 밖으로 나와 뜨거운 햇빛에 몸을 데웠다. 그리고 또다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올려다 본 하늘이 파랗게 흔들리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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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오디오를 켜 말로의 앨범을 틀어놓고 현관앞에 앉아 책꽂이에서 충동적으로 꺼내온 김훈의 <바다의 기별>을 펼쳐들었다. 책을 열자 여기저기 파란색 볼펜으로 쳐놓은 밑줄과 메모들이 보였다.

딸이 첫 월급을 받아 휴대폰을 사주고 용돈으로 15만 원을 주었을 때 김훈은 '노동과 임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딸'을 쳐다보며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라고 썼고 나는 그 귀퉁이에다 “좀 대견했다고 쓰면 어디가 덧나냐”라고 끼적이고 있었다. 김훈이 친구들과 술 마시는 자리에서 엉뚱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소방장비들의 기능과 작동방식에 대해 늘어놓다가 핀잔을 받는 장면에다가는 “데뷔작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얘기는 왜 안 하냐”라고 또 시비를 걸고 있었다. 

‘70년대의 기라성 같은 청년작가 김승옥이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발표했을 때, 아버지는 문인 친구들과 함께 우리 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그들은 모두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다…새벽에 아버지는 “이제 우린들 시대는 이미 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라는 문단을 읽으면서 문단에서 김승옥이라는 작가의 등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었는지를 새삼 느꼈고 그게 가능했던 매체 환경과 감수성을 부러워했다. 


그러다가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아직 김지하의 정신이 말짱하다 못해 푸른 대나무처럼 빛나고 있을 때였고 스물일곱 살의 청춘인 김훈이 신문기자로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영등포 교도소에서 김지하와 백기완 등 정치범들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다들 교도소문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었으므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중국집에서 배달 온 식은 짬뽕국물을 마시며 교도소 안으로 전화를 걸어 “야, 풀어주려면 제발 지방판에 맞춰서 풀어주라. 지방 독자는 사람이 아니냐”라고 욕설을 퍼붓던, 그 스산하고 춥고도 지루한 풍경. 

그때 김훈은 교도소 정문 맞은편 야트막한 언덕에서 웬 허름한 여인네가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채 추위 속에 웅크리고, 저물어가는 교도소 정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혹시 박경리가 아닐까 하고 다가가 훔쳐보니 김지하의 장모 박경리 선생이 맞았다. 대절한 택시를 옆에 세워놓고 태어난지 10개월 된 손자를 어르며 언제 나올지 모르는 김지하를 기다리고 있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 김훈은 운좋게도 혼자 박경리를 알아보았지만 그렇다고 기자들을 향해 “여기 박경리 왔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밤 아홉 시께 옥문이 열리고 머리를 박박 깎은 김지하가 나타났다. 고은, 천승세, 조태일, 김광협 들이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고, 학생들이 김지하를 무등 태워서 캄캄한 교도소 앞 광장을 미친 듯이 달리며 고함을 질렀다. 김지하는 장모가 와있는지도 몰랐으므로 아무 생각도 겨를도 없이 그들의 지지자들이 마련한 승용차를 타고 교도소 앞을 떠났다. 

다른 기자들은 대부분 김지하의 승용차를 따라 명동성당으로 가버린 뒤 김훈은 김지하 출감 기사를 먼저 신문사에 전화로 송고하고 백기완이 나오기를 또 기다렸다. 밤 열한 시쯤 드디어 백기완이 나오게 되었는데 교도소측에 의하면 6년 전 백기완이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벌금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어서, 그 벌금 십만 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석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즉석에서 모금이 시작되었으나 이미 사람들이 대부분 떠난 후라서  제대로 모금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교도소 정문 앞 광장에 내려온 박경리가 포대기 앞섶을 뒤적거리더니 만 원짜리 몇 장을 내놓고 대학생에게 이 돈을 보태라 말하고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기자의 신분으로 모금에 참가할 수 없어 주머니 속에 있는 만 원짜리 몇 장을 만져보고만 있었던 김훈은 마지막이 이렇게 썼다.

그날 밤 나는 신문사로 돌아가 마지막 기사를 작성했다. 나는 박경리에 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나는 다만 백기완의 출소 모습만을 추가로 썼다. 나는 박경리에 관하여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쩐지 그것이 말해서는 안 될 일인 것만 같았다. 새벽 두 시께 집으로 돌아와 잠자다 일어난 아내에게 그날의 박경리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내는 울었다. 울면서 “아기가 추웠겠네요”라고 말했다. 춥고 또 추운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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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함정임은 예전에 경향신문의 칼럼에서 "성인 남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 쓰기의 표현 욕망과 지면(紙面)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킨 매력적인 직종이 존재했다. 바로 신문 기자였다." 라고 하면서 "일찍이 그것을 터득한 기자 출신 작가가 20세기의 헤밍웨이, 카뮈, 김훈이고, 오늘의 장강명이다." 라고 쓴 적이 있다.


과연 장강명을 헤밍웨이나 카뮈에까지 견줄 수 있을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요즘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한겨레문학상 발표 즈음에서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이제 장강명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데 데뷔작인 [표백]을 읽을 때만 해도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진 않았다. 그런데 한참 뒤에 강남구청역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우연히 [뤼미에르 피플]이라는 단편집을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샀다. 누군가 사서 한 페이지도 읽지 않고 되판 게 분명한 그 '헌책'엔 미카엘 엔데의 단편집이나 토마 귄지그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에 나올 법한 - 이책을 내게 빌려 준 진희 누나, 아직 내가 잘 가지고 있다오. 언제 돌려주러 꼭 갈게 - 재미있고 낯선 단편들이 그득했다. 그리고 근 일 년 새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열광금지 에바로드> 등 그의 소설들을 몇 권 더 읽었다. 


그의 소설은 어떤 것은 기획기사 같았고 어떤 것은 르포 같았으며 또 어떤 것은 새로운 문체를 시도하는 예술가의 작품처럼 보였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잘 읽히고 나름대로 재미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지런한 작가라는 신문기자나 평론가들의 평 또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 될 정도로 그는 열심히 쓰고, 쓴 날짜와 글의 양을 엑셀에 기록하고 그 성실성을 연료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굵직굵직한 공모전들을 좇아다니며 상금을 획득했다. 소설가라는 지위를 폼 잡는 엔터테이너나 고뇌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철저한 생활인으로 포지셔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이요 결과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에세이집을 냈다. 제목은 <5년 만에 신혼여행>.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갔다 온 3박5일간의 기록이다. 제목만 들으면 뒤늦게 신혼여행을 갔다 온 어느 커플의 알콩달콩 여행기일 것 같지만 장강명이 그렇게 알록달록하기만한  글을 쓸 리가 없다. 물론 소재가 신혼여행이니 어떻게 아내를 만나고 연애했는지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결혼 전의 에피소드들, 작가가 되기 전의 고군분투들이 재밌다. 그리고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틈틈이 펼쳐지는 결혼식에 대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화해에 대한, 직장생활과 꿈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들이 드러나는 대목들이 흥미롭다. 역시 장강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장강명은 실용주의자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 에둘러 가느라 글의 양을 늘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주장을 기술한 부분들은 직접 옆에서 귀로 듣는 것처럼 명료하고 통쾌하다. 그런데 정작 여행지에 가서 관광을 하고 음식을 사 먹고 한 부분은 별 재미가 없다. 아마도 여행지가 긴장감이나 새로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보라카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원래 계획했던 터키 이스탄불이나 일본 대신 거길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다. 가난한 부부의 형편에 맞게(또는 늘 비용 대비 효용으로 고르던 그 커플의 버릇대로) 고르다 보니 거기가 된 것일 뿐. 두 사람이 어찌나 싸구려 상술과 바가지 요금에 시달렸던지 마지막엔 둘 다 "이 놈의 보라카이..." 하며 이를 간다. 그러나 상관 없다. 우리는 보라카이라는 나른한 관광지 덕분에 소설가 장강명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대충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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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택시

길위의 생각들 2016. 8. 19. 13:54



야근을 하고 열두 시 넘어 택시를 타고 오면서 기사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마흔일곱 살에 뒤늦게 결혼을 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자긴 서른넷에 하면서도 늦게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결혼한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며 웃는다. 다시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저희는 아이 없이 살 거니까 둘이서만 재밌게 살다 깨꾸닥 죽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했더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저는 어머니가 삼 년을 꼬박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아파트 한 채를 병원비로 다 쓰고 가셨어요. 근데 그 뒤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이게 복귀가 안 되네...'라고 말하는 기사 아저씨. '저는 어머니가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게 정말 가슴 아팠는데' 라고 말하는 나. 


이미 택시기사와 손님이라는 관계를 망각한 우리는 죽을 때 돼서 금방 죽는 것도 복이라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얘기가 흘러간다. 아저씨는 행여 자신이 죽기 전에 오래 아프거나 치매 같은 거 걸려서 자식들에게 폐라도 끼칠까봐 그게 걱정이라고 한다. 나도 우리 부부 둘이 재밌게 살다가 같이 죽는 게 바람이라고 소원을 얘기한다. 


앞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겐 인도적인 안락사나 자살 같은 방법은 좀 열어놔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데까지 얘기했을 때 택시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 알아서 잘 죽읍시다' 라는 이상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밤 12시 52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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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아Q정전]은 ‘아Q'라는 이름도 불분명한 개망나니를 내세워 근대 제국주의 앞에서 쩔쩔매는 중국인들의 내적 모순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다. 그냥 남들이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니까 의무적으로 읽은 것이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어쩌다 친구와 이 작품 얘기를 하다가 “야, 근데 아Q 그 새끼는 착하지도 않잖아. 뭐가 불쌍해.” “아유, 그러게. 아Q는 잘 죽은 거야.” 같은 소리를 서로 주고받은 기억이 난다. 

김애란의 단편집 [비행운] 중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아Q 정전]이 생각났다. 택시 기사인 용대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멸시와 홀대를 받고 살아온 인물이다. 어느 집안에나 꼭 한 명씩은 존재하는 천덕꾸러기. 그런데 그 이유는 다 용대 자신의 처신 때문이다. 자기 형이 두부공장 하다가 말아먹고 도망 다닐 때 형을 좀 찾아봐 달라는 형수에게 용대는 오토바이 기름값을 달라고 했다가 욕을 먹었다. 누가 취직을 시켜줘도 진득하게 붙어있질 못하고 때려치우는 게 다반사인 성격이고 하다못해 형수가 밭애서 고추를 따고 있을 때도 종일 툇마루에서 기타를 치고 놀던 인사였다.

그런 인간이 기사식당에서 일하던 조선족 여자 명화에게 반했다. 어렵게어렵게 같이 외식을 하고 프로포즈를 하고 결국 결혼까지 했다. 언제가 중국에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명화는 암에 걸려 죽어버렸다. 용대는 명화가 죽은 후에도 쉬는 시간이면 괜히 중국어 회화 테이프를 틀어놓고 택시 안에서 따라한다.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 입니까.” 테이프에서 명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 쩌리 위안 마?” “여기서 멉니까?” 


김태용의 영화 [만추]에서 탕웨이가 오지 않는 현빈을 기다리며 “It’s been a long time...”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던 장면이 떠오르는 엔딩이다. 아Q처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심지어 그에게 애정까지 품는 것이 문학의 위대함이 아니겠느냐고 쓴 글을 얼마 전에 읽은 기억이 난다(박웅현의 책이었던가). 그렀다면 그 얘기는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도 적용된다고 나는 믿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우리 주변엔 잘 쓰는 작가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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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Ars Lunga Vita Brevis"를 한국인들은 대부분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로 번역한다. 그런데 원래 라틴어로 'Ars'는 그냥 '일'을 뜻하기 때문에 제대로 번역하면 "일 하나 똑바로 배우려면 평생 해도 모자란다"이다. 이론이 전부라면 이런 말이 나올 리 없을 것이다.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 것이란 실패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아주 느린 과정이라는 것을 고대 그리스의 한 의사가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 조승연의 <비즈니스 인문학> 중에서 



사무실에서 무심코 예전에 샀던 책을 들춰보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히포크라테스가 왜 의술이 아닌 예술에 대해 얘기했을까, 그리고 의사가 내뱉은 예술 얘기가 왜 이렇게 오래도록 후손에게 전해졌을까 한 번 의심해볼 만도 했었는데. 예전엔 'Art'가 그냥 아트가 아니었군요.  


성경에 나오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라는 구절도 번역자가 단어를 잘못 해석해서 생긴 말이라고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우리 삶에 이런 게 또 얼마나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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