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말은 얼마나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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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20 혜자의 생일 전날
- 2016.06.16 산 명창 배일동과 죽은 스티브 잡스가 만나 쓴 책 – [독공] 2
- 2016.06.16 첨단의 피곤함
- 2016.06.12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 - [곡성] 2
- 2016.06.07 짧은 독서일기 - 정세랑의 소설 둘
- 2016.06.03 이세돌, 공익광고를 통해 경쟁을 이야기하다 21
- 2016.05.26 제주의 슬픔
- 2016.04.30 국동이 형 6
- 2016.04.29 한라산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지리산 요리학교에 다녀오는 길이다. 터미널 상가에 있는 '베테랑칼국수'에 가서 칼국수와 만두를 먹고 전철을 타고 돌아오다가 한강 벤치에 앉는다.
보름달이 떴고 강바람이 시원하다. 강변에 나란히 놓인 벤치마다 사람들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 말로는 미국에서 가장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날이 6월 20일쯤이라고 한다. 여름 휴가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학생들은 학기가 끝나 긴 방학으로 들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 6월 20일에 태어난 아내는 행복한 아이였을까. 우리 엄마는 이렇게 더울 때 나를 낳았구나, 라고 아내가 중얼거린다.
능소화가 참 예쁘게 피어서 아까 사진도 몇 장 찍었는데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이젠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이 글을 쓰다가 하늘을 다시 쳐다보니 그새 달이 더 크고 환해졌다.
(* 일요일인 어제 집으로 돌아오다가 벤치에 앉아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인데 기억에 남기고 싶어서 여기에 한 번 더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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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외로움'을 이겨낸다는 것이다. 스스로 홀로 되어 자신과 마주하고 세상과 독대하며 깊은 생각을 가다듬고 마침내 깨닫는 것, 이것이 모든 대가의 첫걸음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랬고 수많은 음악가, 예술가들이 뭔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홀로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독공]의 저자 배일동도 그런 사람이다. 가난 때문에 원양어선을 타다가 뒤늦은 나이에 소리를 배운 그는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 7년 간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공부를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를 닦아세운 것이다. 그래서 [독공]은 우리나라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철학적 본보기이기도 하다.
그는 성숙한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재주와 정신이 함께 익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주만 있고 덕이 없어서도 곤란하고, 반대로 덕이 빛나지만 재주가 변변치 않아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리공부를 하는 한편으로 수 많은 책들을 읽고 익혔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낱 소리꾼인 그가 어찌 이리 많은 한자를 알고 이렇게 많은 동서양의 지식을 쌓았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책을 조금 더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가 공부를 택한 까닭은 이렇다. 외국 공연을 많이 다니면서 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더불어 묻어오는 칭찬도 찬사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외국 음악가나 예술 석학들로부터 어떻게 판소리에 대한 영어 이론서가 하나도 없느냐는 질문을 들은 후로는 그 많은 칭찬과 찬사가 졸지에 빛을 잃었다. 자신의 소리를 한 자락 들려주면 누구라도 단박에 눈물을 터뜨리게 할 자신은 있지만 조금만 더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우리 판소리에 대한 변변한 책 한 권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물론 그를 가르친 선배들 스승들도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문서상으로 이론적인 토대를 탄탄하게 쌓아놓은 이는 없었다.
판소리의 역사는 삼백 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우리나라 고유의 예술 철학이 담겨 있는데. 자칫 중국에서 들어온 것인가 하는 혐의를 뒤집어쓰기 딱 알맞은 조건인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그는 산에 있을 때 방 안에 벽지 대신 훈민정음 해례본을 붙여놓고 매일 들여다 보며 판소리의 발성과 장단 원리를 깨달으려 노력했다. 이러한 간절함 덕에 나날이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머릿속에 자신감과 할 말이 넘치게 되었고 마침내 책을 쓰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가 고리타분한 이론가나 꼰대스러운 예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남을 것이라는 예감은 그의 남다른 집필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판소리에 아이폰이라니! 그는 컴퓨터에도 익숙한 세대가 아니라 글쓰기에 애를 먹고 있었는데 우연히 스마트폰에 메모 어플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꾹꾹 자판을 눌러 글을 썼다는 것이다. 글쓰기부터 전통과 퓨전의 만남이요, 배일동과 스티브 잡스의 만남이었다.
이는 ‘음양오행이나 동양철학들은 절대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학문이 아니다. 우주의 엄연한 질서를 인간의 상세한 관찰로 이루어낸 위대한 자연법칙들이다. 현대사회에서도 그러한 철학들이 문화생활의 원리에 얼마만큼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그의 퓨전 철학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아무튼 스마트폰 글쓰기에 맛을 들여 허리가 비뚤어질 정도로 글을 생산해내느라 의사한테 야단까지 맞았다는 배일동은 마침내 우리 문화사에 의미 있는 족적이 될 [독공]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이 책 이후에 판소리의 실제 이론을 다룬 제 2권이 곧 나올 예정이다. ‘명창’이라는 하드웨어적 자산에 ‘공부’라는 소프트웨어적인 추진력을 겸비한 그의 행보가 사뭇 궁금해진다. 그나마 우리 곁에 [독공]이라는 책이 방금 도착해서 여러모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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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닷 초밀도 화질로
보이지 않았던 움직임
숨어있던 땀방울까지 -
새로 나온 S사의 SUHD TV광고를 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수천만 원을 주고 새 TV를 사서 저렇게 초밀도로 봐야할 일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들도 믿지 못해 다시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확인하려 들면서 말이다.
특정 회사의 제품이나 광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오히려 매우 잘 만든 광고다). 다만 매 순간 첨단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소비자의 삶이 어쩐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짧은 글을 남겨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흑백TV를 보던 때 상상력이 더 풍부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기술의 발전이나 삶의 풍요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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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메모처럼 짧은 독후감을 쓰는 경우가 있다.
정세랑의 경우가 그랬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랬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메모와 오늘 쓴 두 줄을 붙여보았다.
나중에 진짜 쓴다니까.
1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를 읽고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어 두 번째 책인데 이 책도 정말 사부작사부작 잘 읽힌다. 창비 장편소설상을 탄 작품인데 소재나 인간관계와는 상관없이 그냥 글을 잘 써서 받은 상이 틀림없다. 전에 소설가 장강명이 페이스북에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엔터테인먼트 소설은 한 이십만 부는 팔려야 한다'고 쓴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이다. 심윤경에 이어 요즘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가다. 개인적인 소회를 얘기하라고 하면 예전에 계간지 [판타스틱]에서 그녀의 데뷔작 <드림,드림,드림>을 읽고 꽤 좋은 작가네, 하고 생각했던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2
온수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인천인하대병원으로 문상 가는 길이다). 영화 <세인트엘모어의 열정>이나 <위노나 라이더의 청춘스케치>를 2016년 파주 버전으로 읽는 느낌이랄까. 주인공이 영화미술감독으로 나오는데 틈틈히 친구들과 가족을 찍었던 화면들을 이어붙여 단편영화로 만드는 장면이 뒷부분에 나온다. 다 읽고나니 그 영화가 보고싶어진다. 애틋하고 재미있고 따뜻할 것이다.
3.
시간 내서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에 대한 독후감을 써보고 싶다. 사실은 읽은 직후 몇 줄을 써놨는데 그리고는 일에 치여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정말 재밌다. 케이블TV에서 드라마로 제작을 결정하고 작가에게 후속작을 쓰라고 하면 거뜬히 다섯 편은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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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285210
2016년 봄,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최초 대결이었으니까요. TV와 인터넷으로 대국을 지켜본 저희들은 마침 한국방송공사에서 공모하는 <경쟁위주 사회문화> 공익광고 모델로 이세돌 씨가 적역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에 그보다 더 큰 경쟁을 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고 시안을 공모전에 보내기 전에 이세돌 씨 측에게 연락해 공익광고의 취지를 설명하고 출연 허락을 구했습니다. 이세돌 씨는 지나친 경쟁위주의 사회문화를 진단하고 반성해 보자는 저희들의 생각을 단박에 이해하고 무료 출연까지 약속해 주었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고마운 일이었죠. 이세돌 씨의 약속에 힘입어서 그랬는지 저희들의 아이디어는 무사히 공익광고 본선을 통과해 당선작이 되었습니다.
막상 이세돌 씨가 공익광고 모델로 정해지고 나니까 저희회사는 물론 한국방송광고공사 담당자들도 다들 욕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광고를 만들자는 하얀 욕심이었죠. 그래서 다시 머리들을 모았습니다. 카피를 새로 쓰고 회의를 거듭 했습니다.
마침 우리 회사 막내 카피라이터가 자신이 듣고싶은 이야기라며 쓴 '경쟁에서 이기라는 말보다는 넌 이미 잘 하고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카피가 좋아서 그걸로 최종 안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촬영장에 가서 이세돌 씨에게 경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진 뒤 그 이야기들을 모으고 골라서 한 편을 더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촬영장소는 상수동의 '이리카페'였습니다.
조금 위험한 결정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저희가 미리 여섯 가지 정도의 질문을 작성해서 가져가긴 했지만, 역시 이세돌은 그냥 이세돌이 아니었습니다. 경쟁에 대한 남다른 이해력과 통찰력이 있었고 대인배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세돌 어록'이 괜한 말이 아니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명카피들이 그의 입에서 마구 흘러 나왔습니다. 공익광고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결국 이세돌 9단이 출연한 공익광고는 A안, B안 이렇게 두 편으로 온에어가 결정되었습니다(오늘은 A안만 보이더군요. B안도 지켜봐 주십시오).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희가 공익광고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한 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세돌의 입을 통함으로써 더 큰 공감과 파급력을 얻은 듯합니다. 물론 지겨운 경쟁사회를 반성해보자는 뜻으로 기획된 이 광고 역시 치열한 '경쟁PT'를 통해 뽑히고 만들어졌다는 점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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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슬픔>
베리 레빈슨 감독이 만든 <굿모닝 베트남>이란 영화를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미군방송 DJ인 로빈 윌리엄스가 멘트를 하고 난 뒤 화면 가득 베트남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면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 lWorld'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푸르른 자연 속 사람들도 모두 행복한 표정들이다. 그러다가 2절쯤부터 난데없이 헬기가 등장한다. 헬기에선 기관단총과 화염방사기가 난사되고 그 밑에서는 베트콩들과 베트남 양민들이 고스란히 총탄세례와 불세례를 받고 쓰러진다. 그런데도 배경음악은 계속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라고 노래한다. 아이러니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워지는 비참하고 잔인한 미장센이다.
제주에 처음 오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풍광에 사로잡혀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나도 이 작고 평화로운 섬이 좋아져서 해마다 내려와 며칠씩 묵고 가게 된다. 하지만 4•3평화박물관에 한 번 갔다 온 이후로는 똑같은 마음으로 푸른 대지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4•3항쟁'의 과정과 결과는 알면 알수록 너무나 끔찍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우리는 제주도에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배웠다. 섬에 남자가 적은 것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많은 까닭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었다. 1948년 '4•3사건' 때 군과 경찰이 너무나 많은 양민을 무장공비로 몰아 죽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남한단독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도만 단독선거를 반대했었기 때문에 제주도민 자체가 눈엣가시였다. 이승만 정권은 북에서 공산당을 피해 내려온 '서북청년단'을 제주도에 투입시켜 공비들을 '소탕'케 했다.
공산당 때문에 고향도 집도 다 잃은 청년들에게 제주도의 공비들과 그 가족들은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죽창으로 찔러죽여도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은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은다'는 말을 남겼고 이런 정신분열종자를 이승만은 친히 불러서 일 잘한다 칭찬을 해줬다는 일화를 박물관에서 읽은 기억 난다. 당시의 만행은 김두식이 쓴 <헌법의 풍경>에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게스트하우스에 와서 다이닝룸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 중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었다. 언제 한 번 읽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계속 못 읽다가 이제야 손에 들게 된 책이다. 어제 아침엔 아내가, 오늘 아침엔 내가 읽었다. 제주 4•3항쟁을 최초로 다뤘던 이 소설은 당시 학살현장에서 죽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삼십 년을 더 살다 자살한 마을 어른 '순이삼촌'에 대한 이야기다. 난 순이삼촌이라고 해서 주인공이 남자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여자였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을 이모라고 부르듯이 제주에서는 촌수가 애매한 마을 어른들을 남녀불문하고 '삼촌'이라 부르는 습성이 있었던 것이다.
군경의 '소개작전' 때 마을 국민학교에서 분류작업을 당하고 짐승처럼 끌려가 밭에서 집단총살을 당했던 순이삼촌은 기적적으로 죽지 않고 시체더미 속에서 사흘씩이나 기절해 있다가 살아났던 것이다. 그 뒤 그녀의 삶은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대인관계도 제대로 갖지 못했으며 평생 안정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있던, 그래서 거기서 자란 고구마가 목침 만했던 그 밭에 가서 죽은 것이다.
책 뒷쪽에 있는 작가연보를 보니 현기영은 이 작품을 발표하고 난 다음해인 1979년에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삼일 동안 고문을 받고 감옥에 구치되는 등 1개월간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1980년에 다시 문제가 되어 종로서에 끌려가 일주일간 취조 받은 끝에 책이 판매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작가 39세때의 일이다.
당시엔 군사독재시절이라 그렇다지만 내 생각에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도 틈만 나면 세월호 유가족들을 폭도들로 매도하려는 종편과 신문들을 보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뒤늦게 <순이삼촌>이라는 중편소설 한 편 읽고 흥분해 제꺼덕 이런 글을 휴대폰으로 꾹꾹 눌러 쓰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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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데요.
학생들은 '이적표현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이 년 전 춘천에 있는 한 대학교의 '카피랑이팅 실습' 시간에 있던 일이다. 나는 강의 시간에 "요즘 가수 이적과 작가 김영하가 각각 칼럼을 연재 중인데 칼럼 제목이 하나는 '이적표현물'이고 하나는 '영하의 날씨'라네요. 재미 있지 않아요?" 라고 했다가 졸지에 꼰대가 된 기분을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대학교에 걸개그림 하나만 잘못 걸어도 이적표현물이라는 누명을 쓰고 철거 당하거나 끌려갔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니. 이런 게 세대차이인가.세상이 많이 변하긴 변했구나. 제기랄.
이래저래 우울한 날이었다. 그런데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더 우울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루 리드가 죽었다는 것이다. 아아, 루 리드가 죽다니. 술 한 잔이 간절해졌다. 사람들은 루 리드라고 하면 영화 <접속>에 흐르던 노래 'Pale Blue Eyes'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가지고 루 리드를 애도할 순 없다. 당장 'Walk On the Wild Side'라도 듣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니 같이 루 리드를 들으며 앤디 워홀이나 J.J 케일까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국동이 형 뿐이었다. 국동이 형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는다. 어느 술집이냐고 물었더니 병원이란다. 암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단다.뭐, 암? 언제요?! 며칠 됐어. 히히 웃는 국동이 형. 아, 씨발. 이게 지금 웃을 일인가. 루 리드는 죽었고 국동이 형은 암에 걸렸다니. 도대체오늘 어쩌자고 이렇게 우울하냐.
국동이 형이라고 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열 살 가량 많은데 아직 결혼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광화문MBC빌딩 안에 있던 MBC애드컴이라는 광고대행사 들어가서 그날 처음 만났던 사람이다. 일단 광고대행사라는 곳에 출근하는 건 생전 처음이라 얼이 빠져 있었고 그날은 각 부서와 팀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날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11층 복도에서 누군가가 ‘아, 이건 말이 안 되잖아!”라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화를 내던 사람이 바로 정국동 차장이었다. 그는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한테 오더니 “야, 아까 그 사람이 나 찾거든 못봤다고 해.”라고 말하면 씩 웃고 돌아섰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정국동 차장은 총각이었고 디자이너였다. 지금은 모두 아트 디렉터라고 하지만 그때는 광고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더 흔할 때였다.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술을 좋아했고 음악을 좋아했다. 그런데 취향의 폭이 좁아서 모든 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술은 맥주만 마셨고 음악은 브리티쉬 락과 락큰롤, 그리고 마국의 서던락 등을 즐겨 들었다. 처음부터 국동이 형과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팀도 달랐고 술 취향도 달랐다. 나는 소주를 주로 마시러 다녔으므로 국동이 형과 만나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팀 개편이 되면서 내가 정국동 부장 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때만 해도 반항적인 기개가 살아있던 나는 상관의 농담에 더 센 농담으로 맞서거나 잘난척을 하며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등 사사건건 감정적으로 부딪혔다. 살살 달래가면서 윗사람의 비위를 맞춰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이러고 계세요?”
“외로워서.”
업무가 끝나지 않아 야근을 하던 나는 퇴근한 디자이너 자리에서 맥캔토시 컴퓨터로 재미 없는 골프 게임을 계속하고 있던 정국동 부장에게 가서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또 여자와 헤어진 모양이었다. 국동이 형은 참 재주 좋게도 어린 여자애들만 사귀었다. 그것도 이십대 초중반만. 왜 그렇게 어린 여자애들만 사귀냐고 물었더니 '스물다섯 살만 넘어가도 정신을 차리기 때문에 그 전에 뭘 모를 때 꼬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긴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결혼보다는 연애가 더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종로나 신촌에 있는 술집에서 그를 만나면 그가 사귀고 있던 '어린 여자애들'도 자동으로 만날 수가 있었다. 다들 엄청 술을 잘 마셨고 다들 쉽게 친구가 되었다. 종로에 있던 LP 많은 단골 술집 '투뮤직'에서는 도어스의 ‘Light My Fire’가 나오면 우리들의 애국가가 나온다며 모인 사람 모두 술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가 주로 다닌 술집들은 신촌에 있었다. 회사가 마포로 이사를 간 이유도 있지만 LP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실 수 있었던 ‘ROCK’이나 ‘Rolling Stones’가 모두 신촌에 있기 때문이었다. '투뮤직'의 주인 인하 씨도 나중에 신촌에 'LPG'라는 가게를 또 열었다. 우리는 한 때 출근부 도장 찍듯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집들을 다녔다. ‘ROCK’의 주인 호성이 형이나 ‘Rolling Stones’의 주인 두성이 형도 서로 친해서 가게가 먼저 끝나는 사람이 전화해서 만나 따로 술을 마실 정도였다.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대중 씨나 '들찐이 날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젊은 단골 여자아이의 얼굴도 그립다. 우리는 술집 주인들과 어울려 새벽 한두 시가 넘어 신촌시장에서 2차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Rolling Stones’에 불이 나서 두성이 형과 영화감독 이훈 씨 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국동이 형이 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안부 전화를 했었다. 다행이 형은 전날 술이 과해서 그날은 일찍 집에 들어갔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때 뉴스에서는 ‘락카페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며 술을 마시다 화재가 발생해서 사망했다’라는 식으로 기사가 나와서 우리를 화나게 했다. ‘Rolling Stones’는 당시 홍대에서 유행하던 락카페처럼 오렌지족들이 테이블 사이에서 춤을 추다가 부킹을 하는 곳이 아니라 락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기운이 넘쳐서 밤새워 술을 마시고도 아침이면 발딱발딱 일어나 출근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국동이 형은 일하기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선 아침잠이 많아서 지각을 자주 했고 회의 시간을 앞두고 사라지기도 잘 했다.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실컷 농담을 하며 킬킬거리고 놀다가 갑자기 안면을 바꾸고 일을 시키는 일도 흔했다. 한 마디로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질투심도 강했고 연애를 잘 하는 남자 후배들을 무조건 존경하는 성향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익혀왔던 서브컬처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면 대놓고 미워하기까지 했다. '아담이 눈뜰 때'라는 소설에서 킹 크림슨 노래였던가 'penny'를 'penis'로 잘못 번역한 소설가 장정일을 기회 있을 때마다 미워했던 게 대표적인 케이스다. 재미 있지만 범생이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보다는 날라리 과인 무라카미 류를 더 좋아하는 것에 자부심을 표했으므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폄하되기 십상이었다. '문화적인 잘난 체' 하면 또 어디 가서 안 지던 내가 이런 국동이 형과 사사건건 대립했던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급기야 어느날은 'Rock'에서 'Renaissance'라는 그룹의 보컬이 애니 허슬럼인지 그레이스 슬릭인지 술내기를 했는데 내기에서 이긴 내가 하도 대놓고 좋아하는 바람에 국동이 형이 대단히 삐친 사건이 발생했다.
나를 미워하던 국동이 형은 어느 해 팀 개편이 있을 때 나를 그 힘들다는 '대한항공 팀'으로 팔아넘겨 버렸다. 그 팀은 별명이 '0830부대'였는데, 그 이유는 전날 저녁에 회의를 하면 바로 다음날 아침 여덟 시 삼십 분까지 인쇄 광고 시안들을 완성해 광고주 책상 위에 올려놔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밤을 새는 지옥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화위복이 될 줄이야. 내가 팀을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의 광풍이 대한민국 전역에 몰아쳤다. 회사에서도 미친듯이 인원감축을 단행해야만 했는데 국동이 형네 팀은 팀장인 국동이 형부터 밑의 직원들까지 몽땅 잘린 반면 대한항공팀은 단 한 명도 잘리지 않고 모두 살아남은 것이다. 당시 막강한 광고주였던 대한항공 광고팀이 대행사에 전화를 해서 자기 팀원 중 한 명만 잘라도 광고대행 끝, 이라는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다들 일엽편주에 올라탄 것처럼 어질어질하던 시절이었다.
국동이 형은 라면집을 하면 딱 어울릴 것 같아.
우리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고 회사 앞 라면가게 '명재네'에서 간식을 먹을 때면 가장 맛있게 먹는 사람도 국동이 형이었다. 그리고 이젠 광고 디자인 업무에서 손을 떼고 좀 맘 편하게 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동이 형은 단호했다. 광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린 회사인 MBC애드컴 건물의 한 층에 세를 내고 들어와 사무실을 차렸다. 사무실 이름은 'Cream'이었는데 이건 에릭 크랩튼, 진저 베이커, 잭 브루스가 결성한 전설적인 브리티쉬락 그룹의 이름임과 동시에 속어로 '정액'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는 게자랑이었다. 흡사 일제시대에 시인 이상이 자신이 차린 다방 간판에 '69'라고 써놓고는 그게 섹스체위를 뜻하는 것인데 아무도 모른다며 좋아하던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Cream'은 망할듯 망할듯 망하지 않으면서 계속 명백을 유지해 나갔고 국동이 형은 저녁이면 여전히 신촌이나 홍대 부근 술집에서 두비 브러더스의 'Long Train Running'을 신청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꾸준하게 술을 마시는 국동이 형이 나중에 죽으면 우리가 돈을 모아 신촌에 공덕비라도 하나 세워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고, 그 소리를 들은 우리들은 모두 동감의 의미로 고개를 끄떡였다.
시간이 흘러갔고 국동이 형도 나도 나이를 먹어갔다. 나는 그 이후 다른 대행사들과 프리랜서 생활을 거치느라 예전 직장동료들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함박눈이 미친듯이 쏟아지길래 국동이 형한테 '눈이 오는데 전화 걸 사람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서 형한테 걸었다'고 했더니 '눈 오는 날 내가 왜 니 전화를 받아야 하느냐'며 불 같이 화를 내고 끊었다. 그래도 국동이 형은 잊혀질 만하면 전화를 걸어 술을 마시자고 했다. 어느날은 오후 세 시부터 전화를 걸어 '이젠 아무도 나와 술을 마셔 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렸고 어느날은 '술도 사주고 왕복 택시비까지 오자마자 현금으로 줄 테니 지금 당장 홍대앞으로 나오라'는 내용의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나는 택시비까지 그냥 받는 게 미안해서 내가 좋아하던 책을 몇 권 들고 나갔는데 그 중 하나가 아사지 지로의 '칼에 지다' 1,2권이었다. 나중에 국동이 형은 이 소설을 너무 잘 읽었다며 '사무라이 소설을 그렇게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라는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국동이 형이 사무라이 소설을 이 책 말고 또 읽은 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즈음 같이 만나 친구 중에 드라마 '이산'과 '동이'를 썼던 후배 김이영이 있었는데 이영이가 정국동이라는 이름이 정말 특이하다며 언젠가 꼭 한 번 자기가 쓰는 사극의 인물 중 하나로 기용하겠다고 허락을 구하기도 했다. 나도 예전에 '백만장자와 결혼하가'라는 그녀의 드라마에 이름을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화정'인가에서 정말로 '정국동 대감'이라는 캐릭터가 등장을 했다고 한다. 정국동이라는 이름은 강호동만큼이나 특이해서 같은 회사를 다녔던 카피라이터 탁정언 선배가 쓴 소설 '이름 없는 전쟁' 에도 등장한다. 당시 회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재구성해서 쓴 소설이라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다 바뀌었고 정국동만 이름과 캐릭터가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 나왔던 재미 있는 작품이다.
루 리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국동이 형이 암에 걸린 걸 알게 된 나는 며칠 후 여자친구와 함께 봉투에 오만 원을 넣어가지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정작 몇 달간 술 담배를 못한 국동이 형은 얼굴이 뽀얬다. 과연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을 했더니 다행히 초기에 발견한 암이라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데가 아파서 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암을 발견하게 된, 억세게 운 좋은 케이스였던 것이다. 문병을 당하는 일 자체가 즐겁고 신난다는 듯 히히히 웃는 국동이 형은 의외로 환자복이 잘 어울렸다.
몇 달 전 국동이 형을 홍대앞 따루주막에서 만났다. 요즘은 술 담배를 안 하지만 여전히 술집을 쏘다니며 밤새도록 논다고 한다. 이젠 자기가 술을 못 마시니까 다름 사람들이 마시는 걸 보면서 노는 것이다. 아마 여전히 이쁜 가게 주인들과 친하게 지내느라 그러는 것이리라 짐작을 해본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소리가 있지 않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국동이 형은 우리가 살아서 공덕비를 세워주지 못할 정도록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만장하신 신사숙녀 여러분, 혹시 신촌이나 홍대앞에서 키가 작고 통통한 60대 초반의 무알콜 락애호가를 만나거든 내 얘기를 하며 맥주 한 잔을 요구하시라. 국동이 형은 아마 당신께 흔쾌히 맥주 한 잔을 사주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너 때문에 또 삥을 뜯겼다'라고 투덜거릴 게 틀림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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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북동에서 뭔가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나서 아내는 이 동네에서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지고 했다. '섭지코지'라는 횟집에 들어가 모듬회와 한라산을 시켰는데 마침 한라산 병과 아내의 옷 컬러가 비슷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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