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JTBC뉴스가 끝나고 IP-TV로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를 봤다. 처음엔 일찍 자겠다던 아내도 어느덧 TV앞에 앉더니 끝까지 영화를 지켜보았다. [정사]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같은 날렵한 드라마를 만들던 이재용 감독이 웬일로 파고다공원의 박카스 아줌마 얘기래? 했는데 막상 영화는 생각보다 귀엽고 산뜻했다. 이를테면 [친구]를 만들던 곽경택이 어깨에 힘 빼고 [똥개]를 만든 느낌이랄까. 작년 10월에 개봉한 영화다. 


윤여정은 나이로는 분명 노인이지만 그냥 노인이 아니다. 어울리지 않게 청자켓을 입고 새침한 표정을 지어도 어울리고 고양이밥을 들고 마당으로 나오다가 다른 사람의 로맨스를 목격하고 부러워하는 얼굴에도 어울린다. 그렇다. '발리 윤식당'의 셰프도 윤여정이지만 이렇게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숨기지 못하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녀와 마주할 때 우리는 아직 윤여정만큼 '원톱'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여배우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같이 나오는 배우들과의 화학작용도 좋다. 트랜스젠더 배우 안아주나 윤계상이 윤여정과 함께 이태원의 이층집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내가 "완전 루저들의 합창이네?!" 라고 했더니 아내도 빙긋이 웃으며 동의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 성매매로 만난 사이지만 서로 예의를 지키고 품위가 있는 멋진 노인들이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게 가능한 게,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김기덕이 만들었으면 비린내가 났을 영화가 이재용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한층 담백해졌다. 그렇다고 푸근하거나 흐뭇한 것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윤여정이 오랜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살인자가 된 뒤 미련없이 체포되어 경찰차로 실려갈 때 운전하던 경찰이 건내주는 담배 한 가치의 연기는 참으로 위로가 된다. 작품 전체가 열여섯 평짜리 이층 양옥집만 하다면 거기에'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 라는 동의가 두세 평짜리 옥탑방처럼 붙어 있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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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극이 무대에 다시 오른다는 소식만으로도 사람들이 꺄아, 소리를 지르는 작품들이 있다. 지난 달 1년 만에 다시 막을 올린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그랬다면 이번 달엔 2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온 [프로즌] 역시 그렇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 작품들에 열광하는 걸까. 극단 맨씨어터 10주년 기념으로 올린 [프로즌]을 보았다.

연극을 영어로는 'Play'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뭔가를 생산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노는 것에 가까워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한 거짓말을 지어놓고 무대 밑에서, 또 무대 위에서 서로 암묵적으로 진짜처럼 여기며 그 세계를 통해 진실을 말해보려는 '수작'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맞는 거 아닐까. 더구나 [프로즌] 같은 번역극은 분명히 우리나라 배우들이고 우리 말 대사인데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의상, 분장, 배우들의 억양 등에서 어릴 적 TV에서 보던 '더빙 외화'를 보는 듯한 낯섦을 경험하는 재미가 플러스 된다. 물론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능력이 보증되어야만 가능한 쾌감이겠지만.

어린 딸 로나를 유괴당하고 20년 동안 그녀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낸시가 있다. 그리고 로나를 비롯한 수십 명의 소녀를 납치 및 성폭행한 소아성애자이며 연쇄살인범인 랄프가 있다. 두 사람 사이엔 연쇄살인범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정신과의사이자 알코홀릭인 아그네샤가 끼어든다. 그녀는 랄프 같은 사람은 정상인들과는 뇌구조부터 다르므로 그의 납치 강간 살해행위도 범죄라기보다는 일종의 질병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심리 전문가다. 그러나 천진한 미소를 띤 살인마에게 사랑하는 딸을 잃은 낸시도 그렇게 생각할까? 대충 설정만 훑어봐도 만만치 않은 연극이다. 과연 이렇게 꽉 짜여진 등장인물 구도 속에서 배우들은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 것인가.


랄프는 참 표현하기 힘든 인물이다. 관객들에게 혐오와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해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가 무시를 당하면 심하게 상처를 받는 약한 영혼임과 동시에 소녀들을 밴으로 유인해서는 '아프지 않게' 죽였다고 자랑하는 섬뜩한 싸이코패스이기도 하다. 심지어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들의 무능을 지적하기도 하는 전도본말의 캐릭터다. 랄프 역을 맡은 배우 박호산은 흥분하면 말을 더듬거나 쌍욕을 내뱉는 중간중간 해맑은 미소를 내보이는 설정에 '틱장애'라는 신의 한수를 더 얹어 싸이코 살인마의 내면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막판에 격하게 자신의 뺨을 치는 장면에서는 '정말 아프겠다'라는 생각에 저절로 객석에서 비명이 튀어나오지만 나중에 만나 물어본 결과, 그 순간엔 아픈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극 속으로 몰입한 것이다. 낸시 역을 맡은 배우 우현주의 발성과 대사처리능력 또한 탁월하다(극단의 대표인 우현주는 공동번역 작업까지 맡았다).

왜 '프로즌'인가. 대사 중 아그네샤가 아직 탐구하지 못한 인간의 뇌 세계를 '얼어붙은 땅' 비슷하게 표현한 것도 있고 또 20년 전 로나를 유괴당한 순간부터 낸시의 감정이 얼어붙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나는 영국의 극작가  브라이오니 래버리(Bryony Lavery)가 창조한 극단적인 이야기와 한국 배우들의 열연이 보여주는 극한의 시너지가 이 여름의 더위를 꽝꽝 얼려버리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이 연극은 여성 캐릭터인 낸시와 아그네스만 붙박이 출연이고 랄프 역은 세 명의 남자 배우가 돌아가면서 맡는다. 그러면서도 하루 한 번 공연 뿐이다. 하루에 두 번 공연을 올리는 연극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건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연극이 끝나면 배우들이 모두 탈진하기 때문이란다. 2년 전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보여준다는 세평 덕분에 '멘탈 탈곡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심리 스릴러 [프로즌]. 강추하는 작품이다. 7월 16일까지 에그린 씨어터에서 상연한다.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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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북악산 등산길에 오르면서 측근과 경호원들에게 조선의 도읍을 정하기까지 태조 이성계와 무학도사에게 있었던 일화를 해설사처럼 설명해주는 장면은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걸핏하면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해 강의하는 걸 즐기던 대통령 마틴 쉰를 떠올리게 한다. 아론 소킨이 각본을 쓴 이 드라마의 대통령도 노무현처럼 민주당 출신이있다. 차이가 있다면 노무현이 마틴 쉰은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노무현은 인권변호사였다는 점 정도일까. 그보다 더 중요한 차별 포인트는 아무래도 노무현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졸 대통령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엔  아직도 그의 학력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있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편이었다. 학력은 고졸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변호사였고 영어도 뛰어나게 잘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아는 것이 많은 지식인이라는 프라이드가 강했으니까.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이런 유서를 남기고 불현듯 세상을 버린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총리가 읽을 추도사를 써야하는 연설기획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건 아마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그래서였을까. “다시는 정치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라는 눈물 나는추도사를 썼던 '노무현의 筆士’ 윤태영이 노 전 대통령과의 이십 년 인연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소설 [오래된 생각]을 읽으면서 연설 잘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 많이 났다. 그의 시원하면서도 조리 있고 품격 넘치는 연설을 다시 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유투브로 노무현의 연설을 찾아 들으면 눈물이 찔끔 날 때가 많다. 그래서 아내는 친구 양희 작가가 각본을 쓴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어떻게 봐야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눈물이 날까봐. 그저 대통령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 지경이니 거의 24시간을 곁에서 붙어지내던 사람의 심정은 어떠할까.

회고록일수도 있었던 글이 소설로 탄생한 것은 열린정부 시절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작가의 야심 때문이었으리라. 작가 윤태영은 운동권 경력 때문에 취직이 요원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절부터 시작한 글쓰기가 평생 직업이 된 '프로페셔널 라이터'다. 노무현 캠프 일을 맡으면서 방송원고와 홍보물들을 주로 썼고 노무현의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집필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에는 그의 연설기획 비서관이 되어 가장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이 하는 모든 말을 기록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당연히 노무현 정권의 속사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밝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노무현 정부가 몰락의 길을 걷던 2006년부터 시작된다. 김대중에 이어 민주정부의 길을 이어갔던 참여정부는 한미FTA와 부동산 가격 폭등, 북한 핵실험에 대한 반응, 작전통제권 환수문제, 대연정 제의 등등으로 인해 계속 하락세의 길을 걸어야 했다. 어느 정권이나 레임덕은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처음의 그 기대만큼이나 실망감도 커서 그 댓가도 더 가혹했던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은 스스로 권력을 독점하지 않으려 제도적 노력을 기울인 최초의 집권자였다. 집권 초기 벌였던 ‘평검사들과의 대화’는 지금 보면 답답할 정도로 순진한 시도였고 결국 그는 검찰에 의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신세가 된다. 

소설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팩션이라고 하더라도 수기나 백서와 다른 것은 가상의 인물들을 설정해 사건을 보다 감성적이고 입체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글쓴 이 윤태영도 진익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여릴 적 친구이자 훗날 야당 대변인으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인수, 그리고 그의 첫사람이었으나 결국 인수와 결혼하게 되는 희연 등이 등장해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권력이란 손잡이가 없는 칼과도 같은 것이었다. 쥐고 휘두를 수는 있지만 그러는 동안 자기 손에서도 피가 흐를 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설프게 사용했다가 자신만 다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조심해야 하는 것이 권력이었다. 

윤태영이 소설 속에서 진익훈의 입을 빌어 권력의 양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일단 이 소설은 그의 안정되고 의미 있는 문장들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소설가로서 또 문장가로서 그가 보여줄 수 많은 가능성에 대해 헤아려 본다. 노무현과 가장 가까웠던 필사 윤태영은 문재인 대통령의 수락연설 중 백미로 꼽히는 이런 문장을 쓴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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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복잡하고 집중이 안 될 때는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펼쳐보는 습관이 있다.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2]를 펼쳤다. 전에 줄 쳐놓은 페이지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내가 밑줄 친 곳엔 별 게 없다. 다른 페이지를 뒤적인다. 그러다가 230페이지에서 멈췄다. 

완전히 기대의 반대로 하기 

텍사스의 한 은행가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네 은행이 경쟁사보다 더 많은 ATM 기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선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 아이디어? ATM기의 20달러 지폐 칸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몇 장 넣어두라고 했다. 많이는 말고, 아주 조금만. 
틀림없이 소문이 퍼질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깨고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아아, 그러나 내 아이디어를 닮은 그 사람은 '챔피언 되기'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관계로 이 방법은 실현되지 못했다). 


왜 이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을까? 터무니 없는 조언이라고 생각했겠지. 아이디어 실현 여부보다 더 아픈 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세스 고딘처럼 재빨리 빛나는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보기에는 굉장히 위험하지만 사실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유아용 장난감을 만들 수도 있다. 교회에 록밴드를 소개시키는 것은 어떨까? 시끄러운 물건을 소리 안 나게 내놓는다든가, 뚱뚱한 물건을 날씬한 물건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청구서를 보낼 때 막대사탕 하나를 같이 넣어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 




세스 고딘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런 건 너무 정직하니 거꾸로 한 번 생각을 해볼까...? 지름길은 없다. 자꾸 새로운 생각을 해보는 사람만이 새로운 길을 찾는 법이다. 세스 고딘의 얘기에서 절망을 느낄 것인가, 희망을 느낄 것인가.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위 글 중 '뚱뚱한 물건을 날씬한 물건으로'는 다이어트 코크 자판기 아이디어에서 이미 실현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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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동쪽 어딘가에 있다는 행복의 나라를 상상해 본다. 그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민주적인 생각의 틀이 전통으로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중앙정부는 때때로 민의를 물어 법률을 개정하거나 곧바로 현실에 적용하기 때문에 따로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미끼로 유세를 떨거나 협박을 할 수 없다. 그나마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은 언론과 비정부기구들이 힘을 합쳐 퇴출하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 놓아 함부로 까불지도 못한다.막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날로 정치 인생이 끝나기 십상이다. 


그 나라엔 과로사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하루 4시간 정도만 일한다. 그래서 어떤 직장은 4교대까지 가능한 곳도 많다. 생산직이나 공무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물론 작가나 프로그래머, 기획자 같은 사람들 중에서는 하루 10시간 이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큰 사회적 존경과 보상을 받는다. 

초등학생들은 숙제가 없다. 그날 배운 걸 그날 학교에서 다 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엔 놀면 된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고 일년에 한 달은 자율학습을 할 수 있어서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선행학습은 전면 금지되어 있다. 

부자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은 세금 혜택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부자들 중엔 집을 사지 않고 전세나 월세로 사는 사람이 많고 서민들은 집을 사는 경우가 많다. 서민일수록 대출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상을 받는 경우 애든 어른이든 거의 대부분 부상으로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경험은 여행이라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상품은 배낭여행부터 크루즈까지 다양한데 예를 들어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경우엔 몇 달씩 크루즈 세계여행을 시켜 주기도 한다.

벌을 받는 경우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교도소는 수만 권의 책이 꽂혀있는 대형도서관이다. 재소자들은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몰수 당한 후 도서관에 갇혀 책을 읽어야 한다. 읽어야 할 책의 할당량이 주어진 것은 아니나 책을 읽은 뒤 독후감을 쓰는 경우엔 글의 질과 양에 따라 복역기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수감생활에 만족하는 편이기 때문에 독후감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드물다. 일시적인 전자기기 사용 금지로 금단증상을 겪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쉽게 아날로그적인 상황에 적응한다. 교도소에 다녀 온 사람일수록 삶이 여유롭고 윤택해졌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약 교도소가 도서관이라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게 떠올라서 아무렇게나 써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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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한 번 읽은 책을 또 읽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은 언제나 다시 읽어도 새롭다. 아니, 책은 다시 읽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프랑소와 트뤼포가 씨네필이 되는 세 단계 중 첫 번째를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이라 했는데 이는 책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세 가지만 들어 보자. 

첫째, 기억력 때문이다. 분명히 한 번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다. 그게 당연한 거다. 혹시라도 읽은 내용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주받은 인생을 사는 거다. 인간은 망각해야 살 수 있는 존재니까. 둘째, 그때 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땐 몰랐는데 다시 읽으니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고 감정이나 취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이런 일은 매번 일어난다. 분명 나하고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누구는 그걸 읽고 작가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책은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그 가치가 달라지는 요술을 부린다. 셋째는 약속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 놓는다는 것은 언젠가 그 부분을 다시 읽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어느날 책꽂이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다시 펼 때 비로소 약속은 지켜지는 것이다. 

어제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무심코 책꽂이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집어들었다. 분명 다 읽은 책이고 우리집 책꽂이에도 있는 책인데 다시 펼치니 새로운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읽어보니 뻔한 내용이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라도 다시 읽으며 마음에 새길 만 한 글이다. 페이지 윗쪽을 접은 흔적이 없고 밑줄 치는 방식이 다른 걸 보니 내 책은 아니다. 이번엔 내 방 책꽂이에 있는 책 중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다시 꺼내 무라카미 하루키와 프란츠 카프카 부분을 읽었다. 전에 내가 쳐놓은 밑줄이 있어서다. 내가 그은 밑줄인데도 다시 읽어보니 ‘아, 이런 얘기가 여기 있었어?’하고 놀라게 된다. 내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어도 좋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결국 퇴근하면서 유시민의 책을 들고 나왔다. 전철에서 한 챕터만 더 읽고싶어서였다. 출판된 지 얼만 안 되는 유시민의 실용서를 읽으며 이런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나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정도는 읽으면서 이런 글을 써야 폼나지 않겠느냐 타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멀리 있는 고전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실용서가 인생에 도움이 될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요즘은 점점 쉽게 쓰인 글에 더 끌린다. 유시민이나 강신주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할 줄 아는 특급 저술가들이다. 그것만큼은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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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FZFvg9htS2Q


일본 니신(Nissin)의 Cup Noodle은 광고를 잘 만든다. 이미 깐느광고제에서도 그랑프리를 여러 번 탔다. 고작 컵라면 광고인데 뭘 그렇게 잘 만들까. 어떻게 만들었길래 상을 탈까. 


코미디 요소 가득한 좌충우돌 에피소드들 속에 "hungry?'라는 카피 한 줄만 등장하는 '헝그리 시리즈'는 원시시대를 다루고 있다. 말도 안 된다. 원시시대에 컵라면이 있다니. 그러나 또 다 말이 된다. 원시시대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똑같기 때문이다. 

어제 다시 본 ‘Survive’편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세계화 물결에 휩쓸려 모두들 영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사내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고 하질 않나, 외국인 상사가 부임을 하질 않나 직장 생활도 고달퍼지기만 한다. 니신의 광고기획사는 이를 막부시대의 전투 상황으로 치환했다. 무기는 영어. 정말 우리가 들어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How are you”, “Fine, Thank you.And you?” 수준의 영어로 무슨 공격이 되겠는가. 외국인 상사의 “Pardon?” 한 마디에 전선은 무너진다. 여기서 '배고프면 싸울 수 없으니 먹고 하자'며 컵라면을 슬쩍 끼워넣는다. 

J, Walter Tompson은 “상품의 진실과 인생의 진실을 잘 합치하는 데서 광고의 힘이 발휘된다”라고 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인 스트레스, 두려움이 컵라면과 만나는 이 뛰어난 장면들을 보라. 오래 전에 본 광고이긴 하지만 어제 아침 나는 약간 울컥했다. 특히 마지막 0.5초쯤 다리를 벌리고 소리를 지르며 적진으로 뛰어드는 병사의 모습에서. 그건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애처로움 아닌가. 살아가기 힘든 이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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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이사를 하게 되면서 개인 짐을 싸다가 예전에 쓰던 몰스킨 수첩을 찾았다. 내 이름이 인쇄된 수첩을 가지고 있었다니. 불과 몇 년 전 일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하다가 찾은 글귀나 명언, 자료 등이 여기저기 깨알 같이 손글씨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나도 그때는 뭔가 되게 열심이었구나. 내 수첩을 보고 반성을 하게 되다니. 수첩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몰스킨은 당분간 나의 '알리바이'를 위해 보관하자 마음 먹었다. 


그리고 새 노트를 하나 사야겠다,라고 마음먹었더니 여기저기서 한 번도 안 쓴 새 노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쓴웃음이 나왔다. 중요한 건 노트가 아니라 마음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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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오늘 낮, 뒤늦게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러 갔다. 극장은 아리랑시네센터. 2000년대 초반 정릉에서 혼자 살 때 갔던 것 말고는 십수 년만에 가보는 극장이다. 구민회관입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형!" 하고 부르길래 쳐다보니 같은 동네 사는 배우 박호산이다. 작품 연습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요즘 좀 뜸했는데 밖에서 우연히 마주치니 반가웠다.


버스를 탔더니 어떤 아저씨가 옆에 앉자마자 내 넓적다리를 꽉 잡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손짓을 이상하게 하고 소리고 자꾸 지르는 폼이 뭔가 몸이 불편한 분 같았다. 이런 분은 혼자 버스에 타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앉아 있다가 아리랑시네센터 정류장이 가까워져 내리려고 좀 비켜달라고 했더니 얼른 다리를 접어준다. 알고보니 선량한 사람이었다.

극장에서 표를 사고 나와 먹을 걸 파는 집을 찾아 헤매다가 웬 화덕피자집에서 칠천 원짜리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끔찍했다. 스파게티를 내주고 남자 직원들끼리 점심을 먹고 있길래 혹시 피클은 안 주냐고 물었더니 냉장고에서 포장 피클을 하나 꺼내 주며 '200원인데 그냥 주겠다'고 한다. 돈 드릴게요, 라고 했더니 괜찮단다. 한숨이 나왔다.


극장에 올라가 표를 내보이는데 키가 작고 안경을 쓰고 목소리가 높은 남자 직원이 나를 쳐다보고 웃으며 "어떻게 저 있을 때만 오시나 봐요?!" 라고 인사를 한다. 저 여기 처음 오는데요, 라고 말이 헛나왔는데도 그 남자는 여전히 친한 사람 대하듯 싱글벙글이다.

극장에 들어가니 내 자리 뒤에 앉은 어떤 아저씨가 양말을 벗고 내 왼쪽 팔걸이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발을 내려달라고 정중하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두 줄 앞 좌석엔 할머니 두 분이 앉아 박근혜에 대해 큰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홍상수 영화를 보기엔 지나치게 고령이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뒤에 있던 그 남자 직원이 날 보고 또 인사를 했다. 영화를 같이 본 모양이었다. 엇 뜨거라 하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완전히 밖으로 나가려다가 아냐, 간단하게 영화 리뷰나 써야지 하고 극장 안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계단을 올라갔더니 그 남자 직원이 "뭐 두고 가셨어요?" 라고 반갑게 묻길래 그대로 다시 내려왔다. 이상한 날이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영화 리뷰는 다음에 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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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영화들

영화일기 2017. 4. 20. 10:43


며칠 전, 작년에 극장에서 봤던 영화들의 제목을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 봤다(아, <헤이트풀8>은 IP TV로 봤구나).

아가씨
곡성
부산행
밀정
내부자들
마스터
최악의 하루
더 킹
럭키
에브리바디 원츠 썸!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본 투 비 블루
바닷마을 다이어리
헤이트풀 8
캐롤
데드풀
빅쇼트
우리들
동주
4등
당신자신과 당신의것
태풍이 지나가고
카페 소사이어티
너의 이름은
녹터널 애니멀스
라라랜드

그리고 보고깊었는데 못 본 영화들.

더스트
신비한 동물사전
닥터 스트레인지
나, 다니엘 블레이크
비치 온 더 비치
로스트 인 더스트

좋았던 영화는 아가씨, 곡성, 내부자들, 마스터, 최악의 하루, 캐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바닷마을 다이어리, 동주, 태풍이 지나가고, 헤이트풀8, 라라랜드

제일 좋았던 영화는 내부자들. 하나 더 하자면 캐롤.

싫었던 영화는 너의 이름은, 녹터널 애니멀스, 더 킹.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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