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자를 너무나 사랑하던 한 남자가 그녀의 이름만으로 쓴 '노부코'라는 시를 좋아한다. 김세은 교수의 이 칼럼도 그렇다. 반복의 힘은 놀랍다. 한 번은 애틋함으로, 한 번은 단호함으로 두 사람 다 내 마음을 움직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


mode=LSD&mid=sec&oid=028&aid=0002373739&sid1=001&lfrom=kakao



Posted by 망망디
,


https://www.youtube.com/watch?v=svHlkaDlPlg

http://v.media.daum.net/v/20170726105035519


지난 6월 중순에 제가 '헐크 아저씨'라고 촬영현장에서 와이셔츠가 찢어진 채 앉아있던 버스 기사 아저씨 사진을 올린 적이 있는데요, 사실은 그 때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프로모션을 위한 바이럴을 촬영하던 날이었습니다. 세계 마술대회에서 1위를 했던  마술사 유호진이 스노우보드를 신은 채 버스 옆에 매달려 가는 장면이었는데, 그때 버스를 운전하던 아저씨 의상이 작아서 옷이 찢어진 것이었거든요. 다행히 촬영이 무사히 끝났고 바이럴 네 편도 잘 만들어져 어제부터 유투브 등에 릴리즈가 됐는데 벌써 100만 뷰를 육박한 모양입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바이럴인 것 같습니다. 유호진은 젊은 사람인데 얼굴도 잘 생기고 매너도 정말 좋더군요.

(*주관부서인 해외문화홍보원에서 비밀 유지를 부탁해서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https://youtu.be/boX-nASh1xY

Posted by 망망디
,


유부남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50대의 출판사 사장에게도 새로운 연애가 찾아올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나이나 상황과는 상관 없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는 거니까. 연애감정이라는 것은 누가 심지 않아도 이끼처럼 적당한 응달만 있어도 어느새 자라나기도 하니까.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다음엔? 뒤늦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주인공이 결혼생활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로 생긴 젊은 여자랑 멋진 사랑을 이어갈까? 그럴 리가 없다. 적어도 이게 홍상수의 영화라면.  

홍상수의 스물한 번째 장편 영화 [그 후]는 문학평론가이자 작은 출판사 사장인 봉완(권해효)이 여직원 창숙(김새벽)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헤어진 후 새로운 여직원 아름(김민희)을 맞이하는 얘기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봉완은 창숙을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뒤늦게 아내 해주(조윤희)는 이 사실을 알고 격분했으며 아무 것도 모르던 아름은 그 사이에  채 엉뚱한 봉변을 당한다. 얘기만 들으면 상투적인 치정멜로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비슷비슷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자꾸 보는 이유는 섹스나 불륜을 잘 다루어서가 아니라 그런 소재를 다루면서도 상투적인 대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새로움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소하고 한심한 인물이나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 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역시 그의 영화답게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중국집에서 술을 마시던 창숙은 나이 많은 봉완에게 치사하다고 화를 내며 엉엉 운다. 간절하지만 사랑은 늘 이렇게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나중에 입사한 아름을 하루만에 쫓아낼 정도로 굳건해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창숙의 존재는 묘연하기만 하다. 그 뜨겁던 다짐이나 맹세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중국집에서 술을 마시던 아름은 봉완에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람은 믿는 게 중요하다고. 아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무시하는 요즘 풍조 때문에 하나님이란 말을 쏙 빼고 그 얘기를 하려니 믿음에 대한 토론이 본질을 벗어나 자꾸 겉도는 느낌이다(이 와중에도 교인인 아름은 '하나님'이라고 하고 교인이 아닌 봉완은 '하느님'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중요한 차이다). 나중에 출판사에서 쫓겨나면서 열몇 권의 책을 챙겨나오던 아름은 택시 안에서 갑자기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을 실감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아름이 봉완의 출판사에 다시 찾아간다. 이번에 무슨 상을 받게 된 봉완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아내의 눈을 피하면서 연애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을 내쫓았던 창숙의 뒷얘기가 궁금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봉완은 아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던 중에 "아, 우리 전에 만났었죠? 아, 같이 술도 마셨죠."라고 한심한 기억력을 드러낸다. 남아 있어야 할 창숙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다른 여직원이 들어오면서 배고픈데 뭘 시켜먹자고 봉완에게 말한다. 봉완은 중국음식을 시키자며 아름에게도 권한다. 허무하다. 당시에는 간절했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극장으로 들어가 겨울에 찍은 영화를 보는 맛이 각별했다. 더구나 흑백영화다. 이런 작은 영화는 차분한 흑백이 어울린다. 관객이 인물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늘 그렇듯이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권해효부터 김민희까지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는 감독이 배우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습성이나 표정, 버릇을 영화 속에 녹여내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촬영 당일 아침에 장비를 세팅하는 스태프들 사이에 앉아 비로소 디테일한 대사를 쓰는 것도 배우들의 실제 삶을 영화 속에 끝까지 반영하려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권해효와 조윤희는 실제 부부다. 크게 관계는 없지만 그런 걸 알고 보는 것도 영화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늘리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가치는 결과에 있을까 아니면 과정에 있을까? 아무래도 홍상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 과정이, 순간순간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언제나 현재가 제일이다. [그 후]라는 제목은 촬영장으로 쓰인 출판사에 있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즉흥적으로 따온 것이지만 이 모든 사건이 지나간 후에 과연 뭐가 남았는지를 반추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아름이 출판사를 나설 때 새 여직원이 시킨 중국집 철가방과 입구에서 깐 마주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중국음식 배달 오토바이와 비교해 봐도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홍상수의 영화를 무조건 지겨워하거나 키득거리면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펼쳐놓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인생과 이토록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

[운명과 분노]라는 소설을 두 번 샀다. 두 번 읽은 게 아니라 두번 구입. 출퇴근길에 전철 안에서 짬짬이 읽다가 100페이지쯤 읽었을 때 어디선가 잃어버렸는데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책값이 16,500원이니까 나는 결국 33,000원짜리 이야기를 읽은 셈이다. 그래서 어땠냐구? 다시 사서 읽길 잘 한 것 같다. 아마도 올해가 다 가도록 나에겐 이보다 더 ‘올해의 책’은 없을 것 같으니까. 

로런 그로프는 무시무시한 작가다. 안 그렇게 생겼는데 글은 독하고 능숙하고 교활하다. 섹스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마음에 딱 든다. 그리고 필력이 엄청나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시나리오 작가처럼 사건을 잘 짠다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기다. 사건보다 중요한 건 그 모티브를 어떤 태도와 문체로 다루느냐인데, 뛰어난 작가일수록 가장 고귀해질 수도 가장 저속해질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랬던 것처럼. 로런 그로프가 그렇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이 책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 얘기도 여기저기 끊임없이 인용된다. 남자 주인공 로토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주로 하는 배우였고 나중엔 잘 나가는 희곡작가가 되기 때문이다. 스물두 살에 결혼하는 그의 아내 마틸드를 만난 것도 그가 햄릿 역을 했던 날의 일이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호의와 사랑을 받았고 원하기만 하면 모든 여자와 잘 수 있었던 로토는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던 신비한 여신 같은 마틸드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청혼하고 순식간에 결혼을 한다. 소위 ‘킹카’들의 갑작스러운 결합에 어이 없어하던 친구들은(여자라면 대부분 로토와 섹스를 했던-쓰리섬을 했던 여자들도 있다)신혼파티에 와서 그들의 결혼이 곧 깨질 것을 예상하며 "뭐, 첫 번째 결혼이니까”라고 배배꼬인 속내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는 달리 두 사람은 로토가 죽기까지 무려 23년간 다른 사람을 넘보는 일 없이 결혼생활을 영위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찍 결혼한 남녀가 헤어지지도 않고 이십 년 넘게 함께 사는 얘기가 어떻게 흥미로운 소설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로런 그로프라는 작가의 힘이 빛난다. 이 소설은 로토와 마틸드의 격하고 찬란한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뒤엔 콜리와 에이리얼이 라는 음습한 인물들이 숨어 있는 교활하고 잔인한 드라마다.  이 책이 심리소설이었다면 왜 제목이 ‘운명과 분노’인지, 에이리얼과 마틜드의 비밀 거래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원인과 결과가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이 책이 추리소설이었다면 마틸드가 왜 스물여섯 살에 낙태를 하고 스물여덟 살엔 불임수술을 하는 배신을 저질렀는지 밝혀내려 애쓸 것이다. 아니, 그보다 어렸을 때 정말 마틸드가 남동생을 계단에서 밀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게 사실인지부터 밝혀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책이다. 그것도 강력한 서사를 지닌 입체적인 문학 작품. 마침 이 책을 쓸 때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을 탐닉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현대적인 결혼생활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신화적인 구성과 고전적인 비극미를 함께 갖추게 되었다.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서 단 한 푼의 돈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매력적인 외모와 비상한 두뇌를 소유했던 한 사내와 어릴 적 불운했던 과거를 분노라는 동력으로 맞서려 했던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 연상되는, 마치 세상 일을 모두 알고있는 듯한 로런 그로프의 우아하고 오만한 문체와 폭발적인 서사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인생사와 인간의 단면을 활자의 힘만으로 능숙하고 위엄있게 그려낸다.   

그동안 누가 흥미진진하면서도 문학성까지 갖춘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또는 [인생],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조지수의 [나스타샤]등을 추천했는데 이제 한 권을 더 추천해야겠다. 바로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다.



Posted by 망망디
,

제가 어렸을 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이광조의 명곡이 발표되었죠(그 앨범에 있는 노래들은 하나같이 명곡입니다. 저는 '추억 속의 비'를 특히 좋아했습니다만, 각설하고). 오늘은 그 노래 제목과 꼭 닮은 자동차 광고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독일 폭스바겐 광고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370MpxHzUQ









남자의 집인가 봅니다. 청순한 금발머리 여자가 남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냅니다. 달콤한 음악이 흐르고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 위로 이런 자막이 흐릅니다. 

자막) 그녀는 예쁩니다
          그녀는 재미 있습니다 
          그녀는 똑똑합니다
 
그때, 땡,땡.땡~ 하고 자동차 거리 측정 효과음이 들려옵니다. 사과를 꺼내 입에 무는 그녀. 

SE) 땡땡땡~

자막) 그녀는...제 형의 여자친구입니다 



자막) Automatic Distance Control 

       Volkswagen


알고보니 그녀와 더 이상 가까워지면 큰일나는 운명이었던 거죠. 가슴이 아픕니다.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유지해주는 첨단 장치를 광고한다면서 가까이 하면 안 될 존재에 대해 이보다 더  안타깝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얄미운 광고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



우연히 유투브에서 역대 공익광고 뽑아 놓은 걸 봤는데요, 맨 처음 나온 '기쁨도 고통도 우리의 몫입니다'라는 IMF 극복 광고와 맨 마지막에 이세돌이 나와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라 말하는 경쟁위주사회문화 광고가 제가 만든 것이더군요. 내가 이렇게 공익적인 인간이었나,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해보는 월요일입니다. 하하. 



https://www.youtube.com/watch?v=ghKhZZ3CMNs 



Posted by 망망디
,

스릴러인줄 알고 갔는데 이중 삼중으로 설계된 교묘한 심리극에 홀딱 속았다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이자벨 위페르는 알고 보니 칼자루를 쥔 여자였고 가해자는 복수를 당하는 게 아니라 어이 없게도 일종의 '사고사'로 죽는다. 


예상했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을 관객들이 서서히 깨달을 때쯤 맨 마지막 묘지 장면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여자들은 캐롤 리드의 [제3의 사나이]의 엔딩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당당하고 얄밉다.  폴 버호벤의 연출은  그가 평생을 천착해 왔던 폭력과 욕망 사이에 유머까지 끼워넣는 여유를 부리면서도 전체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경쾌한 카메라 워크 역시 '폴 버호벤'이란 감탄을 하게 만든다. 


음악은 예전 [원초적 본능]을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맛이 있고 설정이나 시점이 다소 애매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폴 버호벤스러운 점으로 느껴진다. 이 영화는 원래 미국에서 만들려고 했으나 니콜 키드만, 줄리안 무어, 샤론 스톤 등이 모두 출연을 고사하는 바람에 유럽으로 건너와 이자벨 위페르와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굳이 분류해 보자면 그의 흥행작들인 [로보캅]이나 [토탈 리콜], [스타쉽 투루퍼스]보다는 버호벤 초기작인 [The 4th Man]과 바로 전작인 [블랙북] 사이에 있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씨네21 평론가들 중엔 미카엘 하네케와 비교하면 뭔가 아쉬운 점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던데,  당치 않은 얘기다. 하네케 감독의 도저한 비관주의에 비하면 버호벤은 훨씬 낙관주의자에 가까우니까.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전날 최악의 영화들을 뽑는 ‘골든 래즈버리’ 식장에 가서 최악의 감독상도 받고 주최자들과 낄낄대고 온 최초의 감독이기도 하다. 모두 보통 사람의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폴버호벤짱 #이자벨위페르짱짱 




Posted by 망망디
,


이번에 부산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벡스코역 근처에 있는 '면옥향천'에 가서 메밀소바를 먹는 것이었다. 이 메밀국수집의 주인인 요리사 김정영 씨는 아내가 취미로 마라톤을 하던 20년 전쯤 같은 클럽 멤버로 만났던 사람이라고 들었다. 아내는 그 후 마라톤을 그만 두었지만 정영 씨는 운동을 계속해 지금은 철인3종경기에 나갈 정도라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 저녁 여섯 시쯤 가게 앞에 도착하자 정영 씨가 나와 인사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랜만에 보는 아내보다 처음 보는 나를 더 반가워 하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형님, 조금 있다가 그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라고 말하는 정영 씨. 한창 바쁜 시간이라 그런지 26석의 좌석은 가족과 친구, 연인 등 각양각색의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생각보다 잠깐 기다린 후 우리도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나니 정영 씨가 와서 인사를 했다. 아내인 윤혜자야 예전 마라톤 클럽 멤버였으니까 잘 알지만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음주일기' 얘기가 나왔다. 예전에 내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50회 넘게 연재하던 음주일기라는 한심한 글을 우연히 읽고 이내 팬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나도 잊고 있던 음주일기인데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정영 씨는 그렇게 나와 윤혜자를 따로따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두 사람이 사귄다고 하더니 끝내 결혼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지 참으로 알 도리가 없으니 그저 늘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며 깔깔깔 웃었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채 조그만 접시에 담겨 나온 메밀소바를 먼저 맛보라고 했다. 쫄깃하고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어 장국에 적셔 먹는 '모리소바'가 나왔고 일인 분을 두 그릇에 나누어 준 '순메밀 막국수'가 나왔다. 일 인분을 두 그릇에 나눠준 이유는 여기서 그 정도만 먹고 이 차 술집으로 가기 위해서란다.

모리소바의 장국은 짜지도 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밍밍한 것도 아니었다. 메밀면은 조금 전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방금 풀린 것 같은 탄력을 자랑하며 입안으로 들어와 한 번 더 꿈틀댄 뒤 치아 사이에서 잘게 끊어진 채 목 안으로 넘어갔다. 나의 짧은 식도락 경험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안정된' 맛이었다.

막국수의 국물이나 면도 정갈함을 잃지 않으면서 독특한 맛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 요리들과 함께 돈까스와 카레 고로케가 조금씩 딸려 나왔다. 보통은 막국수와 함께 수육을 내는데 이 집은 돈까스로 바꾸었고 그 결정은 '신의 한 수'로 불릴 정도로 손님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바삭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돈까스는 고기 육질이 부드러워서 어른은 물론 아이들이 먹기에도 그만이었던 것이다.

면옥향천이라는 상호 위에는 '김정영분식'이라는 마더 브랜드가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이곳에서 직접 면을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식당 이 층에 있는 제면소에 가서 메밀면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구경을 했다. 이 식당은 전국에 있는 메밀밭 몇 군데와 계약을 맺어 지역별 품종별로 메밀을 받고 그 식재료들을 잘 조합해서 막국수와 소바를 만든다고 한다. 대단한 포부와 정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정영 씨가 우리를 '해운대 하얀 오징어집'으로 데려갔다. 이 집은 오징어를 잘게 채썰듯 내놓는 곳이었다. 썩 마음에 드는 안주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대선' 소주를 시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영 씨가 15년 전 사이판에 있는 식당에서 일 할 때 아내가 여행 가서 만나고 처음이라니 참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그동안 정영 씨는 우동에 전념하다가 어느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메밀면으로 방향을 돌렸고 몇 년 간의 노력 끝에 단골손님들에게 그 맛과 품질을 인정 받기에 이른 것이었다.

매출이 안정되고 매일 만석을 기록한 이후로 툭하면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와 같이 사업을 하자고 권하지만 김정영 씨는 결코 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게는 '왜 이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데 같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만 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당신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일단은 일이 재미 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 자체가 재미 있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멀리 본다고 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함께 만들어 가는 좋은 미래,가 자신의 목적이라 말한다. 하나 같이 평범한 음식점 주인을 넘어서는 멘트들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 연장선이다. 그 동안 TV에 자주 출연을 했지만 가게 안에는 그런 홍보 액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만 걸어 놓았다고 하며 웃었다. 일요일은 칼 같이 쉬는 것도 종업원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다. 26석의 가게에 11명의 종업원이 일하는데 인원을 줄이지 않는 것도 종업원들의 좋은 삶이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맛있는 횟집에는 별다른 '스끼다시'가 필요 없듯이 좋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생활이 필수라는 것이다. 꾸준한 운동을 통한 체력 관리, 그리고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지 않는 떳떳함. 얘기를 나눌수록 식당 주인이 아니라 철학자와 술을 마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책에서 배운 철학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혀 깨달은 생활철학이다.

어떤 분야든 정점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만의 통찰과 철학을 느낄 수 있는데 김정영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조금 특이한 점도 있다. 그의 마라톤 풀코스 기록은 2시간38분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음식점 주인이, 무슨 철학자가 이렇게 지구력이 좋단 말인가.

마지막 술자리 '붉은 수염'에서 술을 마시던 그는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계산을 했으니 술을 더 드시다가 가시라'고 말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일요일인 내일 새벽 자전거 200Km를 달리려면 지금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철인 3종경기에 나가는 메밀국수집 주인을 목격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소주를 한 잔 더 마셔 보았다. 새벽 한 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면옥향천 #김정영분식 #메밀소바 #부산맛집 #면식기행

'음주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들이 놀러오는 집  (0) 2014.07.20
사람들이 놀러오는 집(예고편)  (0) 2014.07.19
음주일기 51  (0) 2012.02.29
음주일기 50  (0) 2012.02.29
음주일기 32  (0) 2012.02.28
Posted by 망망디
,


필기구를 바꾼다
모니터를 껐다 켠다 
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으로 간다 
초콜릿을 먹는다 
인터넷 서핑을 한다 
화를 낸다 

아이디어는 안 나오고
시간은 없을 때

광고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별 이상한 짓거리들을 한다 
사실은 다 소용 없는데  

아이디어는 조용필이다 
맨 마지막에 나오니까  

(그나마 나오면 다행. 안 나오는 날이 더 많다) 




Posted by 망망디
,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번씩은 들어봤음직한 '밥벌이'에 대한 멘션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는 놀랍게도 밥을 잘 안 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돈을 아끼느라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원래 식욕이 없어서인 경우도 좀 있고 다이어트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내가 근무하는 3층 기획실의 인원 대부분은 점심을 안 먹거나 일반인과 매우 다른 형태로 음식을 섭취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한두 사람 밥을 안 먹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떼를 지어 안 먹는 회사는 처음 아닌가 싶다. 

하루 종일 굶고 가끔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이나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들어오는 용 모 실장 같은 경우 왜 그렇게 밥을 안 먹냐고 한 번 물어봤더니 "뭐, 귀찮은데 하루 세 끼를 꼭 다 챙겨 먹어야 하나요?"라고 태연하게 반문한다. 김 모 실장님 같은 경우는 집에서 가져온 찐 고구마나 바나나 등을 끼니로 삼는다. 고 모 실장님은 크게 앓은 뒤 건강관리를 위해 소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웃기는 건 그러다가 아주 가끔 다 늦은 저녁에 컵라면이나 짜장면 같은 걸 폭식하고는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나와 한 팀에서 일하는 카피라이터 승찬 같은 경우는 할 일이 있으면 신경이 곤두서서 밥숟가락을 입에 대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무슨 프로젝트가 하나 있으면 거의 점심 저녁을 건너뛰고  미친듯이 일만 한다. 그런다고 아주 굶는 건 아니다. 일이 끝나고 밤 늦게 집에 가서 혼자 폭식을 한다고 고백한다. 어머니는 '뭐 하느라 밥도 못 먹고 들어와 이렇게 많이 처먹냐'고 옆에서 한숨을 내쉬시고. 이 놈은 어쩌다가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면(거의 없는 일이지만) 언제 굶었냐는 듯이 짜장면 곱배기에 공기밥을 추가해서 순식같에 해치우는 괴물이다. 

몇 달 전 새로 들어온 카피라이터 수연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아예 끼니 때마다 굶는다. 그래서 그런지 몸도 깡말랐다. 한 번은 궁금해서 "그렇게 안 먹고 어떻게 버티냐?" 물었더니 집에 들어가서 뒤늦게 밥솥 끌어안고 먹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러나 평소 습관이나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아무래도 거짓말인 거 같다. 

이래저래 우리 회사에서 끼니 때마다 밥을 챙겨먹는 사람은 '혹시 나는 식충이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는 아주 나쁜 환경이다. 그동안 점심시간에 정상적으로 식욕을 불태우는 인간은 나와 민섭 팀장 둘뿐이었는데, 다음 주부터 민섭이 다른 회사로 가게 되었다. 대단히 섭섭하고 괴로운 일이다. 이제 나는 누구랑 밥을 먹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 민섭이 환송회라고 롤링페이퍼를 만든단다. 나는 롤링페이퍼에 우리 회사의 '단식 풍조'에 대한 비판의 글을 썼다. 실명을 거론했지만 풀네임도 아닌데 설마 이걸로 필화를 겪지야 않겠지. 에이, 설마. 




용 실장은 안 먹어 
건익 실장님도 안 드셔 
고 실장님도 안 드셔 
문 실장은 늦게 와 
재남 실장은 외출 중 
승찬이는 잘 안 먹어 
수연이는 더 안 먹어 
선아는 다이어트 
은솔이는 아직 안 친해 
유빈이는 너무 과묵해 

3층에서 점심시간에 
식욕에 불타는 건 
현민섭과 나
둘 뿐이었는데 
이제 너마저...

 함께 밥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른다지?
잘 가라, 식구!
그리고 또 보자 
한 번 식구는 영원한 식구니까 

- 4년된 식구, 편성준 씀 

  



Posted by 망망디
,